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ii
2024. 3. 16. 13:45
https://youtu.be/dwKwwJkx4pA
"ZNO"
*********************************************************************************************
https://www.village.com.ua/village/culture/culture-interview/311815-slepakov-i-korolov-interview-2021
"좆같은 시대에 예술가로 존재하는 편이 더 쉽다": 안톤 슬레파코프(Антон Слєпаков)와 스타스 코롤리오프(Стас Корольов)와 함께 진행한 인터뷰
야로슬라프 드루쥬크(Ярослав Друзюк)
[The Village Україна]
2021년 7월 15일
원래는 포딜(Поділ) 지구 경찰청 앞에서 일어났던 시위 "포딜에서의 사파리 짓거리를 중단해라!"(역주: "Зупинимо сафарі на Подолі!", 2021년 5월 21일에 우크라이나 키이우(Київ)에서 진행되었던, 경찰의 폭력/과잉진압에 반대하는 시위) 현장에서 이 대화를 기록하고자 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었었다. 시작은 이 아이디어였다: '좆된 것 같다'는 분위기(경찰의 폭력이 문화 단체들과 시민 사회 전반을 위협하는 분위기)가 언제나 항상 주변을 맴돌고 있는 것만 같은 현재의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의 그 어떤 음악가도 Вагоновожатые의 새 앨범 [Вогнепальне]와 Стас Корольов(스타스 코롤리오프)의 첫 솔로 앨범 [О_х] 만큼 이 분위기를 잘 묘사해 내지 못했다는 사실.
[Вогнепальне]와 [О_х]는 '트라우마'에 대해 이야기하는 앨범들이었다 - 개인적인 트라우마, 집단적인 트라우마, 사회적인 트라우마, 국가적인 트라우마, 그리고 전세계적인 트라우마까지 ("이제 나는 거의 언제나 집 안에 있어, 항상 집에 있어(Я тепер майже завжди вдома, я тепер увесь час удома)"라는 안톤 슬레파코프의 후렴구는 2020년 이후,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이후의 세상이 갖게 된 전세계적인 트라우마를 포착하고 있다). 두 앨범은 지난 5월에, 1주의 간격을 두고 발매되었으며, 두 앨범의 발매 기념 공연 또한 키이우에서 1주일 간격을 두고 진행될 예정이었다 ([Вогнепальне]는 6월 18일에 ЮБК에서, [О_х]는 6월 24일에 Carribean Club에서). 게다가 ВГНВЖ(역주: Вагоновожатые의 새 이름)의 리더가 Стас Корольов의 첫 솔로 앨범에 기여까지 했던 것이다, 수록곡 "Волны"에 참여함으로써.
하지만 동시에, 두 앨범 사이에 너무 많은 평행선을 그리는 건 좋지 않은 방향이기도 했다. "내 앨범과 안톤의 앨범이 같은 분모 위에 위치한다고 보는 건 아마도 잘못된 판단일 것이다." 코롤리오프의 말이었다. 첫 솔로 앨범인 [О_х]에서, YUKO의 전 멤버인 코롤리오프는 어린 시절 눈 하나를 잃었던 경험에 대해 처음으로 공개적인 방식을 통해 언급하였다 - 수록곡 "утаи-утаи"를 통해 그는 폭죽으로 인해 망막을 다치게 되었던 일에 대해 자세히 묘사하였고, 길고 길었던 치료 과정에 대해서, 그리고 인공 눈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어머니의 "설명"에 대해서도 자세히 풀어놓았다:
「소년은 인공 안구를 받게 되었고, 이 인공 안구는 영화에서 보던 구형의 안구가 아닌, 두꺼운 렌즈처럼 생긴 물건이었다. 소년은 인공 안구를 장착했으며, 향후 10년의 인생을 바꾸어버릴 말들을 듣게 되었다:
숨겨-숨겨(утаи-утаи), 엄마가 그렇게 하라고 했으니까,
그냥 흉내내는 편이 좋아,
항상 눈 앞을 똑바로 바라봐,
추함을 숨겨야 하니까,
아니면 그들은 비웃을 거야,
정말 잔혹한 세상이야」
"처음 그 앨범을 듣게 되었을 때, 나는 즉시 그게 굉장히 강렬한 앨범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한동안은 다시 듣지 않으려 하기까지 했었다, 그 강렬한 첫 인상을 보존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안톤 슬레파코프의 회상이었다. [Вогнепальне]는 Вагоновожатые의 3번째 앨범이었지만, 코롤리오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앨범 또한 '도전'을 하고 있는 앨범이었다: Вагоновожатые의 역사상 처음으로 모든 수록곡이 우크라이나어로 되어 있는 앨범인 것이다. "그리고 이 곡들은 공연의 '액션 영화'가 될 것이다. "Хундертвассер Хунта"보다 훨씬 더 밝게 빛날 것이다!" 슬레파코프의 말이었다.
결국 우리는 이 인터뷰를 시위 이후로 미루어 일단은 모든 주목이 시위 자체로만 향하게 하였고, 슬레파코프와 코롤리오프를 [The Village Україна]의 사무실로 초대했다. 본지의 기자 야로슬라프 드루쥬크가 슬레파코프 및 코롤리오프와 함께 그들의 새 앨범들에 대한, 전쟁의 시대에서의 예술에 대한, 그리고 모든 종류의 트라우마를 이해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https://youtu.be/b20EoTATQ_s
"утаи-утаи"
야로슬라프 드루쥬크> 2021년을 나중에 돌아본다 치면, 당신들의 앨범들을 듣는 것이야말로 2021년을 가장 쉽게 돌아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주변(그리고 우리의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온갖 좆같은 것들에 대해 당신들만큼 정확하게 포착해 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런 의도로 앨범을 만들었던 것은 아니라는 걸 알지만, 이 정도로, 정말 노린 것처럼 적중했다는 것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스타스 코롤리오프> 이상적인 세계에서라면 음악이라던가 아니면 다른 형태의 예술이 그 예술이 창조되어진 환경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기본'일 것이다. 이 '예술'이 창조자라는 프리즘을 통해 내면의 세계 그리고 바깥의 세계를 묘사하고 있다면 말이다.
야로슬라프 드루쥬크>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기본'은 현재 우크라이나 음악의 기본이 아니다.
스타스 코롤리오프> 안타깝게도. 이번 앨범을 만들면서 10년 후에 들어도 현재, 2021년의 현실을 이해할 수 있게 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만들었다고는 말하기 힘들겠다. 오히려 처음의 목표는 내가 할 수 있을 때 최대한 '예술적 존재'라는 형식에 가까워져 보겠다는 것이었다. 그런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을 시기에.
어째서인가 하면, 우크라이나라는 환경, 그러한 일이 '기본'이 아닌 환경이 당신에게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신은 음악을 '솔직'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 스스로에게, 모든 것에 대해 솔직하게 만들어야만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은 상태로 주변에서는 어떻게 하는 지 엿보면서 본인도 비슷하게 해야 하는 것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스스로를 점차 변형시켜가며 결국에는 깨닫게 되는 것이다: "어째서인지 단순히 음악을 만들기 위해서 음악을 만드는 건, 그렇게까지 재밌는 일은 아니네."
어째서 우크라이나는 이런 환경이 되어버린 것인가? 여기에 대해 개인적으로 생각해 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먼저 이 '포스트-진실'이라 불리는 상황,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온갖 서로 다른 의견들이 판을 치는 이 상황이 있다: "모든 것이 불투명해", "그래서 뭐가 다른 건데?". 이 나라의 경제적 상황이 상당히 어려운 이 시기에 예술가는 자신의 활동에 경제적인 투자를 해야 하고, 예술은 일종의 '비즈니스'가 된다. 따라서 누군가가 자신의 예술을 좋아하지 않게 되면 곧바로 타격을 입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야로슬라프 드루쥬크> 경제적인 위험성도 있고, 또 다른 종류의 위험성도 있다.
스타스 코롤리오프> 맞다, 상품 판매 시장의 측면이 있고, 전반적으로는 예술가 자체의 존재 가능 여부의 측면도 있다. 그래서 현재의 이런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이미 질려 버렸다, 아예 신경쓰지 않는다. 나는 그냥 행복한 삶, 행복한 창작의 삶을 살고 싶을 뿐이다. 상업적으로 충분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뭐, 괜찮다. 어떻게든 충분한 보상이 될 수 있도록 무슨 일이든 할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지간에, 작품 활동은 할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나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과 내가 바깥으로 표현하는 것 사이의 괴리와 내면적 갈등은, 두 가지가 일치하는 경우보다 훨씬 더 '비싸다'.
야로슬라프 드루쥬크> 안톤, 예술의 '연관성'에 대해 당신은 많은 경험을 갖고 있을 것이다. 내가 알기로 당신은 "Хундертвассер Хунта"라는 곡과 다소 복잡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 어느 시점부터 그 곡이 너무 시사적인, 너무 '어젠다'적인 곡이 되어버리지 않았는지.
안톤 슬레파코프> 그렇다. 비록 우리가 그 곡을 어떻게든 현재의 상황으로부터 떨어뜨려놓으려 노력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지성이 있는' 사람들은 그 곡이 무엇에 대한 곡인지 대충 짐작했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우리가 새 앨범이라던가 새로운 곡을 만들 때, 나는 사람들이 그 곡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 미디어라던가 다른 누군가가 이 곡을 어떻게 생각하게 될 지, 어떤 년도에 이 곡이 받아들여지게 될 지 등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만들어낸 형식과 내용이 나를 만족시킬 수 있느냐의 여부이다.
그러했기에 새 앨범이 2019년 혹은 2020년에 나올 수 있었기도 했다. 그럴 만한 영감과 시간이 있었더라면 그렇게 실제로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난 앨범([Референс])이 나왔을 때 우리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었다. 반응은 꽤 괜찮았지만, 지금 이 시대의 음악이라는 반응이 나왔었냐고 하면... "아저씨들이 다시 한 번 그들의 파도를 타 본다" - 같은 반응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Референс]는 굉장히 중요한 앨범이었다: 음향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그리고 가사적으로도 굉장히 중요했다. 그 앨범에서부터 우크라이나어를 사용하기 시작했기에 나에게는 또 중요한 앨범이었으며, 어떤 측면에서는 일종의 도전이기도 했고 또 놀라움을 가져다 주기도 했던 앨범이었다. 특별한 노력 없이도 나로부터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는 사실에 기쁨을 느낀다.
그리고, 물론, '분노'도 있었다. 2019년에 공연을 했을 때가 기억난다, 그 공연을 하기 직전에 Riffmaster(역주: 안드리 안토넨코(Андрій Антоненко)의 밴드)가 수감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이었다. 앨범 [Вогнепальне]를 완성해 갈 무렵 나는 2년이나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안드리 안토넨코가 아직도 수감되어 있다는 사실에 상당한 우울감을 느꼈었다. 심지어 이런 가사도 썼었다: "이 앨범이 발매될 때에는 Riffmaster가 감옥에서 빠져나왔기만을 진심으로 바란다". 이제는 안드리가 감옥에서 나와 가택연금 상태에 있다, 물론, 아직은 '승리'라고 보긴 힘들고, 아직 행복해할 만한 것은 없지만, 적어도 이 이야기에 긍정적인 결말이 있을 거라는 힌트 정도는 주어지게 되었다. (역주: 2016년 있었던, 러시아계 언론인 파벨 쉐레멧(Павел Шеремет)의 차량 폭발 테러 사망 사건과 이 사건의 배후로 안드리 안토넨코 및 다른 2명의 용의자가 우크라이나 당국에 의해 구속되어 수감되었던 사건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수사과정에서 여러 문제가 많았던 것으로 여겨지며, 다수의 우크라이나 음악인들이 안드리 안토넨코는 무고하며 강압적이고 편파적인 수사로 인해 구속된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다른 음악가들과 그들이 현 시대의 여러 주제들과 갖고 있는 관계들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애초에 나는 단 한 번도 '쇼 비즈니스'에 관심을 가진 적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단 한번이라도 관심을 가졌었더라면 20년 전에, 내가 음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던 그 때에 이미 결론을 내렸었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흥미를 당기는 것만을 연주하며 살아왔다. 대중들이 흥미를 비교적 덜 느끼는 것일 때도 말이다. 나는 '시류를 거스르는 것'에 뭔가 영웅적인 것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확신하는 것은, 결국에는 가치가 있는 결과가 나올거라는 사실이다. 스스로에게 확신만 있다면.
예고르 레토프(Егор Летов)의 동료들 중 하나가 이런 말을 했었다고 한다: "록 앤 롤은 당장 다음날에 그 록 앤 롤 때문에 총에 맞아 죽을 정도의 음악이어야 연주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물론 총살은 좀 너무한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당신의 음악로부터 '힘'을 느낄 수 없다면, 그 음악은 그냥 하지 않는 편이 낫다.
야로슬라프 드루쥬크> 안드리 안토넨코에 대한 언급을 이미 하기도 했고, 당신은 최근 Brave! Factory에서의 공연에서는 "누가 카챠 한쥬크(역주: Катерина Гандзюк, 우크라이나의 시민 운동가로 헤르손(Херсон)에서 벌어지는 부정부패를 폭로하였으며, 2018년 7월 31일 황산 테러를 당한 후 동년도 11월 4일에 테러 후유증으로 사망하였습니다)에 대한 테러를 지시했는가?"라는 글귀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등장하기도 했었다. 이전에 당신이 올레흐 센초프(역주: Олег Сенцов, 우크라이나 작가이자 운동가로 2014년 크림반도에서 테러를 모의했다는 혐의로 러시아 정부에 의해 구금 및 재판을 받았었습니다. 여러 우크라이나인들 및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 혐의 및 재판이 날조되었다고 주장하였으며, 센초프는 러시아 감옥에서 수감 생활을 하다가 2019년 양국의 수감자 교환을 통해 우크라이나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의 단식 투쟁이 100일이 되는 시점에 남겼던 의견 또한 읽어보기도 했었다. 지난 금요일(5월 21일)에 당신은 포딜 지구 경찰청 앞에서 벌어졌던, 경찰의 폭력 및 과잉진압에 대한하는 시위에 참여하기도 했다. 지난 몇 년간 우크라이나인들은 지속적인 스트레스의 환경에 노출된 채로 살아 왔다, 전쟁이라는 상황과 정의의 지속적인 부재 속에서. 이렇게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회적 긴장감 속에서 예술가로 존재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인지?
안톤 슬레파코프> 스타스와 나에게는 오히려 더 쉬운 일 같다고 느껴진다, 우리는 그런 "잘 포장된 재즈 록" 같은 음악이나 라운지 음악 같은 걸 하는 음악가가 아니니까. (웃음)
스타스 코롤리오프> 잠깐, 내 곡들 중 하나는 그 "잘 포장된 재즈 록"이다. (웃음)
야로슬라프 드루쥬크> 그런데, 그런 장르에서 시사적인 주제들에 대한 입장을 발표한다면 오히려 더 흥미로울 것 같다. (웃음)
안톤 슬레파코프>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었었다: "안톤, 모든 게 다 좋지만 너는 '나는 내가 본 것에 대해서만 노래한다'라는 형식에서 좀 멀어질 필요가 있어." 하지만 그게 우리의 형식이다 - 우리는 우리가 본 것에 대해 노래한다. 언제든지 작업에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좆같은 일이지만 우리는 현재 전쟁을 겪고 있으며, 온갖 부정적인 일들이 곳곳에서 실시간으로 일어나는 중이다. 어떻게든지 '인간'으로 남아있을 수 있어야 한다, 차가운 마음과 조금 날카로운 펜촉을 유지하기 위해.
야로슬라프 드루쥬크> 하지만 그러한 형식은 이 특정한 장르에 따라붙어 있는 형식인 건 아니다 - 가장 강력하면서도 '힙'한 힙합 세부 장르조차도 우크라이나에서는 때로 조심스럽게, 그리고 중립적으로 사용되어지곤 한다. 특별히 스타스가 이번 앨범에서 언급한 음악가들, 이 장르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을 음악가들까지도.
스타스, 이 질문은 아마 당신에게 더 의미 있는 질문일 것 같은데, 이번 앨범 [О_х]를 통해 당신은 스스로가 시사적인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음악가라고 공표한 셈이니 말이다.
스타스 코롤리오프> 어쩌면 사람들의 분노를 일으킬지도 모를 말이겠지만, 나는 좆같은 일들이 일어나는 시대 속에서 예술가 활동을 하는 것이 더 쉽다고 생각한다. 어째서인가 하면, 예술가들이 가지고 있는... "가지고 있다"는 표현을 하고 싶진 않은 것이, 사실 그 누구라도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할 권리가 있으니까. 하지만 어쨌든지간에, 자신을 괴롭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야말로 창조적인 표현이 더 풍부해지고 더 강력해지게 되는 법이다. 지속적인 고통을 받는 상황이 되면 무언가를 써 내려가기 위해 주변을 둘러 볼 필요조차도 없어지게 된다. 그리고 말 그대로 좆되어 버리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 고통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그리고 그 고통으로부터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요구가, 무언가를 창조해내야 한다는 욕구가 발생하게 된다.
'창의력'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굉장히 강력한 도구이다. 그리고 이 정도로 강력한 도구를 그냥 청자들을 만족시키기만 하는 데에 쓴다면 굉장한 낭비가 될 것이다. 아니면 그냥 스스로의 자아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만 쓴다던가. 뭐 그래도 괜찮기는 하다, 어쨌든 '도구'이니까. 하지만 창의력으로는 그런 것들 보다는 훨씬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삶의 어느 시점에서 자신의 창의력을 가지고 무언가 더 하고 싶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된다면, 그냥 단순한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 뿐만이 아니라, 이 창의력을 어딘가에 사용하고자 하는 충동을 느끼게 된다면... 그렇다, 지금 내 앨범 수록곡들의 가사로 말하기 시작하고 있다. (웃음) 그러면 '이런 시대'에서 살아가는 것이 더 쉬워지게 된다: 말할 만한 대상도 많고, 생각의 실타래를 변화시킬 방법도 많은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냥 단순히 좆되어 버리지만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니다. 결국, 사회적으로 중요한 주제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게 되면 자신의 말에 담긴 무게에 대해서도 이해해야만 하게 된다. 당신이 정보의 영역에 풀어놓는 모든 것들에 대한 책임감을 깨달아야만 한다. 창의력의 도움을 받아 풀어놓으면 당신의 말에 더 큰 설득력이 담기게 되는 것이다. 특히 자신의 메시지를 특정한 패턴으로 반복하여 강조한다면 거기에는 '리듬'까지 실리게 된다. 그러니 무언가를 풀어놓을 때에는 그 무언가가 사람들의 의견을 바꾸어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만 한다. 문화적 배경에 영향을 끼치며, 이 문화적 배경은 '가치'에 영항을 끼치고, 가치는 새로운 사람들의 새로운 관점을 만든다.
그러니까 대답은 맞다, 한편으로는 이런 시대 속에서 창작하는 것이 더 쉽기도 하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여기에 특별한 책임감이 깃들게 된다. 나는 온갖 것들로부터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 Riffmaster, 포딜, 젤렌스키(Володимир Зеленський), 그리고 전쟁까지. 가끔은 정말로 어딘가에 숨어버리고 싶어진다, 모든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 척 외면하고 싶어서.
안톤 슬레파코프> 그리고는 "잘 포장된 재즈 록"을 연주하며 사는 거지. (웃음)
스타스 코롤리오프> "재미나 좀 보자고!" 물론 이런 방향으로 살아갈 권리도 있다. 하지만 살다 보면 언젠가는 더 이상 재미를 볼 수 없어지는 때가 오게 된다. 이 때에는 무언가를 당장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https://youtu.be/YcSSjRz9h8Q
"Вогнепальне"
야로슬라프 드루쥬크> 오랫동안 주변에 좆같은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는데, [Вогнепальне]와 [О_х]는 그런 주제들을 유사한 초점으로 파헤치고 있는 앨범이다 - 개인적인, 집단적인, 그리고 국가적인 '트라우마'. 트라우마에 절여진 사회에서 트라우마라는 주제에 대해 어떻게 말할 수 있는지?
스타스 코롤리오프> 크게 소리친다!
안톤 슬레파코프> 어떻게 이렇게 되는 건지, 내가 어째서 트라우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지는 나조차도 잘 모르겠다. 대부분의 경우 나는 일단 어떤 주제들에 대해 연구하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사람이다, 해당 경험을 실제로 겪은 사람이 아니라. 물론 나 또한 온갖 것들을 보고, 겪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 모든 주제들에 대해 입을 털 수 있는 현자라고 말할 수 있냐면? "자리에 앉거라, 내가 모든 이야기를 다 해 주마"? 절대 아니다.
스타스의 언어는 나보다 훨씬 더 현대적이고, 훨씬 더 유의미하다. 만약 우리가 영화 감독이라고 친다면 아마 나는 소위 '예술 영화'를 만드는 부류일 것이고, 스타스는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부류일 것이다. 굉장히 잔혹한 다큐멘터리 - 카메라가 가구 속에 숨겨져 있고 등장인물 모두가 카메라의 존재를 모르고 행동하는, 그런 느낌의 다큐.
스타스 코롤리오프> 그리고 안톤은 상징주의를 가지고 있다! 파라자노프(Սարգիս Փարաջանյան)...
안톤 슬레파코프> 베르그만(Ingmar Bergman)과 파스빈더(Rainer Werner Fassbinder). 난 '예술 영화'를 좋아한다.
스타스 코롤리오프> 그리고 나는 폰 트리에(Lars von Trier)겠다, 물론 다큐멘터리 감독은 아니긴 하지만.
안톤 슬레파코프> 내 추측일 뿐이다, 언제든 내 '이론'을 마음껏 박살내라.
스타스 코롤리오프> '다큐멘터리'에 대한 추측이라면 - 맞다. 최근 프로듀서 한 명과 일하게 되었는데, 나스챠 베스냐(Настя Весна)로 실제로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음악에 있어서의 다큐멘터리 작가가 되지 않을 기회 같은 건 없었다.
야로슬라프 드루쥬크> 그리고 [O_x]는 어쩌면 처음으로 우크라이나어 트위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첫 우크라이나 앨범일지도 모른다. 24시간/7일 모드로 주변에 뭐가 좆같은지에 대해 쓰거나, 아니면 이런 말을 쓰고 있는 사람을 팔로우하거나: "이거 봐, 이런 좆같은 일이 있어."
스타스 코롤리오프> 혹은 "씨발, 이게 뭐야"라고 쓰는 사람을 팔로우하는 사람을 팔로우하는 사람을 팔로우한다거나. (웃음)
야로슬라프 드루쥬크> 언어적으로도, 진솔함 측면에서도 어떤 수준에 올라 있는 것 같다. 당신은 수 천 명이 넘는 사람들, 24시간/7일 내내 그 똑같은 맥락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공유하고 있다.
스타스 코롤리오프> 저 바깥에 비슷한 맥락을 겪고 있는 사람이 정말 많이 있다. 지금 언급하고 있는 사람은 그들 중 '의식적'으로 겪고 있는 사람들일 뿐이다. 그리고 나는, '무의식적'으로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서 닿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그런 사람들이 수 백만 명은 될 거라고 믿는다.
야로슬라프 드루쥬크> 어떻게 닿을 수 있다는 말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당신만의 대답이 있는지?
스타스 코롤리오프> 나도 어떻게 하면 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일종의 사기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즐겁고 흥겨운 음악'을 흉내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회색 지대'가 당신에게 믿음을 주기 시작할 때, 그 때에서야 무언가 다른 것을 밀어넣을 수 있게 된다. 실제로 [O_x]는 이런 식으로 만들어졌던 앨범이다. 하지만, 이런 걸 실제로 할 때에는, 금줄 세공에 가까울 정도의 기교를 부리며 선을 타야만 한다.
그리고, 물론, 보다 더 대중적인 소통의 창구로 가야만 한다. 나도 계속해서 여기에 대해 생각하는 중이다. 전세계적인 레벨에서 울려 퍼지고 싶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면, 결국에는 전세계의 청자들과 소통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무의식적인 사람들을 충족시키는 건 그렇게까지 힘든 일은 아니다 - 그저 가서 당신이 생각하는 걸 말하기만 하면 된다.
야로슬라프 드루쥬크> [O_x]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앨범에 대한 강렬한 결핍을 가진 채로.
스타스 코롤리오프> 그리고, 당신과 조금은 다른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 당신과 조금 다른 정신상태를 가진 사람들에게 당신이 생각하는 걸 그대로 말하는 건, 사실은 그렇게까지 쉬운 일도 아니다. 물론 소수의 사람들이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유로마이단(역주: 2013년 11월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났던 대대적인 시위로, 그 여파로 인해 '친러파'로 여겨지는 대통령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탄핵되고 페트로 포로셴코 정권으로 이어지게 됩니다)같은 경우가 수 십만명 정도의 사람들이 국가적인 규모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정도의 일을 해낼 수도 있다는 예시가 될 것이다. 하지만, '협동', 외부의 다른 시민 사회와의 연대를 하지 않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느낌이야말로, '충분한' 거주와 자연 환경으로 바뀌어 갈 수 있을 유일한 방법인 것 같다는 개인적인 생각이 든다.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릴 일이다. 그리고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야로슬라프 드루쥬크> 스타스, 이 질문은 좀 더 있다가 하려고 했었지만, 지금 하겠다. [O_x]는 '트라우마의 경험'에 대한 일종의 컨셉 앨범이라고도 볼 수 있을 텐데, 여기에 관련해 일반적으로 종종 이야기되곤 하는 주제인 '예술의 치유 역할'이라는 것에 대해 묻고 싶다. 앨범을 공개하고 첫 피드백을 받아 본 지금, 어떤 기분이 드는지?
스타스 코롤리오프> 이전에 더 좋은 기분이었다, 앨범의 수록곡들이 거의 완성되었을 때, '승화'의 과정이 끝났던 그 때에. 외부로부터의 피드백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내가 얼마나 멋진지에 대해 말해주는 것 보다 이렇게 말해주는 걸 더 좋아한다: "이봐, 고마워, 덕분에 기분이 좀 나아졌어." 이런 반응이 나오는 몇 가지 경우들이 있었다 - '중독'에 관한 거라던가, "물리적인 결함"을 감추는 것에 대한 거라던가, 아니면 러시아와의 전쟁에 대한 거라던가.
우리는 현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때문에 발생하는 지속적인 스트레스 속에서, 그 스트레스를 완화하려는 지속적인 시도 속에서, 조금이라도 잊어버리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를 잊어버려야 겠다는 생각마저도 추가적인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요인이다. 반면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맞서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다. 나에게 있어 나의 창작 행위로부터 발생한 가장 중요한 일은 이것이었다 - 그 치유의 효과가 다른 누군가를 위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굉장히 가치있는 일이다. 그 어떤 음악 관련 시상식, 유명세, 돈 따위보다도 훨씬 더 중요하고 가치있다.
야로슬라프 드루쥬크> 이런 메시지를 받았을 때 기분이 어떨지를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당신 앨범을 들었는데, 몇 번이나 울었어요."
스타스 코롤리오프> 아니, 누군가 앨범을 듣고 울었다면 그건 어떤 무언가가 그 누군가에게 울림을 주었을 뿐인 일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말을 들었을 때 더 깊은 인상을 받는다: "스타스, 나는 지난 10년간 나에 대한 무언가를 다른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숨기며 살았어요. 그런데 "утаи-утаи"를 듣고 나니 내가 '다른' 사람이 아니라는 걸, 내가 '비정상'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내 앨범이 누군가로 하여금 스스로를 받아들이게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다. 이런 경험이야말로 내가 살아오면서 겪은 가장 중요한 '치유'의 경험일 것이다.
나에게 있어 정신 치료, 변형, 스스로에 대한 분석과 처방은 '앨범을 만든다'는 행위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안톤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나를 도와주고 있다. 포딜에서 여러 번 미팅을 가지기도 했으며, 여러가지 일들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정말 중요한 시간들이었다.
야로슬라프 드루쥬크> 그리고 안톤, 당신에게는, 스타스의 앨범 수록곡 중 작업에 참여했던 한 곡 "Волны"에 대한 질문을 하고 싶다.
안톤 슬레파코프> 일화를 말해줄 수 있을 것 같다: 2019년에 스타스가 전혀 다른 프로젝트에 관련해서 곡 하나를 함께 만들어 보자는 연락을 해 왔었다. 그 때엔 아직 YUKO가 활발히 활동중이었으며, 모든 것이 괜찮았고, YUKO라는 밴드가 사라질 거라는 암시 같은 건 전혀 없었다. 스타스는 데모도 하나 보내주었고, 한번 만나자고 했다. 시간이 좀 흐른 후 나는 리허설 현상에 찾아가게 되었고, 스타스와 이고르(Ігор Бірюченко)가 데모를 보여 주었다. 나는 그들에게 역으로 이렇게 제안했다: 여기서 아무것도 바꾸지 말고, 내 코멘트를 나중에 반영하지도 말고, 그냥 지금 이 버전에 그대로 더해 보자고 - 바로 여기서, 라이브로. 나는 바로 마이크를 잡았고, 느낌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 엉성하게나마 조절했으며, 내가 생각했던 것들을 그대로 읽어내렸다.
야로슬라프 드루쥬크> 당신이 곡 안에서 말 그대로 이런 말을 할 때: "여기서 이 부분이 무슨 의미인지 명확하지 않은 것 같은데", "이 부분이 더 얇고 명료하면 좋겠어", 그리고 "더 붉게, 하지만 붉지는 않게".
안톤 슬레파코프> 스타스는 완벽주의자적 면모를 가진 사람이고 그래서 내 목소리 부분을 다시 녹음하길 바랬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곡 "Волны"는 2년 전 그 때 만들어졌던 그대로 발매되게 되었다.
야로슬라프 드루쥬크> 그리고 "Волны"는 어떻게 보자면 '메타'적인 곡이기도 한 것 같다 - 전자기파에 대한 곡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음악을 함께 협업으로 만든다는 것에 대한 곡이기도 하니.
안톤 슬레파코프> 그렇게 볼 수 있겠다.
야로슬라프 드루쥬크> 미안하다, 이런 측면, 청자가 가사를 나름대로 해석하고 그 속에 숨은 진짜 의미를 찾아내려 노력하는 과정을 보는 것이야말로 음악가들이 아마도 가장 "좋아하는" 부분일 거라는 걸 알고는 있다. (웃음) 하지만 가사에 대해 음악가 본인과 청자가 대화를 나누는 것 또한 상당히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예술가들은 두 가지 접근법을 활용하는 것 같다: 한 쪽에서는 자신의 예술에 분명한 메시지를 넣어 놓는 반면, 다른 한 쪽에서는 해석의 여지를 확보하며 심지어는 관객들과 일종의 게임을 하기도 한다.
스타스 코롤리오프> 나는 '해석의 여지'를 좋아한다, 정말로, 그냥 사람들의 반응과 각자 나름의 해석을 듣는 걸 정말 좋아한다: "이 곡에서는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군!". 그러면 나는 그냥 이렇게 말한다: "어, 그렇구만". (웃음) 내가 걱정하는 건 내가 어쩌다가 앨범에 대해서 너무 많은 말을 하게 되지는 않을까, 너무 구체적으로 설명하게 되는 건 아닐까이다. 창작자가 자신의 곡이 무엇에 대한 것인지를 말하게 되면, 그 곡의 무언가가 조금 죽어버리게 된다. 곡이라는 건 해석이라는 공간에서 좀 더 오래, 좀 더 잘 살아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곡이 재해석되어지는 만큼, 그 곡은 사람들의 머릿 속에서 따로 독립된 형태로 더 오래 남아있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창의력'이라는 것을 세상과 소통하는 수단으로 생각한다고 친다면, 그리고 실제로 세상과 소통하는 수단이기도 한데 (책상 앞에서 쓰고 있을 때를 제외한다면), 이 소통이란 일종의 스펙트럼 위에 위치하게 되며, 스펙트럼의 한 극단은 가장 구체적이고 명확한 소통, 다른 한 극단은 추상적인 상상의 영역에 위치하는 소통일 것이다. 명확함이란 일종의 어셈블리어(프로그래밍 언어) 같은 것으로, 명령어들의 나열 같은 것이어서 아무 식으로나 해석될 수 있진 않으며, 특정하고 명확한 방식으로만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음악이란 단 한 번도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으로, 그 어떤 명령어도, 분류체계도 없으며, 상상과 감정만이 있다.
야로슬라프 드루쥬크> 당신은 이렇게 노래하기도 했다: "내 공기를 진동시키는 전자기파를 들었다, 내 귀로 날아들어와, 나를 울고 웃게 만드는, (...) 나를 춤추게 만들고, 나를 미쳐버리게 만드는, (...) 그리고 그 어떤 강제성도 느껴지지 않았다..." ("Волны" 가사 일부)
스타스 코롤리오프> 맞다, 춤을 출 때 정확히 무엇 때문에 춤을 추는지는 느낄 수 없는 거다. (웃음) 이 '스펙트럼' 위에서 무언가 특정한 것을 말하려고 노력할 때 '언어'를 가져올 수 있지만, 그 언어라는 것 조차도 그렇게까지 특정적이지는 않다. 문학, 상상, 비유 등등의 현상은 언어라는 형식이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렇기에 음악이라는 형식은 그 '스펙트럼'의 중간 지대 어딘가에 위치하게 되고, 이는 사실 굉장히 멋진 특성이다. 당신이 음악을 '창조'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그 음악을 향유하는 청자가 자신의 프리즘으로 나름의 해석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창조할 수 있는 것이다 - 맥락, 읽고, 듣고, 자신만의 개성으로. 수 많은 사람들을 위한 다층적인 체험을 창조하는 것이 가능하다.
여기서 데이비드 린치와 그의 [Catching the Big Fish: Meditation, Consciousness, and Creativity]를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겠다. 어떤 순간에 나는 린치가 특정한 것, 구체적인 것을 넣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린치는 특정한 감정, 한 등장인물과 소통하는 특정한 방식을 집어넣기도 했고, 특정한 신호, 특정한 퍼즐 조각을 넣어 관객이 스스로 조립할 수 있게 했다. 이 것이야말로 창의적인 방식으로 '해석'을 하는 경험이 되는 것이며, 가장 재미있는 부분인 것이다. 마치 [폴아웃] 처럼 엄청나게 많은 가능성이 존재하는 게임 같은 것이다, 수백 번을 즐길 수 있는 - 그리고 매번 다르게 다가오는 게임. 개인적으로 이런 예술이야말로 가능한 예술 중 최고의 예술이라고 본다 - 수백 번을 되돌아와 다시 들어볼 수 있게 만드는 예술.
야로슬라프 드루쥬크> 사람들 각각의 해석을 허용한다는 사실이 당신으로 하여금 당신이 만들어 낸 음악을 손에서 놓아버린다는 말로 이어진다고 봐도 되는지?
스타스 코롤리오프> 어떤 측면으로는 창작자가 자신의 창작물이 완성되는 순간 손에서 놓아버리는 것이 당연히 맞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 앨범을 완성해서 발매하게 되면 그 이후에는 그 앨범을 거의 듣지 않게 된다. 발매 전까지 다양한 버전으로 너무 많이 들어봤기 때문이다. 그 앨범은 이미 나를 둘러싼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 개입할 때는 오로지 누군가의 해석이 완전히 틀렸을 때 뿐이다. 아니면 앨범이 올바른 방향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조금의 디테일만 더할 때라던가.
안톤 슬레파코프> "틀렸다"는게 무슨 의미인지? 어떤 곡에 대해서 당신의 '법적인 책임'이 생겼을 때라던가?
스타스 코롤리오프> 무언가가 틀렸을 때가 있다 - 예를 들어 앨범 수록곡 중 하나 "феничев / или"의 경우, 이 곡이 우리 사회의 극단적인 한 측면을 만족시키기 위한 시도로 받아들여지는 때가 있었다. 아니면, 오히려 대조적으로 이 곡이 '정상적인 애국자', 정확한, 내 개인적 의견으로는 "애국주의"라는 단어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고들 하는 사람의 시선에서 여러가지를 비꼬기 위한 시도로 여겨지기도 했고. 어떻게 해야 잘 대처하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무튼 내가 중간에 끼어들어 가서 간섭하고 무언가를 설명해야만 하는 상황들이 있을 수 있다.
안톤 슬레파코프> 실제로 설명한 적이 있었나?
스타스 코롤리오프> 아직까지는 앨범을 들어 본 청자들이 '앨범 자체가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다'고 이해하고 있다. 적어도 대부분이. 좋은 일이다.
안톤 슬레파코프> 좋은 일이다. 특정한 곡이 누군가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주장으로 인해 음악가에게 책임이 돌려질 때와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어떤 미친 사람이 당신의 곡을 헤드셋으로 듣는다고 해서, 그 잘못이 당신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음악은 모두에게 속하는 것이다.
야로슬라프 드루쥬크> 스타스, "феничев / или"라는 곡에 대해 언급했는데 - 그리고 아마 앨범에서 이 곡이야말로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를 가진 곡일 것인데, 한편으로는 "우리 나라는 러시아와 전쟁 중이다"라는 후렴구가 등장하는 곡이기도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곡 제목에서도 보이듯이 상트 페테르부르크 밴드의 리더 페니체프(Михаил Феничев)에게 바치는 헌정인 부분도 있는 곡이기도 한 것이다. 이런 측면들을 한 곡에 몰아넣는 것이, 의도한 것이었는지?
스타스 코롤리오프> 나는 이분법적인 생각을 좋아하지 않고, 그래서 이 곡에 여러 측면들을 동시에 넣는 것을 다분히 의도적으로 선택했다. 나는 대화를, 토론을 시작하고 싶다. 내 의무는 사람들로 하여금 여러 주제들에 대해 침묵하고만 있지는 않게 만드는 것이다.
안톤 슬레파코프> 동의한다.
스타스 코롤리오프> 나는 우크라이나어를 지지하며, 우크라이나어를 계속해서 발전시키고 다양한 창작 활동에 이용하는 것에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창작에 있어서 '표현의 풍부함'이라는 것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표현의 풍부함이란 계속해서 다루어야만 하는 것, 반드시 풍부하도록 만들어야만 하는 것이다. 결국 나는 "феничев / или"라는 곡을 러시아어로 부르는 것이 더 맞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내 의무는 나와 같은 입장의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그들과 닮아가는 것이 아니다. 내 의무는, 무관심한 입장을 가진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생각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측면은 -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이 곡이 제대로 받아들여지려면? '설교'로 받아들이지 않게 하려면 말이다. 지금까지 내가 찾아낸 방법은 하나 뿐이었다: 사람들이 나를 듣도록, 그래서 나를 한 사람의 인간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해서 앨범 속에 존재하는 '나'라는 캐릭터의 변화를 통해 특정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는 식의 방법. 중독에 대한, 파괴적인 관계의 맥락 속에서 스스로에게 애를 쓰는 것에 대한, 시민으로서의 우리가 가진 무신경함에 대한 특정한 결론으로. 생각하지 않고 말하지 않으면 상황은 더 안좋아지기만 할 뿐이니까.
야로슬라프 드루쥬크> 다시 '트라우마'라는 주제로 돌아가 보고 싶다. 어쩌면 트라우마를 헤쳐나가며 살아갈 수 있을 유일한 방법은 그 트라우마를 이해하고 여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뿐일지도 모르겠다.
스타스 코롤리오프>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 그런데 나는 안톤의 앨범과 내 앨범을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 자체가 실수일수도 있다는 말을 먼저 해야만 하겠다. 애초에 우리는 서로 다른 형식과 다른 악기를 사용하고 있다.
안톤 슬레파코프> 전반적인 우크라이나 음악에 대해 얘기하는 거라고 치면, 뭐 맞다, 우리는 둘 다 그 "얼터너티브 음악"이라는 카테고리에 속한다. (웃음)
스타스 코롤리오프> Вагоновожатые, Onuka, Курган & Agregat... 또 누가 있더라?
안톤 슬레파코프> Луна도 여전히 활동 중이다. 우리를 그 어떤 시상식 명단에도 넣어두지 말기를, 어디에도 끌어당기지 말기를 바란다. 상 같은 걸 놓을 만한 선반도 안 가지고 있다. (웃음)
야로슬라프 드루쥬크> 그리고 또, 당신에게는 특별히 앨범의 '프레젠테이션'에 관련하여 질문하고 싶다. 오는 6월에 하게 될 공연에 대해 말해줄 수 있을지. 한동안 공연을 하지 않다가 다시 무대 위에 서는 느낌은 또 어떤지?
안톤 슬레파코프> 우리가 사는 세상은 불확실성으로 항상 가득 차 있는 세상이다. 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 것인가? 공연 무대의 환경은 어떻게 될 것인가? 결과적으로 세상에는 '전부 좌석에 앉아서 진행하는 공연'에 철저하게 반대하는 밴드들이 있기 마련이다.
야로슬라프 드루쥬크> 당연하겠지만 그 밴드들에는 Вагоновожатые도 포함될 것이다.
안톤 슬레파코프> 의자가 널려 있는 공간에서 '달려가는' 음악을 하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스타스 코롤리오프> 나도 안다, "Всі. Свої"(역주: 키이우의 백화점)에서 했던 당신들의 공연을 봤었다. 정말 대단했었다. (웃음)
안톤 슬레파코프> 맞다, 그 공연은 진짜 이상했었다. 낮 시간에 했었던 공연이었고, 태양이 아직 환하게 비추는 시간에 작은 무대에서, 스크린도 없이 진행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어느 정도는 당혹스러워하고 있으며, 그 누구도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 지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 그 모든 공연들이 전부 미뤄지고 난 후, 갑자기 엄청난 수의 공연들이 진행되고 있다. 어쩌면 이런 급상승으로 인해 과포화 현상이 일어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공연을 보러 올 사람들이 충분히 있기만 하다면.
스타스 코롤리오프> 다른 한편으로는 현재 모든 청자 하나하나가 다 중요해졌다는 분위기도 생겨나고 있다. 그건 그렇고, 나는 한번 좌석들만 있는 공연장에서 공연을 해 보고 싶기도 하다. 청자들이 각자의 '청음기'를 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안톤 슬레파코프> 물론, 사람들이 당신의 공연에서 첫 곡부터 바로 춤을 춰 대는 건 좀 힘들 것 같긴 하다.
스타스 코롤리오프> 하지만 몇몇 관객들은 한다!
야로슬라프 드루쥬크> "Ла-ла"에 맞춰서!
스타스 코롤리오프> 아니면 "Собачку"에 맞춰서!
안톤 슬레파코프>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이제는 일반적인 모습이 되어버린 것 같은, '공연에 맞춰서 프로그램 짜기'에 완전히 질려 버렸다. 모든 사람들이 히트곡 하나 혹은 히트곡 10개의 컴필레이션 공연을 원할 때, 당신은 그냥 사람들이 동전을 넣는 '주크박스'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야로슬라프 드루쥬크> "Хундертвассер Хунта"같은 곡에도 그런 문제가 있는지?
안톤 슬레파코프> 그렇긴 하다, 비록 밴드 내 모든 사람이 이를 '문제'라고 보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말하는 의견도 있다: "잠깐, 들어봐, 왜 '멋진 곡'을 연주하지 않는 거지? 그냥 지루해졌다는 이유 뿐인거야?" 게다가 나는 더 이상 러시아어를 자연스럽게 대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건 내 개인의 문제이긴 하지만. 다시 한 번 더 강조하는 것이며, 밴드 내 다른 멤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쨌든 나는 그렇다는 것이다.
https://youtu.be/7FYeA2Ofz5g
"ла-ла"
스타스 코롤리오프> 사람들이 좋아하는 곡만을 연주하라는 압박을 받을 때 밴드가 어떤 느낌을 받을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일종의 기회주의적인 국면이 될 것이다. 언젠가 뱌체슬라프 부투소프(Вячеслав Бутусов)와 Ю-Питер라는 밴드가 도네츠크(Донецьк)에 온 적이 있었는데. 이 밴드는 2008년에 [Богомол]이라는 앨범을 발매했었고, 나는 이 앨범을 정말로, 정말로 좋아했었다. 공연 홍보 포스터에도 "Богомол"이 쓰여 있었고, 나 또한 "Богомол"을 듣기 위해서 티켓을 구매했지만, 막상 공연에서는 "Богомол"은 하나도 없었다 - 부투소프는 Nautilus Pompilius(역주: 부투소프의 전 밴드) 곡만 줄창 연주했다. 씨발... 우리는 심지어 나중에 "Богомол! Богомол!"이라고 소리치기까지 했었다. 부투소프는 우리를 돌아보았고, 미소지은 후, 계속 Nautilus Pompilius 곡을 연주했다.
야로슬라프 드루쥬크> 하지만 이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경우도 많이 있다 - 톰 요크(Thom Yorke)를 보자면 그는 "Creep"을 원하는 팬들의 요청은 그냥 무시해버리고 있다.
스타스 코롤리오프> 부투소프에서 톰 요크까지 단숨에 넘어왔군. (웃음)
안톤 슬레파코프> 하지만 또 다른 쪽에서는 다르게 생각하는 음악가들도 있다.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스타스 코롤리오프> 그리고 몇몇 사람들은 그냥 괜찮다고 받아들인다, 맞다.
안톤 슬레파코프> 한 주 전에 상당히 흥미롭고 도전적인 상황에 처해진 적이 있었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었으며, 이를 공연용으로도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갑작스럽게 드니프로(Дніпро)에서 열리는 페스티벌 "House of Europe"에 초청을 받게 되어버렸던 것이다. 여기에서 새 앨범 곡들을 선보이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하면 무리하다가 망쳐버릴 것이 명백했기에.
야로슬라프 드루쥬크> 그래도 신곡을 좀 연주했었는지?
안톤 슬레파코프> 그랬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이전의 곡들, 러시아어로 쓰여졌던 곡들도 상당히 연주했었다. 그리고 나는 이런 기분이었다: "씨바, 뭔가 정상인 것 같잖아!" (웃음) 심지어 더 웃긴 광경까지 벌어졌었다: 사람들이 박수를 쳤고, 나는 이런 생각이었다: "아니 대체 왜 박수를 치는 거야, 아직 신곡은 하나도 들어보지 못했으면서!" (웃음) 그 시점에 우린 이제 막 신곡 "Вовк"와 "Вогнепальне"를 연주할 예정이었단 말이다! 나는 그저 이 두 세계, 충돌하고 있는 두 세계가 우리 안에서, 그리고 특히 내 안에서 어떻게 만나게 될 지가 궁금하다. 내 개인적인 트라우마이기도 하며, 나는 이 트라우마를 모든 사람에게 거쳐가고 있다. 나는 새로운 시대에 적응해가고 있으며, 보다 더 민주적이고 관대한 방식으로 나 자신과 우리 모두를 인식하려 하고 있다.
야로슬라프 드루쥬크> 우크라이나어로 쓰여진 곡들을 처음으로 공연에서 선보였을 때 기분이 어땠는지?
안톤 슬레파코프> 말하기 어려운 것이, 잘 기억나지 않기 때문이다. 무대 위에서 나는 일종의 트랜스 상태에 빠진다. 물론 몇몇 세세한 부분들은 기억난다. 무대 바로 앞의 여자애가 신발끈을 풀어버리기 시작했던 순간을 기억한다... (웃음)
야로슬라프 드루쥬크> 실화인가? (웃음)
안톤 슬레파코프> 맞다, 진짜다. (웃음)
스타스 코롤리오프> 아니면 누군가가 왼쪽 운동화의 끈을 오른쪽 운동화에 맨다거나.
안톤 슬레파코프> 스스로를 표현하는 데에는 다양한 방식이 있을 수 있다. (웃음) 하지만 모든 것이 괜찮을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든 살아남을 것이다. 그리고 이 신곡들은 공연에서 액션 영화처럼 펼쳐지게 될 것이다, "Хундертвассер Хунта"보다 더 빛나게 될 것이다!
야로슬라프 드루쥬크> 스타스, 키이우에서 진행될 새 앨범의 '프레젠테이션'에 대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말해주면 좋겠다.
스타스 코롤리오프> 음악만이 아니라 무대 디자인, 극적인 효과들, 비디오 효과들, 스토리에도 집중할 것이다. 숨길 이유가 없는데 - 이번 프레젠테이션은 [O_x]를 시작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선보이는 무대가 될 것이다. 실제로 살아있는 버전의 [O_x]로, 헤드폰으로 듣는 것 보다는 더 강렬한 경험이 될 것이다.
야로슬라프 드루쥬크> 마지막으로 무대에 올랐던 적은 언제인지?
스타스 코롤리오프> 사샤 곤타르(Саша Гонтар)의 시를 선보였던 공연과 온라인 공연들을 제외한다면, 마지막 공연은 2019년이었다. '프론트맨'으로써 공연했던 것들만 친다면 마지막 공연은 2016년 봄이었다. 올해 봄에 이제는 공연들이 다시 시작할 것 같다며 사람들이 말하기 시작했을 때, 나 또한 앉아서 이렇게 생각했었다 - "나도 공연이 있으면 좋겠는데 - 하지만 내 공연 말고, 다른 사람 공연. 그냥 가서 듣고 있을 수 있게." 나는 이미 무대 위에서 공연한다는 느낌을 거의 잊어버렸고, 굉장히 무서우면서도 또 동시에 정말로 무대 위에 다시 오르고 싶기도 하다. 무대에 올랐는데 가사의 일부를 완전히 잊어버리는 꿈마저 꾸고 있다. 아니면 무대 위에서 나체로 서 있는 꿈이라거나.
안톤 슬레파코프> 앞에 나섰는데 자신의 역할을 잊어버리고 마는, 예술가의 전형적인 꿈이다. 이런 꿈을 꾼다는 것 자체가 이미 당신이 예술가라는 증거가 된다.
인터뷰: 야로슬라프 드루쥬크 (Ярослав Друзюк)
편집: 안드리 바쉬토비 (Андрій Баштовий)
사진: 아나스타샤 슈밀로바 (Анастасія Шумілова)
교정: 니카 포노마렌코 (Ніка Пономаренко)
https://youtu.be/m0fVG8FPoCA
"Mіж Нами"
*********************************************************************************************
안톤 슬레파코프(Антон Слєпаков) / 스타스 코롤리오프(Стас Корольо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