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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Fall] 2023. 3. 26. 00:51


    https://youtu.be/jAvLLRIXcHE
    "And This Day"

    *********************************************************************************************

    https://thequietus.com/articles/31859


    유대인인가 아니면 나치인가? Mark E. Smith와의 만남들
    Ted Kessler
    [The Quietus]
    2022년 7월 27일

    ***

    Gunnersbury 지하철 역 옆에 자리한 내 원룸에서 전화벨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나는 의심스럽게 생각하며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실망스러운 뉴스들의 시대, 1991년 3월이었다.

    "The Fall의 Mark E. Smith하고 인터뷰 해 볼래?" [Lime Lizard]지의 부편집장 Patrick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내 귓속을 휘감았다. 뭐라고!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제안이었다.

    내 머릿속은 벌써 이미 그 '대단한 일'을 상상하며 눈알을 한껏 굴려대고 있었다.


    프레스트위치(Prestwich) 펍의 의자들, 벽면을 가득 채운 꽃 무늬 벽지, Formica 테이블 위의 파인트 맥주와 물컵들, 재떨이에서 나선형으로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 신성한 팝-문화의 기념비들을 박살내는 Mark E. Smith의 입, 맥주잔을 입에서 뗄 때 올라가는 그의 새끼손가락...

    "다음 주 화요일에 우리 사무실로 와. 오후 3시에 전화를 연결해 줄 거야." "대면 인터뷰가 아닙니까?" 비웃는 듯한 코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15분짜리 전화 인터뷰야."


    The Fall이라는 밴드를 좋아하기 전부터 이미 나는 Mark E. Smith의 인터뷰 기사들을 가장 재미있게 읽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기사에 적혀있는 그의 성격은 - 적대적이고, 심술궂고, 무례하고, 박식하고, 정중하며, 악의에 차 있으면서도 위압적일 정도로 웃긴 성격 -- Mark E. Smith가 등장하는 모든 기사를 너무나도 흥미롭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나는 심지어 순전히 그의 인터뷰를 읽기 위해서 [Melody Maker]지를 내 돈을 주고 사서 보기도 했었다.

    시간이 흐르며, The Fall은 내가 가장 자주 즐겨듣는 아방가르드 록 밴드가 되었다. 나는 The Fall 음악 특유의 반복성, 엄격함에 이끌렸다: 리드미컬하고 과도하면서도 화강암 바위처럼 단단한 곡 구조 위에 조각난 멜로디의 파편들이 흩뜨려져 멜로디의 느낌만을 드리우며, The Fall의 핵심, 다시 말해 Mark E. Smith의 서정적 산문과 그 특유의 박살난 읊조림이 부각되는 음악. 그의 가사는 정말로 대단했다. 그렘린에 대한 노래들. 축구협회에 대한 노래들. 오프라 윈프리, 월트 디즈니, 케리 그랜트에 대한 노래들. 거대 제약회사, 성직자들, 계급에 대한 세세한 디테일, 부정부패 그리고 시시해빠진 멍청함에 대한 노래들. 더운 날씨를 견디는 영국인들에 대한 노래들. 유럽에 거주하는 호주인들에 대한 노래들. 아이슬란드에 도착한 맨체스터 출신들에 대한 노래들. 노래의 의미에 대한 분석이라는 사업에 대한 노래들. 언젠가 읽었던 한 기사에서, Mark E. Smith는 The Fall은 '원시적인 음악에 지적인 가사를 붙이는' 식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밝혔었으며, 나는 그 음악에 저항도 못하고 그저 이끌릴 뿐이었다.

    내가 아는 몇몇 사람들은 Mark E. Smith의 마법에 너무 강하게 사로잡혀서 그의 목소리의 리듬을 흉내내고, 그 처럼 보여지기 위해 꾸미고 다니기도 했다. 나는 그런 흉내까지는 참았지만, 무튼 이 시대는 아직 '레이브 파티'가 존재하기 전의 시대였고, 이 때의 나는 몇 주 씩이나 The Fall의 음악만을 듣고 지내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먼저, 나는 기나긴 오후의 시간동안 그와 함께 펍에 앉아 술집에서나 나올 법한 주정 섞인 철학 너머의 영역들을 탐구하고 싶었고, 이 시간에서 보석과도 같았던 순간들을 골라내어 기사로 창조하고 싶었다.

    대신, 나는 Highbury New Park에 위치한 [Lime Lizard]의 답답한 사무실에 앉아,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너무 긴장해서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 인터뷰는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진행해보는 전화 인터뷰였고, 마침 내 인터뷰 상대는 나의 '엑스칼리버'였다. 대체 어떻게 진행해야하는지에 대한 노하우라던가 참고라고는 단 하나도 없었다. 그저 나 홀로 앉아, 수화기 너머의 Mark E. Smith에게, The Fall에 대한 질문들을 던져야만 했다.

    나는 자리에서 전화기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나는 단 한 번도 전화기와는 친해질 수 없었다. 내가 그 동안 했었던 전화 통화는 대체로 아주 짧은 통화들이었다: 몇시에 만날까, 받고 있던 혜택 왜 중지된 겁니까, 등등. 전화를 미룰 수만 있다면 언제나 미루던 나였다. 나는 보이지 않는 어두움 너머로 말을 하고 정적 속에서 대답을 기다리는 것을 정말로 싫어했다. 친구들은 단순히 만나자는 약속을 잡을 때에만 내게 전화를 했었다.

    나는 빌려 온 전화기용 마이크를 내 귀에 꽂았고, 전화가 울려버리기만을 기다렸다.

    내 머릿속에는 온갖 질문들이 떠돌아다니고 있었고, 대체 뭘 말해야 하는지는 아예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이 대화가 얼마나 방대해질 수 있을지, 생각만 해도 공포심이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것 같았다.

    대체 어디서 시작해야 할까? 시간이 고작 20분밖에 없는데. 20분만에 The Fall의 비밀을 풀어내는 것이 가능한 일이기는 할까?

    공책에는 질문 같은 건 하나도 안 적혀 있었고, 그저 여러 가능한 주제들만이 단어 형태로 너절하게 쓰여 있었다: UFO, Link Wray, 노동당... '가사'라는 단어에 강조의 표시로 밑줄과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지만, 그 단에 속에는 불가능할 정도로 넓은 의미가 모호하게, 막연하게 퍼져 있기만 했다.

    예전, 한동안은 인터뷰 전에 기나긴 질문지 목록을 작성하곤 했었다. 하지만, 어째서 그런 준비를 해야 하는지? 다른 사람과 일대일로 대면해서 이야기하는 동안 질문지를 보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내가 인터뷰 상대를 '취조'할 수는 없다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되었다. 대신, 나는 상대와 함께 산책을 하거나, 술을 한 잔 할 수도 있었다. 펍에서 인터뷰를 진행할 때 마다 컵 속의 '집'으로 이끌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펍의 분위기를 잘 알고 있었고, 사람들은 내 편이었다. 펍에서 진행했던 인터뷰들 중 초기의 한 인터뷰에서, 프랑스 매니아 싱어-송라이터 Bill Pritchard가 취한 채로 내가 물고 있던 담뱃불을 꺼버리려고 했던 일이 있었다. 그 인터뷰에서 내 질문들은 최악이었지만, 대신 적어도 기삿거리, 이야깃거리 하나는 건질 수 있었다.

    그 사건이 있은 후, 나는 인터뷰를 통해 얻어낸 정보들은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며, 얼마나 짧은 시간동안 함께 있었는지에는 상관 없이, '같이 보낸 시간이 어떠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상으로부터 어떤 것을 알아내고 싶은지에 대해 생각하고, 1시간 정도의 동행으로는 알아낼 수 있는 사실이 많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고, 흐름대로 흘러가는 것. 그냥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쓰는 것. 나는 나의 이러한 철학이 전화 통화에서는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Lime Lizard]의 전화기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Ted? 여기 Mark 바꿔줄게요, 잠시만 기다려요."

    나는 이게 현실이라는 것을 다시금 받아들이며 침을 꿀꺽 삼켰다.

    "Ted, 맞는지?"

    "맞아요, 안녕하세요, Mark," 나는 가족을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을, 그 특유의 맨체스터 사투리에게 느끼며, 대답했다.

    "Ted... Kessler?"

    "네."

    "Kessler?"

    "네?"

    "유대인인가 아니면 나치인가?"

    "죄송합니다만, 뭐라고요?"

    "Kessler. 유대인 아니면 나치 성 아닌지?"

    나는 살면서 이런 질문은 단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 질문의 논리는 완벽했다. 내 조상이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았던 사람들인지, 아니면 홀로코스트에 기여했던 사람들인지.

    "아버지가 유대인이세요." 나는 대답했다.

    "어디 출신이신데?"

    "안슐루스(Anschluss)가 일어났을 때 가족들과 함께 비엔나를 탈출하셨었죠."

    "그러면 나치도 직접 보셨겠군?"

    "저희 아버지 말인가요?"

    "그래."

    "보셨었죠, 집 앞에서 나치가 행진하는 걸 보셨다고 했어요."

    "대단한 이야기군, 아닌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사람들이지. Kessler라고 불렸던 나치에 대한 BBC 드라마 본 적 있나?"

    "아뇨."

    "진짜 잘 만들었어. Kessler는 게슈타포였는데, 도망 중인 사람이지. 볼만 해, 아마 재밌게 볼 수 있을 거야."


    수 년의 시간이 흐른 후, 뉴욕에 있는 내 아버지는 아들이 잉글랜드 밴드의 보컬에게 '유대인이냐 아니면 나치냐'라는 질문을 들었던 일화를 믿을 수 없는 일이라는 듯이 저녁 식사 손님들에게 말해주곤 했고, 모두가 킬킬거리며 웃어댔었다. 한 애프터파티에서 처음으로 Elastica의 Justine Frischmann을 만나게 되었을 때, 나는 그녀에게도 이 유대인/나치 이야기를 해 주었다. Justine은 The Fall의 광팬이었고 동시에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딸이기도 했으며, 그녀 역시 이 이야기가 웃기다고 생각했다. 나의 이 일화는 낯선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을 때 손쉽게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좋은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Lime Lizard] 사무실에서, 나는 미리 적어두었던 대화 주제들을 다시금 훑어보았다. The Fall의 새 앨범, [Shift-Work]에 대해서 얘기해볼 수 있을까요?

    "좋아," Mark E. Smith는 대답했지만, 약간 실망한 듯한 어조였다. "뭘 알고 싶은데?"

    ***

    https://youtu.be/dx10715hFKo
    "Hip Priest"

    ***

    우리는 지독한 숙취에 시달리는 채로 로치데일(Rochdale)의 남쪽에 해당하는 얼음장같이 추운 북쪽 지방의 길을 내달리고 있었다. 자욱한 담배연기 사이로 나는 Andy Willsher에게 부탁했다, 주유소에 잠시 들리면 안 되겠냐고. "John Best한테 다시 한 번 연락해 보려고." 나는 그렇게 설명했다. 1994년 1월이었다. Paul Moody, Andy Willsher,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은 벌써 4일째 길 위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으며, Andy의 미니 메트로를 타고 '록 앤 롤의 정신'을 찾아 해메이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록 앤 롤의 정신'이 정확히 무엇인지조차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정신'이 무엇을 포함해야 하는지에 대한 아이디어 정도는 가지고 있었다.

    그 '아이디어'는 Paul과 내가 어느 화요일 오후, 브런스윅(Brunswick)의 King's Reach Tower 맞은편의 펍에 앉아, 크리스마스까지의 계획을 논의했던 [NME] 편집진과의 미팅에 대해 이야기하던 도중에 나왔던 것이었다. 당시 우리 둘은 모두 [NME]에서 뭔가를 더 하고 싶어하고 있었다. 뭐 그럭저럭 적당한 수준의 일은 하고 있었지만, 아직 무언가 부족했던 것이다. 전해 듣기로는 1월에 특집 기사 아이디어가 받아들여질 기회가 가장 많다고 했다, 1월이야말로 한 해를 통틀어 가장 '조용한' 시기이기 때문에. 심지어 가끔씩은 커버 기사 기획이 아예 비어있는 경우까지 있다고도 했다. 어쨌든지간에, 펍에서, 나와 Paul은 무슨 특집 기사 아이디어가 좋을지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다.

    부드러운 거품으로 덮인 Carling Premier의 '니트로' 4.7% 라거와 축제같이 즐거운 분위기에 들뜬 우리는 한번 협업을 해 보자고, 같이 뭔가를 써 보자고 의기투합했다. 온갖 개성들이 판을 치는 사무실에서 Paul Moody는 가장 호감이 가는 카리스마였다. 바닛(Barnet) 출신의 '사이키델릭 비트닉'이었던 Paul은 나와 비슷한 시기에 프리랜서 기자 팀으로 들어왔던 사람이었고, [NME]에 '대단한 매력을 유지하면서 그 어떤 문장이라도 마지막 단어를 "man"으로 끝내는 기법'을 들여 온 사람이기도 했다 - 그리고 이 시점의 [NME] 사무실은 절반 정도는 그 기법을 쓰고, 나머지 절반은 쓰지 않는 정도의 상황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짭새'로 여겨졌다는 말이다, man.

    Paul은 '펍 아이디어' 분야에서는 거의 피뢰침 수준으로 무언가 계시를 받아 쏟아내는 사람이었다. Hanway Street과 Tottenham Court Road 사이의 또 다른 술집 Blue Posts에서는 '뉴웨이브의 뉴웨이브'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생각해 내기도 했었다 - 당시 런던과 브라이턴(Brighton)의 펍들에서 공연을 하던 SMASH These Animal Men같은 2~3개의 펑크 밴드들을 하나로 묶어 표현하는 표현으로써. Paul은 다른 두 명의 [NME] 중요 인물들, John Harris 및 Simon Williams와 함께 '장르'를 생각해내는 사람이었으며, 특유의 에너지 넘치는 공연 리뷰들과 새로운 밴드 소개글들은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힘을 가지고 있기도 했고, '말장난의 기술'이나 '낮 음주'같은 영역에 대해서 상담을 해 주는 사람이기도 했다. 어쨌든 그리하여 그 3개의 펑크 밴드들이 '뉴웨이브의 뉴웨이브'라는 아이디어에 맞춰, Simon Williams가 운영하던 Fierce Panda라는 이름의 레이블을 통해 그 밴드들 중 일부의 곡들을 [Shagging in the Streets]라는 이름의 EP로 발매하기도 했었고, 현재, 28년의 시간과 수백 개의 앨범들을 지나, Simon은 Fierce Panda를 여전히 운영하고 있으며, 이 레이블은 영국의 위대한 인디 레이블들 중 하나로 굳건하게 남아 있는 것이다.

    브런스윅에서, Paul과 나는 [NME] 특집 기사로 어떤 주제를 선정해야 좋을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몇 년 전, 1989년의 [NME] 특집 기사 하나를 기억해내게 되었고, 나도 Paul도 이 기사를 정말 좋아했었다고 말하게 되었다. 이 기사는 Stuart Maconie와 Andrew Collins가 늦여름의 한 주 동안을 [NME]의 '긱 가이드'(Gig Guide)에 나온 공연 정보들 중 무작위적으로 고른 공연들만을 따라 영국 전역을 종횡무진 돌아다니던 내용을 담은 기사였다. 둘은 차에서 잠을 자기도 하고, 아니면 한밤중 내내 여기저기를 쏘다니며 즐기기도 했다. 특집 기사에 딸린 이미지는 스코틀랜드 시골의 히스 꽃밭에 흩뿌려진 긱 가이드 종이들의 사진이었다.

    굉장히 재미있어 보였다, 둘 다 동의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아이디어가 재밌어 보인다고 그대로 따라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새로운 무언가가 필요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게 뭐가 있지?

    우리는 맥주 몇 잔을 더 시켜서 들이부었다. 담배에 불도 붙였고. 레몬향 탄산 술 Hooch도 두 병 시켜서 반만 차 있는 맥주잔 위에 들이붓기도 했다 - Paul이 가장 좋아하는 칵테일 'Turbo Shandy'였다.

    빙고! Paul에게 아이디어가 번뜩였다. 그의 두 눈이 계시를 받은 것 처럼 커졌다. "록 앤 롤의 정신을 찾는 여행을 떠나 보는거야, 어때, man?!"

    나는 아이디어를 받아 헤드라인으로 다시 한 번 반복해 보았다, 어쩌면 해당 호 전체의 커버 라인이 될 지도 모르는 내용이었다. 정말로 훌륭한 아이디어였다. 머릿속에 무언가를 떠올리게 만드는 말이기도 했고, 어쩐지 신비로운 느낌이 들기도 했으며, 충분히 모호했기에 나중에 우리가 원하는 의미를 마음대로 갖다 붙일 수도 있었다.

    록 앤 롤의 정신을 찾아서 (The Search for the Spirit of Rock ’n’ Roll).

    아름다웠다. 내 차례였다.

    1달여의 시간이 흐른 후, 새해 첫 수요일, 가장 황량한 시기에, 우리는 베드포드(Bedford) 근교의 Thameslink 전철역에서 사진작가 Andy Willsher를 만났다. 당시에 우리가 거주하던 동네였다. Andy는 차분한 성격에 말수가 적은 남자였고, 바로 그 이유로 그에게 동행과 우리의 여정에 대한 기록을 요청했던 것이었다. Andy는 또한 줄담배를 피워대는 골초였고 때문에 항상 여분의 담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으며, 성실하고 재능도 있는 사진사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중요했던 부분으로는, Andy는 취소나 처벌 경력이 없이 깨끗한 운전면허증의 소유자였고, 게다가 자기 차도 가지고 있었다.

    여정을 떠나기 전, 우리는 긱 가이드를 살펴보았고 주목할 만한 공연들의 목록을 따로 뽑아 두었었다. 요크(York)에서는 Shed Seven, 글래스고(Glasgow)에서는 One Dove, 리버풀(Liverpool)에서는 Boo Radleys, 맨체스터(Manchester)에서는 The Charlatans, 브리스톨(Bristol)에서는 Moonflowers, 뉴포트(Newport)에서는 60 Ft. Dolls, 로치데일(Rochdale - 어디지?)에서는 Kaliphz(누구야?). 이 밴드들은 우리가 원하던 모든 장소들에 우리를 데려다 주었다: 클럽들, 펍들, 애프터-펍들, 애프터-클럽들. 우리는 굉장히 늦은 시간까지 깨어있기도 했고, 굉장히 심한 두통에 시달리기도 했다. 페나인즈(Pennines) 산맥 중간에서 눈보라를 만나 차가 고장나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여러 흥미로운 일탈들과 멍청한 모험들을 즐겼었다 (1월에는 북쪽 지방 로드 트립 따위는 시도하지도 말아라: 8월에 가라). 하지만, 목록의 밴드들을 전부 만나 보았던 시점까지도, 그 누구도 록 앤 롤의 정신이 대체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나에게는 단 하나의 희망이 남아 있었다.

    출발하려는 날 아침, 그 주의 [NME]를 뒤적거리다가, 나는 일요일 옥스포드(Oxford)에서 The Fall이 공연할 예정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베드포드 기차역에서 The Fall의 언론 담당자 John Best에게 연락해 인터뷰 요청을 넣어 두었었다. 나는 우리의 목적을 설명했고, Mark E. Smith를 만나 록 앤 롤의 정신에 대해 질문해도 되겠냐고 요청했었다. 분명히 Mark E. Smith라면 록 앤 롤의 정신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었다. 아마 브리스톨로 향하는 일정 도중에 그를 만날 수 있을 시간이 생길 것 같았다.

    4일이 지난 후, 우리는 여전히 인터뷰 요청 수락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Andy의 차가 맛이 가 버렸기에, 우리는 렌트카를 타고 있었다. 주유소에서 Andy와 Paul은 실내로 들어 가 편안하게 쉬고 있었으며, 나는 전화기를 들고 John Best에게 다시 한 번 연락을 시도했다. 허락이 떨어지기만 하면 3시간 이내로 옥스포드로 달릴 것이었다.

    둘이 휴식을 마치고 차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며, 나는 말했다. "좋은 소식이야, John이 말하길 Mark E. Smith가 오늘 밤 공연 전, 오후 5시에 호텔 방에서 우리를 만나 줄 거래."

    "환상적이군, man." Paul의 답변이었다. "뭐가 오게 될 지 예상도 못하고 있겠지!"

    "무슨 뜻이야?" 나는 궁금했다.

    "나는 그 사람이 싫다고! 성격이 끔찍하잖아. 그냥 앉아서 독설만 날리고 불평만 하는 사람이라고. [NME]한테 항상 빡이 쳐 있기도 하지, Mark는 음악 관련 저널리스트들의 '영도자'니까 말이지. 만나서 한번 제대로 보여주자고, man!"

    나는 Paul을 바라보았다. "아니, 내 말은, Mark는 나에게는 진짜 '스승'이야." 라고 설명했다.

    "뭐라고?!" "나는 The Fall을 좋아해. 정말 좋아하는 밴드야."

    Paul은 토할 것 같다는 표정을 지었다. "Man!"

    "왜?"

    "너 만큼은 아니야!!" Paul은 웃고 있었지만, 나는 아니었다. 지난 4일간 정말 많은 일이 있었고 이미 충분히 피곤한 상태였다. 나는 자제력을 잃고 있었다.

    "나는 Mark E. Smith를 직접 만나서 인터뷰를 하기만을 몇 년이나 기다려 왔어, Mark랑 절대 싸우지 않을 거라고!" 나는 큰 소리를 쳤다.

    Paul은 한숨을 내쉬었고, 계속해서 웃어댔다 - 그리고 이제는 나를 보고 웃어대고 있었다. "뭐 어쨌든지간에 그하고 재미 좀 봐야 한다고, man! 그냥 다른 사람들처럼 그의 발 아래에 넙죽 엎드리고만 있을 수는 없다구."

    Andy는 차를 이끌고 고속도로의 물결 속으로 들어갔다.

    Paul의 말이 물론 맞았다. 우리가 준비하고 있는 것은 The Fall 특집 기사가 아니었으니. 이 특집 기사는 '록 앤 롤의 정신을 찾아서'라는 기사였던 것이다. 창가로 고개를 돌리며, 나는 깊게 숨을 쉬었다. 이 문제 가지고 지금 서로 싸울 필요는 없었다. 대신 나는 옥스포드로 향하는 길 내내 삐진 채로 있었다.

    The Fall은 옥스포드 외곽, 녹음이 우거진 곳에 위치한 거대 체인 호텔에서 가장 큰 방에 머무르고 있었다. Paul, Andy, 나는 방문을 열고 들어갔고, Mark E. Smith는 방의 한 가운데, 4주식 침대(fourposter bed)에 누워 있었으며, 나머지 밴드 멤버들은 의자에 앉아서 TV를 중심으로 반원형으로 모여 있었다.

    "좋아, 친구들," Mark E. Smith는 우리더러 들어오라며 말했다. "밴드 멤버들은 신경쓰지 말라구, 이 녀석들은 아직까지도 TV가 무슨 마술 같은 거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TV가 보일 때마다 그 앞에서 얼어붙더란 말이지." 그는 긴 의자를 손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맥주 한 캔씩 가지고 여기로 오라구."

    Paul과 나는 침대 위의 Mark E. Smith에게 다가갔다. "그래서, 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고?" 그의 질문이었다. "음, 그러니까," Paul이 입을 열었다. "우리는 록 앤 롤의 정신을 찾아 영국 전체를 돌아다니고 있는 중인데..."

    Mark E. Smith는 베개에 등을 기대고 쭉 펼친 다음, 입고 있던 긴 검정색 가죽 자켓의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능글맞은 웃음이 그의 얼굴을 스쳤다.

    "진짜로 그러고 있다고?"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Mark E. Smith는 말했다. "뭐 어쩌구저쩌구를 찾으러 돌아다닌다고? 처음에 전화로 전해 들었을 때에는 농담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는 몸을 굽혀 침대 옆 테이블에 놓인 파인트 맥주잔을 집어 들었다. "이봐, 나는 그 정신이 뭔지도 모르고 애초에 관심도 없어. 그냥 아직 완벽한 앨범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계속해서 앨범을 만들고 내는 거라고. 아직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다 말하지 못했을 뿐이야."

    Paul은 쉽게 단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정신은 1956년의 Elvis Presley, 1963년의 The Beatles, 1977년의 Sex Pistols, 1989년의 Happy Mondays가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닌지...?"

    "Happy Mondays?" Mark E. Smith는 아연실색하며 말했다.

    Paul은 웃기 시작했고, 우리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음... 그러니까... 좋은 밴드죠!" Mark E. Smith는 나를 바라보았다. "너도 Happy Mondays 팬인지?" 나는 Happy Mondays를 정말 좋아했다.

    "하이고, 씨발. 뭐,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같은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확신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지간에 무엇이 록 앤 롤의 정신이 아닌지에 대해서는 말해줄 수 있겠어."

    오 그런가요?

    "좆같은 코미디는 아니야. Tony Parsons인지 뭐시긴지가 코미디야말로 새로운 록 앤 롤이라고 씨부렸던 병신같은 글 읽어본 적 있나? 그딴 쓰레기만 끌고 오지 않으면 된다구."

    "Primal Scream은 어떤가요?" Paul은 결연한 어조로 이어갔다. "새 싱글 [Rocks] 들어 보셨습니까? 그 곡 안에 록 앤 롤의 정신이 조금이나마 깃들어 있지는 않은지?"

    Mark E. Smith는 다시 한 번 웃기 시작했다.

    "당신들 둘 정말 잘 하는데," 그는 말했다. "어쩌면 코미디가 진짜로 새로운 록 앤 롤일지도 모르겠어." 그는 맥주를 조금 들이마셨고, 아주 살짝 불편해질 정도의 시간동안 우리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정말 슬픈 일이지, 그렇지 않나? Suede라던가 기타등등 요새 밴드들, 1973년에서 온 것처럼 차려입고는, 좆같이 멍청한 새끼들이 펍 록을 연주하고 있으니..."

    몇 분의 시간동안, Mark E. Smith는 현재의 음악 씬을 훑었고, 특별히 '그런지' 씬에 대해 주의를 기울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Nirvana The Fall의 버스에 올라 타려고 했었는데, Mark가 그들을 내쫓아 버렸었다고 했다. "시애틀에서 온 사람들하고는 말도 안 섞는다는 규칙을 가지고 있지." 그는 시애틀이라는 도시를 굉장히 싫어하고 있었다. "모스 사이드(Moss Side)에서 가장 안 좋은 밤 같은 곳이야."

    Mark E. Smith는 Nirvana의 성공은 잉글랜드 탓이라고 비난했다. "영국의 음반 산업은 12월 10일에 셔터를 내리고 1월 말이 되어서야 다시 일을 시작하잖나. 록의 정신에 있어 뭔가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바로 이 부분이지."

    Mark E. Smith는 The Fall 밴드 멤버들에게로 눈을 돌렸다. 밴드 멤버들은 지역 뉴스 방송을 보면서 샌드위치를 우적우적 씹고 캔을 손으로 따고 있었다. "이제 가도 되겠나?" 그가 우리에게 물었다. "아니면 밴드더러 당신들을 패버리라고 해야 할까?"

    너무 짧은 인터뷰였지만, 핵심은 거의 건질 수 있었다. 나는 방금 막 Mark E. Smith와 함께 술을 마시면서 그가 나를 포함한 온갖 사람들을 욕하고 헐뜯는 것을 옆에서 들었다.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복도에서, Paul은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Man," 그는 눈을 크게 뜨고 분명하게 말했다. "굉장하군! 밴드 멤버들은 신하들이고 자기는 왕이라는 듯이 침대 위에 누워서는 온갖 구절들을 쏟아내다니. 우리는 금화라도 되는 것 마냥 정신없이 그의 격언들을 허겁지겁 줏어댔고. 그가 바로 록 앤 롤의 정신, 그 자체로군."

    나는 Paul이 입장을 바꿀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어쨌든지간에, 우리는 록 앤 롤의 정신을 찾아 떠나는 우리의 여정을 조금 더 지속했고, 서쪽으로 조금 더 향했다.

    ***

    https://youtu.be/y3VGHBpcnws
    "Slags, Slates Etc."

    ***

    2015년 봄, 나는 마침내 Mark E. Smith와 함께 맨체스터의 펍으로 향할 수 있었다. [Q]지에 실을 6쪽짜리 기사를 위한 인터뷰였다.

    "맨체스터의 거리들을 펍을 중심으로 기억하곤 했었지." 그는 모호한 어조로 말했다. 우리는 정오에, 맨체스터 Northern Quarter의 Gullivers 앞에서 만났다. 하지만 도시는 상당히 변한 상태였다. 당시 그의 아내 Elena Poulou를 통해 인터뷰 약속을 잡았을 때, Mark는 Gullivers가 아직 그 곳에 그대로 존재하는지조차도 확신하지 못했었다. 그가 자주 찾아 머물던 아지트들은 거의 대부분 개발과 리모델링에 삼켜져 사라져버렸다. 그가 가장 좋아하던, 집 근처의 술집 하나는 Byron Burger Bar로 변해버렸다. 그리고 Mark는 이 것을 개인적인 인신공격으로 받아들였다.

    다행히도, Gullivers는 젠트리피케이션의 물결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Gullivers의 문으로 향하자, 한 젊은 여성이 다가오더니 다소 공격적인 태도로 Mark를 가리켰다.

    "당신, 씨발 레전드야, 레전드라고." 그녀는 소리를 지르면서 지나갔다. "씨발, 당신 정말 좋아해, 진짜로 사랑한다고."

    Mark는 씨익 웃으며 칭찬을 받아들였다. "아주 기쁜걸." 그는 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우리는 펍 내부로 들어갔다. 우리가 이 날의 첫 번째 손님이었다.

    5시간이 흐른 후, 펍이 한 주의 일을 끝내버린 학생들과 사무직 회사원들로 가득 차게 되었을 때에도, 우리는 여전히 Gullivers에 있었다. 우리는 중앙 바에서 떨어진 별실 공간에 있었으며, 펍 주인의 거대한 그레이트데인 개가 이 공간을 지키고 있었다. "나는 개들을 싫어해," Smith의 말이었다. 그는 자고 있는 사냥개를 조심스럽게 넘어서 왔다. "하지만 우리 말고는 그 어떤 사람도 이 개자식을 넘어 오지 않는구만."

    딱히 숫자를 세고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각자가 이미 파인트 잔으로 4잔의 라거, 병맥주 한개, 6잔의 위스키를 마신 상태였다 - 지금 보니 아마 내가 숫자를 세고 있었던 게 맞는 것 같다. 놀라웠던 것은, Mark는 이 5시간의 대화 동안 단 한 번도 자리를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그의 비밀이 대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이 오렌지색 '스피드'를 복용하고 왔지..." 놀랍게도, 그의 놀라운 방광 제어능력은 암페타민의 마법에서 왔던 것이었다.

    3년 전, 그가 6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을 때, 나는 Gullivers에서 만나던 시점에 이미 Mark가 신장암을 앓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의 신장암은 나중에 폐로 전이되었지만, 그 지경에 이르러서도 Mark는 공연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고, 심지어 죽음을 앞둔 마지막 달에도 휠체어 위에서 노래를 불렀다. 가끔씩은 의상실에서 멀리는 못 나왔지만, 그래도 무대 위에 선 밴드 멤버들의 연주에 맞춰 끝까지 노래를 불렀던 것이다.

    펍을 나와, 우리는 주변을 둘러싼 풍경을 보며 잠시 서 있었고, 각자의 길을 가기 위한 준비를 했다. 그는 주머니 속에서 말보로 담배를 꺼내 자기도 한 개피 가져가고, 나에게도 하나를 권했다. 나는 Mark에게 요새 어떠냐고 물어보았다.

    "좋아." 그는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예전에 비하면, 지금은 좋지."

    펍 안에서 5시간동안 무슨 이야기를 했냐고? Richard Madeley. 인터넷 분탕질. 항우울제의 사악함. 컴퓨터를 정말로 잘 다루는, Mark의 아일랜드인 친구들. 언제나 그랬듯이, 현재 The Fall 라인업이 예전 라인업들에 비해 어떤 점에서 더 나은지에 대해서. 현재의 The Fall 팬들이 이전에 비하면 얼마나 더 Mark와 비슷한 종류의 사람들인지.

    "항상 누구든지 개자식이 나와서 내가 1982년에 만들었던 '걸작'에 대해 질문을 던지곤 하지." 내가 그의 1982년 걸작, [Hex Enduction Hour]에 대해 질문을 던지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하지만 그 때보다 더 나은 앨범들을 지금 만들고 있다고."

    술에 취하기 전부터 Mark의 말은 불분명했고, 가끔씩은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는 57살이라는 실제 나이보다 적어도 10년은 더 늙어 보였고, 두 번이나 골절되었던 고관절때문에 구부정한 자세로 걸어다니고 있었다. 누구라도, Mark의 모습을 보았다면, 그의 시간이 거의 다 흘러버렸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와 그의 일당들은 무언가 마력이 넘쳐흐르는, 재미있는 사람들이었다. 꿈. Mark는 그와 같은 세대의 맨체스터 출신 음악가들에 대해 충격적일 정도의 비방이라고 여겨질 만한 일화들을 들려주었고, 중요하지 않다고는 말할 수 없을 법적인 문제들과 고민들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말해주었다. 몇일 후, Mark는 Elena를 통해 그 '법적 문제들'에 대한 추가 메시지를 보내 왔었다.

    Ted에게,
    답신: 지난 금요일
    아마도, 내 법적 문제들 때문이겠지만, 계속해서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함.
    지겹게 만들어서 미안하네. 법적인 문제들에 대해 얘기하자면, 언급할 수 없군.
    곧 또 보자구, 1–12살의 MES와.
    너의 친구, Mark E.

    Gullivers 밖에서, 나는 그의 담배에 불을 붙여 주었고, 오늘 저녁 일정이 어떻게 되냐고 물어보았다.

    "아마 펍에 가서 샌드위치나 하나 먹을까 하네." Mark의 대답이었다. 우리는 악수했다. "Kessler?" 그가 물어보았다. "BBC에서 만든, Kessler라고 불렸던 나치에 대한 정말 좋은 드라마가 하나 있는데. 본 적 있나?"

    나는 보지 못했다고 말해주었다. 그는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가 태양 속으로 떠나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프레스트위치로 데려다 줄 택시로 걸어가는 그의 반쯤 벗겨진 정수리가 길거리의 사람들 사이로 사라져갔다.

    ***

    https://youtu.be/emUTBNpvCXQ
    "Leave The Capitol" (Live at Reykjavik, 1981)

    *********************************************************************************************



    Mark E. Smith (1957.3.5. - 2018.1.24.)

    Rest In Peace
     

     

     

    2022/08/20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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