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ii 2023. 3. 14. 00:48

https://youtu.be/clV5llc6L_c
"Plastic Bamb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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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muzines.co.uk/articles/news-of-the-world/1023#


News Of The World
Tim Goodyer
[Music Technology]
1992년 7월


David Sylvian(역주: Japan 보컬 및 기타)가 가장 좋아하는 파트너 중 한명이 되기 전의 사카모토 류이치 Yellow Magic Orchestra의 창립 멤버였었다. 지금, 일본 발매 앨범과 여러 영화 음악을 새롭게 내놓으며, 사카모토 류이치는 그의 최신 LP에 대해 Tim Goodyer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현재 일본 팝 음악계를 진두지휘하는 등대와 같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사카모토 류이치는 고급 기술들에 능통한 전문가이기도 했으며, 전설적인 Yellow Magic Orchestra의 창립 멤버이기도 했고, 이 세계의 다양하기 그지 없는 음악 문화를 충실히 따르고 있는 시종이기도 했다.

런던의 웨스트 엔드(West End)에서 진행될 소규모 공연을 1주일 앞두고, 사카모토 류이치는 그의 7번째 솔로 앨범을 발매하였으며 그로써는 드물다고 할 수 있을, 다수의 인터뷰를 영국 음악 언론들과 진행하였다. 공연은 웨스트 엔드의 한 아트 갤러리에서만 독점적으로 진행될 예정이었으며, 공연에는 사카모토 류이치와 그의 오랜 친구이자 음악적 동반자 David Sylvian 및 그의 아내이자 프랑스의 가수 Ingrid Chavez가 함께 할 것이었다. 이 7번째 앨범 [Heartbeat]는 David Sylvian Ingrid Chavez도 참여한 앨범으로 ("Tainai Kaiki II - Returning to the Womb" 및 "Cloud #9"), 앨범에는 이 둘을 포함하여 재능이 넘쳐나는 온갖 음악가들이 참여했다 - 세네갈 보컬리스트 Youssou N'Dour, 아방가르드 재즈 색소포니스트 John Lurie(역주: The Lounge Lizards 창립 멤버), 미국 출신 하모니카 연주자 Magic Dick, Deee-Lite의 슈퍼 DJ Dmitry와 정글 DJ Towa Towa및 여타 다수의 음악가들까지. 다채로운 참여 음악가들처럼 앨범의 분위기 또한 씁쓸한 자아성찰에서 민속 음악, 댄스 음악을 넘나드는 다양한 스타일을 선보이고 있었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전 앨범, [Beauty]에 친숙한 사람이라면 이번 앨범 또한 어떤 느낌일지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공연은 짧은 길이의 공연으로 3곡만 연주 될 예정이었으며, 그 중 2개는 사카모토 류이치 혼자서 Yamaha MIDI 그랜드 피아노를 가지고 연주할 것이었다. 이 피아노는 MIDI를 통해 Korg T2와 Yamaha SY99에 연결되어 있었다. 여기에 더하여 그는 디지털 오디오 테이프(DAT) 기기로 음악의 일부와 보컬 화음을 담은 배경 트랙을 연주할 것이었다. 공연장이 될 갤러리는 라이브 공연에는 전혀 맞지 않는 환경이었으며, 음향 점검시에 밸런스 및 피드백 문제가 다수 나타나기도 했다 - 사카모토 류이치를 취재하기 위해 모인 취재진들에게는 굉장히 걱정스러운 부분이었다. 하지만 이 걱정은 향후 기우였음이 드러났는데, 갤러리 측이 어떻게든 문제들을 해결하였고 추가 인력들을 모집하여 라이브 공연이 가능한 수준까지 끌어올렸던 것이다. 더 다행이었던 부분은, 공연에 참석한 다양한 사람들이 사카모토 류이치의 새 음악들을 높게 평가했다는 것이다 - 사카모토 류이치 라는 사람의 인기, 흔히 놓쳐지곤 하는 그의 인기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시였다.

사카모토 류이치는 대중 음악의 역사에서 길고도 독특한 역사를 밟아 온, 다양한 종류의 음악을 탐구해 온 음악가였다. 1978년에 그는 기이한 밴드 Yellow Magic Orchestra를 창립하였으며, 80년대에는 David Sylvian Japan과 함께 다양한 작업을 진행하였고, 1983년에는 오시마 나기사의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에서 David Bowie의 상대 역할을 맡기도 하고, 영화음악을 작곡하기도 했다. 또한 1986년에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영화 [마지막 황제]에서 마찬가지로 배역도 맡고 영화음악도 작곡하였다. 더 최근에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영화 [마지막 사랑],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영화 [하이 힐], 피터 코민스키의 영화 [폭풍의 언덕], Kevin Godley의 [One World One Voice] 프로젝트에까지 참여하기도 했다. 일본 투어도 막 마친 참이었으며, 바르셀로나 하계 올림필 개막식을 위한 곡 "El Mediterranean"도 만들었다. 그리고 이 작업들은 고작 일부밖에 안 되는 것들이었다. 직접 만나서 이야기해 본 사카모토 류이치는 조용했지만 질문에는 성심성의껏 잘 대답해주는 사람이었다. 이번의 대화를 위해 그는 어느 정도의 영어 실력을 최대한 활용하여 자신의 음악, 철학, 그리고 장비들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하지만 인터뷰는 완전히 순조롭지는 않았으며, 다소 조심스러운 분위기였다: 이따금씩 나는 그가 내 질문을 충분히 이해한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들기도 했으며, 때로는 내가 그의 대답을 충분히 이해한 것인지 사카모토 류이치가 의문스러워 하기도 했던 것이다.


음악 및 문화에 있어서의 온갖 복잡하고 미묘한 세부사항들은 일단 뒤로 미루어두고, 먼저 사카모토 류이치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장비들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그는 3칸짜리 선반에 자기가 항상 사용하는 장비들을 올려두었으며 어디에 가든지 거의 항상 가지고 다니고 있었다. 이 선반에는 그가 활용하는 하드웨어 중 핵심적인 장비들이 있었다. 그 중 사카모토 류이치가 최고로 뽑는 것은 Macintosh IIfx 였으며, 그 안에는 Mark of the Unicorn과 Opcode사의 시퀀싱 프로그램들이 돌아가고 있었고, Opcode의 Studio 5 싱크로나이저/미디 패치베이에 연결되어 있었다.

"Performer, 그리고 가끔은 Vision도 쓰고 있다." 사카모토 류이치는 설명했다. "하드디스크 녹음에는 Studio Vision을 쓰고 있는데, Digital Performer는 아직 하드디스크에는 그렇게까지 잘 먹히지 않아서 그렇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만, 아직은 나온지 얼마 안 된 프로그램이니까 - 내가 가지고 있는게 1.01 버전인데, 그러니 정말 '어린'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카모토 류이치는 Roland JD800, Korg T2, Yamaha SY77 및 SY99도 사용하고 있었다 - 구입하는데 쓸 돈만 충분히 있다면야 잘 사용할 수 있을 멋진 전자악기들이었다. 하기야 이 장비들은 전부 사카모토 류이치의 고향에선 비교적 쉽게, 적어도 서구권에서보다는 더 쉽게 구할 수 있는 장비들이긴 했다. 거기다가 서구권 정부들에서는 이러한 장비들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지 않고 있기도 했다. 이렇게만 보면 전부 잘 들어맞는, 편리하기만 한 느낌인 듯 보였다: 하지만, 사카모토 류이치 본인은 그렇게까지 확신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언제나 그런 것 같은데, 일본 바깥의 엔지니어들과 음악가들이 장비를 훨씬 더 깊이 있게 다루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자신이 받아 온 인상을 설명해 주었다. "그들이 더 심도있게 장비를 다룬다. 새로운 장비는 언제나 일본에서 만들어지고 - 일본 엔지니어들과 음악가들이 새로운 장비를 더 빠르게 접하지만, 심도있게 다루지는 않는다. 어째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일본에서 계속해서, 끊임없이 새로운 장비들이 만들어져 발매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일본이 현재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소비 시장들 중 하나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일본에 거주하는 서양인들이 일본인들이 폐기하거나 버린 산더미같은 가구들을 가지고 집 하나를 완전히 꾸밀 수 있을 정도라는 이야기들마저 떠돌 정도니까. 전세계 최신 기술 음악장비들의 개발 및 생산에 일본이 담당하는 역할을 생각하자면, 일본 음악가들이 전세계의 음악 시장에 기여하는 바가 얼마나 작은지, 생각하면 할 수록 정말 이상하게 보일 정도이다.

"맞다." 사카모토 류이치는 수긍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는 잠시 멈추어 내 말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고 있었다. "오케이", 그는 웃으며 대답했다. "장비는 일본에서 나오지만 음악은 안 나온다. 일본인들은 여기에 대해 생각도 안 하고 있다."

일본 음악계에서 나타나고 있는 또 다른 경향으로는 옛 아날로그 신디사이저에 대해 점점 더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 있을 것이다. MIDI가 장착된 Prophet 5나 Minimoog 신디사이저들은 날이 갈수록 가치가 올라가는 엔화의 흐름 속에서 상당히 괜찮은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 옛날 신디사이저들이 일본에 점점 더 많이 돌아오고 있다." 사카모토 류이치가 확인해 주었다. "지난 1, 2년간 그런 경향이 시작되었다. 먼저 일본 사람들이 FM 신디사이저들에 질려버렸다. FM 신디사이저 특유의 음색에 질렸고, 좀 더 자연스러운 느낌의 음향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PCM의 유행이 시작되었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넘어서 더 아날로그적인 음향을 찾고 있다. 옛 기술을 다시 찾아보는 사람도 많다 - DX7 같은 경우는 거의 '앤티크'에 가까운 옛날 물건인데, DX7을 사용하는 것이 '힙'한 일이 되었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작업 방식으로 넘어가자 그의 컴퓨터가 전면에 등장하게 되었다. [폭풍의 언덕]에 쓰일 음악은 우선 Performer로 작곡된 후 Coda의 Finale 악보 프로그램으로 옮겨져 교향악단이 연주 가능한 형태로 만들어졌다. '덜 형식적인' 프로젝트들의 경우, 그는 Performer 내에서 "스케치"들을 녹음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었다.

"가끔은 그냥 키보드 앞에 앉아서 아무거나 연주하는데, 모든 연주가 전부 Performer를 통해 저장되고 있다." 그는 말했다.

"때로는 그 '스케치'들을 그냥 오랫동안 내버려두기도 하고, 때로는 연주한 후 녹음된 음원을 가지고 편집과정을 통해 곡 하나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Heartbeat]를 만들기 시작했을 때, 모든 수록곡들이 그냥 2~4 마디의 짧은 '스케치'들을 기반으로 발전시킨 곡들이었다. 그 스케치들을 가지고 편집을 하다가 새로운 베이스 라인이라던가 대조되는 멜로디를 가진 보컬 트랙이라던가를 발견해 내었다 - 내 목소리를 샘플링해서 사용했었다. 뭐랄까,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던 작곡들이었다."

"가끔은 음향들을 가지고 그냥 놀기도 한다 - 작곡 중에, 예를 들어보자면 피아노 소리를 듣고 있다가, 드럼을 추가해서 다시 들어보기도 하고 그런 식이다. 그냥 비트와 드럼 음향들만을 가지고 여러가지를 해 보기도 한다."

그렇다면, 사카모토 류이치의 장비 선반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는 Akai S1000과 Roland S770은 언제 쓰고 있다는 것일까? 1980년대, 사카모토 류이치는 Fairlight CMI를 사용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억세게 운 좋은 소수의 사람들 중 한명이었다 - 그리고 이제는 기술이 많이 발전하여 이 모든 것들이 다소 불필요한 것들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이제는 샘플링 기기들이 정말 많이 발전해서 내가 혼자서도 거의 모든 장비들을 다 조작하고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말했다. "하지만 아직도 몇몇 악기들의 음색은 내가 완벽하게 복사하고 흉내낼 수가 없다. 예를 들자면, 현재 Magic Dick이라는 음악가와 함께 작업하고 있는데, The J. Geils Band의 하모니카 연주자다. 개인적으로 상당히 괜찮은 하모니카 연주 샘플들을 갖고 있기도 하고, T2의 하모니카 음향 또한 제법 괜찮지만, Magic Dick의 호흡과 타이밍은, 내가 혼자서 기술적으로 흉내낼 수 있는 것들과는 많이 다르다."

"물론, 나는 지금까지 나와는 판이하게 다른 다양한 음악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협업해오고 있으며, 그들은 모두 내가 '노이즈'라고 부르는 것을 가지고 있었다 - '노이즈', 음(note)이 아닌 음향(sound)들. 예를 들자면 숨소리라던가, 기타 혹은 하모니카에서 음과 음 사이를 미끄러져 이동할때 나는 소리들, 심지어는 연주자의 존재 그 자체의 일부라고도 할 수 있을 '의자가 삐걱거리는 소리'들까지. 물론 그런 노이즈들까지도 샘플러로 모사해낼 수 있지만,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다. 타이밍 또한 아주 중요한 것이며, 연주자들은 각자 자신만의 타이밍을 가지고 있다."

"나는 각각의 악기를 어떻게 연주하는지 공부해 본 적 자체가 없다. 어떤 특정한 악기에서 어떤 느낌의 음향이 나오는지를 들은 후 그 음향을 따라하는 것에 가깝다. 기타를 연주할 줄은 모르지만 기타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으며, 따라서 기타 연주를 듣게 되면 그 기타 연주를 흉내내서 음향을 만들고 연주할 수 있다. 물리적인 조건들 뿐만 아니라 프레이징을 하는 방식 및 세세한 표현까지 전부 말이다. 현악 연주를 들으면 거기에 맞는 프레이징과 세세한 표현들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서 나온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샘플러는 요즘 시대의 유행, 다른 음악가들의 작품을 샘플링하는 행위에도 쓰이고 있었다 - "Rap The World"는 Jimi Hendrix의 "Third Stone From The Sun"(Cozy Powell의 1970년대 히트곡 "Dance With The Devil"의 기타 리프 또한 여기서 나왔다)을 샘플링했으며, "Tainai Kaiki II"는 사카모토 류이치가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음악가들 중 한명, John Cage의 "Mureau"를 샘플링한 곡이다.


사카모토 류이치 John Cage 및 재즈 색소폰 연주자 John Coltrane의 영향을 받아 '메인스트림'을 벗어난 음악을 추구하기 시작했었다. 도쿄예술대학에서 음악 작곡을 전공하였던 그는 1978년 첫 솔로 앨범 [Thousand Knives]를 발매하였다 - 그리고 같은 해, 타카하시 유키히로  호소노 하루오미와 함께 Yellow Magic Orchestra를 결성하였다.

"우리는 Kraftwerk의 '강철 비트'와 비슷한 느낌의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 Yellow Magic Orchestra의 '매니페스토'에 대한 질문에 맞닥뜨리자, 사카모토 류이치는 대답하기 시작했다. "간단하게 말해서 우리는 일본 버전의 Kraftwerk가 되고 싶었다. 또한 일본에 대한 '블랙 조크'같은 것을 하고 싶기도 했었어서, 서양 세계에서 보는 '전형적인 일본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로 결정했었다. 우리는 일본인들과 서양인들을, 양쪽이 가진 제각기의 클리셰들을 전부 비웃고 싶었다. 그래서 '전형적인 이미지'들을 마음껏 썼다: 카메라들, 고개 숙여 절하듯이 인사하기, 이름표들까지. 심지어 빨간색 '중국 옷'을 입기도 했었는데 - 실제로는 중국에서는 아예 입지도 않고 존재하지도 않는 가짜 옷이었다. 빨간색이 공산주의의 색깔이긴 하지만 우리가 입었던 옷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냥 중국 인민복을 따라한 디자인이었을 뿐."

Yellow Magic Orchestra의 음악은 1980년 인스트루먼틀 곡, "Computer Game (Theme From Invaders)"가 전형적으로 보여 주고 있으며, 이 곡은 당시 유명하던 게임 [Space Invaders]의 노이즈와 팝 음악을 기묘하게 성공적으로 결합시킨 곡으로 UK 차트 17위까지 올라갔던 곡이었다. Yellow Magic Orchestra의 '다른 측면'은 그 음악들을 가능하게 했던 기술이었다. 그들이 대중에게 선보였던 이미지들 중 하나는, 음악을 만들어내는 온갖 산더미같은 장비들 뒤에서 열광적으로 움직이며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행위들을 하는 일본인들의 이미지였다.

"그 때는 디스코 음악이 한창 흥하던 시기였다. '미래의 음악'이라는 음악들이 돌아다니고 있었으며, Roland의 MC8 - 사상 첫 '음악 컴퓨터' - 도 나왔던 시대였다. 거기에 멤버 셋 모두 Kraftwerk를 좋아했다. 사실 나는 Yellow Magic Orchestra 전에 이미 MC8을 사용하고 있었다, [Thousand Knives]에 결과물들이 들어가 있다. [Thousand Knives] 제작 당시 나와 음향 엔지니어는 MC8의 메트로놈 소리를 음악에 사용하는 방법을 알아냈었다. MC8에는 특유의 타이밍 기능도 있었다: 그 기기는 1/4 박자에 48개의 클릭음을 쓰고 있으며, 따라서 셋잇단 음표는 16개 또는 8개의 클릭음에 해당하게 된다. 가끔씩 8분음표를 13개와 11개의 클릭음으로 나누어서 타이밍이 그네처럼 왔다갔다 하게 만들기도 했었다."

하지만 Yellow Magic Orchestra가 가지고 있던 '기술의 선구자' 이미지는 나름의 단점도 가지고 있었다 -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자면 상당히 쉬운 수준의 작업을 선보이기 위해서, 당시엔 엄청나게 많은 수의 장비들이 필요했었던 것이다.

"장비 자체의 무게가 정말로 문제였었다." 사카모토 류이치는 동의했다. "항상 거대한 'Moog 벽'을 가지고 다녔다 - System 3C 전체를. 그 시스템에는 시퀀서에 딸린 깜빡거리는 작은 표시등들이 있었는데, 우리는 그 시퀀서를 시퀀서로 쓰지 않고 그냥 단순히 반짝거리는 조명으로 사용했었다. 그 시스템은 또한 전원을 끄면 메모리에 있던 음악이 전부 날아가버리는 모델이었다. 그래서 실제 시퀀서로는 MC8 2개를 사용했었다 - 하나를 사용하며 공연을 하는 동안, 우리가 고용한 프로그래머가 나머지 하나를 다음 곡에 맞춰서 프로그래밍하고 있는 식으로."

예전의 신디사이저 시스템을 사용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카모토 류이치의 말에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최근 기술의 발전은, 한 가지 질문을 떠올리게 하고 있었다: 지금의 매우 발전된 기술을 활용하여 Yellow Magic Orchestra가 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을 수 있을 것인지?

"Yellow Magic Orchestra는 4, 5년 정도만 지속되었던 밴드였고, 조금 더 오래 할수도 있었을 것이다. 사카모토 류이치는 진지한 생각에 잠겨 말했다. "비록 아주 짧은 시간 동안일지라도 다시 한 번 모여서 Yellow Magic Orchestra 활동을 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 페스티벌 한두개 정도에서의 공연이라던가, 아니면, 어쩌면 앨범 한 개 정도를 더 만들어 볼 수도 있겠다. 그 동안 많은 것들이 변했다: 장비들도, 음악도, 성격도..."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받은 인상으로는, 사카모토 류이치는 'Yellow Magic Orchestra 재결성'에 대해 이전부터 몇 번은 생각해 본 것이 분명해 보였다.

성격의 변화는 사카모토 류이치의 솔로 앨범들에 기여한 협업자들로부터 발생한 것이기도 할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David Sylvian가 가져 온 '영적인' 접근법이 있을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프로듀서 Bill Laswell의 급진적이고 과격한 태도가 있을 것이다.

"함께 일하는 사람을 선택할 때 단순히 음악적인 발전만을 생각하면서 선택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보자면, David Sylvian과 나는 거의 친형제에 가까운 사이다. 같이 대화를 하지 않을 때에도 나는 그가 어떤 기분인지 잘 알고 있다. 매 경우마다 다르다. Bill Laswell의 경우, 그의 성격보다는 그 특유의 독특한 아이디어들, 그리고 온갖 종류의 음악가들과 맺고 있는 친분 관계가 중요했다. David Sylvian의 경우, 그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좇고 있는 것 - 영적인 여정 - 이 나와 닮아 있었다.

특이한 측면이었다, 널리 알려진, 일본의 '영적인 관심'에 대한 명성과, 대조적으로 그런 측면에 거의 무지하다고 알려 진 영국의 이미지를 생각한다면. 일본과 영국이라는 두 국가의 문화가 이 두 음악가, 일본인 음악가와 영국인 음악가를 통해 나란히 병치되어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음악적으로도 맞다." 일본인 음악가가 말했다. "Japan Yellow Magic Orchestra보다 더 '오리엔탈'한 밴드였으니까."

"일본에는 사실 진짜 '전통 음악'의 영향 같은 것은 없다." 사카모토 류이치는 이어갔다. "일본에서 진짜 일본 전통 음악을 듣는 건 불가능하다. 그냥 서구화된 일본 팝 음악이나 서구화된 동양 음악을 들을 수 있을 뿐이다. 진짜 전통은 100년도 더 넘는 과거에, 미국이 일본의 문을 전 세계에 열어젖혔을 때, 이미 파괴되었다 - 미국인들이 일본의 전통을 파괴했다는 것이 아니다, 일본인들이 일본의 전통을 부숴 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똑같은 일들이 지금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기도 하다: 아프리카는 굉장히 놀랍고 다양한 문화를 가진 대륙이지만 그 문화들은 실시간으로 파괴되고 있다 - 전부 똑같이 Michael Jackson을 듣고 있지 않는가. 그렇게 스스로의 문화를 없애버리고 있는 것이다."

"명백히, 나 또한 예전의 나 자신에 대해서는 모른다. 의식적으로 기억을 할 수 있을 무렵의 나는 이미 미국화된 사람이었다. 나는 아직도 일본의 진짜 전통 음악이 뭔지,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 당신들은 내가 일본적인 무엇인가를 서구 음악에 가져왔다고 말하지만 - 실제의 나는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당신들이 듣는 것들은 진짜 일본 전통 음악이 아니다. 오키나와의 음악이며, 오키나와의 음악은 전통적인 일본 음악과는 다른 것이다. 오키나와는 일본에 속한 여러 섬들로 구성되어 있는 곳이며 자신들만의 언어, 음악, 춤 문화를 가진 곳이다. 내가 오키나와 음악의 요소들을 이용해 온 것은 맞지만, 그건 실제로는 '일본 음악'이 아니다. 대다수의 서양인들이 이 차이를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래서 오해가 발생하는 것도 - 이해가 간다. 우리 또한 발리 섬의 음악과 차드의 음악을 구분하지 못한다, 두 곳 모두 사실 자신들만의 문화와 역사를 가진 곳인데. 비슷한 느낌으로, 일본인들 중 나이가 많은 세대들은 대체로 영어와 프랑스어를 구분하지 못한다. 그냥 다 그런 것이다."

다양한 민속 음악을 사용하는 사카모토 류이치의 모습을 생각하자면, 스스로의 고향의 음악을 등한시하는 듯한 표현이 다소 기이하게 보인다.

"물론 일본 전통 음악에 관심이 있긴 하다, 아마 앞으로 차차 배워 나갈 것 같다." 그는 설명했다. "하지만 나의 이런 관심은 전세계적인 민속 음악에 대한 관심의 일부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대체로 나는 어떤 국가적, 민족적인 정체성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계속해서 노력하는 중이다 - 낡아빠진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나는 '세계의 시민'이 되고 싶은 쪽이다. 명백히 세상은 점점 더 작아지고 있으며, 누구나 세상의 모든 다양한 문화들을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같은 컴퓨터 시스템을 쓰고 있으며, 그러니 말하자면 같은 '언어'를 쓰고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국가적, 민족적 정체성을 너무 강조한다면 멍청하고 어리석은 꼴이 될 거라고 생각하며, 미래에는 누구에게나 그런 '정체성'을 갖는 것이 우스운 꼴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세상이 '전통 문화'라는 보물을 잃어버리게 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기도 하다 - 그래서 내 음악에 여러 전통 음악적 요소들을 사용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나는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좋아한다. 리하르트 바그너의 음악을 듣다가, Soul II Soul을 듣기도 하고, 그러다가 David Byrne을 듣고 그런다. 지금의 팝 음악 영역에서는 내가 나의 모든 음악적 기술을 사용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팝 음악은 지난 세월동안 나름대로 영역을 확장시켜 왔으며, 음악적으로 더 넓어졌다.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제한적인 상황이며 그래서 나는 보다 더 넓은 음악적 어휘를 사용하려 하고 있다. 팝 음악의 확장에 기여하려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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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g M1R 신디사이저 모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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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7AGnsH1ealM
"Bamboo Hou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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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모토 류이치 (坂本 龍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