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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n Utero
    [...]/[Nirvana] 2023. 3. 22. 13:57




    https://youtu.be/AqT0mnA5xPs
    "Serve The Servants" (2013 M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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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spin.com/2013/09/nirvana-cover-story-1993-smashing-their-heads-on-the-punk-rock/


    Nirvana: 1993년 [In Utero] 커버 스토리
    Darcey Steinke
    [Spin]
    1993년 10월 출판


    '명성'이라는 것에는 누군가를 기화시켜 저 높은 곳으로 날려보내는 효과가 딸려오기 마련이다. '명성'은 유명인사를 높이 띄워 인간의 가장 내밀한 장소까지 올려보낸다: 바로, '꿈'. 하지만 Kurt Cobain에게는 수많은 사람들의 집착이 자동차의 눈부신 헤드라이트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 위기를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던 희생자를 얼음처럼 얼려버리는, 그런 한밤중의 헤드라이트로 말이다. "꿈을 꾸면 꿈 속에서 언제나 양 극단이 서로 편을 갈라 종말에 이르는 싸움을 한다." Cobain은 시애틀에 위치한 그의 집 거실에 있는 버건디색 고급 소파에 앉아 말했다. "가장 최근에 꾸었던 꿈은 2일 전이었는데, Courtney와 내가 Hollywood Hills에서 살고 있었고 우리 집 옆에는 Arnold Schwarzenegger가 살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 옆에서 산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역겨운 기분이었다." Cobain은 미 북서부 특유의 느릿하면서도 경쾌한 어조로, Quentin Crisp이 조금 지저분한 느낌으로 말했더라면 비슷했을 그런 어조로 말하고 있었다. "꿈에서 집을 나와 길을 따라 걸어갔는데, 길 위에서는 탄압당하는 사람들이 굶어가고 있었고, 고작 25센트 동전 하나에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또 갑자기 어떤 S/M 클럽에서 내가 무언가 덕분에 상을 받게 되었는데, 정말로 괜찮은 시상식이었다. 벽에 체인이 걸려있다거나 하지는 않았고 대신 아름다운 꽃들로만 장식이 되어 있었다. 정말 많은 '스타'들이 방문했던 클럽이었다." Cobain은 벽난로 위에 있는, 간호사 복장을 입은 작은 인형을 흘낏 바라보았다. Cobain과 그의 아내, Hole의 리더 Courtney Love는 이런 인형을 수백 개 정도 모으고 있었다. "그 클럽에서 나는 계단을 내려오는 방식으로 입장해야만 했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Courtney에 대해 생각하는 내용들 때문에, Courtney는 키가 60 cm에 전반적으로 검은색인, 커다란 발을 가진 난쟁이가 되어버렸다. Courtney는 이런 식으로 뒤뚱거리며 걸었다..." Cobain은 Charlie Chaplin 처럼 앞뒤로 움직였다. "Courtney가 나타나자 곧 누군가가 그녀를 발로 차 계단 아래로 밀어버렸다. 나는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고."

    누구라도 그러겠지만, Nirvana 멤버들 및 Cobain 가는 지난 18개월 동안 엄청난 피해를 입어 왔다. 이들은 자신들이 달성한 거대한 스타덤을 받아들이고 지내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으며, '명성'이라는 낯설고 가끔씩은 잔혹한 바닥 위에서 발을 딛고 똑바로 서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들이 서 있는 땅에는 수많은 장애물들이 있었다 - 몇 개는 그냥 작은 구멍 정도였지만, 몇몇은 아주 위험한 지뢰 수준이었다. [Nevermind]의 후속작, [In Utero]는 오는 9월 14일에 발매될 예정이었으며, 시애틀 기반의 밴드 Nirvana는 이 앨범을 통해 '유명인'의 위치에서 훨씬 더 마음 편한 '록 밴드'의 위치로 돌아가고 싶어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 수 개월 동안의 광기를 지워버리는 것에는, 펑크 록 음악의 시원한 폭발보다는 훨씬 더 많은 것이 필요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작년 9월, [Vanity Fair] 지에는 지금은 누구나 다 알고 읽어 본 Courtney Love에 대한 기사가 실렸었다. 이 기사는 Love가 자기 입으로 여러가지를 말했다고 주장했고, 그 중에는 지금은 1살에 건강한 딸아이 Frances Bean를 임신하고 있을 때 헤로인을 사용했다는 고백도 포함되어 있었다 - 그리고 Love는 이 기사가 거짓이라고 응수했다. Cobain은 Condé Nast, [Vanity Fair]의 뒤에 있는 모회사를 가리켜 "보수 꼴통에 고급 패션 매니아인 기독교도 악마숭배자들 집단이다. Condé Nast는 자신들을 위협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박살낼 수 있는 힘을 가진 집단이다"라고 평했다.

    Cobain은 그가 메인스트림 미디어에게 당한 일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종종 극단적인 방향으로 나가곤 했다. 그의 분노는 거의 피해망상에 가까울 정도로까지 발전했지만, 언론은 Cobain의 기분을 더 극단적으로 몰아 그 어떤 보호 없이 완전히 노출된 느낌이 들도록, 그의 일상과 사랑을 이전까지는 생각치도 못했던 방식으로 타협하게 만들도록 몰아세웠다. Cobain은 최근 그의 뉴욕 여행에 대해 도는 소문들에 대해 두려움마저도 느끼고 있었다. 떠도는 소문들은 Cobain과 Love가 뉴욕에서 마약을 너무 많이 한 나머지 택시 뒷좌석에서 신나게 구토를 해 댔고, 구토를 너무 많이 한 나머지 딸 Frances Bean을 뒷좌석에 내버려두고 잊어버린 채 자기들끼리만 택시에서 내렸다는 내용이었다. 이 소문은 점점 더 살이 붙어 택시 기사 또한 몇 시간 동안이나 뒷좌석에 아기가 있는 지 모른 채로 뉴욕 시를 떠돌아다녔다는 내용까지 이어졌었다.

    "그건 'Rod Stewart와 정액' (역주: Rod Stewart 또는 Elton John이 파티장에서 쓰러졌는데, 제정신으로 돌리기 위해 의료진이 모여 노력하다 보니 위장에서 600 mL 또는 6 L의 정액을 뽑아내게 되었다는, 한때 유행했던 찌라시) 루머 같은 거 아닌가 싶은데." 나는 Cobain에게 말했다. "당신은 이제 현대 동화의 주인공 정도에 해당하는 위치가 된 거라고."

    "세상에." Cobain은 말했다. "차라리 그런 소문이면 괜찮겠어, Kurt Loder가 "Kurt Cobain의 위장에서 600 mL의 정액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라고 말하는 거, 그건 최소한 웃기기라도 하잖아."

    베이시스트 Krist Novoselic에게는, '악명'이 그렇게까지 문제되지는 않았다. Novoselic의 말에 따르면 그는 스스로를 거의 항상 바깥에 노출시키며 살고 있었고 그래서 딱히 공포증이 생길 것도 없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그 또한 낯선 사람들을 만날 때 이상한 기분이 드는 측면이 있기는 하다고 인정했다. "스스로를 소개하면 다들 '너가 누군지는 잘 알고 있지'라는 식으로 군다. 만약 소개하지 않으면 나를 건방진 놈으로 생각하는 게 겉으로 다 보이고."

    드러머 Dave Grohl은 사람들이 자신은 그렇게까지 자주 알아보지는 못하는 이유가 평상시에 드럼 세트 뒤에 가려져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고 추측했다. 그냥 평범하게 길을 가다가 낯선 누군가가 자신을 불러세우는 경험은 해 본 적이 없었지만, 최근 일어난 어떤 일은 Grohl 조차도 섬뜩하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뉴욕에 어떤 남자가 있는데 이 사람이 말 그대로 매 주 일요일마다 특정 음반점에 들러서 자기가 Dave Grohl의 아버지라고 주장한다고 하더라. 미친, 소름돋는다."

    Novoselic 및 Grohl은 '스타'의 위치에 올라 있는 것이 가끔씩은 정말로 힘들다고 말했다. 하지만, Cobain에게는, 이건 사실상 지옥이었다. Grohl은 말했다. "Kurt의 머릿속에는 좆같은 것들이 한 트럭은 있으며, 문제는 이것들이 Kurt가 잘못해서 생긴 것들이 아니라는 거다. Kurt가 열받았거나 분노에 차 있으면 우리도 당연히 알아볼 수 있고, 이러면 결국에는 밴드 멤버들 모두가 불편해지게 된다."


    https://youtu.be/8vZxDNC9EQs
    "Heart-Shaped Box" (2013 Mix)


    "Tabitha Soren이 평소에 말할 때에는 아주 차분하고 단조롭게 말하는 거 아는가? 그런데 Nirvana에 대해 말할 때에만 진짜 흥분해서 말한다고 - 눈썹도 치켜세우고 목소리에는 그 독기가 가득 차 있는 게." 1934년부터 운영해 온 시애틀의 식당, Dog House Restaurant의 부스에 앉아, Cobain은 Novoselic과 내게 말했다. 이 식당의 카운터 위에는 '모든 길은 Dog House로 향한다'라는 글귀가 붙어 있었다. Cobain은 깜짝 놀랄 정도로, 사실상 전기, 고압선에서 전기가 흐르며 나는 웅웅거리는 소리처럼 파르르 떨며 말했다. 어린 시절 앓았던 척추측만증 때문에 그의 등은 언제나 살짝 굽어 있었고, 체크 무늬 모자는 귀를 덮고 있었다. 그는 프라이버시를 위해 모자를 일부러 눌러 써 챙이 눈을 가리게 했다. 그의 얼음처럼 푸른 눈동자는 사람을 얼어붙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가 신은 검은색 테니스화의 발끝 부분에는 검은색 마커로 "Fugazi"라고,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다른 철자로 쓰여 있었다. Cobain은 담배 한 개비를 더 꺼내어 불을 붙였다. 그의 손톱에는 빨간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었고, 조금씩 닳아 있었다.

    Cobain이 Tabitha Soren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은 [The Seattle Times] 기사에 기반해 방영되었던, 7월 12일자 MTV 뉴스 방송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 기사에는 Cobain의 집에서 일어났던 가정 불화 사건에 대한 내용이 나와 있었다 - 기사는 Cobain과 Love가 몇 개의 권총과 AR-15 소총에 대한 소유권을 두고 서로 주먹질을 해 가며 싸웠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Cobain은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냥 놀랐다. 이렇게까지 전부 틀린 내용을 이정도로 자세하게 만들어 냈다는 것에." 그는 자리에서 안쪽으로 더 깊숙히 들어가 앉았다. "정말로 일어났던 것은, Courtney와 내가 집 주변을 뛰어다니면서 서로 소리도 지르고 레슬링 비슷한 것도 했던 것이 전부였다 - 인정한다, 어느 정도는 Sid Vicious Nancy Spungen 같기는 했다 - 하지만 우리는 즐겁게 놀고 있었던 게 다였다. 그러다가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서 나가보니 경찰차가 5대에 모든 경찰이 총을 꺼내들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그 당시의 상황에서 느꼈던 기이함을 반영하고 있었다. "우리는 둘 다 파자마 차림이었다. 나는 그 위에 길고 검은 벨벳 가운을 입고 있었고. 체포당하기게 좋은 차림새는 아니었다..." 경찰은 Cobain과 Love에게 워싱턴 주 법에 의하면 가정폭력 사건에서는 누군가가 반드시 체포되어야만 한다고 설명했었다. "그렇게 되자 우리 둘이서 언쟁을 벌이게 되었던 것이다, 누가 체포당할지에 대해서. 나는 "내가 갈게"라고 말했고 Courtney는 "아니 내가 갈 거야"라고 말했다. 나는 거기에 "아아아아니, 이 집에 남자라고는 나 뿐이잖아. 경찰은 언제나 남자를 체포하는 법이라고"라고 대답했고." Cobain은 웃었다. "지금은 그렇게 말했던 것을 후회한다. Courtney가 남편을 패는 여자라니, 상당히 멋진 생각이지 않나." 그는 비꼬듯이 말하고 있었다. "Courtney가 나에게 주스를 던졌고 나는 그녀를 밀쳤다. 하지만 이건 전부 누가 유치장에 갈 지에 관한 논쟁이었지, 다른 것이 아니었다."

    큰 키에 어쩐지 링컨 전 대통령을 닮은 Novoselic은 Cobain의 말을 귀기울여 들어주고 있었다. Cobain은 이어 말했다. "둘이서 문 밖으로 나오려고 할 때, 경찰이 말했다. "그런데, 집 내부에 총기가 있으신가요?"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문제를 더 크게 키우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Courtney는 있다고 대답했다." Cobain의 뺨이 붉어졌고 좁은 어깨는 긴장한 듯 떨렸다. "물론 워싱턴 주 가정폭력 법을 100% 지지하는 입장이다. 나는 그런 가정폭력 상황을 실제로 본 적이 있다. 한번은 어머니의 애인이 어머니를 두들겨 팼었다. 이전에도 여러 번 폭행했었지만 내 눈으로 직접 본 것은 단 한번이었다. 그 남자는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거대한 마초맨으로 언제나 술을 병째로 들이키던 사람이었다. 내 어머니는 두 눈 모두 멍이 들었고 병원으로 곧장 가야만 할 정도로 크게 다쳤었다." Cobain은 눈을 커다랗게 떴다 - 이 사건, 가정폭력에 관한 법률이 자기에게 적용되었던 사건이 얼마나 그의 마음을 흔들었는지, 그 이유가 고통스러울 정도로 당연하다는 것을 말해주듯이. 그는 조용히, 나직하게 말했다. "나는 그 새 법률이 필요하다는 것에 완전히 동감한다."

    Novoselic은 Cobain을 옆에서 진정시킬 수 있는 사람이었다 - 때로는 말로 복돋아주기도 했다가, Cobain이 너무 지나치게 광적으로 나간다 싶으면 잠시 멈춰세우기도 했다. Novoselic은 [The Seattle Times]가 자기 어머니에게까지 연락해 Cobain-Love 부부의 문제가 진짜인지에 대한 의견을 물어봤었다고 말했다. 어머님은 그들에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 Novoselic은 미리 어머니를 설득해 언론이 연락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어머니 집의 지붕을 새 지붕으로 바꿔주겠다는 약속까지 해 두었던 것이다.

    반면, Grohl은 이 모든 난리통에서 빠져나와 바깥에 서는 것으로 소란을 피하는 길을 택했다. "Krist 및 Kurt와 함께 음악을 하는 것은 정말 좋아한다. 하지만 음악 외적인 온갖 소란은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 사이코드라마가 필요한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나는 전혀 아니다."


    https://youtu.be/nGRLcHCTKOE
    "Scentless Apprentice" (2013 Mix)


    오늘날 록 앤 롤 업계의 거인이 된 이 밴드의 시작은, 굉장히 소박했었다. Cobain은 어린 시절을 시애틀에서 남쪽으로 160 km 떨어진 Aberdeen이라는 동네의 트레일러 파크에서 보냈다. Novoselic은 L.A.에서 자랐고 14살이 되었을 때 Aberdeen으로 이사를 왔다 - Novoselic의 어머니는 아직도 Aberdeen에서 "Maria's Hair Design"이라는 이름의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 Cobain은 예술대학에 지원할 수 있는 장학금에 선정되었지만 이 기회를 버리고 대학교를 가지 않는 길을 택했다. 그는 음악, 특히 워싱턴 주의 슬럿지 록 영웅인 Melvins에게 푹 빠져 있었다. Cobain은 Melvins를 따라다니며 밴드의 리허설들을 보았고, 결국에는 Melvins의 드러머 Dale Crover와 함께 곡도 쓰고 녹음까지 했다. Novoselic 또한 Melvins의 광팬이었으며, Cobain이 만든 테잎에 큰 감명을 받아 1987년 Cobain에게 직접 밴드 결성 제의를 건넸다. 이렇게 밴드를 결성한 후 둘은 Aberdeen을 떠나게 된다: Novoselic은 Tacoma로 향해 페인트공 일을 시작했으며, Cobain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문화의 메카'라고 여겼던 Olympia로 이사해 그 곳에서 치과병원 관리인으로 취직했다.

    이 둘은 Tacoma-Olympia-시애틀 근교에서 여러 공연을 진행했으며, 그 후 Reciprocal Recording 스튜디오에서 프로듀서 Jack Endino와 함께 작업을 할 기회를 만들게 된다. 이 세션에서 데모 테잎이 만들어졌으며, Endino는 이 테잎을 Sub Pop의 Bruce Pavitt에게 건네 준다. Pavitt은 이 데모 테잎을 듣고 충분한 감명을 받았으며, 1988년 10월 Sub Pop에서 Nirvana의 첫 싱글, [Love Buzz / Big Cheese]가 발매되고 곧이어 1989년 첫 LP인 [Bleach]가 발매된다. [Bleach]는 단돈 600달러의 예산으로 3일만에 녹음을 끝냈던 앨범이었다. 밴드에는 여러 드러머가 거쳐갔으며 1990년이 되어서야 Grohl이 들어오게 된다 - Cobain과 Novoselic은 워싱턴 DC 하드코어 밴드 Scream의 공연에서 드럼을 연주하는 Grohl을 보고 멤버로 영입했다.

    점점 더 많은 팬들이 Nirvana의 앨범을 찾아 힘들게 헤메이게 되면서, 그리고 이들의 레이블 Sub Pop 또한 유통 계약을 맺기 위해 점점 더 여기저기로 돌아다니게 되면서, Nirvana는 메이저 레이블로 이적한다는 가능성을 갈수록 더 진지하게 고려하게 되었다. 밴드는 위스콘신 Madison에 있는 Butch Vig의 스튜디오에서 이런저런 곡들을 녹음하였으며, 이들 중 상당수가 나중에 [Nevermind]에 수록된다. 그 후 진행된 '경매'에서 Geffen이 승리하여 Nirvana의 Sub Pop 계약 권리를 전부 사들였고, 밴드에게는 앨범 2개 분량의 계약금으로만 28만 7천 달러를 지불했다. Vig은 [Nevermind]의 프로듀서가 되었으며, Andy Wallace가 마지막 믹싱 작업을 담당했다. Geffen 임원진들은 [Nevermind]의 판매량을 대략 30만장 정도로 기대했지만, 앨범은 몇몇 음반점에서 위험해 보일 정도의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MTV는 "Smells Like Teen Spirit"의 뮤직비디오를 그냥 계속해서 방영했다 (나중에 이 곡은 "Weird Al" Yankovic의 패러디 "Smells Like Nirvana"와 함께 말 그대로 미국 전역을 뒤덮어버리게 된다). "Smells Like Teen Spirit"은 싱글 차트 1위를 향해 멈추지 않고 직진했으며, [Nevermind]는 발매 후 4개월만에 5백만 장이 넘는 판매량을 손쉽게 달성하였다 (지금은 전세계적으로 9백만 장이 넘게 팔렸다). [Nevermind]의 말도 안 되는, 비교불가능한 성공은 음악 산업, 패션 산업, 심지어 데오드란트 산업 (역주: 'Teen Spirit'이라는 이름의 데오드란트가 있습니다) 마저도 완전히 바꿔버렸다. Nirvana는 투어 밴을 타고 여기저기 다니며 억지로 공연을 해 겨우 먹고 사는 수많은 펑크 밴드들 중 하나에서, 갑자기 '바로 그 펑크 밴드'가 되어버렸다. Nirvana의 음악은 음악의 새로운 카테고리를 창조하고 정의하는 데에 필수적인 역할을 했으며, [Nevermind]는 밴드 멤버들을 '록 스타'로 만들었다.

    Cobain은 잔뜩 지친듯한 느낌으로 말했다. "사람들 속에 쉽게 섞일 수 있었을 때가 정말로 그립다. 최근에는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는 것 자체를 더 이상 견딜 수 있을지, 확신조차 안 서고 있다."

    Cobain은 캘리포니아 Orange County에서 Melvins 공연을 보러 갔을 때의 일화를 이야기했다. "술에 취해 빈정대는 20살 정도의 꼬맹이들이 한명씩 나에게 와서 "너 The B-52's 멤버 아니야?"라고 시비를 털었다. 순전히 나를 열받게 하려고 그딴 질문을 하는 거였다. 한 남자는 나한테 갑자기 다가오더니 등을 한 대 세게 치고는 "이봐, 너 좋은 일 많잖아, 그 좆같은 태도만 고치라고. 약 좀 끊고 그냥 씨발 좀 제대로 하라고."라고 말하더군."

    한때 Cobain은 팬들을 만나면 따로 데리고 가서 스타덤이라는 것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끝없는 복잡한 문제들, 압박들, 어쩔 수 없는 타협점들에 대해 직접 설명하고 싶어하기도 했다. 사실 마음속으로는 아직도 외로운 Aberdeen 꼬맹이라는 것을, 펑크 록으로 인해 삶이 완전히 (좋은 쪽으로) 바뀌어 버린 아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했었다. 그리고 가끔씩은 그런 말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있기도 했었다. "Butthole Surfers 공연이었는데, 10살정도밖에 안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있었다. 머리는 초록색으로 염색했고, 티셔츠를 스스로 만들어 자기들이 좋아하는 밴드 이름을 이곳저곳에 적어 놓고 입고 다니던, 스케이트 보드 매니아 펑크들이었다. 나는 우리가, 그리고 펑크 록이 그 아이들에게 특정한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 아이들은 내 사인 같은 건 원하지 않았다. 단지 나와 악수를 하고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하는 것이 전부였었다. 얼터너티브 록에 빠져 있는 아이들을 만나면 전율이 인다. 그 나이에 벌써 그렇게까지 앞선, 최신 유행의 음악을 듣고 있다니, 나로써는 질투가 날 정도다."

    Cobain은 자신이 특정한 서브컬처 분야가 자라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에 아주 기뻐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 자신이 어렸던 시절에는 접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던 서브컬처에 대해. Nirvana의 새 앨범, [In Utero]가 곧 발매될 예정이지만, [Nevermind] 이전, '그런지 열풍' 이전의 삶에 대해, 아직도 향수에 젖지 않을 수 없는 것 처럼 보였다.

    Cobain은 말했다. "그 때에는 모든 것이 정말로 단순했었다. 나는 우울증이 심해지는 시기를 막 빠져나오고 있던 참이었다... 침대에 누워 몇 주를 보냈다. 사무엘 베케트를 읽고, 일기를 쓰고. Dave와 나는 좁아터진 아파트 방에서 함께 살았고, 콘도그와 감자칩만 먹으면서 지냈었다. 그 방은 완전 난장판이었다, 바닥에는 담배꽁초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고 반쯤 먹다 버린 음식들도 한가득이었다. Krist와 나는 악기를 저당잡히기까지 했었다. 하루는 탈수 증상이 너무 심하게 와서 병원에 실려 가 링겔을 맞아야 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다가 L.A.로 [Nevermind]를 만들러 가게 되었을 때, 모든 것이 바뀌어버렸었다. L.A.는 정말 따뜻했고 거의 열대지방 같은 느낌이었다. 우리는 Oakwood Apartment라는 곳에서 지냈는데, 그 숙소에 거주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하루 종일 스타를 쫓아다니는 어머니들과 그들의 자녀들이었다. 좀 기괴한 곳이었지만, 동시에 또 정말로 안락한 곳이기도 했다. 그 아파트에는 체력단련실도 있었고 나는 생선요리로 저녁을 준비하기도 했었다." Cobain은 잠시 멈추고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In Utero]를 준비하던 과정은, 끝이 안 보이는 느낌이었다. 공허에 갇힌 느낌마저 들었다."


    https://youtu.be/06aaUukGvMQ
    "Milk It" (2013 Mix)


    새벽 4시 30분 무렵, Geffen의 홍보 담당자 Luke Wood가 나를 Cobain의 자택에서 호텔로 태워다 주겠다고 했다. Cobain 또한 차를 얻어 타고 친구 집으로 갈 수 있겠냐고 말했다 - Cobain의 차인 1990년식 볼보는 상태가 엉망이었다. Wood는 친구에게 전화를 해 볼 수 있겠냐고, 지금 시간에 깨어 있는지 확인하는 편이 좋지 않겠냐고 제안했지만, Cobain은 거절의 표시로 머리를 흔들었다. 우리는 Interstate 5 고속도로를 달렸다. 시애틀의 언덕에는 몇 개의 불빛만이 켜 져 있었고, 이 불빛들에 호수 표면이 반짝거렸다 - 마치 오즈의 마법사에나 나올 법한 꿈같은 풍경이었다. 우리는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왔고, Cobain의 지시에 따라 한 거리에서 다른 거리로 왔다갔다 했다. 우리의 눈 앞에는 3층짜리 낡은 목조 주택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Cobain은 말했다. "여기야, 여기서 내릴게." 그는 차 문을 열고 나갔다. 바깥에는 약한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주변의 모든 집들은 불빛이 완전히 꺼져 있었고, 쥐죽은듯이 조용했다. 나는 작별인사를 건넸다. Cobain은 젖은 길바닥 위에 홀로 서 있었고, 외로이 서 있는 가로등의 불빛을 받고 있었다. 무언가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기도 했고, 완전히 지쳐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동이 트기까지 1시간도 더 남은 새벽, 교외지역을 떠도는 불안한 유령 같은 Cobain의 모습은 그가 가진 [In Utero]에 대한 불안감을 반영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아직도 좋은 반응을 충분히 듣지 못했다. 스튜디오에서 나온 초안을 들었을 때, 이전과 같은 전율이 들지 않았다. [Nevermind] 때에는 음악적으로 너무 과하게 인정을 받아 당황스러운 기분마저 들 정도였는데, [In Utero]의 경우는 프로덕션 (그 유명한 Steve Albini가 담당하였다), 수록곡, 앨범에 대한 우리의 접근 방식 때문에 최소한 몇 번은 들어 봐야 이해가 가능한 앨범이 되었다."

    하지만, Cobain은 주저하면서도 [In Utero]에 대해 진심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하기도 했다. "이번 앨범의 가사는 훨씬 더 집중해서 쓴 가사이다 - 거의 '주제'가 있다고까지 볼 수 있는 가사들이다. [Bleach] 때에 나는 가사가 무슨 뜻인지 좆도 신경을 안 쓰면서 막 써내려갔었다. [Bleach]의 가사의 80%는 녹음 전날 밤에 휘갈겨 쓴 가사들이었다. 뭐랄까, '나 지금 좆나게 열받았어. 대체 뭐에 열받은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한번 부정적인 가사로 도배해보자고, 성차별적이거나 선 넘은 가사만 아니면 괜찮겠지'같은 생각이었다. [Bleach]의 가사에는 별다른 애착도 없다. [Nevermind] 가사는 2년간 써 왔던 시를 모아서 만든 가사였다. 써 둔 글들을 뒤적이며 좋게 들리는 구절을 모아서 이어붙였다. 나는 가사를 쓸 때 언제나 여러 주제에 대한 여러 글들을 모아 이리저리 뒤섞는 식으로 만든다. 반면 많은 사람들이 록 밴드라면 하나의 곡에는 하나의 주제에 해당하는 가사를 통째로 써야 한다고들 생각하고. [Dragnet] 에피소드들처럼 잘 준비된, 판에 박은 가사여야 한다고들 말이다."

    [In Utero] 수록곡들은 정말로 각각의 주제에 훨씬 더 집중된 가사를 가지고 있다. "Scentless Apprentice"는 Nirvana의 세 멤버들이 공동으로 작곡한 (Cobain에 따르면 "밴드의 작곡 과정에 있어 한 단계 진보하게 되었던 곡") 곡으로, 이 곡의 가사는 Cobain이 가장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인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를 기반으로 한 내용이다. [향수]의 주인공 장-바티스트 그르누이는 기이한, 체취가 전혀 없는 괴물이며 뛰어난 후각을 타고 태어나 향수 제조사의 조수로 일하면서 쉬는 시간에는 처녀들의 냄새를 훔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살인마이다. "Scentless Apprentice"의 가사에는 책에서 직접 따 온 인용구도 있으며 ('Most babies smell like butter') Cobain은 자신이 가진 세상에 대한 불편함을 그르누이의 끔찍한 짓거리에 연결시킨다 ('Go away, get away, get away'). 게다가 Cobain과 Love는 실제로 '향기'라는 주제에 상당히 빠져 있는 사람들이다 - "Smells Like Teen Spirit"의 체육관 악취에서부터 최근 [Mademoiselle] 지에 Love가 직접 기고한 '향기에 대한 헌정글'까지. Cobain은 말했다. "나는 '냄새'에 관심이 많다. 언젠가는 향수 가게를 직접 차리고 싶기도 하다."

    "Rape Me"는 고요하면서도 거대한 분노를 담은 곡으로, 밴드는 사실 작년 MTV Music Awards에서 "Lithium" 대신 이 곡을 연주하고 싶어했었다. Cobain은 이 곡을 '삶을 긍정하는 강간 노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화자는 이런 느낌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강간해 봐, 좋아, 강간해보라고, 한번 때려봐. 그래봤자 나를 죽일 수는 없을걸. 나는 살아남을 거야, 그리고 언젠가는 씨발 내가 너를 강간해버릴거야, 그 때에 너는 알아차리지도 못할 걸.'"

    Nirvana는 여러가지 사회문제들에 대해 언제나 당당하고 활발하게 행동해 온 밴드였고, 동성애 혐오에 대해 항상 강력하게 반대해 왔었다 (Cobain은 게이-레즈비언 잡지 [Advocate] 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었다: "나는 정신적으로는 완전히 게이고, 육체적으로도 양성애자일 가능성이 높다."). 밴드는 Novoselic의 제안을 따라 보스니아 전쟁 집단강간 사건의 희생자들을 위한 공연의 헤드라이너를 맡기도 했었다. Cobain은 록 앤 롤 업계에 고질적인 여성혐오 문제를 [In Utero]가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어쩌면 [In Utero]를 듣고 좀 더 많은 여성들이 기타를 들고 밴드를 시작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 것만이 록 앤 롤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 몇 년간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해 왔다 - 록 앤 롤은 이미 진이 다 빠진, 낡아버린 것이 되었으니까. 하지만 이 낡아빠진 록 앤 롤은 언제나 '남성의 록 앤 롤'이었다. 지난 몇 년간 수많은 여성 록 밴드들이 등장했다. 예로 The Breeders와 '라이엇 걸' 밴드들이 있다. 사람들은 이제서야 여성 또한 그런 록 앤 롤 밴드를 할 수 있다고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In Utero]는 발매 후 현미경 아래의 바이러스처럼 샅샅히 조사될 운명의 앨범이다. 정식 발매까지는 몇 개월이나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벌써 [In Utero]에 대해 격렬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 봄, [Chicago Tribune] 지에는 Geffen이 [In Utero]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고 있다는 소문이 기사로 실렸다. [Newsweek] 지에서는 한 '업계 관계자'가 [In Utero]는 귀에 거슬리는, 완전히 비상업적인 앨범이라는 의견을 표명하였다. 누군가는 이 의견이 밴드 멤버들이 의도적으로 뿌린 것이라고 했고, 다른 누군가는 프로듀서 Steve Albini가 불만을 표현한 것이라고도 했다. Albini는 "문제가 있다는 루머는 레이블 회사에서 나온 것이다. 레이블은 밴드의 자신감을 약화시키려고 수작을 부리고 있다"라고 실제로 말했었다. Albini는 Geffen이 Nirvana에게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Albini의 도전적이고 거친 프로듀싱 위에 좀 더 상업적인 느낌을 첨가하도록 압력을 넣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반면, Nirvana 멤버들은 '리믹싱'이 레이블의 상업성에 대한 간섭과는 전혀 무관한 결정이라고, 수록곡 중 2 곡의 보컬이 조금 너무 과하게 거친 감이 있어 내린 결정일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All Apologies"와 "Heart-Shaped Box"는 R.E.M.과 작업한 경력이 있는 Scott Litt가 리믹스하였다). [Newsweek] 지에 기사가 실린 후 루머가 점점 더 악화되면서 퍼져나가자, Nirvana는 [Billboard] 지에 이 루머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1페이지짜리 광고를 싣기도 했다.

    Cobain은 말했다. "나는 녹음 과정에 있어 거의 대부분에 대해 만족했었다. Albini는 훌륭한 사람이다. 하지만 동시에 독선적인 측면도 있다. 이 모든 미디어 난리통은 Albini의 자존심을 엄청나게 부풀렸고, Albini가 사실은 우리와 함께 일을 해야만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게 만드는 수단이 되었다. 그는 '미스터 펑크 록'이 되는 것에 굉장히 깊게 빠져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에 대해 딱히 엄청나게 놀라지는 않았다. Albini는 굉장히 편집증적인 사람이다. 하지만 Albini가 그럴 만한 이유도 실제로 있다... 실제로, 정말 많은 메이저 레이블들이 소속 예술가들을 좆대로 다루고 있지 않나."

    온갖 난리와 언쟁을 뒤로 하고, [In Utero]는 마침내 9월 14일에 정식으로 발매되게 되었으며, Nirvana는 다시 한 번 길 위에 설 준비가 되어 있었다. Cobain은 말했다. "다시 투어를 도는 것을 정말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떤 종류의 공연장에서 공연을 해야 할 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이번 앨범이 얼마나 팔릴 지 전혀 감이 안 잡힌다. 앨범에 대해 있을 대중의 반발, 그리고 지난해 밴드에게 쌓여간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반응들을 생각해 보면, 이번에는 경기장 규모의 공연은 못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Nirvana U2와의 합동 공연 제의를 받았었고, 지난 여름에는 거의 6백만 달러짜리였을 Lollapalooza 페스티벌 출연 제의를 거절하기도 했었다. 대신 밴드는 자신들이 좋아하는 밴드들과 합동 공연을 진행하길 바라고 있다. The Breeders가 몇몇 공연들의 오프닝을 담당할 예정이며, 오랜 친구인 Mudhoney또한 참여할 예정이다. 밴드는 TAD Sonic Youth와의 합동 공연을 기대하고 있는 중이다. Cobain은 말했다. "7주간 정확히 같은 사람들과 다니는 건 정말 단조로운 일이다. 우리는 친구들과 너무 지겹게 붙어다니다가 혹시라도 싸우게 되는 가능성은 피하고 싶다."


    https://youtu.be/MgdHGuEYwig
    "Pennyroyal Tea" (2013 Mix)


    한밤중, Cobain은 자기 소유의 음반 콜렉션을 열심히 뒤져보고 있었다. Novoselic은 1시간도 전에 이미 떠났다 - 다음날 여성 첼로 연주자와 함께 합주 연습도 있었고, 집 청소부도 일찍 올 예정이었기 때문이었다.

    거실에는 연철로 만들어진 수납장에 수백 개가 넘는 음반들이 쌓여 있었으며, 턴테이블은 낡은 검정색 트렁크 위에 놓여 있었다. [Incesticide]의 커버로 쓰인 그림이 벽에 기대어 서 있었고, 그 앞에는 거대한 망원경이 놓여 있었다. 바닥에는 커다란 골판지와 온갖 종이들이 흐트러져 있었으며, 그 옆에는 옅은 갈색 머리의 귀여운 Frances 사진이 앞에 붙어있는 검은색 일기장이 놓여 있었다. Cobain은 종종 딸을 'The Bean'이라고 불렀으며, Frances는 지금 유모와 함께 잉글랜드로 향하고 있었다 - Phoenix Festival에서의 Hole 공연을 위해 잉글랜드에 있는 Courtney Love를 보러. Cobain의 집 곳곳에는 아내 및 딸과 관련된 물품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빅토리아 시대 양식의 꽃무늬와 함께 붉은색으로 칠해진 Love의 기타, 70년대 스타일의 가짜 털 코트, Frances의 펜, 유모차, 작고 더러운 아기용 양말들.

    수집한 음반을 자랑하는 Cobain은 이전에 비해 훨씬 더 편안해 보였다. 그는 자랑스럽다는 듯이 Daniel Johnston의 음반을 하나 꺼내 내게 보여주었다. [Hi, How Are You]였다. Cobain은 이 LP를 턴테이블에 올렸다. "Daniel Johnston은 미친 사람이다, 실제로 정신병원을 들락날락했었다... 나는 그의 공연을 담은 비디오테잎도 갖고 있다. Johnston은 1960년대 후반 기독교도들이 집에 하나씩은 장만했었을 법한, 플라스틱 템포 버튼이 달린 그런 오르간 위에 앉아서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그는 첫 곡의 중간 부분쯤 해서 흐느끼며 울기 시작했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없는 공연이었다. 그에게 너무나도 미안한 마음이 들다가도, 동시에 굉장한 흥미를 가질 수 밖에 없게 되는, 그런."

    다음 순서는 Royal Trux의 새 앨범이었다. "이 앨범은 기본적으로 '뉴욕 쓰레기 록'이다." 그 다음은 Cobain과 그의 영웅 William S. Burroughs의 협업곡, [The "Priest" They Called Him]였다. "이 곡은 다른 누구보다도 나 스스로가 훨씬 더 깊게 즐길 수 있는 곡이다." Cobain의 울부짖는 피드백을 배경으로 Burroughs 특유의 노랫소리가 울려퍼졌다.

    Cobain은 내게 Wipers 앨범을 하나 건넸다. "이건 유럽에서 구한 것이다." 그 다음에는 Meat Puppets였다. "그건 따로 빼 둡시다, 언젠가 "Lake of Fire"를 커버할 거니까." 그 다음에는 The Gyuto Monks, 그리고 Half Japanese 앨범이었다. "올 가을 공연 중 몇 번은 Jad Fair가 오프닝 무대를 맡을 예정이다." 방의 중앙에 있는 갈색 상자 옆에는 아주 낡은 [Revolver] 앨범이 놓여 있었으며, Cobain이 앉아 LP를 뒤적거리고 있는 옆에는 거의 다 부서진 The Knack 앨범이 있었다.

    그는 PJ Harvey의 새 앨범을 굉장히 마음에 들어했다. 나는 Hole의 새 싱글, [Beautiful Son]을 턴테이블에 올렸다. 이 싱글의 커버에는 어린 Cobain의 사진이 있었고, 분홍빛과 파란빛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Cobain은 생각을 밝혔다: "그 누구도 그 앨범 커버 사진이 나라는 것을 모를 것이다." 이 곡에서 Love는 "What a waste of sperm and egg"라고 노래했다. Cobain은 활짝 웃었다. "하, 어떻게든 Courtney가 시집을 써서 출판하게만 할 수 있다면, 세상이 변할텐데."

    Cobain은 PiL의 [The Flowers of Romance]를 꺼내들었다. "이 앨범은 대단한 명반이다. 단호한 비타협의 끝을 보여준다. 드럼 비트 몇 개 위에서 Johnny Rotten이 비명을 지르는게 다인데, 어떻게 된 건지 모든 것이 제대로 맞아떨어진다." [Never 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가 다음 순서였다. "이 앨범은 아직도 세상에서 가장 잘 만들어진 앨범이다. 이 앨범의 프로듀서 및 엔지니어들과 함께 작업해 보고 싶다." 그는 쪼그려 앉았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최신 기술을 받아들여 발전해버렸다면, 아마 지금은 완전 별로일거다."

    그는 The Smashcords 앨범을 집어들었다. "이건 Aberdeen에서 샀다." 그 다음은 Black Sabbath의 [Born Again] 이었다. "이들은 정신병원에 있는 Bill Ward를 꺼내 와 드럼을 치게 했었다." 나는 보라/빨강의 꼬마 악마가 그려진 커버가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그는 이 커버 때문에 엄마가 앨범을 허락하지 않았고, 그래서 몰래 숨겨서 들었었다고 했다.

    이번에는 Mark Lanegan의 솔로 앨범을 꺼내들었다. "Lanegan의 목소리는 최고다." 그 다음은 Jandek의 앨범이었다. 앨범 커버는 한 남자가 작은 의자에 있는 모습을 찍은 흐릿한 사진이었다. "Jandek은 허세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허세가 가득한 사람들만이 Jandek의 음악을 좋아한다."

    Cobain은 The Shaggs의 [Philosophy of the World] (Third World) 를 몇 개월 동안이나 매일매일 들었었다고 말했다. 앨범 커버의 소녀 3명은 60년대 머리스타일에 체크무늬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첫 앨범은 좋았다. 하지만 그 후 멤버들이 밴드를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하고, 악기 연주법을 제대로 배우려고 노력하면서부터 그렇게까지 좋지는 않게 되어버렸다."

    그는 다른 쪽의 벽으로 향했다. "Leadbelly 앨범들을 꺼내 볼 때가 되었군." Cobain은 하나를 꺼내 나에게 넘겼다 - 어두운 푸른빛의, 세월이 멋지게 녹아 있는 앨범이었다. "동부지역의 유식한 유대인 공산주의자들에게는 아직까지도 가장 유명한 음악가 아닌가 싶다." 그는 농담조로 말했다. 그가 가진 Leadbelly 앨범들 중 가장 희귀한 것 하나는 금이 가 있었다. Cobain은 Courtney Love가 앨범들을 관리하는 일을 그렇게까지 잘 하지는 못한다고 했다. 또한, 최근 Leadbelly 재단의 변호사가 연락해 와 Leadbelly가 살아생전 가졌던 유일한 기타에 관심이 있냐는 제안을 해 왔다고도 했다. "하지만 가격이 50만 달러에서 시작했다. 그 정도의 액수는 감당 불가능한 영역이었다." 그는 어깨를 으쓱했고, 또 다른 앨범 무더기로 향하며, 비꼬는 듯이 미소지었다. "정말 엄청난 부자인 록 스타가 있어서 내가 돈이라도 빌릴 수 있으면 좋겠는데."


    https://youtu.be/862K63LH6hE
    "All Apologies" (2013 M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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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ve Grohl / Kurt Cobain / Krist Novoselic

     

     

    2022/02/16 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