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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p Making Sense] 23. Disco Inferno[Stop Making Sense] 2023. 3. 18. 13:56
[Stop Making Sense]는 자유연재물로 제가 소개하고 싶은 음악들에 대해 얘기해 볼 예정입니다. 아무래도 '날선' 음악에 대해서 주로 다룰 것 같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19세 미만인 분들께서는 접하면 안 되는 음악들도 많이 다룰 예정이니, 19세 미만인 분들께서는 글도 보지 마시고 음악도 접하지 마시길 정중히 부탁드립니다. 또한 문체는 존칭을 생략하였으니, 이 또한 양해 부탁드립니다.
"1990년대의 영국에 널리 퍼져있던 지혜는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으며, 진정한 예술가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였는데, 이는 청중들이 너무나도 똑똑한 나머지 음악을 직접 하는 대신 돈을 많이 벌기 위한 적절한 직업을 찾아 나섰기 때문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발생한 밴드들은 밴드에 속한다는 것을 문화적인 커리어를 쌓아가는 활동이라고 여기는 것 같았으며, 조잡하기 그지없는 문화 요소들을 가지고 밴드를 만들어 나갔다. 물론, 그러한 밴드들은 스스로에게 아이러니와 거리감만을 부여할 수 있었으며, 우리는 그들이 하는 그런 짓들을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그런 짓들에 완전히 열 받아 있었다. 내 말은, 우리가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면, 대체 무엇에 대해 곡을 쓴단 말인가?"
- Ian Crause, Disco Inferno, Interview with the Quietus
1. Disco Inferno는 1989년~1995년간, 대부분의 시간을 3인 멤버로 존재했던 영국 밴드로, [D. I. Go Pop]은 1994년 발매된 밴드의 두 번째 정규 음반이다. "Disco Inferno"라는 이름이 주는 인상, 그리고 [D. I. Go Pop]이라는 음반명이 주는 인상, 그리고 평화롭고 아름답게 보이는 자연 풍경이 담긴 커버가 주는 인상과는 전혀 다르게, 이 작품은 "In Sharky Water"의 당혹스러운 물소리와 부유하는 기타와 기묘하게 격렬한 드럼과 혼란 속에 파묻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로 시작한다. 여러 곳에서 자유롭게 수입된 샘플들과 연주들은 복잡하지만 결코 견고하지는 않게 얽혀, 청자가 발을 딛고 있는 바닥부터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느낌을 주는 혼돈의 장을 펼친다. 아름다운 종소리와 휘파람이 굳건한 정체성을 잃고 뒤섞이는 "New Cloths For The New World"는 이런 모호함을 더 증가시키기만 하는데, 정체불명의 소리들 사이로 유일하게 중심점을 가지는 베이스는 구심점 역할을 하기는커녕 제멋대로 달리기만 할 뿐이다. 아마도 음반에서 가장 당황스러운 곡은 세 번째 곡 "Starbound: All Burnt Out & Nowhere To Go"일 것이다. 카메라 셔터의 효과음과 "할머니 할머니(?!?)"거리는 듯 한 합창소리(믿거나 말거나, "Everybody everybody"라는 소리라고 한다)의 잡탕 속에서 짜증날 정도로 느긋하게 떠다니는 연주와 불가해한 무언가를 설파하는 목소리는 스스로를 정상적인 곡의 범주에서 한참 떨어뜨려 놓는다. 이것은 디스코가 아니며, 팝도 아니고, 목가적인 자연 풍경도 아니다. 그렇지만 이 음반은 독창적이고 기묘한 매력으로 청자를 끌어당긴다.
2. 어쩌면 [D. I. Go Pop]이라는 이름처럼 이들은 팝 밴드일지도 모르며, 이들 음악의 알 수 없는 매력은 독특한 "팝" 감각에서 나온 것일지도 모른다. "Even The Sea Sides Against Us"의 기타 멜로디는 분명하게 들리지는 않음에도 명백히 매력적이며, 쓸쓸한 빗소리에 푹 절여진 "A Whole Wide World Ahead"의 어쿠스틱 기타는 애수어린 발라드 같기만 하다. 하지만, "Next Year"의 감성어린 질문은 천천히 덮쳐오는 노이즈에 묻혀가기만 한다. 그리고 이들은 분명하게 화가 나 있다. "A Crash At Every Speed"의 박력 있는 리프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들만을 끌고 가며, 그 위에서 보컬 Ian Crause는 분노를 읊는다. 그러나 이 분노는 결코 직설적이지 않으며, 결코 소리 지르는 일이 없는 목소리는 오히려 애매함을 배가시킬 뿐이고, 게다가 자신의 가사를 전달하려는 욕구가 전혀 없어 보인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이들의 음악은 전부가 다 무작위적으로 보이는 음향 샘플들의 콜라주 속에 파묻혀 있어, 정체를 파악하려는 순간 다시 흩어져버리는 안개속의 허상처럼 보일 뿐이다. 그러나 이 샘플 속의 "팝 음악"은 나름의 아름다움과 감각으로 난잡하고 난해하기보다는 놀랍고 흥미롭게 다가온다. 어쩌면 이들은 팝 밴드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들은 "새로운" 팝 음악을 만들어 낸 것일지도 모른다.
3. Disco Inferno는 철저하게 미래지향적인 밴드였다. 이들은 저 유명한 Margaret Thatcher 수상의 집권기에 자라나 그녀가 정치계에서 막 물러날 무렵 밴드 활동을 시작하였다. 세기말이라는 시대와 불안한 정세를 맞이하여, 90년대의 영국의 대중음악에는 "브릿팝"이라는 복고와 과거주의와 냉소의 물결이 일고 있었다. 맨 위의 Ian Crause 인터뷰는 물론 한 쪽의 입장일 뿐이겠으나, 대세는 마치 어중간한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멋지고 쿨하게 냉소와 비웃음으로 일관하며 진정성과 진보, 미래를 조롱하던 것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던 것도 사실이었다. D. I. 는 이 와중에 거의 유일하게 미래를 꿈꾸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였으며, 당연하게도 누구의 주목도 얻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대부분이 알지도 못하는 D. I. 는 사라졌으며, 이 또한 당연하게도 큰 유행을 몰고 다니던 브릿팝 1세대(?)들도 시간 앞에 사라져갔다. 그렇지만 미래를 진정으로 바라보고 추구하여 정말로 미래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 것은, 그리고 Animal Collective, MGMT, Deerhunter 같은 새로운 밴드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것은, 멋지고 매력적이고 똑똑한 청년들의 밴드들이 아니라, 볼품없는 외모에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골방에 앉아 매력에 뿍 빠져버린 새로운 장비로 이것저것 이상한 시도들을 해 보던 Disco Inferno였다. 그리고 이들은 분명히 매력적인 "Future Pop" 밴드였다("Footprints In The Snow"). 아래의 곡을 들어보라, 이 밴드가 만든 이 음악이 미래적인 팝 음악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우리가 한 발자국씩 나아갈 때마다죽음은 우리의 뒤에 서 있었다
그림자를 우리의 머리 위로 드리우며
우리를 앞질러 저 멀리에 서 있다
건너갈 바다도 없으며, 올라갈 산도 없다
그것이 내가 들었던 전부였으니
그리고 주변을 돌아보며
누가 나를 구원해줄 수 있는지 찾는 것은
금으로 가득한 단지가 없다면, 너무나도 힘든 일이다
이제까지 단 한번이라도
이랬던 시대가 있었던가?
그리고 과거의 노이즈가 서서히 강해지고
자신의 신념을 저버린 쓰레기들이
수백만 배로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머리는 우리를 기다리던 신비에 묻혀
도저히 대응을 할 수가 없다
책들은 불타고, 총열은 돌아간다
10억 개의 헛된 미래가 밤하늘을 빛낸다
작은 희망이 번쩍이며 지나가고 흔들린다
외부의 힘들이 기다리며 기도하는 동안
미래에 대한 공포는 우리의 마음을 너무나도 강하게 울리고
우리는 결국 스스로를 파괴하기만 할 것이라고 말한다
마치 수 세기동안의 낡아빠진 불화가
최신 기술의 무기들로 강화된 것처럼
결국 우리를 잡는 것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일 것이다
나는 언제나 이상은 반드시 거짓을 불러일으킨다고 믿었고
그리하여 희생은 필수적이라고 여겼지만
지금 나의 눈은 죽음의 유령들에게서 벗어나
저 앞을 보고 있다
- Disco Inferno, Lyrics of "The Last Dance"
※Disco Inferno: Ian Crause, Paul Wilmott, Rob Whatley'[Stop Making Sense]'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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