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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n Pandämonium
    [...]/[Florian Hecker] 2023. 3. 26. 00:50


    https://youtu.be/kzWicqhUB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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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urbanomic.com/document/sound-out-of-line/

    탈선음향(脫線音響): Florian Hecker와의 대화
    2009년
    Robin Mackay

    2009년 [Urbanomic]의 행사 "Sound Out of Line"에서 진행되었던 이 대담에서, Florian Hecker은 자신의 작품세계, 음향의 합성, 협업이라는 행위의 본질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말해 주었다.


    Robin Mackay> 당신이 그동안 해 왔던 작품들, Florian Hecker만의 작업이거나 혹은 수없이 많은 협업이거나, 그 전부를 관통할 수 있는 주제가 있다면 이는 '변화'인 것 같다. 모든 음악, 모든 작품에서 당신은 같은 실험을 단 한 번도 반복한 적이 없었으며, 각각의 작품들이 전부 제각기 다른 기법과 기술을 활용해 '음'이라는 주제에 대한 여러 질문들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니, 이 인터뷰를 가장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질문으로는, 당신의 작품세계에서 '기준점'이 되는 원리라던가, 사상이라던가 같은 것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일 것 같다.

    Florian Hecker> 그런 '기반'이 되는 원리 같은 것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며,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질문을 받을 때 마다 달라질 것 같다. 하지만, 일단 답을 하나 해 보자면, 명백하게 보이는 변화와 놀라움을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을지, 그리고 그런 것을 경험할 때 우리가 어떤 느낌을 받고 어떤 영향을 받을지에 대한 생각이 언제나 중요했었다고 말할 수 있을 듯 싶다. 여기 이렇게 앉아 생각을 해 보니, 음악적인 방식으로 '놀라움'이나 '변화'를 일으키는 것, 그 것이야말로 작년에 내가 여러가지 작품활동을 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었던 목표였다. 음향 작품들에 대해서 얘기해보자면 - 하나의 상태에서 완전히 다른 새로운 상태로 무언가가 바뀐다는 것이, 이전까지 인지해 온 것들과 직접적으로 연관짓는 것이 불가능한, '새로운 것'을 처음으로 들어본다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인지? 나는 이러한 변화를 '부서짐'이나 '파열' 같은 표현으로 부르고 싶지는 않다. 대신, 하나의 상태에서 상당히 다른 상태로 바뀌어지는 상황, 여러 이벤트와 에피소드들의 행렬 같은 느낌으로 묘사하고 싶다...

    Robin Mackay> 그러한 급작스러운 변화가 청자를 놀래키거나 당황시키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러한 효과를 실제로 불러일으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 같고, 그래서 당신의 작품 있어 그런 '변화'를 유발한다는 것이 개념적으로도 핵심에 해당하고 기술적으로도 가장 어려운 일들 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음향을 쉽게 예상 가능한, 또는 통상적인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행위 자체를 방해하는 것, 또는 청자가 그전까지의 음악적 경험을 토대로 가지게 되는 일종의 '기대'를 엎어버리는 것,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들이 갖는 예상과 추측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디에서 기반하는지를 분석해야 할 것이다. 당신의 최근 음악들은 음향이라는 것이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어떻게 통합되어지는지, 그리고 의식적으로 이해 가능한 형태로 어떻게 변화되는지에 대한 여러 이론적 분석들에서 출발하는 것 같다. 청자들이 음악을 이해 가능한 형태로 변화시키는 과정을 방해하거나 뒤엎기 위해서는, 그러한 이론적 분석들을 이해하고 평가해야만 하지 않는가.

    Florian Hecker> 그렇다. 음향 심리학 (psychoacoustics) 의 여러 갈래에서 나오는, '음향적 지각'에 대한 여러 이론들 - 인간이 음향을 '연속적인 줄기'로 인지하는지, '사건'으로 인지하는지, '청각적 물체'로 인지하는지 등등. 반면 음악 작업을 막 시작했을 때의 나는 직관적이고 무의식적인 접근법을 취했었다: 그냥 '고전적인 선율'을 구성하는 요소들 - 멜로디, 음정과 화음 등등 - 을 전부 없애버리고 싶었고, 그렇게 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를 보고 싶었다.

    Robin Mackay> 그러하다면, 당신의 음악은 인식 가능한 기준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음향적 경험에 청자를 노출시키려 하는 음악이라고 볼 수 있을지. 아무것도 믿거나 의지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이게 하는 음악. 하지만, 내 생각에, 이런 방향성은 일종의 철학적인 문제로 귀결되는 것 같다: 사실 진정으로 '생경한', 완전히 '날것 그대로'인 음악적 (혹은 시각적) 경험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는 문제 말이다. 인간의 의식은 - 이마누엘 칸트가 '선험적 원리'라고 부른 개념과 연결되는, 무언가를 그 자체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 - 언제나 자신이 들은 것들을 통합하고 재구성하여 이해가 가는 개념으로 변형시키려 하지 않는가. 마르셀 뒤샹의 이론, '그림을 만들어내는 것은 바로 관객이다'와도 연결되는 지점이다. 다른 표현으로 말해보면, 결국 작품을 만들어나가는 데 있어 청중이 능동적인 참여를 할 수 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당신의 협업작, 2009 제53회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Cerith Wyn Evans와 함께 진행한 작품이 좋은 예시가 된다고 본다. 그 작품에서 당신의 음향 작품은 Cerith Wyn Evans의 영상 작품과 아무런 직접적인 연관성 없이 그저 동시에 상영되었고, 관객들이 알아서 그 둘을 연결지어 이해해야만 했다. 그러니, 의도치 않았다고 해도, 관객들이 작품을 '창조하는'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Florian Hecker> 그 협업작의 이름은 [No night No day]였다. Cerith와 나는 3주 전 베네치아의 멋진 오페라 하우스에서 이 작품을 진행했었다. 스크린 하나에 Cerith의 영상 작품이 상영되고 동시에 내가 만든 컴퓨터 기반의 음향 작품이 상영 공간 이곳저곳에 놓여진 24개의 스피커로 재생되는 형태의 작품이었다. 그리고 이 협업 작품을 만드는 과정, 몇몇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작업을 진행했는지에 대해 질문하곤 했는데, '그러니까,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각자의 작품을 서로에게 공개하지 않았다는 것이 사실인가요?'같은 질문.

    Robin Mackay> Cerith Wyn Evans와 당신이 서로 격리된 채로 각자의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인가?

    Florian Hecker> 그렇다. 작업 과정에서 둘 다 서로의 작품을 단 한 번도 보여주거나 들려주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2년간, 우리는 서로 나중에 협업을 하게 되면 어떤 식의 작품을 만들어 볼 지에 대해 자주 토론했었고, 어딘가에서 이런 컨셉으로 공동작업을 해 보자고 얘기를 나누곤 했었다. 그리고 이 공동작업에서 둘 모두 원하지 않는 부분이 무엇인지 금세 드러나게 되었다: 우리는 '인간 공연자'가 존재하지 않는 작품을, 투사되는 매체로만 이루어진 작품을 하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이번 협업을 통해 '협업'이라는 것이 어디까지 가능한지에 대한 개념에 도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에 더해, 모든 구성요소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었던 것은 두 가지 작품이 같은 공간에서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관객이 전시관 극장으로 들어설 때, 40분의 시간을 이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굉장히 번잡한 첫 날 중 40분을 이 곳에서 보낼 거라는 생각을 하고 들어오는 것이다. 내가 [No night No day]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라고 생각했던 것이 바로 이 지점이었다. 이 특별한 공간에서, 그러한 약속으로, 모든 것이 하나로 합쳐지는 것 말이다.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분리되어 있다는 점에 대해 말하자면, 이 '분리'는 여러 측면에서 설계된 것이다. 작품이 상영되는 극장에는 '최적의 장소'가 없으며, 따라서 작품을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위치가 없다. 그러니까, Cerith의 영상을 보기에 최적인 위치가 극장 내부의 그 어느곳에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하더라도, 일반적으로 극장에서 가장 '싸구려' 좌석인 맨 뒷 자리가 작품을 보기에 상대적으로 가장 괜찮은 장소일 것이며, 반면 일반적으로 가장 비싼 값을 자랑하는 맨 앞줄 좌석에서는 완전히 뭉개진 디지털 이미지만 볼 수 있게 될 뿐이다. 하지만 그렇게 맨 앞자리에 앉아 뭉개진 이미지만 볼지라도 '다른 관점'에서 음향 작품을 들을 수 있게 되기도 하다.

    Robin Mackay> 말하자면 [No night No day]는 관객 각각이 스스로 작품을 완성하게 된다는 원리를 공간적으로 구현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어디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작품에 대한 다른 인상을 받게 되는 것.

    Florian Hecker> 맞다.

    Robin Mackay> 당신의 CD 앨범들을 보자면, 놀라울 정도로 비타협적인 음악들이라고 본다. 각각의 앨범들이 '실험'의 결과물을 담고 있으며, 청자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 - 청자에게 어떤 주제를 알려주려는 시도조차도 없으며, 청자를 작품세계로 친절하게 안내하는 과정 또한 없다. 이런 태도가 해를 끼치는 부분은 없는지? 그리고, 의도적인 방향인지?

    Florian Hecker> 의도적이었다. 나는 그런 배려가 작품의 일부를 깎아내리는 타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늘 진행할 작품은 일종의 '가이드 투어'같은 느낌이고, CD를 발매하고 그 CD가 이런저런 사람의 손을 타고 여기저기에서 경험되어지는 것과는 좀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또한 CD 앨범들은 각각의 앨범마다 조금씩 다른 방향을 추구했던 작품들이었다. 예를 들자면, 2006년 Rephlex에서 만들었던 앨범 [Recordings for Rephlex]에선 내가 라이너 노트를 직접 썼었는데, 이는 1970년대 일렉트로-어쿠스틱 앨범들의 정신, 언제나 라이너 노트를 가지고 있던 그 앨범들의 정신을 나 또한 받아들여 적용해 보고자 했던 시도의 일환이었다. 특정한 스타일을 받아들여 보고 여기에 내가 무엇을 더할 수 있을지를 알아보고자 했던 것이다. 아니면 가장 최근의 협업 앨범, [Acid in the Style of David Tudor]에 대해 말해볼 수도 있겠다. 이 앨범은 굉장히 제한적인, 정해진 방향으로 의도된 앨범이었다 - 청자들이 '그래, 음악은 괜찮네, 근데 대체 이 라이너 노트는 무슨 소리야, 대체 왜 이 앨범에 있는 거지?' 라는 질문을 하거나, 아니면 그 반대 방향의 질문을 하거나.

    Robin Mackay> 그런 방향의 반응을 하는 사람을 본 적은 아직 없는데, 조만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나는 이 개념, 예를 들자면 '지적 테크노'같은, 아마도 Warp 레이블이 처음으로 제기했던 것 같은데, 그런 개념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지적인 감상 음악'이랄까, 조금은 아방가르드적이고 모험적인 요소를 담고 있지만 동시에 어느 정도는 대중친화적이어서 '음악'의 범주에 분명하게 들어가 있는 음향 작품들. 그 둘은 분명하게 다른 것이라고 보는데.

    Florian Hecker> 그렇다. 이 앨범들 모두 내가 완전히 없애버리고 싶은 '음악적 요소'들 - 그 온갖 잡동사니들이 아직까지도 어느 정도는 들어가 있는 앨범들이다! 리듬이라던가 멜로디라던가 '트랙'이라는 형식이라던가 일반적인 곡의 길이라던가 따위의 개념들... 그런 요소들은 외부에서 들어 온 것들이지만, 동시에 전통적인 음악 형식에 대한 청자들의 기대 속에서 존재하는 요소들이기도 하다.

    Robin Mackay> 그렇다 하더라도 '편집'의 과정, 연구 및 실험적 결과를 따르는 과정 또한 있을 것이다. 무수히 많은 원음들을 이리저리 조합하여 '작품'을 만들어내는, 엄청나게 많은 음향 더미를 청취 가능한 길이로 줄이는 '편집 과정' 말이다. 이 과정에서 일종의 '미학적 기준'이 작동할 것이다, 무슨 부분을 취하고 무슨 부분을 버릴 지를 결정하는 것에 말이다. 모든 앨범에 비슷한 공통의 기준을 적용하는 편인지, 아니면 각각의 앨범 또는 작품에 적용하는 특정한 기술에 따라 판단 기준도 달라지는 편인지?

    Florian Hecker> 아마 둘 다라고 하는 편이 정확할 것 같다. 직관적인 결정, 절반 정도 혹은 100% 자기발생적인 알고리즘을 따르는 때가 언제나 있지만, 동시에 '편집' 과정 또한 필요한 순간들이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전반적으로는 직관적인 결정을 따르는 순간들이 많기에, 정확히 무슨 기준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말로 풀어 설명하기가 아주 어렵다.

    Robin Mackay> 청자를 놀라게 한다는 목표와는 어떻게 부합하는 것인지? 그 목표 또한 판단 기준에 포함된다고 보면 될까?

    Florian Hecker> 그렇다.

    Robin Mackay> 2003년의 앨범 [Sun Pandämonium]에 대해 말해보자면, 이 앨범은 얼마나 긴 기간의 실험을 거쳐 만들어진 앨범이었는지?

    Florian Hecker> [Sun Pandämonium]의 일부는 1999년에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 때 나는 독일의 ZKM에서 진행되는, 신디사이저를 물리적으로 모델링하는 과정에 대한 1년짜리 워크샵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Albetro de Campo를 만나게 되었다. Alberto는 Curtis Roads와 함께 Pulsar Generator 소프트웨어 작업을 하고 있었다. Albetro와 나는 함께 이안니스 크세나키스의 '확률론적 합성'(stochastic synthesis) 개념을 연구하였고 잉글랜드 작곡가 Trevor Wishart의 소프트웨어 작품들, [Desktop Project]와 waveset 수준에서의 음향 분석, 편집, 통합에 대한 개념 등에 대해서도 연구했었다. 그렇게 수 년간의 시간을 거쳐 앨범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앨범 수록곡들을 직접 만드는 시간은 상당히 짧게 걸렸다. Cerith Wyn Evans와의 협업하고도 비슷한데, 무언가를 하기 전 협업자와 대화를 나누는 데에는 2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지만 실제로 직접 작품을 만드는 것은 금방 할 수 있는 것이다.

    Robin Mackay> 이안니스 크세나키스의 이름이 나온 김에 크세나키스의 작품이 당신에게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그리고 크세나키스가 현대음악계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지에 대해서 잠깐이나마 얘기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크세나키스는 당시의 주류 현대음악에서 스스로 멀어졌던 음악가였다. 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수학적 원리를 적극적으로 기용한 작곡을 선보였으며, 당시의 최신 수학 이론 - 군론 (group theory) 등 - 을 이해하고 적용하기도 했었으나, 음악을 환원시켜 최대한으로 미니멀한, 최대한의 모더니즘적 결핍으로 향하는 방향을 추구하지는 않았다. 대신, 크세나키스의 음악에는 자연철학자로서의 관점이 깃들어 있으며, 그리스인으로서의 철학자적인 혈통이 작품세계에 전반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다. 크세나키스는, 내가 직접 표현해 보자면, 수학적 원리가 역동적인 현상의 근본 원리를 드러낼 수 있다는 믿음 아래에서 음향적으로 '살아있는 형태'를 창조하는 데에 심혈을 기울였던 작곡가였다. 이런 부분은 크세나키스의 관현악 곡의 실황 연주를 들을 때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 - 그 강대하고 엄청난 음향의 파도, 대자연의 거대한 힘처럼 청자를 에웨싸는 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는 모순이 있다 - 크세나키스의 작품은, 어떤 측면에서 보자면, '감정'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크세나키스의 음악을 비판할 때 이런 부분에 주목하며, 이렇게 '감정이 없다'는 측면 때문에 크세나키스의 음악이 이렇게까지 난해한 것이라고 비평을 하곤 한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크세나키스의 음악에는 쉽게 느낄 수 있는, 잘 드러난 감정적 요소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크세나키스의 음악은 굉장히 추상적이면서도 동시에 굉장히 열정적이며, 그가 사용하는 작곡적 요소들과 그것들을 사용하는 방식에는 굉장히 흥미로운 모순점이 있다. 당신에게는 크세나키스가 어떤 점에서 중요한 것인지?

    Florian Hecker> 크세나키스의 후기 작품 중 하나인 [S.709]를 [Xenakis - Electronic Music] CD로 처음 들었을 때,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완전히 새로운 음악이었다. 그리고 그 곡에서부터 여러가지 호기심이 들기 시작했었다.

    Robin Mackay> 크세나키스의 작품들 뿐만 아니라 그가 고안한 작곡법에도 관심이 있는지?

    Florian Hecker> 물론이다. 뭐랄까, 굉장히 직관적인 방법이 있다. 음향 합성을 하는 것, 그냥 음향의 줄기를 계속해서 이어나가는 식으로 합성하는 것, 그것 뿐. 특별한 레이어링 없이 그렇게 결과물로 직행하는 것이다. 이 놀라울 정도의 직접성, 어떻게 보자면 '단순함'마저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물은 굉장히 복잡한 음파이며 이 음파의 물결은 결코 반복되지 않는, 끊임없이 새로운 형태로 생성된다. 정말로 흥미로운 이중성이다.

    Robin Mackay> 수학적 합성법을 활용해 굉장히 풍부한 음악을 만들어낸다는 측면에서, 크세나키스의 음악을 '자동화된 음색'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Sun Pandämonium]의 수록곡들 중 일부도 크세나키스의 방법을 활용한 것 같은데, 맞는지?

    Florian Hecker> 그렇다, 특별히 "Stocha Acid Zlook"은 크세나키스의 'Dynamic Stochastic Synthesis' 방법을 기본으로 하여 만들어진 곡이었다.

    Robin Mackay> 그 작곡법에 대해 간단하게나마 설명해 줄 수 있는지?

    Florian Hecker> 사실상 틀린 이야기를 할 지도 모를 정도로 과대하게 단순화시킨 방식으로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많은 곡들이 Albetro de Campo와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것들인데, Alberto 또한 작곡가이며 소프트웨어 디자인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그는 내가 찾고자 하는 음향이나 작곡의 방향성에 대한 나름의 설명을 인내심있게 들어주었다. 소프트웨어 악기를 구현하기 위한 단방향의 의뢰라기보다는 좀 더 '핑퐁' 스러운, Alberto와 내가 서로 어떤 주제에 관심이 있는지에 대한 대화에 가까운 협업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둘이서 10년정도의 기간동안 협업을 하며 소프트웨어를 개발했고, 크세나키스의 'Dynamic Stochastic Synthesis' 방법을 개조하고 활용해, ... 흠, 그림으로 설명하는 편이 더 좋을 것 같다.


    여기 이렇게 시공간이 있고, 알고리즘이 시간축에서 연결되어 있는 여러 '중단점'을 만들게 된다. 각각의 순환고리는 확률적으로 계속해서 변화해나가며 따라서 알고리즘이 만들어내는 음파는 전부 어딘가는 다른 형태를 띄는, 완전히 새로운 음파가 된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크세나키스가 굉장한 관심을 가졌던 음향이 바로 이러한 음향이었다. 내부적으로 굉장히 풍부한 음향, 이러한 음향은 크세나키스의 일렉트로 어쿠스틱 음악에 이미 많이 들어가 있다. 예를 들자면 [Concert PH]가 있을 것이다. 이 곡은 세분화된 음향 (granular synthesis) 을 포함한 곡들 중 하나이며 1958년 브뤼셀 엑스포를 위한 필립스 파빌리온 (Philips Pavilion) 에 사용되었던 곡이기도 하다... 아주 작은 스케일, 중간 스케일, 아주 큰 스케일에서 전부, '반복'의 완전한 배제를 추구하는 것, 크세나키스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들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겠다.

    Robin Mackay> 그리고 아주 작은 스케일에서의 악기의 음색에 대해서 말하자면, 크세나키스는 종종 악기의 음향이 순수한 음색이 아니게 되어지는 시점, 그 악기에서 나온 음향이라는 것을 더 이상 알아차리지 못하게 되는 시점, 음향이 파괴되어 원래 악기가 가지고 있던 풍부함이 바깥으로 드러나는 시점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 악기가 '적절한' 방식으로 연주될 때 보다는.

    Florian Hecker> 세세한 부분까지 전부 통제된 것 처럼 보이는 것과 이 통제를 없애버린다는 아이디어를 결합하면 악기의 풍부함을 바깥으로 드러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Robin Mackay> '기계란 망가지는 과정에서 더 잘 작동하는 것이다'... [Sun Pandämonium]의 수록곡들이라던가, 아니면 다른 앨범들 전반적으로, '라이브 공연'적인 부분이 있을까? 다른 식으로 표현하자면, 당신의 음악은 그냥 정해진 파라미터들을 정해진 알고리즘에 넣어 결과물로 나온 것인지, 아니면 인간의 지속적인 간섭이 제작 과정에 들어가 있는 것인지?

    Florian Hecker> 물론 지속적인 간섭 과정이 있다. 인터뷰 초반부에 말했던 것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데, 부분적으로나마 스스로 알아서 만들어나가는 성질이 있는 도구를 활용하지만, 결국에는 결과물 전체에서 어떤 부분을 택할지를 직접 선택해야만 한다.

    Robin Mackay> 2007년 Russell Haswell과 함께 만든 [Blackest Ever Black]에서 당신은 크세나키스가 디자인했던 UPIC 전자음악 시스템, 컴퓨터 버전으로 만들어진 건축가의 스케치 보드라고 할 수 있는 시스템을 재발견하여 사용하였다. 이 시스템은 음향을 탐구하는 데 있어 '상호작용성'을 도입한 시스템이었는데, 어떻게 UPIC 시스템을 활용한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쩌다가 이 시스템을 발굴하게 되었던 것이었는지?

    Florian Hecker> 흠, 협업작에 대해 나 혼자서 모든 것을 설명하기는 좀 어려운데, 어쨌든 UPIC 시스템에 대한 관심은 크세나키스의 [S.709]를 처음으로 들어봤을 때 부터 생겼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 후, Curtis Road의 [The Computer Music Tutorial] 책에서 UPIC 시스템과 크세나키스의 다른 작품들에 대해서 좀 더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때 Curtis와 연락이 닿게 되었고, 그는 파리의 CCMIX에서 1년에 한번씩 강의를 하고 있었는데, 우리를 위해 너그럽게 시간을 할당해 주어 2주간 UPIC 기기를 사용해 볼 수 있었던 것이다.

    Robin Mackay> UPIC 기기를 사용하던 다른 사람은 없었는지?

    Florian Hecker> CCMIX 강의를 수강하던 사람들이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UPIC 기기는 그렇게까지 인기 있는 장비는 아니었다. Russell Haswell과 내가 CCMIX에 갔을 때, 관리자 Gérard Pape는 우리가 Protools 시스템이라던가 다른 현대적이고 멋진 스튜디오 장비가 아닌 UPIC을 사용하러 왔다는 사실에 굉장히 놀라워했었다. 우리는 2주간의 시간을 보내며 UPIC으로 온갖 그림들을 그려댔다. UPIC을 사용하는 방법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 방식이 있다: 1번, 그림을 '음향화'하는 것, 특정한 이미지를 떠올리며 UPIC 기기 앞으로 가 내가 생각하는 이미지가 어떤 음향으로 구현되는지를 알아보는 방법. 2번, 직관적인 방법으로 여러 구조들을 시도해 이 구조들이 어떤 소리가 나는지를 알아보는 방법. 우리는 두 가지 방식을 모두 활용해 접근하였으며, 온갖 것들을 표현하는 온갖 그림들을 그려보기도 했었고, 우리가 원하는 특정한 음향을 구현하기 위한 도형을 만들기 위해 연구하기도 했었다.

    Robin Mackay> 어쩌면 UPIC 시스템의 의도는, 사용자가 단순히 케밥 사진이 어떤 음향으로 변환될지 같은 간단한 질문을 궁금해하며 시스템에 접근했더라도, 시스템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상호작용 (크세나키스가 'polyagogy'라고 이름 붙인 것) 에 빨려들어가게 되어, 손, 눈, 그리고 귀로 음향이라는 것을 배우고 이해하게 된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비슷한 야망을 가지고 있는지, 예를 들자면 사람들을 위한 음향적 공간을 창조하여 온갖 곳에 팽배해 있는 서구적인 음악 모델로부터 청자들을 꺼내겠다는 목표? 당신의 작품들은 아카데믹한 컴퓨터 음악에서 분명하게 벗어나 있는 측면이 있다.

    Florian Hecker> 그렇게까지 의도적으로 무언가를 넓히려 하지는 않았다 - '음향'이란 논리적으로도, 사상적으로도 하나 이상의 '위치'에 존재한다. 몇몇 작품들은 공연으로, 출판물로, 설치 작품으로, 또는 작곡으로 존재하며, 많은 경우에 위치보다는 '공간'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이러한 분기점, 예술이론적이고 음악학적인 해석을 열어주는 분기점이 작품에 존재하는 여러 요소들과 참고들을 역사적인 맥락에 위치할 수 있게 해 주는 것 같다. 한편, 나는 '음향 설치'라던가 '음향 조각'같은 컨셉이나 정의가 부적절하며 그렇게까지 정확한 개념도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Robin Mackay> 당신의 설치 작품들을 보자면, 'pluriphonic sound'의 중요성이 날이 갈수록 더욱 부각되고 있는 것 같다. 오늘 공연될 작품은 4채널 스피커로 재생될 작품이지만, [No night No day]는 24채널 스피커로 재생되었던 작품이었다. 그렇게 많은 채널을 활용하였을 때, 적은 수의 채널로는 불가능했지만 멀티-채널로는 가능해진 요소는 무엇이 있는지?

    Florian Hecker> 나에게 '멀티-채널'은 여러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 그냥 똑같은 작품에 세 번째 요소를 더하는 것 만으로도 청자의 경험이 굉장히 복잡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더하여, '공간적'인 설정, 전시 환경의 공간이 달라지는 것 만으로도 작품 자체가 달라지게 된다. 공간이 달라지면 그 공간의 반향 또한 달라지게 되며, '가상의 음원'(phantom sound source)도 달라지기도 한다.

    Robin Mackay> 작품이 전시되는 환경 및 음향기기를 완전히 통제하고 싶어하는 주의인지? 당신의 작품들에서 드러나는 기술적 측면들을 보면, 작품 자체가 기술적인 정확성과 정밀성에 기반하는 것 같다. 아니라면, 때마다 주어진 환경과 장비에 의존해 작품을 맞추어 변형하여, 환경마저도 작품의 일부로 만드는 편인지?

    Florian Hecker> 둘 다라고 할 수 있다!

    Robin Mackay> 우리는 지금까지 크세나키스와 같은 작곡가들, 현대음악 및 전자음악의 역사가 끼친 영향에 대해 얘기해봤다. 하지만 그 만큼이나 중요한 영향이 '댄스 음악'에서 오기도 했을 것으로 본다. [Acid in the Style of David Tudor]의 앨범 이름에서 댄스 음악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애시드 하우스'와 미국의 아방가르드 작곡가 데이비드 튜더의 결합이라는 것이, 겉보기에는 상당히 이상한 조합으로 보인다. 이러한 충돌이 당신의 작품이 어떤 음악을 담고 있는지에 대한 좋은 예시가 되어 주는 것 같다. 이러한, 서로 완전히 다른 두 갈래의 음악이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그리고 어쩌다가 두 영향을 하나로 모아 음악을 만들게 된 것인지?

    Florian Hecker> 두 갈래의 음악들을 각기 다른 시대에 접했었다. 처음에는 테크노와 앰비언트 음악들을 주로 들었고,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에야 튜더와 크세나키스를 접하게 되었다. 그렇게 지내다가 어떤 순간, 두 종류의 음악을 하나로 합쳐 보는 것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방향으로 느껴지게 되었다. 두 갈래의 음악이 공유하는 강렬함, 그리고 서로의 다른 부분들, 그런 특징들을 바라보면서.

    Robin Mackay> [Acid in the Style of David Tudor]를 들어보았을 때, 나는 독특한 음향적 수렴을 느낄 수 있었다: 튜더의 영향을 받은 기술과 기법을 사용하면서도, 결과물로 나온 노이즈의 느낌은 Roland TB-303 신디사이저 (역주: 전자음악에 큰 기여를 한 80년대 신디사이저) 의 바로 그 느낌이었던 것이다.

    Florian Hecker> [Acid in the Style of David Tudor]에 대해 무엇보다도 먼저 말해야 할 것은, '데이비드 튜더 스타일의 애시드'는 그냥 앨범의 이름일 뿐, 앨범에 수록된 곡들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당신이 지적한 것 처럼 이 앨범은 데이비드 튜더의 [Pulsers]나 [Neural Synthesis]같은, 애시드 하우스의 베이스라인과 비슷한 느낌을 가지는 음색을 가진 곡들과 기이하게도 맞닿는 듯한 느낌이 있다. 하지만 나는 음악을 한 가지 방향으로만 보는 것을 피하고 싶었고, 앨범 수록곡들의 방향성에 변화를 주기 위해 Albert Bregman의 '청각 장면 분석'(Auditory Scene Analysis, "ASA")을 도입하여 앨범이 '계획된 앨범'이 되지 않기를 바랬다. 여기에 더해, 앨범 제목은 Art & Language의 [잭슨 폴록 스타일의 레닌 초상](Portrait of V.I. Lenin in the Style of Jackson Pollock)과도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

    Robin Mackay> 또 하나의 '다른 세계들의 충돌'을 들어보자면, Aphex Twin과 당신의 협업 작품이었던 합동 공연들이 있을 것이다 - Cerith Wyn Evans와의 협업이 그러했듯이, Aphex Twin과의 합동 공연 또한 두 명의 사람이 모여 계획을 짜고 그대로 부드럽게 흘러가는 공연이었다기 보다는 오히려 '음향적 전투'에 가까운 공연이었다. 이 협업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던 것인가?

    Florian Hecker> 뭐랄까, 일종의 '실험'같은 공연이었다. 두 명의 음악가가 동시에 같은 장소에서 각자의 공연을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에 대한 실험. Richard는 자기 곡을 연주했고 나 또한 내 곡을 연주했다. 그리고 첫 공연의 후기는 '협업' 공연이 아닌 것 같았다는 반응이었다. 이제 여기에 질문이 생긴다: 협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디까지 '합쳐'져야만 '협업'으로 인식되어지는 것인지? 상당히 흥미로운 질문이었다 - 서로 다른 공연이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에 벌어지고 있을 때, 한 명의 음악가가 다른 음악가가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맞추어 줘야만 한다는 인식. 놀라울 정도이다. 아직까지도 '협업'이라는 개념이 19세기의 '이상적인 협업의 모습'에서 사실상 바뀌지 못했다는 것이.

    Robin Mackay> 어떻게 보자면 합동 공연에서 Aphex Twin과 당신은 거시적인 수준에서 '같은 것'을 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신이 미시적인 수준에서 하는 행위를 - 청자에게 도전하는, 청자가 스스로 외부의 요소들을 직접 조립해 하나로 만들게 하는 당신의 작품을 생각해 본다면.

    Florian Hecker> 그렇다, 그리고 Aphex Twin과의 협업이 또 다른 협업, Cerith Wyn Evans과의 작품과 비슷한 시기에 일어났다는 것 또한 좋은 우연이었다.

    Robin Mackay> 여러가지 핵심 질문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무엇이 음향인가?'에 다시 주목해 보자면, 무엇이 '음향'이라는 것의 통합성을 구성하는 것인지, 당신은 음향심리학의 특정 문헌을 넘어 철학을 바라보며 이 문제 속에 숨겨진 차원들을 열어보려 하고 있다. 흥미로운 부분은 지금 우리가 '현상학'에 대해 상당히 자주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신의 작품은 기술적인 측면에서 볼 때 '음향'이라는 것을 현상학적인 경험 없이도 온전히 수학적 원리만으로 기술할 수 있다고 암시하는 듯한 작품들인데도 말이다. 이러한 측면들이 어떻게 하나로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Florian Hecker> 나는 '조화를 이룬다'는 개념 자체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 [Acid in the Style of David Tudor]를 만들 때, 나는 '생태학적 음향심리학'이라는 다소 새로운 분야를 접하고 있었다. 능동적 인식과 행동 유도성에 대한 James J. Gibson의 심리학 저작을 읽었으며, '음향'에 대해 3가지의 다른 접근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Jens Blauert의 'sound event', 사건이 일어나면 우리가 그 사건을 인식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관점 / 시각적 게슈탈트 이론에 기반한, Albert Bregman의 음향을 '흐름'으로 생각하는 관점 - 이 관점은 현상학 및 Max Wertheimer 및 게슈탈트 심리학자들의 1920년대 연구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음향을 일종의 흐름으로, 스스로 닮아있고, 스스로 낯익으며, 스스로 귀속되어 있는 흐름으로 생각하는 관점이다 / 그리고 다른 관점은 음향을 '청각적 객체'로 생각하는 것으로, 시각적 대상성의 개념과 맞닿아있는 관점이며, 이 관점에서 출발하여 현상학적 관점 및 기술적 관점에 대한 흥미와 음향심리학적 아이디어들로 이어졌던 것이다.

    Robin Mackay> 음향적 간섭을 '소리'로 인식하게 되는 과정을 설명하는 방법들.

    Florian Hecker> 나는 그러한 방법들을 보면서 모든 것이 어느 정도는 불만족스럽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고전적인 음향심리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내 음악은 한치의 의심의 여지도 없이 모두 '노이즈'로 분류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들어본다면, 흔히들 말하는 '화이트 노이즈'나 '브라운 노이즈'와는 기술적으로 완전히 다른 음악이다. 이론과 실제 사이에 '현상학적 괴리'가 명백하게 있는 것이다. 또한, 나는 [Collapse Vol. II]에서 Graham Harman의 객체에 대한 개념을 다루는 글을 읽게 되었고, 우리가 어떤 객체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언제나 불가능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음향의 풍부함이란 그저 일시적인 것이며 우리는 그 풍부함을 절대로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 나는 그 지점에서 출발하게 되었다.

    Robin Mackay> 당신의 활동이 어떤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 모든 철학적 질문들이 어떤 식으로 수렴하는지, 굉장히 흥미롭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당신의 또 다른 작품 [Dark Energy]에 대해서 잠깐 다루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Collapse Vol. II]에 수록되었던, 우주론자 Roberto Trotta의 인터뷰를 읽은 후 내게 보내주었던 그 작품에 대해.

    Florian Hecker> [Dark Energy]는 꽤 직설적인 작품이었다. 한창 작업을 진행하던 도중 당신의 Roberto Trotta 인터뷰를 읽어보게 되었고, 이 작업의 이름을 "Dark Energy"라고 지어야 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 작품이 상상 불가능한 이미지에 대한 작품이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또한 크세나키스적인 작품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 수없이 많은 가우시안 함수 모양의 음향 조각들이 모여 청각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객체가 되는 작품. 여기에 더해 여러 작품들의 제목에서 보이는 연관성도 있었다 - 카를하인츠 슈토크하우젠의 [Sirius], 이안니스 크세나키스의 [Andromeda], Suburban Knight가 참여한, Underground Resistance 레이블의 [Dark Energy].

    Robin Mackay> 오늘 연주할 작품, [Rearranged Playlist as Auditory Stream Segregation]은 어떠한지, 작품의 이름의 절반씩을 나누어 설명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Florian Hecker> "Rearranged Playlist"는 지난 3~4년간 작업해 온 것들의 일부분을 발췌했다는 의미이며, 이러한 발췌본들은 단조로운 음조의 시퀀스들로 계속해서 방해받을 것이다. 이 시퀀스는 Albert Bregman의 음향 흐름에 대한 개념, "Auditory Scene Analysis"또는 "Auditory Scene Synthesis"에 기반한 시퀀스들이며, 이 흐름을 분리하고 또 다시 재조립할 것이다.

    Robin Mackay> 청자들이 어떤 공연을 기대해야 할지?

    Florian Hecker> 총 85분의 길이일 것이며, 전반부와 후반부 사이에 짧은 휴식 시간이 있을 예정이다.


    https://youtu.be/JvZyvs2OE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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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lorian Hecker

     

     

    2021/10/28 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