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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his kind of punishment
    [...]/[This Kind of Punishment] 2023. 3. 24. 04:41


    https://youtu.be/xXu-1cPlB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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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hamiltonundergroundpress.com/features/a-qa-with-graeme-jefferies

    Q&A with Graeme Jefferies
    2018. 4. 17.
    By Phil Grey

    오는 4월 26일 저녁, Graeme Jefferies가 지난 곡들을 - 자신의 밴드였던 The Cakekitchen, This Kind of Punishment, Nocturnal Projections의 곡들을 연주할 예정이다. [The Hum 106.7]의 Phil Grey가 Graeme을 만나 지난 밴드들의 이야기, 'Hamilton'에서의 지난 공연들, 이번 투어에서 뭘 기대할 수 있을지 등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Phil Grey> Graeme - Stratford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알고 있는데, 어린 시절 처음으로 인생에 큰 영향을 끼쳤던 음악으로는 무엇이 있는지, 그리고 무슨 영향을 받았는지 말해줄 수 있겠는가?

    Graeme Jefferies> 당시에는 뉴질랜드 밴드, 뉴질랜드 음반들의 영향이 대부분이었다. 수입 음반이 거의 없었으니까. Peter Jefferies와 나는 음반을 듣고 사는 것에 집착하고 있었고,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엄마를 졸라대서 용돈을 타 음반을 사 모으고 있었다. David Bowie, Badfinger, Mott the Hoople, Cockney Rebel, The Velvet Underground같은 밴드들을 중점적으로 들었던 것 같다. 물론 여러 싱글들도 많이 사서 들었다. 싱글반이 더 저렴했고 해서 하나만 사게 용돈을 달라고 하기도 쉬웠으니 싱글반을 사는 것을 좋아했었다.

    Phil Grey> 형인 Peter Jefferies와 함께 1981년 Nocturnal Projections을 결성해 처음에는 카세트 테이프를, 나중에는 바이닐 앨범을 발매했었는데, 사람들은 Nocturnal Projections '지구 반대편의 Joy Division'이라고들 표현하고는 한다.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하는지?

    Graeme Jefferies> 개인적으로는 Joy Division은 이해할 수 있는 비유라고 본다. 실제로 비슷한 요소들이 있고, 당시의 우리는 Joy Division을 정말로 좋아하기도 했었고. 하지만 우리는 Joy Division을 처음으로 들어보기 전에 이미 Nocturnal Projections을 위한 곡을 한 50개는 써 둔 상태였었다. 몇몇 곡들에서 들리는 Peter의 보컬 스타일이 Joy Division스럽기는 하지만, 다른 몇몇 곡들은 전혀 Joy Division스럽지 않기도 하다. 음악적으로도 우리는 Bernard Sumner와는 많이 다른 코드 진행을 사용했었다. Bernard Sumner가 Joy Division에서 어떤 식으로 기타를 연주하는지를 들어보면 알 수 있는데, 그는 E-bar 코드를 잡고 프렛의 위 아래로 자유자재로 옮겨가며 쓰는 편이다. Nocturnal Projections는 훨씬 더 다양한 코드를 사용했고 Joy Division보다 더 빠르게 연주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몇몇 곡들은 비유가 타당하다고 본다. [Another Year]의 몇몇 곡들은 Joy Division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Phil Grey> Nocturnal Projections 해체 후, Peter Jefferies와 같이 This Kind of Punishment를 결성했는데, 이번에는 Xpressway나 Flying Nun 레이블을 통해 좀 더 많은 청자들에게 노출될 수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두 번째 앨범 [A Beard of Bees]는 오늘날 뉴질랜드 언더그라운드 클래식 중 하나로 여겨지기도 한다. [A Beard of Bees]는 여백으로 가득한 연주, 실험적인 음향, The Velvet Underground 느낌이 묻어나오는 앨범이다. 밴드 멤버들 중 누가 가장 큰 영향력을 가졌었는가?

    Graeme Jefferies> 단순하게 답을 내리기 어려운 질문이다. 개별 곡들마다 세부사항이 정말 많이 달랐던 밴드였다. This Kind of Punishment활동을 시작할 무렵 우리는 이미 100곡 정도 되는 라이브러리를, 나는 음악적인 뼈대를, Peter는 가사를 만들어 둔 상황이었다. 거기에 더해 나는 다른 사람들이 만든 수백 개의 곡들을, 어린 시절 Peter는 드럼, 나는 기타를 맡아 함께 연주하며 놀았던 곡들을 분석하고 있었다.
     Peter와 나는 각자 맡은 분야가 있었다. 나는 곡의 뼈대를 만들고 또 곡들을 배치하는 것을 잘 했고, Peter는 가사를 쓰거나 음악의 세세한 부분을 완성하는 것을 잘 했다. This Kind of Punishment는 우리는 서로가 잘 하는 것을 한데 모아서 합쳐 본 밴드였다. Peter는 곡을 처음부터 쓰는 것을 못했지만 이미 만들어진 뼈대에 공간감을 부여하는 좋은 방법들을 여러가지 생각하고 있었다. (당신이 바라고 있을지도 모르겠는 '딱 떨어지는 구분'이 언제나 맞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체로 편곡이라던가 특정 아이디어를 구체적인 음악으로 구현해 가사를 더할 수 있게 만드는 작업 등은 주로 내가 했다고 할 수 있겠다. 가사는 항상 음악이 완성된 이후에 더해졌다. 그러니 가사를 더할 수 있게 될 형태로 음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는 내가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Peter는 가사에 관련된 영역을 전적으로 담당했다. 하지만 우리는 자주 서로 여러가지를 바꾸어 다양한 시도를 했고 여러 종류의 곡들을 써 보려고 했다. This Kind of Punishment는 전형적인 팀 작업 방식을 의도적으로 사용하지 않았고,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숙고 없이 손이 가는대로 곡을 만들기보다는 우리가 그 동안 하지 않았던 것이 무엇인지를 분석하여 바로 그 것을 해 보려고 하는 밴드였다. 다양한 종류의 케이크를 만들어보려 신경을 많이 썼던 것이다.

    Phil Grey> '버려진' 아이디어들이나 곡들이 있었는지, 있었다면 좀 더 활용하기를 바랬던 것들도 있었는지?

    Graeme Jefferies> 같이 작업한 아이디어들 대부분은 어떻게든 사용했었다. 최소한 첫 번째 앨범부터 [A Beard of Bees] 까지는 그랬다. 첫 두 앨범은 사실상 중간 휴식기 없이 계속해서 작업을 해 나갔던 것들이었고, 대다수의 아이디어들을 버리지 않고 활용했었던 앨범들이었다. 대부분의 곡은 우리 스스로 만족할 정도로 만들고 끝낸 것들이었다. 하지만 Chris Matthews와 함께 실제 공연에서 연주를 하려 했을 때는 많은 곡들을 버릴 수 밖에 없었는데, 어째서인지 실제 연주는 잘 안 된다거나 노력을 해 보다가 질려버리곤 했었다. Chris Matthews / Michael Harrison과 함께 '밴드'로써 곡을 만든다거나 하는 방식은 잘 되지는 않았었다.
     This Kind of Punishment는 공연을 위한 밴드라기보다는 작곡 및 녹음을 위한 프로젝트에 가까웠었다. 짧은 기간동안 10번 내외의 공연만을 진행했지만, 작곡과 녹음은 1년 반 정도의 기간을 쉼 없이 달리곤 했다. 그리고 작곡이 대충 마무리되면 공연에서 실제로 연주를 해 본다거나 하는 것은 생각조차도 안 하고 곧바로 녹음 작업에 들어갔었다.

    Phil Grey> 밴드 멤버들간의 관계는 어떠했는지?

    Graeme Jefferies> 흠, 대체로 다들 잘 지냈다. 멤버들 모두 비슷한 취향을 갖고 있었고 또 모두 내성적이면서 사회성이 좋지도 않은 편이었다. This Kind of Punishment에는 3가지 버전이 있었다. 첫 번째는 녹음 작업용 버전,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짧은 시간동안 존재했었던 공연용 버전인데, 대체로 동네 술집 같은 곳에서 연주했었다. 술집에 앉아있는 사람들 사이로...
     Johnny Pierce는 Nocturnal Projections의 매니저였고 좋은 사람이었다. 우리들 중 가장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타입이었다. 모두가 그를 좋아했다. Gordon Rutherford는 Nocturnal Projections의 드러머였고 This Kind of Punishment의 첫 번째 버전에서, 첫 두 앨범들의 녹음 엔지니어 역할을 했다.
     Peter와 나는 함께 자랐고 고등학교 시절부터 여러 밴드에서 같이 활동했었다. Michael Harrison은 화가였지만 부업으로 음악 관련 일들도 하고 있었다. 그는 좋은 사람이었다. 공연용으로 구성한 첫 라인업은 Peter, 나, Michael, 그리고 Chris였다. Michael이 떠난 후 Johnny가 그 자리를 메꿨다.
     Peter는 Chris Matthews를 여러 번 도와주곤 했었다. Chris는 The Prime Movers라는 웃긴 팝 밴드의 멤버였는데, 1982년 초반 'Rumba Bar'에서 Nocturnal Projections과 같이 공연을 했었다. 함께 공연을 한 후, Chris가 Peter에게 와서 자기는 지금 밴드를 싫어하고 있으며 Nocturnal Projections의 음악은 환상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다가 결국 Peter를 설득하여 Nocturnal Projections의 작업실에 공짜로 머무를 수 있게 해 달라는 부탁을 해 왔는데, 당시 Chris는 정말로 갈 곳이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Chris가 머무를 수 있게 해 주었고, 당시의 그는 정말로 수중에 돈이 한 푼도 없었다. 거기에 아무데도 갈 곳이 없는 상황이었으니, 안타까웠다. 그렇게 Peter와 Chris는 친해졌고 몇 시간이고 앉아서 서로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이렇게 Peter와 Chris의 관계가 This Kind of Punishment에 섞여들게 되었다. 나는 Chris를 단 한 번도 완전히 잘 알고 지내지는 못했고, 아직까지도 그렇다. Chris는 This Kind of Punishment의 곡에는 거의 기여를 안 했고, 그의 곡들, 예를 들어 "The Sleepwalker"같은 곡은 Chris가 Children's Hour라는 밴드에 속해있었을 때 만들었었던 곡이었다. 어째서인지 Children's Hour는 그 곡이 너무 나약하다고 생각했고 곡을 버렸지만, Peter와 나는 "The Sleepwalker"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고 Chris를 도와서 Gordon Rutherford와 함께 스튜디오에서 제대로 녹음해 앨범에 수록했다.
     Gordon Rutherford는 단 한 번도 This Kind of Punishment의 '멤버'라고 알려 진 적이 없었지만, 첫 두 앨범의 모든 곡의 작업에 관여했었고 모든 엔지니어링을 담당했었다. 사람들이 '밴드'라는 것에 대해 흔히 생각하는 방식이 좀 우스꽝스럽다고 할 수 있겠다. This Kind of Punishment는 '밴드'라기보다는 녹음 프로젝트에 가까웠고, Gordon Rutherford는 단연코 이 프로젝트의 '멤버'였었다.

    Phil Grey> This Kind of Punishment Nocturnal Projections처럼 (또 The Cakekitchen도?) '음울한' 음악이라고들 말한다. 밴드 맴버들이 의도적으로 음울한 분위기를 만든 것인가, 아니면 정말로 음울한 상황이었고 이 상황이 음악에 반영된 것인가? [예전에 당신이 "1985년과 1986년은 (나에게) 상당히 안 좋은 해였고 그 상황이 앨범에 반영되었지 않나 싶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Audioculture.co.nz)].

    Graeme Jefferies> 나는 This Kind of Punishment의 음악을 설명하려는 사람들을 싫어한다, 나에게 This Kind of Punishment의 곡들은 하나하나가 전부 다르며, 각각이 전혀 다른 감정과 느낌을 담기 위해 만들어진 곡들이기 때문이다. 몇몇 곡들은 음울하긴 하지만, 당시에는 모두가 아주 어렸고, 강렬했었다. 나는 이런 측면들이 음악에도 바로 반영되었었다고 본다. 특히 가사를 해석하고 가사의 내용이 이 음악의 의도의 전부라고 말할 때라면. 하지만 우리의 음악은 언제나 가사가 붙기 전에 이미 일종의 '캔버스'처럼 완성을 마친 상태였고, 가사를 제외한 이 부분도 자신만의 감정, 보통은 음울함보다는 즐거움, 세상의 아름다움, 공기를 통해 전달되는 음향의 기쁨 같은 감정들을 담은 '캔버스'였다.
     가사가 들어가고 나면 사람들은 보통 가사 이전의 음악 자체에 의도적인 느낌, 의미, 감정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나는 This Kind of Punishment의 음악에 숨겨진 의미는 보통 긍정적인, 삶의 활력, 신비로움과 아름다움 쪽에 가까웠다고 보았다. 부정적이고 슬픈, 음울한 쪽 보다는.
     방금 말했던 [Audioculture] 기사는 The Cakekitchen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또는 The Cakekitchen이 무엇을 했고 왜 했는지를 수박 겉핥기식으로만 알아본 사람이 쓴 기사이다. 작성자는 우리를 다룬 웹페이지에서 이런저런 조각들을 주워다가 누더기같은 기사를 만들어 낸 것이고, 우리와 직접적인 인터뷰를 한다거나 우리에게 사실 여부를 물어본다던가 하는 것이 전혀 없었다.
     [Audioculture] 기사는 우리의 마지막 두 앨범을 포함하지 않았고 여러가지 측면을 무시하고 있다. 나는 그 기사가 신빙성이 상당히 낮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웃긴 점은 그 기사에서 나름대로 '칭찬'이랍시고 하는 표현도 반쯤은 배배 꼬여있다는 것이다. 작성자는 우리가 1991년에 멋진 앨범(역주: [World of Sand])을 만들어냈다고 하는데, 다시 말해서 1991년의 앨범 이후의 앨범들은 전부 실패한 앨범들이라고 본다는 것이다, 다른 앨범들은 그가 생각하기에는 '멋진' 앨범이 아니니까. 하지만 그는 기사에서 1991년 앨범이 왜 멋지다고 생각하는지, 나머지는 왜 아니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하나도 말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서 [Audioculture]는 우리가 지난 25년간 괜찮은 앨범을 하나도 못 만들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내가 비슷한 기사를 만들어서 작성자가 지난 25년간 쓴 기사들을 예로 들며 그 중 단 하나만 멋진 기사였고 나머지는 그냥 '휴식 기간' 정도에 해당하는 글들이었다고 말한다면, 그 작성자가 과연 기쁘게 생각할 지는 모르겠다. 물론 [Audioculture] 기사의 레이아웃과 비디오들은 괜찮기는 했다. 말하자면,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 [Audioculture]는 우리의 음악 활동 중 일부를 심도 있게 다룰 수 있을 만한 충분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The Cakekitchen 파트는 전혀 참고할 만하지 못하다고 본다. The Cakekitchen을 안 좋아하거나 The Cakekitchen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작성한 기사인 것이 명백하니까.
     언론과 대중에게 선보인다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짐승 같은 것이고, 나는 그냥 모든 사람들이 견뎌내야만 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 기사의 작성자는 분명히 몇몇 것들을 좋아하고 있었고 그 좋아하는 것들 중 The Cakekitchen은 없었다. 신경 쓸 필요 없다. 다른 기사들에 The Cakekitchen에 대한 괜찮은 글들이 여럿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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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4/04 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