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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ozialistiches Patienten Kollektiv
    [...]/[SPK] 2023. 3. 20.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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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4ibrecords.com/2013/04/21/spk-interview-in-chainsaw-11-fanzine-february-1981/

    https://youtu.be/ridDL3Jdx-U

    이 인터뷰는 London의 Charing Cross 지역 공연장 Heaven에서 진행한 Final Solution 공연(Throbbing Gristle A Certain Ratio의 서포트 공연)이 끝난 후 진행되었다.

    Heaven은 보통 meat market 느낌의 게이 디스코 클럽에 가까운 장소였으며, 내가 그 동안 다녀 본 공연장들 중 가장 추악한 곳이었다고 할 수 있을 만한 장소였다 - 재방문할 의사가 아예 없어질 정도로.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덥고, 연기가 자욱하며, 너무 어두워서 공연장의 한 쪽 끝에서 다른 쪽 끝을 볼 수 없었다. 데코레이션이나 배경음악이나, 너무 과하다 싶을 정도의 디스코였다. 이 모든 특징을 다 합치면, "Throbbing Gristle이나 SPK의 공연이 어울릴 정도로 추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몇 년 전만 해도 이 장소는 "Global Village"라는 이름이었으며 가끔 공연도 하는 곳이었다. 내가 Users를 마지막으로 본 곳이 Global Village였다. 하, 어쩌다 이렇게나 변해버렸는지.
    나는 작년 여름 발매된 [Meat Processing Section] 싱글(사실 이 앨범은 원래 1979년 호주에서 먼저 발매된 앨범이다)을 듣고 Surgical Penis Klinik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 앨범은 이들의 두 번째 EP였으며, 첫 번째(No More/Contact/Germanik)는 그들 자신의 레이블 Side Effects Records에서 1979년 초에 발매되었었다.
    오늘 SPK의 공연은, 최대한 줄여서 말하더라도, 엄청났다. 모든 감각에 대한 공격이라고 묘사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음량 자체가 대단했다 - 저주파의 노이즈가 귀를 마비시킬 정도로 크게, 계속해서 나오고 있었다. 균형감각을 뒤틀어 버릴 기세로, 의도적으로 크게 틀어둔 음향은 [Meat Processing Section]의 "Factory"보다는 "Slogan"에 가까웠다고, 거기에 웅웅거리는 저주파 소음이 더해진 버전 같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조명은 전부 밴드가 아닌 관객을 향해 있었다...
    오늘의 라인업:
    Operator - Synth / Tapes / Rhythms
    Mr. Clean - Production engineer
    Wilkins - Guitar / Bass
    Genesis P-Orridge는 언젠가 나에게 SPK야말로 자신이 그동안 봐 왔던 밴드들 중 가장 정상이 아닌 밴드라고 말했었다. 오늘 공연을 보고 나서, 그리고 이 인터뷰를 끝마치고 나서, 나 또한 그 말에 거의 동의했다...

    Charlie> SPK는 얼마나 오래 되었나?
    Operator> 아마 1979년 1월에 시작했던 것 같다. 하지만 첫 공연은 1979년 7월, 정신과 간호사인 나와 (조현병) 환자 Nehil이라는 남자, 그리고 두 명의 펑크 음악가가 함께 한 공연이었다. 그 두 명의 펑크 음악가는 곧 밴드를 떠나 팝 스타가 되었다.

    Charlie> 두 명은 누구인가?
    Operator> 그 둘은 호주에서 Secret Secret이라는 밴드를 따로 조직했고 지금 클럽 씬에서 돈을 쓸어담고 있다.

    Charlie> 당신들은 모두 호주 사람인가?
    Operator> 아니다. Wilkins는 Bristol에서 온 잉글랜드인이고, Mr. Clean과 나는 딱히 어느 곳에서 온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국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Charlie> 어쨌든 호주에서 태어난 것은 맞지 않는가?
    Operator> 그 것이 반드시 사실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자꾸 밀어붙이며 물어보지는 말아달라. 이 부분은 우리가 최대한 유지하고 싶은 '추측'이다.

    Charlie> 첫 싱글 앨범을 얼마나 팔았었는가?
    Operator> 호주에서 두 개의 EP를 발매했었고 - 각각 3곡씩 들어가 있었다 - 처음에는 각각 500장씩을 제작했었는데, 다 팔려서 500장을 추가로 제작해야 했었다. 그 후 나는 프랑스로 가서 살기 위한 과정으로서 잉글랜드에 왔는데, Throbbing Gristle의 Genesis가 우리들의 두 번째 EP를 잉글랜드에서 재발매하고 싶다고 제안해서, 이를 수락했다. 이 두 번째 EP는 3곡을 수록하고 있는데, 3번째 곡은 한번 쓰고 버릴 수준의 곡으로 내가 완성한 후 한 사이코의 손에 의해 완전히 망쳐져버렸던 곡이다. 이 사이코는 그 후 자살했다.

    Charlie> 자살했다고?
    Operator> 그렇다... 사실 최근에도 우리 밴드에서 활동했었던 한 기타리스트가 자살했다. 그래서 이 밴드가 이렇게나 항상 불안정한 것이다.

    Charlie> 왜 자살한 것인가?
    Operator> 모른다. 나에게는 아무 말도 안 했었다. 유언장에서도 나에게 아무 것도 남기지 않았는데, 좀 짜증난다.

    Charlie> 가사는 누가 쓰는가? 첫 EP 수록곡들의 가사 중 몇 소절은 좀 과하지 않나 싶던데.
    Operator> 대체로 조현병 환자 Nehil이 쓴 가사고, 우리 둘은 언제나 협업하는 관계다. 내가 음악 부분을 담당하고, Nehil이 가사를 담당한다. 하지만 모든 가사 전부 선을 넘은 가사들이다. 몇몇 부분은 독일어로 부르는데, 나는 독일인들에게도 그 가사들이 좀 과하다 싶은 느낌을 줄 거라고 생각한다.

    Charlie> 외국어로 선 넘은 가사를 쓰는 것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
    Operator> 어째서 그런가?

    Charlie> 선을 넘었다는 것을 듣고 알아차리지 못할 테니까.
    Operator> 하지만 가사라는 것은 일종의 독재자처럼 작용하는 것이다 - 가사라는 것은 그것을 부르는 사람에게 자신이 어떤 의미인지를 전달한다. 그 가사를 소리로 내뱉는 과정에서 특별한 의미만을 취하거나 할 수는 없다. 그러니, 독일어로 가사를 쓴다면, 물론 내가 독일어를 할 줄 모르므로 개판인 독일어인데, 아무튼 그렇게 한다면 청자는 귀에 들리는 소리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의미를 자유롭게 선택해 가져가는 것이다.

    Charlie> 오늘 공연에서 마이크에 디스토션을 심하게 걸어 완전히 왜곡했던데, 의도된 것인가?
    Operator> 아니, 딱히 의도하고 그랬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배경으로 그렇게까지 심한 소음을 깔고 들어간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 음향 환경에서는 마이크에 좋은 믹싱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게다가 독일어 단어들도 엄청나게 소리쳐댔으니. 이는 내가 독일어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 나의 작은 페티시라고 할 수 있겠다.

    Charlie> 독일어로 노래할 때 그게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이해하고 노래하는 것인가?
    Operator> 우선 영어로 쓴 후 독일어로 번역을 한 것이다. 하지만 그 후 단어들을 이리저리 잘라 배치하기 때문에, 아마도 독일 사람에게조차도 아무런 의미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Charlie> 독일에서 공연을 해 보고 싶은가?
    Operator> Düsseldorf에 가서 공연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은 한 적이 있다. DAF Pyrolator가 활동하는 곳이니까. 하지만 지금은 내가 그들의 음악을 좋아하는지 아닌지에 대해 확신이 사라졌다. 나는 그냥 잉글랜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 뿐이다.

    Charlie> 그렇다면 왜 여기에 있는 것인가?
    Operator> 나는 개성을 가진 장소를 싫어한다. 나는 아무런 개성도 없는 장소가 좋다. 아무런 개성이 없는 장소에서는 그 곳의 문화나 관습 등에 압도되지 않을 수 있다. 무언가를 발견하고 싶다는 기대 또한 하지 않는다.

    Charlie> 아마 여기가 다른 장소들보다 더 자유로운 편이긴 할 텐데.
    Operator> 그건 자유롭다는 것이 어떤 뜻이냐에 따라 다르다. SPK가 최근에 하는 거의 모든 일들은 '정보의 과잉'에 관련되어 있다. 예를 들자면, 오늘 한 공연에서 우리는 왜곡이 심해 제대로 들을 수 없는 테잎을 틀었는데, 이 테잎은 화학전, 향정신성 의약품의 부작용에 대한 내용으로, 우리 모두가 화학전에 열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1952년 정신병원들에서 시작된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향정신성 의약품의 대상이 되면서.
    또 다른 테잎으로는 여러 포르노 음성들, 여러 광고로 접할 수 있는 하드코어와 소프트코어 포르노 음성들이 담긴 테잎이 있다. 우리는 흔히 말하는 "자유로운 사회"에서 도달할 수 있는 상황으로서 이 포르노 음원들을 한데 잘라 붙였다. 이 사회는 살면서 언제나 이런 쓰레기들을 융단폭격으로 맞고 있는 꼴의 사회이다. 그게 바로 우리가 말하고 있는 부분이다. 우리는 특정한 가사를 누군가에게 지정해서 의미를 주입하려고 하지 않는다.

    Charlie> 그러면 어떤 곳에서 살고 싶은가?
    Operator> 우리 모두는 결국 각자의 머리 속에서 살아가는 것으로 끝나게 된다. 바깥 세상이 아닌 자신만의 머릿속. 나는 살아가는데 딱히 필요한 것이 없다 - 1주에 대략 £5만 써서 살아갈 수 있다. London에서 이 정도의 생활비로 살아가는 건 대단한 일이라고 사람들이 말해주더군.

    Charlie> 한번이라도 지루해진 적이 있는가?
    Operator> 한 번도 없다. 뭔가 더 나은 것을 기대할 때 지루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것은 없으며, 모든 것은 똑같다.

    Charlie> 너무 부정적인 태도 아닌가? 나는 가끔 지루해지곤 한다.
    Operator> 당신은 무언가를 찾아야만 한다. 당신은 자신만의 황홀한 순간을 가져야 한다. 나는 내가 다원주의자라고 생각하고, 다양성이 최선이라고 본다. London의 음악 씬에서 벌어지는 카테고리화 및 선을 긋는 행위들이 당신을 죽이는 것이다. 나는 내가 1초 전에 말한 것에 정 반대되는 내용을 바로 말할 수 있다. 일관성이라는 것은 닫힌 생각을 하는 한 방법일 뿐이다.

    Charlie> 일관되었다는 것은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뜻 아닌가?
    Operator> 일관되었다는 것은 보통 정해진 선, 예를 들자면 맑시스트나 좌파사상 같은 것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좌파 / 우파 - 모두 똑같다 - 이제는 사람들이 알아차리고 있다.

    Charlie> 흠, 나는 뭔가를 믿고 다른 것을 믿지 않는다.
    Operator> Noem Chomsky는 좌파 진영에 속한 언어학자이지만 최근 프랑스의 파시스트 정당이 합법적으로 존속해야 한다는 성명서에 서명했다. 그는 합법적 존속이야말로 그 정당을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말했다 - 그 정당을 뿌리채 뽑으려 노력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며, 모든 것은 그런 식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나는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

    Charlie> 특정 정당이 존재할 수 있게 허락하는 일은 그 정당의 사상에 동조하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없다.
    Operator> 정확히 맞다. 그래서 내가 특정 의견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어느날 나는 그 정당이 존재할 수 없게 하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어떤 쪽으로든 결정을 내릴 수 없는 것이다. 모든 주제에서. 내가 왜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 과거에 대해 말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 이런 사고방식은 나의 정신병원에서의 경험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겠다. 정신병원에서는 그 어떤 결정도 맞지 않는 것이 된다. 예를 들자면, 조현병 환자를 생각해 보자면, 환자에게는 무엇을 해 주거나 말해주어도 도움이 될 수 없다. 또한, 아무것도 해 주지 않고 아무말도 해 주지 않는 것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런 경우에 대체 무엇을 해 줄수 있겠는가?

    Charlie> 조현병 환자들과 어떤 경험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말해줄 수 있는가?
    Operator> 보통... 나는 많은 알코올 중독자들을 다뤘고... 노인성 치매 환자들... 조울증 환자들... 조현병 환자들... 조현병 환자들은 꽤 흥미로운 사람들이다. 그들은 뒷편에 개인이 존재하지 않는, 수 없이 많은 가면들의 중첩 같은 사람들이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한 가면에서 다른 가면으로 바꾸는 것 뿐이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그 어떤 가면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 - 자신이 가진 그 어떤 가면도 싫어한다. 그냥 여러 선택지가 주어진 것 뿐이며, 그들 자신은 그 어떤 선택지도 믿지 않는다. 특정 선택지가 다른 것들보다 하나도 나을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는 가면들 뒷편에 존재해 중심을 잡아 줄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Charlie> 조현병 환자들에게서 동질감을 느끼는 부분이 있는가?
    Operator> 있다. 모든 사람들에게 조현병의 기질이 있으며, 특정 사람들에게서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생물학적인 증거가 꽤나 있다. 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조현병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고전적인 다중인격설 같은 헛소리 말고, 사람들은 때때로 자신을 둘러싼 보호막, 이성이 무너지고 수습이 불가능한 상태 - 미쳐버리게 되는 때가 오곤 한다는 의미에서 말하는 것이다. "Retard"는 어느 날 미쳐버려 다른 사람을 죽여버리게 된 한 남자에 대한 곡이다 - 특별한 의도 없이 말이다. 그 남자는 살인의 결과로 정신병원에 35년간 수감되었다. 사실 35년이 지난 후라고 해도 그 남자를 병원에서 풀어주면 안 되었었다. 언제든 다시 살인을 저지를 만한 사람이므로. 그 딜레마, 어느 선택지도 옳지 않다는 딜레마가 내 흥미를 끈다. 그 것이 우리 음악의 주제이다.

    Charlie> 그렇다면, 밴드로서의 현재 목표는 무엇인가?
    Operator> 우리들만의 공연을 하고 싶다. 오늘은 좀 멍청한 짓거리를 많이 했다. 공연을 할 때, 어떤 포지션에서 하던지간에, 이 모든 일들이 - 다르게 말하자면, 우리는 옆자리로 치워졌고 사람들은 우리를 완전히 잊어버렸다. 개인적으로 이런 부분에 대해 신경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 나는 그냥 어떤 개자식이 나를 여기저기 밀치고 다니는 것 같은 상황 자체가 싫다. 불만을 표현한다거나 하는것이라기 보다는, 나는 나 스스로가 나를 통제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Charlie> 어디서 공연을 하고 싶은가?
    Operator> 가능하다면 흥미로운 장소에서. Marquee나 그런 류의 공연장은 별로다. 내가 주의깊게 보고 있는 것은... 최근 London 지역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지어진 지하실 벙커를 사람들이 빌려주고 있다고들 한다. London 지하에는 이런 지하 벙커들이 엄청나게 많이 얽혀 있으며, 가능하다면 이런 장소에서 공연을 하고 싶다. 몇몇 벙커들은 GLC가, 몇몇은 경찰들이 관리하고 있다. 보통은 저장고로 활용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 누구든지 공연장으로써 빌려 줄 용의가 있다면, 수락하고 진행해 보고 싶다. 아까 한 남자가 접근해 Eric Random, Naked Lunch 스타일의 미래주의 컴필레이션 앨범에 곡을 수록해 줄 수 있겠냐는 제안을 해 왔는데... 나는 우리 밴드가 미래주의 스타일이라고 규정되어지길 바라지 않는다. 나는 인더스트리얼이라고도 불리고 싶지 않다.

    Charlie> 그렇다면 Industrial 레이블과는 상관 없는 음악을 할 것인가?
    Operator> 흠,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냥 상호간의 합의인데, 우리는 모든 것을 한 덩어리에 뭉쳐놓고 싶지 않다. 우리는 다양해지고 싶다.

    Charlie> 그렇다면 어째서 Industrial 레이블에서 두 번째 싱글 앨범을 발매한 것인가?
    Operator> 유명세를 위해서다. 나 스스로는 불가능했다. 돈 문제는 아니다. Industrial 레이블이 제작비를 청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앨범 발매로 £15 정도 밖에는 못 벌었다. 우리는 어느 정도 앨범을 팔고 있지만, 돈을 번 적은 한 번도 없다 - 하지만 크게 신경쓰지는 않는 것이, 앨범 발매는 단지 이름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Charlie> 언론에서 크게 다루어지지는 못했던 것 같은데.
    Operator> [Sounds] 지에서 겨우 언급되었을 뿐이었다 - 단 한 줄이었고, [NME]나 [Melody Maker]에는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았었다. 아마도 우리 앨범이 발매되었을 때 잡지 관련 큰 파업이 진행중이었어서 그랬던 것 같다.

    Charlie> 좀 더 언급되길 바라는 것인가?
    Operator> 아니, 꼭 그렇지만은 않다. 언더그라운드에 남아 있으면서도 몇몇에게는 이름을 알리고 싶은,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다. 마치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정확히 5,000명의 사람들만을 원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한 사람이라도 더 많다면 자신을 상품으로 파는 꼴이 되고, 한 사람이라도 적다면 단순히 시간낭비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항상 그 선 위에서 걸어야 하기에 어려운 일이다.

    Charlie> 그렇다면 밴드의 미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Operator> 각자에게 달련다. 나는 최대한 다양한 것을 해 보고 싶고, 영상도 해 보고 싶으며, 영상에 대한 사운드트랙 작업도 해 보고 싶다. 책도 두 권 쓰고 있는데, 하나는 음악에 대한 내용, 다른 하나는 단어에 대한 내용이다 - 철학과 픽션을 섞은 내용이다. 우리가 당장의 순간에 묶여 있는 좁은 사고방식 보다는 다양한 종류의 생각에 대한. 나는 격렬한 변화, 광적인 생각을 좋아한다... 하나의 주제에서 무언가를 제멋대로 훔쳐 와 다른 것에 적용하는 식으로, 아무도 나에게 "너는 이거야, 너는 저거야"라는 말을 할 수 없도록. 즉 지금 인터뷰 질문들과 똑같은 질문을 나중에 다시 가져온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내 대답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나는 같은 인터뷰를 다시 하지 않았고, 따라서 마지막 말이 진짜일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어쨌든 Surgical Penis Klinik의 공연은 거의 일어나지 않고 있으니 - 이번 공연이 잉글랜드에서의 첫 공연이었다 - 그들이 어떤 음악을 하는지 알아보고 싶다면 Industrial 레이블에서 판매 중인 [Meat Processing Section] 싱글을 사서 듣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나는 "Factory"곡을 더 좋아하는 편이고, 이 곡이 1980년 발매된 것들에서 가장 좋은 곡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Operator는 "Slogan"쪽을 더 좋아했으며, 공연은 이 쪽에 가까웠다.

    추신: 이 공연/인터뷰가 끝나고 몇주 후, 나는 Vauxhall에 위치한 Operator의 거주지에 방문했다... 밴드는 자신들을 담은 그 어떤 사진도 출판되길 원하지 않았다. 이들의 주 목표 중 하나는 스타 및 다른 영웅적인 이미지들, 그런 이미지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문화, 그리고 스스로의 중요성을 홍보하는 문화를 없애는 것이었다... 그들은 각자 자신을 표현하는 이미지라고 뽑으며 세 장의 이미지를 골랐다. 네 번째 멤버 "Tone Generator"는 이 기사가 출판되는 시점에서 호주에서 날아와 멤버로 참여했다.


    출처: [Chainsaw] #11


    [Chainsaw]는 1977년 Croydon 근교에서 "Charlie Chainsaw"가 제작한 펑크 잡지로, 1984년 폐간되기 전까지 14 권을 출판했다. Charlie의 타자기에서 "n"키가 고장나 버리는 바람에 "n" 글자만을 손으로 쓴 것이 이 잡지만의 특징이 되었다. 1980년대에 발행된 것들 중 일부에는 Michael J. Weller의 만화와 두 번의 멋진 컬러 표지가 수록되어 있었다. 1970년대의 발행물에는 Andrew Marr가 언론인으로 성공하기 전 사용했던 펑크 닉네임 "Willy D"의 이름 하에 그려진 [Hitler's Kids]라는 만화가 실려 있었다. Charlie Chainsaw는 이 잡지가 폐간된 후 Rancid Hell Spawn이라는 밴드를 결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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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08 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