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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ptones
    [...]/[Public Image Limited] 2023. 3. 21. 09:22


    https://youtu.be/3sXkuzapsoI
    "Caree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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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www.furious.com/perfect/keithlevene2.html


    Keith Levene 인터뷰, 파트 2/4
    Jason Gross
    [Perfect Sound Forever]
    2001년 5월


    PSF> The Slits Viv Albertine과 함께 작업하고 있지 않았었는지?

    Levene> 씨바, 초창기 잉글랜드 펑크에 내가 기여했던 부분이 얼마나 많은데, 그 어떤 놈도 내 이름을 언급하는 꼴을 본 적이 없다! 미친, 바로 내가 The Slits 창립 멤버인데 말이다! 이제는 너무한다는 생각마저 든다.

    PSF> 당신의 관점을 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Levene> 좋다... 그 무렵 나는 Vivianne 그리고 Q라는 친구와 함께 squat(역주: 비어있는 건물에 불법으로 거주하는 것)에서 살고 있었다. 꿈만 같은 시절이었다... 나는 Vivianne을 정말 좋아했었다. 하지만 그 때만 해도 무슨 '씬'이라던가 그런 것은 거의 없었다. 나는 씨발 진짜로 Vivianne을 좋아했고 Vivianne 또한 나를 좋아했다. 서로 이런저런 것들을 얘기하러 자주 만났고 이런저런 부탁도 하곤 했다. Vivianne은 Johnny Rotten이 얼마나 흥미로운 인물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고 "Johnny와 실제로 만나 얘기를 해 보면 어떨까" 같은 얘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아, 그런데 Keith, 혹시 나한테 기타 가르쳐 줄 수 있어?"같은 부탁도 했다. 그 후 Vivianne은 레스 폴 주니어 기타를 구하게 되었고 여전히 연주는 할 줄 몰랐다. 진짜 '펑크 록커'였다. 그렇게 내가 Vivianne에게 기타 연주법을 알려 주었고 나는 그녀에게 정말 잘 해 주었다.
     그러다가 이 잔뜩 취한... Paloma McLardy에게 'Palmolive'라는 이름을 지어 준 사람이 바로 나였다. 내가 밴드로서의 The Slits를 모았던 것이다. Nora Forster (역주: Ari Up의 어머니, John Lydon과 결혼했다) 가 일종의 매니저 역할이었다. The Slits가 뭔가 필요해질 때 마다 Nora를 찾아가 이런저런 것을 구할 수 있냐고 물어보는 식이었으니까. 명백히 Nora의 연줄로 Ari Up The Slits에 참여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개같은, 미친년들... 내가 The Slits의 음향 설정 같은 일들을 해 줬었다. 그러다가 Dennis Bovell을 어디서 데려와서는 프로페셔널 수준의 프로듀싱을 했던 것이었다. 이해할 수 있는 결정이었지만, 정말 냉정한 결정이었다고도 생각한다. 내가 프로듀싱을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나는 The Slits와 함께 정말 많은 것들을 했었다. 공연에도 정말 자주 참여했었고 음향 쪽 정비는 내가 거의 다 했었다. 씨발, 진짜로 내가 얼마나 많이 도와줬었는지. Adrianna (Ari Up) 는 The Slits를 자신의 밴드로 만들었고 그대로 밀고 나갔다.
     이게 내가 말할 수 있는 The Slits의 역사이다. 물론 내가 얼마나 잉글랜드 펑크 씬에 기여했는지는 이 것보단 조금 더 많은데, 어째서인가 하면, 여기에 Mick Jones (역주: The Clash의 기타리스트) 가 끼어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Vivianne는 Mick을 상당히 자주 괴롭혔었다. Vivianne이 나와 같은 squat에서 살았으니 말이다.
     내가 아직 The Clash의 멤버였을 때, Mick은 우리의 squat로 와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고는 했었다. Mick이 내가 상당히 어리다는 것을, Mick 보다 무려 3살이나 어리다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 그랬고, 사실 Mick 때문에 The Clash를 탈퇴한 것이었기도 했다... 내 18살 생일이었다. 그 때 (21살이었던) Mick이 처음으로 내가 18살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Mick하고 버스 정류장 (웃음) 에서 서 있었는데 Vivianne이 와서는 "아, 오늘 Keith 생일이야"라고 말했다. Mick은 "어, 몰랐네. 그러면 지금 몇 살이야?"라고 물었고 나는 내 나이를 말했다. Mick은 "아니, 거짓말, 18살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반응이었다. Vivianne이 내가 지금 18살인 것이 맞다고 말했다. 나는 어릴적부터 키가 많이 자라서 14살 무렵에 이미 하이힐을 신은 Vivianne보다 훨씬 더 큰 키였다. 그러니 좀 늙어 보였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증거로 내 운전면허증을 Mick에게 보여줬다. 바로 그 날 부터였다. Mick은 나에게 진짜 좆같이 굴어댔고 항상 신경을 긁어댔다. 아니, 나는 그런 취급을 받을 정도로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언젠가, 토요일 오후였는데, 나는 그냥 내 일을 하고 있었는데 Mick이 와서 "씨발 리허설에 왜 안 왔지?!"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아니, 그 때는 애초에 미리 공식적으로 계획된 리허설 스케쥴이 없었고, 나는 먹고 살려고 일을 하고 있었단 말이다! 대체 뭐가 문제였던 건지? 그 날 이후로 계속해서 이런 식이었다. 그리고는 Vivianne이 찾아와 Mick을 괴롭히기 시작했고 온갖 병신갖은 말싸움을 하곤 했었다. 나는 The Clash를 나왔고, 그래도 계속해서 그 squat에서 살고 있었다. Mill Hill에서 친구들을 만나 놀기도 했고 여러가지 다른 일들을 하기도 했었다. 내 '본부'는 Sheppard's Bush의 그 squat였다.
     그 후, 나는 집을 하나 사서 거기서 살게 되었다. PiL 활동 덕이었다. (웃음) 모든 것이 바뀌어버렸다. 이 때 Vivianne은 Chelsea에서 살고 있었다. 온갖 병신같은 일들이 일어났었다. Vivianne이 어째서 이 시절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지, 충분히 이해한다.

    PSF> 뭐, Vivianne이 당신으로부터 기타를 배웠다고 공식적으로 언급하긴 했었다.

    Levene> 하, 얼마나 다정한 행동인지. 사실이라면 내가 아는 한 처음으로 내 이름을 언급한 것이다. 나는 Vivianne이 나에 대해 말이라도 꺼내는 걸 본 적이 씨발 단 한 번도 없었다.

    PSF>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서... PiL의 시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 같다. 덥(Dub)이 상당히 중요한 영향이었다고 말했던 것 같은데.

    Levene> 맞다, 그 때에는 덥이 정말로 중요한 음악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내가 개인적으로 멋지다고 생각했던 것 뿐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렇게 되었다... 내가 느끼기에는 당시 펑크 씬의 '최고 중의 최고'들은 전부 덥에 푹 빠져 있었다. 그 때 A&R (역주: artists and repertoire, 레이블 회사에서 새로운 음악가를 발굴하고 감독하는 담당) 직원들 몇몇은 덥 레게에 완전히 푹 빠져 있기도 했었다. 우리는 여러 자메이카 밴드들을 알고 있었고 Richard Branson (역주: Virgin 그룹 창업자) 에게 소개시켜 Virgin이 그들을 쪽쪽 빨아먹을 수 있게 하기도 했었다. The Slits에게 Dennis Bovell이 붙게 된 것이 우연이었겠는가?

    PSF> PiL The Clash와 얼마나 달랐다고 생각했었는지? Sex Pistols 시절의 Johnny Rotten하고도 얼마나 달랐었는지?

    Levene> PiL이 좀 더 '느리다'고 생각했다. The Clash 활동에서는 모든 것이 빨랐고, 밴드는 아주 먼 곳까지 가려고 했었다. 물론, 새로운 문법을 가지고 말이다. The Damned도 정말 '빠른' 밴드였지만 그들의 문법은 잘 알려진 것들이었다. 나는 머릿속에 전혀 다른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고.
     PiL의 원칙은... 매니저 없이, 프로듀서 없이, 변호사는 필요할 때에만, 우리는 밴드가 아니라 '회사'다,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야 한다, 모든 것을 통제해야 한다. 내 생각에 그 때의 PiL은 스스로를 조금은 중요한, 조금은 '모든 것'이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PSF> John Lydon의 어떤 점에 이끌려 같이 활동을 하게 되었던 것인가?

    Levene> John은 뭐랄까,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는 인물이다. 그는 자신만의 놀라운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다. PiL 결성 당시의 그는 최전성기였다. Sex Pistols에 속해 있었고 그 때문에 미친 듯이 열받는 상황들이 있었으며 결국 밴드는 해체했다. 뭐 누구라도 John을 온갖 방식으로 씹어대며 즐길 수는 있겠지만, 그랬거나 말거나, John은 누군가와 함께 무언가를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John은 동시에 진짜 열받는, 재수없는 놈이기도 했다. John은 그 어떤 것도 도와주려 하지 않았다. 그는 그림이 어떻게 나와야 하는지, 어떤 결과가 나와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고, 실제 상황이 그의 아이디어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주변 사람들의 탓을 했다. 그는 언제나 남들은 전부 약해빠진 놈들이라는 식으로 굴었고, 자신만은 그렇지 않다는 허세를 부렸다. 사실 일이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았던 진짜 이유는 John이 자기 할 일을 안 해서였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PiL의 초기에 John은 자기의 '역할'을 진짜 제대로 수행했었다. 나는 내 음악을 표현하는 것에 있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해 조금은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당시 PiL이 하고 있다고 느껴졌던 음악과 PiL이 실제로 하고 있었던 음악은... [Commercial Zone]에서 거의 그 목표에 도달했었던 것 같다. 진짜로, PiL의 음악에서 부족했던 것은 John, 그리고 John에 걸맞는 음악이었다. [Commercial Zone]은 [This Is What You Want, This is What You Get]과는 완전히 다른 앨범이다.

    PSF> Jah Wobble이 밴드에 합류하게 된 시점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있었다. Jah Wobble PiL에 무엇을 더했다고 보는지?

    Levene> 자연스러움. Paul Simonon (역주: The Clash의 베이시스트) 의 경우와는 다르게, 나는 Jah Wobble에게는 베이스에 관련해 그 어떤 것도 간섭하지 않았었다. Paul은 베이스를 배우면서 시작했었고, 그 덕에 베이스를 잘 다루게 되었고, 시간이 좀 지나자 자신만의 연주도 시도할 수 있게 되었었다. 정말로, 말 그대로, Mick (Jones) 은 어떤 연주를 해야 하는지 Paul에게 '가르쳤다'. 나는 베이스가 얼마나 멋진 악기인지, 얼마나 죽이는 것을 연주할 수 있는지 Paul을 낚기 위해 여러가지를 보여주곤 했었다. Mick은 이런 식이었다: "자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부분이다 - 이제 연주해!"
     Wobble의 경우, 그는 베이스를 연주할 줄 몰랐고 바닥부터 시작해 자신만의 베이스를 만들어나갔었다. 그는 내가 "여기 이 음 두 개는 연주하지 마", "여기를 봐, 세 번을 똑같은 연주를 했고, 세 번째에는 내가 전혀 다른 기타 연주를 하고 있는데도 똑같은 베이스 라인을 연주했잖아" 따위의 말을 하며 녹음된 연주를 편집하던지 말던지, 그다지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나 자신만의 새로운 베이스라인을 만들어 내서 가져오곤 했다. 그렇지만, "Radio 4"에서의 베이스는 내가 대신 연주한 것이었다. Wobble이라면 어떻게 연주했을지를 상상하며 연주했었다.


    https://youtu.be/CeoxRCXobBQ
    "Memories"


    PSF> "First Edition"([Public Image])를 만들었을 때, 그 앨범을 일종의 '안티-록'(anti-rock) 앨범이라고 생각하며 만들었었는지?

    Levene> 아니, 그냥 PiL의 첫 앨범이라고 생각한 게 다였다. 처음에 "Public Image"라는 곡을 만들었고 꽤 괜찮게 만들어졌다. 우리는 굉장히 대담한 태도로 나아갔고 "우리는 씨발 원하는건 다 할 수 있다고. 우리가 PiL이라고, 좆까 새끼들아"같은 태도였었다. 사람들은 우리가 진지한건지 아니면 농담을 하는건지 전혀 분간하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는 진지했었다.
     "Fodderstomp"에서 Wobble이 "우리는 지금 이 앨범을 최소한의 노력으로 완성하려 하고 있으며 아-주-아-주 잘 하고 있다"라고 말하는데, PiL은 바로 그 짓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레이블에 정확히 30여분간의 음악만을, 계약서에 써 있는 분량만을 주었다. 좆같은 레이블이 우리를 열심히 벗겨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새끼들 좆같이 강경하게 굴었었다.

    PSF> [Public Image]에 만족하는지?

    Levene> 물론, 완전히 만족한다. 밴드의 첫 시작을 알리는 앨범으로 충분히 훌륭했다. 우리는 무슨 The Beatles가 아니었다. "Theme"을 보면 - 씨발 좆나게 구리다. 뭐가 구리냐면 바로 내 연주가 구리다는 것이다. 나는 무슨 Jimi Hendrix같은 연주는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고 "Hey Joe"의 코드도 모를 정도였다. Red Hot Chili Peppers Hillel Slovak이라던가 하는 기타리스트들은 Jimi Hendrix처럼 연주하려고 하는데. 하지만 그런 기타리스트들이 "Theme"을 들어보면서 Jimi Hendrix같은 연주를 듣고있다는 상상을 하며 '"Theme"의 연주를 완벽히 따라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따위의 생각을 하는 광경을 떠올려 봐라. 내가 "Theme"에 넣었던 온갖 연주들은, 내가 '할 줄 아는' 연주들이었다. 나는 이 연주가 아주 자랑스럽다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나는 "Theme"같은 곡을 들으며 '와, 이런 식으로 기타 연주를 하면 끝내주겠는데'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Fodderstomp"의 경우는 좀 더 잘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그 곡의 '개정판' 같은 곡을 만들어 볼까 생각하고도 있다. 당시의 PiL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을 했고 첫 앨범은 상당히 괜찮은 앨범이었다. [Public Image]의 문제는 좆같은 상업적 전략이니 계획이니 하는 것들이었다. Virgin이 이 앨범을 미국에 수입반으로서 유통했고 따라서 Warners 정식 발매가 무산되었다. 그렇게 PiL의 '공식' 미국 앨범이 없게 되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밴드의 동력이 많이 망가졌다. 좆같은 일이었다.

    PSF> [Public Image]의 수록곡들은 어떻게 만들어졌던 것인지?

    Levene> "Religion"은 곡을 만들어보려고 진행하고 있던 리허설에서 만들어진 곡이었다. John이 내 쪽으로 와서 무언가를 주었고, 나는 읽어보았다. 그 것으로부터 "Religion"이 만들어졌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John은 Sex Pistols 시절에 이미 "Religion"의 기반이 될 만한 것들을 갖고 있었다. 나는 "좋아, 지금 당장 해 보자고"라는 식이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웃음) 첫 연주에서, 뱅! 그런 식으로. Jim Walker(드러머)를 바라보았고 우리는 눈빛으로 일종의 대화를 나누었다. Wobble이 "Religion"의 바로 그 베이스 라인을 만들어 연주했다. 내가 기타 연주를 바꿀 때 마다 Wobble은 따라왔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었고, 그렇게 모든 것을 일사천리로 진행했던 것이다. 여기에 보컬을 얹어 곡을 완성하였고, 내가 프로듀싱을 했다. 나는 지금 당장 이 작업을 마무리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자 바로 시작해, John"이라고 말하고는 단숨에 녹음을 진행해 곡에 넣었다. 멋진 아이디어였다.
     "Theme"의 경우는 Wobble이 베이스 라인을 가지고 왔고 Jim이 드럼 연주를 했고 나는 그 기타 연주를 했다. 나는 바로 첫 테이크에서 전부 끝내버렸다. 곡 전체를 한 3번인가 연주한 후 바로 녹음에 들어갔고 그 결과물이 앨범에 수록된 버전이었다. 공연에서도 멋지게 연주되곤 했던 곡이고 우리 모두 이 곡을 좋아했다. John은 녹음 작업 진행 중에 가사를 만들어 완성했었다. 아니면 미리 만들어 놓고 몰래 보관해 두었던 것이었거나.

    PSF> "Public Image"의 그 멋진 기타 라인은 어떻게 만들어냈던 것인가?

    Levene> 그러니까, 멋지지 않나? 리허설을 하고 있었는데, 진짜 최악이었다. 아마 PiL의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리허설이었을 것이다. 이제 막 Jim을 멤버로 영입해 '밴드'가 되었던 때였다. 연주를 해 봤는데 아무것도 안 나왔다. 진짜 별로였다. 그러다가 어떻게든 해서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Wobble은 '다-다-다-다-다-다, 다-다-다-다-다-다-다'("Public Image"의 베이스 라인)을 연주하고 있었고 Jim이 여기에 맞춰 드럼을 연주하고 있었다. 나는 그냥 B코드를 한번 맞춰서 연주해 보았다. 그리고 "잠깐! 멈춰보라고, 이거 한 번 들어봐. Wobble, 베이스 연주 다시 해 봐." 라고 말했고, Wobble의 베이스 위에서 "Public Image"의 바로 그 기타 솔로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4번을 반복한 후, Jim에게 맞춰서 드럼을 해 보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A코드와 B코드를 번갈아 가며 연주했다. 그 기타 솔로를 처음으로 연주했을 때 바로 감을 잡았던 것이다. 하지만 합주는 한동안 완성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실제로 녹음을 하는 순간까지도 정확히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잘 모르고 있었고, 24트랙 테잎의 2인치 정도를 편집한 후에야 어떤 식으로 모든 것을 합쳐야 하는지에 대한 감을 잡았다. 대담한 편집이었고, 성공적이었다고 본다. 그리고 그게 다였다. 더 이상 '다시'해야 할 필요가 없었다 - 그냥 테잎을 다시 꺼내서 거기 녹음된 대로 하면 되었다.
     John이 어느 부분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을지 감을 잡게 되면, 보컬을 넣을 수 있었다. 그런 식이었다. 우리는 이런저런 것들을 대충 끼워넣는 식으로 만들어내서 결과적으로 '음악'을 만들었다. 내가 기타를 연주하다가 특정한 부분에서 John을 흘깃 보고는 머리를 끄덕이면 "이제 노래하고 싶으면 해도 돼"라는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었다. 아니면 다른 적당한 부분에서 그러던가. 나는 John이 하고자 하는 것은 거의 전부 하게 내버려두었다. 특정한 구간에서 고개를 끄덕여 신호를 주거나, 아니면 그냥 다 해 보라고 내버려두거나. John이 보컬을 한 번 해 보고 내가 정말로, 진짜로 간단하게 설명하면, 예를 들어 "방금 했던 것 정확히 그대로, 이번엔 이 부분에서 해 봐"라던가 "그 부분 다시 한 번만 더 해봐"같은 설명을 하면 John은 어째서인지를 되묻기보다는 그냥 그대로 가는 편이었다. 가끔씩은 John은 나름대로 내 지시를 따랐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내가 부탁했던 것을 안 했던 적도 있었다. 대체로 내가 얼마나 집요하게 굴었는지에 따라 그 정도가 정해졌다고 보면 되겠다. 하지만 어쨌거나 저쨌거나, 결과적으로는 전부 잘 되었었다. 진지하게 접근할 때에는 음원을 편곡한 후 무슨 좆같은 일이 벌어지는지를 들어보고는 "이거야, 이런 식으로 되는 거지"라고 말하는 식이었다.

    PSF> 그렇다는 것은, 대체로 음악을 먼저 완성하고 거기에 보컬을 더하는 식이었다는 것인지?

    Levene> 그렇다, 거의 그랬다. John은 대체로 기다리는 쪽이었다. 녹음을 한다고 치면 연주를 먼저 하게 되는 법이다. "Religion"의 경우 음악을 먼저 완성한 후 John에게 배경음악 위로 보컬을 해 보라고 시킨 곡이었다. 그리고 상당히 괜찮게 완성되었던 곡이었다. John은 가사를 미리 만들어 가지고 있었지만 그 가사가 담길 곡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잘 모르고 있었다. Steve Jones(Sex Pistols 멤버)가 한 번 곡을 만들어 보려고 시도했었는데, 완전 별로였었다. 내가 만들어 낸 버전을 듣고 John은 완전히 만족했었다. 그리고 나는 그냥 한번에 휘갈겨 만든 곡이었었다! Wobble이 기타에 맞춰서 베이스 라인을 연주했고 뱅! 곡 하나가 만들어졌다. [Public Image]의 곡들은 바로 내가 만든 곡들이었다. 여러 코드를 시험하고 메인 기타 라인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곡들을 바로 만들었고. 앨범과 리허설의 유일한 차이라면 리허설은 [Public Image]보다 대략 두 배 정도의 길이로 스케치를 만들었었다는 것 정도였다. "이렇게 하면 되겠군"이라고 말하고 바로 그렇게 갔었다.

    PSF> John의 가사와 당신의 음악이 잘 어울렸다고 생각하는지?

    Levene> 뭐 엄청나게 잘 맞았다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는 John의 보컬을 또 하나의 '악기'로 다루고 싶었고, 이런 아이디어가 상당히 급진적인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었다. 보컬을 악기로 취급한다고 해서 불법인 것도 아니고, 보컬을 다른 악기들의 앞에 서는 '주인공'으로 다뤄야만 하는 이유도 없었다. 지금와서 다시 들어보면, 그 때 생각했던 것 보다 John의 보컬이 훨씬 덜 악기스럽고, 훨씬 더 무대 앞에 나와 있는 것 같다.
     나는 John의 가사와 보컬을 받아서 이런저런 위치로 옮기곤 했었다. 샘플러 같은 장비는 없었지만, 그냥 2트랙 장비에 보컬 파트를 넣고 여기저기 편집을 하는 식으로 작업했었다. 보컬 파트의 길이가 부족한 듯 싶으면 그냥 후렴구 하나를 반복시켰다. John의 보컬은 그냥 완벽했었다. "Theme"의 보컬은 단 한 번의 녹음으로 완성된 것이며 첫 시도에 완벽하게 뽑혔다. 결과물은 함께 프로듀싱한 것이었다.


    https://youtu.be/QNiBG0J0cRY
    "The Suit"


    PSF> 첫 앨범 [Public Image]와 두 번째 앨범 [Metal Box] 사이에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Levene> 거의 리허설을 하면서 보냈었다.

    PSF> 공연을 자주 하지는 않았던 것인지?

    Levene> 자주 하지는 않았다. PiL를 결성했을 때, 공연을 할 만한 정도의 곡이 모이자마자 (상당히 빠르게 모였었다) Rainbow Theatre에서 크리스마스 공연을 했고, 전석 매진이었다. 밴드의 음향 시스템을 시험했었고, 멋진 시간이었다. Brixton에서 한 공연장을 빌렸었는데 거기는 말 그대로 그냥 텅 빈 장소였고, 이 공간을 단순히 3개의 베이스 음향 시스템을 시험해 보려고 빌렸던 것이었다. 바로 그 베이스 시스템이 Rainbow Theatre 공연에서 쓰고 싶었던 비장의 무기였었다. 그렇게 음향 시스템들을 시험하다 보니 새로운 곡들도 자연스레 만들게 되었다. 이 때 "Death Disco"를 만들기 시작했었다.
     PiL의 첫 번째 '투어'는 Warner가 [Metal Box]를 [Second Edition]이라는 이름으로 재발매하는 바람에 진행할 수 밖에 없게 되어버렸던 투어였다. Warner 측에서 말하길 "당신들, 이번 앨범 프로모션을 위해 투어를 돌아야 한다고"라더군. 그리고 바로 투어 매니저가 따라붙었고 좆같은 '투어'를 돌아야만 하게 되었었다. 실제로 투어를 돌고 나니 Warner 측에서는 그닥 좋아하지 않았었지만... (웃음) 그 때 뉴욕에 가게 되었고 Palladium이라는 공연장에서 공연을 했다. 그 후 다시 한 번 Palladium에서 공연을 했고, 또 한번 더 했는데, 이 짓을 하니 Warner 관계자들이 열이 뻗쳐서 빡돌아버리더군! Palladium 공연 후 Bowery 가의 헬스 엔젤스 지점 같은 곳이었던 Gildersleeves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다. 사악한, 죽이는 공연이었다. 물론 당연하게도 Warner 측으로부터 땡전 한 푼도 떨어지는 것이 없는 공연들이었지만, 어쨌든 멤버들이 모여 같이 공연하는 것 자체는 좋았다. Van Halen하고 함께 진행하는 투어였는데, 지금은 David Roth와 친하게 지내는 사이지만 그 때는 상당히 이상한 조합이었다.
     나는 그 때만 해도 Eddie Van Halen이 대체 뭐 하는 사람인지 아예 모르고 있었다. 그가 무슨 '기타의 신'같은 컨셉으로 활동하고 있는지 같은 것도 전혀 몰랐다. 처음으로 Eddie와 만났을 때, 진짜로 싸울 뻔 했다. 나에겐 그의 '기타의 신' 컨셉이 먹히지 않았던 것이다. Van Halen PiL이 함께 투어를 도는 느낌으로 일정이 짜여져 있었다. 예를 들자면 피츠버그에서 PiL이 공연을 하게 되면, 그 근처에서 Van Halen도 공연을 하는 그런 식으로 말이다. 웃긴 일이었다. 언젠가 L.A.에서 PiL이 공연을 할 예정이었는데, 공연 전날 L.A.로 가 보니 Van Halen 패거리들이 이미 컨티넨탈 호텔을 점령하고 있었고 우리를 내쫓아버렸었다. 진짜 웃긴 일들이 많았었다.

    PSF> [Public Image]와 [Metal Box] 사이에 밴드의 음악이 많이 바뀌었던 것 같다.

    Levene> 딱히 크게 바뀐 것은 없었다. 내가 느끼기에는, PiL의 첫 앨범은 가능한 한 빠르게 완성하여 발매했던 앨범이었다. [Public Image]를 "Sex Pistols에게 보내는 작별인사 같은 앨범이다. 우리도 록 음악을 할 수 있고,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을 뿐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앨범이다"라는 성명서라거나 "이 기발한, 모노톤의 록-음악이-아닌-노래를 들어보라고"하고 말하는 앨범이라고 여겼던 듯 싶다. [Metal Box]는 '성명서'라기보다는 PiL이 '만들고 싶은' 음악이었다. [Metal Box] 시기의 PiL은 좀 더 자유롭게 스튜디오를 사용할 수 있었고, 처음으로 나 혼자서 모든 것을 담당한 나만의 솔로 곡을 만들어 볼 수 있기도 했었다. 굉장한 경험이었다. PiL은 "지금 만들고 있는 이 음악들 전부 2번째 앨범에 넣자고"같은 태도였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Metal Box] 시기에는 모든 것이 제대로 돌아갔었다. [Flowers of Romance]때에도 좋았지만, 그 때에는 내가 개인적으로 정말로, 진심으로 지친 상황이었다. [Flowers of Romance]는 엄청난 압박감 속에서 만든 앨범이었고, 아직까지도 애증이 서린 앨범이다. [Flowers of Romance]에는 내가 좋아하는 순간들이 정말 많이 있지만, 또 생각해보면 좀 더 교묘하게, 능숙하게 처리했으면 하는 부분들이 있기도 하다. 좀 더 잘 할 수 있었다. 하지만, PiL이 굴러갔던 방식을 생각해보자면, [Flowers of Romance]는 지금 버전으로밖에 나올 수 없었던 앨범이었고, 실제로 그러했다.
     [Commercial Zone]에 John이 좀 더 참여한 다음 발매되었더라면 아주 훌륭한 PiL 앨범이 되었을 것이다. [Commercial Zone]이 '완성'되어 나왔더라면 PiL의 제대로 된 4번째 앨범이 되었을 것이고, 첫 번째 앨범에서부터 [Commercial Zone]까지, PiL은 아주 멋진, 훌륭한 디스코그라피를 가진 밴드가 되었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PiL이 진짜로 진지한 밴드였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려 줄 수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씨발, 밴드는 그냥 터져버렸다.

    PSF> [Metal Box]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베이스가 굉장히 도드라져 나와있다는 것이다.

    Levene> 베이스 음향을 최대한으로 높이고, 최대한으로 깊은 소리로 만들려고 가능한 한 모든 방법을 동원했었다.

    PSF> 거기에 키보드도 많이 들어갔는데.

    Levene> 지금도 자주 쓴다! 지금 내 방에 키보드 하나, 샘플러 하나, 2개의 디스크 드라이브, 게토 블래스터 (ghetto blaster) 하나가 있고, CD burner에 시퀀서, 기타 2대도 있어 마스터링까지 가능하다. 현악이라던가 드럼이라던가 피아노라던가 멜로트론이라던가 온갖 악기들을 키보드에 넣어 어떤 연주도 방 안에서 할 수 있다.

    PSF> [Metal Box]는 앨범 패키지도 독특하다.

    Levene> Sex Pistols 느낌이 좀 있다. (웃음) 우리는 뭐랄까, 선반에 같이 두면 다른 앨범들을 망가트릴 수 있는 앨범 패키지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러다가 아이디어가 떠오른게, "통조림 같은 것에다 앨범을 넣어서 여는 것 자체를 어렵게 하면 어떨까?"였다. 완성된 패키지가 필름통처럼 보일줄은 몰랐지만, 어쨌든 3장의 45RPM 12인치 판으로 [Metal Box]를 완성하게 되었다. 음악 내용만으로 보면 사실상 더블 앨범이었다. 45RPM으로 설정한 것은 음향 시스템에 최적화된 RPM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냥 45RPM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뭐랄까, 앨범의 정식 발매 전 미리 제작해보는 데모 버전 같은 모양새였다.
     [Metal Box]의 컨셉은 PiL 멤버들이 함께 고안한 컨셉이었다. 그리고 모든 컨셉을 모아 정리해서 'Metal Box'라는 이름의 공장에서 앨범을 뽑아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자연스러운 논리였다. 앨범에 대한 아이디어, 그리고 그 아이디어를 실제로 구현하는 방식, 3장의 바이닐로 앨범을 담아낸 결과물까지. PiL이 받은 선금 중 3만 파운드를 써서 [Metal Box]의 '공식 한정반'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레이블이 원래 한정반이었던 6만장보다 훨씬 더 많이 찍어냈지만.
     [Second Edition]은 Warner가 발매한 버전이었다. Warner 놈들은 "[Metal Box]는 잊어라, 그 패키지는 쳐다도 보지 마라"따위의 말을 해댔다. (웃음) 미친놈들, 그게 핵심이었는데 말이다! "네가 뭐라도 된다고 생각하나? 운 좋은 줄 알아라, 일반적인 종이 박스 패키지를 받게 되었으니!" 우리는 그 커버 사진을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Virgin 버전의 커버가 되었다.


    https://youtu.be/L3ytMujOvDo
    "No Birds"


    PSF> [Second Edition]으로 재발매했던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었는지?

    Levene> [Second Edition]의 커버가 될 사진을 찍었고, 재발매할 때 더블 앨범 형태로 만들기를 바랬었다. 그렇게 진행되기를 바란다는 의사를 레이블에 분명하게 표현했었다. 뭐랄까, 반사의 느낌을 갖는 형태의 앨범을 만들고 싶었다. 레이블이 내 얼굴 사진을 앨범의 앞면에 실었는데, 멋졌다. 그러한 반사의 느낌. 우리는 반사의 느낌을 갖는 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을 가지고 이리저리 옮겼고, 늘어난 얼굴을 가지고 박람회장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앞면의 커버는 그냥 내 얼굴 사진을 가지고 합성해 만든 것이었다. 다른 사진들도 비슷했고. 좆나게 멋진 아트였다.
     [Commercial Zone]을 만들었을 때에는, 원래는 아무것도 없는 하얀색 커버로 만들었었다. 그러다가 커스텀 주문을 받아 만들기도 했었다 - 하나는 미끄럼 방지용 테이프를 가지고 온갖 컴퓨터 프로그램을 붙여서 만들기도 했었고, 또 하나는 실제 부츠를 갖다 붙여 3차원 앨범 아트로 만들기도 했었다. 이 것들을 현찰을 받고 배송해 주곤 했었다. 이 때의 나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나 있던 상황이었다, PiL을 박차고 나온 때였으니. 앞으로는 어떤 식으로라도 착취당하지 않겠다고 작정한 상태였다. 그래서 [Commercial Zone]을 내 스스로 직접 유통했었다. [Commercial Zone]을 대량으로, 뭐 한 1000장 단위로 구매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선입금을 해 주고 나중에야 물건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녀석들은 내가 하나하나 직접 만들었던 커스텀 아트 앨범들을 내가 팔았던 가격보다 훨씬 더 많은 웃돈을 얹서 남들에게 팔고 다녔다. [Metal Box] 시절에서부터 달라진게 하나도 없었다.
     [Commercial Zone]을 1만장 정도 팔았을 때, 나는 무언가 다른 것을 해야겠다는, 이 앨범들을 계속 팔면서 지내기보다는 좀 더 다른 것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자체 판매를 그만뒀다. 그 이후 음반 관련 계약 문제들로 한동안 고생하게 될 줄은 몰랐었다. 그런 문제들이 있을 거라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Commercial Zone] 판매를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했었을 것이다. 그 때의 나는 그냥 "발매하고 판매도 했고, 이제는 충분해"라는 생각만 가지고 에뮬레이터를 챙겨 L.A.로 날아가 버렸었다.

    PSF> 언젠가 PiL의 핵심은 당신과 John이며, [Public Image] 발매 후 이 구도가 점점 변하는 것을 느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Levene> 맞다. 그게 당시의 내가 느꼈던 감정이었다. PiL을 막 시작했을 때 우리는 베이스 연주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남자 하나와 음악에 대해 여러가지를 알고 있고 연주도 할 줄 아는 내가 있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것들에 대해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진짜로. 그 때만 해도 자기가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일부러 제대로 연주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자기 악기를 잘 다루지 못하는 것이 '힙'한 거였으니까.
     그 때의 나는 우리 모두 PiL이라는 밴드에 있게 되었고 작업을 같이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내가 가졌던 생각들과 내가 했던 행동들보다 더 많은 것들이 있었던 것 같다. 사실 PiL은 서로의 입장 차이에서 발생하는 마찰을 겪고 있었다. Wobble은 베이스 연주를 할 줄 몰랐지만 동시에 괜찮은 베이스 라인을 만들어 내기에 필요한 여러 것들을 가지고 있기도 했었다. 언젠가부터 내가 그냥 Wobble을 보고 무슨 느낌의 연주를 해 달라고 요청만 하면 될 정도가 되었다.
     Wobble은 쿨한 녀석이었다 - 베이스 연주의 비중을 줄이더라도 전혀 개의치 않아했다. 가끔씩, 예를 들자면 "Poptones"의 베이스 라인을 생각해보자면, Wobble이 처음에 나에게 그 베이스 라인을 들려주었고 나는 바로 그 장소, Virgin 레이블의 저택에 있는 당구장에다가 드럼 세트를 조립하고 바로 시작했었다. 아마 그 때 Virgin 저택에 드럼 세트가 조립되어 있지 않아 그 좆같은 스누커 룸(snooker room)에서 그 짓거리를 했었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Wobble이 "Poptones"의 복잡한 베이스 라인을 연주했고 나는 "아니 대체 이런 건 어떻게 생각해낸거야?"라고 생각했었다. PiL 멤버로 드러머가 없었던 시기였기에, 그렇게 Wobble이 베이스, 내가 드럼을 연주해 녹음했었다.

    PSF> 어째서 없었는지?

    Levene> Jim (Walker) 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밴드에서 탈퇴했었다. Wobble이 Jim을 곧잘 괴롭히곤 했었는데, Jim은 Cockney, 런던 동부 스타일의 유머가 뭔지 전혀 이해를 못 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Jim은 Wobble을 더 이상 참지 못하게 되어 탈퇴해버렸다. 내가 직접 밴드를 떠나지 말라고 부탁했었지만 그 때의 Jim은 미친 듯이 열받아 있었다. Jim은 캐나다에서 온 사람이었고, 처음 봤을 때부터 PiL을 위한 최적의 드러머라고 생각했었다. PiL의 드러머를 뽑기 위해 오디션을 봤을 때, 엄청나게 많은 지원자들이 모여 복도가 꽉 찼었고, 우리는 한명한명 계속해서 연주를 듣고 있었다. Jim 차례가 와서 앉아서 연주를 시작했는데, 씨발 완벽 그 자체였었다. 45초정도 연주를 해 보였고 나는 "그만! 나머지 전부 집으로 가라고 - PiL의 드러머는 이 사람이니까."라고 외쳤다. 그 누구도 반문하지 않았다. 그렇게 완벽한 드러머를 구하게 되었지만, Wobble이 Jim을 괴롭히는 꼴을 나는 그저 방관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Jim을 정말 좋아했었다. 10년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Jim을 다시 만나볼 일이 있었는데, 그는 여전히 나를 굉장히 존중해주었고 Jim이 만들고 있던 영화의 사운드트랙을 내게 의뢰하기도 했었다. 나는 물론 바로 수락했었고. 나중에 알고 보니 내게 연기도 부탁하려는 생각까지도 있었다더군. [Public Image]를 만들 때, 앨범의 일부가 유출되었었는데, Jim 때문이었다. 그 덕분에 앨범에 PiL 특유의 좀 더 열려 있는 느낌, 무거운 느낌이 들어가게 되었다.
     뭐 어쨌든지간에, Wobble은 훌륭한 베이스 라인을 갖고 있었고 나는 드럼 세트에 앉아 거기에 맞춰 반주를 시작했다. 내가 처음으로 누군가에 맞춰 드럼을 연주해 본 것이었다. 우리는 누가 실제로 드럼을 연주해야할지에 대해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고, 결국에는 Richard Dudanski가 대부분의 드럼을 연주하게 되었다. Richard는 이 '영입'이 굉장히 이상하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다. The 101ers의 멤버였던 그를 데려온 것이 나였는데, Joe Strummer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던 드러머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언제나 그가 좋은 드러머라고 생각했었다. Richard는 좀 불안해 보였고, PiL이 자신을 원한다는 것을 진심으로 믿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때의 나는 어떤 압박감도 느끼지 않고 있었고, 우리가 특정 시간 내에 앨범을 뽑아내야만 한다는 생각도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우리는 Virgin 저택을 2주간 빌렸다. Virgin 저택은 온갖 사람들이 녹음을 진행했던 장소였다 - 옥스포드에 있는 곳인데, Richard Branson이 구입한 거대한 저택이었다.
     그렇게 앨범을 위한 죽이는 드럼 사운드를 녹음하게 되었다. 드럼 머신을 사용하는 것 같은 느낌의 드럼 연주였다. "Poptones"를 가장 먼저 녹음했었던 것 같다. "Death Disco"는 이미 완성되어 있었고, 녹음만 진행하면 되는 곡이었다. Jim과 함께 완성했던 곡이었지만 Jim의 연주를 녹음하지는 못했었다.

    PSF> "Death Disco"는 나중에 "Swan Lake"가 되었다.

    Levene> 맞다. 내가 "Swan Lake"(역주: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의 원곡)의 멜로디를 따 왔었다. 원래 제목이 "Death Disco"였던 것은, 이 곡이 John의 어머니에 대한 곡이었기 때문이었다. "Seeing in your eyes"라는 대목은 죽어가는 John의 어머니에 대한 가사였다. 이 무렵 John의 어머니는 암으로 죽어간다는 장엄한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조금 무겁게 느껴지는 주제일 것이다. 내 관점으로는, John은 굉장히 열정적으로 이 곡을 불렀던 것 같다. 나는 그저 음악을 했을 뿐이다. "Swan Lake"를 만들 당시에는 John이 대체 뭐에 대한 가사를 부르고 있는건지 전혀 몰랐었다. John은 그냥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Keith, "Death Disco"라고, 말 그대로!"
     아트워크를 완성해 두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계획은 있었다. 45RPM 3장에 담을 것이었고, 이상한 패키지에 넣을 것이었다. 결과물이 그렇게까지 이상하지는 않았지만 멋진 것만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금 [Metal Box]를 생각해 보면, Wobble하고 음악이라던가 앨범 제작 과정이라던가에 대해 단 한 번도 진지하게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어쩌면 이 때문이었던 것 같다, 밴드 내부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이. 앨범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은 크게 보았을 때 곡을 녹음하는 과정, 그리고 이 녹음된 것을 다시 한 번 들어보는 과정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기본적으로 두 가지 반응이 있다: '좋군!' 혹은 '쓰레기군!'. [Public Image] 시기에는 그냥 "좋아, 곡 하나 만들었구만, 녹음하자고, 출발!"같은 느낌의 단순한 작업일 뿐이었다. 하지만 [Metal Box]를 만들면서는 PiL이 급격하게 '실험적'인 밴드가 되어갔고, 반면 밴드 멤버들이 실제로 그런 실험적인 음악을 할 만한 성향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던 것이다. John이 "좋아 믹싱 데스크에서 좆같이 몇 시간이고 작업을 해 보자고"같은 말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내 눈에 비친 믹싱 데스크는 하나의 또 다른 악기였다. [Metal Box] 시기에 이르러 다양한 믹싱 시도 또한 아주 중요한 과정이 되어버렸다. 스튜디오 전체를 하나의 커다란 신디사이저처럼 사용했었다. 내가 직접 여러 종류의 악기를 정말 많이 연주했어야 했었고. 나는 아주 넓은, 새로운 가능성을 보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비전도 다양했고, 아이디어도 넘쳐났다. 내가 그 모든 아이디어들을 다 시험해 봤다. 나머지 멤버들 중에 그런 시도를 해 볼 만한 사람은 없었으니까.


    https://youtu.be/fiQk5hy54oE
    "Swan Lake"


    PSF> "Death Disco"의 '음악' 부분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Levene> "Death Disco"는 아주 단순한 곡이었다. Wobble이 그냥 서서 베이스 라인을 연주했고 '지금 진지해'라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어떤 기타 연주가 이 베이스 라인에 어울릴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기타 줄을 튕겼고 두 대의 기타를 동시에 연주하는 듯한 느낌의 드론 음이 발생했다. 나는 언제나 E음을 가장 잘 사용했었다. E음은 기타에서 가장 낮은 줄과 가장 높은 줄에 해당하는 음이었으니까. 두 개의 E음을 통해 자동적으로 공명을 얻을 수 있었다.
     Wobble 또한 E음의 베이스를 연주했다. 내 생각에 이 자리에 Jim도 같이 있었던 것 같다. 적어도 한 번은 Jim과 함께 "Death Disco"를 연주했었다. 그 때의 나는 당장 무슨 연주를 하고 있는지 감을 못 잡고 있었다. 그냥 화음을 연주했었던 것이다. E코드를 연주해 보았고, 슬로우 모션으로 유리를 부숴뜨리는 듯한 느낌이 났다. 그래서 E코드를 미친 것처럼 계속해서 연주했었다. 나는 단순한 음악에 거부감을 전혀 느끼지 않는 사람이다. 이 연주의 모든 것이 E코드였다. 모든 것이 하나의 음이었다. 그러다가, 내가 지금 어쩌다가 우연히, 엉망진창으로 연주하고 있는 것이 차이콥스키의 "Swan Lake"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일부러 "Swan Lake"를 연주하겠다는 의도로, 기억을 더듬어가며 다시 연주를 시작했다. 기억을 떠올려가며 연주한 것이었기에 정확한 "Swan Lake" 멜로디와는 조금 달랐다. 자연스럽게 곡 하나가 완성되었다. 그렇게 나는 Wobble의 베이스 라인 위로 연주를 계속했다. John의 보컬이 들어올 타이밍에 나는 계속해서, 끊김 없이 같은 화음 연주를 했었다. 그리고 John이 쉴 때 "Swan Lake"의 멜로디를 연주했고, John의 보컬이 다시 들어올 때 멜로디를 멈추고 화음 연주로 돌아가는 식이었다. 정말 간단하게 만들어진 곡이었고, 리허설 두어 번 만에 완벽하게 완성되었던 곡이었다.
     Richard (Dudanski) 가 드러머가 되었을 때, 나는 드럼 세트를 다른 멤버들과 같은 방에 있게 해서 멤버 모두가 함께 연주할 수 있게 했었다. 비디오 중계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세팅에서 Wobble이 "Poptones" 베이스 라인을 연주했고 나는 드럼 마이크로 방 안의 모든 음향을 잡아냈다. 이 때의 음향 환경은 저음을 아주 훌륭하게 잡아내는 세팅이었고, 나는 아주 깊은, 낮은 음향을 얻고 싶었으니까. 이렇게 "Albatross"가 만들어졌다.

    PSF> "Albatross"는 어떻게 만들어진 곡이었는지?

    Levene> 이 때 밴드는 편한 세팅으로 있었다. 같은 방에 멤버 모두가 모여 서로를 바라보면서 연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진짜 '밴드'였다! 기억해야 할 부분은, 우리는 [Public Image]를 만들면서 처음으로 녹음 과정을 '배우기 시작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두 번째 앨범에서 아주 멋진, 고급스러운 스튜디오를 쓸 수 있게 되어버렸다. 이런저런 세팅을 시도해 본 후, 가장 편한 방식이 다 같은 방에서 합주하고 엔지니어가 이를 녹음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엔지니어에게 잡히는 모든 것을 전부 녹음하라고 주문했었는데, 왜냐하면 우리가 지금 뭘 녹음하는 건지를 멤버들도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연주가 곡이 될지 말지를 밴드 스스로도 전혀 몰랐다. 무언가를 연주해 보면 때때로 그냥 병신짓거리처럼 들리기도 했고, 다른 때에는 아주 진지한 음악처럼 들리기도 했었다.
     엔지니어들에게는 굉장히 힘든 작업이었을 것이다. 베이스의 음향을 가능한 한 깊게 만들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규칙을 전부 깨뜨려야만 했었다. 상당히 힘들었다. 그렇게 공을 들여 모든 마이크 세팅을 끝냈고, 나는 이제 마이크에 잡히는 모든 것들을 전부 녹음하라고 지시했었다. 엔지니어들은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엔지니어들과 한 차례 언쟁을 벌인 후, 나는 엔지니어 부스에서 녹음실로 다시 달려갔다. 내 기타가 미친 것처럼 피드백 소음을 내고 있었다. 나는 기타를 잡아들었고 모든 것들이, 모든 사람들이 잠깐 멈추었다. 순간이었지만, 영원한 것만 같았다. 그리고 Wobble이 베이스 연주를 시작했다, 새로운 베이스 라인이었다. 덤-덤-덤-덤, 덤-덤-덤 ("Albatross"). 나는 "연주를 시작해"라는 눈빛으로 Richard를 바라보았다. Richard는 내 의도를 알아챘고 바로 연주를 시작했다. 우리는 이미 이전에 "연주를 시작했는데, 뭔가 잘 안맞는다는 느낌이 들어도 내가 고개를 끄덕이면 같은 연주를 계속해 줘"라고 얘기를 했던 상황이었으니까. 그렇게 모든 것이 만들어졌다. Richard는 좀 긴장한 듯 보였지만 그래도 모든 것을 잘 해 주었다.
     그렇게 Wobble은 자기의 연주를 하고 있었고 Richard도 제때에 맞춰 들어왔다. 한 번의 테이크로 전부 끝났었다. "Albatross"에서 들리는 것 그대로의 연주가 진행되고 있었다. Richard가 시작하고 나서 얼마 안 되어서, 나는 여러가지 노이즈를 만들기 시작했고, 이어서 John이 "slow motion"이라며 읊조리기 시작했다. 그게 전부였다. John이 미리 가사를 만들어 두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내 기타 연주를 즉흥적으로 만들어가며 진행하고 있었고, Wobble 또한 자신만의 연주를 그대로 만들어나가고 있었다. 좀 이상한 느낌의 연주라고 생각했지만, 모두 만족했다. 곡이 끝나갈 무렵 우리는 이만하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이상한 노이즈에 John이 지루함을 담아 "only the lovely"라는 비명을 지르며 곡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우리는 아주 진지하게 이 연주의 녹음을 되돌려 들어 보았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내가 말했다: "곡 하나 만든 것 같은데, 어때? The Doors같은 느낌 아닌지? 이렇게 가자고." 그렇게 그대로 진행했었다. 엔지니어는 녹음을 더 해서 진행해보자는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해 왔지만, 우리는 그냥 그대로 갔고, 이런 작업 방식은 [The Flowers of Romance] 시기에 이르러서는 예술로 승화되었다.

    PSF> "Memories"는 어땠는지?

    Levene> "Memories"에는 흔한 스페인풍 기타 연주가 들어가 있다: 던-다-다-던 다-다-던 (빠르게 마타도어 음악을 흉내냈다). 그런 연주를 하려고 했다. 기타를 배울 때 가장 먼저 알게 되었던 아주 단순한 방식의 연주였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의 연주들 중 하나이기도 했다. John이 보컬 파트에서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굉장히 이상했고, Wobble은 그 베이스 라인을 훌륭히 연주해냈다. "Memories"는 스튜디오에서 만들어진 곡이었고, Wobble의 베이스에서 시작했었다 (베이스 라인을 흉내냈다). 처음에는 무슨 병신같은 장난이라고 생각했었다 - 여성을 대상으로 한 진공청소기 광고처럼 들렸던 것이다. 나는 이 베이스 라인에는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눈빛으로 Richard를 바라봤지만 Richard는 내 의도를 오해하고는 연주를 하라는 지시로 알아듣고 드럼 연주를 시작했다. 나는 "좋아, 뭘 해야할지 알겠군"이라는 생각을 하고는 기타 연주를 시작했었다.
     PiL 시기, 특히 초창기 시절에, 나는 언제나 곡을 기타 한 대 만으로 끝내려고 노력하곤 했었다. 스튜디오에 있었으니 기타 오버더빙은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안 하려고 했다. 리드 기타를 연주할 때가 오면 나는 일반적인 기타리스트가 하는 연주가 아닌 전혀 다른 맥락의 연주를 하려고 했었다. 그냥 당연히 되어야 하는 일이었다. 밴드에 기타리스트가 한 명 뿐이니, 기타 한 대로도 모든 곡이 가능해야 하는 것이 당연했다는 말이다. '규칙'이라기보다는 '태도'였다.
     그렇게 나는 배경에서 연주를 했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감을 잡았다. John은 그 독특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 때 나는 John과 굉장히 특별한 텔레파시 같은 것이 있었다. 우리가 직접 뭔가를 만들어내려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이 때의 우리는 스스로 만들어내는 음악들이 상당히 급진적인 음악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대담했었다.
     동시에 우리는 음악에 진심을 담아내려고 노력했었다. 뭔가를 시도하다가 실수를 하게 되면, 나는 "고치지 않을 거야, 그 부분을 특별히 신경써서 들어야 실수가 되는 거지, 아니면 실수가 아니라고"같은 태도를 취했다. 그 실수가 정말 망한 부분이어서 곡 전체를 망치는 것이 아니라면 그냥 내버려두었다. 내 기타 연주의 많은 부분이 그런 식이었고, 그런 식으로 기타를 배워 오기도 했었다. [Public Image] 시기의 나는 기타리스트로서의 틀을 깨뜨리고 있었다. 나만의 연주 방식을 만들었고 그 방식을 통해 틀을 깨려고 했다. 나는 '틀'이라는 것이 부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음악을 계속했던 것은 내 기타 연주 방식이 나에게 흥미롭게, 재미있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다른 기타리스트들이나 음악가들을 참을 수 없었다, 그들 때문에 진짜로 열받기도 했었다. 그러나 동시에, 밴드 자체가 훌륭하다면, 기타 연주가 어쩌고 하는 것은 전혀 신경쓰지 않기도 했다. 좀 양면적인 성향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PiL에 있을 때 다른 밴드들이나 음악가들을 굉장히 지겹고 따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Stone Temple Pilots의 모든 곡들을 정말로 좋아했고 다른 여러 일반적인 음악들도 좋아했었다.

    PSF> "Memories"로 돌아가 보자, 이 곡의 키보드 라인은 무슨 아랍 음악 같이 들린다.

    Levene> 그 부분은 사실 기타 연주다. E코드를 연주했을 때 그 독특한 드론 음을 얻을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이 비슷한 것을 변칙 튜닝으로 얻어내곤 했고 상당히 '힙'한 효과를 내곤 한다. 하지만 정말로 발생하는 효과는, 기타 연주의 뼈대만을 남기거나 아니면 더빙을 엄청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런 연주는 엑셀에 발을 올렸다가 바로 떼는 것 같은 행위인 것이다. 그렇게 안 하면 모종의 '속임수'로 연주를 하는 것이 된다. 나는 이러한 '속임수'를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기타 연주를 해체하여 일종의 드론 악기로 다루는 것 뿐이라는 사실을 알아냈었다. 그렇게 하면 본질적으로 조율이 맞지 않게 되지만, 이건 충분히 덮을 수 있다, 1번째 줄과 6번째 줄 모두 E음을 갖고 있으니. 그러니 어떤 효과가 나올 것이냐의 문제는 결국 기타를 어떻게 다룰 것이냐의 문제가 된다.
     "Memories"를 연주한다면, 기타를 E코드에서 연주하게 된다. 하지만 똑같은 연주를 프렛 한 개만 위로 옮겨서 연주하고 나머지 줄은 그대로 두면, 내가 아까 말했던 스페인 방식의 바로 그 기타 연주가 된다. 내가 한 것이라고는 그 음들을 곡 위에 얹고 'Electric Mistress' 이펙터 (공연 때 유일하게 사용하는 이펙터였다) 만을 사용했을 뿐이었다.
     내가 나만의 엄격한 규칙을 가지고 연주를 했던 것 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가진 규칙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규칙을 깨뜨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가끔씩은 '규칙들'을 깨뜨리기 위한 나만의 규칙을 만들기도 했었다. 그 무렵의 나는 스튜디오와 다른 여러 것들을 또 다른 '악기'로 사용하는 것에 아주 푹 빠져 있었다. 완벽을 위한 작업이었다. 나는 모든 것을 해체하기 위해 스튜디오 작업에 매진했었다. Brian Eno하고도 맞닿은 부분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Brian Eno Roxy Music의 음악에도 비슷한 작업을 했었다 - Phil Manzanera의 연주를 하나의 대상으로 간주하여 테잎 머신에 넣고는 여러가지 시도를 한 것이다. Brian Eno는 최초의 '음향학자'(soundcian)들 중 하나였다고 본다. 특별히 Brian Eno를 따라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스튜디오 작업에 아주 깊이 몰두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나는 내가 잘 모르는 기술이 결과를 내는 것을 보면 곧바로 그 기술을 활용하는 성격의 사람이다. 뭐랄까, 나만의 'Oblique Strategies'(역주: Brian Eno가 고안한, 예술 작업에 창의력을 높이기 위한 무작위 카드 방법) 카드를 가진 기분이었다. 작동하면, 그대로 간다. 아니면, 어째서인지 알아본다. 어쩌면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야 할 때도 있고.
     기타를 연주할 때, 나는 "이게 기타고, 이게 여기 있는 이 '기타'라는 것으로 할 수 있는 음악이다"라는 말을 하는듯한 연주를 하려 하는 편이다. 그냥 편하게 기타 6대 분량의 오버더빙을 해서 무거운 사운드를 만들고 말아버리는 작업은 하지 않는다. 대신 완벽한 리드 기타 라인을 만들어내려 하는 편이다. 무언가를 보태지 않고, 뼈대만으로 작업을 한다.
     [Metal Box]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곡 중 하나는 "No Birds"다. 이 곡의 기타는 딱히 많은 수의 음을 연주하지는 않으며, 그냥 기타 한 대 분량의 연주만이 들어가 있다.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곡 중 하나다 - 이 곡 또한 합주 리허설 중에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던 곡이다. 똑같이, Wobble이 베이스 라인을 만들어 왔고, 나는 그 위에서 기타를 연주했고, Wobble은 중간에 베이스 라인을 바꾸었지만 나는 그대로 갔다. 씨발, 완전 제대로였다. 녹음된 연주를 다시 들어보니 온갖 화음이 들렸고, 이 화음들을 하모나이저 - 나는 'insect stick guitar'라고 불렀다 - 로 조작했다. 이제는 이런 하모나이저 음향을 자주 듣고 있다, 상투적인 음향이 되었다. 뭐랄까 메뚜기 느낌의 소리가 난다. 곡이 만들어지는 와중에 기타는 그저 자기의 연주만을 진행할 뿐이며, 배경에서는 이를 받쳐주는 온갖 것들이 쌓아올려진다. 상당히 시끄러워지기도 하는 곡이다. "No Birds"는 PiL이 [Metal Box]시기에 하던 것들을 한 곡으로 모아 둔 것 같은 곡이기도 하다. 표면적으로는 그냥 흥미로운 록 밴드 음악처럼 들리지만, 좀 더 주의깊게 듣기 시작하면 좋아하기는 힘들 수도 있는, 하지만 상당히 흥미로운 음악인 것을 알게 된다. 좀 더 듣다 보면 좋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충분히 많이 찾게 되고, 그 때 다시 새로운 부분들이 들리기 시작한다. 작곡을 마친 후 나는 그 속에 온갖 것들을 집어넣었고, 이 편집 과정이 아주 중요한 부분이었다. 프로듀싱 과정에서 좋은 음향을 얻는 것 뿐만 아니라 적절한 장소에 온갖 노이즈들을 집어 넣는 것 또한 핵심 목표였다. "No Birds"에서는 John의 목소리에 여러가지 편집을 가했고 적절한 편집이었다고 생각한다.
     "Death Disco"도 마찬가지였다. 이 곡은 기타 한 대의 연주로 시작한 곡이었지만, John은 무언가를 더 원했다. 그래서 여러 버전의 곡이 만들어졌고, [Metal Box]에 실린 것은 2번째 버전이었다. 이 버전은 원래 버전하고는 많이 다르며, 원래 버전은 훨씬 단순했다. 다른 버전들도 있었으며 이 것들은 John의 가사에 느낌을 더 많이 맞춘 버전들이었다. 키보드라던가 비슷한 다양한 조작을 가했었다.


    https://youtu.be/LY1k1H7hlOQ
    "Socialist"


    PSF> "Careering"에도 키보드 연주가 들어가 있는데, 진짜 기이한 소리가 난다.

    Levene> 그렇다. 좀 웃긴 것이, 그 곡을 만들 때 우리는 다른 스튜디오로 갔던 상황이었다. "Careering"은 런던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만들었는데, 이 스튜디오는 화장실이 녹음실 아래층에 있었는데 여기에서 이상한 소음이 발생해 녹음실까지 전달되었다. "nrrrrrrrrr"하는 소리였는데, "Careering"에 들어가있는 그런 소음이었다. 정말로 흥미롭다고 생각했었고, 우리는 그 근처에서 자주 놀곤 했었다. 편안한 느낌의 장소였고 그 이상한 소음은 언제나 그 곳에 있었다. 나는 그 비슷한 소음을 신디사이저로 재현해보고 싶었고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키보드 위에 뭔가를 떨어뜨리고 잠깐 밖에 나갔다 들어왔는데, 이상한 소리가 나고 있었고, 이 소리가 스네어 드럼 소리가 되었다. 스튜디오에선 이런 일들이 벌어졌었다.

    PSF> "The Suit"의 키보드는 굉장히 미묘하다.

    Levene> "The Suit"에 대해서라면 나는 열이 뻗치곤 한다. 그 곡을 만들 때 나는 "내가 얼마나 덜 중요해 보이는 연주를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The Suit"는 곡의 주제 때문에 내가 도저히 좋아할 수 없는 곡이었다. 나는 이 곡을 좋아하지 않았고, 그래서 덜 중요해 보이는 연주를 했지만 동시에 나름의 음악적 실험을 시도한 것이기도 했었다. 많은 사람들이 "The Suit"를 좋아했다.
     John과 같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John과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한 남자가 있었다. 어느 순간 John은 그 남자를 완전히 싫어하기로 결정했다. 그리하여 John은 그 남자에 대해 진짜 더러운, 완전히 과장된 비난과 조롱으로 가득 찬 가사를 만들었다. 'Society Boy'. 그 남자는 그저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라 울분을 토하기만 했었는데, 어째서인가 하면, 이 때의 우리는 좋은 옷을 입고 안전한 동네에서 거주하는, 그런 좆같은 일들과는 멀리 떨어진 동네에서 사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멋지게 보여지고 싶었다. 그 남자, Kenny McDonald는 자기 의상을 스스로 만들어 입고 다니는 사람이었고 PiL의 의상 또한 전부 만들어 주었다. PiL이 자기 옷을 입어주는 것이 상당한 홍보가 되었으니까. 우리는 그의 의상을 제대로 입지는 않았고 그 덕에 더 괜찮게 보였었다. PiL은 흔한 펑크 밴드들처럼 검은 가죽 자켓 차림으로 돌아다니고 싶지는 않아했었다. 무튼 그래서 John은 그 남자를 싫어하기로 결정했고 그런 곡이 나왔다. 그 남자가 여기에 무슨 반응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는 John의 개가 될 수는 없었고, John은 자신을 스타라고 생각했고 그 남자가 자기의 개가 되기를 바랬다. John은 그 남자의 이름을 [Public Image]의 "Low Life"에서 부르기도 했었다.

    PSF> "Bad Baby"는 어떤가? 어떻게 만들어진 곡인지?

    Levene> 내가 'Bad Baby'다. 내 별명 중 하나였다. "You're a bad baby!" 사실상 같은 과정으로 만든 곡이었다 - 키보드를 굉장히 묻히도록, 덜 중요하도록 연주한 곡이었다. 나는 이 곡을 만드는 데에 푹 빠져 있었다. 우리는 종종 불화를 겪곤 했고 이 불화를 통해 밴드로써 함께 작업하는 것이 아닌, 개인적으로 따로 작업하는 것을 배워나가고 있었다 (밴드 자체가 점점 해체되어가기 전까진 말이다). 이 무렵의 PiL은 각자 따로 작업을 해 온 후 서로의 아이디어를 하나로 합치는 방식으로 음악을 만들고 있었다. 그러니 이 때의 PiL에게는 '화합적인 분열'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나는 이런 방식으로 운영되는 밴드에서 일을 진행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무엇도 공격하지 않는 것 뿐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내가 없을 때 누군가가 무엇을 했다면 그것에 대해 화를 내기보다는 어떻게든 받아들이고 활용하려고 했었다. 나는 이런 상황의 밴드에서도 많은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흥미롭다고 생각했던 또 다른 것은, 나는 언제나 연주라는 것을 할 줄 모르는 베이시스트들과 작업을 해 왔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이런 점도 받아들였고 활용했었다. 나는 바이올린 같은 여러 악기들을 많이 구입했고 John이 이 악기들로 온갖 짓거리들을 하곤 했었다. 하루는 작은 플라스틱 Wasp 신디사이저를 구매했었다. 진짜 싸구려였기에 John과 Wobble에게 각각 하나씩 사 줬었다. 나는 John과 Wobble이 스스로 음향을 만들어낼 수 있게 해 주고 싶었다.

    PSF> "Graveyard"는 어떤가?

    Levene> 그 곡은 리허설 자리에서 즉석으로 만들어낸 곡이었다. 그 때 나는 굉장히 클린트 이스트우드같은 기분이었다. 대체 뭘 연주해야 할 지 아무 생각도 안 났다. Wobble이 베이스 라인을 연주했고 드럼도 맞춰서 연주를 시작했기에, 나 또한 뭔가를 해 보긴 해 봐야 했었다. "Graveyard"는 처음에는 보컬이 없는 곡이었다. [Metal Box]에 실린 버전에는 실제로 보컬이 없다. 하지만 어딘가에는 보컬이 있는 버전이 있고, "Graveyard" 대신 다른 이름이 붙었다.

    PSF> "Radio 4"는? 이 곡은 [Metal Box]의 다른 곡들과는 전혀 따로 노는 것 같다.

    Levene> "Radio 4"가 만들어진 경위는 좀 독특하다. 이 때 우리는 다른 스튜디오 (Advision) 로 향하게 되었고 나는 "Radio 4"를 Cowboys International Ken Lockie와 함께 녹음했었다. 원래는 내가 드럼을 연주한 곡이었다. Ken은 던-던-던 하는 피아노 부분을 연주했고. Ken은 손이 커서 피아노로 멋진 코드들을 충분히 연주할 수 있었고, 여기에 나는 신디사이저로 이런저런 것들을 더했다. 우리는 이 스튜디오를 별로 안 좋아했고, John은 Ken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Ken은 그렇게 아주 짧은 시간동안만 PiL에 속해 있었다. 나하고 둘이서 한 리허설 단 한 번이 전부였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또 다른 스튜디오로 갔고 이 곡을 들어보게 되었다. 이 때 나는 야마하의 'String Ensemble'을 가지고 있어 온갖 악기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나는 이 현악 샘플 위로 여러가지를 쌓아올려 봤다. 여러가지 음향을 가져와 차곡차곡 위로 쌓았던 것이다. 결과를 들어본 후 드럼을 빼버렸다. 뭐랄까 오케스트라 풍의 음향을 만들어보고 싶었고, 긴 화음을 짧게 축약하고 싶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 당장 손에 있는 것을 이렇게 저렇게 활용했었다. Wobble이라면 이렇게 연주했겠지 라는 생각을 하며 베이스도 연주했다. Wobble의 느낌을 넣고 싶어서 그랬던 것이었지만, "Radio 4"는 기본적으로 내 연주만이 들어 있는 곡이다. 이 곡을 만들면서 "혼자서도 다 할 수 있겠군"이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곡이 끝날 무렵 드럼이 잠깐 등장한다.

    PSF> 어째서 앨범을 "Radio 4"로 끝낸 것인지?

    Levene> 그냥 그 곡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딱히 문제가 없었다. 멤버 중 누구도 "Radio 4"에 반대한다거나,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을 한다거나 하지 않았다. 뭐랄까, "Radio 4"를 앨범에 넣으면 앨범의 길이가 좀 더 늘어나고, 곡도 좀 더 많아진다고 다들 생각했던 것 같다. "Chant"가 끝나자마자 브와아아에에에에! 하고 나오는 것이, 괜찮았다.
     곡의 이름을 "Radio 4"라고 한 것은 '잉글랜드에 Radio 1, Radio 2, Radio 3가 있으니까' 였다. Radio 1은 팝 음악을 틀어주는 채널이다. 그 전에 BBC는 너무 지루하기 짝이 없는 방송이었다. 1985년 정도가 되어서야 겨우 FM 라디오라는 것이 들어왔다. 그리고 이래서 내가 미국에서 거주했던 것이다 - 잉글랜드에는 오랫동안 TV 채널이 단 3개밖에 없었다. 나에게는 미국에서 거주하는 것이 마치 미래 세계에 거주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 잉글랜드보다 훨씬 더 재미있고, 빠르다. 잉글랜드의 속도감도 좋긴 하지만 나에게는 좀 더 많은 자극이 필요하다. 언젠가 뉴욕에 가서 2주간 머물렀는데, 잉글랜드에서 2년간 했던 일보다 더 많은 것을 해치우고 돌아왔었다. 나는 그냥 모든 작업을 미국으로 옮겼다.

    PSF> "Poptones"는 무엇에 대한 곡인가?

    Levene> "Poptones"를 완성한 후 Virgin 레이블에 갔던 것을 기억한다. Simon Draper가 John에게 묻길, "진짜로 이런 일이 있었다고?" 나는 John이 그 질문에 무슨 소리를 했는지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했었다. 나는 "Poptones"가 그냥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본다. 나는 그 곡이 너무 좆같이 길다고 생각해왔다. 내가 했더라면 훨씬 더 빠르고 깔끔하게 곡을 끝냈을 것이다. "Poptones"는 두 번째 시도에서 완성된 곡이었다. 그 기타 연주를 계속해서 하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었다. 계속해서 연주하고 오버더빙을 하다가 이제는 더는 못하겠다고 포기했었다.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알고 있었는데... 이제는 잘 연주할 수 있다. [Metal Box] 버전을 듣고 있자면, 그 때의 내가 연주하는 기타가 아니다. 뭐 상관 없는 것이 PiL이라는 밴드가 원래 그런 밴드다. 만약 지금 다시 "Poptones"를 만들 수 있다면 훨씬 더 정제된 버전으로 만들 것이다. 어쩌면 언젠가 나만의 곡으로 만들어 다시 작업을 할 지도 모르겠다.


    https://youtu.be/7JL5LyaFaEM
    "Popto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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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theguardian.com/culture/2012/feb/13/jah-wobble-keith-levene-metal-box


    Jah Wobble 인터뷰
    Dave Simpson
    [The Guardian]
    2012년 2월 13일


    John Lydon이 아니었더라면 베이스를 시작도 안 했을 것이다. 1976년 무렵에 그를 알게 되었는데, 그러다가 어느 날 John이 말했다: "밴드에 들어가 보려고." Emerson, Lake & Palmer의 시절이었다 - 내가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던 사람 중 '밴드'에 속해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는 시절이었다. 뭐랄까, 아는 사람이 "나 뇌의학과 의사 되려고"라는 말을 하는 것 마냥 완전 비현실적인 느낌이었다. 하지만, 베이스 기타를 실제로 집어들어 보게 된 순간, 이 길이야말로 내 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John은 Sex Pistols를 탈퇴한 후 무언가 완전히 다른, 극단적인 것을 하고 싶어 했었다. 일반적인 초보 베이시스트라면 "이렇게 코드를 바꿔"라는 지시를 듣고 그대로 따라하는 식으로 연주를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했다. 나는 당시의 대부분의 음악가들에 질려있었다 - 대부분이 보수적이었고, 거의 무슨 '부르주아'같았다. John은 Keith Levene을 영입한다는 아주 훌륭한 선택을 했다. Keith는 자유로웠고 굉장히 능수능란한 연주자였다.

    우리는 펑크와 레게 음악을 이미 많이 들었고, PiL 시기에 이르러서는 이제는 충분히 들을 만큼 다 들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때 19살이었고 재즈에 완전히 빠져 있었다: Lonnie Liston Smith, Miles Davis의 [Dark Magus], Can의 "Halleluwah". 덥 음악에서도 큰 영향을 받았지만, 덥 음악 너머로 진출하고자 했었다. [Metal Box]는 '격렬하게' 만든 앨범이었다 - 물론 스튜디오 속에서였지만. 밴드 멤버 모두가 서로 다른 약에 취해 있었다. 나는 주로 각성제 쪽이었다. 우리는 모두가 서로 다른 세계에 있었고, 함께 연주할 때에만 서로가 맞물렸었다.

    Virgin 레이블은 우리에게 엄청나게 많은 돈을 주었지만, 대신 이 돈을 전부 스튜디오에서 써서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만 하는 것이 조건이었다. 우리는 Oxfordshire의 엄청나게 대단한 저택에 끌려갔고, TV 룸에서 John을 끌어내 보컬을 녹음하게 하는 것이 하나의 과제가 되었었다.

    "The Suit"는 John의 보호자-친구에 대한 곡이었다. "Bad Baby"는 내가 붙였던 Keith의 별명이었다. "Poptones"는 강간당하고 있는 소녀에 대한 노래일 것이다 ("standing naked in the back of a woods"). 하지만 내가 기억하기로는 어느날 밤 멤버 모두가 일본제 차를 타고 숲으로 갔었고, 카세트 테잎에선 팝 음악이 나오고 있었는데다가, 뜨거운 타르에 고무가 타는 것 같은 냄새도 나고 있었다. "Poptones"의 가사 그대로였다 - 우연인지?

    [Top of the Pops]에 나가 "Death Disco"를 연주했던 것은 진짜 재밌는 일이었다. 이빨을 검게 칠하고 방송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며 이빨을 보여주는 것이 내 꿈 중 하나였다 - 그리고 정말로 했다! PiL Jackson Pollock같은 '표현주의자'였다. 내가 언제나 말하는 것이 음악계는 예술계를 30년 정도 늦게 따라간다는 것이고, 나는 PiL이 1950년대 뉴욕에서 활동하던 골방 예술가들하고 같다고 보고 있다. PiL에서 공연은 한 20번정도 했었다. 이제는 멤버 모두 50대가 되었고 한번 더 즐겨보려고 PiL 연주를 다시 하게 되었다 - 차 한잔, 공연 몇 번, 그리고 한번 웃어보는 것 - 씨발, 좋은 일 아닌가.


    https://youtu.be/aDKDc5zq53k
    Live at [The Old Grey Whistle], 1980년 12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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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eith Levene / John Lydon / Jah Wobble

     

    2021/11/21 03: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