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the rise and fall of unwound empire
    [...]/[unwound] 2023. 3. 19. 01:47

    이 글은 Brooklyn에 사는 프리랜서 Brad Cohan가 Unwound의 끝에 대해 인터뷰를 해 놓은 것이고, Unwound 아카이브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글입니다... Unwound 팬들에게는 제법 괜찮은 읽을거리가 됩니다...

    Unwound Interview: The Untold Story

    ******************************************************************************

    http://unwoundarchive.com/blog/


    http://youtu.be/Axemfr9pEeA

    워싱턴 주의 Tumwater. 그 곳은 비록 시애틀이나 올림피아만큼이나 전설적인 음악가들을 배출하지는 못했지만, 음향적 폭력의 두 파이오니어를 배출한 곳이다: 찢어지는 슬럿지의 Melvins 신봉자 KARP와, DIY 아트펑크 히어로, Unwound.

    두 밴드 모두 사라져 버린 후, 10여년 가량이 지났을 때, 그들은 사실상 행방불명인 상태였다. KARP가 훌륭하지만 동시에 비극적인 다큐멘터리 [Kill All Redneck Pricks]의 주연을 맡은 지금, Unwound 멤버들은 -- 90년대에는 공연들과 음반들을 통해 어디에서나 존재했었지만 -- 밴드를 시체 상태로부터 되살리기 위해 마침내, 다시 한 자리에 모였다.

    기타/보컬 Justin Trosper, 베이스 Vern Rumsey, 드럼 Sara Lund는 그들의 이야기, 사진, 비디오를 담은 웹사이트(http://unwoundarchive.com)를 만들었고, 더블 LP [Live Leaves]도 발매하였다. 2001년 가을 투어에서 나온 공연 영상들, 셋리스트는 Unwound의 정점인 [Leaves Turn Inside You]의 거의 모든 트랙들을 담고 있다. 그 앨범은 2001년에 발매되었으니 이젠 꽤나 오래된 앨범이다: 그 어두우면서도 환상적인, 꿈결같은 팝, 비틀린 노이즈, 엄청난 리프와 고통에 찌그러진 우울한 목소리로 넘쳐나는 앨범은 종말을 앞둔 밴드의 모습을 보여 준다.

    Unwound가 다시 돌아 온 것을 기념하며, 나는 Trosper, Rumsey, Lund -- 또한 원래 Unwound의 드러머였던 Brandt Sandeno ([Leaves Turn Inside You]에도 기여를 했었고 마지막 투어에서도 키보드를 연주했었다), [Live Leaves]의 세컨드 기타리스트였던 David Scott Stone, 로드매니저 David Wilcox 도 함께 -- 와 밴드의 마지막 나날들, 911 테러 직후에 공연을 돌던 그 때에 대해 인터뷰를 했다.

    Live Leaves

    Trosper> 이 프로젝트는 원래 2001년 투어를 끝내고 바로 하려고 계획했던 것이었다. 물론, 밴드가 해체했으니,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2010년이 되었을 때, 밴드의 결성 20주년이 될 2011년이 내년이니 기념으로 뭐라도 해 보는 것이 어떨지에 대한 얘기를 하기 시작했었다. 아카이브 사이트를 만든다는 아이디어는 1년 전쯤에, 2002년 4월 1일에 했었던 우리의 마지막 공연의 10주년이 되는 날에 아카이브 사이트를 열면 괜찮겠다는 말을 하면서 나왔던 아이디어였다. 우리는 마지막 투어의 라이브 영상들을 모으고 마지막 공연의 풀 버전 영상도 발매하자고 결정을 내렸었다. 그러다가 바이닐로 앨범을 발매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이 왔고, 그래서 [Live Leaves] 발매 전까지 모든 것을 미루었다.
     어쨌든, 우리는 단지 우리가 존재했었다는 것을 세상이 알기를 바랬다. 우리가 만들어 왔던 것들에 비해 인터넷에는 자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우리의 목표는 '그렇지 않게' 만드는 것이 되었다. 이는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일"을 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와 같은 맥락의 일이다 -- 미디어가 일들을 알아서 해 줄 거라고 기댈 수는 없는 것이다. 말하고 싶었던 것은 우리가 어떤 밴드 X나 어떤 씬 Y보다 더 중요했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실제로 존재하여 어떤 시간과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우리가 무엇이었고, 무엇이 되었는지, 세상에 알려질 만한 가치는 있었다는 것이다.

    Lund> 기본적으로 Unwound는 인터넷 시대보다 이전 세대의 밴드였으며, 따라서 인터넷에 떠도는 자료들은 전부 팬들이 만들어 준 것이었다. 우리는 우리가 남겨 왔던 유산들을 받을 수 있었고, 우리가 존재했었다고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Rumsey> 이 것들은 우리가 해체하기 전부터 계획하고 있던 것들이었다. 우리는, 그 마지막 투어에서, [Leaves Turn Inside You]가 우리에게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 것인지, 또한 공연에서 2명의 추가 멤버를 갖게 된 것이 어떤지를 기록하고 싶었다. '추가 멤버'라는 단어는 좀 안 맞을수도 있겠다: Brandt는 언제나 어떤 형식으로든 밴드의 일원이었으며 David Scott Stone 또한 언제나 어떤 식으로든 우리와 함께 있었다. 이 프로젝트는 언제나 우리의 마음 한 켠을 차지하고 있었다: 모여서 다시 하기까지 시간이 좀 많이 걸렸을 뿐이다.


    http://youtu.be/f8n4GcRS1cY

    Trosper> 그 전까지는 공연 녹음을 꾸준하게 열심히 한 적이 없었고, 따라서 [Live Leaves]는 정말로 특별한 다큐멘터리가 되었다. 이 앨범을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멋졌던 부분은, 우리가 대략 한달동안 사실상 똑같은 셋리스트로 공연을 하고 다녔기 때문에, 녹음된 무더기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들만 골라 뽑아내서 하나로 붙여 자연스럽게 하나의 새로운 쇼 처럼 구성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투어의 셋리스트들은 거의 대부분이 [Live Leaves]와 똑같은 순서로 이루어졌었다. 만약 우리가 또 다른 라이브 음반을 만들게 된다면 그것은 정말 훌륭했던 공연 하나를 그냥 통째로 담거나, 아니면 임의의 공연들 및 투어에서의 연주를 짜집기한 것이 될 것이다.

    Lund> 다른 투어들과는 다르게, [Live Leaves]에 담긴 투어에서 우리는 계속 같이 다니며 모든 공연을 전부 녹음해 주는 엔지니어와 함께 다니게 되었다. 즉 입맛대로 고를 수 있는 멋진 콜렉션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게다가 그 투어는 우리의 가장 야심찬 앨범을 반영하는 야심찬 공연들이었다. 그 전까지는 단 한 번도 다른 연주자들을 불러서 같이 공연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Leaves Turn Inside You] 발매 후, 곡에 너무 많은 악기들이 들어가 있던 나머지 우리 셋이서는 라이브로 연주를 할 수가 없었고, Dave Stone과 Brandt Sandeno를 불러 같이 공연용 연주를 만들고 연주할 수 밖에 없었다. [Live Leaves]에 수록된 공연들은 그전까지의 Unwound 공연에서는 볼 수 없었던 완전히 특별한 공연들이었다.

    Trosper> 어떤 사람들은 [Live Leaves]가 "순수한" 라이브 앨범이 아닌 것을 두고 뭐라고 할 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나는 순수함이라는 컨셉은 별로 추구하지 않는다. 나는 마치 영화같은 앨범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최소한 편집된 다큐멘터리 같은 것이라도. 하지만 가공하지 않은 원 물질은 순수하고 사실성으로 가득 차 있다. 또한 [Live Leaves]는 곡 하나하나를 짜집기해놓은 것 같은 느낌이 아니라, 마치 하나의 공연처럼 들릴 수 있게 의도적으로 편집되었다.
     우리는 고민 끝에 앨범을 단 1개의 트랙으로 발매하자는 결정을 내렸는데, 알 만한 사람들과 토론해 본 결과 그렇게 1개 트랙으로 다 뭉쳐서 발매하는게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겠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Live Leaves]는 한번에, 통째로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만약 바이닐 버전을 갖고 있고 일부분만 듣고 싶다면, 3번째 면을 들어라. 그 부분이야말로 투어에서 최고였던 부분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Live Leaves]를 발매하자고 생각했던 이유들 중 하나로, 그 투어에서 생겨났던 감정적인 어두움을 조금이나마 해소시키려는 시도이기도 했다고 본다. 그 투어는 정말 안 좋았었지만, 그만큼이나 우리는 5명 라인업으로 흥미로운 일들을 하고 있었고 [Live Leaves]야말로 당시 우리가 [Leaves Turn Inside You]에서 정말 많은 곡들을 공연에서 실제로 연주할 수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증거이다. 하지만 그것은 완벽하지 않고, 순수하지도 않다…

    Rumsey> 그 투어는 우리에게 특별한 투어였고, Mike Ziegler가 우리랑 항상 같이 다녔다. 처음으로 우리는 우리의 모든 공연을 녹음해 주는 사람과 같이 다니게 되었었다. 더 많은 라이브 음반들이 나올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앨범을 만들 때 Justin이 우리가 갖고 있는 녹음들을 잘 보이게 늘어놓아 준 다음, 이 투어에서 우리는 추가 멤버들과 같이 공연을 했기에 이미 잘 짜여진 "셋 리스트"가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연습이나 준비를 많이 할 수 없었기에, 각 공연들이 많이 다를 수가 없었다.

    Trosper> 나 개인적으로는 투어가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았다. 투어라는 것의 괴팍한 현실을 견뎌 낼 준비가 어느 정도는 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David Wilcox를 제외한다면, 우리 전부는 투어를 돌며 같이 다닌 적이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잘 모르는게, 우리 또한 다른 수많은 밴드들처럼 투어 도중에 서로 장난을 치면서 투어를 돌 수 있는 동력을 내고 있었다. 거의 언제나 투어는 어느 정도 이상은 재미있었다.

    Lund> 그렇게 많은 사람들과 같이 투어를 간다는 것이 정말 재미있었다. 일상의 지루함으로부터 주의를 돌릴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나를 짜증나게 했다면, 돌아서서 다른 사람하고 대화하면 되는 것이다. Brandt와 Justin은 특별히, 유명한 콤비들과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죽이 잘 맞았고, 투어 중에 자주 대폭소를 터뜨리게 했다.


    http://youtu.be/KWLvoSogKJM

    David Wilcox> 우리는 미네아폴리스 공연을 위해 멈췄고 내 생각에 그때 이미 첫 번째 밴드가 공연을 하고 있었다. 완전히 늦어버린 바람에 사운드체크니 뭐니 하는 것들은 전부 하나도 할 수 없었다. 우리는 차에서 내렸고 Sara가 뒷자리에서 나오려고, 차 문을 열고 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손으로 문을 잡고 있었는데, Justin이 그 문을 닫아버렸고 Sara의 손이 문에 낀 채로 문이 잠겨버렸다. 그러니까, Sara의 손이 문에 완전히 끼여 있었고 Justin은 차 열쇠를 찾으려고 난리를 피웠고 약 20초가량 Sara의 손은 문에 낀 상태로 방치되었다. 그게 공연 예정 시각 1시간 전이었다. 그 1시간동안 우리는 Sara의 손에 얼음주머니를 대고 있었다. Sara의 손은 심하게 다쳐있었고 그녀는 울고 있었다. 정말 고통스러웠지만 그녀는 연주를 했다.

    David Scott Stone> 애틀란타에서 했었던 정말 좋았던 공연이 기억난다. 우리는 Mecca Normal, The Thrones와 함께 몇몇 펑크곡들을 추가로 커버해서 연주했었다. 그 공연은 전연령 관람가능 공연이 아니었지만, 몇 주 전부터 공연에 들어오고 싶어하던 몇몇 꼬맹이들이 흥분해 있었다. Unwound는 보통 전연령 관람가능 공연만을 했지만, 가끔은 몇몇 이유 때문에 그게 안 될 때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그 때였다. 그래서 나는 무대 옆문을 몰래 열어주었고, 그 꼬맹이들은 뛰어들어왔었다. 몇 년 후, Deerhunter의 보컬 Bradford Cox가 나한테 와서는 자기가 바로 그때의 꼬맹이들 중 한명이었다고 말해 주었다. Cox는 그날 밤의 모든 것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우리가 했던 커버곡들, 어떤 앰프를, 페달을, 기타를 사용했었는지까지도!

    Brandt Sandeno> 애틀란타 공연은 좋은 의미로 미쳤던 공연이었다. 우리는 Mecca Normal, The Thrones와 함께 투어를 돌고 있었으며 정말 훌륭했었다. 공연장에는 이상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으며 내가 기억하기로는 분명히 관객들 사이에서 마구잡이식 폭력이 발생하였는데, 정말 실망스러운 일이었다. Justin과 Vern은 자기 눈꺼풀에 검정 유성펜으로 눈알을 그려넣었는데 그 모습이 David Lynch의 악몽같은 잡지에 나오는 쌍둥이 캐릭터 같았다. 으스스했다. 그 기괴한 에너지는 그날 공연을 한차원 더 높여 준 것 같다. 그날 공연의 마지막에는 3밴드가 모두 무대에 올라와 The Sex Pistols의 "Bodies"를 커버했었다.

    Leaves Turn Inside You

    Trosper>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우리의 마지막 성명서로써 굳게 설 수 있는 앨범을 만들고자 하였는데, 왜냐면 곧 닥쳐올 대지진을 예고하는 여진들이 이미 우리 사이에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Leaves Turn Inside You]는 [Challenge of a Civilized Society]앨범을 만들 무렵부터 생각하고 있던 아이디어들의 총집편이었다. [Leaves Turn Inside You]는 사이키델릭하지만 "사이키델릭"하지는 않은 앨범으로 기획되었다. 모든 곡의 가사는 내가 꿈 일기에 적어두었던 것들을 바탕으로 쓰여졌다. 우리는 좀 긴 앨범을 만들고 싶었지만, 그것보다도 먼저 퀄리티가 좋아야만 했다. 돌이켜보자면, 퀄리티는 좋았던 것 같지만, 몇몇 레코딩/프로덕션 기술들은 잘 적용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렇지만 곡 자체는 좋다. 당시 녹음, 작곡, 5명 라인업으로 투어를 돌았던 것은, 지금 생각해 보면 꽤나 모험이었던 것 같다. 위험요소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실수나 실패를 크게 겪을 수 있다는 말이다 - 결국에는 그렇게 되었다! 말 나온 김에 더 말해보자면, 내 생각으로는 우리 음반은 거의 전부가 약간씩은 다가오는 종말을 예감하며 대비하는 듯한 방식으로 만들었던 것 같다. 90년대 내 정신상태는 그런 식이었다. 나는 언제나 끝이 코앞에 닥쳐오고 있다고 느껴 왔었다.

    Rumsey> 나는 Justin처럼 운명적인 느낌을 받지는 않았었고, 또한 [Leaves Turn Inside You]를 최후의 성명서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당시 나는 언제나 상당히 술에 취해 있었고, 따라서 Sara와 Justin이 항상 내가 언제 무너져 내릴지를 걱정할 만도 했었다 싶다. [Leaves Turn Inside You]는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었고 우리는 이 경험을 통제하고 싶었다. 거기다가 우리 셋은 전부 다른 도시에 살았기 때문에, 앨범을 만드는 것 자체가 그렇게나 오래 걸렸던 것이다. Justin이 스튜디오에 앉아서 곡 작업을 하고 있고 내가 옆에서 Justin에게 "내 여자친구가 임신했다"라고 알려 주었던 때가 기억난다. 그 순간이 밴드의 끝이 시작했던 순간인 것 같이 느껴진다. 이미 시간은 지나왔고, 지금 말하기는 정말 쉬운 일이지만, 당시에는 그것을 잘 몰랐다. [Leaves Turn Inside You]를 만드는 과정은 다른 앨범들을 만들었을 때와는 완전히 달랐었다. 예전의 앨범들은 전부 라이브를 기반으로 오버더빙을 했었지만, [Leaves Turn Inside You]에선 모든 것들이 조각조각나서 연결되는 방식이었다. 라스 베가스에서 살고 있었을 때, Justin이 내게 4트랙 버전의 데모를 보내줘서 나는 그것을 듣고는 나중에 올림피아에서 녹음할 때의 준비를 홀로 했었다.


    http://youtu.be/x7lZ-K0CDAM

    Trosper> 우리는 의도적으로 (그리고 명백히 드러나도록) 디스토션을 낮추고 텍스쳐와 톤을 더했다. 몇몇 새로운 음반들을 발견하고 거기에서 영향을 받았던 것도 있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에게 느껴지는 [Leaves Turn Inside You]의 사운드는 이전까지의 앨범들과는 좀 차이가 있는데, 아마도 우리가 같이 연주를 해 온 공연과 만들어 온 음반의 수가 많아졌었기 때문인 것 같다. 아마도 또 다른 가장 큰 요인은 -- 그리고 아마도 이전 요인보다도 더 클 지도 모르는 원인은 -- 우리가 스튜디오를 일종의 '작곡 플랫폼'으로써 활용했었다는 것이리라. 그리하여, 몇몇 앨범들이 당시의 우리에게 제법 영향을 끼쳤다. 내 개인적으로 영향을 받았던 음반들은 David Bowie의 [Low], PiL의 [Second Edition], Flaming Lips의 [Soft Bulletin], Radiohead의 [Kid A], Burzum이 감옥에서 만들었던 [Dauði Baldrs]와 [Hliðskjálf], The Cure의 [The Head on the Door], Beach Boys의 [Smile], 그리고 The Beatles, Led Zeppelin, The Kinks같은 60년대 영국 밴드들이었다. 스튜디오를 생각하고, 작곡 구조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 마치 필터처럼 말이다.

    Rumsey> 내가 기억하는, 우리가 듣고 사운드 퀄리티나 기타등등을 비교해 보던 앨범들은 Radiohead의 [Kid A]와 Dr. Dre의 [The Chronic]들 뿐이다. 당시 우리는 정말 많은 앨범들을 들었었다. 복도로 드럼 셋트를 가지고 나와서 Led Zeppelin같은 소리를 내고 싶어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 짓을 하면서 녹음했던 곡에서 -- 그게 정확히 무슨 곡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 우리는 단 2개의 마이크만을 사용해서 스테레오 녹음을 했었다.

    Trosper> 흠, 우리 스스로 스튜디오를 세우고는 그 곳에서 스스로 녹음하자는 것이 주된 아이디어였다. 나머지는 그냥 운명에 맡겨 버렸었다. 제약 같은 것은 없었다. 따라서 나는 상당히 끈질기게 작업했어야만 앨범을 끝낼 수 있었다.

    Rumsey> Justin 말이 맞다. 우리에겐 목수일을 하는 친구가 있어서, 그 친구가 스튜디오를 짓는 것을 도와주었고, 우리에게 있어 훌륭한 배출 수단이 되어 주었다. 창조력이 꿈틀댈 때마다 언제든지 가서 사용할 수 있는 스튜디오.

    Brandt Sandeno> Justin과 Vern이 그들의 스튜디오 'MagRecOne'을 커다란 농장으로 옮기던 때가 기억난다. 그들은 자신들의 목적이 "스스로 작업하고 프로듀싱한 더블앨범"이라고 내게 알려주었고, 나는 그 아이디어가 괜찮은 생각이라고 여겼다. 어쩌다가 내가 앨범의 몇몇 부분을 도와주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도와주게 된 것 자체는 기쁜 일이었다. 기본적인 트랙들과 연주는 상당히 강렬했고, 오버더빙을 통해 훨씬 부드럽게 만들게 되었다. 그들의 작곡/연주가 보여주는 파워는 내게 큰 영감을 주었고, 그들의 창조적인 비전을 방해하기보다는 그것을 도우는 방향으로 작업을 하게 되었다.

    Trosper> 으, 그 앨범을 만들던 과정은 사실상 악몽과도 같은 막장이었다. 그냥 스튜디오를 짓는 것만해도 총체적 난국이었다. 사실 스튜디오부터가 언제나 미완성인 채였지만, 그래도 작업을 할 만큼은 되었다. Sara는 이미 포틀랜드로 이사를 가 있는 상태였고 중간쯤 해서 Vern도 라스 베가스로 이사를 갔다. 나는 올림피아 근처 시골에 있는 큰 농가, 즉 우리 스튜디오가 있는 바로 그 곳에 막 이사를 온 참이었다. 나는 뮤지션이 아닌 룸메이트들과 같이 살고 있었고 우리는 스케쥴을 서로 조정하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다. Brandt Sandeno는 올림피아에 살고 있었고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다른 밴드, Replikants의 연주와 녹음을 엄청 많이 하게 되었다. 즉 Brandt Sandeno는 우리의 빈 공간에 들어오게 된 셈이었고, 그렇게 엔지니어링이나 연주를 꽤나 많이 하게 되었다. 사실, Replikants 음반은 [Leaves Turn Inside You]의 예비연습 같은 것이었다. 우리는 우리 작업도 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한 작업도 진행했다. 재밌는 점은 우리가 세운 스튜디오는 낡은 아날로그 스튜디오였는데 당시 시대는 디지털 기술이 훨씬 중요해지고 있던 시절이었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목표는 녹음 과정에서의 제한을 최대한 없애자는 것이었던 반면, 우리의 스튜디오는 기술적인 제한이 명백했다.

    Lund> [Leaves Turn Inside You]를 만들 때의 자유를 진심으로 즐겼었다. 나는 포틀랜드에 살았고 연습과 녹음을 하러 올림피아로 출근해야만 했기 때문에, 한번 날을 잡으면 하루 종일 연주를 하곤 했다 -- 창조를 위해 하루 전체를 투자한 것이다. 돌이켜 보자면 앨범작업을 하기 전에도 우리가 하던 연습의 대부분은 그런 식이었다. 하지만 "인생"이 -- 직업, 관계, 그런 것들 -- 우리에게 다가오기 시작했고, 그렇게 하루 전체를 연습 및 작업에 할애하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그런 방식의 단점은 모든 사람이 항상 합심하여 일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가끔 우리는 그냥 앉아서 Vern이 나타날때 까지 몇 시간을 기다려야만 했다. 그러고 있을 때 우리는 우리가 해 온 연주들 중 가장 멍청한 연주를 시작하고는 했다. Justin, Brandt Sandeno, 그리고 나는 어떻게 하면 Led Zeppelin 같은 소리를 낼 수 있을지 (해 보니 정말 어려워서 겸손해지게 되었다), 아니면 Sex Pistols 같은, 뭐 아니면 다른 밴드들처럼 할 수 있을지 연습을 해 보고는 했다. 뭔가를 만들어내려는 것이 아닌 그냥 재미로 연주하던 그런 순간들은 마음에 여유를 갖게 해 주었고 앨범 자체에 더 집중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실질적인 기술을 연마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다.
     [Leaves Turn Inside You]를 만들어 가며, 우리가 정말 괜찮은 뮤지션이 되었다는 것을 느끼던 것이 기억난다. 우리는 펑크의 "일어나서, 시작하라!" 모티베이션을 넘어서 있었다. 그 때는 또한 뮤지션이 되고, 음악을 잘 하게 된다는 것이 정말 성취감 있고 보람있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가던 시기이기도 했다. 생각해보니 당시의 나는 다가오는 끝을 보지 않으려고 일종의 눈가리개를 차고 있었던 것 같다.


    http://youtu.be/t6DiMRTbzCc

    Trosper> 나는 딱히 걱정하지는 않았었다. [Leaves Turn Inside You]를 끝낼 무렵 나는 우리가 만들어 낸, 이전까지와는 조금 다른 무언가를 해낸 것에 기뻐했다. 나는 우리의 팬들 대부분이 이 끝을 그냥 받아들일 것이라는 걸 알았고, 우리는 한 번도 외부의 압박에 휘둘리는 밴드가 아니었다. 또한 나는 우리 밴드가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활동을 할 거라고 확신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자, 어디 갈데까지 가 보자!" 같은 느낌으로 있었다.

    Lund> [Challenge for a Civilized Society]를 만들었을 때 친구들과 팬들이 좀 이상한 반응을 보였던 것이 기억나며, 따라서 우리가 좀 다른 것을 한다는게 어떤 반응을 가져올지를 이미 알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더해서, 팬들이나 언론의 의견이 우리의 창조 과정에 영향을 끼쳤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우리는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음악만을 만들었다. 몇몇 사람들이 더 연결되었다는 것은 그냥 보너스 같은 것일 뿐이다.

    David Scott Stone> 나는 보컬이 아직 녹음되지 않은 초기 버전의 [Leaves Turn Inside You]를 들었었다. 내게는 여전히 Unwound 앨범처럼 들렸었다. 아주 초창기부터 그들과 아는 사이로 지내며 음악과 정보를 몇년동안이나 교환한 사람으로써, 나는 [Leaves Turn Inside You]를 경험에서 우러나온, 그들이 좋아해 오던 것들의 총집편 같은 것으로 보았다… 밴드 활동을 10년 넘게 하면서, 여러 장의 앨범들을 발매하고, 투어를 돌고, 아직도 음악을 사랑하며, 무엇보다도, 자신들만의 스튜디오를 스스로 지은 밴드의!

    Brandt Sandeno> 언젠가 Justin과 함께 워싱턴주의 해안가 도로를 달리는데, Justin이 기본 골격과 오버더빙이 입혀진, 나중에 "Below The Salt"가 될 곡을 들려 주었고 그 곡에 완전히 압도당했던 기억이 있다. Unwound는 확실히 어떤 벽을 창조적으로 돌파했으며 더 넓은 폭의 팔레트로 작곡을 하고 있었다. 곡들은 좀 더 정제되었으며 Justin은 보컬과 작곡에서 더 멜로딕한 접근을 했다.

    Rumsey> 나는 하나도 걱정하지 않았다. 나는 [Leaves Turn Inside You]를 좋아했으며, 우릴 좋아했던 사람들은 당연히 [Leaves Turn Inside You]도 좋아할 것이라고 멍하니 짐작했었다. 오히려, 내 생각으로는 [Fake Train]을 좋아하던 꼬맹이들도 우리와 같이 나이를 먹어 왔고, 밴드로서도 한 사람으로서도 성장했을 것이었다.

    2001년 투어

    David Wilcox> 투어 멤버는 5명의 밴드 멤버와, 공연 사운드 엔지니어인 Dave Doughman과 나였다. 즉 우리 7명이 작은 밴을 타고 돌아다녔던 것이다. 당연히 좁아터졌었다. [웃음] 당시 투어에 참여하면서 내가 가장 놀랐던 것은 -- 나는 투어를 시작하기 한 4-5일전에 잡다한 일들을 잘 처리하기 위해 합류했었다 -- Unwound는 정말로 일을 하나도 계획적으로 처리하지 않고 되는대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웃음] 나는 이 작자들이 어쩌다가 생기는 요행으로 일들을 처리하고 있고, 그것마저도 없었다면 막장이었을 거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하루는 밴에 이상한 고장이 생겨서 전부 멈춰선 채로 차 밖에 나와 있었는데, Justin이 나를 돌아보고는 특유의, 개똥이라도 처먹은 듯한 기분나쁜 미소를 지으면서 낄낄거렸다. 나는 "뭐야?"하고 물어보았고, Justin은 대답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전부 이런 식이야." 마치, "우린 완전 등신들이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웃음]

    Trosper> 만약 우리가 블로그에 올린 아무 글이라도 보았다면 당시 투어가 어땠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그 투어를 돌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었다. 새 라인업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노력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평소처럼 투어 계획을 세웠던 것은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들 뿐이었다. 우리에겐 해야만 할 일이 너무나도 많았고 그걸 제대로 하기에는 조직력이 부족했었다. Vern은 이미 술을 엄청나게 마셔대고 있었으며, 우리는 투어를 돌기 전에 이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했어야만 했었다.

    Lund> 우리는 이미 해체하기 전의 상태였었다. 포틀랜드로 이사하고,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하며, 새로운 관계를 (지금은 내 남편인 사람과 함께) 만들어나간다는 것은 내가 투어 계획이나 준비를 돕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Vern은 이제 막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을 때였다 -- 아마 투어를 출발했을 때 나이가 6개월인가 그랬었다 -- 그리고 우리는 Vern이 딸과 떨어져 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도록, 한편으로는 투어를 돈다는 것이 우리의 직업이기에 최소한의 시간을 투자할 수 있도록 투어 일정을 세심하게 짜려고 노력했었다. 예전에는 Vern이 투어에 있어서 핵심 추진 인력이었다 -- 제대로 굴러가는 밴이 준비되었는지도 확인하고 투어 매니저 역할도 했었다. 하지만 2001년 투어에서 그는 이미 딸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 차 있었으며, 따라서 투어를 시작하기 전부터 이것저것 자잘한 충돌과 삽질이 많을 수 밖에 없었다.


    http://youtu.be/L70G8nUU97A

    Rumsey> Justin과 Sara가 잘 정리해 준 것 같다. 당시 나는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고 있었으며, 취해서 제정신이 아니었었고, 항상 같이 있고만 싶은 딸 Lola가 생겼었으니, 이전처럼 투어에 힘을 쏟을 수가 없었다. 예전같았으면 제대로 투어에 임했겠지만, 2001년 투어에서는 나는 투어를 시작하기 전부터, 그리고 투어를 도는 도중에도, 그리고 투어가 끝났을 때에도 망가져 있었다.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은 정말 끔찍했던 일이지만, 그때는 내가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힘을 잃어버린 상태였었다. 불행하게도. 아마 내가 개인적인 일들을 잘 다루기만 했었더라면 우리는 앨범도 더 많들고 투어도 더 돌았을 것이다.

    Trosper> 우리에게 일어났었던 일은 이렇다: Vern에게는 개인적인 위기가 찾아왔었고, 우리는 하나의 밴드로써 그것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 당시 우리는 그냥 투어를 시작하고 시간이 지나면 일이 알아서 정리될거라는 기대 같은 것을 했던 것 같다. 우리 모두는 이미 이 밴드 활동을 직업으로, 인생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였었기 때문에.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30대로 접어들고 있었고 모두가 변하고 있었다. 이 일들에 대해 미리 조치를 할 수 있었지만 우리는 그러지 않았다. 당시의 나는 운명에 모든 것을 맡기자는 주의였었지만, 지금의 나는 전혀 아니며, 따라서 그 시절에 내가 사람들과 소통하던 방식의 문제점을 이제는 더 잘 보게 되었다.

    Lund> 우리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서로간의 소통 방식에 있어서 최악의 형태를 보이고 있었으며 수동적인 공격성도 서로에게 표출하고는 해 왔었다. Vern의 위기는 우리 모두의 면전에 대고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지만 우리는 그것을 외면한 채 일이 알아서 잘 풀리기만을 기다렸었다. 우리는 아직 어렸었고 눈앞에 닥친 악마를 상대하는 데에 부족했었던 것이다.
     돌이켜 보자면 과거의 우리는 문제들을 직접 다루지 않고 음악이 시작되면 알아서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Unwound 활동을 하던 그 때, 심지어 서로 잘 쳐다보지도 않을 정도로 사이가 나빠졌을 때에도, 우리는 음악이라는 놀라운 언어를 공유하고 있었다. 내가 다른 누군가에게 너무나도 열이 받아서 미칠 정도가 되었을 때에도 같이 모여서 연주를 시작하면 분노는 어느새 사라져 버리곤 했었다. 같이 음악을 연주할 때 모든 것이 해결되었던 경험들 때문에 우리는 이번 위기도 그렇게 흘러갈 것이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정말 순진한 감상이었다…

    Rumsey> Sara가 제대로 설명했다. 당시의 나는 나에게 닥친 문제가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Sara와 나의 관계는 마치 남매사이 같은 관계였었고, 서로를 언제나 사랑하면서도 증오했었지만, 음악을 시작하는 순간 언제나 나는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었다. 그녀는 내가 아는 드러머들 중에서 최고이다. 연주를 하고 있으면 나는 그녀의 눈을 통해서 그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고, Sara 또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성격 차이 같은 것은 녹아내려 흔적조차도 없어져 버렸으며, 지금 와서 보자니, 당시 우리는 "방 안의 코끼리 (Elephant in the room)" 문제를 제대로 다루었었다면 좋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Sara가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어렸었고, 음악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모든 것은 너무나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Live Leaves 제작

    Trosper> 흠, 이것에 대해서는 보편적인 이야깃거리도 있고 특별한 것도 있다. 음악가라면은 누구나 다 알겠지만, 공연 녹음을 "나쁜 점까지 모두 다" 듣는 것은 상당히 불편한 일이다. 앞에서도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2001년 투어를 돌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었다 -- 한달은 더 연습을 했어야만 했었다! 따라서 몇몇 공연은 대충, 잘 안맞는 상태에서 이루어진 공연이었다 -- 아주 살짝 다른 튠의 기타 여러대와 언제나 조율이 정확히 맞는 키보드가 같이 나오는 것을 생각해 보라. 나는 가사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었고, 거의 언제나 그랬었다; 우리는 보컬 하모니도 했었는데, 이건 이전까지는 한 번도 안 해 보았던 것이었다; 그리고 다른 것들도 거의 이런 식이었다. 그러니 우리는 위축되어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놀라운 것들도 일어났었다. 2001년 투어에서는 "Arboretum"의 멋진 버전이 너무나도 많이 있었어서 그 것들 만으로도 라이브 앨범 하나를 발매할 수 있을 정도였다. 기본적으로 공연의 마지막 부분은 상당히 좋았었다. Dave와 Brandt가 몇몇 곡에서 보여 준 연주는 정말로 인상적이었다. 감정적으로도 강렬했던 공연들도 있었는데, 주로 9/11 테러 이후의 공연들이 그랬다. 강렬하고 심원한 것들. 좋은 측면으로나 나쁜 측면으로나, 우리는 Unwound의 가장 어두운 측면을 지나고 있었다: 이 순간들을 녹음했다는 것이 기쁠 뿐이다.

    Rumsey> [Live Leaves] 프로젝트를 위해 수백개의 곡을 들을 때, 밴드가 아니라 개인적인 이유로 움찔해지는 순간들이 몇 번 있었다. Dave Stone과 Brandt Sandeno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2001년 투어도 [Live Leaves]도 완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를 울게 만든 순간들도 있었는데, Unwound를 사랑했던 나에게도, 그리고 나머지 둘에게도, 내 행동과 연주에 있어 후회되는 부분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http://youtu.be/uX8LDihtiSs

    9/11 테러

    David Scott Stone> Arab On Radar와 함께 보스턴에서 공연을 할 무렵에 9/11 테러가 터졌다. 얼마나 기막힌 우연인가?

    Rumsey> 우리는 Northampton과 보스턴 중간즈음에 있는 호텔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엔지니어 Dave Doughman이 "지금 전쟁이 터졌어!" 라고 소리지르며 방으로 뛰어들어 왔었다. 그는 TV를 켰고 우리는 뉴욕에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보게 되었다. 호텔을 나와서 몇 년 전에 갔었던 식당으로 가서 아침을 먹고는 보스턴으로 출발했다. 공연장으로 가서 사운드 체크도 하고 모든 준비를 마쳤었건만, 공연장은 공연을 취소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결정을 내렸다. Unwound 말고도, 모든 사람들이,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고 앞으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공연이 취소된 그 날 우리는 바에 갔었고 그 자리에서 내가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당장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던 것 같다. Brandt와 나는 서로에게 수동적인 공격성을 표출하며 논쟁을 벌였고 결국 우리는 지금 투어를 계속 돌아야 한다는 결정이 나오고 말았었다.

    David Wilcox> Vern의 딸은 그때 막 6개월이 지났을 무렵이었고, 2001년 투어는 Vern이 처음으로 딸과 멀리 떨어져 있던 순간이었다. 9/11 테러가 일어나자마자, Vern의 애인이나 어머니나 다른 사람들은 그가 집으로 돌아오기만을 당연히 바랬고, 그 또한 그러고 싶어했었다. 밴드 내부에서는 투어를 계속 해야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었다. 보스턴에 있을 때, 하루는 밴 안에서 Vern이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내게 얼굴을 돌리고는 "내가 베이스 파트를 전부 너한테 가르쳐 줄 테니까 그 다음에는 내가 집에 가도 아무 문제 없을거야." 라고 말했었다. [웃음] 나는 "지금 장난하자는 거냐?" 같은 심정이었다. [웃음] "너는 내가 아는 최고의 베이스 연주자인데, 지금 5분동안 'Corpse Pose'의 베이스 부분을 나한테 가르쳐 주면 다 문제 없을 거라고?!"

    Lund> 보스턴과 뉴욕에서의 9월 11일/12일 공연은 둘 다 취소되었었다. 동시에 그 둘은 2001년 투어에서 가장 큰 두 공연이었었다. 이 취소는 아무것도 나아지게 하지 못했다.
     공연을 계속 해서 투어를 끝내자는 우리의 결정은 집으로 어서 돌아가고 싶다는 Vern의 희망과 충돌했으며 이는 우리 사이를 완전히 끝내버렸다. 그 시점부터 Vern은 우리와 같은 밴을 타지 않았으며 -- 그는 Mike Ziegler와 같은 차를 타고 다녔었다 -- 그리고 우리로부터 점점 더 멀어져 갔고 점점 더 술에 쩔어갔다. 하지만, 내가 앞에서도 말했듯이, 우리는 계속해서 무대에 오를 수 있었고 음악적으로 서로 연결될 수 있었다.

    David Scott Stone> 9/11 이후 우리의 첫 공연은 뉴저지 호보큰에 위치한 Maxwell's 에서의 공연이었다. 그 공연장에서 조금만 더 나가면 남부 맨해튼이 보이는 강가가 있었고, Vern과 나는 그 곳을 보러 나갔었다. 우리는 수백대의 경찰차가 대기하고 있는, 눈에 닿는 곳 어디든지간에 경찰차의 빨갛고 파란 불빛이 보이는 강가를 걸으면서 술을 끊는 것과 아이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었었다. 무너진 세계무역센터 자리에서 연기와 먼지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헬리콥터들. 사이렌 소리. 아무것도 없었다.

    Rumsey> 몇일 후 우리는 워싱턴의 Black Cat에서 공연을 했고, Fugazi의 Ian MacKaye가 우리에게 투어를 취소하지 않고 계속 진행하는 것에 대해서 격려를 했던 기억이 난다. 이는 내게 어떤 고무적인 영향을 불러일으켰지만, 내 안좋은 습관은 고치지를 못했다. 나는 Mike Ziegler와 같이 차를 타고 가면서 나 스스로를 밴드에서 점점 더 멀어지게 만들었었다.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의 나는 술을 안 마시고 있을때의 금단증상 때문에 심하게 괴로웠었고 혼자 있던지 아니면 적어도 Mike, 일종의 베이비시터 역할을 해 주던 그와 같이 있던지 하는 것이 훨씬 편했었다. 나는 특정한 누군가나 밴드 전체를 가라앉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내가 그렇게 했던 것 같다. 그래도 그 때에는 내가 밴드 전원이 타고 있던 밴에 있지 않았던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Trosper> 9/11 이후 공연하러 돌아다니는 것은 현실감이 없는 일이었었다. 굉장히 이상한 감정이 떠도는 곳에서 음악을 연주한다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이었었다. 말하자면, "진짜 이 공연을 해야 하는 것인가?" 같은 의문이 계속 드는 것이었다. 물론, 지금 와서 생각해 보자면, 그때 공연을 계속 하는 것이 맞는 일이었다. 사람은 주변 상황이 막장으로 돌아갈 때 "정상적인" 일들을 하려고 하는 경향을 갖고 있다. 그 것이야말로 안좋은 일들을 헤쳐나가는 방법인 것이다. 이는 나쁜 상황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그냥 그 상황을 인정하고, 매일매일의 결정을 그 상황이 지배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Lund> 많은 프로모터들이 이 투어를 계속하는 것에 대해서 혼란스러움을 내비쳤었던 기억이 있다. 다른 많은 밴드들은 투어를 취소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계속 하는 것이 맞는 일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통해 충격에서 벗어나 세계로 다시 돌아오는데에 도움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동부 해안을 떠난 후 공연에 참석하는 관객 수가 줄어든 것 처럼 보였었지만, 결국 관객 수는 절반 정도를 유지하게 되었었다.

    Rumsey> 우리가 계속 투어를 했었던 것은 좋은 일이다 -- 그게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 사람들은, 우리 뿐만이 아니라 관객들 또한 어떤 종류의 배출구가 필요했었다. 사람들은 감정을, 공격성이든 슬픔이든 간에 쏟아낼 필요가 있었다. 그 투어는 우리 모두가 감정을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http://youtu.be/I9guF6dntWQ

    해체

    Brandt Sandeno> 캘리포니아 투어를 돌기 전부터 일이 안좋게 돌아가기 시작했고, 내 직감은 투어를 출발하기 전부터 떨리기 시작했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10년전에 탄생을 도와 주었던 밴드의 공연에 연주자로써 고용되어 있는, 특수한 위치에 있었다. 그러니 나는 그들과 10년이라는 간격의 세월 만큼 떨어져 있었고, 그 3명 사이의 내부적인 문제들로부터 나 자신을 조금 객관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Unwound는 내 인생의 초창기에 있어서 정말로 중요한 부분이었으며, 그들은 나의 오랜 친구들이었으니, 그렇게 어울리지 않는 방식으로 모든 일이 흐지부지되어가는 것을 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Trosper> 미국 투어가 끝나고 우리는 간신히 캘리포니아까지 갈 수 있었다. 아마 그 때 캘리포니아 공연을 취소해야만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때의 공연은 우리의 친구들인 Blonde Redhead와 같이 하는 공연이었고, 당시의 우리는 그걸 날려버리고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기본적으로 Vern은 자신의 스트레스를 술로 풀고 있었고, 샌디에이고 공연에서 Vern은 만취해서 연주를 못 할 정도였었다. 공연이 끝나고 그는 자기 손 하나를 벽에다 처박아서 스스로 부러뜨려버렸다. 우리는 2개의 공연을 더 하기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다음 공연 하나를 하고 나서 바로 Vern을 집으로 보냈는데, 이제는 공연이 무의미해질 정도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손은 바닷가재의 집게발 같이 변해 있었다. 그것은 광기였었고, 그리고 그렇게 끝나버렸다.

    Lund> Vern은 투어를 돌 때 자기 가족도 데리고 다니기로 결정했고, 투어 차량 문제에서 복잡함만 가중시켰었다. 그와 그의 애인과 아이는 투어를 돌 동안 다른 차를 따로 타고 다녔었으며 숙소에서 방도 따로 썼었다. 내 기억에 Vern은 양 손을 전부 부러뜨렸던 것 같았다 -- 양 손 새끼손가락을 모두 다. 우리는 손이 부러진 Vern을 데리고 공연을 하나 더 했으며 그는 당연하게도 고통에 몸부림쳤었다. 우리는 Vern에게 꽤나 화가 나 있었으며, 연민의 감정을 거의 갖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슬프고 절망적인 일이었다…
     분명히 말하는데, Vern은 단 한번도 개자식이었던 적이 없었다. 그는 정말 다정하고, 매력적이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사람 좋은 녀석이었다. 최고의 베이스 주자인 것은 제외하고서라도. 우리의 분노와 절망은 그의 자학과 우리가 그를 멈추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에서 나왔었다. 우리는 그 정도의 충격을 다룰 만한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었다.

    Rumsey> 나는 내 양손을 전부 부러뜨렸었다. 그러고 나서 LA에서 Jon Spencer Blues Explosion Melvins와의 합동 공연을 하게 되었는데, 나는 손이 너무 아파서 간신히 연주를 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나는 Buzz Osborne(Melvins 기타리스트)에게 내 알코올 중독에 대해서 상담을 요청하기까지 하게 되었었다. 중독에서 벗어나오는 데에는 수 년이 걸렸으며, 그 이후에도 잠깐씩은 중독 증상을 보여 왔었다. 슬픈 일이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밴드들이 스스로 무너지는 꼴을 보는 것이 정말로 싫었었는데. 내가 그런 일을 벌였던 것이다.

    Trosper> 우리는 2001년 투어의 마지막 공연을 Vern 없이 할 수 밖에 없었다. 기분이 정말로 어색했었다는 것 말고는 설명하기가 힘들다. LA의 The Smell 공연장에 왔었던 관객들은 우리를 너그럽게 대해 주었다. 우리는 절뚝거리며 집으로 돌아갔고 예정되어 있었던 유럽과 일본 투어를 취소했었다.

    Rumsey> 집으로 돌아가고 나니 Justin이 The Smell 공연장에서의 셋리스트를 내게 보내주었는데, 그 중 한 곡은 "Ham Hands" 라는 이름이었다.

    Trosper> 어설프게 모든 것을 끝내버리는 대신, 우리는 2002년에 3인조로 공연을 몇 번 했고 그러고 나서 밴드가 끝났다는 것을 알렸다. 하지만 내게 있어서 밴드는 이미 끝나 있는 일이었다. 우리가 뭔가를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지만, 그 누구도, 그 어떤 노력조차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 이후에도 계속 서로 연락을 해 가면서 지냈다. 우리들은 이혼한 부부같은 식으로 지냈다.

    Rumsey> 우리는 서로 대화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딱히 많은 대화를 한 것은 아니었고, 분위기는 좀 어색했던 것 같다. 우리는 서로에게 대체 무슨 말을 해야할지를 잘 모르고 있었다. 우리가 서로를 이제는 안 좋아하게 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무슨 말을 해야할지를 모르고 있었다. Sara와 Justin은 분명히 내게 좀 화가 나 있었고, 나는 우리 사이의 문제의 대부분이 내 탓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을 돌아보고 인정하기까지는 1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http://youtu.be/0p46ndE1Kms

    David Scott Stone> 특정한 곡의 연주나 어느날 밤의 공연 같은 것 때문에 Unwound가 해체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든 적은 없었다… 9/11테러, 사람들이 음악에 대한 흥미를 잃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달려갔었던 그 사건도 아니었다. 오랜 친구들과 팬들의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공연 개런티는 오르고 있었다. 메이저 레이블 또한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만약 알코올 중독 문제만 없었더라면 Unwound Modest Mouse 급의 성공을 하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 없는 사실이었다.
     분명하고 명백하게 들어가 보자면… 투어 내내 우리의 문제는 Vern의 음주문제였었다. 그 것이 Unwound가 연주를 그만두었던 원인이었다. 샌디에이고를 벗어날 무렵 음주문제는 정점을 찍었고, Vern은 무대에 오르기 전에 롱 아일랜드 아이스티 (칵테일, 맛에 비해 도수가 센 편) 2잔을 연거푸 마시고는 올라갔었다. 그 누가 Vern이 그날 얼마나 술을 마셨는지를 정확하게 알겠냐만은, 그 날 Vern의 상태는 이미 한참 전부터 안좋은 상황이었다. 우리는 3곡인가 4곡인가를 연주하려고 노력했었고 그러다가 Justin이 무대를 떠났고, 이어서 Sara가, Brandt가 떠났다. 나는 마지막으로 남아 Vern이 머리를 뒤로 젖히고 바닥에 널부러진 기타의 피드백 노이즈에 맞춰 몸을 흔들거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 그러다가 Vern은 정신을 차리고는 우리 쪽으로 돌아보다가 무대가 텅 비어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무대 뒷편으로 비틀거리며 들어왔고, 소파에 몸을 던지고는, 잔뜩 취한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나는 그저 너희들 그 누구도 나만큼 나 자신에 대해서 화가 나 있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하고 싶어." 그러더니 Vern은 일어나서 벽을 맨주먹으로 강타했고, 양손을 전부 부러뜨렸었다. 매 공연마다 우리는 Vern이 대체 어떻게 될지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지만, 그 날은 실제로 걱정했던 일이 일어나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서부 해안가에서의 마지막 투어를 다시 3인조 멤버로 돌았다.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 모른다. 나는 Vern을 좋아하지만, 밴드가 활동을 그만하게 된 원인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나는 지난날 나 자신의 일을 처리하고 있었고, Vern이 준비될 때 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Unwound 이후

    Trosper> 나는 이미 새로운 밴드를 시작해서 투어를 돌 준비가 되어 있었다. 왜냐면 내가 할 줄 아는, 직업으로 삼을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오직 그것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Sara와 둘이서도 뭔가를 좀 해 보았고, Brandt와 둘이서도 무언가를 해 보았지만, 결국에는 어떤 밴드에 속해 있는 것을 그만두기로 결정하게 되었었다. 스튜디오에서 다른 밴드의 음반을 녹음하는 일을 하면서 시간을 좀 보냈지만, 결국에는 내가 하고 있는 창조의 과정이 만족스럽지 않게만 느껴지게 되었다. 나는 이 일이 나를 행복하게 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고, 모든 작업을 멈추었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녹음 장비들을 중고로 팔았고 음악과 관련되어 있지 않은 일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나는 말하자면 탈진 상태에 있다고 느꼈었지만, 지금 돌이켜 보니 그 때에는 그저 현실을 마주할 만한 여력 또한 없었던 것 같다. 아마도 음악을 계속 할 수도 있었겠지만, 당시의 나는 감정적인 짐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었다. 수 년간이나 나는 기타를 집어들지도 않았다.

    Lund> 우리가 해체했을 때, 나는 아직 밴드를 끝낼 준비가 하나도 되어 있지 않았었다. Unwound의 끝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막상 그 시점이 닥치고 보니 나는 음악을 한다는 일이 내게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일이었는지를 깨달아버리고 말았다. Justin과 나는 같이 뭔가를 해 보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했으며, 일을 계속 끌고 나가지 못하게 되었다. 나는 포틀랜드에 살고 있었고, 따라서 같이 연주를 하려면 드럼 셋을 전부 트렁크에 넣고는 긴 시간을 차로 이동해야만 했었다: 그러니 연주에서 어떤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같이 연주를 하러 온다는 것이 더욱 힘든 일이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내 오랜 조력자 둘을 내가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비탄에 빠졌고 다른 연주자들과 연결되는 것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길었던 관계가 끝나버리고 만 것이었다. 우리가 같이 활동을 하던 세월의 절반 무렵이 지나서야 나는 다른 사람들을 찾아서 같이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2007년, Unwound가 끝난지 5년이 되었을 때, 나는 올림피아에서의 오래 전 친구였던 Andrew Price와 연락을 하게 되었는데, 그는 Irving Klaw Trio에서 활동을 했었던 사람이었다. 그는 지난 10여년간 그 누구하고도 음악을 같이 하고 있지 않았었지만, 이제는 다시 한 번 시작해 볼 때가 되었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와 나는 같이 연주를 하기 시작했고 꽤나 손발이 잘 맞게 되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음악적으로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와 나는 Hungry Ghost라는 밴드를 만들게 되었고 이제 활동한지가 5년이 되어 같다: 몇년 전에는 내 오랜 친구이자 개러지 밴드 The Drags의 멤버였었던 Lorca Wood도 베이시스트로 참여하게 되었다. 우리는 2012년에 Quasi의 Sam Coomes와 함께 작업한 음반 하나를 내놓았다.

    Rumsey> 나는 몇 번 누군가들과 연주를 해 봤었지만, Justin, Sara, Brandt와 함께 하던 시절의 느낌을 찾을 수는 없었다… 단 한번, Bunny Foot Charm 멤버였던 John Devoy와 내 친구 Stevie와 함께 연주했을 때에는 느낌이 좋았었지만… 그것도 예전만큼은 전혀 아니었다. 그런 느낌, 무언가 서로 통하는 것이 없다면, 누군가와 같이 음악을 한다는 것이 재미있는 일이 아니게 된다.

    Trosper> Brandt와 시작한 새 밴드(Replikants)는 우리가 고등학교 때부터 하던 작곡/밴드의 연장선에 불과했다. Unwound가 해체하고 나자 Replikants는 계속 활동은 하고 있었지만 나는 흥미를 잃은 그런 밴드가 되어버렸다. 10년 정도가 지나고, Brandt는 나와 그리고 다른 친구들과 같이 연주하기 위해 Survival Knife를 결성하게 되었고, 나는 내가 다시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작곡을 안 한지가 꽤나 오래 된 상태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는지 이해가 안 되기도 하지만. 나는 젊음이니 록앤롤이니 하는 허튼소리들에 대한 아이디어들을 다시 가져오게 되었다. 마치 일시정지 버튼을 다시 한 번 눌러 일시정지를 풀고 이제서야 재생을 다시 시작한 느낌이었다. 정확히 10년전에 하던 그 일들을 바로 다시 시작하게 된 것이기 때문이었다 -- 물론, 새롭게 얻은 지혜와 통찰력을 가지고 말이다! 우리는 2013년에 싱글 몇 개를 발표할 것이고 봄에 새 앨범도 낼 계획이다.

    Rumsey> 나는 실크스크린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고, 패턴 무늬들이나 1인치 단추들 같은 것도 만들게 되었다. 나는 내 삶을 유지하려고, 최대한 오래 술에서 깨어나 있으려고 노력해 왔다. 나는 지금 단순해진 내 삶이 좋다. 드라마나 혼돈은 적을 수록 좋다. 나는 그래픽들을 가지고 일을 하는 것에서 어떤 평온함을 찾을 수 있었다. 내 친구 Raf와 나는 그래픽 노블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또한 암실도 하나 장만하려고 하는 중이다 -- 아직 장비들을 전부 구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음악도 사랑하지만, 아직은 스스로 연주하는 것 까지는 어려운 일인데, 내게 있어서 음악은 음주와 강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크스크린이나 그런 일들을 하고싶어 하는 것이다… 음악 씬과 연결되어 있을 수는 있지만, 아직 연주 자체를 하기는 힘들다.


    http://youtu.be/tJQe5GUAB9w

    재결성

    Rumsey>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스스로 처리해야만 하는 일들이 아직 많은 것 같다. 재결성을 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Unwound는 내 인생에서 일어난 일들 중, 딸 Lola의 탄생과 함께 최고의 일이었다.

    Trosper> 몇몇 사업적인 제안이 있기는 했었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아직 공식적인 답변은 없다는 것이다. 가능성이 아주 없는 일은 아니지만, 곧 일어날 일도 아니다. 어떤 일이든지 일어날 수는 있다.

    Rumsey> 우리가 마지막으로 배포했던 전단지에서 말했던 것처럼: "희망을 가져라."





    R.I.P. Vern Rumsey

     

    2015/09/03 13:49

    '[...] > [unwound]' 카테고리의 다른 글

    The Light at the End of the Tunnel Is a Train  (0) 2023.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