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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lent Shout[...]/[The Knife] 2023. 3. 24. 04:40
https://youtu.be/mWzZnxPAQhs
"Silent Sh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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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theknife.net/bio
The Knife 전기
Ruth Saxelby
2020년
20세기가 끝나가던 때, 스웨덴의 서해안가에서는 무엇인가가 시작되고 있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스웨덴 서부의 허허벌판에 덩그러니 놓인 숲의 끝자락에 있는 빨간색 창고 안에서 말이다. 그런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은 빈 공간에서, Karin과 Olof 남매는 함께 음악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그 어떤 계획도, 비전도 없었다 - 단지 음악을 만들어야겠다는 감정 뿐. 당시 Olof는 10대였다. 몇 살 더 많았던 Karin은 인디 록 밴드를 이끌었던 경험이 있었지만 이 때에는 이미 해체한 지 오래였다.
Karin> 그런 형태의 음악을 나 스스로 혼자 만드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었다. 나는 그냥 뭐랄까, 완전히 다른 것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개인적으로는 The Knife전에 하던 음악에 대해 스스로가 어떻게 반응했었는지가 정말 주요한 요인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전까지 다루었던 평범한 장비들을 버리고, '전자음악'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음악을 만드는 것. 이전 밴드 활동을 하면서 스스로 가졌던 의문이 굉장히 많았었고, 그래서 완전히 새로운 것들을 가지고 음악을 만들어보고 싶었었다.
Olof> Karin은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고, 나에게 와서 "이거 만드는 거 도와줄 수 있어?"라는 부탁을 하곤 했었다. 뭐랄까 "같이 밴드 해 볼래?"같은 느낌은 아니었고, 실제 작업 위주로 진행되었었다. 나는 이제 막 컴퓨터로 음악을 만드는 것을 처음으로 해 보고 있었고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쨌든지간에, 최선을 다 해서 이런저런 것들을 시도해 보던 나날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당장 가지고 있는 것들을 십분 활용했다: 여행가방 정도 크기의 샘플러, 오르간, 아버지의 아코디언, 베이스 기타. Karin은 팝 음악의 관습에 상처를 내 활짝 벌려보고 싶었고, Olof는 재즈와 댄스 음악의 자유로운 작법을 탐구하고 싶었다. 이들은 스스로의 길을 나아갔고, 음악적 실험은 흥미로운 전자 팝 음악 무더기로 첫 결실을 맺었다. 둘은 이 결과를 자신들의 레이블 Rabid Records를 통해 발매하기로 결정한다 (Rabid는 Karin이 전에 하던 인디 록 밴드의 음악을 발매할 목적으로 만든 것이었으며, 밴드가 해체할 때 Karin이 챙긴 레이블이었다).
두 명은 자신들에게 The Knife라는 이름을 붙였으며 이 이름 아래에서 활동이 계속되었다. 처음으로 발매한 앨범은 2000년 8월 발매한 7인치, [Afraid of You] 였다. 이 7인치는 앞으로의 The Knife 음악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에 대한 힌트를 제시하는 앨범이었다. 특별히 '목소리의 자유로운 변조'와 '음울한 음색'이라는 측면에서.
Karin> "Afraid of You"가 글자 'A'로 시작하니 A면에, "Bird"는 'B'로 시작하니 B면에 넣자고 결정했었다.
The Knife의 첫 LP [The Knife]는 2001년 2월에 발매되었고, 초창기 녹음 세션이 얼마나 다채로운 음악을 낳았는지를 증명하는 앨범이 되었다. 음악적으로 정말 다양한 방향성이 앨범 하나에 전부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맞물리는 리듬과 변화하는 영역은 인더스트리얼적인 느낌 ("I Take Time") 에서부터 팬파이프의 속삭임 ("I Just Had To Die") 과 졸린 색소폰 ("Neon") 까지 다양한 느낌을 표현하였다. 반면 일반적인, 직설적인 음악도 있었다: "Parade"는 반짝이는 눈빛과 열정을 담은 사회주의 찬양이었으며, "Reindeer"는 가장 팝적인 키치 - 크리스마스 음악 - 를 가지고 사이키델릭한 여정으로 바꾸었던 곡이었다.
이 음악들 말고도 최소한 두 번 이상의 목소리 변조가 [The Knife]에 들어 가 있으며, The Knife는 이러한 목소리 변조를 이후 더욱 적극적으로 이용하게 된다. 당대의 팝 음악에서는 아직 널리 사용되지 않았던 목소리 변조와 이 기법의 페미니즘적인 가능성은 Karin으로 하여금 다양한 젠더의 역할을 홀로 연기할 수 있게 해 주었고, 다양한 관점을 혼자서 전부 노래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목소리 변조를 활용한 음악들은 '가정'의 이미지에다가 트라우마에 대한 암시와 무언가 다른 것에 대한 불타는 열망을 병치할 수 있었다.
이후 몇 년간 [The Knife]는 스웨덴 내부에서만 유통되는 것이 전부였었다. 하지만, 이 앨범을 통해 The Knife는 젊은 시인에 관한 불안한 독립영화 [Hannah Med H]의 음악 작업을 맡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 작업으로부터 떨어진 수익 덕분에 The Knife는 직장 (Karin은 웹 디자인 회사, Olof는 유치원에서 일하고 있었다) 을 그만두고 음악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Olof> 하지만 나는 여전히 The Knife를 일시적인 작업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원래 교사가 될 생각이었다. The Knife 작업을 잠깐 할 것이었지만 끝나고 난 후에는 다시 교사직으로 돌아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하지만, 이들은 [Deep Cuts]를 만들어버리게 되었다. 2003년 발매된 이 앨범은 그 이름에 걸맞는 앨범이었다. 현재의 상황을 끓어오르는 듯이 절개하고 해체하는 음악이 구미를 당기는 훅으로 장식되어 있는 듯한 앨범. 혁명을 꿈꾸는, 팝 음악계의 트로이 목마.
Olof> 나는 사회주의적 또는 페미니즘적 아이디어를 팝 음악의 형식으로 감싼다는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었다. 그러한 전략이 맞는 방향이라고 생각했다. 소수의 엘리트들만 이해할 수 있는 실험적 음악을 하는 것은 별로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Karin> [Deep Cuts]를 만들 때 우리는 분명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다 - 무언가 모던한 것을 만들어보려는 노력. 아주 저렴하거나 아니면 아예 무료인 플러그인들과 프로그램을 많이 사용했었다.
[Deep Cuts]에 이르러, The Knife가 이야기를 풀어놓는 방식은 너무 날카로워져서 살을 베고 피를 흘리게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모든 주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폭력적인 관계, 가부장제, 이성애자 중심주의, 경찰국가. [Deep Cuts]는 명확한, 확신에 찬 방식으로 억압적인 구조를 꿰뚫는 앨범이었지만, 동시에 극심한 불안감에 대해 인정하고 있는 앨범이기도 했다. 현대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개인적인 자신과 사회적인 자신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한다는 것. 인습에 저항하면서도, 치유를 위한 공간을 어떻게든지 찾아내야만 한다는 것.
The Knife의 칼날의 기반은 서슬퍼런 풍자겠지만, 그 칼날에 실질적인 공격성을 부여하는 것은 귀에 감겨 떨어지지 않는 멜로디일 것이다. The Knife의 음향적 무기에는 톱날같은 질감의 신디사이저 음향과 철판을 때리는 듯한 드럼소리가 포함된다.
Karin> 맞다, 우리는 그 철판 소리를 좋아했다.
Olof> 플라스틱으로 만든 가짜 전자 드럼에서 나오는 소리.
[Deep Cuts]의 최대 히트곡 - "Heartbeats", "Pass This On", "You Take My Breath Away" - 들은 후렴구 부분을 잘라붙여 퀴어적인 느낌의 목소리로 변조시킨 곡들이었다. Olof는 말했다: "나는 직선적인, 정석적인 방법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들이 팝 음악의 기본 화폐에 해당하는 매체인 '뮤직비디오'를 가지고 벌였었던 유희는, 지금까지도 유행하고 있는 DIY 느낌 뮤직비디오 스타일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이들은 "Pass This On"의 뮤직비디오에서는 좀 더 세련된 방식의 영상을 가지고 '미혹'에 대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풀어 보았다.
Karin> 맞다, 재미있는 연극이었다. "Pass This On"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던 때를 기억한다. 2003년 여름이었다. 이 때 나는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영화에 완전히 푹 빠져 있었는데, 그의 영화 [하이 힐]에는 하이 힐을 신은 여장남자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다가 나는 스웨덴의 예술가 Rickard Engfors의 무대를 보게 되었다. Rickard가 "Pass This On"을 부른다면 환상적이겠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Olof> Johan Renck(감독)이 우리에게 와 뮤직비디오를 찍을 기회가 있냐고 물어봤었다. 처음에는 좀 망설였었다.
Karin> 하지만 곧 대답했다, "알모도바르 영화 같은 느낌으로 찍어보고 싶다는 아이디어가 있는데, 괜찮다고 생각한다면 의향이 있다."
Olof> 그 때가 처음으로 비싼, 제대로 된 비디오를 찍어 보게 된 상황이었는데, Johan이 필요한 모든 자원과 경험을 갖고 나타난 것이었다. Johan이 여러 아이디어를 더했고, 그 덕분에 비디오가 지금처럼 굉장히 흥미로워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Karin> 그가 모든 세팅을 해 줬고 필요한 사람도 전부 데려왔었다. Olof는 무대 위에 있었고 나는 배경에 있었다. 아직까지도 정말 마음에 드는, 아름다운 뮤직비디오다.
하지만, 대중의 눈에 보여진다는 것은 대가 또한 따르는 일이었다. [Deep Cuts]의 스웨덴 발매에 맞춰, The Knife는 자신들의 맨 얼굴을 언론에 공개하였고, 이는 다시는 반복하지 않을 실수가 되었다.
Olof> 나는 길에서 누군가가 나를 알아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개인적인 삶이 침해받는다고 느낀다. 길을 걷다가 누군가가 나에게 "어, 그 뮤직비디오에 나온 그 사람 아니에요?"라는 질문을 해 오면, 나는 "맞아요, 댄서로 고용되어서 비디오에 출연한 거에요"라고 거짓으로 대답하곤 했다. 이후로도 그런 식으로 대처하게 되었다. 언젠가 한 레이브 파티에서 진짜 떡이 되도록 술에 취해 새벽 5시에 나왔는데, 누군가가 나를 알아봤다. 진짜 이상한 기분이었다. 나는 나만의 인생을 원한다. 그래서, 내가 기억하기로는, 이 무렵부터 우리가 가면을 쓰기 시작했다. 가면을 쓰는 것은 꽤 재미있는 일이었다.
Karin> 우리는 우리 가면을 스스로 만들었다.
Olof> 맞다! 간단한 종이 마스크였다...
Karin> 아니, 처음에는 석고 반죽이었어.
Olof> 맞아, 얼굴 부분은 그랬지. 하지만 코는 종이로 만들어 붙인 거였어.
가면에서 부리처럼 튀어나온 부분 덕분에 Karin과 Olof는 거대한 크기의 새 처럼 보였고, 사회적인 질서를 그 부리로 계속해서 쪼아댈 것 같기만 한 모습이었다. 그러한 '안티-이미지' (anti-image) 적인 접근은 팝 음악의 '정석'에 대해 도전하는 The Knife의 음악과도 맞닿은 부분이 있었다. 2003년 스웨덴 그래미에서 The Knife가 '올해의 팝 그룹' 상을 수상했을 때, The Knife는 고릴라 가면과 '50/50'이라는 문구가 쓰여진 티셔츠를 입은 친구들을 대신 보내 The Knife를 대표하도록 했다. 페미니스트 운동가 그룹 Guerrilla Girls에게 헌정하는 의미였던 이 퍼포먼스는 음악 산업의 젠더 평등 문제에 대한 Karin과 Olof의 의견 표현 방식이었다. The Knife는 문화적인 측면에서의 자신들의 역할에 대해 숙고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대중의 눈과 숨 막히는 기대에 대한 좌절도 겪고 있었다.
Karin> 스웨덴에서는 음악을 한다고 하면 '유명세'를 얻어야 하고 토크 쇼라던가 라디오 쇼에도 나가고 TV에도 출연하고 온갖 미친 짓거리를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다. 내 생각에 그 무렵의 우리는 뭐랄까, '음악'만으로 활동할 수는 없다고들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해 상당히 짜증나 있었던 것 같다.
미학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까마귀같은 모양새의 가면은 The Knife가 만들고 있던, 정신에 침투하는 음악과 연결되는 가면이었다.
Olof> [Deep Cuts]를 발매하면서 이런저런 것을 배웠는데, 그 중 하나는, 비록 정치적인 아이디어들을 음악 속에 담아내려는 것이 우리의 목적일지라도, 간혹 청자들이 우리의 의도를 오해하는 일이 발생한다거나, 아니면 아이디어를 담아내는 것 자체가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한다거나 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Karin> 내 생각에 이 때의 우리는, 그리고 지금의 우리도, 음악이 어떤 식으로 정치적일 수 있는지에 대한 온갖 방법을 모색하고 시도하는 데에 관심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Deep Cuts]를 발매한 후, 우리의 정치적인 메시지가 다소 길을 잃어버리게 된 방식으로 앨범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 The Knife가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 보면서, 이번에는 좀 더 개인적인, 좀 더 무의식적인 영역을 탐구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The Knife의 세 번째 앨범 [Silent Shout]는 2006년 발매되었으며, 이 앨범에서 듀오는 현재의 자신들이 갖고 있는 페미니즘적인 사상이 어디에서 기인하였는지, 오래 전의 과거 속으로 깊이 빠져들어갔다. 시간을 되돌려 깊고 깊은 숲 속의 마을에서 보내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 것이다.
Karin> 6살부터 19살까지, 나와 Olof는 스웨던의 서쪽 해안가인 예테보리 (Göteborg) 근교의 숲에 있는 마을에서 자랐다. 그 마을에는 정말로 아무것도 없었다. 실제로 숲이 울창한 곳이었지만, 이 '울창한 숲'은 우리의 마음 속에도 있었다.
Olof> 우리는 집에서 좌파적인 사상과 반제국주의 사상에 대한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카를 마르크스와 유럽의 식민주의에 대해서도 배웠지만, 개인적인 수준에서의 사상, 젠더, 성적 지향성 등에 대한 논의는 전혀 없었다. 이러한 '백인 좌파'적인 사상은 인종차별이나 식민지의 역사, 현대 미국의 제국주의에 대해서는 활발히 토론을 하지만 오늘날의 일상적인 인종차별, '백인'스러움 같은 것에 대해서는 전혀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들이 자란 외딴 사회는 아주 깨끗한 공기와 숨막히는 가부장제로 덮힌 곳이었다. 각자의 젠더에 대한 기대는 가끔씩은 너무 심해서 도저히 견딜 수 없을 정도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Silent Shout]는 그런 분위기에 대한 '저항'에 가까운 앨범이었다. "Forest Families"같은 곡이나 "One Hit"같은 곡은 성차별주의, 동성애 혐오, 자본주의의 압력에 대해 이를 가는 듯한 곡이었다. [Silent Shout]가 선보이는, 90년대 테크노와 트랜스 음악에 대한 기이한 재해석은 음악이 담은 사회의 현실에 대한 통렬한 표현을 감쌀 수 있는 완벽한 '포장'이 되었다.
Karin> 우리가 어떻게 느끼는지에 대해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무언가를 이해하는 방식 중 하나로, 그 것을 바라보고 그 것에 대한 전반적인 개요를 얻어내려 노력하는 방식이 있을 것이다. 그 것을 묘사해 보려고 노력하는 행위. 그렇게 노력하다 보면 그 무언가를 충분히 오랫동한 관찰하게 되고 그 것을 '느낄'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음악적으로 표현하는 데 있어 감정은 단어들보다는 훨씬 더 쉽게 표현할 수 있다. 단어들은 좀 더 단순하고 지루하다, "여기 건물이 있고, 여기 집이 있다"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음향과 음악은 '감정'을 더할 수 있다.
메인스트림 음악 산업계가 움찔할 정도의 도발적인, 위험한 음악을 선뜻 선보일 수 있었던 이유들 중 하나는, Rabid 레이블을 통해 The Knife가 자신들의 음악에 대한 권리를 전부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Karin> 우리는 언제나 음악, 아트워크, 영상, 뮤직비디오, 기타 모든 것들을 스스로 제작하였고 전 세계의 다양한 레이블들과 공급/유통 계약을 체결해 발매하고 유통했다. 이렇게 자기 저작물에 대한 권리를 전부 소유하여, 창작의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이 간섭할 여지 자체를 차단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부분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전의 앨범들은 스웨덴 발매와 해외 발매 사이에 1년정도의 간극이 있었지만, [Silent Shout]는 전세계적으로 동시에 발매되었다. 그리고, The Knife의 역사상 처음으로, 듀오는 '투어'에 나섰다. 무대 위에서 듀오는 얼굴에 검정 스타킹을 뒤집어 쓰고 그 위에 UV 페인트를 덕지덕지 바르곤 했다. 인터뷰에서는 특유의 새 부리 가면을 쓰고 목소리를 변조했다. The Knife는 '유명해지지 않고 싶어하는' 것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점점 너무 많은 주목을 받기 시작하자, Karin과 Olof는 자신들만의 공간의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 둘은 천천히 각자의 개성을 만들어나갔고, 2008년 솔로 데뷔 싱글들을 발매하며 그 결실을 맺었다. Karin은 Fever Ray라는 이름 하에 어둡고 소름끼치는 곡 "If I Had a Heart"를 발매하여, 아이를 갖는다는 경험에 대해 풀어냈다. Olof는 Oni Ayhun이라는 이름으로 제멋대로 뻗어나가는 앰비언트 테크노 "OAR001"를 발매했다.
Olof> 나는 내 음악에는 그 어떤 '믿음'도 넣지 않았었다. 언제나 스스로, '나만의 음악'을 많이 만들어 왔지만, 누군가 내 음악을 듣고 싶어한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Karin이라던가 다른 사람을 위해 음악을 만들 때에만 신경을 썼다. 나만의 음악을 완성한다는 것, 그리고 그 것을 나만의 이름으로 발매 해 본다는 것은, 나에겐 굉장한 일이었다.
Karin> The Knife를 시작했을 때 Olof는 고작 17살이었다. The Knife 관련 작업을 전부 스스로 했던 것은 그냥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던 것 같다. 나는 또한 내가 혼자서 음악을 스스로 만들어 보면 어떤 음악이 나올까에 대해서도 궁금해했었다. 시간이 흐르며 Olof는 점점 더 댄스 지향적인, 테크노적인 음악으로 나아갔고, 나는 내가 직접 음악을 만들어보고 싶어졌다.
이 솔로 프로젝트들을 진행하던 와중 The Knife에게 오페라 음악 작곡 의뢰가 들어왔다. 잉글랜드의 생물학자 찰스 다윈의 저작 [종의 기원] 100주년 기념 프로젝트였던 이 오페라는 다윈의 진화론을 설명하는 내용이 될 예정이었다. 팝 음악과는 전혀 다른 영역이었지만, The Knife는 자신들만의 태도를 유지하며, 오페라 음악에 대해서도 온갖 질문을 던지며 작업을 시작했다.
Karin> 'Hotel Pro Forma'라는 덴마크 연극 기업의 의뢰를 받게 되었다. 이 오페라는 코펜하겐에 있는 왕립 오페라 하우스에서 공연될 작품이었다.
Olof> 의뢰주는 진화론과 다윈의 아이디어에 대한 오페라를 만들고 싶어했다. 우리에게 오페라에 맞는 음악을 만들어 줄 수 있겠냐는 제안이었다. 우리는 "당연하지, 다윈의 진화론이 유럽 파시즘에 끼친 영향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데. 유럽의 식민지 역사에 있어 사람들이 어떻게 다윈의 이론을 오용해서 파시즘에 써먹었는지에 대해서 말해 보자고"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프로젝트가 진행됨에 따라 의뢰주가 그런 측면에는 관심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명백하게 드러났었다. 그들은 그냥 생물학이랑 지질학에만 관심이 있었다.
Karin과 Olof는 알고 지내던 사이인 Mt. Sims 및 Planningtorock과 함께 오페라 음악 작곡을 하게 된다. 이들의 도움으로 개념적인 함정을 피해가며 자유롭게 작곡을 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고전적인 오페라 형식과 장엄함에 고개를 숙이는 대신, 이 넷은 자신들이 가진 음향들로 이런저런 것들을 해 보기 시작했다.
Karin> 이 때 너는 field recording에 빠져있었지 않았어?
Olof> 맞아, 잠깐동안 그랬지. 사실은 field recording은 좀 바보 같은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 그냥 자연의 소리를 담은 것 가지고 누가 예술이라고 할 수 있겠어? 현대예술의 일종의 '계급체계'를 보여주는 거라고 봐. 바람소리라던가 그런 것들에 대한 녹음을 가지고 누구나가 '이건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2010년, 4인조는 완성된 오페라 음악을 [Tomorrow, In A Year]라는 앨범으로 발매한다. 앨범 제목이 표현하는 '미끄러지는 시간'은 4인조가 다윈의 이론에 대해 어떠한 시적인 감상을 가지고 접근했는지를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이름이었다. '진화'라는 것은 어떤 소리가 날 것인가? 맥동하는 세포들, 천문학적 시간 동안의 불화, 지구를 뒤흔드는 충격, 뻗어나가는 리듬, 부리를 가진 무언가.
의뢰를 받아 작품을 만든다는 것에서 오는 제한은 쉽지 않았지만, Mt. Sims와 Planningtorock과 함께 작업을 해 보며 Karin과 Olof는 새로운 가능성에 눈을 뜨게 되었다. 다른 것도 가능하겠다는 기분. 새로운 것을 배우고자 하는 열망. Olof는 최근 젠더에 대한 강의를 수강하였고 그 강의에서 얻은 에너지를 새로운 스튜디오 앨범에 대한 대화로 가져왔다.
Karin> 읽고 싶은 작품들을 망라한 기나긴 리스트가 있다.
Olof> 한동안 각자 따로 작업을 하다가 다시 함께 작업을 하기 위한, 공동의 기반을 마련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Karin> 언젠가 내 아이가 나에게 와서 "하하, [Shaking The Habitual] 앨범 이름 Jane's Addiction의 [Ritual De Lo Habitual]에서 따 온 거 맞지?"라고 말하더라. 내 대답은 "아니, 아니야, 물론 [Ritual De Lo Habitual]이야 정말 좋은 앨범이지만. 'Shaking The Habitual'은 미셸 푸코의 말에서 따 온 이름이야, 예술가의 책임에 대한 말." 이었다. 나는 아직까지도, 푸코의 그 말이 아주 중요한 주제라고 생각한다.
미셸 푸코의 인용은 1961년부터 1984년까지 이루어졌던 푸코의 여러 인터뷰를 묶은 유명한 전집에 수록되어 있는 말이었다. Karin은 푸코의 책 [성의 역사]를 예전에 읽어보았었지만, Karin이나 Olof나 푸코의 인터뷰들을 이전에 읽어 본 적은 없었다. 그리고, 푸코가 인생의 말년에 했던 말이, The Knife 듀오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지성인의 작품은... 습관적으로 이루어지는 일과 사고의 방식을 흔들어 엎어야만 한다 (shake up habitual ways of working and thinking) ... 그리고... (그 지성인이 시민으로서 참여해야 하는) 정치적인 의지의 형성에 참여해야 한다." - 푸코
그러한 에너지, 그러한 의도는 The Knife가 지금까지 해 오던 모든 활동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었다. 2006년, Karin은 한 인터뷰에서 The Knife 음악 뒤에 숨겨진 메시지를 설명해달라는 질문을 받았었다. Karin의 대답은: "'경계'를 넓히고 '기준'을 바꾸는 것이다."
Karin> 푸코의 말은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도 맞닿아 있는 것 같다: 모든 개인은 정치적이며, 모든 것 또한 정치적이라는 관점. 각자가 선택을 내리고, 거기에 따라 결정되는 것.
하지만, 그 "습관적으로 이루어지는 일과 사고 방식을 흔들어 엎는 것"이 The Knife의 앨범 [Shaking The Habitual]에 어떤 식으로 깃들어 있다는 말인가? Karin과 Olof는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질문'을 갖고 있었다. 몇 년간의 시간을 들인 [Silent Shout]는 진지하면서도 고립된 상태에서 이루어졌던 작업이었다. 그리고 [Shaking The Habitual]은, 완전히 다른 접근 방식으로 만들어진 앨범이었다.
Olof> 함께 즉흥적으로 연주를 하며 재미를 느꼈던 것이 컸다. 그 전까지만 해도 스튜디오에서 둘이 함께 음악을 연주해 본 적은 없었다. [Silent Shout]까지의 작업은 전부 컴퓨터 상에서 이루어진 작업들이었다.
[Shaking The Habitual]의 음악은 드론에서부터 댄스 플로어까지 다양하며, 이 음악은 Karin과 Olof가 시스템과 구조를 까버리는 행위를 표현하고 있는 음악이다. 사회의 '가르침'에 대항하고자 하는, 새로운 음향적 문법을 찾아다녔던 결과물들. [Shaking The Habitual]는 인간의 권리를 '조각'해낸 정부에서부터 ("A Tooth For An Eye") '자연스러운' 세상의 모습을 만들어낸 거대 기업들까지 ("Fracking Fluid Injection")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다.
Karin> '교차성'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진정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던 때였다. 다양한 시스템들이 어떻게 '억압'을 협동적으로 만들어내는지에 대해 말이다.
“Cherry On Top”는 길게 늘여진 신음과 부서지는 뼈의 소리들을 가지고 스웨덴의 비민주적인 왕정 시스템에 대해 말하는 곡이다. 거대한 빙하로 둘러싸인 듯한 특유의 분위기는 지쳐 쓰러질듯한 한숨을 스웨덴 왕가의 면상에 대고 내쉬는 듯 하다. 반면, “Without You My Life Would Be Boring”은 부당함에 대해 맞서 싸우는 행위를 기리며 손발을 꼬아대는 듯한 곡이다.
Karin> 맞다, 웃긴 가사를 가진 곡이다. "당신이 없었더라면 내 인생은 지루했을 거야"(without you my life would be boring)라는 가사는 '혁명'과 '행동'에 몸을 던졌던 모든 사람들에게 바치는 대목이었다.
Olof> “Without You My Life Would Be Boring”의 플루트 솔로는 우리가 만들어 낸 음계로 이루어진 연주였다. [Shaking The Habitual]에 담긴 많은 멜로디들이 우리가 바닥부터 만들어 본 음계들로 만들어 낸 멜로디였다. 평균율, '피아노 음계'가 아닌 음계들. '변칙 튜닝'은 상당히 흥미로운 세계다, 변칙 튜닝으로 본격적으로 들어가는 순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게 된다. "이전에 배웠던 '평균율'이라는 것이 뭐지? 이 음계가 다른 음계들보다 좀 더 조화로운 화음을 보여주는 이유는 또 뭐고?"
이들의 '의문'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Shaking The Habitual]를 완성하는 데 있어, Karin과 Olof는 '시스템'을 부숴뜨리고자 하는 열망에 공감하는 여러 협력자들과 손을 잡았다. 맥동하는 듯한 "Stay Out Here"에서는 Light Asylum의 Shannon Funchess가 만들어 낸 경계 속에서 Every Ocean Hughes가 직접적인 행동들에 대한 헌정시를 낭송한다. 앨범은 Liv Strömquist의 냉소적인 그림들로 장식되어 있으며 이 그림들은 부의 재분배를 부르짖는다. 작가 Jess Arndt는 Karin과 Olof의 분노를 불평등에 대한 메니페스토로 조각하였으며, The Knife는 이 메니페스토를 언론에 공표하였다.
무대 뒷편에서도 'shaking up'은 계속되었다. The Knife는 음악계에 존재하는 젠더 불평등을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이 불평등을 뒤집으려는 시도를 계획하게 되었다. 앨범의 마스터링 엔지니어에서 투어 크루까지, 작업에 참여하는 멤버 전부를.
Olof> 맞다, 2006년 투어에서는 생각조차 안 해봤던 컨셉이었다. 뭔가를 대변한다는 것에 대한 생각이라도 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내가 책임이라는 것과, 어떤 변화에 대한 충격을 줄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Karin> [Shaking The Habitual] 때에는 "좋아, 공연을 하고, 투어를 돌자고,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면 좋을지에 대해 스스로 직접 결정하자고"같은 생각이었다.
실제 공연 또한, The Knife는 자신들의 가지고 있었던 생각을 완전히 거꾸로 뒤집어버렸다.
Karin> 한 친구였는데, 어느날 우리에게 와서 "둘 다 공연에서 춤을 추면 더 좋겠다고 생각해"라고 말했다. 거기서 시작되었다.
Olof> The Knife의 공연이란 무엇인지, 무대 위에서 전자음악을 공연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공연'이라는 게 뭔지? 악기를 연주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음악과 춤이 결합되어 있는 것인지? 우리는 이러한 질문들을 정말 많이 갖고 있었다.
[Shaking The Habitual]의 막을 수 없는 리듬은 근육 세포 하나하나에 스며들어 청자의 육체를 강제로 움직이는 힘을 갖고 있다. 이렇게 '움직임'을 강조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강력하게 힘을 불어넣는 방향인 것이다. Karin과 Olof는 투어 버전의 곡을 따로 준비하였고, 이 '투어 버전'은 좀 더 빠른 템포를 가지고 공연장을 '댄스 플로어'로 바꾸었다 - 빛나는 육체들의 향연으로.
어떤 측면에서 보자면, The Knife의 공연은 '해방'이었다.
Karin> 음악을 만드는 행위는 상당히 외로운 작업이다. 그러니 공연과 투어를 통해서 사람들과 연결되고 어울릴 수 있는 것이다. 정말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함께 있는 것은 그 자체로도 굉장히 즐거운 일이었다. 리허설을 몇 개월 동안이나 진행한 투어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 공연하고 즐기니, 서로 정말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The Knife의 공연은 이전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수준의 책임감 또한 같이 가져왔었다.
Karin> 우리는 언제나 2명이었는데, 투어에선 갑자기 25명의 집단이 되어버렸다. 무대 위의 11명과 기술자들, 보조들까지.
Olof> 거기에 우리 둘이 '고용주' 역할이 되었다.
Karin> 25명 전부의 업무 환경 및 모든 것들에 대해 우리 2명이 최종 책임자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이전까지 단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완전히 새로운 역할이었다. 모든 사람이 현재 상황에 대해 만족해야 하는 것이었고, 상당한 스트레스였다. 업무에서의 인간관계, 이 새로운 주제를 파악하고 대처하는 것에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Olof> 업무 환경에 신경써야 하는 입장이 되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정말 많은 새로운 것들에 대해 신경써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최선을 다했지만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을 수도 있었을 것들이 정말 많이 있었다. 만약 이런 위치에 다시 오르게 된다면, 그 때에는 인간관계를 다루는 것에 대한 전문가 한 명을 따로 고용할 것이다.
Karin> 맞다, 인간관계를 이해하고 어떻게 해야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지 말아야하는지를 아는 것은 정말로 중요하다. 다음번에는 어떻게 하면 더 잘 할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도.
이러한 자기반성 및 통찰은 투어에서 두 개의 다른 버전의 공연 방식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첫 번째 버전에서는 몇몇 팬들이 다소 혼란스러워했고, 무대 위에 너무 많은 반짝이는 사람들이 있는 바람에 거기에 Karin이나 Olof는 사실 없는 거 아닌가 하는 의혹도 제기되곤 했었다.
Olof> 우리는 우리의 공연 방식이 누군가에게는 가면을 쓰고 다니던 것 보다 훨씬 더 극단적인 것으로 다가갈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웠다.
두 번째 버전의 공연 방식은 The Knife가 처음에 기획했던 것에 더 가까운 방식이었다. 좀 더 다양한 색채를 가진, 좀 더 충동적인 공연. Bella Rune이 디자인한 "앨범의 음악을 시각화할 수 있는" 특수한 악기도 사용되었다.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The Knife는 여러 협업자들과 함께 무대 위에 올랐다. 함께 춤을 추었고, 함께 땀에 젖었으며, 피곤한 팔다리를 잠시 쉬게 두었다가 다시 또 춤을 추곤 했다.
투어 도중 짬을 내어 반국수주의 캬바레 [Europa Europa]를 위한 음악을 만들기도 하였다. 이 캬바레는 Nasim Aghili가 제작하였고 예술가 집단 FUL이 공연하게 된 작품이었다. 스웨덴의 2014년 선거가 가까워지며, The Knife는 캬바레와 함께 스웨덴을 돌아다니면서 공연을 하였다.
Karin> [Europa Europa] 공연은 정말 재미있는 시간들이었고 멋진 사람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기도 했다. 미래에 이런 방식의 협업을 좀 더 많이 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로부터 여러가지를 배우고 함께 작업을 해 보는 것.
The Knife가 팝 음악의 영역을 칼로 베어내며 길을 걸어온 지도 벌써 20년이 되었다. 그 20년의 시간동안 The Knife는 5개의 스튜디오 앨범을 통해 자신들의 내장을 샅샅히 파헤쳐 공개하였고, 앨범들 사이사이에 그 내장 조각들을 다시 기워내서 하나로 합치곤 했다. 그 와중 어느 순간 이들은 스웨덴 서해안가의 빨간색 창고에서 동해안가의 스튜디오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 무엇이 자라날 수 있을지, 한번 지켜보기 위해 충분한 공간을 가진 곳으로.
https://youtu.be/gKhjaGRhIYU
"Pass This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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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of Dreijer / Karin Dreijer2021/12/06 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