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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티브 알비니, 소닉 유스, 그리고 인디 vs. 메이저
    [...]/[Sonic Youth] 2023. 3. 20. 15:26


    소닉 유스의 Geffen (DGC) 이적과 이에 대한 스티브 알비니의 의견, 그리고 그 의견을 나름 반박(?)하는 기사 같은 글입니다. 메이저 레이블에 거의 경기를 일으키는 알비니에게 반박하기 위한 의도로 작성된 글이어서 걸러 들어야 할 필요가 있기도 하고, 애초에 2020년대에 메이저니 인디니 하는 것 자체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측면도 있습니다만... 그런 구분이 아직 중요했던 80~90년대에 소닉 유스가 어떤 일을 겪으면서 메이저로 진출했는지에 대한 맥락이 어느 정도 정리되어 있습니다...



    Steve Albini


    https://youtu.be/2_3dfvNYFik
    "Pull the Cup"



    *********************************************************************************************


    https://pitchfork.com/features/article/7871-bad-moon-rising-the-practical-lessons-of-sonic-youth/


    Bad Moon Rising: Sonic Youth가 남긴 현실적인 교훈에 대해
    [Pitchfork]
    Eric Harvey
    2010년 10월 11일


    지난 9월, 뉴욕에서 진행되었던 ATP 페스티벌에서, [GQ]의 Aaron Lake Smith는 Steve Albini를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다. Albini는 소파에 앉아 쉬고 있었으며, Smith는 그에게 짧은 인터뷰 요청을 했다. Albini는 수락했고, Smith는 잡지사에 기고하는 사람답게 곧바로, 핏불테리어에게 스테이크를 던져주듯이, Albini에게 '메이저 레이블'에 관련된 질문을 꺼냈다. Smith는 Sonic Youth가 1990년 Geffen 레이블과 계약했던 사건을 미끼로 삼았다. Albini의 대답은 이러했다:


    Sonic Youth가 왜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되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전후사정을 전부 알고 있는 것은 아니기에, 그들이 잘못된 결정을 내렸던 거라는 말을 하는 것에 마음 속 어딘가 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나는 Sonic Youth가 '메인스트림'의 일부가 되어 한 일들의 많은 부분을 혐오스럽게 생각한다. 그리고 Sonic Youth가 '메인스트림'과 야합하여 진행한 많은 일들이 메인스트림 음악 산업계와 그들의 말도 안 되는 '스타 제조 시스템' 따위에 일종의 정당성을 부여했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그 사건이 굉장히 모욕적으로 다가왔으며, 그 사건이 한때 완벽했던, 순조롭게 잘 굴러가던 음악 씬의 인물이 돈에 신념을 팔고 타락하게 된 꼴로 보였다. Sonic Youth는 자신들의 기반을 버렸고 그 댓가로 그냥 평범한 정도의 성공만을 거둔 메인스트림 밴드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 언더그라운드에 남아있었더라면 스스로의 자원을 활용해 음악이라는 문화 자체의 극단을 넓히는 수준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상당히 성공적인 독립 밴드가 될 수 있었는데도 말이다. Sonic Youth는 메인스트림 문화에 속하는 것을 선택했으며 이를 통해 메인스트림 문화가 스카우트 행세를 하며 때때로 내 뒷통수마저 서늘하게 할 정도로 음악계를 서서히 잠식해나가고 있는 행위에 일조하는 역할을 맡았다. 터무늬없는 결정이었고, Sonic Youth라는 이름에 먹칠을 하는 부분마저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Sonic Youth 멤버들을 친구로 생각하고 있으며 그들의 음악은 그들만이 할 수 있는 음악이라고도 생각하지만, 그렇게 독립 음악계를 버리고 메이저 레이블과 계약했던 행위는 -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는 일이다. Sonic Youth 멤버들 또한 이에 대해 부끄러워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Sonic Youth의 그 행위가 열망이라던가 야망이라던가 하는 것을 딱히 가지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메인스트림 음악 산업계에 뛰어들도록 장려했다고 생각한다. Sonic Youth는 누구나 언젠가는 록 스타가 될 수도 있다는 그런 덧없는 생각을 옳은 생각인 것 처럼 보여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경력 측면에서 정말로 멍청한 결정을 내리도록 만들었다. 그 때, 음악계는 상당히 더러운 영역이 되었다 - 정말 많은 기생충들, 변호사라던가 매니저라던가 하는 인간들이 떼거지로 활동하던 시기였던 것이다. 그 시절은 실제 일은 밴드가 다 하는데 어디서 뭘 하는지도 모르는 온갖 인간들이 밴드 멤버들의 등에 딱 붙어 피를 쪽쪽 빨아대던 시절이었다. Sonic Youth가 그런 결정을 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는 모르겠다 - '만약에'같은 것은 별로 의미 없는 생각이다. 하지만 나는 Sonic Youth의 메이저 레이블 계약이 '음악'을 어느 정도는 싸구려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 계약 때문에 음악 문화가 조금 더 공허한, 조금 더 추한 문화가 되었으며, 전반적으로 상당한 악영향이 발생하였다고 본다.」


    Albini가 남겼던, 상업적인 록에 반대하는 전설적인 장광설 [The Problem With Music] (역주: 1993년 Albini가 써서 [Maximum Rock'n'roll]에 발표했던, 거대 음악 기업을 조목조목 비판했던 에세이) 을 읽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의견이 낯익게 느껴질 것이다. Albini는 언제나 ('레이블', '변호사', '매니저'등등 따위가 아닌) '밴드' 자체에 대한 완고한 지지자였으며, 저명한 스튜디오 Electrical Audio를 효율적인 방식으로 직접 운영해왔고, 그가 성취해낸 위상을 이용하는 짓은 결코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분명히 해야 하는 사실은, Albini는 Sonic Youth 또한 진심으로 지지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밴드 멤버들하고 개인적으로도 절친한 사이이며, 몇달 후 있을 ATP New Year's Eve 페스티벌에서도 시간을 내어 서로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눌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Albini의 인터뷰에서 생략된, 기사의 흥미를 높이기 위해 다소 변조되어 진짜와는 조금 달라진 부분은, 밴드 문화라는 것이 어떻게 돌아가야만 하는지에 대한 Albini의 의견 자체도 있겠으나 1980년대-1990년대를 거치며 Sonic Youth가 직접 겪었던 기이한 여정과 맥락 또한 있을 것이다. Sonic Youth의 여정은 '메인스트림' 대 '인디' 같은 사상적 대결 구도를 적용할 수 없는 여정이었으며, 미국인과 미국 문화에서 오래전부터 존재했었던 실용주의적인 관점을 적용해야 하는 여정이었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Sonic Youth는 Albini의 대척점에 있는 밴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효율적인 유통, 진실한 회계, 창조적인 매니지먼트, 그리고 좋은 동업자들이라는, 현실에 존재하기 거의 불가능한 이상적인 레이블을 찾아 헤메이는 자본주의자이자 예술가.

    Sonic Youth가 이 모든 이상을 성취하기 위해 스스로 노력했던 과정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들의 여정은 '인디'라는 민감한 문화 카테고리와 누가 뭐라고 말하던지간에 예술가 스스로는 그 카테고리를 자유롭게 무시할 수도 있다는 측면에서 더 따라가 볼 만한 궤적이다. 일종의 스펙트럼을 생각해 보고 그 위의 어느 지점에 위치하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 Albini가 한쪽 극단, 철저한 이상주의자의 위치에 있다고 치면, Sonic Youth는 그들만의 독특한 길을 걸었고 그 과정에서 오늘날 밴드와 레이블들이 얼마나 소규모로도 잘 활동할 수 있게 되었는지를 몸소 예측해 보이기도 했던 것이다.

    Albini의 [GQ] 인터뷰에서 주의할 점은 질문자 Smith 만이 '인디'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 기사에 대한 후속 이메일에서 Albini는 자신의 입장을 보다 더 명료하게 설명했었다:


    「내가 '독립 밴드'와 '독립 음악'에 대해 말할 때 나는 (외부의 조직이나 중개인 없이) 스스로 활동 가능한 밴드에 대해, 그래서 밴드-레이블-팬 잡지-공연 체계가 외부의 보다 더 큰 산업체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알아서 동료들끼리 협력적으로 돌아가는 세계를 구축할 수 있는 그런 밴드에 대해 말한 것이다.」


    Albini의 이상은 그 자체로도 고결한 이상향이며, 수없이 많은 밴드들과 레이블들이 이 이상향에 공감해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상당한 수준의 성공을 이룩해내기도 했었다. 하지만, 필자는 이 이상향에서 표면상으로는 '인디'에 분류되는 레이블들이 메이저 레이블들에 뒤쳐지지 않을 정도로 부정직하고 꼬여 있을 때 어떤 일이 발생하게 되는지, 그리고 자신의 예술을 좇는 밴드가 이러한 상황에 처했을 때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말해보고 싶다. 그리고 Sonic Youth야말로 바로 이 경우에 정확하게 해당하는 좋은 예시가 될 것이다.

    [GQ] 인터뷰에서 Albini는 1980년대 상당히 많은 인디 레이블들이 얼마나 엉망진창이었고 가끔씩은 정말로 비도덕적인 행태를 보였는지에 대해서는 미처 언급하지 못 했었다. 하지만 언급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현실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며, '순조롭게 잘 굴러가는' 것과는 거리가 먼 상태였다는 것을 스스로 직접 경험했을 것이다. 1980년대, Sonic Youth는 인디 음악계의 정말로 부실한 체계를 가지고 어떻게든 미 전역에 자신들의 음악을 알리려 노력하고 있었다. Albini 또한 2006년 [Magnet]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러했던 인디 음악계의 현실에 대해 직접 언급하였으며, 그 시절에도 이미 악명 높았던 (그리고 Sonic Youth의 첫 레이블들 중 하나이기도 했던) Homestead Records에 대해 말하기도 했다. Homestead는 와튼 비즈니스 스쿨 출신의 Barry Tenenbaum이 운영하던 레이블이었다:


    「내가 최고라고 뽑는 병신같은 속임수는 레이블 사장 녀석이 직접 수표에 숫자 금액와 글자 금액을 다르게 적어 넣어 은행이 이 수표를 현금으로 바꿀 수 없도록 만들어버리는 짓거리였다. 무슨 꼬마 아이가 베개 밑에 쿠키를 숨겨놓고는 안 들킬 거라고 생각하는 짓거리도 아니고 말이다. 그 짓거리 및 온갖 부정직한 협잡으로 아주 조금의 이득은 봤긴 했을 거다. 하지만 그는 정말 작은 액수의 이익을 보기 위해 말 그대로 모든 사소한 것에 항상 열성적으로 사기를 쳐 댔었다.
    이런 회계상의 잘못들에 대해 '인간적인 실수일 가능성은 없는가'라고 제기되곤 하는 의문을 Albini는 단칼에 묵살했다. "실수도 정도껏이지, 모든 항목에 대해 회계가 잘못되어 있다면 당연히 의도적인 실수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의도적이지 않은 실수로 그 정도의 회계 오류를 낸다는 것은 말 그대로 불가능하다. 아니, 확률적으로, 최소한 하나 정도는 맞아야 하지 않나?"」


    Sonic Youth 또한 흠잡을 데 없는 음악 취향과 좋게 말하더라도 즐겁게 느껴지지는 않는 사업 방식을 동시에 가진 Homestead와 일을 해야만 했었다. [Magnet]지의 기사에 이 상황을 잘 보여주는 표현이 있었다:


    「Thurston Moore는 Homestead 경영진과의 회의에서 그다지 좋지 않았던 분위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우리 드러머였던 Bob Bert가 회의 전에 제안했는데, 지금 Barry Tenenbaum과 아주 중요한 회의를 할 예정이니까 전부 녹음해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녹음기를 몰래 숨겨서 들어가 비밀리에 전부 녹음하자는 그런 의미는 아니었다. 여러가지 중요한 부분들에 대한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었고, Barry는 전형적인 사업가였기 때문이었다... 뭐랄까, Barry와 대화하는 것은 [피너츠]의 부모들과 대화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계속 '와-와-와'만 반복하는 느낌. Barry가 워크맨 녹음기에 빨간 불이 들어온 것을 알아차렸을 때 그의 표정과 눈빛을 기억한다. 그는 거의 미쳐서 생 난리를 쳤었다. 결국 우리로 하여금 녹음기 전원을 끄게 만들었고, 회의실 분위기는 험악 그 자체가 되었다."」


    누구나 다 욕하는 메인스트림 레이블의 '사업 전략'에서 규모만 작게 축소한 버전 같지 않은지? Sonic Youth는 밴드의 경력에 있어 아주 중요한 지점에서 이런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당시의 그들은 충분한 유명세를 얻어 미국 전역 투어를 기획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으며, Homestead에서 오랫동안 고통받았던 천재 Gerard Cosloy의 도움으로 겨우 투어 일정을 기획할 수 있었으나 투어의 성공 여부를 도울 수 있을 재정적인 지원 및 홍보 지원은 거의 받지 못하였던 것이다.

    더 중요한 부분은, Michael Azerrad가 미국 인디 음악의 역사에 대해 정리한 저명한 저작 [Our Band Could Be Your Life]에 나와있는 글귀에서도 볼 수 있듯이, Sonic Youth에겐 Albini 스러운 '메인스트림 반대 정서'같은 것이 없었다는 점이다.


    「Moore는 말했다. "그 때에는 '인디여서 자랑스럽다'같은 정서는 없었다. 인디 밴드인 이유는 순전히 그것 말고는 밴드를 할 방법이 없기 때문인 경우가 다였다. 메이저 레이블이 아주 조금의 관심조차도 보이지 않는 밴드들이었으니 인디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물론 아주 가끔씩 떠 보는 경우가 있기는 했었다 - Warner Brothers가 한번 [Bad Moon Rising] 한 장을 줘 보라고 요청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Moore는 밴드 홍보에 가장 열심이었던 사람이었고, SST 레이블 (역주: Black Flag 멤버 Greg Ginn의 레이블) 의 주의를 끌어보려고 부단한 노력을 했었다 - 당시만 해도 남부 캘리포니아 기반의 레이블 SST가 '미국 인디'의 상징 그 자체였었으니까. Moore의 홍보 수단 중 하나는 온갖 공연장들의 화장실에 "Hello to Black Flag from Sonic Youth"라고 쓰여진 자체제작 스티커를 붙여대는 것이었고, 이것 말고도 다양한 수단이 있었다. Azerrad는 [Our Band Could Be Your Life]에서 이런 주장도 했었다:


    「...심지어 [Bad Moon Rising]의 Creedence Clearwater Revival/1969년/아메리카나 컨셉마저도 SST의 환심을 사기 위한 의도적인 계산 같아 보인다... SST의 대표 밴드 Minutemen이 항상 Creedence Clearwater Revival은 정말로 훌륭한 밴드라고 추켜세우곤 했었던 것을 생각하자면 말이다.」


    SST 또한 Sonic Youth를 레이블에 완벽히 들어맞는 밴드라고 생각했고, 그들을 적극적으로 환영했다. SST 소속 밴드 목록에 뉴욕 출신의 아방가르드 밴드를 더하면 레이블의 다양한 펑크 스펙트럼이 더 다채로워질 수 있었고, Homestead에 비하면 훨씬 더 유명세를 얻고, 더 멋져 보이게 될 것이며, 앨범 판매량까지도 더 늘어날 수 있을 터였다. 실제로 Sonic Youth는 SST로의 이적 이후 두 장의 정말로 훌륭한 앨범을 발매해 이에 보답하였다: [EVOL]을 통해 미국 전역에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1987년 더 대단한 앨범 [Sister]를 발매해 더 유명해졌던 것이다. 이 실적으로 인해 밴드는 조금 더 장기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좋은 관계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Moore는 곧 Homestead에서 느꼈었던 이상한 점들을 SST에서도 느끼게 되었다. 이 경험은 [Our Band Could Be Your Life]에도 적혀 있다:


    「"SST의 회계 처리 방식은 좀 믿기 힘든 구석이 있었다." Moore의 말이었고, 이는 놀라울 정도로 많은 SST 밴드들이 공유하는 불만점이기도 했다. Sonic Youth는 SST가 직원들을 자꾸 해고하는 것에도 불편함을 느꼈다. "SST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 가끔은 이상하게까지 느껴지기도 했다. 밴드 멤버들이 좋아했던 직원들이 자꾸 해고당했으니까." Moore의 말이었다.
    1987년에 이르러 SST는 누가 보더라도 자만심에 가득 차 보인다고 말할 정도의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다. 1년에 80장이 넘는 앨범을 발매하였는데, 이는 메이저 레이블에서도 시도하지 않을 정도로 말도 안 되는 물량공세였던 것이다.」


    Sonic Youth와 SST의 결별 과정은 좋게 봐 줘도 원만하지는 않았다. 밴드와 Greg Ginn은 소송전까지 벌이며 마스터 테잎에 대한 쟁탈전을 벌였고, Sonic Youth에게는 외부의 도움이 필요해졌다. 밴드는 친한 사이였던 Paul Smith와 연락하였는데, Smith는 미국 인디 밴드들의 앨범을 유럽에 유통시키려는 목적으로 만든 레이블 Blast First (역주: Mute Records의 자회사 중 하나) 를 운영하고 있었으며, 이제 막 미국에서의 음반 제작 및 유통 사업을 시작하려는 상황이었다. Smith는 Sonic Youth를 반드시 잡아야 하는 보석같은 밴드로 보았다.

    Albini와 마찬가지로 Moore 또한 자신이 좋아하는 밴드라면 물심양면으로 지지하는 종류의 사람이었다. 하지만 Albini와 Moore가 결정적으로 갈라지는 일이 여기서 발생하게 된다: Moore는 자신이 좋아하는 밴드들에게 적극적으로 연락해 메이저 리그로 함께 진출하자고 선뜻 제안했던 것이다. Paul Smith의 사업에 Sonic Youth가 담당한 역할이 어느 정도였는지에 대해, Azerrad는 [Our Band Could Be Your Life]에서 설명했었다:


    「1987년, Smith는 뉴욕에 사무실을 차려 본격적으로 Blast First 레이블 용 밴드를 모집하기 시작했다. 물망에 오른 밴드로는 Dinosaur Jr. (SST), Big Black (Touch & Go), Butthole Surfers (Touch & Go), 그리고 Sonic Youth가 있었다. Sonic Youth 멤버들의 헌신적인 설득 및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밴드도 Blast First와 계약하지 않았다. Big Black의 Steve Albini의 경우에는 계약 따위를 넘어 Sonic Youth 멤버들에게 진심어린 화를 표출하였고, Albini의 절친한 친구 Corey Rusk의 레이블 Touch & Go 에서 가장 잘 팔리는 밴드들을 몰래 빼내오려는 수작질이라고 비난하기까지 했었다. Sonic Youth와 Albini 사이의 관계는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입게 되었다.」


    SST에서 나온다는 결정은 Sonic Youth에게 좋은 결정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나쁜 결정이기도 했다. 밴드는, Lee Ranaldo의 유명한 표현에 따르자면, "SST의 '대단'한 행정 능력"으로부터 마침내 벗어날 수 있었지만, 대신 홀로 떨어져 야심만만하지만 경력은 하나도 없는 신출내기의 부실한 관리 아래에서 그들의 대작 [Daydream Nation]을 만들어야 하는 처지가 되었던 것이다. Azerrad도 주목했듯이, 밴드는 SST에서 나와 곧바로 메이저 레이블과 계약하지는 않았다. 비평가 리스트에 오르기 위해 앨범 발매일을 연말 부근으로 미루는 수작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Sonic Youth는 Paul Smith와 그럭저럭 안면이 있던 남부 캘리포니아의 신생 펑크 레이블 Enigma (EMI가 소유한 레이블이었으며 Capitol의 유통망을 공유할 수 있는 곳이었다) 와 잠깐 일을 같이 한다는 결정을 내렸으며, [Daydream Nation]의 미국 유통은 Enigma를 통해, 유럽 유통은 Blast First를 통해 진행했다. 놀랄 것도 없지만, Capitol은 [Daydream Nation]을 어떻게 홍보하고 유통해야 할 지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었으며, 포스트펑크의 가장 훌륭한 업적 중 하나가 될 앨범의 유통을 말 그대로 개판으로 진행했다. 그렇게 [Daydream Nation]은 향후 수 년간 전형적인 '평론가의 앨범'으로 여겨지게 된다.

    하지만 Moore에게 있어 이 '실패'는 단순히 Paul Smith 개인의 실패였으며, "메이저 레이블 문화"의 실패 같은 것은 아니었다. Albini/Jello Biafra/[Maximum Rock'n'roll] 등등이 믿던 인디 vs. 메이저의 개념을 Moore는 믿지 않았던 것이다. Moore는 오히려 그런 양분법과는 아주 먼 사람이었다. Moore가 본 인디 문화는 하나의 기회로써 천천히 상업 세계에 스며들어가고 있었던 문화였다. Azerrad는 [Our Band Could Be Your Life]에서 Sonic Youth의 결정, 겉으로 보기에는 영혼을 팔아 돈을 추구하는 것 처럼 보였던 그 결정의 뒤에 숨어있었던 논리를 강조하였다:


    「...인디 씬은 음악에 진심인 팬들의 대안적인 교류 창구가 아니게 되어버렸으며, 그저 시장 규모를 늘리고 자신들의 비중을 높이려는 기회를 찾아다니는 또 다른 산업에 불과한 것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상업적 활동조차도 제대로 못 하고 있었다. Sonic Youth가 알아차린 그 변화, 그 변화가 진짜라면, 적어도 자신들이 뭘 하는지는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과 일을 하는 것이 나쁠 게 뭐가 있겠는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나는 더 이상 독립 음악 씬에 그 어떤 충성심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내가 아는 한 독립 음악 씬은 완전히 혼돈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Moore의 말이었다.」


    필자는 Sonic Youth가 메이저 레이블과의 계약을 추구했었던 행위가 결국에는 '옳았다'라거나 '틀렸다'라는 결론을 내리는 것이 그렇게까지 중요한 사항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 중요하고 흥미로운 것은, 이 밴드, 예술계와 펑크 세계에서 명망이 있던 이 밴드가, '사상'보다는 '현실'에 주목하여 다분히 실용주의적인 관점으로 활동했다는 사실이다. 1990년, Geffen 레이블은 Sonic Youth의 새 앨범 [Goo]를 발매하게 된다.

    Geffen의 창립자 David Geffen은 1970년대 초반 캘리포니아 Laurel Canyon 지역 인디 음악가들의 안식처로써 기능했던 레이블 Asylum을 설립했을 때 부터 이미 메이저 레이블 업계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여겨진 인물이었다. 그는 1980년 Warner의 지원을 받아 자신의 이름을 딴 레이블 Geffen을 설립하였고, 10년 후 Geffen을 MCA에 매각해 억만장자가 되었으며, 좀 더 고급스러운 느낌의 산하 레이블 DGC를 설립해 보다 더 진보적인, '새로운 재능'을 가진 음악가들의 음반을 발매하는 용도로 사용하였다. 1994년 무렵, 자신들이 좋아하는 밴드들이 앨범을 만드는 것을 보고 싶어했던 Sonic Youth의 기민한 홍보 및 설득 능력, 그리고 DGC의 엄청난 자금력에 힘입어, Weezer, Beck, 그리고 Nirvana라는 걸출한 밴드들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기도 했었다.

    1992년 7월, 그런지/얼터너티브 열풍이 최고조에 이르른 시점에 진행되었던 [Spin]지와의 인터뷰에서, Moore는 DGC와의 계약이 괜찮은 선택인 이유를 세 가지로 설명했었다: 성격도 좋고 아는 것도 많은 직원들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것, 더 이상 일상적인 일을 하지 않고 음악에만 온전히 몰두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으로 Homestead나 SST같은 레이블들보다 훨씬 더 믿을 만하고 정직한 레이블에서 일한다는 것. Sonic Youth가 보여 온 실용주의적인 행보와, 인디라는 것에 대해 딱히 사상적으로 열광하지 않는 모습을 생각한다면, DGC로의 이적은 당연한 수순이었을 것이다:


    「Thurston Moore: 봐라, 지금 우리 멤버들은 모두 하루 24시간 내내 음악만 만들고 지낼 수 있다. 더 이상 수없이 많은 음악가들이 그러듯이 먹고 살기 위해 음반점 직원이라던가 복사점 직원 같은 잡다한 일을 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다. 모든 메이저 레이블들이 내부에 얼터너티브 음악 부서를 따로 만들어 두었으며 이 부서 직원들은 전부 인디 음악계에서 온 사람들이다. 우리는 좀 더 기다린 후 지금 계약했을 수도 있었고, 아마 그랬더라면 더 많은 계약금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상당한 수준의 돈을 말이다. 우리는 계약금을 조금 줄이고 대신 음악에 대해 전권을 갖는 조건으로 계약을 했다.
    ...
    아마도 상당수의 팬들이 기업 수준의 록 음악 레이블에서 정치적으로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잘 모르고 있을 것이다. 현실을 봐야 한다, 우리는 지금 기업 경제로 돌아가는 미국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지금 이 회사, DGC가 그 어떤 인디 레이블보다 우리에게 더 좋은 조건을 주고 있으며 우리를 더 잘 대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표현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내 눈에는 DGC가 인디 레이블들보다 더 '프로페셔널'한 것 같다.
    Kim Gordon: 인디 레이블과 계약했던 시절을 돌이켜 보면, 레이블이 일을 하는데 이런저런 것들을 말 그대로 처음으로 해 보는 것이어서 '하면서 배우는' 방식인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리고 지금 DGC가 제공하는 온갖 지원과 자원들을 인디 레이블은 갖고 있지 못했었다. 우리는 지금 DGC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다. DGC와 '함께' 일하고 있다.」


    필자에게는 "우리는 기업 경제로 돌아가는 미국에서 살고 있다"는 표현이 강하게 와닿았으며, 물론 이러한 양면적인 태도야말로 Albini가 가장 혐오하는 것들 중 하나일 것이다. 인디 순수주의자들이라면 이런 표현에 바로 구토할 것이리라. 하지만 동시에, 이 인터뷰 내용은 인디 문화에 대한 흥미로운, 색다른 관점을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 1980년대 Sonic Youth가 겪었던 경험이 어땠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면, 그들은 기업/상업 문화의 가장 안좋은 측면들 - 의문스러운 회계 및 계약, 노동자들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 관리자들 - 을 작디 작은 '인디 레이블'에서 겪었던 것이다. 엄청난 유통망을 보유한 고급스러운 메이저 레이블들이 이 인디 레이블들보다는 나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 정말로 잘못된 생각일까?

    2008년 [Pitchfork.TV]의 Nitsuh Abebe와의 인터뷰에서, Moore는 밴드가 어째서 DGC를 선택했었는지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설명했었다:


    「...Geffen과 막 계약했을 때, 모든 것이 순조롭게 돌아갔었고, 직원들도 우리에게 친구처럼 잘 대했었다. DGC 직원 중에는 SST 출신 Ray Farrell도 있었고, 대학가 라디오에서 일하던 Mark Kates도 있었다. 말하자면 80년대 독립 음악계에서 함께 구르던 사람들이 이제는 메이저 레이블에서 다시 한 번 함께 일하게 된, 그런 느낌이었다. 대학가 라디오 이후의 세계... 그러니까, 뭐랄까 말이 되는 상황이었다, 다시 한 번 모여서 함께 일하는 것이.
    ...
    DGC가 우리 앨범들을 발매한 것에 고맙게 생각한다. 그리고 여러가지로 굉장히 안정적인 생활이기도 했다. 건강보험이라던가 그런 모든 혜택들을 멤버 전부가 받을 수 있었으니까.」


    Albini 같은 관점을 가진 사람이라면 좀 더 다른 방식으로 생각했을 것이며, 그런 관점을 가질 만한 정당한 이유 또한 정말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음악만 해서 먹고 살 수 있다는 것, 거기에 건강보험 혜택도 받을 수 있다는 것, 거기에다가 믿을 만한 인디 출신 동료들과 함께 제대로 일할 수 있다는 것은, 말 그대로 꿈 같은 직업일 것이다. 심지어 그 직업이 기업계와 야합함으로써 스스로의 손을 더럽히는 일을 하게 되는 것이더라도 말이다. 2008년 [The Seattle Times]와의 인터뷰에서 Moore는 실제로 음악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의 입장에서 '인디'라는 것이 음악가에게 무슨 의미인지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했었다:


    「그 당시만 해도 Geffen은 다른 메이저 레이블들에 비해서는 독립적인 레이블로 인식되곤 했던 레이블이었다... Geffen은 스스로 활동할 수 있는 레이블이었으며 Warner-Elektra-Atlantic 유통망을 활용할 수 있는 레이블이기도 했다... 거기에 사옥도 굉장히 작은 집이었었다. Geffen의 사무실은 L.A.의 Sunset Boulevard에 위치한 작은 주택이었으며, 60년대 후반 ~ 70년대 초반 L.A. 음악 씬의 분위기가 그대로 남아있는 것 같은 장소였었다.」


    Moore에겐 단순히 '메이저' 기업들과의 연관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Geffen과 계약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가 안 되는 선택지였을 것이다. Moore가 Geffen에서 본 것은 개성있고 독특한 레이블과, 친절하고 자기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고 있는 동료들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여기에 더해, Sonic Youth가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제대로 된 홍보'도 있었다.

    그리고 Sonic Youth는 그 홍보의 효과를 제대로 누렸었다. Sonic Youth가 Geffen에서 얼마나 좋은 음악들을 만들어 왔는지는 따로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 Homestead 또는 SST 시절에 비하면 조금 다듬어진 느낌의 음악들이었지만, 대체로 좋은 방향으로 다듬어진 음악들이었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더 중요한 사실은, Sonic Youth의 음악들이 Geffen의 인프라를 통해 미국 전역의 수없이 많은 꼬맹이들에게도 들려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필자 또한 15살 때 MTV에서 "100%"의 뮤직비디오를 보게 되었으며, 후, 갑자기 더 이상 머리를 자르지 않고 장발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창고에서 Santa Cruz 스케이트보드를 다시 꺼내왔으며, 195 cm의 깡마른 체구였던 Moore를 보며 나 또한 키만 멀대같이 큰 말라깽이라는 사실이 인생에서 처음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Youth Against Fascism"의 가사 '나는 Anita Hill을 믿어' 및 "Swimsuit Issue"의 Kim Gordon 보컬을 들으며 섹스 및 권력에 대한 페미니즘적인 시각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을 해 보게 되기도 했었다. 나이를 좀 더 먹은 후에는 대학가 라디오의 DJ가 될 수 있었고, 이 때 몇 안 되는 청자들을 개종시키기 위해 밴드의 곡들 중 가장 중독적인 곡 "Bull in the Heather" (Sonic Youth를 대표한다고 말할 수는 없는 곡이지만 Lou Barlow가 "Natural One"을 만들었던 것과 같은 느낌의 곡이라고 생각한다) 를 재생하기도 했었다. 그 때도 그리고 지금도 Moore의 DGC 솔로 앨범 [Psychic ♥♥♥'s]는 말도 안 되는 정도로 저평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The Diamond Sea": 20분 전부, 너무나도 아름답다.

    밴드의 팬의 입장에서는 Sonic Youth의 새 앨범이 2년마다 한 장씩 나온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밴드의 입장에서는 여러가지로 복잡해지는 사정이 뒤에 숨어있었다. 규제 완화와 인수합병은 점점 더 통제를 벗어나기 시작했고, MTV는 Video Music Awards 말고는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버렸으며, 주류업계의 큰손이 재정상황을 지배해나가기 시작했다. 인디 옹호자들이라면 "거 봐라 내가 뭐라고 그랬냐!"라고 외칠 만한 일들이었다. Moore는 [The Seattle Times]와의 인터뷰에서 이에 대해 말했었다:


    「Geffen에 대해 안좋게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마지막 몇 년 동안은 Geffen이 더 이상 개인적인 관계를 만들 수 없는 회사가 되어버렸던 것 또한 사실이었다. Geffen은 계속해서 새로운 사람들을 고용하고 기존 사람들을 해고했으며 이 속도가 너무 빨라져서 더 이상 그 누구에게도 좋은 것이 없는 지경까지 다달랐다... 기존의 사람들은 계속해서 사라져갔으며 완전히 새로운, 음악 산업계에 끼어들 수 있을거라는 희망에 찬 젊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밀려들어왔다. 이런 변화가 끊김 없이 지속되었으며, Geffen에서의 마지막 앨범 2, 3개 정도는 어떻게 보자면 제작 자체가 처참하고 형편없었던 경험이었다.
    ...
    나는 언제나, 어떤 지점에서는, 우리 같은 밴드가 Geffen 같은 레이블에 소속되어 있는 것이, 순전히 그 레이블의 성격, 어떻게 보자면 딱히 이렇다할 특징이 없는 성격에 의해 평가절하당하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했다.」


    2008년, 대다수의 음악 팬들이 '메이저 레이블' 하면 그다지 좋은 생각을 하지는 않게 되었던 시기에, Sonic Youth는 18년간의 계약을 청산하고 Geffen을 떠나게 되었다. 대부분의 음악 팬들은 메이저 레이블을 '큐레이터'라기 보다는 소송이나 남발해대는 집단으로 생각하고 있다. 음악 산업계 특유의 아이러니 중 하나인데, 업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널리 알려진 브랜드들이 보통 가장 작은 규모의 회사라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Sonic Youth에게는 그런 논의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이야기였다. 지난 20년간 Sonic Youth가 보여 준 꾸준한 음악 활동을 보라: 9장의 앨범들 그리고 몇십 개 정도는 되는 정말 훌륭한 곡들. 필자는 15살에 [Dirty]를 발견했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Sonic Youth가 새로 발매하는 앨범들을 들으며 함께 나이를 먹었고 성장했다.

    Matador 레이블 또한 지난 세월동안 성장해왔다. Sonic Youth가 '메이저 레이블' 소속의 '인디에서 유명한' 밴드로서의 활동을 시작하던 1990년, Gerard Cosloy 또한 Homestead를 나와 Matador에 합류했다. 그리고 Sonic Youth는 Matador로 이적해 Homestead 시절 함께 일했던 옛 동료 Cosloy를 다시 만나게 되었고, Matador의 21주년 기념 행사에서 Sonic Youth가 '레이블 신입 밴드'로서 축하 연주를 하게 되었다. 18년간의 Geffen 생활을 청산했다는 것을 다시 되새김하는 것 마냥, 밴드는 축하 연주의 대부분을 DGC 이전의 앨범들, [EVOL], [Sister], [Daydream Nation] 수록곡들로 채웠다.

    Sonic Youth가 돌아온 '인디'는 그들이 떠났을 때의 '인디'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그냥 조금 더 규모가 커졌고, 여러가지 측면에서 조금 더 강해졌을 뿐. [Pitchfork.TV]와의 인터뷰에서 Lee Ranaldo는 그들이 DGC와 계약했던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유통'의 문제였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설명했다:


    「...메이저와 계약했던 가장 큰 이유중 하나는 우리 앨범을 보다 더 널리 유통시키기 위해서였고, 지금은 그 시절과는 상황이 제법 달라졌다. 그러니까, 이제는 Matador 같은 소규모 레이블도 메이저 레이블들과 비슷한 수준의 음반 유통이 가능해지지 않았는가. 거기에 더해, 소규모 레이블은 보통 음악을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레이블이고, 따라서 특정 앨범이 어디로 유통될지에 대해 좀 더 상식적으로 대하는 부분도 있다고 본다.」


    Sonic Youth가 아직 DGC에 있던 시절, 일반적이지는 않은, 흥미로운 협업들이 이루어지기도 했었다. 1993년, 얼터너티브 열풍에서 돈 냄새를 맡았지만 동시에 메이저 레이블의 이름이 명시적으로는 들어가지 않는 편이 낫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Warner는 Sub Pop 레이블과 합작으로 ADA (Alternative Distribution Alliance) 를 결성해 간접적인 방식으로 사업을 벌였고 돈을 챙겼었다. ADA는 아직까지도 사업을 지속하고 있으며, 오늘날 Matador 및 수많은 인디 레이블들의 앨범들을 유통하고 있다.

    적절한 유통과 홍보야말로 성공적인 인디 음악으로 향하는 문의 열쇠일 것이다 - 언제나 그러했다. 오랫동안 성공적인 운영을 보여 온 인디 레이블들은 전부 이 사실을 잘 이해한 레이블들이었다 - Secretly Canadian (역주: Songs: Ohia, Antony and the Johnsons, The War on Drugs등이 계약했던 인디애나 레이블) 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이들은 유럽의 광팬들에게나 팔리던 Songs: Ohia의 7인치 시절부터 이미 자신만의 유통 시스템을 만들기 시작하였으며, 2009년에 이르러서는 이 유통 시스템이 잘 정립되어, Touch & Go가 유통업을 그만두는 바람에 갈 곳이 없어진 여러 인디 레이블들을 받아 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Secretly Canadian은 오늘날 Warner와 함께 일하고 있지만, 메이저 레이블의 마케팅이라던가 과대광고 따위를 위한 협업이 아닌, Yeasayer Bon Iver의 앨범 등등을 전국의 Best Buy 매장에 진열시키면서도 동시에 자신들만의 유통망을 통해 (아직도 남아있는) 동네 인디 음반가게들에도 공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Warner와 함께 일하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과 P2P 네트워크를 보고 그런 방식은 음악 문화를 지속시킬 수 없는 구조라고 단정짓고는 넘어가는 편이 쉬운 길이겠지만, 실제 세상에 단순히 그런 측면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인디 레이블들은 메이저 레이블이 따라잡을 수 없는 빠른 속도로 음악 문화를 발전시키고 변화시킬 수 있으며, 전략적인 협업과 유통망 공유를 통해 이러한 변화를 더 가속시킬 수 있다. Warner는 '보스'가 아닌 '파이프라인'인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런 오늘날의 상황에 있어 가장 멋진 부분은 인디와 메이저의 이런 연결고리를 잘 아는 사람들이 대체로 그 연합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현재의 상황이 1990년 Sonic Youth가 메이저 레이블과 계약했던 것에서 자라나온 것이 아닌가, 실용주의적 관점/부실한 인디 레이블들과의 안좋은 추억/딱 적당한 정도로 단순했고 어렸던 예술관이 합쳐져 나온 결정이었던 '메이저로의 이적'이 20년의 시간을 지나 음악계의 사람들로 하여금 메이저 레이블들과 적절한 방식으로 협업을 할 수 있도록 해 준 기반을 마련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The New Yorker]의 Sasha Frere-Jones는 최근 "이제 메이저와 인디 레이블의 차이는 레이블의 미학보다는 소속 밴드들이 자신의 경력과 미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더 달려 있게 되었다"라고 개인적인 의견을 밝혔었다.

    멋진 의견이라고 생각하며, 아마도 Albini 또한 동의하지 않을까 싶다. Albini의 [GQ] 인터뷰 전문에는 웹페이지-친화적인 찌라시들에 밀려 완전히 잊혀져버렸던 Albini의 한 의견이 나와 있기도 했다. 필자가 살면서 읽어 온 음악가의 의견들 중 최고의 의견이라고 생각하며, 여기에 반복해 적어 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상당히 합리적인 모습을 보인다. 록 밴드에 소속된 정말 많은 사람들은 단지 음악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들에게 '좆같이 굴어도 되는 권리'가 주어졌다고 생각하고. '음악계'가 '현실 세계'와 분리된, 동떨어진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음악계에서도 정상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면서 행동할 것이다. 나는 Shellac이 하는 것들이 딱히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말로. 그냥 평범하다고 생각하지. 음악계에는 이상하게 왜곡된 도덕기준, 정상적인 삶에서 벗어나면 벗어날수록 더 좋아지고 더 중요해진다는 그런 관념이 있으며, 음악 산업계는 이런 관념을 받아주고 또 부추겨 왔다. Shellac 멤버들이나 아니면 우리가 존경하는 다른 밴드의 멤버들에게는 록 밴드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은 그냥 아주 평범한, 정상적인 삶의 일부일 뿐이다. 아니, 이발소에 머리 자르러 갈 때 좆같이 굴지는 않지 않나. 그러면 대체 왜 밴드에 속해있다고 좆같이 구는 건가?」


    Albini는 자신의 불평을 늘어놓을 때마다 언론에 자주 언급되는 사람이며, 이는 단순히 Albini가 불같은 성격인 것 때문만은 아니다 - Albini는 정말로 똑똑하고 조리있게 말을 잘 하는 사람이며, 우리가 지난 세월동안 '인디'라고 이름을 붙여 온 그 엄격한 예술 사상의 일차적인 주창자로서 손색이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실이 Albini가 언제나 옳다는 보증수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메인스트림'이라는 상상 속의 이미지에 발을 살짝 담가 보는 행위, 거대 기업과 손을 잡는 행위를 하면서도 개자식이 아닐 수 있고, 자신이 만드는 음악을 싸구려로 격하시키지 않을 수 있고, 탐욕스러운 기업가들의 용병 노릇을 하지 않을 수 있다. 당신은 그 거대 기업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Dirty Boots"같은 뮤직비디오를, 1990년대 초반 도시 근교에서 자라났던 10대들의 감성을 너무나도 낭만적으로 그려 낸 영상을 만드는 데에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패를 잘 알고 규칙을 이해하고 있기만 한다면, 당신은 기업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닌, 기업과 '함께' 일할 수 있다. Matador 같은 성공적인 인디 레이블이 하고 있는 일이 바로 그런 일이다.

    하지만 더 중요할 수도 있는 것은 이 작은, 과장되어 부풀려진 온라인 소동이 거대한 문화적 변화의 흐름을 증언하고 있는 증거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2010년대에 이르러 Albini의 아이디어, 그의 이상적이고 긍정적인 아이디어가 어쩐지 좀 낡아 보이는 점이 있다는 것, 펑크에서 촉발되어 지난 30년간 음악계에 자리잡았던 인디 이데올로기가 이제는 더 이상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딱히 와닿지는 않는다는 것, 아마도 그 이데올로기가 이제는 점차 세월 속으로 사라져가는 듯 보인다는 것.



    https://youtu.be/44ZJj1Yk2Dc
    "The Diamond S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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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urston Moore / Kim Gordon / Lee Ranaldo / Steve Shelly

     

    2022/01/20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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