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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go:echo
    [...]/[Ulan Bator] 2023. 3. 19. 01:50


    https://youtu.be/2ltJ_gtCnV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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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younggodrecords.com/pages/ulan-bator


    한 여름, 열사병이라도 걸릴 것만 같은 무더위 속에서, (당시에는 서로 전혀 모르는 사이였던) Ulan Bator와 나는 이탈리아 피렌체 북쪽에 위치한 작은 스튜디오에 스스로 갇혀 있었다. 3주간, 매일 18시간씩을 스튜디오 안에서 보내면서, 서로에 대해 빠르게 알아갈 수 있었다! 물론 [EGO:ECHO] 수록곡들의 데모 버전은 미리 들어 두었던 상태였고, 또 Ulan Bator의 초기 음반들도 들어보고는 훌륭하다고 생각했었지만, 함께 작업을 시작하자마자 곧, 모두가 동의하게 되었다: 모든 가능성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갖고 대해야, 몇몇 경우는 아예 전부 갈아치우고 창밖으로 던져버린 후 바닥부터 새로, 지금 당장 새로운 작업으로 시작해야지만, 지금 이 순간의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살릴 수 있겠다는 것을. 그리하여 대부분의 (100%는 아니였다) 음악을 그 자리에서 새로 쓰고 편곡도 새로 했으며, 이런 과량의 작업을 하다 보니 스트레스와 압박감이 점점 더 강해지기 시작했다. 아드레날린, 스트레스, 열기, 혼돈, 그리고 패닉, 여기에 언어적인 장벽까지 (밴드는 프랑스인들이었고 엔지니어는 이탈리아인이었다) 가세하여 우리를 예기치 못한 새로운 곳으로 데려갔고, 개인적으로 굉장히 만족스러운, 고무적인 경험을 하게 되었다. 단순한 그루브, 또는 전자 음향, 또는 보컬 아이디어, 또는 우연히 만들어 낸 노이즈가 제대로 된 아이디어로 발전하여 결국에는 이 앨범에 수록된 곡으로까지 만들어지기도 했다 (물론 다른 곡들은 Ulan Bator가 미리 기초적인 뼈대를 세워 둔 상태였지만 말이다). Ulan Bator가 베이스, 드럼, 기타와 앰프까지 들어 있는 좁아터진 공간 (눈으로 보기에는 대충 8 X 12 피트 (2.4 X 3.6 미터) 정도) 에 낑겨 들어가서는 그 어떤 냉소도, 그 어떤 자의식 과잉도 없이 악기에서 그루브를 뽑아내는 모습을 보는 것은, 도저히 잊을 수 없을 기쁨이었다 (그리고 이런 연주는 노골적이면서도 지적인 '아트 록커' - 대체로 좋게 말하자면 상당히 무기력하다고 할 수 있고, 나쁘게 말하자면 스스로 머리가 좋다고, 또는 '힙'하다고 생각하는 부류의 사람들 - 의 연주였다). 이들의 음악성, 이들의 헌신, 언제든지 당장 가진 것들 (그랜드 피아노라던가 아니면 디지털 피드백이라던가 등등) 을 마음대로 활용하여 강력하고 명료한 음악을 만들어내기 위해 쏟아붓는 노력, 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와 방대한 지식, 그리고 수많은 옛 음악 (Beatles Beach Boys에서 뉴욕 노 웨이브와 크라우트 록, 심지어 실험적인 전자 음악들까지) 에 대한 열정이 전부 합쳐져 이 앨범, 내 생각에는 아주 훌륭한 '익스페리멘털 록' (또는 뭐가 되었든지간에 당신이 부르고 싶은 장르) 앨범을 만들어 낸 것이다. [EGO:ECHO]는 작업할 만한 가치가 충분했던 앨범들 중 하나였으며, 이 앨범을 Young God Records에서 발매하게 된 것이 영광으로 느껴 질 정도이다. 이 앨범이 지향하는 목표들에 대한 열정을 조금이라도 공유하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EGO:ECHO]를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가사가 프랑스어인 것에 대해 말하자면, 어쩔 수 없다. 밴드가 프랑스인들이니.

    Michael Gira / Young God Records,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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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psychedelicbabymag.com/2021/01/ulan-bator-amaury-cambuzat-interview.html


    Amaury Cambuzat (Ulan Bator) 인터뷰
    2021년 1월 14일
    Klemen Breznikar

    ...

    Klemen Breznikar> Ulan Bator가 어떻게 결성되었는지, 어떻게 활동했었는지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있겠는지?

    Amaury Cambuzat> Ulan Bator는 시작부터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는, '변화할 수 있는 밴드'로 출발했었다. Olivier Manchion과 내가 속해있었던 파리 기반의 밴드 Miss Marvel Ulan Bator의 전신이였으며, 1994년 이 밴드의 후속격으로서 출발했던 것이 Ulan Bator였다.
    초기의 Ulan Bator Unsane, Steel Pole Bath Tube, 초기 Sonic Youth 스타일의 '익스트림 노이즈'를 연주하는 밴드였었다. 이 상태에서 몇 번의 공연을 할 수 있었고, 한번은 파리에서 Babes in Toyland 공연의 오프닝 공연도 해 보았다... 그러다가 밴드를 다시 새롭게 시작해 보자고, 좀 덜 '개러지 록'스러운 음악을 해 보자고 결정을 내렸다. 그 후 파리 외곽의, 세느 강 끝자락에 있었던 백악 (chalk) 광산터를 구입해 그 위에 우리의 스튜디오를 만들게 되었다. 첫 앨범을 녹음하기 직전 드러머 Franck Lantignac (보르도 (Bordeaux) 출신이다) 이 밴드에 합류했다. 첫 앨범 수록곡의 대부분이 이미 작곡이 끝난 상황이었으며, 우리의 첫 레이블 DSA (Les Disques du Soleil et de l’Acier) 하고도 앨범 3개 분량의 계약을 이미 맺은 상태였었다. 나 / Olivier / Franck 3인조 구성은 1999년까지 이어졌으며, 이후 Franck는 보르도로 돌아가겠다는 결정을 내리고 밴드에서 탈퇴했다. 그렇게 Olivier와 2인조 밴드로 돌아갔으며 틈틈이 새 드러머를 찾아다녔다. [EGO:ECHO] 앨범에 수록될 곡들의 상당 부분을 작곡한 시점에서 Matteo Dainese (Teo Teardo와 Jim Coleman의 듀오 프로젝트 Here에서 드럼을 연주하고 있었다) 가 드러머로 합류해 녹음 작업에 참여했다.
    2001년, 힘들었던 [EGO:ECHO] 투어 이후, Olivier는 밴드에서 탈퇴하기로 결정했다. 나는 Matteo와 함께 2인조 밴드로 Ulan Bator를 이어나갔고, [Nouvel Air]와 [Rodeo Massacre]를 만들었다.
    [Rodeo Massacre] 발매 및 투어 이후, 나는 Ulan Bator 활동을 잠시 접어두고 Faust와의 협업에 주력했다. 2009년이 되어서야 Ulan Bator 활동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밴드 구성을 완전히 바꾸었으며, [Soleils]와 [Tohu-Bohu]를 동시에 녹음했다. 이 두 앨범에는 James Johnston (Gallon Drunk, PJ Harvey에 참여한 사람) 이 참여했었다.
    [En France En Transe]도 여러 새로운 사람들이 참여했으며, 그 중에는 'Ondes Martenot'을 멋지게 연주했던 Nathalie Forget도 있었다. [Abracadabra]는 나 혼자 녹음했다. [Stereolith]는 Sergio Pomante 및 Mario Di Battista와 함께 만든 앨범이었다. 이런 일련의 작업들을 통해 나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 협업을 해 보았고 그 중 일부와는 결국 갈라서게 되었다. Ulan Bator처럼 완전히 독립적인 밴드를 운영하면서 그 어떤 풍파도 일으키지 않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기 마련이다.

    Klemen Breznikar> 'Ulan Bator'라는 밴드 이름은 어디서 따 온 것인지?

    Amaury Cambuzat> 밴드의 시작에는 DSA 레이블이 아주 큰 영향을 끼쳤었다. DSA 레이블의 수장이자 당시 우리의 매니저였던 Gérard Nguyen이 우리에게 많은 조언도 해 주고 지원도 많이 해 주었던 것이다. Gérard는 코치이기도 했고, 70년대에 음악 팬 잡지 [Atem]을 발간하기도 했었다. Kas Product, Jack Berrocal, Univers Zero, 심지어 Pascal Comelade같은 프랑스 음악가들의 매니저 역할을 오랫동안 해 오기도 했고. DSA 레이블은 Keiji Haino God Is My Co-Pilot 같은 음악가들의 앨범도 발매하고 있었으며, 낭시 (Nancy) 에 "WAVE"라는 이름의 아방가르드 음악 전문 매장도 운영하고 있었다. Gérard는 음악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우리에게 'Ulan Bator'라는 이름을 추천해 준 것도 Gérard 였다. 내 생각에 Gérard는 80년대 오를레앙에서 활동했었던 전설적인 예술가 집단 Ulan Bator를 떠올리며 그 이름을 추천해 주었던 것 같다 (내 기억이 틀릴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는 모두 아시아 문화와 문학에 깊이 빠져 있었고, 따라서 'Ulan Bator'라는 이름 또한 밴드 이름으로써 완벽하다고 생각해 바로 채택했다. 당시에는 구글이 없었고 따라서 '울란바토르' (몽골의 수도) 가 대체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그래서 'Ulan Bator'라는 이름을 말하면 대체로 전장의 함성이라던가, 무슨 마법 주문이라던가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Klemen Breznikar> 최근 Jelodanti Records가 Ulan Bator의 첫 앨범 ([Ulan Bator]) 을 한정판으로 재발매했는데, 이 첫 앨범의 컨셉은 무엇이었는지?

    Amaury Cambuzat> Jelodanti Records 레이블은 두 명의 음악 애호가가 만든 신생 레이블이다. [Ulan Bator]의 아이디어는 그냥 최대한 많은 노이즈를 만들어 보자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Ulan Bator만의 음악으로 무시무시한 분위기를 만들어 보자는 것.
    그 앨범 수록곡의 절반은 사실 Miss Marvel 시절에 이미 만들어 두었던 곡들이었고, 이 곡들이 시끄러운 쪽의 음악을 담당했다고 볼 수 있다. 좀 더 분위기를 잡는 쪽에 가까운 곡들도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마지막 곡 "Cerf-Volant"이 있다...
    우리는 Can이 자신들만의 스튜디오 'Inner Space'를 만들고 온갖 실험을 다 했던 것에 큰 감명을 받았었고, 그래서 파리 외곽의 광산터를 구입해 수백 미터 지하의 공간에 스튜디오를 꾸렸다.
    그 스튜디오에서 첫 3개의 앨범들이 만들어졌다. 이 스튜디오의 이름은 '기요틴' (La Guillotine) 이었다. 그곳에는 8트랙짜리 Tascam 1/4인치 테이프 녹음기가 있었고, 첫 두 앨범 (역주: [Ulan Bator]와 [2°]) 은 그 장비로 만든 앨범이었다... 스테레오 드럼을 트랙 2개에, 한 트랙은 베이스에, 2개 트랙은 기타에, 또 한 트랙은 보컬에, 그렇게 6개 트랙을 사용해서. 그 때에는 컴퓨터 같은 건 없었다. [Végétale]을 만들 때에는 더 좋은 장비 (16트랙, 1인치 테이프 녹음기) 를 빌려 사용했다. 완전 사치였었지! 하지만 작업을 하다 보니 16트랙 중 12개만 사용하게 되었던 것 같다.

    Klemen Breznikar> 밴드의 음악에 영향을 준 음악가들은?

    Amaury Cambuzat> 음악 스타일에 대한 것을 말하자면, 노 웨이브 밴드들 (Mars, DNA), 독일의 70년대 크라우트록 밴드들 (Can, Faust, Popol Vuh), 사이키델릭 밴드 (Pink Floyd) 및 그 당시의 노이즈 록 밴드들 (Cop Shoot Cop, Swans, The Jesus Lizard, Fushitsusha, Boredoms) 이 있겠다. 하지만 우리는 또 우리만의 스튜디오, 우리만의 실험실에서 했던 수많은 리허설과 녹음에서도 큰 영향을 받았다. '기요틴' 스튜디오의 음향 환경은 환상적이었다! 첫 두 앨범, 특히 그 앨범들의 드럼 소리에서 '기요틴' 스튜디오의 훌륭한 반향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Klemen Breznikar> 모든 멤버들이 작곡에 참여했던 것인지, 그리고 작곡과 편곡 과정은 어떠했는지?

    Amaury Cambuzat> [Ulan Bator]는 Olivier Manchion과 내가 작곡한 앨범이었다. 그리고 당시 드러머였던 Franck Lantignac이 리듬 파트 편곡 및 녹음에 큰 기여를 했었다. [2°]은 세 멤버가 공동으로 작곡하였으며, 가사는 내가 만들었었다. [Végétale] 앨범부터 가사에 진지하게 임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EGO:ECHO]는 다시 한 번 Olivier와 내가 협동작업으로 작곡을 한 앨범이었다. [EGO:ECHO] 투어 이후 Olivier는 밴드를 떠났고, 나 혼자서 작곡과 작사를 맡게 되었다. 물론 [EGO:ECHO] 이후의 기나긴 시간 동안 나와 같이 연주했던 동료들이 가끔씩 정말로 중요한 아이디어, 정말 좋은 편곡을 들고 와 몇몇 곡의 성격을 완전히 바꾸어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특별히 고맙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Matteo Dainese ([EGO:ECHO], [Nouvel Air], [Rodeo Massacre]의 드러머), Egle Sommacal (Massimo Volume멤버이자 [Nouvel Air] 참여), James Johnston (Bad Seeds, Gallon Drunk, PJ Harvey 멤버이자 [Tohu-Bohu] 참여), Nathalie Forget ([En France En Transe] 참여) 가 있겠다.

    Klemen Breznikar> 밴드는 [Végétale]과 [EGO:ECHO]로 이어졌다. 특히 [EGO:ECHO]는 Michael Gira (Swans) 가 프로듀싱한 앨범이었고, 정말 훌륭한 앨범이었다.

    Amaury Cambuzat> [Végétale]은, 내가 기억하기로는, 당시에는 굉장히 '대담한' 앨범이었다.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1997년에 프랑스에서 [Végétale] 같은 음악을 하는 밴드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랬기에 [Végétale]을 만들고 발매하는 것 자체가 조금 위험한 도박이었다, 평론과 청중이 어떻게 반응할지에 대한 도박. [Végétale]은 한 단계 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시도였다. 그냥 디스토션 걸린 기타를 가지고 하는 실험을 넘어, 가사와 보컬 또한 일종의 '악기'로 다루는 것으로 ('포스트 록'이라는 장르에 대해 관련짓자면 말이다). [Végétale]을 발매한 후 이탈리아에서 여러번의 공연을 할 수 있었고, Consorzio Suonatori Indipendenti Marlene Kuntz같은 중요한 이탈리아 밴드들과 함께 공연하면서 인지도도 높일 수 있었다. 이 덕에 Virgin 레이블과 연결되어 있는 레이블 Sonica Factory (Litfiba의 베이시스트 Gianni Marrocolo의 레이블이었다) 와 계약을 할 수 있었고, 이 계약을 통해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중요한 사람들과 앨범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Michael Gira (Swans, Angels Of Light) 를 프로듀서로 섭외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 후 우리는 피렌체 근교의 스튜디오로 가 1999년 8월 전체를 그 곳에서 지내며 [EGO:ECHO]를 만들었다. 3주 내내 스튜디오를 떠나지 않았다. 바깥 세계하고는 그 어떤 소통도 하지 않은 채로 말이다. 그렇게 [EGO:ECHO]가 만들어졌다. Michael Gira는 프로듀서로서 모든 역할을 열심히 해 주었다. [EGO:ECHO]를 만드는 것은 쉽지 않은, 강렬한 경험이었다. [EGO:ECHO]는 먼저 유럽에서 발매되었고 그 후 미국에서는 Michael Gira의 레이블 Young God Records를 통해 발매되었다.

    Klemen Breznikar> [Rodeo Massacre] 또한 내가 정말 좋아하는 앨범이다.

    Amaury Cambuzat> [Rodeo Massacre]는 [Nouvel Air] 다음에 만든 앨범으로, Cocteau Twins의 Robin Guthrie가 믹싱을 맡았었다 (Robin을 기용한 것은 10대시절 정말 사랑했던 Gun Club의 앨범 [Mother Juno]가 Robin의 믹싱이었기 때문이었다). [Rodeo Massacre]의 수록곡들 또한 일종의 '격리 상태'에서 만들어졌던 곡들이었다. 리허설을 멤버 3명 (Matteo Dainese - 드럼, Manuel Fabbro - 베이스, 나 - 기타, 오르간, 보컬) 이서 이탈리아 움브리아에 있는 트라시메노 호수 근처의 낡은 석조 주택 안에서 진행했었던 것이다. 그 후, 만들어진 곡을 가지고 볼로냐에 가서 녹음 작업을 진행했다. 이 앨범 또한 이탈리아에서 제법 성공을 거두었었다. 수록곡 중 "Pensées Massacre"가 MTV Italy에서 몇 주 동안 자주 재생되었다.
    투어에서도 공연장 관객석을 꽉 채우곤 했었다... [Rodeo Massacre]는 나에게 Ulan Bator의 진심이 깃든 앨범, Ulan Bator의 가장 성공적이었던 앨범들 중 하나로 남아 있다.

    ...

    https://youtu.be/vST332sTA3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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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9/10 04: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