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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ingua ignota - let the evil of his own lips cover him, that he may not rise again
    [...]/[LINGUA IGNOTA] 2023. 3. 23. 00:25

    lingua ignota는 프로비던스의 젊은 뮤지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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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musicandriots.com/interview-with-kristin-hayter-aka-lingua-ignota1/

    lingua ignota



    https://youtu.be/N6uAyZDA4y4

    "Lingua ignota"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종교와 페미니즘의 느낌이 풍기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름을 이렇게 지은 이유는 무엇인가?

    Lingua Ignota라는 말은 '정형화되지 않은' 또는 '알려지지 않은' 언어라는 뜻이다. 이는 중세시대의 신비주의자이자 작곡가였던 빙엔의 힐데가르트에게 내려왔던 문자이며, 나는 그녀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나는 작업에 다양한 종류의 발성법을 활용하려 하는데, 그러다 보니 엑스터시 상태에서 무의식적으로 터져나오는 방언(glossolalia) 같은 것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 흥미는 프로젝트를 진행해 나감에 따라 점점 더 발전하며 기이해져갔다. Lingua Ignota, 나는 이것을 육체를 따라 흐르는 신의 음성으로, 일종의 접신으로 생각한다.

    삶의 두 가지 측면 (종교와 페미니즘) 이 음악에는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가?

    좀 웃긴 부분인데, 내 음악은 어떤 종류의 페미니스트 사상이나 비판 이론과도 관련이 없다. 이런 단절은 다분히 의도적인 것인데, 나는 '생존'이라는 주제에 대해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끌 수 있는, 평범하지 않은 방식으로 접근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만들어 온 음악의 거의 대부분은 여성혐오, 남성우월, 가부장적인 것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긴 하다. 하지만 나는 그저 재구성을 하고, 맥락을 새롭게 잡고 싶다. 해서 나는 extreme music을 둘러싼 사상과 생각에서 영감을 받아 음향과 이미지들을 가지고 음악을 만든다.

    예를 들어보자면, 나는 에일린 워노스의 목소리나 이미지를 자주 차용한다. 하지만 페미니즘과 관련지어서 활용하는게 전혀 아니다. 그냥 많은 noise, metal, 기타 장르의 음악가들이 연쇄살인마의 목소리를 샘플링하거나 연쇄살인마의 이미지를 앨범에 차용해 온 것들을 보면서, 나도 차용해 본 것이다. 조심스럽게 말해보고 싶은데, 이 전까지 어떠했었건, 어느 시점부터는 '어두운 이미지'들을 사용하는 것이 딱히 논쟁거리가 될 만큼 흥미롭지는 못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미 그런것들이 너무 많이 나와버렸고, 모두가 익숙해졌으며, 그냥 장르가 가지는 일종의 기본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마치 이런 느낌으로: "좋아 우리는 제프리 다머의 목소리를 곡에 넣었다구, 고개를 들어봐, 우리는 사악한 밴드고 사악한 것들에 푹 빠져있다고"

    그리고 더해서, 음악이 좀 더 무거워지고 어두워지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가? 나는 우리가 Harsh Noise Wall에서 끝에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끝난 것이다. 'Heavy' 할 수 있는 한 가장 'heavy'한 음향의 세계가 그 곳에 있다. The Rita가 마이크 달린 토슈즈와 4개의 페달로 35분동안 만드는 음향을 들어보자면, 그것은 모든 주파수의 세기를 최대로 높인, 음향의 원천을 아무것도 아닌 공허로 사라지게 만드는 소리다 - 그리고 'heavy music'의 끝이다. Goregrind/hategrind, NSBM, 인종차별 power electronics - 그 어떤 장르도 harsh noise wall의 절대적 학살과 혼돈에 비견될 수 없었고, 그 harsh noise wall은 공허를 응시할 뿐이다.

    해서, 나는 그런 이미지들, (저속한 표현을 쓰는 것에 미리 양해를 구한다) '이 멍청한 창년을 지옥에 처넣어서, 마지막 비명을 들으며 구더기가 들끓는 썩은 씹에 좆을 쑤셔댈거야' 같은 이미지들을 접할 때마다 여성으로써 딱히 당황스럽다거나 불편하지 않았는데, 대부분 그런 이미지들은 정말로 실현하고 싶어하는 진지한 생각이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 이미지들은 뭐랄까 너무 꽉 찬, 완전히 한물 간 구식의 느낌일 뿐이었다. 특별히 이 이미지들을 표방하는 남자들이 정말로 자유시간에 여성의 시체에 대고 시간을 하러 다니는 사람들은 아니기에 더 그랬다. 그리하여 나는 이 패러다임을 뒤집고, 보다 더 의미있는 것을 만들고 싶었다. 폭력으로부터 살아남은 생존자들을, 이미 너무 어둡고 좆같은 일이 인생에서 실제로 일어나버린 자들을,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살인이라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충격을 받은 사람들을 위해서, '극단적인 이미지'의 프레임을 바꾸고 싶었다. 에일린의 일생은 폭력으로 점철된 복잡한 일대기이며, 우리가 사는 이 시스템이 성노동자, 성폭력 피해자, 정신병을 앓는 사람들, '틈'에 빠져버리고 만 사람들에 대해 얼마나 취약한지를 알려 주는 예시다. 에일린을 활용할 때, 나는 그녀의 목소리에 '무섭고 쿨하게' 들리도록 할 수 있을 그 어떤 조작도 가하지 않았으며, 그녀의 목소리를 내 목소리로 덮어버리려 하지도 않았다 - 그래서 "Disease of Men" 같은 곡에서 에일린의 목소리만이 크게 울려퍼지는 거다. 나는 좀 더 뒷자리에 앉아있으려 했다. 마치 샘플링으로 사용하는 것 보다는 협력하는 관계처럼. 나는 사람들이, 에일린이 뭐라고 말하는지를 정말로 들었으면 했다.

    종교와 나의 관계는 좀 복잡하지만, 과하게 감상적인 현대 찬양음악에서부터 헨델, 윌리엄 버드, 빙엔의 힐데가르트의 신성한 음악들까지, 예배용 음악에 큰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난 신을 위해 만들어진 음악, 구조, 예술에 언제나 강하게 끌려왔다. 고등학교 시절때부터 무신론을 강하게 믿었기에 내가 이 예술들에서 뭘 믿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종교라는 개념이 내 음악에서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되는 건 사실이다; 복수심에 불타오르는 신, 한없이 자비로운 신, 우리의 존재가 바뀔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인, 신.

    [All Bitches Die]는 무시무시하면서도 영롱하다. 예술가의 입장에서, 사람들이 당신의 음악으로부터 얻어갔으면 하는 것이 있는가?

    내 음악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구조적으로나 배열적으로나 혼란스러우면서도 친숙한 혼합물을 듣길 바란다. 다루기 어려운 내용에 대해 정통이 아닌 방식과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을 듣길 바라며, 듣기 어렵지만 왜 어려운지 알아낼 수 없는 것을 듣길 바란다. 나는 사람들이 불편해하기를,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도무지 확신이 안 서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는 내 곡에 극과 극의 대조나 병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고 하는 편이다.

    그런 양 극단을 동시에 보여주는 것 뒤에는 무슨 의미가 숨어 있는가?

    내가 생각하는 내 음악의 주제 중 하나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관점'이다. 같은 곡, 또는 같은 구절 안에도 여러개의 목소리를 집어넣으며, 같은 내용을 다른 방식으로 전달함으로써 완전히 다른 관점을 보여주려 한다.

    또한, 'heavy music'이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도 들어가 있다. '일반적인' heavy music이라 생각되는 부분은 아마도 "Woe To All (on the day of my wrath)"의 첫 5분가량 나오는 슬럿지메탈 리프와 왜곡된 음향, 강렬한 블랙메탈 스타일의 보컬일 것이다. 하지만, 그 부분은 곡에서 그렇게까지 의미있는 부분은 아니다. 곡의 후반부에서 몇 줄의 가사를 읊기는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대부분의 보컬은 내가 뭘 말하는지 모른 채로 말하는 부분이었고, 따라서 '의미'란 가사의 내용이 아니라 가사의 전달 방식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전달 방식'은 extreme music 계에서 인상적이고 흥미롭게 느끼는 부분들 중 하나다. 내가 생각하는, 내 음악 중 가장 가혹하다고 생각하는 곡은, 몇몇 사람들은 잠잘 때 듣기 좋다고 생각하는 곡인데, "The Chosen One (master)"다. 이 곡은 내 곡들 중 음향적으로 가장 부드럽고 소리의 밀도도 낮은 곡이다. 그냥 7분동안 똑같은 패턴의 피아노 아르페지오가 반복되고, 그 위에서 오르가눔 스타일로 노래하는 목소리가 약간씩 변하기는 하지만, 특별히 이상한 짓은 안 한다. 그리고 이 곡에서 나는 아주 조용하게 노래하고, 그게 전부다. 하지만 이 곡은 제법 잔혹한 곡이며, 비유적인 표현에서 자전적인 표현으로, 그리고 열정적인 전도사 풍으로 변해가며 결코 사그러들지 않는다. 누군가가 당신의 귀에 대고 음울한 말들을 속삭이는 것처럼, 나는 이 곡을 공연의 마지막 곡으로 자주 사용하며, 관객들은 보통 꽤나 불편해한다. "The Chosen One (master)"은 내가 만든 곡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이며, 내 생각에는 - 가장 'heavy'한 곡이다. "Holy Is The Name (of my ruthless axe)"에서도 비슷한 식으로 작업했는데, 그 곡 또한 아주 조용하지만 아주 어둡고, 동시에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지만, 섬뜩한 방식으로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는 곡이다. 그러니, 이런 식의 병치 구조는 나에게 있어 긴장감을 쌓아올리는 수단이며, 성스러운 것을 가져다가 타락시키는 방법이고, 타락한 것을 가져와 성스럽게 만드는 방식이며, 아름다움과 추함을 조화시키는 것이다.

    당신의 음악은 자전적인 내용인 것처럼 들린다. 클래식 음악 교율, 가톨릭 가정에서의 성장,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정폭력에서 살아 나온 이야기들. 이런 점에서, 당신에게 공연이란 카타르시스와 같이 내면에 쌓인 것들을 분출시켜 해소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는가?

    물론 그렇다. 엑소시즘이라도 벌이는 느낌이다. 공연을 시작하기 전마다 항상 긴장 풀고 편안하게 가자고 되뇌이지만, 끝나고 보면 어째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제동이 풀려버리고 만다. 공연이 끝나면 항상 멍투성이길래 녹화된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영상 속의 나는 마이크로 자신을 마구 때리거나 모니터 등에 몸을 던져대고 있었다. 명확한 기억이 없는 순간들이었다. 시작할 때는 관객들을 인식하고 느긋하게 바라보는데, 몇 분이 지나면 관객이고 나발이고 완전히 잊어버린다.

    프로비던스에는 당신과 같이 작업했던 The Body를 비롯하여 noise/experimental 쪽 음악을 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다. 어쩌다가 이 쪽 장르의 음악을 접하게 되었으며, 직접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The Body는 멋진 사람들이다, 문자 그대로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들이다. 나는 그들을 정말 좋아한다. 지적이고, 'heavy'하고, 넓은 영역을 아우르는 음악을 하며, 여러 협업과 영향을 통해 메탈의 경계를 넓혀가는 밴드다. 나는 그들이 영원히 음악을 만들기를 바란다. 그들의 새 음반에 실릴 몇 곡에는 내 보컬이 들어가 있다!

    프로비던스에 도착했을 무렵 The Body는 이미 포틀랜드로 거처를 옮긴 후였다. 하지만 그들은 프로비던스에선 여전히 일종의 전설로 취급된다. 프로비던스는 지내기 좋은 곳이다. 음악 환경이나 분위기가 조금씩 변하고 있고, 나 또한 이 곳에 오래 있지는 못하겠지만, 이 정도로 행위예술, noise, noise rock, metal, queer에게 너그럽게 다가갈 수 있는 도시는 없을 것이다... 특별한 곳이다. 프로비던스는 학술적인 experimental과 DIY experimental이 연결되는 곳이기도 하며, 나 또한 그 연결선상 위에 있다. 나는 어렸을 때엔 DIY 노이즈를 만들면서 지냈지만, 시간이 좀 흐른 후에는 대학과 대학원을 다니며 딱딱한, 좀 더 학술적인 음악을 만들었다. 그러나 학계에서 느낀 환멸, 그리고 내 삶에 대해 느낀 환멸로 인해, 나는 학계에서 용인할 수 있는 한계보다 더 감정적인 음악에 빠져들어가게 되었다. lingua ignota 음악은 나를 학대하던 사람이 떠난 후에 만들기 시작했다. 나를 학대하던 자는 내가 음악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게 막았고, 적어도 엄청나게 비난했었다. 자유를 되찾았을 때, 음악은 내가 입어 온 상처를 원초적이면서도 진정으로 다룰 수 있는 방법이 되었다.



    음악을 그만두어야겠다 싶을 때마다 멈추지 않고 계속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지난 2년간 나를 너무나도 멋지게 지지해 주었던 내 친한 친구 Scøtt Reber (Work/Death) 때문이다. Scøtt은 프로비던스에선 거의 베일에 싸여있는 인물로, 공연을 제외하고는 거의 볼 수 없는 사람이다. 그는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음악을 만든다. (...) 그의 노트북 화면보호기는 검은색 배경에 하얀색 글씨가 돌아다니는 것으로, "너는 좆됐고 다른 모든 것들도 좆같다. 뭐라도 좀 고쳐보려고 노력해 보라. 여전히 좆같다. 그래도 노력하라." 라고 써 있다. 나는 이 말을 언제나 생각한다...



    bandcamp :: https://linguaignota.bandcamp.com/

     

    2017/10/03 16: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