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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peche Mode] 2023. 3. 26. 00:53


    https://youtu.be/aGSKrC7dGcY
    "Enjoy The Sil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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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ollingstone.com/music/music-news/depeche-mode-want-your-respect-233038/


    Depeche Mode 인터뷰
    [Rolling Stone]
    Jeff Giles
    1990년 7월 12일


    "오늘만 해도 '게이 새끼'라고 한 20번인가 들었어." Depeche Mode의 키보디스트 Alan Wilder의 말이었다. 그는 플로리다 펜사콜라 Civic Center 에서 의자에 푹 파묻혀 앉아 있었다. 영국에서 온 이 신스팝 밴드는 곧 리허설을 할 예정이었다. "대체로 트럭에 기대서 서 있는 녀석들이었지. 이 동네 뭐랄까, 좀 낡고 후진 촌동네인 거 아냐?"

    "머리 스타일 때문이라구," 보컬 Dave Gahan의 말이었다. 그는 청바지에 소매가 없는 티셔츠 차림이었는데, 티셔츠에는 여자의 유방이 그려져 있었다. "미국에서는 짧은 머리를 한 남자는 전부 게이라고 생각하니까." Gahan은 잠깐 멈추었다. "해병들 빼고." 아마 펜사콜라 해군기지에 서 있는 남자들을 보고 말하는 것이리라. "해병들이라면 '짧은 머리. 바로 그거야'라고 말하는 것 처럼 윙크를 해 줄 거야." Gahan은 Wilder 옆에 앉아 있었다. "어쩌면 해병들하고 노는게 더 맞는 걸 지도 모르지." Gahan은 말했다.

    이 날은 메모리얼 데이 주말이었다. Depeche Mode는 [Violator] 발매에 맞춘 'World Violation' 투어 일정으로 펜사콜라에 온 것이었다. 그간의 성과로 보자면 Depeche Mode 팬이 가장 많은 지역은 캘리포니아 남부겠지만 - 1988년 Rose Bowl 콘서트에 7만 5천명의 팬이 모였었다 - 다른 지역에서도 공연 티켓들은 불티나게 팔리고 있었다. 이번 투어 중 달라스와 시카고에서의 1만 8천명짜리 공연들은 1주일만에 전석이 매진되었다. 플로리다에서는 첫 공연이었지만, 거기다 플로리다 주 라디오에서 Depeche Mode의 곡이 재생된 적도 없었지만, 올랜도/탐파/마이애미 공연들도 전석 매진이었다. 뉴욕 시에서의 4만 2천명 공연은 하루만에 완판되었다.

    이번 미국 투어의 또 다른 특별한 점은 밴드의 앨범 판매량 또한 실제로 증가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Violator]는 처음으로 미국 내 100만장 판매를 달성한 앨범이 되었으며, 1985년 [People Are People] 이후 첫 히트 싱글인 [Personal Jesus] 또한 처음으로 골드를 달성하였다. 두 번째 싱글 [Enjoy The Silence]도 곧 골드를 달성할 모양새였다.

    펜사콜라 Civic Center를 공연장으로 선정한 이유는 Janet Jackson 및 여타 밴드들과 똑같은 이유에서였다: 저렴한 대관료. 안타까운 부분은, 펜사콜라의 유일한 '클럽'은 미러볼 장식에 턱시도 차림의 DJ가 주접을 떨어대는 곳이었고, 펜사콜라 힐튼 호텔의 '보안 요원'이라는 작자는 Depeche Mode의 팬이라고 자처하며 계속해서 공짜 공연 티켓과 8×10인치 밴드 사진을 줄 수 없겠냐며 귀찮게 굴어대는 사람이었고, 펜사콜라 지역은 흔히들 '레드넥 리비에라'(Redneck Riviera) 라고 불리는, 트럭을 타고 다니며 Depeche Mode 멤버 같은 사람은 무조건 '게이 새끼'라고 단정짓는 사람들이 널린 그런 지역이라는 것이었다.

    리허설이 끝난 후, Dave Gahan은 힐튼 호텔의 로비로 내려와 이야기를 해 주었다. 결혼도 하고 2살 아들도 있는 Gahan은 Depeche Mode가 언제나 '이미지'의 문제를 가진 밴드였다고 말했다. 그는 'Ingo'라는 이름의 보디가드와 함께 왔는데, 어떻게 보자면 보디가드가 꼭 필요한가 싶기도 했다. Depeche Mode의 열성적인 추종자들 - 이 중 15,000명은 몇 개월 전 L.A.의 Wherehouse 음반점을 거의 부숴버릴 뻔 했었다 - 을 제외하면 밴드 멤버를 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알아보더라도 이름을 틀리곤 했었고.

    최근 Depeche Mode는 인터뷰를 거의 안 하고 있었다. 밴드는 신의를 지키지 않는 기자들을 전부 돌려보내고 있었으며, 신디사이저로만 음악을 한다고 비난하거나 이들의 음악을 전혀 틀어주지 않는 라디오 채널들과는 그 어떤 대화도 거절하고 있었다.

    Gahan은 Depeche Mode에 대해서 이런 말들이 나왔다며 말을 꺼냈다: "자 여기, 모두가 좋아하는 밴드가 있습니다. 실제로 엄청난, 믿을 수 없는 성공을 거두기도 했지요? 어째서일까요? 당신은 스스로가 어째서 이렇게까지 성공적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까? 당신들같은 밴드가 이 지구상에 있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지요? 인터뷰가 이딴 지경까지 다다르곤 했고 우리는 '씨발 좆까' 라고 말하고 그냥 자리를 떴다."

    이와 같은, 어쩌면 경고일지도 모르는 짧은 발언이 끝난 후, Gahan은 밴드의 역사에 대해 자유롭게 말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Martin Gore였다면 가장 지치는, 질리는 질문이라고 말 할 법한 질문마저도 스스로 말하고, 대답했다: "Depeche Mode에 드러머는 있는지? 기타리스트는? 당신들은 Depeche Mode 음악이 '진짜 음악'이라고 생각하는지?"

    Gahan은 극초창기의 Depeche Mode, 런던 근교의 노동자 계층 도시 Basildon에서 1980년에 결성되었던, 그리고 Erasure의 Vince Clarke도 멤버로 있었던 극초반의 시기에 대해 말했다. "우리는 동네 교회에서 연습을 하곤 했었다. 그냥 착하고 예의바르게 행동하고 너무 시끄럽게만 안 하면 되었다. 목사님이 자유롭게 쓰라고 허락해주셨던 것이다."

    "당시의 우리는 잘 모르고 있었지만, 지금 돌이켜보자면 뭔가 완전히 다른 음악을 시작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때 우리가 신디사이저를 썼던 것은 단순히 편해서였다. 신디사이저는 작고 가벼운 편이라 그냥 들고 다니기 좋았고, 공연장에 가져가 앰프에 꽂기만 하면 모든 준비가 끝났었다. 악기와 장비들을 옮기느라 차량을 빌릴 필요가 없었다. 실제로 이 무렵 공연을 다닐 때 기차로 이동하곤 했었다."

    Depeche Mode는 곧 동네 술집들에서 정기적인 공연을 하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첫 데모 테잎을 완성하게 되었다. Clarke와 Gahan은 남들이 다들 그러듯 데모 복사본을 온갖 레이블에 뿌려대는 대신, 원본 테잎을 직접 가지고 다녔다. "Vince와 나는 음반 회사를 찾아가서 당장 데모 테잎을 들어보라고 요구하곤 했었다." Gahan은 웃었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는 그냥 꺼지라는 반응이었다. '거기 테잎 놓고 가'라고 말하는 게 태반이었고, 우리 대답은 '안 되는데, 이게 원본이고 이것밖에 없어'였다. 그렇게 잘 있으라고 하고 나와서 다른 회사로 찾아가고 그랬었다."

    Gahan은 잠시 멈추고 Ingo에게 오렌지 주스 한 잔만 가져다 줄 수 있겠냐고 부탁했다. 보디가드가 사라지자, 로비를 불안하게 서성거리던 한 팬이 다가와 Gahan에게 말을 걸었다. "Martin, 사인 한 번만 해 주면 안될까요? 펜 있으세요?"

    "물론이죠," Gahan은 미소를 띄며 말했다. "그런데 제 이름은 Dave에요."

    조금 후, Gahan은 오렌지 주스 한 컵을 손에 들고 사람들이 Depeche Mode에 처음으로 관심을 보이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그 때만 해도 전자 장비를 활용하던 밴드들은 전부 굉장히 병적인, 우울한 분위기를 뿜는 밴드들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 팝 밴드가 똑같은 전자 장비를 전혀 다른 분위기로 쓰는 것이었다 - 이 어린 녀석들이, 회색 레인코트 차림에 금방이라도 자살할 것 같은 이미지 말고, 사람들을 춤추게 하는 이미지로 음악을 하고 있다는, 그런 느낌."

    Phonogram 같은 메이저 레이블들의 제안 - "상상도 못했던 금액에 '의상 구입 수당'같은 온갖 정신나간 혜택들" - 에 심사숙고한 후, Depeche Mode는 결국 Daniel Miller의 인디 레이블 Mute를 선택한다 (밴드는 미국 활동용으로는 Sire 레이블과 계약했으며, 지금까지 계속 매니저 없이 활동 해 왔다). 1981년, 밴드는 데뷔 앨범 [Speak And Spell]을 발매하고, 댄스플로어 히트 싱글 [Just Can't Get Enough]의 도움으로 잉글랜드 탑 10에 입성하게 된다. 하지만, 곧, 밴드의 핵심이자 작곡가였던 Vince Clarke가 탈퇴하고는 Yazoo, 나중에는 Erasure를 결성해 따로 활동하게 된다. Clarke에 따르면 탈퇴의 이유는 '투어를 돌기 싫어져서'였었다.

    Gahan은 이에 대해서도 말했다. "Vince가 그렇게 말한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솔직히 그게 완전 헛소리라고 생각한다. 내가 보기에 Vince는 그냥 Depeche Mode로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첫 앨범은 굉장히 성공적이었고 모든 팝 음악 잡지가 우리에 대해 기사를 쓰고 있었다. TV에도 자주 나왔다. 모든 것이 잘 돌아가고 있었고, 모두가 Depeche Mode에 대해 알고 싶어했다. 바로 이 때 Vince가 흥미를 잃어버렸던 것 같다 - 웬 팬들이 무슨 양말을 신냐는 질문 따위를 적은 팬레터를 보내는 지경이 되면서 말이다. Martin이 그동안 몇 개의 곡을 직접 써 봤었다. 그래서 스튜디오로 가 Martin이 만든 "See You"를 녹음했고, 대히트를 치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Vince를 보내고 새로 시작하게 되었다."

    Martin Gore는 호텔 수영장 의자에 앉아 헤르만 헤세의 전기를 읽고 있었다. 그는 윗옷은 입지 않았고, 다소 긴 검은 반바지와 하얀 니삭스 차림이었다. 그는 무대 위에서의 모습과 거의 같은 느낌이었다: 금발에 곱슬머리인, 학생 같은 느낌의 모습은 AC/DC의 Angus Young을 팝 버전으로 만든 것만 같았다. Gore는 말했다. "돌이켜보면 사실 Vince가 탈퇴했을 때 좀 더 진지하게 걱정했어야 했던 것 같다. 밴드의 핵심 작곡가가 나간다는 것은 사실 정말로 중대한 문제가 맞으니까. 그 때의 우린 젊었고 그래서 오히려 다행이었다.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혼란에 빠졌더라면 지금까지 Depeche Mode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제 20대 후반에 접어든 Depeche Mode 멤버들은 다들 상당히 좋은 사람들이었다 - Gore는 유머 감각도 있고, 말도 부드럽게 하는 편이었으며, 실제 모습에서는 그 어떤 허세도 없었다. 다른 멤버들과는 다르게 Gore는 공연 시에 기타를 연주하곤 했으며 커버곡들로 채워진 솔로 앨범도 발매했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무대에 치마를 입고 올라가기도 했었고. Gahan은 이에 대해 말했다. "언젠가 Martin이 말하길 '무대에 오르기 전 거울을 보고 한번 웃고는 생각하지, 이것 좀 봐, 오늘밤 어떤 꼴로 나가는지 참 대단하구만.' 라더군. 그 시절 Martin은 가죽바지를 입고 그 위에 치마를 덧입는 것을 즐겨 했었다. 그러다가 더 나가서 그냥 치마만 입기도 하기 시작했었고. 나머지 멤버들은 무대 뒷편에서 앉아서 '야 Martin, 제발 그렇게 입지 말라고! 치마좀 벗어!'라고 말했고."

    이에 관해 Gore는 다소 냉담하게, 짤막하게 말했다. "그냥 웃긴 차림이라고 생각한게 다였다. 그렇게까지 난리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고."

    Gore의 지휘 아래, Depeche Mode의 음악은 점점 더 (많은 팬들이 사랑하는 앨범의 이름과도 같은) "Black Celebration" 같은 느낌으로 변해갔다. Gore의 곡들은 신성모독 ("Blasphemous Rumors") 에서부터 변태성욕 ("Strangelove", "Master & Servant") 까지 여러 주제를 다루었으며 몇몇 라디오 DJ는 이들의 곡에 얼굴을 붉히기도 했었다. 이상하다고 본다면 이상하겠지만, 밴드의 첫 미국 탑 10 싱글은 [Some Great Reward]의 '친절한' 곡, "People Are People" 이었다.

    Gore는 수영장 의자에 앉아 말을 이어나갔다. "[Some Great Reward] 시기부터 미국에서의 인기가 많이 늘기 시작했었다. [Some Great Reward] 투어를 돌 때 얼마나 많은 팬들이 공연을 보러 찾아왔던지, 멤버 모두가 시작부터 정말 큰 충격을 받았었다. 갑작스럽게 1만 명이라는 관중 앞에서 공연을 하게 되어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정말 잘 풀리던 공연 실적과는 다르게 실제 음반 판매량이 증가하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렸었다."

    Depeche Mode의 미국 대변인 Bruce Kirkland는 이렇게 표현했다. "New Order, The Cure, Depeche Mode. 나는 이 밴드들이 70년대 메탈 밴드들과 비슷하다고 본다. 70년대 메탈 밴드들은 히트 싱글이라고는 거의 하나도 없었지만 언제나 스타디움 수준의 공연장을 전석 매진시키곤 했었다. Iron Maiden이 앨범보다 티셔츠를 더 많이 팔았을거라는 농담도 흔하게 돌아다닐 정도였으니까."

    ***

    메모리얼 데이가 되었다. Depeche Mode의 공연날이었고, 펜사콜라 Civic Center의 머천다이즈 판매대에서는 어떤 팬이 자그마치 $686을 머천다이즈 구입에만 쓰고 있었다. 길 건너 힐튼 호텔에는 Dave Gahan이 밴드의 팬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의 집 주소가 공공재인 것 마냥 널리 알려져 있던 시기의 이야기였다. "전 세계 곳곳에서 꼬맹이 팬들이 모여들었었다. 독일, 프랑스, 미국 - 집앞 도로에 멀뚱히 서 있곤 했었다.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심해져 결국에는 우리집 개와 함께 나가 애들을 멀리 쫓아내는 지경에까지 다달랐었다. 새벽 2시에 창문에 대고 Depeche Mode 곡들을 불러대는 수준이었으니까."

    "그 중 한명, Sean이라는 녀석이었는데, 실제로 웬 사립탐정을 고용해서 스튜디오에서부터 나를 미행해 내 집 주소를 알아낸 광팬이었다. 나는 결국 자제심을 잃고 진심으로 소리를 질러댔었다, 꺼지라고. 나중에 편지를 따로 보내 '소리지른건 미안하다, 하지만 내 사생활을 존중해주었으면 좋겠다. 아내와 아들과 셋이서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라고 말했었다. 그는 답장을 보내왔는데, '불편하게 해서 미안하다, 다시는 안 그러겠다'라고 사과하더라. 그런데 바로 직후에 '그런데, 다음주 주말쯤에 집 근처로 가도 괜찮을까?'라고 덧붙이더군. 그걸 보니 이젠 충분하다는, 당장 이사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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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 시작 직전, 호텔 로비에서 하루 종일 서성거리던 몇몇 팬들이 다가와 이 기사에 한줄이라도 기여할 수 있을지에 대해 물어 왔다. 전하고 싶은 말을 일단은 종이에 써 보는 것 까지는 동의하자, 다들 종이를 가져가 30분동안 쉬지 않고 무언가를 계속해서 써 내려갔다. 이들은 Dave Gahan의 구레나룻, Dave Gahan의 엉덩이, "Depeche"의 공연은 "환상적"이라는 '사실', Depeche Mode 멤버들은 거만한 록 스타가 아닌 "진실한" 사람들이라는 '사실' 등등에 대해 쓰고 있었다.

    한 10대 소년은 자기가 "Depeche Mode의 모든 B-side, 모든 이상한 수입반들, 말 그대로 모든 것들"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 소녀는 "Depeche Mode를 데뷔 시절부터 좋아했다"라고도 말했다 - 아마도 거짓말일 것이 만약 사실이라면 [Speak & Spell]을 7살에 좋아했어야 했을 나이였다 - 그리고는 전형적인 팬 에세이를 나에게 주었다. "오늘 밤 나는 Martin Gore 앞으로 뛰어나가 그와 사진을 찍었다. 거의 기절할 뻔 했다. Martin은 너무나도 복잡해 보였다. Martin Gore 옆에 앉아 그의 음악에 대해 내가 혜석(역주: 이 소녀 팬이 interpret을 interpit라고 잘못 썼는데 이 오타를 그대로 실었더군요)한 것들을 함께 이야기하면 얼마나 좋을까... Martin Gore를 실제로 만나게 된 후, 세상에 그 어떤 것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만 같은 기분이다. 그와 닿았던 곳이 타오르는 것만 같다. 나를 저 멀리 던져버리고 에너지로 충만하게 만드는 그 느낌. (Razal, 16세, Fort Walton Beach, 플로리다)"

    ***

    Andy Fletcher의 표현에 따르자면 이들은 "차갑고 로봇 같으며 스튜디오를 사랑해야만 할 것 같은" 밴드였지만, 실제의 Depeche Mode는 대규모 공연을 일반적인 방식으로도 아주 훌륭하게 진행하고 있었다. Gahan은 검은, 금속 징이 박힌 가죽 자켓과 거기에 어울리는 바지를 입고 있었고, 무대 위에서 완벽한 몸 동작을 선보이고 있었다: 팔을 벌려 높이 뛰기도 하고, 제자리에서 회전하기도 하고, 허리춤을 돌리기도 하다가도 오리걸음 같은 동작을 하기도 했다. 몇몇 곡들은 사진사 Anton Corbijn의 뮤직비디오와 함께 연주되었으며, 이 중에는 Martin Gore가 (Corbijn의 표현에 따르면) "본디지 엔젤" 차림을 하고 나오는 우스운 장면도 있었다. 모든 곡들이 무대 윗편의 조명을 받아 [미지와의 조우]의 마지막 장면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World Violation' 투어에서는 Depeche Mode의 유명한 히트곡들이 연주되었다 - "Shake the Disease", "Never Let Me Down Again", "Stripped", "Everything Counts". "Everything Counts"는 1983년 영국에서 상당한 히트를 쳤었으며 작년 D. A. Pennebaker Depeche Mode 다큐멘터리 [101]의 발매에 맞추어 재발매되었던 싱글이었다. 작은 키에 보통은 키보드 무더기 뒤에 감춰져 금발 머리만 보이던 Martin Gore는 "I Want You Now"와 "World Full of Nothing" 차례에는 앞으로 나와 어쿠스틱 기타와 함께 솔로 연주를 선보이기도 했다. 밴드의 마지막 앵콜 곡은 "Route 66"의 기타 버전이었다.

    굳이 말로 표현할 필요도 없겠지만, 이날 펜사콜라 Civic Center에 모인 사람들은 2시간의 "Depeche" 무대 앞에서 그야말로 대혼돈 그 자체였었다. 공연 최고의 순간들은 [Violator] 수록곡들이 연주될 때였다: "Clean", "Personal Jesus", "Policy of Truth" - [Violator]의 3번째 싱글이자 "Heard It Through the Grapevine"를 연상시키는 훵키한 연주로 시작하는 곡.

    [Violator]는 사실상 Depeche Mode에게 미국으로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 앨범이었다. 공연이 끝난 후 Gahan은 말했다: "Martin이 언제 한 번 '어쩌면 시작부터 '우리는 록 밴드다'라고 스스로 공표하고 시작했어야 했던 것이었을지도 모르겠어. 그랬더라면 처음부터 훨씬 쉬웠을 것 같은데.' 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스스로를 '팝 밴드'라고 불러 왔다. 그리고 더 이상 Depeche Mode를 무시할 수 없을 지경에 다달라서야 사람들이 우리를 제대로 된 음악가라고 인정해 주기 시작했다."

    Bruce Kirkland는 최근의 Depeche Mode 열풍에 대해 "U2의 길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라고 표현했다. U2 또한 [The Joshua Tree]에 이르러서야 공연 흥행에 걸맞는 수준의 음반 판매량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Kirkland는 말했다. "지금은 Depeche Mode의 시대고, 음악 산업이 여기에 이제서야 겨우 따라오고 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이제는 마침내 Depeche Mode의 곡이 Top 40 Radio에서 주기적으로 방송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Gore는 말했다. "여기 미국에서 활로를 뚫기 위해 몇년이나 노력했었다. 이제는 어떻게 보자면 '새로운 음악적 흐름'의 선봉장에 서게 된 것 같다. 통상적인 '록 라디오'가 점점 사라져가는 이 변화에. 그리고, [Violator]를 통해, 이제서야 우리의 길을 불도저처럼 강력하게 밀고 나갈 수 있게 된 것 같다."

    Depeche Mode에게는 기쁜 일일 것이다, 어째서인가 하면, '신스팝의 무덤' 만큼이나 외롭고 광활한 곳은 없기 때문이다. Gore는 말했다. "The Human League가 그랬었다. 정확히 그런 사이클을 돌았었던 것이다. The Human League 앨범 하나에 스티커가 붙어있었는데 나는 그 스티커가 정말 말도 안 되는 웃긴 짓거리라고 생각했었다. 스티커에는 '이 앨범에는 시퀀서를 쓰지 않았다'라고 쓰여 있었던 것이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그 '진짜 음악' 어쩌구 저쩌구 헛소리에 휩쓸려 다닌다. 그 사람들은 컴퓨터와 신디사이저와 샘플러로는 '영혼이 담긴 음악'을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음악의 영혼은 음악 그 자체에 있는 것이다. 악기가 무엇인지 따위는 아무 의미도 없다."

    Andy Fletcher 또한 더했다. "전자음악의 강점은 음악을 침실에서도 만들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창고에 4명이 모여야만 음악을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게 된 거다. 이제는 4명의 훌륭한 음악가들이 서로 싸워가며 합주해야만 할 이유가 없다. 그냥 침실에 혼자 앉아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으며, 이제는 '아이디어'가 정말로 중요해졌다." Fletcher는 잠시 멈추었다. "물론, 정통파 록 밴드들이 없어져가는 것을 보는 것이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 정통파 밴드들에게는 '캬바레'라는 무대가 언제나 준비되어 있지 않는지."

    ***

    새벽 1시가 되었고, Razal - Martin Gore를 만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던 젊은 팬 - 은 그녀의 아이돌과 마침내 만날 수 있었다. 둘은 호텔 바에 앉아 2시간동안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로비에는 하루 종일 서성거렸던 한 팬이 울먹이고 있었다. 그는 밴드 멤버들에게 사진을 주려고 하고 있었는데, 이 사진은 그와 그의 여자친구가 고등학교 졸업 파티장에서 같이 찍었던 사진이었고, 밴드 멤버들은 이 사진을 딱히 받고 싶어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Dave Gahan이 이 팬을 달래주려고 나갔다가 답이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다시 호텔 방으로 돌아가려 했다.

    Gahan이 엘리베이터를 타기 직전, 누군가 - 명백히 Depeche Mode 팬이 아니었다 - 앞으로 뛰어들어 와 말했다. "Martin, 사인을 받을 수 있을까요?"

    Gahan은 눈을 굴렸고, 잠시 '익명의 팝 스타'의 삶이 얼마나 이상한지에 대해 체감했다. 그는 말했다. "우선, 제 이름은 Dave에요. 그리고 펜이 없네요."



    https://youtu.be/h1mD-_DKHc0
    "Cl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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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ollingstone.com/music/music-features/black-celebration-depeche-mode-look-back-on-violator-25-years-later-173476/


    Martin Gore 인터뷰
    [Rolling Stone]
    Kory Grow
    2015년 3월 19일


    신스팝의 개척자 Depeche Mode가 지금으로부터 25년전, 어둠이 깃들어 있는 7번째 앨범 [Violator]를 발매했을 때, 이 앨범의 발매는 그 자체로도 대사건이었다. The Beatles가 '비틀마니아'를 가졌던 것 처럼, Depeche Mode 또한 밴드를 찾아 헤메이는 '좀비'떼를 만들어내게 되었고, 이 좀비떼는 밴드와 자신 사이를 가로막는 모든 것을 파괴하며 돌아다녔다. [Violator] 발매일의 바로 다음 날, 1만명이 넘는 팬 무리가 Depeche Mode 멤버들이 사인 행사를 하던 L.A.의 한 음반 가게를 완전히 포위하고는 가게의 유리벽을 너무 강하게 밀어붙였고, 벽은 거의 박살날 정도로 심하게 흔들렸으며, 결국 L.A. 시청이 $25,000을 지출하여 130명의 경찰관을 특별 파견해 밴드의 팬 무리를 제압해야만 했었던 것이다.

    건방진 고딕 음악 "Personal Jesus", 관능적이면서도 고요한 "Enjoy the Silence", 비현실적이면서도 블루스적인 "Policy of Truth"같은 매력적이고 도발적인 싱글 곡들에 힘입어, [Violator]는 밴드가 발매한 앨범들 중 최고의 판매량을 달성하였고, 빌보드 7위와 3개의 플래티넘 레코드를 달성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런 상업적인 성공들을 넘어서, [Violator]는 Depeche Mode에게 말 그대로 '새로운 시대'를 열어 준 앨범이기도 했다. 10년이 안 되는 시간동안 이들은 뉴웨이브 명곡 "Just Can't Get Enough"에 맞추어 엉덩이를 흔들어대는 팝 밴드에서 음울하고 극적이면서도 신비로운 포스트-고딕 걸작을 만들어내는 밴드로 변모한 것이다. "Waiting for the Night"에서의 Dave Gahan의 목소리는 어떻게 이렇게까지 섬세하고 부서질 듯 하면서도 동시에 희망적일 수 있는 것인가? "Blue Dress"는 어떻게 이렇게까지 아름다우면서도 기이한 것인지? Pink Floyd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듯 보이는 "Clean"에 숨겨진 메시지는 무엇이란 말인가? [Violator]의 미스터리는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으며, 지난 25년 동안 Marilyn Manson부터 Susan Boyle까지 많은 음악가들이 [Violator]의 수록곡들을 나름대로 재해석해왔다.

    [Violator]의 수록곡들을 직접 작곡하기도 하고, 또 미니멀하면서도 뱀처럼 구불거리는 기타 연주를 담당하기도 했던 Martin Gore는 [Violator] 제작 과정을 즐거운 추억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 무렵의 우리는 녹음 장소를 정하는 데에 있어 아주 실험적이었고, 다양한 장소로 떠나서 앨범 제작 과정 자체를 모험과 여행으로 만드는 것을 아주 좋아했었다." Gore는 곧 발매될 솔로 앨범에 관련된 인터뷰가 끝난 후, [Violator]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다. "[Violator]의 경우 대부분의 녹음을 밀라노에서 했었는데, 정말 재미있었던 추억이다. 구체적으로 정확히 어떻게 녹음을 진행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 거의 매일 밤을 파티로 날렸었으니까."

    밀라노를 제외하고도 밴드는 공동 프로듀서 Flood와 함께 뉴욕, 런던, 그리고 덴마크의 Gjerlev에서 녹음을 진행했었다. "덴마크의 스튜디오는 정말로 거의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장소에 홀로 있는 곳이었다. 가장 가까운 마을이 차로 20분이 걸렸는데 그마저도 정말로 작은 마을이었다. 막바지 녹음과 믹싱을 그 곳에서 진행했었다."

    Gore는 [Violator] 시기를, 밴드 멤버들간의 개인적인 관계까지 포함하는 맥락에서, 전반적으로 정말 좋았던 시기로 기억하고 있었다. "멤버 4명 전부가 아직 서로 잘 지냈고 있던 시기였으며, [Violator]는 밴드가 함께 즐겁게 어울렸던 시기의 정점이었다고, 그렇게 생각한다." 그는 1995년 Alan Wilder의 탈퇴에 관하여 말을 꺼냈다. "1993년 [Songs of Faith and Devotion]을 만들 무렵에는 여러가지가 엇갈리기 시작했고 사람 또한 변하기 시작했었다. [Songs of Faith and Devotion]는 제작 자체부터가 훨씬 힘들었던 앨범이었다. 비록 개인적으로는 [Songs of Faith and Devotion]도 정말 잘 만들어진, 좋은 앨범이라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멤버들 전부가 같이 좋아했던 앨범들을 옆에 두고 보자면, [Songs of Faith and Devotion]는 조금 다른 느낌의 앨범이기는 하다."

    지난 25년간 수없이 쏟아진 [Violator] 수록곡 커버들에 대하여, Gore는 Johnny Cash가 부른 "Personal Jesus"의 훌륭한 어쿠스틱 커버를 가장 좋아하는 커버로 뽑았다. "원곡과 가장 다른 분위기의 커버다. Johnny Cash만의 영적인 분위기, 그 마법같은 무언가가 들어 있는 곡이다. 거기에 그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발매된 앨범에 수록되었다는 사실 또한 특별함을 더한다고 생각한다."

    "Personal Jesus" - 이 곡은 'The Man in Black'(역주: Johnny Cash)의 친구 Elvis Presley에 대해 암시하는 듯한 곡으로, Priscilla Presley의 책 [Elvis & Me]에 묘사된, 마치 신과 같이 그려진 'The King'(역주: Elvis Presley)의 모습에 영향을 받은 곡이었으며, 가장 많은 음악가들이 커버 요청을 해 왔던 곡이기도 했다. Johnny Cash 말고도 Sammy Hagar에서부터 인더스트리얼 록 밴드 Gravity Kills까지 수없이 많은 음악가들이 "Personal Jesus"를 나름의 방식으로 재해석해 왔다. Gore는 말했다. "커버들 중 대부분은 그렇게까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래도 커버 요청이 들어오면 어디에서 들어왔던지간에 거의 전부 수락하는 편이다. 왜냐하면, Depeche Mode의 곡을 커버하려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Depeche Mode 음악의 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팬들에게 '아니, 요청을 허락할 수 없을 것 같다, 이 커버는 별로라고 생각하거든'이라는 식으로 대답하는 건 좀 부당한 일이지 않나. 독일이라던가 아니면 동유럽 쪽에서도 정말 많은 커버 요청이 들어오고, 정말 안좋은 영어 발음으로 커버하는 경우들도 있는데, 그래도 전부 허락한다." Gore는 웃었다.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부분은 Depeche Mode의 음악이 정말 다양한 장르의 음악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는 점이다. 메탈 밴드들에서부터 Susan Boyle까지라니." Gore는 다시 웃었다.



    https://youtu.be/u1xrNaTO1bI
    "Personal Je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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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ve Gahan / Andy Fletcher / Alan Wilder / Martin Gore

    2022/01/14 04: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