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

Hypnotic Underworld

ouii 2025. 2. 1. 13:59


https://youtu.be/lI-ZxlNvFJ4

"Liv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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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thewire.co.uk/issues/242

나의 리 라인(역주: ley line, 고대에 있었다고 주장되는 풍수지리적 선)을 찾아서

깊은 산 속의 사원, 폐허가 된 성, 철거된 산업 단지에서 공연하는 밴드 Ghost는 일본의 사이키델릭 - 히로뽕 중독자 씬에서 가장 이질적인 그룹으로 부상했다. Edwin Pouncey가 도쿄에서 Masaki Batoh 및 밴드 멤버들과 만나 그들의 내면의 여행에 대해, 미국 애시드 포크 듀오 Damon & Naomi, Can의 전 보컬 Damo Suzuki, 티베트 저항군 등과 맺은 글로벌 동맹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사진: Jun Takagi

[The Wire]
2004년 4월


도쿄 시부야 지역에 있는 록 공연장이자 벙커처럼 생긴 모습의 공간인 DeSeo 내부에서는 기대감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었다. 무대를 가리고 있는 방화 커튼 / 영화 스크린이 자욱한 안개 사이로, 담배 연기 때문에 이미 촉촉해진 우리의 눈가로 깜빡거리는 빛을 비추고 있었다. 하지만, Ghost의 로켓같이 솟아오르는 포효가 최대치로 뿜어져 나오는 순간, 그런 사소한 불편함 따위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었다. 기타리스트이자 보컬 Masaki Batoh를 필두로 드러머 Junzo Tateiwa, 베이시스트 Takuyuki Moriya가 태풍 속에 내던져진 연처럼 미친듯이 흔들리는 비트를 쏟아내고, Kazuo Ogino가 키보드로 청자들을 깊숙히 찔러대는 동안, 'Giant'라는 별명을 가진 Taishi Takizawa는 가죽옷을 입고는 소프라노 색소폰으로 마치 신에게 드리는 기도처럼 매혹적인 드론을 풀어내고 있었다. 이날 밤 이들은 Can의 전설적인 보컬 Damo Suzuki와 함께하고 있었으며, 그는 특유의 낮은, 짐승같은 소리로 이 장소의 폭풍을 더욱 어둡게 만들고 있었다. Suzuki가 마이크 스탠드를 가지고 드릴처럼 바닥을 뚫어버리려 하고 있을 때, Ghost의 기타리스트 Michio Kurihara는 LSD로 완충된 기타 솔로의 껍질을 벗겨 몇 분간 공중에 매달아 두었다가 피드백의 돌풍과 함께 폭발시키고 있었다. 이는 곧 격렬하게 불타오르는 즉흥 연주로 이어졌으며, 마침내 Batoh가 눈에는 보이지 않는 어떤 악마적 힘을 자신의 기타의 넥 부분으로 내리쳐 물리치며, 이 공연이 끝났음을 알렸다. 90분이라는 시간은 8년 전, 그 기념비적이었던 밤, Ghost와 Suzuki가 해가 떠오를 때까지 5시간이나 끊임없이 잼 연주를 했던 그 밤의 시간보다는 짧았을지도 모르지만, 여전히 경이로운 시간이었다. "음악에 대한 내 관심과 흥미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을 통해서 계속 살아나고 있다," Batoh는 이 만남에 대해 추후에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나 스스로를 밴드의 다른 멤버들과 같은 '전문적인 음악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압박감도 많이 느끼며, 스튜디오에 있는 것도 안 좋아하는 편이고, 공연을 같이 하는 것도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내 음악을 통해 사람들과 함께 '참여'할 수 있다는 것, 창의적인 방식으로 연결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는 것이다."

오늘 밤, Suzuki와 함께한 공연은 Ghost의 최신 앨범, [Hypnotic Underworld]를 기념하기 위한 공연이었다 - 1984년 Batoh가 밴드를 결성한 이래 7번째의 앨범을.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Ghost라는 밴드의 기원은 베일에 싸여 있으며, 밴드의 초창기에 멤버들이 동굴에서 살면서 한밤중에 지하철 역에서 곡을 쓰곤 했다는 등의 소문으로 인해 Ghost는 일본의 언더그라운드 싸이키델릭 씬에서 가장 복잡하고 난해한 그룹 중 하나인 것으로 그 명성이 더 높아지기만 했다. 하지만, Ghost는 그들 스스로를 '록 음악'이라는 틀 속에 가두는 것을 완강히 거부하였으며, 월드 뮤직, 프로그레시브, 크라우트록, 프리 재즈와 즉흥 연주 등 다양한 스타일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음악을 해 왔다. [Hypnotic Underworld]가 담고 있는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스펙트럼의 음악은, 1990년대 도쿄의 사이키델릭 히로뽕 중독자 레이블 PSF의 [Tokyo Flashback] 컴필레이션 시리즈에도 기록되어 있는, 일본 사이키델릭의 만신전 내부에 존재하는 Ghost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만들어 주는 음악이었다. 그러나, 이들보다 더 공격적인 동시대 밴드들, High Rise, Acid Mothers Temple, Musica Transonic, Keiji Haino 등의 음악가들로부터 Ghost를 차별화하는 점은 바로 그들 특유의 '향'(香), 멤버 각각이 지극히 개인적인 방식으로 록 음악을 Ghost로써 풀어내는 음향들 속에서 퍼져나가며 그 모든 것들을, 우주적이면서도 또 동시에 깊숙하게 물리적인 Ghost의 음악을 하나로 묶어주는 바로 그 향일 것이다. Ghost의 음향은 그 시간만큼이나 오래 된 음향이며, 1980년대 초반 대학생이었던 Batoh와 Giant가 결성했던 밴드의 음악이 암시하고 있었던 폐허처럼, 오래되었으면서도 지금 이 시간, 현재에 존재하는 음향이다. "Batoh가 "Gareki No Toshi"라는 이름을 가져 왔었다, "쓰러진 나무들의 도시"라는 뜻의 이름이었다." Giant가 말했다. "이 프로젝트의 주제는 폐허의 이미지였다. Batoh는 기타를 연주하고 노래를 불렀으며, 나는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연주했다. 우리는 일종의 '자유로운 즉흥 음악 밴드'였다. 태풍으로 인해 완전히 파괴되어 버린 어떤 고대의 숲 속에 존재하는 폐허의 레퀴엠 같은 느낌, 그런 음악들을 목표로 했었다."


Ghost의 첫 번째 '엑토플라즘' 흔적은 그러한 초창기의 음악적 실험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70년 독일 밴드들, 특히 Amon Düül 1 같은 밴드들의 '공동체적 로큰롤' 삶을 롤모델로 삼아 진화해 왔던 Ghost는 권력과 충돌하지 않으면서도 자신들의 아이디어들을 자유롭게 탐구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아 헤매었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도쿄의 한 외곽에서, Batoh는 낡다 못해 유물 수준이 된 아파트 단지를 하나 발견하게 되었고, 그의 연인과 함께 그 아파트 단지로 입주하게 된다. 그 아파트의 노후화된 상태, 끊임없이 들어오는 방문객들과 밴드 멤버들은 이 아파트가 "Ghost House"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는 근거가 되었다. 이 시기의 기억은 여전히 Batoh의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모든 측면이 나빴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자신이 막 떠오르며 번성하고 있던 대안 커뮤니티의 일원이라는 '환상'을 금세 떨쳐버리고 깨어났던 것이다. "그 시기에 공동체적인 삶을 살았던 것이 나에게 좋은 영향을 끼쳤다기보다는, 오히려 온갖 어렵고 힘든 일들이 일어났었던 것에 대한 좌절감을 더 많이 느끼고 있다." Batoh는 몸서리를 치며 말했다. "일본에서 그러한 공동체 시스템 속에 살아간다는 건, 샌프란시스코의 The Grateful Dead의 집이나 쾰른 근교에 있었던 Can의 성 'Schloss Norvenich'에서 사는 것과는 완전하게 다른 삶이다. The Grateful DeadCan의 공간에서는 멤버들 전부가 각자의 공간을 가지고 있었고, 어느 정도의 사생활이 보장되어 있었다. 반면 우리가 함께 지내던 곳은 낡은 대학생 기숙사에 가까운 공간이었다. 멤버들이 점점 더 모이면서 공간은 서서히 게스트하우스에 가까운 공간으로 변해갔고, 결국에는 히피 스타일의 공동체가 되어버렸다. 애틋한 시선으로, 그리워하며 돌이켜 볼 만한 곳은 전혀 아니다."

Ghost의 즉흥 연주는 곧 연습 공간의 네 벽을 넘어 도쿄의 길거리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한번은 높은 인구밀도를 자랑하는 신주쿠 지역에서, 즉흥 거리 공연을 위해 악기들을 인적이 드문 곳으로 옮기고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경찰이 그 장소를 비밀스럽게 순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도 했었다.

"그 때에는 경찰이 거기에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Batoh는 웃었다. "앰프를 설치하고 장비를 연결하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재미있는 소리를 만들겠답시고 기름이 담긴 통을 찢어버리겠다며 전기톱까지 가져왔었다. 그리고 그 장소에 경찰이 잠복하고 있었기에, 우리는 즉시 모두 체포당했다. 전기톱 같은 물건까지 들고 나와서 뭔가 위험한 상황을 만들려고 하는 게 아닌가 경찰들이 걱정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냥 경찰의 눈앞에서 바로 그런 짓을 하는 걸 보고 건방진 놈들이라고 생각했던 것 아닌가 싶다."

이 무렵, "Ghost House"의 회원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전성기에는 무려 100명에 달하는 음악가들이 참여하고 있었다는,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가 돌아다닐 정도였던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건 최대 20명 정도이다." Batoh가 웃으며 말했다. "초창기에는 녹음을 시작할 때 주변에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밴드 멤버로 받아들여 시작하는 식이었다. 그래서 초기 앨범들에 연주자 목록이 계속해서 바뀌었던 것이다. 그 '사이키델릭'했던 시절이야말로 정말 멋진 시절이었다, 모든 것이 너무나도 자유로웠고, 모든 일들이 그냥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었던 때였다."

안타깝게도 Ghost 초창기의 그 자연스러운 리듬은 1990년대 후반, "Ghost House"가 철거되면서 그 흐름이 끊기게 된다. "정말로 위험했었다." Batoh가 미소지었다. "벽을 힘껏 밀어보면 집 전체가 기울기 시작하는게 눈에 보일 정도였지." 이상적인 환경은 결코 아니었으나, 멤버들을 한 지붕 아래에서 함께 작업할 수 있게 해 주었던 주거지였던 것도 사실이었다. 서로 떨어져 살게 되면 멤버들 간의 소통도 달라지게 될 것이 분명했다. "이제는 많이 달라졌다, 멤버들 모두 시간도 많이 없어졌고 다른 직업이나 일도 생겼으니까." Batoh도 동의했다. "모두 좀 더 늙게 되었고, 가족도 생겼다. 하지만 모두 인터넷으로 연결될 수 있어 서로 계속해서 소통할 수 있게 되었고, 함께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때 마다 더 소중하게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이들이 여전히 Eikyu Konran(영원한 혼란)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을 때, Batoh와 Giant의 밴드는 드러머 Hiroyuki Usui와 함께 데모를 제작했으며, 이 데모에는 두 곡이 포함되어 있었다 - 그 중 가장 강렬했던 곡은 고전적인 블루스 곡 "Blood Red River"의 커버였다. 안타깝게도, 이 곡을 들었던 많은 사람들이 Eikyu Konran의 분명한 잉글랜드 포크 성향에 혼란스러워했으며, 이 3인조 밴드가 The Incredible String Band에 대한 일본의 대답 같은 밴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반응했다. 그 데모 테이프에 대한 반응은 대체로 부정적이었지만, Batoh가 Hideo Ikeezumi의 음반 가게 Modern Music에 전화를 걸게 되며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Modern Music은 도쿄 언더그라운드의 랜드마크이자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일본의 인디펜던트 사이키델릭의 쓰나미를 일으켰던 레이블 PSF Records의 본거지이기도 했다. "Modern Music에는 단순한 고객으로서 가곤 했었다." Batoh가 말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우리 데모 테이프 하나를 Ikeezumi에게 줘 보았었다. 처음에는 Ghost 앨범을 PSF를 통해 발매하겠다는 생각 같은 건 하나도 없었다, 그 때만 해도 PSF는 카탈로그에 8개 정도의 앨범이 전부였던 소규모 레이블이었으니까. High Rise, Keiji Haino, White Heaven이 속한 레이블에 Ghost가 들어가게 되면 뭐랄까 우리에게 너무 제한이 가해지는 느낌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었고."

"Ikeezumi가 테이프를 틀었고, 1분도 안 되어서 말했다, '이거 멋진데요! 한번 발매해 봅시다!' Ikeezumi는 엄청나게 열광했고 나는 마침내 누군가 우리 음악을 이해하고 인정해준다는 사실에 정말 행복했다. 당시 우리는 모두 우리가 훌륭한, 멋진 음악을 하고 있다고 느꼈지만, Ikeezumi가 들어보기 전까지 나는 다른 레이블들에서 받았던 부정적인 반응들에 상당히 당황하고 있었다." 하지만 Ikeezumi는 밴드 이름을 바꾸면 앨범을 발매해 주겠다는 조건을 제시해 왔다. "밴드의 형태가 뚜렷하지 않았고, 분명한 모양을 가지지 않고 있었기에 'Ghost'라는 이름이 이 밴드의 상태와 창의적 분위기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이름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Batoh가 회상했다. "돌이켜보자면 Ghost의 첫 앨범들을 PSF에서 발매했던 경험이, 밴드의 향후 발전에 있어 굉장히 중요했던 순간이었던 것 같다."


1990년, Ghost의 첫 앨범이 발매되기 직전, Batoh는 새로운 경험을 찾아 해외로 떠나게 된다. 시야를 넓히고 머리를 비우기 위해서뿐만이 아닌, 영적으로 그리고 또 창조적으로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개인적인 사명을 갖고 그는 모로코로 향했다. "22살에 모로코에서 6개월동안 지냈었다, 밴드에 속해 있다는 것에 염증도 느끼고 있었고, 내가 밴드라는 형식으로 음악을 더 만들고 싶어하고 있기는 한 건지 확신도 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Batoh가 밝혔다. "내가 기억하는 모로코는 굉장히 강렬한 장소였고,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문화를 가진 곳이었다. 그리고 그 경험이 나에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낯선 땅에서 이방인으로 발을 디딘다는 행위는 이 젊은 음악가에게 스스로의 문화적 배경, 그리고 그가 겪어 온 것들에 대해 다시 한 번 되돌아보며 숙고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종교가 없다고 하자, 모로코 사람들은 나를 돼지라고 불렀다." Batoh는 생각에 잠겨 말했다. "딱히 무례하게 말했던 것은 아니었고, 나 또한 딱히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그 경험으로부터 나는 이슬람 문화의 차이와 그 광대함에 대해 깨달을 수 있었다. 일종의 대답으로서 나는 그 모로코 사람들에게 모든 일본인들이 전부 불교 신자인 것은 아니라고 말했었는데, 그들의 반응으로부터 말미암아 내 나라의 종교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모로코에서의 6개월 이후, Batoh는 히치하이킹을 하며 유럽으로 건너가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고 마침내 영국으로 향했다. 영국에서 그는 런던 남부의 Brixton에 있는 한 집에서 불법 점거 생활을 하며 수 개월을 보내게 된다. 그는 10대 시절 아이돌로 삼았던 HawkwindGong같은 밴드들은 물론 포크의 영웅 Martin Carthy, 프리 재즈 디바 Annette Peacock같은 음악가들의 공연까지 다양한 공연을 즐기며 런던 생활을 보내게 된다. 도쿄로 돌아오며, Batoh는 Ghost의 첫 앨범을 위한 라인업으로 Giant, 베이시스트 Kohji Nishino, White Heaven의 기타리스트 Michio Kurihara,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는 연주자 Kazuo Ogino, 타악기와 '속삭임'에 신비로운 여성 보컬 Mu Krsna로 밴드 멤버를 채우게 된다. Batoh는 모로코 여행, 그리고 향정신성 약물의 도움을 받아 떠났던 온갖 기나긴 기이한 '트립'들의 영향을 손에 들고 파도가 거세게 이는 창조의 바다 속으로 뛰어들게 된다.

"손에 넣을 수 있는 거라면 무엇이든지 사용했었다." Batoh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천국도 보고 지옥도 보았으며, 그 시기에 내가 막연하게 기억하고 있던 경험들과 꿈들이 Ghost의 초기 음악의 주제가 되었다." 대마초 소지만으로도 5년형을 받을 수 있는 일본에서, 엄격한 마약 금지법은 Batoh가 추구하는 내면의 깨달음을 향한 여정은 결코 가볍게 시작할 수 없는, 위험한 여정으로 만들고 있었다. 당시 많은 이들이 선택했던 수단은 쉽게 구할 수 있는 약물이었던 스피드(역주: 메스암페타민)로, 일본 음악가들이 밤새도록 창작에 모든 것을 쏟아낼 수 있게 해 주는 완벽한 각성제였다. 반면 가장 선호되었던 환각제는 환각버섯으로, 당시에는 합법적이었으며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자연 속에서도 구할 수 있는 향정신성 물질이었다. Keiji Haino같은 음악가들은 음악 작업에 집중할 수 없게 방해한다는 이유로 약물 사용을 강력하게 반대했었지만, Ghost는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행위들을 넘어선 '예술가적인 삶의 방식'에 스스로를 온전히 맡겼으며, 새로운 가능성을 위해 기꺼이 향정신성 물질들을 사용했다. "약물을 통해 정신을 확장하게 되면 완전히 다른 현실이 열리게 된다, 그리고 당시 우리의 목표는 뇌에서 평소에는 활성화되지 않는 부분들을 활용해 음악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다." Batoh가 설명했다. "그러한 의미에서, Ghost의 음악을 '사이키델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Batoh와 밴드 멤버들은 내적, 외적 발견의 여정으로부터 음악을 만들었고, 이를 모아 PSF에서 첫 앨범 [Ghost]를 발매한다. 이 앨범을 통해 밴드는 곧바로 일본 언더그라운드에서 가장 중요한 밴드들 중 하나로 여겨지게 된다. 앨범의 첫 곡 "Sun Is Tangging"은 Ghost의 놀라운 기법들을 그 자체로 증명하고 있는 곡이다. 부족민의 축제와도 같은 음향으로 시작하는 이 곡은 애시드 포크 스타일 속으로 부드럽게 접혀가며, Batoh가 어쿠스틱 기타를 부드럽게 연주하는 동안 Giant의 플루트가 한 마리의 송골매와 같이 날아오르며 곡 전체를 휘감는다. "그 곡은 가사를 먼저 쓰고 그 가사에 맞춰서 음악을 붙인 곡이었다." Batoh가 회고했다. "내가 Ghost를 위해 처음으로 만든 곡이었고, 그 곡의 이미지는 1988년 모로코에서 겪었던 경험들에서 가져왔었다. 오아시스가 있는 사막, 그 사막에서 '트립'을 한다는 생각을 하며 만들었던 곡이다."


Ghost는 첫 앨범의 강력한 환각 스타일을 재검토하고 더 발전시켜 두 번째 앨범, [Second Time Around] (1992) 로 빚어낸다. 이 앨범에서 밴드는 드러머 Iwao Yamazaki, 'Ghost House'의 멤버였던 Daisuke Naganuma를 보컬로, 오보에 연주에 Masanori Shioya, 그리고 다양한 악기 연주에 Torno Kuwahala를 추가 멤버로 영입한다 - 또한 모든 멤버가 "1000개의 징, 벨 트리(bell tree), 티벳 종, 더프(duff), 벨 벨(bel bel) 드럼, 카마바라(kamabara), 그리고 몇 개의 이름 없는 종들과 돌들"을 연주하기도 했다. 자유로운 형식의 포크에서부터 종교적 만트라에 이르기까지, 스스로의 음향을 더 높은 곳으로 공중부양시킨 Ghost는 점점 더 강해지는 영적인 분위기를 세 번째 앨범 [Temple Stone] (1994) 을 통해 더욱 공고히 굳혔다. 이 앨범 [Temple Stone]은 여러 사원에서 진행되었던 공연의 녹음들을 선별해 만든 앨범이었다.

"Ghost의 음악 속에서 그러한 영향들을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Giant가 주의할 만한 부분을 짚으며 설명했다. "하지만, 우리는 실제로는 딱히 특정한 스타일의 연주를 강요하거나 하진 않고 있다. 밴드 멤버 각각은 서로 다른 창조적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으며, 함께 연주하는 동안 서로의 페르소나가 무의식적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억지로 꾸민, 인위적인 것이 아니다." "함께 연주할 때 그런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Ogino가 더했다. "공연 도중 관객들이 무언가 영적인 것을 알아차린다면야 좋은 일이지만, 우리는 Ghost의 음악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에 대해서는 거의 신경쓰지 않고 있다."

그렇긴 하지만, [Temple Stone]을 듣다 보면 그저 단순히 공연 장소의 음향 환경을 넘어서는, 무언가 의심할 여지 없이 확실한 존재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Ghost라면 사원에서 연주하고 녹음했던 것은 그저 자신들의 음악을 더 강화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고 거짓으로 둘러댈지도 모르겠지만, [Temple Stone]에 담긴 공연들은 사실상 종교적 의식과 공양 제례 정도의 의미까지도 가지고 있는 공연들이었다. "예배 장소라는 이유로 사원에서 공연을 했던 건 아니었다." Batoh는 주장했다. "그보다는 사원이라는 공간이 갖는 분위기, 이 밴드의 음악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분위기 때문이었다. 공연을 할 때, 공연 장소의 분위기가 정확하게 맞아떨어질 때에 관객들과 더 온전하게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다고 생각한다. 물론 사원에서의 공연만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버려진 창고라던가, 어디가 되었든지간에 어떤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지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공연한다. 일부 록 클럽도 그런 분위기를 가진 곳들이 있지만, 특히 일본에서는, 그런 록 클럽은 아주 드물다."

1992년과 1993년, 세이류지(青龍寺) 사찰과 와세다의 구세군 교회에서 진행한 공연 녹음으로 구성된 [Temple Stone]의 연주는 거의 초자연적인 성스러움으로 울려 퍼지는 음악이다. Batoh가 말하기를, 세이류지의 신성한 영역 안으로 Ghost 멤버들이 들어서기 위해 일종의 고행을 감내해야 했었다고 한다. "사이타마의 산 꼭대기에서 했었던 공연이었다." Batoh가 회고했다. "사찰 내에서 공연을 하기 위해선 허가를 받아야 했고, 해서 협상을 해야만 했었다. 결과적으로는 우리는 우리가 중세 음악을 연주하는 밴드라고 둘러댔었다. 허가를 받기 위해서 꼭 해야만 하는 거짓말이었다. 이 사찰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사찰들 중 하나인 곳이었다. 정말로 독특한 음향 환경을 가진 곳이었고,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지간에 반드시 이 곳에서 공연을 하고 싶어했다. 모든 악기와 장비를 우리 스스로 가지고 올라갔어야 했는데, 정말 죽을 뻔 했었다. 그 산 꼭대기까지 올라가는게 너무 어려워서 공연 준비에만 며칠이 걸렸다. 너무나도 추운 곳이었고, 전기도 없었으며, 몇몇 사람들은 올라오는 도중에 길을 잃기도 했었다. 정상에 도달한 이후에는 기도도 드리고 공양도 드렸다. 기억하기로는 Kurihara가 부처님이 지금 우리 안으로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는 말을 했었다, Kurihara는 깜짝 놀라서 거의 경기를 일으켰었다."


"나는 영적인 세계에 관심이 많았고, 지금도 많다." 1995년 솔로 작업으로 방향을 잠시 전환했던 시기에 대해 말하던 도중 Batoh가 강조했다. 이 시기, Batoh는 'Ghost House'로 돌아가 2트랙 그리고 4트랙짜리 오픈 릴 테이프 녹음기를 가지고 Ghost의 새 앨범들의 기반을 만들 목적으로 새로운 곡들을 만들었다. 1년의 시간이 지난 후 그는 다시 세상으로 나왔으며, 만들었던 곡들은 LP로만 발매되었던 2개의 앨범, [A Ghost From The Darkened Sea]와 [Kikaokubeshi]로 발매되게 된다. 이 앨범들은 캘리포니아의 독립 레이블 The Now Sound를 통해 Batoh의 이름으로 발매되었으며, 향후에 [Collected Works (1995-1996)] 이라는 이름으로 CD로도 발매된다. 마법적인 오각형의 그림 위에 Batoh의 사진이 겹쳐진 커버를 갖고 발매된 이 앨범은 Batoh의 가장 훌륭하면서도 가장 신비로운 앨범으로 손꼽히는 앨범이다. "Eliphas Levi의 [Transcendental Magic]을 읽은 후 서양 세계의 마법 전통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Batoh는 이어갔다. "그리고 그 책은 연금술, 그리고 동양의 마법 전통 뒤에 숨은 아이디어들과 사상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해 주었다. 그 마법적 아이디어들에서 영향을 분명하게 받았고, 내 음악에서도 그 영향을 들어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의도적으로 그런 마법적 아이디어들을 음악에 반영했던 것은 아니었다."

Batoh의 솔로 컬렉션의 핵심은 Can의 "Yoo Doo Right"의 놀라운 어쿠스틱 커버일 것이다. 이 커버에서, Batoh는 원곡을 해체하지 않으면서도 완전히 뒤집어버리고 있다. "CanGhost 사이의 연관성이 들리는 것인지,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Can을 좋아하냐고 물어오곤 한다." Batoh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사실 나는 Can의 앨범은 [Monster Movie]와 [Soundtracks] 단 2개만 들어보았다. 그들의 초기 시절, 특히 정말로 미친 것 같은, 신에 가까운 보컬들인 Damo SuzukiMalcolm Mooney가 보컬이었던 시절을 우러러 보고 있다."

""Yoo Doo Right"는 집에서 새 곡을 만들 목적으로 기타 리프를 찾으려 노력하다가 만들게 된 곡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Yoo Doo Right"의 리프가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점에서 내가 만들던 곡은 의도치 않게 "Yoo Doo Right"의 커버 버전으로 변모했다. 나중에 Malcolm Mooney를 미국에서 실제로 만나게 되었는데 - 지금 그는 대학 교수다 - 그는 내가 만든 버전을 듣고는 말했었다, "이건 "Yoo Doo Right"가 아니다! 대체 뭔 소리를 하는건지!" 그 다음엔 Can의 기타리스트 Michael Karoli에게 들려줬었는데, 그는 "이건 대단하다. 이 커버로 Can을 완전히 박살냈군."이라는 반응을 보였었다. 지금은 작고했지만, Michael에게 그런 평가를 받았다는 것에 진심으로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Batoh는 비슷한 제작 기법을 [Hypnotic Underworld]의 수록곡들 중 두 개의 커버곡에서도 사용하고 있다: 1970년대 네덜란드 밴드 Earth & Fire의 "Hazy Paradise"와 Pink Floyd 창립 멤버 Syd Barrett의 "Dominoes". "기타를 연주하다 보면 이 연주에 맞는 가사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다." Batoh의 설명이었다. "그래서 내가 아는 다른 곡의 가사를 불러보곤 하는데, 가끔은 그 다른 곡의 가사가 가장 잘 맞을 때가 있는 것이다. 뭐랄까 '해체'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물론 Ghost가 커버하는 곡은 멤버 모두가 정말 좋아하는 곡이지만, '해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내가 보기에도 이 곡들은 정말로 훌륭한 곡이고 개인적으로도 존경에 가까운 감정을 갖는 곡들이기 때문에, 내가 더 발전시킬 수 없다면 아예 차라리 해체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Ghost의 사이드 프로젝트 Piero Manzoni로서의 작업으로, 1986년 라이브로 녹음했던 커버곡인 프리 재즈 가수 Patty Waters의 "Black Is the Color of My True Love's Hair"에 대해서는, Batoh는 딱히 언급하고 싶어하진 않고 있었다. "그 프로젝트는 거의 즉흥 연주만 하는 밴드였고, 나는 거기서 베이스를 연주했었다." Batoh는 얼굴을 살짝 찡그리며 말했다. "안타깝게도 그 시절에 대해서는 좋은 기억이 그다지 많이 없는 편이다."

Batoh는 작년 스코틀랜드 스털링에서 진행되었던 Le Weekend 페스티벌에서 Patty Waters를 직접 만나게 되었다. 이 때에도 아마 Batoh는 그 커버에 대해 눈치있게 모른척 했었던 것 같다. "Keiji HainoPatty Waters를 한 자리에서 만나다니,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그는 미소지으며 말했다. "처음에 호텔 계단에서 내려오는 Patty Waters를 보고는 바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와! 가서 바로 인사하고 존경을 표해야겠는데. 그녀에게 엄청난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고, 혹시 "Black Is the Color of My True Love's Hair"를 불러줄 수 있겠냐고 물어보았지만, 아쉽게도 거절했었다."

"1980년대 초반에 좋아했는 밴드는 The Birthday PartyThrobbing Gristle 뿐이었다." Patty Waters의 영향에 대해 설명하며, Batoh는 이어나갔다. "다른 밴드들은 전부 공허하고, '영혼'이 없는 것 같았다. 심지어 그러면 안 되는 프리 재즈마저도 고루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러다가 어느날 Patty Waters의 이름이 실린 프리 재즈 책을 하나 보게 되었다. 여성 프리 재즈 보컬이 있다니, 나는 엄청나게 흥분해서 ESP-Disk에서 그녀의 두 앨범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어디에서든 최대 음량으로 그녀의 음악을 듣고 다녔다, 차 속에서도 말이다! Patty WatersAmon Düül 1Ghost 음악에 있어 핵심이 되는 가장 중요한 두 밴드이다." Batoh는 잠시 멈춘 후, 단언했다. "어떻게 보자면, Patty Waters가 없었다면 Ghost라는 밴드도 없었을 것이다."


Batoh는 첫 번째 Ghost 앨범에서부터 이미 중국의 티베트 점령에 대한 그의 우려를 "Moungod" 시리즈들을 통해 드러내 왔다.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중국에 대항하며 활동하고 있는 젊은 티베트 운동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Batoh는 회상했다. "동시에, 그 젊은 운동가는 자신과 동료 활동가들을 인도 서쪽의 마을 Moungod에 망명을 시켜 준 사람들과 친구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기도 했었다. 나는 이 이야기에서 큰 감명을 받았고, 내가 이 사람들을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에 대한 고민도 하게 되었다. 내가 가진 유일한 무기는 음악이었다, 그래서 Moungod에 대한 곡들을 여럿 썼던 것이다." 밴드가 1996년 미국 레이블 Drag City로 적을 옮긴 후 4번째 앨범 [Lama Rabi Rabi]를 발매하게 되면서, Batoh의 티베트에 대한 관심과 우려는 보다 더 전면으로 나오게 된다. "PSF는 우리가 돈을 너무 많이 쓰고 있으며, 미친 소리를 너무 많이 하고 다니고,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Ghost와의 계약을 해지했다." Batoh는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레이블 이적은 Ghost에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준 사건이 되었다 - 하지만 Drag City 입장에서는 곧바로 눈에 띄는 변화는 아니었는데, 레이블은 3년이라는 시간을 더 기다려서 겨우 [Lama Rabi Rabi]의 후속작, [Snuffbox Immanence]를 1999년에 발매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Ghost는 이러한 느릿함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듯이 바로 6번째 앨범이자 정치적인 동기로 만들어진 앨범 [Tune In, Turn On, Free Tibet]을 동시에 발매했다. 이 무렵 티베트의 상황은 더 악화되었으며, 소위 '문명 세계'라 불리는 세력은 이를 방관하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Ogino와 Kurihara에게 자선 앨범을 하나 만들어 보자고 제안하게 되었다." Batoh가 이어갔다. "다행스럽게도 둘 모두 자선 앨범이라는 아이디어에 진심으로 동의했다. 우리는 티베트 정부측과 연락해서 앨범을 만들어 수익금을 그들에게 보태고 싶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그들도 동의해 주었고, 나중에 전해듣기로는 달라이 라마께서도 이 제안을 굉장히 기쁘게 받아들이신 다음 직접 프로젝트를 승인해 주셨다고 들었다." Batoh의 열정으로 불이 붙은 Ghost는 시위와 저항의 노래와 실험적인 즉흥 연주가 혼합된 놀라운 음악을 만들어냈으며, 장대하게 자유낙하하는 마지막 곡 "Tune In, Turn On, Free Tibet"으로 정점을 찍는 앨범으로 빚어냈다. 이 곡은 중국의 지배 아래에서 벌어진 온갖 잔학 행위들에 대한 국제앰네스티 보고서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곡이었다. "밴드의 다른 멤버들에게 말했다, '티베트같은 나라가 이런 식으로 엄청난 압박을 견뎌내고 있고, 다른 모든 선진국들이 방관하고 있는데... 이런 걸 보면 화가 나지 않아?' 그 다음, 지금 눈 앞에 놓인 이 정보에 대해, 자연스러운 반응을 보여 달라고, 그것도 음악을 통해 보여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테이프를 걸고는 단 한 번에 모든 것을 녹음했다." 판매량은 저조했지만, Batoh는 [Tune In, Turn On, Free Tibet]에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달라이 라마께서 들으셨는지는 모르겠다." Batoh는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 분께서 [Tune In, Turn On, Free Tibet]의 포스터를 당신의 방 안에 걸어 두셨다는 건 확실히 들었다."


또 다른 유명한 Ghost의 팬으로는 싱어송라이터 듀오 Damon & Naomi가 있다. 이들 사이의 우정과 협업의 시작은, Ghost의 첫 두 앨범을 듣게 된 Naomi가 Batoh에게 써 보낸 팬레터였다. 일련의 우여곡절 끝에 Naomi와 Damon은 1995년 봄, Wayne RogersKate BiggarMagic Hour 밴드의 일원으로써 Ghost와 함께 미 동부와 중서부 투어를 돌게 된다. "우리에게는 제법 힘든 시기였다, 첫 번째 미국 투어였으니까." Batoh는 회고했다. "하지만 Damon & Naomi가 정말 잘 대해주었고 우리는 모두 함께 잘 어울려 지내게 되었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점은 Damon의 아버지가 나치를 피해 일본으로 피난을 왔던 폴란드 난민 중 한명이었다는 사실이었다. Damon의 아버지는 유명한 일본인인 Chiune Sugihara라는 사람의 도움을 받았는데, 그는 폴란드인들이 일본에 입국하기 위한 비자를 받게 하는 데 최선을 다해 노력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Damon에게 일본은 굉장히 중요한 장소였고, 우리의 만남은 알 수 없는 묘한 동질성을 갖게 되었다. 어째서인지, 우리는 서로 굉장히 오래 전부터 알고 지냈던 것만 같았다."

Damon & Naomi에게 있어 Ghost와의 인연은, 오하이오 주 고속도로에서 장비들을 담은 밴이 예기치 않게 타이어 펑크가 났을 때 더 깊어지게 되었다. "밴에서 쏟아져 나오는 Ghost 멤버들은 '켄트 주립대' 이후로 오하이오에서 벌어졌던 것들 중 그 무엇보다도 더 사이키델릭한 모습이었다." 짧은 전화 인터뷰에서 Damon이 웃으며 말했다. "몇 분 만에 주 경찰이 모습을 드러냈다. 경찰이 차에서 내릴 때, 우리는 주변을 둘러보았고 Ghost 멤버들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고속도로 옆 들판에서... 꽃을 따고 있었다. 나는 우리가 어떤 혐의로든지간에 체포당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허가 없이 일본 히피들을 수입해 왔다던가 하는 식으로."

Damon & Naomi와 함께 작업하고 투어를 돌았던 경험은 Ghost가 스스로를 재발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Damon & Naomi의 동지애와 열정은, Ghost가 더 넓은 범위의 청중, 단순히 고국 일본에 국한되지 않고 더 넓게,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청중들에게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받아들이게 만들었던 것이다. Damon & Naomi는 2인조로서의 첫 공연들을 일본에서 진행하였으며, Ghost가 이들의 투어에 참여했다. 미국에서의 여러 합동 공연들을 통해 두 밴드 사이의 인연은 계속해서 이어졌으며, 이는 결국 Sub Pop에서 발매된 Damon & NaomiGhost의 합동 앨범, 그리고 Kurihara와의 합동 앨범으로 이어지게 된다. "Ghost와의 합동 앨범을 만들고 난 후, 투어에서 우리를 도와 줄 일정이 되는 사람이 Kurihara 뿐이었다." Damon의 설명이었다. "미국, 영국, 유럽, 일본, 심지어 브라질 투어까지 돌았다, 투어를 도는 도중 Kurihara와의 3인조 세팅이 점점 더 원숙해졌고, 결국 이 3인조 체제를 기록하기 위해서라도 라이브 앨범을 발매하고 싶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결과물로서 발매된 [Song To The Siren]은 도쿄의 사이키델릭 밴드 White HeavenGhost 음악의 원동력이자 미 서부 해안가 스타일의 독특한 기타 연주를 선보이는 기타리스트, Kurihara와 Damon & Naomi의 공동 작업들을 재조명하는 다큐멘터리같은 앨범이다. Kurihara가 목표로 삼고 있는 기타리스트 - "Kurihara가 모시는 신!"이라고 Batoh가 농담조로 말했다 - 는 Quicksilver Messenger Service의 기타리스트인 고 John Cipollina였다. "나는 정말로 그의 광팬이다." Kurihara는 수줍은 듯 말했다. "그를 따라하려는 생각은 없지만, 그의 연주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계속해서 노력하고 있다." Kurihara의 Cipollina 숭배는 Damon & Naomi와의 미국 투어 도중, 클리블랜드에서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우연히 방문하게 되면서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로비에서 처음으로 보게 되었던 것이 거대한 유리 상자 속에 담겨있던 Cipollina의 앰프였다." Damon이 웃으며 말했다. "두 단이 마치 성경인 것 처럼 경첩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상단에 기다란 금관 뿔이 달려 있었다. Naomi가 앰프 앞에 서 있는 Kurihara의 사진을 찍으려고 했는데 보안 요원이 달려와서 제지했다. 알고 보니 명예의 전당은 전시품을 찍은 사진들에 대해서도 모든 소유권을 가지고 있었다."

"정말 멋진 광경이었다." Kurihara가 한숨을 내쉬는 듯 말했다. "진심으로 압도당해서, 그 자리에서 30분 정도를 그저 그 앰프를 바라보고 하나하나 뜯어보며 서 있기만 했었다."


Masaki Batoh는 사실 녹음과 투어를 좋아하진 않는다고 고백했지만, Ghost라는 밴드의 기나긴, 기묘한 여정은 아직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Hypnotic Underworld]는 이들의 앨범들 중 가장 뛰어난, 훌륭한 앨범일 것이다. 첫 곡의 4부 구성은 Ghost의 만화경과도 같은 음악 스펙트럼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부분이다. Batoh의 설명에 따르면, "첫 파트인 "God Took A Picture Of His Illness On This Ground"는 밴드 멤버들에게 내가 미리 전달했던 이미지를 기반으로 한 즉흥 연주였다. 태초의 시간, 음과 양이 갈라지기 이전의 시대, 만물이 창조되기 이전, 혼란 속에 빠져있는 지구가 스스로를 형성하려던 시대의 이미지를. 나는 멤버들에게 이런 이미지처럼 연주를 해야 한다고 말했고, 멤버들은 혼돈으로 내 요청에 응답했던 것이다." Batoh의 비전을 받아들인 밴드는 그들의 모든 에너지와 독창성을 끌어모아 [Hypnotic Underworld]의 특징이라 할 수 있을 눈부신 다차원적 효과를 창조해 내었다. "녹음을 위해 스튜디오 2곳을 사용했다." Giant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하나는 어쿠스틱 전용이었고, 다른 하나는 전자 악기 전용이었다. 이런 방식은 처음 시도해 본 것이었는데, 마법 같은 효과가 일어나게 되었다." 19세기의 몰락한 사무라이이자 결국 고행 수도승이 된 몬가쿠(文覚)를 묘사한 그림, Batoh가 선택한 앨범 커버 아트는 그 '마법 같은 무엇인가'를 더 강조하고 있다. Batoh의 해석에 따르면, 몬가쿠는 "폭포 아래에서 스스로를 정화하고 비워내기 위해 영적인 수련을 하고 있다. 그의 위에서는 여러 신들이 그를 내려다보며 위험으로부터 그를 보호하고 있다." Batoh는 이어갔다. "그리고, 비록 이 이미지가 앨범의 음악과는 아무 연관이 없을지라도,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이 그림의 주인공은 오늘날의 Ghost를 구현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 또한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어떻게든 보호를 받고 있다는 진실된 희망 속에서, 우리 스스로를 창의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비워내며 우리의 일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사적인 영역에서 Batoh는 자격증을 가진 침술사이기도 했다. "Damo Suzuki가 항상 말하곤 한다, '공연의 이름을 [A Live Healing]이라고 바꾸고 관객으로는 아픈 사람만 받는거 어때? 공연도 하고 그 다음엔 침도 놔 줄 수 있잖아!' 멋진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 Batoh는 웃었다. "우리가 왜 아직까지 그렇게 하지 않았는지, 가끔 정말로 궁금해지기도 한다."

[Hypnotic Underworld]는 현재 Drag City를 통해 발매되어 있다. 이 기사에 도움을 준 번역가 Alain BosshartAlan Cummings에게 감사를 표한다.



https://youtu.be/VPThsVidm7Q

"Domin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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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zo Tateiwa / Michio Kurihara / Takuyuki Moriya / Kazuo Ogino / Masaki Batoh / Gi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