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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he Dead C 2
    [...]/[The Dead C.] 2023. 3. 26. 00:58



    https://youtu.be/TQ9mwNkJMaU
    "Helen Said Th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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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audioculture.co.nz/articles/the-dead-c-why-use-two-chords-when-one-will-do-part-2

    The Dead C: 코드 1개면 되는데 뭐하러 코드 2개를 쓰는가? 파트 2
    Jon Chapman
    [Audioculture]
    2016년 5월 26일

    1980년대가 끝나가던 시점, Michael Morley는 이렇다할 직업이 없는 백수 상태였다 - 연주, 그림, 인쇄 작업 등은 계속해서 하고 있기는 했지만. 그리하여, [NZ Herald] 신문에서 사진 기록 보관 담당자로 일하기 위해, Morley는 오클랜드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이에 따라 발생한 잠시동안의 단절은 Gate라는 이름의 Morley 솔로 프로젝트의 발전으로 이어지게 되었으며, Morley는 솔로 및 여러가지 협업 프로젝트와 공연을 진행하게 되었다.

    오클랜드에 머무르는 동안, Morley는 Rachel Shearer, Stella Corkery, Debbie Hinden과 함께 Angelhead라는 그룹을 결성하기도 했으며, Angelhead는 Xpressway 레이블에서 카세트 테이프 [Eat]을 발매하게 된다. [Eat]에는 The Dead C의 커버곡 3개가 수록되어 있기도 했다: "Fire", "Glass Hole Pit", "Scarey Nest". Morley와 Corkery는 S.P.U.D.의 Matthew Hyland와 함께 La Motta에서 연주하기도 했다.

    [Stereogum]과의 인터뷰에 따르면, "오클랜드로의 이사 때문에 모든 것이 어느 정도는 방해를 받았었고", Morley와 The Dead C의 다른 두 멤버들이 서로 뉴질랜드의 반대쪽 끝에 살게 되어 버렸지만, The Dead C는 이 와중에 그들의 명반 중 하나인 12인치 EP [Helen Said This / Bury]를 필라델피아 레이블 Siltbreeze에서 발매하게 된다. [Helen Said This / Bury]는 Siltbreeze 레이블에서의 두 번째 앨범이었고, The Dead C는 90년대에 여러 앨범들을 Siltbreeze를 통해 발매하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Bruce Russell은 고향 동포들의 회심따윈 없는 차가운 반응을 한껏 즐기며, [Ha Ha Ha]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었다: "(저명한 미국 음악 평론가) Bryon Coley가 뉴질랜드에 방문했을 때, '일부' 뉴질랜드 사람들이 Byron에게 찾아가 미국인들이 The Dead C 12인치를 발매하려고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면서, "그 미국인들 미친놈들 아닌가?"하고 물었었다고 한다. "The Dead C를 한번이라도 들어보긴 했는지, 그냥 좆같이 시끄러운 소음이잖아." Byron은 이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맞아. 그래서 진짜 끝내주는 거 아닌가?""

    "Helen Said This"의 첫 5분은 거대한, 끓어오르는 듯한 록 음악이며, 전통적인 곡 구조를 탄력적인 방식으로 구현하는 부분이지만, 곡은 곧 징징거리는 기타 화음과 청자의 신경을 긁는 듯한 소음으로 녹아내려버린다. B-사이드 "Bury" 또한 비슷한 곡이며, 관객들의 야유 소리의 녹음으로 그 시작을 여는 곡이다 (우연하게도 똑같은 녹음 음원이 다음 카세트 테이프 앨범 [Trapdoor Fucking Exit]의 "Mighty"의 시작 부분에도 사용되었다). "Bury"는 곧 비꼬는듯한 전쟁터의 고함소리로 이어지며, 결국 12분이라는 시간동안 끊임없이 웅얼거리는 지하의 소리, 빠르게 튀는 테이프 소리, 가위로 무언가를 자르는 소리, 뒤덮여 모호해진 라디오 설교 소리들로 폭발한다. Russell은 [Bananafish]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Helen Said This"는 오클랜드의, 간이 공중화장실 크기 정도 되는 좁은 방에서, 뇌를 갈아버릴 정도로 큰 음량 속에서 완성한 곡이었다." 반면, "Bury"는 더니든(Dunedin)의 집에서 녹음한 곡이었다.

    The Dead C의 모든 멤버들은 다시 한 번 포트 찰머스(Port Chalmers)로 모이게 되었으며, 새로운 12인치를 미국에서 발매할 예정이었다. The Dead C는 처음으로 외부 음악가를 게스트로 초빙해 함께 작업을 진행하였으며, 그들의 앨범들 중 가장 강력한, 가장 "직설적인" 록 앨범, [Trapdoor Fucking Exit]를 만들게 된다.

    https://youtu.be/PcyXAaclVhE
    "Bury (Refutatio Omnium Haeresium)"

    [Tiny Mix Tapes]와의 인터뷰에서, Russell은 [Trapdoor Fucking Exit]에 관련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 무렵 Michael은 거의 만들어지다 만 상태의 작은 카세트 테이프 레이블 'Precious Metal'을 갖고 있었다. [Trapdoor Fucking Exit]의 대부분은 Chris Heazlewood(King Loser)라는 사람에게 추가 기타를 맡기고 4인조로 진행한 리허설 세션에서 나왔다. Chris와 함께 연주를 했던 유일한 순간이었다. 그 덕분에 평소와는 다른 3대의 기타 연주가 진행되었고, 음악도 그에 따라 변화하게 되었다. Michael은 기타를 칠 줄 알았지만 나는 사실 기타를 연주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기에, Chris의 합류로 인해 The Dead C 음악에 진지하게 기타를 연주하는 부분이 최초로 들어가게 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Helen Said This / Bury]가 직설적인 곡 구조의 끝을 알리는 앨범이었다면, [Trapdoor Fucking Exit]는 이를 다시 회복하고 있는 듯한 곡들을 담은 앨범이었으며, 밴드의 멱살을 잡아 끌어올리고는 '히트곡'이라는 변하지 않을 이름으로 불릴 만한 곡들을 털어 내뱉게 한 것 같은 앨범이었다. [Trapdoor Fucking Exit]는 몇년 후 Siltbreeze 레이블에서 CD로 재발매되었으며, [Helen Said This]와 '언플러그드' 보너스 트랙을 추가로 담은 채로 발매되었다.

    많은 팬들이 'The Dead C 최고의 80분'이라고 뽑는 앨범이기도 하면서, 1990년대 가장 위대한 노이즈 앨범들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하는 [Harsh 70s Reality]는 The Dead C의 음악을 정의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더블 LP 앨범으로 Siltbreeze에서 2번째로 발매한 LP이기도 한 [Harsh 70s Reality]는 만드는 데에 18개월이 걸린 앨범이었다.

    Robbie Yeats는 6년간의 생활 - The Verlaines의 가장 중요한 앨범들의 드럼을 맡은 시간들 - 을 끝으로 The Verlaines를 탈퇴하였다. 2013년 [The Wire]와의 인터뷰에서, Yeats는 말했다. "[Harsh 70s Reality]는 일종의 전환점이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씨발, 이거 이제 장난이 아니게 되었는데." Russell 또한 이런 관점에 동의하였으며, 1999년 [The Wire]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The Dead C의 옛 앨범들을 들어 보면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음악들의 단초들이 보인다. 옛 앨범들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 오히려 굉장히 독특한 앨범들이라고 보는 것이, 전통적인 곡 구조와 즉흥음악의 구조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이 깃든 앨범들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The Dead C는 어떻게 보자면 선을 완전히 넘어버렸고, 당시의 우리였다면 떠올리지도, 실행하지도 못했을 여러 아이디어들을 진행하는 밴드가 되었다. 굉장한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장의 첫번째 면, 첫번째 곡 "Driver UFO"는 무겁고 두터운, 몽롱함이 뚝뚝 떨어지는 기나긴 곡으로, 사실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커버' 곡이었다 - 뉴질랜드 초기 전자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고전 중 하나인 Douglas Lilburn의 "Poem In Time Of War"의 커버. 1975년 3LP 박스셋으로 발매되었던 컴필레이션 앨범 [New Zealand Electronic Music]에 수록되었던 "Poem In Time Of War"는 전쟁 반대의 메시지를 담은 장엄한 일렉트로닉/구체음악 곡이었으며, The Dead C의 "Driver UFO"에서는 일종의 배경음악으로 재생이 되며 그 앞에서 밴드는 앰프의 웅웅거리는 소음, 퀭한 느낌의 드럼, 휘파람 소리처럼 울리는 공전(sferics)음, 발작하는 듯한 클라비올린(clavioline), 잔뜩 뒤엉킨, 과하게 증폭된 기타의 미니멀한 연주로 배경의 "Poem In Time Of War"를 말 그대로 박살내고 있었다. 동네 친구이자 The Weeds 전 멤버 Shayne Carter가 추가 기타 역할로 참여하였으며, Buffy O'Reilly라는 가명을 사용하였다.

    첫 곡이 끝나가며, 갈매기 소리같이 울려퍼지는 피드백 노이즈의 부드러운 물결 아래, The Dead C 최고의 명곡들 중 하나의 가장 훌륭한 버전이 흘러나오게 된다: "Sky"는 원래 [Trapdoor Fucking Exit]에 수록되었던 곡으로, 청자의 귀에 착 감기는 디스토피아적 가사 "하늘을 보려고 내 엉덩이를 빌려줬다"(rented my ass to see the sky)가 Morley의 흐릿한 리프, Russell의 비틀거리는, 질식사하고 있는 피드백 노이즈, Yeats의 비대칭적 망치질 위에서 울려퍼지는 곡이다. The Dead C는 나중에 이 곡을 청년 문화 팝 TV 쇼인 [Ground Zero](쇼 호스트는 Able Tasmans의 Graeme Humphreys였다)의 무대 위에서 직접 공연했으며, 쇼의 평범한 청중들은 완전히 충격을 받아 어안이 벙벙한 채로 남겨졌었다.

    Yeats의 파트너 Joan George(Piki Riwai)는 [Harsh 70s Reality] LP의 3번째 면의 수록곡 "Shark"에서 슬로우모션이 걸린 목소리로 투덜거렸으며, 이는 향후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The Dead C의 마지막 게스트 참여곡이 되었다 (시간이 흐른 후, 2003년 [Bananafish] 편집장 Seymour Glass의 레이블 Starlight Furniture Company에서 발매한 [The Damned]에 Sandoz Lab Technicians의 Nathan Thompson과 James Kirk가 게스트로 참여한 곡들이 수록되게 된다). LP의 마지막 면은 열기로 가득한 명곡 "Baseheart"로 장식되어 있으며, 이름에 걸맞는, 3개의 음으로 구성된 프로토 둠 메탈 느낌의 베이스라인이 기나긴 뼈대를 담당하는 곡이다: 허약하면서도 강한, 유기적이면서도 엄청나게 무거운, 뼈대를.

    https://youtu.be/CE4yWDkZETQ
    "Baseheart"

    Russell은 [Insample]과의 인터뷰에서 The Dead C의 보다 더 '스토너 록' 스러운, 보다 더 공간감이 충만한 (하지만 여전히 청각 신경을 긁어대는 듯한) 새로운 방향의 곡에 대해 설명했다: "과거의 우리는 2대의 기타와 1대의 드럼이라는 3인조 밴드 구성을 철저하게 지키며 음악을 했었다. 이제는 키보드나 신디사이저도 쓰게 되었고, 뭐랄까 우리 나름대로 초기 Pink Floyd 스타일을 시도해 보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Harsh 70s Reality]의 앨범 제목은 The Dead C 멤버들이 Chris Knox와 함께 나눴던 대화, 1970년대 뉴질랜드의 시대정신에 대해 나눴던 대화에서 따 온 제목이었다. 하지만, Morley는 [The Wire]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실 [Harsh 70s Reality]는 70년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앨범이 되었다. 이 앨범은 사실 이 앨범이 만들어졌던 시기를 가리키는 앨범이다, 그 시기를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그 시기의 음울함과 다른 음울한 시기들과의 비교, 실업 수당을 받아먹고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앨범이다. 그러한 존재와 삶에는 어떤 야만적인 잔인함이 있으며, 그러한 존재와 삶에 대한 우리의 반응에도 어떤 야만적인 잔인함이 있다."

    포스트펑크 업계인들끼리의 농담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미스테리한 '가짜 라이브 앨범'(원래는 "공식 부틀렉" 앨범이었다)이기도 한 [Clyma Est Mort]는 이들의 다음 앨범이었으며, Siltbreeze에서 발매되었다. [Clyma Est Mort]는 Siltbreeze의 창립자 Tom Lax가 자신을 위해 녹음한 앨범이었다. 처음으로 포트 찰머스를 방문해 뉴질랜드 언더그라운드 음악을 직접 눈 앞에서 본 Lax는 Volcanic Tongue 웹스토어 페이지에 이런 글을 적었다: "순전히 내 책임이므로 털어놓는 것인데, The Dead C는 처음에 나를 위해서 Grey Street의 연습실에서 밴드 연습을 하기로 했었다. 그리고 그 약속과 실제 연습 당일 사이의 어느 순간에 연습이었던 것이 실제 공연으로 바뀌어버렸던 것이다."

    관객들의 소리, 그리고 Maryrose Crook이 Russell을 언급하며 곡을 소개하는 부분은 The Renderers의 라이브 카세트 테이프에서 잘라내어 곡에 붙여넣은 것으로, [Clyma Est Mort]이 라이브 앨범이 맞다는, 일종의 '합법성'을 부여하기 위해 붙여넣어진 부분이었지만 당연하게도 아무도 속지 않았다. 커버 아트는 The Fall의 [Totale's Turns]를 오마주한 것이었으며, "Clyma Est Mort"라는 이름은 Gong의 [Gong Est Mort, Vive Gong], 그리고 세상을 떠난지 얼마 안 된 Morley의 고양이, Clyma에서 따 온 것이었다.

    Russell은 그의 프로젝트 A Handful of Dust 활동을 다시 시작하였으며, 이 프로젝트는 이제 Alastair Galbraith와의 2인조 프로젝트가 되었다 (가끔씩 드러머 Peter Stapleton도 합류하였다). A Handful of Dust는 [Concord] LP를 발매하였으며, 이 앨범은 신비로운 중세의 장난들과 철학적 자유에 대한 진지한 토론에서 자라나온 개념적 노이즈들을 담고 있는 앨범이었다. 이러한 궤적을 참고해 볼 때, Siltbreeze에서의 다음 The Dead C 앨범이 기이한, 연금술적인 앨범 [The Operation Of The Sonne]였던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이 앨범은 고밀도의 꿈결 3갈래로 구성되어 있으며, The Dead C의 가장 몽환적인 순간들이 깃들어 있는 앨범이었다. 의무적으로 제작했던 라이브 (혹은 가짜 라이브) 앨범 [Clyma Est Mort]의 제작 과정을 따라, [The Operation Of The Sonne]의 두번째 면을 통째로 차지하고 있는 곡 "Air"는 Empire Tavern에서, 관객들을 앞에 두고 직접 라이브로 연주하여 녹음된 곡이었다. The Dead C는 이후에도 여러 라이브 음원들을 여러 앨범들을 통해 발매했으며, 특별히 1996년 Siltbreeze 앨범인 [Repent], 그리고 2014년 Grapefruit Records에서 발매한 [The Twelfth Spectacle]은 분명한 라이브 앨범들이었다.

    https://youtu.be/yHT8SStg848
    "The Marriage Of Reason and Squalor"

    Russell이 Sonic Youth를 다시 보게 된 것은 1993년, 뉴질랜드에서였다. 뉴욕 노이즈 록의 선구자 Sonic Youth는 언제나 단호하게 The Dead C를 옹호하는 사람들이었으며, [Dirty] 투어 중 뉴질랜드 공연들에 The Dead C를 초대해 함께 공연을 진행했다. 그리고 이 때, "관객들은 대체로 The Dead C의 노이즈를 무관심, 혐오, 혼란으로 대했다. 이들은 거의 대부분 Sonic Youth의 '그런지 록'을 들으러 온 사람들이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The Dead C의 음악에 대해 그냥 혼란스러운 소음 덩어리라고 치부했던 관객들의 반응과, 사실 Sonic Youth는 그러한 소음 덩어리들로 가득했던 뉴욕 노 웨이브 씬에서 발생했다고 말할 수 있는 밴드였다는 것이다" (Michael Goddard, [Noise from Nowhere: Exploring 'Noisyland's' Dark, Noisy and Experimental Music], [Resonances: Noise and Contemporary Music], 2013년). 이 투어는 The Dead C Sonic Youth와 향후 오랜 시간 함께하며 나눌 교류의 첫 번째 경험이었다. 이후 1995년에는 The Dead C가 미국으로 가 Sonic Youth와 함께 미국 투어를 돌았으며, 2008년에는 다시 뉴질랜드에서 합동 투어가 진행되었다. 또한 2006년 영국의 All Tomorrow’s Parties 페스티벌에서도 두 밴드는 만나서 공연을 진행했다.

    Morley는 자신의 시각 예술 프로젝트도 버리지 않고 꾸준히 진행하였으며, 1994년에는 예술 위원회로부터 미국 유학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 Morley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용하여 미국에서 솔로 프로젝트 Gate의 공연도 여럿 진행하였으며, 때로는 하프 연주자 Zeena Parkins 및 Sonic Youth 기타리스트 Lee Renaldo와 함께 공연을 진행하기도 했다. Gate는 재패노이즈의 거장 Keiji Haino 및 크라우트록 전설 Faust와의 합동 공연도 진행하였으며, Morley와 Haino는 Jim O'Rourke가 프로듀싱한 Faust의 1995년 앨범 [Rien]에 참여도 하게 된다.

    다음 해인 1995년, The Dead C의 첫 번째 미국 투어가 진행되었으며, 서부 해안가에서 시작하여 2주간 11번의 공연이 이루어졌다 - 보스턴, 필라델피아, 워싱턴 DC, 그리고 미네아폴리스에서 진행된 Sonic Youth와의 합동 공연. 이들의 다음 번 미국 투어는 2002년과 2008년이었으며, 2004년에는 첫 번째 영국 공연을 스코틀랜드의 Le Weekend에서 진행하기도 했다. 2006년과 2010년에는 영국을 다시 방문해 공연을 진행하기도 했으며, 2013년 첫 번째 유럽 투어를 돌기도 했다.

    Siltbreeze에서의 마지막 앨범 2개는 [The White House]와 [Tusk]였으며, The Dead C는 그 이후 한동안 앨범을 발매하지 않았다. [The White House]와 [Tusk]에는 밴드가 새롭게 시도하는 음향들이 녹아든 곡들도 수록되어 있었다: 고립되어 있는 느낌이면서도 동시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음향들, 상자 속에 숨어있는 듯한 소리들. 밴드 내에서 여러가지 트랙들을 한데 합치는 담당을 주로 맡아 온 Morley는 애초에 오버더빙 같은 여러 스튜디오 기법들에 관심을 갖고 첫 카세트 테이프 시절부터 여러 기술들을 다양하게 적용해 왔었지만, 시간이 흘러 디지털 레코딩 및 믹싱 기술의 발전하게 되자 음향의 해체/재조합을 더 쉽게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The White House]와 [Tusk]는 100% 스튜디오 작업을 통해 만들어진 곡들을 수록하고 있었다 - 여러 잼 세션에서 녹음한 것들을 자유자재로 잘라내고 붙여서 만들어진 곡들이. "Voodoo Spell"이나 "Plane"같은 곡들은 창문조차도 없는, 흡음재로 완벽하게 둘러쌓인 작은 방 속에서 조립되어 만들어진 곡들이었다. 이러한, The Dead C의 새로운 방향은 Morley가 솔로 프로젝트들을 통해 쌓았던 스튜디오 경험에서 자라나온 방향이었다 - Morley의 [Lavender Head] 시리즈는 싸구려 댄스곡 샘플들과 노이즈들을 여기저기서 무단으로 도용하여 윌리엄 S. 버로스/Gysin 스타일의 저화질 진흙탕으로 마구 버무린 앨범들이었다.

    https://youtu.be/NiJfaTm5yJI
    "Voodoo Spell"

    Siltbreeze는 이제 잠시 동면하는 기간을 갖게 되었고, 레이블의 대표 스타 The Dead C 또한 잠시 활동을 멈추게 되었다. 2000년, The Dead C가 다시 돌아왔을 때, 이들은 새로운 성명서를 손에 든 채로 나타났다: 스스로 만든 레이블 Language Recordings를 통해 발매된, [The Dead C]라는 이름의 더블 앨범을. Morley는 [The Wire]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셋이서만 작업하는 방식으로 되돌아갔다. 멤버들끼리만, 비밀스럽게 모여서. [The Dead C] 더블 CD 앨범은 수년간 함께 연주하고, 이 연주를 다시 들어보고, The Dead C가 하는 것이 무엇인지의 범위를 좁혀나가던 시간들이 합쳐져 만들어진 앨범이라고 할 수 있겠다."

    The Dead C의 가장 훌륭한 음반들이 그러하듯이, [The Dead C] 또한 예술적이면서도 예술적이지 않은 앨범이었다: 멋진 대리석 느낌의 종이 케이스 안에 담겨진 앨범에는 의도적인 Robert Fripp/Brian Eno ("Pussyfooting") 및 Jimmy Hendrix ("Tuba is Funny [Slight Return]") 참조곡들, 싸구려 개밥들과 섬세하게 짜여진 스튜디오 곡들이 혼합되어 있었다. 다음 앨범 [New Electric Music]은 [The White House]와 [Tusk]의 다음편과도 같은 느낌의 앨범으로, 헤드폰 미니멀리즘, 리버브가 잔뜩 들어간 연습실 음향 콜라주와 확실하게 돋보이는 록 음악들이 섞여 있는 앨범이었다.

    2007년, 브루클린의 레이블 Ba Da Bing!이 The Dead C와 계약하였고, The Dead C는 Ba Da Bing!에서 현재까지 4장의 스튜디오 앨범을 발매하였으며 올해에는 더블 LP 앨범이 예정되어 있다. 또한, Ba Da Bing!의 산하 레이블 Grapefruit에서는 4 LP 라이브 앨범이 발매 될 예정이다. 2015년에는 스웨덴 레이블 I Dischi Del Barone에서 7인치 [Palisades]를 발매하기도 했다.

    2013년의 [Armed Courage]는 뻔뻔할 정도로 우아한, 세심하게 녹음 및 편집되어 연주에 포함된 온갖 더러운 음들을 단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두 뽑아내 담아낸 앨범이었다. [Armed Courage]는 성숙한 음악가들이자 오랜 친구들, 자신의 악기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으며 서로에 대해서도 25년간의 세월을 통해 깊이 이해하고 있는 사이인 3인조 밴드가 여전히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새롭게 꼬인 음악을 선보이는 것 같은 앨범이었다. 여전히 지독할 정도로 소음 투성이였지만, 동시에 스스로를 돌아보고 성찰하는 듯, 자제하는 듯, 서로와 청자에게 관대하게 다가가는 듯한 음악이었으며, 스스로를 "The AMM of Punk Rock"이라 부르는 밴드에게서 나온, 21세기 가장 솔직한 성명서였다.

    2017년은 The Dead C의 활동 30주년이 되는 해이며, 밴드는 그 동안 싱글과 컴필레이션 말고도 1년에 1장 꼴로 앨범을 만들어 왔다. 아오테이어러우어(역주: Aotearoa, 뉴질랜드의 마오리어 표현)의 거주민들 중 언더그라운드나 예술계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면 대부분이 The Dead C를 아예 들어보지도 못했을 것이며, 이 특정한 분야에 익숙치 않은 사람이라면, 들어보았다고 하더라도 이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작가 Nick Cain은 1993년 웰링턴에서 진행되었던 The Dead C Sonic Youth 오프닝 공연에서 불만에 가득 찬 관객과 나누었던 대화를 통해, 일반적인 사람들이 The Dead C에게 보여 온 반응에 대해 묘사하였다: "나는 그에게 The Dead C는 어땠냐고 물어보았다. '진짜 질 나쁜 녀석들이거나, 아니면 그냥 농담따먹기나 하는 놈들 같은데.'"

    https://youtu.be/OTL-Sf9cScQ
    "Pussyfooting"

    Brian Eno의 아주 널리 알려진 말 - 1982년 [Musician] 지와의 인터뷰에서, "...The Velvet Underground의 첫 번째 앨범은 5년간 3만장 정도만 팔렸다. 나는 그 3만장을 구매한 사람들 모두가 밴드를 시작했을 거라고 생각한다!"라고 했던 말 - 과 비슷한 느낌으로, Russell 또한 [undertherader.co.nz]와의 인터뷰에서 그 스스로 가지고 있는, 자부심이라기엔 상당히 겸손한 그 감정을 가지고, The Clean이나 The Dead C같은 밴드들이 뉴질랜드의 후대 밴드들에게 남겼던 작지만 아주 중요한 영향력에 대해 언급했었다: "우리에게 중요했던 것은 우리가 직접 사례들을 제작해내며 어떤 '영향'이라고 할 만한 것들을 계속해서 만들어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 우리가 계속해서 음악을 했던 이유들 중 가장 큰 이유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영향'이나 효과들을 만들어낼 수 없었다면, 아마 어느 시점에서 '이제 충분해'라고 생각하고 그만두었을 것이다. 우리가 무슨 음악을 새로 만들어내는지 궁금해하고 진심으로 들어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 특히 다른 예술가들이 우리의 음악에서 이런저런 것들을 주워서 자신들만의 것으로 재창조하고 있다는 것, 이 '미끼'들 때문에 The Dead C는 계속해서 활동하는 것이다."

    Russell은 리틀튼(Lyttelton)에서 계속 거주하고 있으며, CPIT School of Art and Design을 관리하기도 하고, [The Wire]에 종종 기고하기도 하며, 솔로 및 협업 앨범들도 꾸준히 발매하고 있다. 2012년에는 The Audio Foundation에서 발매한 [Erewhon Calling: Experimental Sound In New Zealand]의 편집을 담당하기도 했다. Yeats와 Morley는 계속해서 포트 찰머스에 거주중이다. Yeats는 최근 The Verlains의 [Hallelujah All the Way Home] 시기 곡들의 공연을 위한 초기 멤버 재결성에 참여해서 공연을 돌기도 했으며, Morley 및 Shayne Carter와 함께 트리오 Carter, Morley and Yeats를 결성하기도 했다. Morley는 Gate라는 이름의 솔로 프로젝트를 꾸준히 진행중이며, 공연과 앨범 발매도 계속해서 진행하고 있다. 또한, Otago Polytechnic의 Dunedin School of Art에서 회화 수업을 가르치고 있기도 하다.

    https://youtu.be/IApJVcjwJsU
    "Tr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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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bbie Yeats / Michael Morley / Bruce Russell

     

     

    2022/06/20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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