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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ket Aranžman
    [...]/[Paket Aranžman] 2023. 3. 22. 13:51

    https://youtu.be/4VNmbsmyT2A

    http://strazarni-lopov.blogspot.com/2010/10/paket-aranzma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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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대한 흐름의 연대기 ...
    [Džuboks], 1981년 3월 27일.

    베오그라드에는 록 씬이 있는가 - 베오그라드에는 록 씬이 없는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몇몇은 10년이 넘는 시간을 고민해 왔다. '씬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들은 너무 긍정적인 사람들이거나, 베오그라드에 록 씬이 있다는 아이디어 자체를 너무 좋아하여 아주 가끔 일어나는 베오그라드 뮤지션 공연이 있을 때 마다 신나서 공연 전후로 몇 개월의 시간동안 몇 개고 기사를 써 대는 사람들일 것이다. 지난 6개월간 베오그라드에 단 한 순간만이라도 존재했던 밴드들 전부가 베오그라드 내부 혹은 외부에서 단 한 번이라도 공연을 진행했더라면, '록 씬이 있다'는 말에 쉽게 수긍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생각 해 보자면, '씬은 없다'라고 생각하는 쪽이 더 맞는 것 같아 보이기만 할 뿐이다.

    시간을 되돌려 보면, 1965년부터 1968년까지는 베오그라드에 진짜 록 씬이 있긴 했었다. 전설적인 "Sajmište"에서의 공연들, 베오그라드의 모든 동네가 자신들만의 록 그룹을 가지고 자신들만의 트렌드를 표현하던 그 시기에는 말이다. 나는 당시 급증하던 팝 음악에 대한 관심과 록 밴드의 출현은 당시의 대중들 모두가 한 마음으로 새로운, 좋은 엔터테인먼트와 즐거움을 원했던 것에서 출발했다고 생각한다. 지난 10년간 도처에 넘쳐나던 디스코 열풍은 이제 이 도시의 주말 여흥거리의 대명사가 되었지만, 그 만큼이나 도시의 곳곳에는 춤을 출 만한 장소가 많기도 했었다. 고등학교라던가 댄스장이라던가 같은 장소들도 있었고, Gradska Kafana 같은 곳들처럼 좀 더 전문적인 느낌으로 접근할 수 있는 장소들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형태의 즐거움 - 라이브 공연에 맞추어 빠르게 춤을 추는 것은 모두에게 큰 관심을 끌기에 충분할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자면, 다음 질문은 "어째서 이 씬이 오래 가지 못했는가"일 것이다. 여기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이유들 사이에서 해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당시 씬의 대부분은 사실상 "카피"에 가까웠다는 것이 제일 큰 이유일 것이다. 당시 활동하던 뮤지션들의 90퍼센트가 단순히 해외 차트에서 여러가지를 가져 와 그대로 보여주는 것 만으로도 만족했으며 (이 씬의 주된 관심사는 누가 룩셈부르크 라디오 차트 1위곡을 가장 빠르게 베껴올 수 있을까였다), 극소수의 인원들만이 스스로 곡을 작곡하여 자신만의 방식으로 들려주는 것을 시도했었다. 이런 상황에서 청자들은 시간이 지나 정식 발매 음원들이 등장함에 따라 거리에서 울려퍼지는 최신 유행을 더욱 손쉽게 직접 구해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면, 원본이 복사본에 대해 거둔 승리라고도 할 수 있겠다.

    70년대는 이 60년대 씬의 결과로 무언가가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그냥 흘러가 버렸다. 1968년부터 1978년 사이, 베오그라드에는 정말로 중요하고 영향력 있던 그룹이 사실상 단 3개 있었다 - 유고슬라비아의 첫 슈퍼그룹 Korni Grupa, 굳건하지만 때때로 활동을 중지하던 YU Grupa, 그리고 멋진 어쿠스틱 그룹인 S Vremena Na Vreme. 하지만 이들은 존재했던 기간 동안 베오그라드에서 다 합쳐 봐야 10번도 안 되는 공연만을 진행했다. 자주 교체되는 멤버, Korni Grupa의 이분법적인 음악, YU Grupa가 보이는 공연 능력과 창조력의 괴리, S Vremena Na Vreme의 명확하지 않은 컨셉 - 이런 이유들 때문인지, 이들의 음악은 큰 영향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나라 전체에서도, 베오그라드 내부에서도...

    베오그라드는 상업적 성공을 거둘 밴드를 오랫동안 기다려 왔고, 1978년이 되어서야 등장한 Riblja Čorba 또는 작년까지 눈부신 성장을 보인 Generacija 5가 나타나게 되었다. 이 두 밴드는 다시 한 번 유행하기 시작한 헤비 메탈 사운드에 맞추어 큰 인기를 누렸고, Riblja Čorba는 좀 더 날카로운 느낌, Generacija 5는 좀 더 부드러운 느낌의 음악을 선보였다. 하지만 이 두 밴드마저도, 몇몇 상업적 성공을 거둔 밴드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영향력"을 행세하여 씬을 발전시킬 수는 없다는 명제를 증명하는 예제가 되었을 뿐이다.

    이렇게, 이 기사의 요점에 도달하게 된다. 베오그라드가 록 음악의 중심지로 발전하지 못한 것에 핵심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혹은 어째서 베오그라드의 청년들은 지난 몇 년 동안 자신의 기분, 생각, 열렬히 빠져 있는 것을 적절하게 표현하지 못 해 왔는지에 대한 질문. 답은 아주 간단하다 - 지난 10년간, 베오그라드는 새로운 문화가 시작될 만한, 발전할 만한 장소를 제공하지 못한 것이다. 특별히 록 음악이라는 주제에 있어서는, '장소의 부재'라는 문제가 정말로 중요해진다 - 새로운 록 밴드들이 공연을 선보일 장소 자체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베오그라드에는 예전부터 넓은 스포츠 경기장이 여럿 있었고 매 년마다 몇 번 정도는 이런 경기장에서 유명한 외국 그룹이나 국내 밴드들이 큰 규모의 공연을 선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막 시작하는 밴드들을 위한 소규모 공연장은 언제나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환경이, 대다수의 사람들로 하여금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거대한 공연만으로 만족해 버리는, 좀 더 호기심이 많은 사람들이라도 그저 몇 번의 중간 규모 공연으로 충분히 만족하고 떠나게 되는 현상을 만든 것이다. 옛 속담처럼 말이다 - 늑대도 배부르고 양들도 넘쳐나는...

    지난 몇 년간 록 음악이 존재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장소는 "Dom Omladine" (Belgrade Youth Center) 일 것이다. 이 곳은 여러 디스코 및 재즈 클럽들처럼 춤과 공연이 가끔씩 벌어지는 장소이다. Dom Omladine은 상업적인 성향의 공연장으로 록 음악의 중심선 역할을 하면서도 새롭게 시작하는 밴드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에는 큰 관심이 없는 공연장이었다. 그리하여, 다른 여러 공연장들 ("Dadov", "Filozofski Fakultet", "Fakultet Dramskih Umetnosti") 및 공연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술집들 몇몇과 함께, 오직 "Studentski Kulturni Centar (SKC)"만이 "Spoljnog Programa"의 지원 하에 젊은 밴드들을 체계적으로 지원해 주었다. 젊은 밴드들이 충족하기 힘든 높은 자격 요건 없이, 리허설과 공연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허가함으로써 말이다. SKC는 공연의 입장료를 없앰으로써 공연자가 기술적 진전이라거나 창조적인 결과물 없이도 스스로를 표현하고자 하는 열의만 있다면 얼마든지 공연을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관객들 또한 그 어떤 편견이나 상업적 흥분 없이도 새로운 밴드들이 발전해 나가는 모습을 따라갈 수 있었고. 이렇게, SKC에서의 공연들을 통해, 이 기사의 주제가 되는 세 밴드들이 탄생할 수 있었다: Šarlo Akrobata, Električni Orgazam, Idoli. 이 셋 말고도 Urbana Gerila, U Škripcu, Krvno Zrnce, Defektno Efektni, TV Moroni, Arrow Košulje 등등 무수한 신인 그룹들이 SKC를 통해 만들어졌다. 이들은 여러 저널리스트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BAS" 또는 "베오그라드 얼터너티브 씬"의 뼈대를 형성하게 되었다.

    SKC가 과거의 것으로 사라져가지만 않았더라면 그 유명한 "BAS" 씬은 정말로 존재하여 발전했을지도 모른다. SKC의 운영자들은 이미 아주 적은 액수였던 지원금을 좀 더 '이성적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했으며, 그들에게 록 음악은 베오그라드의 미래에 필요해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11월의 "Poslednja Igra" 공연이 끝난 후, SKC 측은 이미 '엄청난' 수준의 전기를 이용하고 있던 밴드들에게 접근하여 그 동안의 협조에 감사했다는 마지막 인사만을 남기게 된다. 그리하여, 이 젊은 밴드들은 SKC에서 다른 방향을 추구하도록 허락 받은 밴드들을 제외하고는, 관객들에게 좋은 공연을 보여 주고, 록이라는 음악은 사실 간단한 것이며 몇 년간의 수고 없이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어한다면, 자신의 리허설 비용을 전부 책임질 수 있어야만 했다. 연구를 원하고, 의지로 충만하며, 스스로를 표현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에게나 장소와 시간을 제공하자는 SKC의 설립 취지는, 이제는 변질되어 버렸다. BAS 씬의 성장을 촉발시킬 수 있었던, 특별한 촉매제로 작용할 수 있었던 장소의 문은, 닫혀 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하여, 씬의 씨앗은 탄생하였으나 그 씨앗이 나무로 자라나는 일은 없었다. 이 씨앗은 그 자체로도 어느 정도의 시간 동안 존재할 수 있었지만, 무언가라도 최대한 빠르게 일어나 주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모든 것이 사라질 운명이었다. 이제 우리는 예제로써 "자그레브(Zagreb) 씬", "노비 사드(Novi Sad) 씬", "리예카(Rijeka) 씬"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세 장소의 록 음악 씬이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위에 적어 두었던 그 이유였다. 자그레브, 노비 사드, 리예카에서는 뮤지션들이 자신들의 작품과 자신들의 발전을 주기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항상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베오그라드 얼터너티브 씬"이라는 아이디어와 그 씬의 선봉장에 서게 되었을 세 그룹에 대한 황홀한 기대감에 의해 벌어진 다른 실수들도 있었다. 단순히 "세 그룹이 처음으로 등장한 시기가 얼추 들어맞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이 세 그룹을 한데 묶어 소개하고 다니는 실수. 이렇게 모순점이 생기게 되었다 - Šarlo Akrobata, Električni Orgazam, Idoli는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엄청나게 빠르게 변화했지만 기존 미디어들은 계속해서 이들의 옛 모습만을 생각하며 항상 똑같이 다루어 왔다. 이들이 TV 쇼에 등장한 모습을 한 번만 봐도 기성 미디어가 가진 낡은 생각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대략 1달 전, "44분 간의 뉴 웨이브 록"이라는 TV 쇼는 세 그룹을 "고전적인" 방식으로, 마치 60년대 후반 밴드들을 다루는 듯한 따분한 방식으로 소개하였다. 이들의 음악과 음악에 담긴 아이디어와 이미지, 그리고 그것을 전달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를 시도조차 하려 한 흔적 없이 말이다.

    그 누구라도 주의를 조금만 더 기울였다면, 세 그룹 전부 본격적인 활동 시작 이전부터 자신의 컨셉을 열심히 설파하고 다녔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Idoli는 첫 공연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이미 자신들의 이미지를 청년지에 공표하며 관객들에게 미리 부각시켰다. 그렇게, 첫 공연을 시작하자마자 그 전까지 퍼져 있던 밴드의 이미지가 들어맞았다는 것을 모두가 알게 되었다. Električni Orgazam Šarlo Akrobata는 조금 다른 길을 택했다 - 그들은 무엇이든지간에 기회가 주어지기만 하면 항상 공연을, 당연히 무료로 진행했고, 언제나 관객들과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었다.

    이 세 밴드의 공통점이나 차이점에 대한 논의는 다소 뒤로 미루고, 지금은 베오그라드 씬에 대한 첫 질문으로 돌아가 보도록 하자. 베오그라드라는 도시에는, 지난 몇 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대체 어쩌다가 공연을 할 만한 장소 서너 군데조차도 없었던 것인가? 리허설 룸 같은 건 언급할 수준도 못 되는 형편이다. 흠,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딱히 복잡할 것도 없다 - 그 누구도 변화를 주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난 기억을 되돌려 보면, "Hajdučke Česme"이나 "Stadionu JNA"에서의 Bijelog Dugmeta 공연이 있었고, 이 공연들로 인해 록 음악을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봐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촉발되었었다. 특별히 "Stadionu JNA"에서의 공연이 끝난 후, 사람들은 '베오그라드의 청년 문화 단체들은 대체 어째서 록 음악이라던가 록 공연에 대해서만큼은 이 정도로 소극적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말로, 지난 몇 년 동안, 베오그라드의 그 어떤 단체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단 한 발자국의 노력조차도 하지 않은 것 처럼 보였다. 이 문제, 록 음악 문화와 그것의 발전이라는 문제야말로 이런 '청년 문화 단체'들이 존재하는 이유이고,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단체들이 그 어떤 도움도 주지 않는다면 문제는 영원히 해결되지 못한 채로 시간만 흐를 것이다. 제비 한 마리가 왔다고 해서 여름이 온 것은 아니듯이, 세 그룹이 활발히 활동한다고 해서 씬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 그런 생각을 한 '누군가'가 자신의 생각에 얼마나 만족했는지 따위와는 아무런 관련 없이.

    지금까지의 개괄은 베오그라드의 록 음악에 대한 편견이나 의심을 지적하고 의문점들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의 글이었다. 독자들은 이미 알아차렸겠지만, 본 기사와 인터뷰의 목적은, 지난호에서 리뷰도 했었던, 최근 발매된 컴필레이션 앨범 [Paket Aranžman]이다. 이 기사가 [Paket Aranžman] 뿐 아니라 앨범에 참여한 세 그룹이 갖고 있는 인상에 대해 이야기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https://youtu.be/_zaFFmBrgMk



    Električni Orgazam

    Električni Orgazam은 처음부터 밴드의 컨셉에 펑크적인 요소를 접목시킨 밴드이다. 이 밴드는 서로 잘 알고 지내온 친구들 사이에서 출발하였으며, 몇 번의 리허설동안 자신들의 밴드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흥미롭게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후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기타리스트이자 보컬인 Srđan Gojković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 보도록 하자.

    "흠, 우리는 사실 재미로 모여서 시작했었다. 무슨 '진지한' 음악을 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이, 그냥 어쩌다가 보니 만나서 밴드를 결성하게 되었었다. 아직까지도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무슨 '뮤지션'이라고 하는 것이 마음에 안 들 정도다. 언젠가 한 카페에 모두 모여서 앉아 있었다. Jovec (Ljubomir Jovanović)과 나는 당시 Hipnotisano Pile라는 밴드에 속해 있었는데, Ljuba (Ljubomir Đukić)와 함께 서로 이야기를 하다가 그냥 밴드 하나 만들어 보자는 말이 나왔다. 나는, 이전까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지만, 아무튼 기타와 보컬을 맡고, Ljuba는 오르간과 보컬, Jovec은 드럼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는 펑크 음악을 해 보고 싶었다. 리허설 전까지 아무것도 완성된게 없었다... 그냥 어째서인지 에너지가 넘쳐 흘렀다...
    리허설을 할 때마다 누군가가 새로운 것을 들고 왔다. 지금은 그 당시의 음악들 중 10개도 연주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 그 시절의 음악들은 안 좋아한다. 곡을 만들기 시작할 때, 우리는 그 어떤 기준 없이, 그냥 스타일을 따라 시작한다 - 뭐든 다 좋지... 이틀 전, 우리는 한 백년 전에 연주했던 곡 "Infekciju"를 새로 만들었다. 이제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곡이 되었다. 우리는 계속해서 변하고 있으며, 언제나 다른 방식으로 연주한다. 뭐, "Orgazam"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면, 이 곡을 처음 만들 때 우리는 에너지로 충만해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드러머 Čavka(Goran Čavajda)가 리허설에 참석을 못하는 일이 생겼다. 그렇게 드러머가 없는 리허설이 시작되었고, Ljuba와 나는 드러머 대신 리듬 머신으로 전자음악 짓을 해 보자고 결정했다... 그렇게 곡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어디서 밴드가 출발했고, 어쩌다가 시작하게 되었는지를 들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Električni Orgazam이 시작하기 전, Srđan과 Jovec은 대체로 헤비했던 밴드 Hipnotisano Pile의 멤버였었다.

    "Električni Orgazam Hipnotisano Pile에 대한 불만족에서 나온 밴드였다. 내 절반은 Jovec의 절반에, 나머지 절반은 Jovec의 나머지 절반과 Bojan (Hipnotisano Pile 보컬)에게 질질 끌리고 있었다. Jovec은 개성이 강한 사람이었다... 우리는 단 한번도 공식적으로 해체한 적이 없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냥 자연스럽게 밴드 활동이 끝나고 있었다. 나는 진작부터 Hipnotisano Pile 자체에 대해 흥미를 잃어버렸고, 리허설은 고통 그 자체였었다.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애초에 Hipnotisano Pile을 왜 시작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우리는 서로 많이 싸워댔었다. Električni Orgazam에서는 모든 멤버가 같은 관심사를 가지고 있고, 모든 멤버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을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편곡이나 세세한 부분에 있어서는 서로 논쟁을 하지만, 이 논쟁은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방향의 결과를 낳고 있다. 무엇이 가장 큰 차이냐고 묻는다면, 다른 밴드들도 비슷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는 서로 정말 친한 친구이다. 우리는 24시간 내내, 일주일 내내 붙어 다닌다. 나는 이제 밴드 멤버 말고 다른 친구가 없을 정도이다. 어딘가로 놀러 나갈 때면 여자와 함께거나 밴드와 함께거나, 둘 중 하나 뿐이다. Električni Orgazam은 내가 속해 있는 가장 중요한 집단이다 - 우리는 그렇게 탄생했다."

    Električni Orgazam에게 있는 펑크적 요소는 그들이 모든 것에 접근하는 방식 그 자체에 있다. 이들은 낡아빠진 리프와 구시대적인 형식만을 뒤져대는 음악들에 그냥 질려버렸고, 한 데 모여 서로 비슷하거나 같은 아이디어를 발굴해 그 것을 그냥 바로 연주하기로 결정한 밴드이다. 펑크에 굳세게 반대하는 자들은 이런 자유, 무시 못할 변화를 그저 무시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지난 5년간의 시간들이 중요했던 것이다.

    "나는 모든 음악을, 어떤 음악이더라도 듣곤 한다. Roxy Music, David Bowie, Lou Reed, Iggy Pop... 일종의 전환점이 되었던 경험 중 하나는 Talking Heads 공연이었다. 그 공연을 본 후 나는 문자 그대로 거기에 미쳤었다. 그 당시만 해도 머리를 길게 기르고 다녔었는데... 바로 머리를 짧게 자르고는 집에 쌓여있는 옛날 음반들은 전부 팔아치워 버렸다. Talking Heads 공연은 사실상 가득 차 넘치기 직전의 유리컵에 마지막으로 한 방울이 더해지는 경험이었다. Marina Vulić은 뉴 웨이브의 여성 뮤지션들에게 푹 빠져 있다. Čavke는 PiL을 듣곤 한다...
    지금까지 몇 천 번이고 말해왔던 것 같지만, Čavke는 밴드에 필수적인 멤버이다. 그는 밴드 내에서 대체 불가능한 역할이다. 지금의 밴드가 놓치고 있는 윤활유이다. 지금 드럼을 연주해 주고 있는 객원(I의 드러머로, Čavke가 군 입대로 잠시 밴드를 떠나 있는 기간 동안 그를 대체하고 있다)이 우리를 많이 도와주고 있기는 하다. 밴드에 대해서는, 어떤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 이 사람 또한 대체할 만한 다른 드러머를 찾기는 아주 어려울 정도로 잘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다른 세상의 사람이다 - 우리 밴드의 멤버가 아닌...
    우리는 여전히 밴드로서의 경험을 하고 있다 - 대략 10번 정도 무대에 올랐던 것 같다... Hipnotisano Pile 공연을 할 때 나는 무대 위에서 덜덜 떨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Električni Orgazam 공연에서는 그 어떤 불안감도 없다. 물론 작은 떨림은 있지만 초조함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어째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좀 더 안전하다고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Srđan은 현재 베오그라드의 최신 록 음악 밴드들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 중 하나이다. 그의 퍼포먼스는 가사를 신경질적으로 "연기"하는 것에서부터 관객들로 하여금 음악적 요소들의 역동적인 맥박을 느낄 수 있게 해 주기까지 한다.

    "나는 공연을 할 때 어딘가로 맛이 가 버린다. 리허설에서도 마찬가지다. 오늘 나는 리허설에서 '못'에 완전히 빠져 버렸었다... 처음으로 Električni Orgazam 무대에 섰을 때, 그 누구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해 정한 것이 없었다. 너가 지금 연주를 시작하면 내가 공연을 시작하겠다 같은 약속도 아예 없었다... 지난 번 자그레브 공연에서 Ljuba는 이성을 잃고 오르간 위에 앉았다 - 그게 그의 솔로 파트였다..."

    이와 같은 자유로운 행동과 자유로운 공연의 컨셉은 종종 문제도 일으켜 왔다. 지난 Subotica 페스티벌이 끝나갈 무렵, Srđan과 그의 동료들이 일으킨 문제가 많은 사람들의 구설수에 올랐던 적이 있었다.

    "그것은 사실상 '편집증적인 질문'이었다. 당시 공연이 TV에 방영되던 모습을 봤더라면, 누구라도 그 공연 무대야말로 살면서 본 가장 후진 싸구려 무대였다는 내 의견에 동의할 것이다. 그 무엇보다도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줄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그 장소에는 일종의 무대 같은 것이 있었고, 색색의 조명이 있었다... 멤버들과 같이 무대 위에 올라가자마자 어떤 남자가 와서는 우리에게 말했다. '무대에 무슨 문제가 있다고 들었다. 부탁하건대 무대 위에서는 점프하지 말아 달라. 조금만 큰 자극이 가해져도 위험할 수 있다. 보통 공연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한다는 것을 알기는 하지만, 무대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 이 무대에서 점프는 금지사항이다'... 그 후, 리허설에서도 문제가 발생했다. 리허설 당시 음향 카운터에 담당 직원이 아무도 없었다. 우리들과 Šarlo Akrobata가 음향 조정 없이는 아무것도 연주할 수 없다고 불만을 제기한 후에야 음향 설정에 대해 작은 조정이 이루어졌다.
    우리 공연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이곳저곳에서 뛰어다녔다. 내가 아는 것은 우리는 그저 언제나 Električni Orgazam이었고, 지금도 Električni Orgazam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뭐, 아무도 우리더러 교향악단처럼 행동하기를 바라면서 우리를 초청하지는 않을 것 아니겠는가. 나는 마이크 하나를 엎어뜨렸고, 드러머는 심벌즈를 강타하다가 박살내서 램프들까지 고장내 버렸다. 모두 작동을 안 하게 되었다. 공연이 끝나고 무대 뒷편으로 가자, 관계자들이 나와 전부 우리에게 욕지거리를 하면서 백만 디나르의 손해가 났다는 식으로 우리에게 협박을 해 왔다...
    그 '자유 형식'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우리는 우리가 공연을 다시 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새벽 3시까지 모르는 채로 있었다. 그렇게 있다가 누군가가 말했다 - '흠, 지금 연주해도 된다. 하지만 다시 한 번 그런 짓을 한다면 그 즉시 무대에서 내려와야 할 것이다... 시간 낭비로군. 당신들에게는 정확히 15분의 시간이 있다. 1초라도 초과한다면 곧바로 내가 무대 위로 올라가 모든 것을 멈출거다!' 전반적인 상황 때문이었는지, "Krokodilima"에서의 피로 때문이었는지, 나는 정신줄을 놓고 탄산수 병을 집어들어 여기저기 흩뿌리고 다녔다. Subotica 페스티벌에서 벌어졌던 일들은 곧바로 여기저기로 퍼져나갔다 - 소문에 따르면 우리는 거의 칼을 던져대면서 이것저것 잘라대고 마이크를 구부러뜨리고 스포트라이트를 박살냈다는 식이었다. 뭐, 보디빌더라도 마이크를 구부러뜨릴수는 없겠지만, 그리고 스포트라이트를 박살냈다는 소문에 대해 말하자면, 무슨 새총으로 했다는 식인 것 같았다...
    오로지 수보티차(Subotica)만이 정말 아름다웠다. 당연하겠지만 - 정말 좋은 밴드들과 함께 있었으니 말이다. 정말 훌륭한 밴드들 - Šarlo Akrobata, Idoli, Film, Haustor... 아침 5시에 Haustor와 함께 축구를 했는데 그들이 이겼었다. 즐거운 경험이었다 - 수보티차에서의 나날들..."

    Dragan Papić과 Enco Lesić의 아이디어는 결과적으로 세 그룹의 컴필레이션 앨범이 되었다. 처음에는 여러가지 컨셉이 있었다 - 유고슬라비아 남부의 모든 뉴 웨이브 밴드를 소개하는 것에서부터 베오그라드의 5~6 밴드를 소개하는 것 까지. 한 가지 사실은, 세 그룹 중 [Paket Aranžman]의 혜택들 가장 덜 본 밴드는 Električni Orgazam이라는 것이다. 앨범의 녹음은 Električni Orgazam의 진짜 공연에 비하면 조금 조용하고 스케일이 작은 편이다.

    "앨범 버전의 곡을 들었을 때 나는 거의 울 뻔했다. 흠, 그 곡들이 우리의 곡이고 우리의 연주이긴 하지만, 앨범에서는 우리가 세 밴드들 중 가장 조용한 밴드였다...
    나는 우리가 언제나, 어디에서든지, 항상 '거절'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Paket Aranžman]의 수록곡들 중 우리의 곡들만 라디오에서 방영하지 않고 있다. 내가 알기로는 우리의 곡은 단 한번 'Vibracijama'에서만 방영되었다... 어째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밴드의 이름때문일지도 모른다... RTB 레이블에서 앨범을 발매할 수 있을지에 대해 논의를 해 볼 때, 레이블 측은 밴드 이름을 EL. Org. 으로 축약하기를 바랬다. 그리고는 우리들이 여러 곡을 녹음하면 자기들이 수록곡을 정하는 방식으로 가겠다고도 말했다... 잘 모르겠다, 완전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때 처음으로 디스코 레이블과 접촉했던 것이었는데, 무튼 그렇게 이야기를 한 이후 나는 말했다 - '이런 느낌으로 녹음이 된다면, 우리는 절대 녹음도 안 하고 앨범 발매도 안 하겠다.' 지금 Jugoton 레이블에서 제공하고 있는 좀 더 괜찮은 환경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영원히 녹음 자체를 안 했을지도 모른다. 녹음과 앨범 발매는 우리의 최종 목표가 아니다...
    [Paket Aranžman]에 관해서라면, 세 그룹이 전부 완전히 동의한 앨범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한다. 흠, 우리는 거의 발매에만 겨우 동의했다고 볼 수 있겠다... 상당히 힘든 작업이었다, 특히 베오그라드-Šumatovac 부근의 분위기를, 모두가 모두를 물어뜯는 분위기를 생각한다면. 그들이 어떻게 이 프로젝트를 완성해 앨범을 발매할 수 있었는지 나로서는 상상이 안 갈 정도이다...
    현재 베오그라드에는 일종의 팝 열풍이 불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딱히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는다. 나는 팝 음악 같은 것은 할 줄 모르고, Električni Orgazam은 팝 밴드가 아니며 팝 밴드가 될 생각도 없기 때문이다. 뭐 물론, 기계적으로는 가능하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기계적으로 포크송도 만들 수 있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우리는 모던 언더그라운드 밴드이다... 우리에겐 할 만한 새로운 것들이 많이 있지만, 동시에 그 어느 방향으로도 갈 곳이 없기도 하다. 우리는 공연이 가능한 모든 장소에서 내쫓겼다. Šarlo Akrobata와 우리는 짐짝처럼 질질 끌려다니고 있다... 그치들은 우리를 나병 환자처럼 대한다. 어느 곳이든 우리가 공연을 할 만한 장소를 발견하고 연락하면, 모두가 패닉에 빠져버린다. 공연 한 번이나 녹음 한 번을 하기 전에 리허설을 5일 동안이나 해야만 한다. 우리에게는 평범한 작업 방식, 조용하게 만들어야 할 것만 만드는 방식 같은 것은 없다...
    Električni Orgazam은 정말 많이 변했다. 언젠가 SKC에서의 첫 공연 녹음을 들어 본 적이 있었는데, 도저히 웃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때의 공연은 정말 좋았었다.
    나는 또한 우리가 이 밴드를 영원히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없다는 것이 좋은 영향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멤버들 중 그 누구도 "뮤지션" - 음악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밴드를 시작한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이 자신의 직업으로서 일을 하게 된다면, 그는 좋든 싫든 어느 지점에서는 타협을 해야만 할 일이 생기게 된다. 우리는 그런 타협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아니며,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다. Električni Orgazam에게는 매니저도 없고, 부모님도 없고, 우리의 뒷목을 잡아끌고는 정해진 시간에 무엇을 하라고 명령하는 사람들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저찌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 우리가 해 온 모든 것들이..."


    https://youtu.be/4zMHPKsz_aM



    Šarlo Akrobata

    Šarlo Akrobata는 세 그룹들 중 가장 먼저 무대에 등장한 밴드이다. 작년 4월, SKC에서 진행된 Pankrt 공연이 사실상 그들의 첫 공연무대였다. 이 데뷔 공연은, 밴드가 일종의 갈림길 위에 서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무대였다 - 지난 2년간의 Liminovo Drvo 활동의 연장선이냐, 아니면 새로운 방향성이냐의 갈림길. Liminovo Drvo의 마지막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는 Dušan "Koja" Kojić이 베이스를, Ivan "Vd" Vidović이 드럼을 맡게 된 것이었고, 그들은 다른 두 명의 멤버들을 곧바로 새로운 환경으로 끌어들였다. 이 새로운 음악이 당시 SKC 공연에서 연주되었고, 몇몇 예전 곡들 또한 새로운 방식으로 연주되었다. SKC 공연 직후, 기타리스트 D. Mihailović는 Liminovo Drvo에서 곧바로 탈퇴했다. 남은 세 멤버에 따르면 당시 밴드 상황은 이러했다:

    Vd - Milan은 Liminovo Drvo라는 이름의 침몰하는 배의 선장이였다...
    Milan Mladenović - Koja가 처음으로 옷핀과 마이크에 침뱉기를 선보였다...
    Koja - 오, 신이시여!
    Vd - Koja는 그 특유의 베이스 연주법으로 밴드에 엄청난 신선함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베이스 연주를 따라 우리가 모이게 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나는 그 때 Suncokret라는 밴드에 멤버로 있었는데, 멤버들 간 관계가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널리 알려진 유명한 밴드들 몇몇이 나를 초청했었는데, 전부 완전 별로였다. 그런 시간낭비는 이미 충분히 했다고 생각했고, 이제는 정말로 제대로 된 뭔가를 해 보고 싶었다...
    Koja - 음악적 방향 전환은 밴드 이름을 바꾸기 전부터 시작해 있었다. 아직까지도 옛 곡을 두세개 정도는 연주하곤 한다.
    Vd - 우리는 '진짜' 연주를 해 보고 싶었다. 그런 연주가 바람직하게 보였다. 녹음 같은 것은 사실 신경도 안 썼다. SKC에 끼어들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많은 공연을 해 보고 싶었다. 그렇게 Šarlo Akrobata가 시작되었다... 단지 우리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우리는 앨범 녹음 그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반대하는 것은 앨범 녹음이 이루어지는 방식이다. 우리는 셋 모두 그런 짓밟혀진 길에서 벗어났다. 우리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바를 이 곳에서 이루긴 쉽지 않을 것 같다. 음악 외적인 일들을 도와줄 사람이 지금은 없다.
    Milan - 음악적 변화에 대해 말하자면, 그 변화는 여러 외부 영향 및 우리들이 느끼던 지루함, 매일 똑같은 곡을 똑같은 방식으로 연주하는 것에 느낀 싫증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나는 XTC The Stranglers를 즐겨 듣고 있었고, Liminovo Drvo와는 완전히 다른 음악을 하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내가 하고 있는 것 사이에 괴리가 있었다. 더 말해 보자면, 나와 Koja가 XTC, The Stranglers 등을 듣고 있을 때, Idoli는 그런 음악을 전혀 듣지 않고 있었고, Električni Orgazam Sex Pistols및 내가 잘 모르는 밴드들을 듣고 있었다. 나는 대략 작년쯤 Sex Pistols를 처음 들어본 게 다였다. 나는 그런 음악은 '준비 기간' 중에는 듣지 않는다. 우리는 뭐랄까, 그 첫 웨이브를 선택한 것 같다 - 더 에너지가 넘치는...
    Vd - 우리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알 수 있을거다. 이런 음악적 영향은 음악적 사고의 틀을 깨는데 있어 아주 중요하다. 음악이 만들어진 방식, 가능성들... 미안하지만, 우리가 해 온 모든 것들은 그저 외부로부터 받은 영향들을 복제한 것에 불과하다.

    작년 한 해, Šarlo Akrobata는 할 수 있는 기회만 있다면 무조건 공연을 했었다. SKC에서의 세 번의 공연, Laguna, Rollerboll, Tašmajdan에서의 공연들. 이전 밴드들에서의 경험까지 더하면, Milan과 Vd는 베오그라드에서 지난 2년간 가장 공연을 많이 해 본 뮤지션일 것이다. 좀 더 흥미로운 경험도 있다 - Vd는 모든 합동 공연에서 자신의 드럼 세트를 직접 가져와 연주했고 다른 밴드들도 사용할 수 있게 해 주었는데, 최근 그는 동료들 중 한명이 "Vd 자신의 드럼을 연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상황을 겪었다.

    Vd - 여기에서는 모든 것이 정말 미친 난이도를 자랑한다. 머리에 한 대 얻어맞는 것은 예삿일이다. TV를 예로 들면 - 쇼 하나 혹은 두개에 출연하고 나서 곧바로 어디에도 출연할 수 없게 된다. 한 남자가 와서 당신에게 욕지거리를 하거나 당신을 멍청해보이게 만들어 모욕한다. 말하자면 - "원한다면, 좋다, 아니라면 - 엄마한테나 가라" 같은 느낌. 스스로를 전혀 위험하지도 않고 새로운 것도 시도하지 않는 사람으로 소개할 수 있다면, 당신은 그제서야 '록 밴드'라고 불릴 수 있고 공연 기회도 가끔씩은 주어질 것이다...
    Milan - 베오그라드의 모든 기관들이, 자신이 얼마나 잘 하고 있는지를 스스로 확신하면서 그렇게 작동하고 있다.
    Vd - 흠, 그렇다, 외부 의견 없이 스스로 알아서 잘 발전해서 문제없이 잘 굴러갈 방법 같은 것은 없다...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진 세 사람이 모여서 같은 일을 한다는 측면에서, 나는 항상 Šarlo Akrobata를 굉장히 흥미로운 밴드라고 생각해 왔다. 이런 맥락에서, Vd가 자신들은 대화보다는 공연을 통해 더 잘 소통한다고 하는 말이 전혀 놀랍게 들리지 않았다. Vd가 자신감으로 가득 찬 단단하고 정확한 드러머라면, Koja는 활짝 열려 있으면서도 날것의 거친 느낌을 풍기며, Milan은 현대적 신경증을 표현한 것 같은 사람이다. 이런 개성은 각 멤버들의 연주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들의 곡은 완벽하고 정확한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으면서도 언제나 연주의 자유로움을 보장하는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최근 대중적 인기를 끄는 팝 밴드들과는 다르게, Šarlo Akrobata, Električni Orgazam, 그리고 아마도 Haustor는 작곡 규칙을 철저하게 지키지 않으면서도 언제나 새로운 방법, 새로운 구절, 악기들간의 새로운 교류를 탐구하고 있다. [Paket Aranžman]는 안타깝게도 Šarlo Akrobata 공연의 강렬한 힘을 전부 담아내지는 못하고 있다.

    Koja - 나는 음향 엔지니어 및 제작 쪽 사람들을 이해한다. 일단 스튜디오부터가 그렇게 좋지는 못했다. 거기에 더해, 사람들의 작업 방식이 상당히 구식이었다. 우리는 Joe Jackson의 첫 앨범이나 Gang of Four같은 느낌을, 악기들이 자신의 공간을 충분히 가지고 배치되어 잘 들어맞으면서도 과하지는 않은 느낌을 바랬다. Enco Lesić는 정확히 이해했고, 우리더러 마음껏 시도할 수 있게 해 주었다. 하지만 그런 환경에다가, 경험이 없다는 제한 조건 내에서는...

    비록 우리 모두가 최근 흥미로운 공연을 보여주는 밴드들이 정말 많이 생겨난 건 맞다고 동의하긴 했지만, Koja는 여전히 록 음악을 알맞는 방식으로 이해하고 다루는 사람들이 부족하다고 꾸준히 주장했다. 그는 이런 몰이해가 대중매체에서 비롯되었다고 믿었다.

    Koja - 알다시피, Black Sabbath의 [Paranoid]가 발매되었었다. 뭐, 그 앨범이야 환상적이지만... 베오그라드에 헤비 메탈이 들어오게 된 계기가 바로 그 앨범의 발매였다. 그리고 [Paranoid]와 똑같은 음악들이 지난 10년간 계속해서 울려퍼졌다... 어떤 꼬맹이가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말할 때, 그 꼬맹이는 멜로디를 부르는 게 아니라, 뭐랄까 - 투-두-두-두-두-다-두, 자기가 좋아하는 기타 리프를 말하는 것이다.

    Šarlo Akrobata는 Dom Omladine에서의 마지막 공연을 자그레브에서 진행된 베오그라드 밴드들의 공연에 대한 예행 연습 삼아 진행하였었다. 자그레브 페스티벌의 두 번째 날, Šarlo Akrobata Električni Orgazam의 Srđan과 Jovec, 그리고 몇몇 동료들과 함께 Kulušić의 무대 위에 올랐었다. 거기에 더해, 베오그라드 밴드 리스트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했지만, Anoda Rouge라는 밴드가 Kulušić에서 자체적인 공연을 진행하기도 했었다. 이에 대해 베오그라드의 일간지 기자들이 신랄한 비평을 날렸다. 그런 행동을 페스티벌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묘사하면서, 여러가지 문제가 있다고 하며, 어쩌구... 저쩌구...

    Koja - Kulušić의 무대 위에 대략 20명이 있었다. 우리는 45분의 시간 동안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 일간지들이 말하길 우리가 다른 베오그라드 그룹들을 화나게 했다고 하더라 - 우리가 다른 밴드들의 곡까지 전부 연주했기 때문에 말이다. 하지만 그건 전부 농담이었다 - Generacija 5, Oliver Mandić, Riblja Čorba, Prljavo Kazalište, Azra 곡들을 연주하긴 했었다. 다르게 말하자면 그 날 공연은 "Lepe Žene Prolaze Kroz Grad"로 시작해서 "Nazdravite Drugovi Sa Mnom I Sa Tugom"으로 끝났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 무대에는 Džoni도 있었고 Dragan Papić도 노래를 불렀다. 원한다면 그 누구라도 무대 위로 오를 수 있었고.
    Milan - Kulušić에는 대략 150명 정도가 있었고, 두 번째 홀에는 2000명 정도 있었다. 나중에 [Ekspres Politici]지에 실린 기사를 보니 헤드라인이 "Šarlo vs. Spire"더라. 공연 주최측은 Električni Orgazam의 이름을 팔아 홍보해서 돈을 벌고 있었다. Električni Orgazam 멤버 전부가 참석할 수 없고, 따라서 공연도 안 할 거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서도 말이다. 그들은 관객들에게 우리 탓을 하면서 우리를 "건방진", "비협조적인" 사람이라고 몰아갔다. 뭐랄까, 우리가 페스티벌 전체를 날려버리고 싶어했지만, 150명밖에 보러 안 와서 실패했다는 식으로...
    Vd - 뭐 그 마피아같은 녀석들 말고도, 자그레브에는 그 날 저녁만 해도 공연이 2개인지 3개인지는 열리고 있었다. 공연장이 정말 많았다... 록 콘서트는 1달에 1번만 열려야 한다는 규정을 충족시키기에도 차고 넘쳤다... 물론 실제로는 매일 공연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말이다.
    Milan - 주의하라, 무대에 오른다면 그 누구라도 노래하고 연주할 권리가 있다. 그 때 우리는 모두 즐겁게 웃었으며 정말 신나게 놀았다. 록 콘서트의 신비주의를 낱낱히 파헤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내가 베이스와 드럼을 연주하고, Koja가 기타를 잡고, Vd가 노래를 부르고... 정말 즐거웠다...


    https://youtu.be/CfI3eGXkZH8



    Idoli

    Idoli는 1979년이 끝나갈 무렵부터 청중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그들은 모여 사진을 찍고는 신문에 기사를 실어 자신들의 시작을 알렸다. 당시에는 Dečaci(역주: Boys)라는 이름으로 불렸었으며, 그들이 공표한 사진들 중에는 무단도용된 것들도 있었다 - 예를 들자면, 작년 3월 8일의 [Dečaci Emancipuju Žene](역주: Boys Emancipate Women) 시리즈 같은 것들이... 작년 봄, Vidika 레이블을 통해 Idoli의 싱글 [Retko Te Viđam Sa Devojkama]가 발매되었다. Idoli는 Dragan Papić이 주장했던 '허위정보로 청년층 미디어를 가득 채우는 행위'를 충실히 따르고 있었다. 이런 대중에 대한 공표 행위는 지난 6월 SKC 공연으로 이어졌고, 이 무대에서 Idoli는 자신들의 명성이 정당함을 스스로 입증해냈다. Idoli는 굉장히 정교하게 짜여진 프로젝트의 결과물이었다. 오랜 시간동안 이 프로젝트가 거의 Dragan Papić의 아이디어만으로 계획되었는지, 아니면 Idoli 자신들의 아이디어가 주요하게 적용되었는지의 여부에 대해 논란이 있었고, 이 논란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따라서, 본 인터뷰를 밴드의 시작점부터 다루는 것이 좋을 것이리라.

    Nebojša Krstić - 처음에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같은 사람들을 가지고 다른 라인업으로 구성해 보는 것이었다. Vlada Divljan가 드럼을, Srđan Šaper가 기타를, 나도 기타를 연주하게 되어 있었는데, 나는 그냥... 사실 이 라인업은 한 2일 갔었다. 그러다가 우리는 스스로 여기에 시간을 좀 더 쏟아야겠다는 결론을 내렸었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이렇게 시작하게 된 것은 사실이다.
    Vlada Divljan - 우리는 Dragan Papić이 도착하기 전부터 이미 모여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그와는 서로의 아이디어와 관심사를 공유하였을 뿐이다.
    Srđan Šaper - 나는 Idoli의 시작을 무엇보다도 먼저 필요성에 대한 문제였다고 생각하고, 그 다음으로 아이디어의 문제, 우리가 최대한 적절하게 구현하고 싶었던 아이디어의 문제였다고 본다. 간단하게 말해서, 1979년 후반부 - 1980년 초반부에는 공연을 할 만한 장소 자체가 없었다.
    우리는 Dragan Papić이 군대에서 돌아온 지 대략 1달이 지났을 때 그와 만나게 되었다. 그는 이미 이것저것 여러 프로젝트를 하고 있었다 - 그림들도 많이 그렸고, 여러가지를 많이 말했다... 솔직하게 말해서, 우리들 사이의 관계는 언제나 똑같았다 - 말하자면, 우리 셋과 Dragan Papić, 네 명이 하나의 일을 하는 관계.
    Vlada - 우리는 언제나 공연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단순히... 물론 우리가 그동안 해 온 것들은 모두 우리가 원해서 한 것이기는 했지만, 단순히 사람들에게 우리를 알리기 위한 목적만은 아니었다... 결국 우리와 Dragan Papić은 다른 길을 가게 되었다. 그에게는 그의 목표가 있었고 우리에게는 우리의 목표가 있었다.
    Srđan - 프로젝트의 아이디어 - 누구라도, 어떤 프로젝트에 대한 아이디어를 갖게 되면, 자신 개인의 프로젝트를 위한 아이디어도 따라서 생겨나게 될 것이다. Dragan Papić에게는 그를 위한 아이디어가 있었고, 우리에게는 우리를 위한 아이디어가 있었고, 물론... 모든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 갑자기 알게 되는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런 식으로 모든 미디어 매체를 활용해 점점 더 우리에 대한 접근을 쉽게 한다면. 결국에는 청중들에게 침투하기 더 쉽게 될 것이었다.
    Nebojša - 그렇다. 흥미로운 부분이다. 사람들이 별다른 이유 없이 우리를 5번이나 보게 된다면, 그 사람들은 점점 우리에 대한 인상을 미리 갖게 되어 우리를 보는 것이 낯선 일이 아니게 된다. 그 후로는 여러가지를 해 보는 것이 더 쉬워진다...

    공연 자체를 시작하기도 전에 미리 이미지를 형성해 놓음으로써, Idoli는 그저 무대에 등장하여 기존 이미지가 맞다는 것을 증명만 하면 되게 되었다. 그렇게, 많은 밴드들이 거쳐가는 첫 단계를 Idoli는 너무나도 쉽게 건너뛰어 버렸다. 그들의 첫 무대에서, Idoli는 단지 네다섯 곡 만을 연주했다. 이제서야 30분이 넘는 시간을 채울 수 있도록 곡을 더 만들고 있다. 어째서? 스스로 레파토리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기라도 했던 것인가?

    Vlada - 어쩌면 그런 것은 첫 번째 공연에서만 가능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흠, 우리는 최근에는 정말로 그렇게 하고 있는데, 그냥 두 배로 공연시간을 늘려 그 시간 동안 연주할 수도 있다.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누군가가 한 시간 동안 그냥 별 것도 아닌 지루한 음악을 연주하다가 떠나는 그런 공연에 질려버렸다.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청중의 주목을 계속해서 이끄는 밴드들은 사실상 거의 없는 수준이다. 우리는 긴 시간 동안 공연을 진행하는게 괜찮아 보일 때마다 그렇게 해 보고 있다.
    Srđan - 흠, 나는 청중들이 미리 알고 있을 만한 곡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10~11개 곡들 중 사람들이 알 만한 곡을 3~4개 넣어 연주한다는 것이 아니다. 대략 40분간 청중들을 주무르다가 끝나기 전 2곡 정도를 모두가 알 만한 곡으로 마무리하는 것이다.
    Vlada - 최근 우리는 멤버 전부가 같이 작업하고 있다. Idoli에 "테러리스트" 멤버는 없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성공적인 부분이나 우연히 잘 들어맞는 부분들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처음에는 밴드의 음악적 부분에 대한 걱정이 많았었지만, 1년쯤 지나자 모든 멤버들이 균등하게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여러 베오그라드 그룹들 사이에서, Idoli는 자신들을 가장 멋진 스타일의 밴드라고 말하고 있다. 기존 스타일에 대한 이해 및 새로운 스타일에 대한 탐구를 바탕으로 Idoli는 레퍼토리를 보다 더 넓은 범위로 확장하고 있다. 이들은 가사를 언제나 적절한 형식의 음악 위에 올려놓고 있다.

    Srđan - 우리의 작업은 각 멤버들의 성격과 개인적인 선택에 따라 아주 자연스럽게 진행되고 있다. 예술적 경험이라던가, 패턴이라던가, 그런 개념들이 지금 이 시대에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최근 들어, 비평은 특정 분야의 '행동양식'에 주목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순수한 음악 비평이나 예술 비평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그렇게, 어떤 장르의 음악가들이 보이는 행동양식에 대해 먼저 알고, 그 후 여러가지를 세련된 방식으로 할 수 있게 된다...
    내가 아는 한 - 나는 스타일이 어떤 '수줍음'같은 감정에서 나온다고 본다. 그런 수줍어하는, 부끄러워하는 감정이 여러가지 주제에 대한 태도를 엄청나게 바꾸게 된다. 그런 내성적인 사람은 여러가지 주제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질 수 있다...
    Vlada - 나는 그 표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 수줍어한다는 것. 나는 좀 더...
    Srđan - 왜? 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의 수줍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한테는 적절한 표현이다 - 감정 표현에 있어서 내성적인... 내성적이고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것은, 정신의 우아함을 보여주는 사인이기도 하다...
    Vlada - 잘 알지만... 나는 그냥 그런 표현 자체를 안 좋아한다. 나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
    Srđan - 뭐, 상관없다 - 우리가 마초 타입인 것도 아니고.
    Vlada - 뭐, 지금, 어떻게, 하하하...
    Srđan - 우리는 언제나 다른 것을 모방하고 있다. 우리는 언제나, 모든 곡에서, 일종의 기본을 발견하곤 한다. 그게 중요한 부분이다 - 우리는 미리 정해진 계획 같은 것 없이 행동한다.
    Vlada - 맞다. 사람들이 우리를 Buldožer와 비교하곤 할 때, 여러가지 말도 안 되는 의견들이 등장한다. 예를 들자면... 어쩌구 저쩌구... 흠, 그들을 싫어하거나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와 그들은 서로 아주 다른 방법으로 음악에 접근하고 있다.
    Nebojša - 이렇게 하면서, 우리는 본질을 발견하고 있다!
    Srđan - 맞다, 농담이 아니다. 우리는 겉보기보다 훨씬 더 많이 방황하고 헤메고 있다. 우리가 해 온 모든 것들, 사람들이 광대짓이라고 부르는 것들 - "Maljčiki"부터 "Schwüle über Europa"까지, 나는 이 모든 것들이 하나의 메시지로 귀결된다고 본다 - 사회주의적 리얼리즘, 이 개념을 가리키는 독일어 단어가 있었는데 지금 기억이 안 나는데, 어쨌든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나는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느낌이 가는 대로 했을 때 나오는 구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이 결과는 완전히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어야 한다. 그 곡에서, 우리는 그 '구조'를 15분만에 만들었고, 가사와 음악은 나중에 정제한 것이다... 그런 식이 아니라면 창조는 있을 수 없다.
    Vlada - 그게 흥미로운 부분이다. "Maljčiki"를 예로 들자면, 많은 사람들이 그 곡에서 무언가 깊은 의도를 찾으려고 노력했는데, 그 곡은 그냥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곡이었을 뿐이다.
    Srđan - 무엇보다도 '감정'에 관한 곡들이었다. 어떤 통합에 대한 감정,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에 내재된, 슬라브 문화와 연결되어 있는 근본적인 무언가... 현재 모든 사회주의 국가는, 루마니아와 동독과 헝가리를 제외한다면, 결국 슬라브 국가들이다. 다시 말하자면, 현존하는 모든 슬라브 국가가 전부 사회주의 체제 하에 있다 - 아직까지도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을 시도해 본 적이 없었던 국가들이. 음, 분명히 무엇인가가, 이런 방식의 사고와 이런 방식의 유대관계에 근본적인 무엇인가가 내재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Vlada - 우리에게는 하나의 텍스트 구조, 하나의 뼈대가 있고 그것을 계속해서 반복했다...
    Srđan - 그렇게 작업을 진행하다가, 특정 장르의 '패턴'을 발견하게 된다면 - 정말 아름다운 일이다. 스스로를 그렇게까지 똑똑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점에서는, 그리고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작업에 너무 과하게 빠져들고 있다고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는 조금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다. 우리가 작업을 하는 이유는 첫째로 그 작업이 재미있어서이고, 둘째로는 최소한 절반 정도를 새롭게 환기시키기 위해서이다. 결과를 낸 후, 스스로 대체 어떻게 이 결과를 만들었는지, 어째서 만들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을 뿐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Idoli는 몇몇 곡에서 조각조각난 진지함 사이로 멋진 농담을 위한 공간을 충분히 남겨두고 있다. "Jedina"나 "Malena"같은 곡들을 보자면... 멋진 "fukati"(역주: fuck)도 있다...

    Nebojša - 바로 Vlada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어딜 가나 항상... 헤헤.
    Vlada - 흠, 내가 특별히 질질 끄는 부분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가 참여해서 완성시키는 곡들이다.
    Srđan - "Fukati"라는 표현은 우리 모두에게 정말 생경한 것이었다. 신비스러우면서도 따분하지 않은. 그 표현에는 어떤 상쾌함이 있다... 여름 그 자체의 분위기 말이다. 요점은, 우리는 언제나 특정한 스타일을 시도하고 나머지는 전부 나중에 생각한다는 것이다. 우리를 인용하는 어느 곳에서도, 우리는 멋진 농담거리를 가지고 나타나서 정말로 그 방식대로 행동하는 녀석들이 되었다 - 하하하...

    내 눈에는 당신들 모두 멋진 삶의 방식을 가졌으면서도 손 안에 모든 줄을 꼭 쥐고 있는 사람들로 보인다... 동시에, 정 반대되는 측면을 가지고 있다...

    Momčilo Rajin
    사진: Branislav Rašić-Raš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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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youtu.be/-UZ_2m6LAcI

     

     

    2020/12/15 08: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