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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RAINBOMBS: FUCKING MESS, BURNING HELL, GENIUS AND BRUTALITY
    [...]/[BRAINBOMBS] 2023. 3. 27.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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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youtu.be/l1AD8RmYNCE

    I WAS WORKING ALL NIGHT: BRAINBOMBS Interview

    http://geniusandbrutality.com/brainbombs/interv/alzheimer2eng.html

    스웨덴에는 괜찮은 록 밴드가 언제나 부족했었다. 영미권 밴드들과 비교해 보아도 꿀리지 않을 만한 파워를 가진 밴드를 생각해 보자면, 고작 3개밖에는 생각나지 않는다: The Leather Nun, Union Carbide Productions, 그리고 Brainbombs. 하지만 첫 두 밴드들이 잔혹함으로 가득 찬 초심을 잃어버리고는 몇년간의 비참한 활동 끝에 해체한 것에 비해서, Brainbombs는 언제나 그들의 무겁고 더러운 "1곡에는 리프 1개만" 공식을 잘 유지해 왔다. 게다가 그들은 어떤 종류라도 유명세를 타는 것을 성공적으로 피해 왔으며, 이는 스웨덴에 팝을 넘어선 영역을 탐구하는 음악 평론가가 거의 없는 덕분이기도 했다.

    따라서, Brainbombs는 그 어떤 스웨덴 잡지에서도 긴 인터뷰를 해 본 적이 없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나는 1995년 1월 30일 스웨덴 Uppsala의 카페 Uroxen에서 Lanchy와 Jonas를 만났다. 그 둘은 아마도 Brainbombs 멤버들 중에서 가장 인터뷰하기 힘든 사람들이겠지만, Uppsala에 사는 사람은 그 둘 밖에는 없었다. 이 인터뷰는 1차적으로는 그 카페에서 녹음된 테잎에 기초하여 작성되었지만, Brainbombs와 어울려 다니면서 알게 된 것들도 중간중간에 써 두었다.

    스웨덴의 작은 도시 Hudiksvall에서, Brainbombs는 인더스트리얼 음악의 단조로움을 전통적인 록 악기들로 재창조해 보려는 시도로써 결성되었다. 주된 영감은 전설적인 Whitehouse에서 받았지만, James Chance Chrome 또한 밴드의 모델이 되었다. 오리지널 멤버는 Jonas(기타), Peter Råberg(보컬), Drajan(드럼), 그리고 Andreas 뭐시기(베이스)였다. 하지만, Andreas 뭐시기는 첫 번째 리허설 직후에 퇴출되었다. 이 시점에서 Peter를 제외한 모든 멤버는 17살이었으며 Peter만 23살이었다. 곡은 Jonas가 썼으며, 코드를 낭비하기 보다는 한 곡에 한 개의 코드만 사용하도록 스스로에게 제약을 걸었다.

    Jonas> 첫 번째 공연은 Västra Fritidsgården에서 했었다. 멤버는 나, Peter, Drajan이 전부였지. 1코드 곡들을 많이 연주했었다. 우리는 모두 의자에 앉아서 공연했었지. 그리고, 그 공연은 진짜 단조로움 그 자체였었다.

    가사는 Peter와 Jonas가 썼으며, 두명은 모두 충격적인 범죄 사건들에 큰 흥미를 가지고는 시작부터 가사를 학살과 성폭력에 대한 상세한 묘사로 채워나갔다. Peter의 4살 많은 친형 Dan 또한 인간 존재의 어두운 측면에 대한 큰 열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미 집에서 그런 주제들에 대한 시를 써 오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밴드에 참여하게 되었다. 1차적으로는 작사가로, 하지만 트럼펫도 연주하는 역할로.

    Jonas> Dan의 가사들은 Peter Sotos의 [Pure](끔찍한 사건 현장을 가해자의 입장에서 생생히 묘사한 것으로 악명 높은 잡지 시리즈)에서 상당한 영향을 받아 왔다. 우리는 Sotos에게 편지도 보냈었다. 작년즈음에 우리는 그로부터 답장을 받을 수 있었고, 우리들이 [Pure]에 영향을 받은 것을 Sotos가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우리에게 고맙다고, 그리고 당신들의 음악은 끝내준다고 써 주었다. 우리는 Sotos에게 라이너 노트를 써 줄 수 있겠느냐고 부탁하는 글을 보냈다...

    근데 Dan은 왜 트럼펫을 불게 된 것인가? 그가 연주는 할 수 있기는 한가?

    Jonas> 그는 집에 앉아서, 스스로가 트럼펫을 연주할 줄 안다고 상상했다. 그는 악보를 보고 장난질을 쳐 보았고, 그리고... 그는 어떤 소리가 나야 좋을지에 대해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갖고 있고, 그래서...

    Dan이 멤버에 들어 올 때쯤, 또 다른 기타리스트인 Lars-Anders "Lanchy" Orre도 밴드에 들어왔다. 그 당시, 그러니 1986년 무렵, 그는 이미 하드코어 밴드 Totalitär의 작곡 겸 멤버로 있었다. 그 때만 해도 Brainbombs는 아직 1개의 공연과 몇개의 곡 밖에는 한 것이 없었다. Lanchy의 주 역할은 곡의 재료가 될 새로운 리프를 가지고 오는 것이었다. 왜 베이스+기타를 쓰지 않고 기타 2대를 썼냐면 Lanchy나 Jonas나 베이스가 재미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곡이 베이스를 필요로 한다면, Lanchy는 대신에 기타의 조율을 낮추어 연주했다.

    2번째 공연은 1987-1988년의 새해맞이 파티였으며, Hudiksvall의 펑크 고전들이 만들어졌던 곳인 Forsa 스튜디오에서 진행되었다. 그들은 "Second Coming", 미발표된 "Hjärnbomb" (스웨덴어로 Brainbomb - 무려 스웨덴어 가사인 곡이다) 및 여러 즉흥곡들을 연주했다.

    Brainbombs는 무엇이든지에 대해 이렇다 할 만한 야망 따위는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따라서 밴드의 원동력이었던 Drajan이 Stockholm으로 거처를 옮기자 밴드의 활동은 더 드문드문해졌다. 그래도 그들은 창조력을 그러모아 몇 개의 컴필레이션 앨범에 곡을 수록할 정도로는 활동하였으며, 이 곡들은 엄청나게 드물게 있었던 그들의 리허설에서 만들어졌다.


    http://youtu.be/ExcS85jKWSs

    1989년, 그들은 마침내 싱글 [Jack the Ripper Lover]로 음반 데뷔를 한다. 이 싱글은 Drajan과 Jonas의 돈으로 제작되었으며, 전세계의 수상쩍은 사람들에게 유통되었다. 해외의 많은 사람들이 이 음반을 들으며 자연스러운 오르가즘을 느꼈지만, 스웨덴 국내의 반응은 다소 싸늘했으며, P3채널의 "Bommen" 방송에서 딱 한번 공중파를 탄 것이 전부였다.

    데뷔 싱글은 Hudiksvall에서 있었던 또 다른 공연에서 주목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그 공연에서 실제로 무대에 오른 멤버는 몇 안 되었다. Peter와 Jonas만이 테이프 반주에 맞춰서 공연을 했다. Dan은 공연에 참여할 예정이었지만, 무대에 오르기 직전 잔뜩 취해서 비상계단에 나가 담배를 피다가 계단 밑으로 굴러떨어졌다. 3층에서부터 떨어졌기에 그의 다리는 작살이 났으며 응급실로 실려가 버렸다. 그는 자기의 트럼펫을 바닥에 떨어뜨려 버렸는데, 그것은 몇일 후에 찌그러지고 더러워진채로 어떤 상점 진열대에 나타났다. Dan은 그것을 다시 가지려고 했지만 가게 주인장이 거절했다.

    몇 달 후 그들은 다시 Forsa 스튜디오에서 공연했고, 한동안 그것이 마지막 공연이었다. Drajan이 이사를 갔기에, Totalitär의 (그리고 나중에는 The Kristet Utseende의) Jesper가 드럼을 대신 연주했다.

    Jonas> 그 공연은 꽤나 구렸었다. 우리 표정이 너무 똥 씹은 표정인 바람에 사람들이 그래서 우리가 공연을 할 건지 말건지를 알 수가 없을 정도였다. Peter는 드럼 세트 밑에서 기어다녔었다.

    다음번으로 발매한 싱글은 [Anne Frank]로, 아무리 축소시켜 말하더라도 심히 논란거리가 될 만한 가사를 담은 곡이었다. Dan은 [안네의 일기]가 가짜라는 글을 읽고 난 후 그 가사를 썼다. 게다가 Dan은 뼛속까지 유대인을 싫어했기에 가사는 마음 속에서부터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녹음은, 첫 싱글과 마찬가지로, Forsa 스튜디오에서 진행되었다.

    Jonas> 우리는 16채널을 사용할 수 있었다. 믹싱 과정에서는 16채널을 쓸 수 있었지만, 테이프 레코더는 고작 8채널이었다.

    Lanchy> 근데도 우리는 그 적은 채널들을 전부는 쓰지 않았다.

    그 곡의 보컬은 어떻게 하게 된 것인가?

    Jonas> 당시 Peter는 너무 심한 숙취에 쩔어 있었고 그래서 도저히 노래를 부를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녹음 작업을 하루만 늦춘 다음에 진행할 수는 없었던 것인가?

    Jonas> 아니, 우리는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우리는 그냥 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Dan이 다음날 나타나 트럼펫 연주를 녹음해서 덧붙였다. 우리 작업은 늘 그런 식이다. 우리는 녹음을 하고, 그 장소가 어디었든지 간에, Dan이 그 곳에 나타나서는 트럼펫을 연주한다. 우리는 Dan에게 스카치 위스키 한 병을 주고, 그는 떠나간다. 그러고 나면 우리는 취향에 맞춰서 믹싱 작업을 한다...

    (웃음) 그래서 음반에 Dan의 연주가 그렇게 많이 수록되지는 않은 것이군?

    Jonas> 음, 우선 볼륨을 높여 보고, 잘 맞는다는 느낌이 들 때마다 넣긴 했는데...(더 큰 웃음)... 그러니까 말하자면, Dan은 무한한 자유를 가지고 있다.

    Peter 대신 Jonas가 노래를 불러야 했을 때, 그는 노래를 부르면서 기타를 동시에 연주할 수 없었다. Brainbombs는 기타 오버더빙 같은 것은 생각하지도 않았으므로, 녹음 엔지니어 Birger Thorburn이 대신 기타를 쳐 주었다.

    당시 Drajan의 이웃에는 Staffan이라고 불리는 남자가 살았는데, 그는 Big Brothel Communications라는 레이블을 운영하고 있었고, 따라서 [Anne Frank] 싱글은 그 곳에서 발매되었다. 그 싱글은 Jonas와 Lanchy가 가장 만족했던 결과물이었고, 필자가 본 3번의 공연 모두에서 싱글 수록곡 전부가 연주되었다.

    [Anne Frank] 싱글이 발매될 즈음, Jonas와 Lanchy는 Uppsala로 이사했다. Lanchy는 일자리에서 잘린 후 Hudiksvall보다 더 재밌을거라는 생각에 이사했으며, Jonas는 폴란드어, 체코어, 산스크리트어를 배우기 위해 옮겨갔다.


    http://youtu.be/yC8cp1DzqOE

    1991년에는 Brainbombs의 음악을 듣고 푹 빠진 2개의 레이블이 밴드에 접근하여 계약을 맺으려고 하였다. 노르웨이 Oslo 기반 Big Ball 레이블의 David는 [Anne Frank]를 자신이 들어 본 것들 중 최고라고 말하며 어떤 음반이든지간에 발매해 보고 싶다고 접근했다. California의 Black Jack 레이블 또한 음반을 내고 싶다는 연락을 해 왔다.

    Lanchy> Drajan은 전 세계 사람들과의 연줄을 갖고 있었다. 사람들이 우리 음악을 발매하고 싶어한다는 것은 이상하게 느껴졌다... 우리가 그들을 속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Brainbombs 에 진지하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정말로 존재한다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앨범에 있는 것을 연주하고, 우리 집 선반에 두는 것은 재밌었지만... Oslo에서 첫 공연을 했을 때, 사람들은 우리가 스스로의 위대함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Jonas> Peter는 앨범을 밴드 멤버들이 집에서 들을 용도로 총 10장만 제작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었다.

    1991년의 크리스마스 다음날 (Boxing Day), 밴드는 이미 Hudiksvall에 모여 있었기 때문에 녹음 작업을 했으며, 이것은 나중에 위의 두 외국 레이블에서 발매되게 된다.

    Jonas> 우리는 Hudiksvall 외곽의 작은 오두막에서 녹음했다. Norrbo 스튜디오에서 장비를 빌려서 했었다.

    준비된 상태로 녹음에 들어갔던 것인가?

    Jonas> 작곡이 끝난 몇 개의 곡을 가지고 있었다.

    Lanchy> 아마 한 3개정도 가지고 들어갔던 것 같다.

    Jonas> 우리는 서로 다른 곳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리허설도 안 했었다.

    Lanchy> 발매된 음반에 수록된 것들이 바로 우리의 리허설이다. 그때 "Burning Hell"의 리프를 미리 가지고 왔던 것 같다. 그리고 "Danny Was a Streetwhore"도...

    Jonas> 우리는 보통 리프 몇 개와 가사 무더기를 가지고 와서는 한 군데에 집어넣는다. "이건 여기에 가면 되겠는데..." 같은 느낌으로.

    Lanchy> 언제나 나를 깜짝 놀라게 한다. (웃음)

    Jonas> 녹음이 끝나면 보컬이 덧입혀지며, 그걸 해야 할 때 쯤이 되면 Peter가 가사를 곡에 맞게 개사한다.

    녹음을 전부 끝내는 데 까지 얼마나 걸리나?

    Jonas> 한 10시간 정도. 하룻밤이면 다 끝나고, 그 다음날에 믹싱을 한다.

    그러니까 그 시간 동안 8개의 곡을 전부 작곡해서 녹음한다는 것인가?

    Jonas> 그렇다. 가사는 이미 쓰여져서 오긴 하지만. 우리는 준비가 끝난 가사집들을 갖고 있다. 그 중에서 아직 발표되지 않은 것 하나를 뽑아서 곡에 사용한다. 이걸 다 하는데는 대충 1시간정도 걸린다.

    Lanchy> 우리는 원한다면 하루에 싱글 하나를 만들 수 있다. 언제나 첫 테이크만을 사용한다. 멤버 중 누군가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음 테이크를 얻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당신들 게을러 터졌나?

    Lanchy> 그렇다.

    Jonas> 그렇다. 아니면 뭐 하나?

    Lanchy> 뭔가를 더 넣는 것에는 아무 요점이 없다... 그렇게 하면 쓰레기만 나올 뿐이다.

    Jonas> 너무 깔끔한 사운드는 지루하기만 하다.

    적절한 스튜디오에서 적절한 엔지니어와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는가?

    Jonas> 없다. 우리는 무제한의 자유를 원한다.

    Lanchy> 그런 건 불필요하다고 느껴진다.


    http://youtu.be/2ERMqKqp0BI

    1992년 여름, Brainbombs는 그 어느 때보다도 주목을 받게 되지만 음악하고는 상관 없는 주제로 주목을 받은 것이었다. Dan이 영국 여자와 결혼해서 함께 영국으로 가려고 했는데, 영국 출입국 관리국에서 Dan의 입국을 거절한 것이다.

    Jonas> 내 생각에 Dan은 분명히 만취한 상태였던 것 같다. 관리국 직원들은 그의 소지품 속에서 Brainbombs가사를 보았고, [Pure] 잡지를 보았으며, 그의 입국을 거부했다. 그는 적당한 시간 동안 주정뱅이용 유치장에 처박혀 있었으며, 그러고 나서 강제로 되돌아 오게 되었다. 그리고 6달동안 Dan은 VISA를 받고 입국허가를 받기 위해 법적인 절차들과 씨름했다. 그러고나서 그는 6달간 영국에서 살다가 이혼했고 Hudiksvall로 되돌아왔다.

    Dan이 Cambridge에 가 있는 동안, 나머지 멤버들은 Hudiksvall 밖에서의 첫 공연을 가졌다. 노르웨이인들은 Brainbombs에게 공연을 끈질기게 요청해 왔지만, 다른 멤버들은 Råberg 형제들(Peter & Dan)을 외국에서 데리고 다니기는 아주 힘들 것이라고 생각하여 머뭇거렸었다. 하지만 둘 중 한명이 먼 외국에 나가 있는 때가 되자, 그들은 Oslo의 Rockall에서 두 번의 공연을 하게 되었다. 공연을 할 때 Peter는 자신의 형을 만나러 떠났고 Jonas가 보컬을 대신 하였으며, 기타는 Birger가 다시 한 번 대신 연주해 주었다. 이 공연들 중 첫번째는 나중에 vinyl로 발매되었다.

    Jonas> Rockall에 있던 남자가 우리 공연을 녹음했고 나중에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Big Ball 레이블의 David는 그 녹음이 웃기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발매하고 싶어했다.

    왜 공연 전체를 발매하지 않고 일부만 했었나?

    Jonas> 음, David는 녹음 중 일부의 소리가 뭉개졌다고 생각했다. 발매된 것들은 괜찮았지만.

    당신들 그 녹음에서는 엄청나게 빠르게 연주하던데.

    Jonas> 뭐 그 때는 꽤 빠르게 연주했었다. 거의 펑크록처럼 했었지.

    Lanchy> Drajan이 긴장해서 마구 빨라졌었다.

    Jonas> 공연이 한 20-25분만에 끝났던 것 같다.

    그 다음 주 그들은 스웨덴 Lund의 Smålands Nation에서 공연했다. 그것은 두번째로 모든 멤버가 다 모여서 한 공연이었으며, 내가 처음으로 본 공연이기도 했다. Brainbombs가 무대에서 보여준 모습, 신발 끝만 바라보고 깊이 몰두한 기타리스트와 드러머, 연주되는 곡들의 격분한 단조로움은 정말 엄청났었다. Dan은 투어 버스를 타고 오는 도중에 스카치 위스키 한병을 다 비웠고, 첫 곡이 끝나고 난 뒤에 필름이 제대로 끊겼다. 무대에서 그는 트럼펫을 한 손에 들고는 똑바로 서서 마이크를 잡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Peter는 공연 내내 꼼짝도 않고 서 있었으며, 유일하게 관객을 바라보는 멤버였다. 선곡은 완벽했으며, 도발적인 "Jack The Ripper Lover"에서 시작하여 무자비한 "No Place"로 끝났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공연에 그다지 만족하지는 않았다.

    Jonas> 아, 그 공연은 그냥 개처럼 취해서 한 공연이었지. 음향도 개판이었다. 공연장의 사운드 엔지니어는 너무 프로페셔널했던 Henrik Venant이었다. 그가 모든 믹싱을 했다.

    Lanchy> Henrik Venant은 그 전날 덴마크 Copenhagen에서 Metallica의 공연을 보고는 숙취에 쩔어 있는 상태였다.

    Jonas> 우리 음악을 무슨 팝 음악이라도 되는 것 마냥 믹싱했었다...

    누군가가 당신들의 공연 포스터를 찢어버리기도 했었는데...

    Jonas> 아, 여성단체에서 그 포스터가 비하적이라고 생각했었다. Drajan이 그 장면이 찍힌 사진이 [Veckans Brott(주간 범죄)] 잡지에 실린 것을 보았다.

    Uppsala로 돌아오자, 멤버들이 마침 다 한 자리에 모여 있고 녹음 장비들을 빌릴 수도 있었기에, 그들은 2번째 정규 앨범이 될 것들을 녹음하였다. [Genius and Brutality, Taste and Power]는 밴드가 아주아주 가끔 사용하던 Uppsala 근처 Gottsunda의 낡아빠진 근교의 리허설 룸에서 녹음되었다. 돌이켜 보자면 밴드는 프로덕션이 균일하지 않은 그 앨범을 그다지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Jonas> "Fuckmurder", "The Whore"를 비롯한 몇몇 곡들은 아주 좋았다. 하지만 3-4개의 곡들은 버려야 할 정도였다. "Graveyard Kitchen"은 최악이었다.

    Lanchy> Drajan의 믹싱은 정말 쓰레기였다. 가사를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http://youtu.be/tfO0gPiz9PE

    Oslo 공연의 성공에 힘입어, Brainbombs 는 스웨덴 Hultsfred 페스티벌과 같은 시기에 노르웨이에서 열리는 페스티벌의 초청장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세관원이 그들의 차 속에서 2장의 LSD 압지를 발견하게 되면서 일은 안 좋게 끝나버렸다.

    Jonas> 어, 그것은 내 것이었는데, 차에서 빼 놓는다는 것을 깜빡했었다. 노르웨이 세관원들은 우리를 지나가지 못하게 막아버렸고 그래서 우리는 Karlstad(스웨덴 도시)로 대신 빠져서 술을 진탕 마셨다.

    Lanchy> 우리 모두는 비행사용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기 때문에 아마 완전 병신들로 보였을 것이다.

    Jonas> 2개의 쓰레기같은 포드 차가 줄을 지어서...

    세관원들이 모든 차에 대해서 검문을 한 것인가, 아니면 당신들이 너무 수상쩍게 생겨서 당신들만 검문한 것인가?

    Lanchy> 그들은 모든 차를 검사하고 있었다.

    Jonas> 그때 무슨 사탄숭배자가 살인을 했었다. "The Count"... 그들은 우리 가사에 대해서도 물어봤었다. 그리고 우리가 사탄숭배자들인지도 물어봤었다. 우리 차를 완전 뒤엎어 버렸다. 근데 사실 꽤나 재미있었다.

    Lanchy> 스트립 쇼도 있었다.

    Jonas> Karlstad에서 우리는 멋진 시간을 보냈다. 앉아서 술을 잔뜩 마시고는 마을을 어슬렁거렸다. Peter는 강에 빠졌었다.

    Lanchy> 그러더니 강바닥을 질질 끌고다녔지.

    노르웨이 사람들은 뭐라고 했는가? 열받았었나?

    Jonas> 우리는 그 날 저녁이 될 때까지, 그러니까 우리가 무대에 올라가야만 했던 그 시간까지 그들에게 전화를 할 기회가 없었다. 그들은 말했다: "멋진데!"

    그러면 그들이 관객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말했던 것인가?

    Jonas> 아마 그런 것 같은데.

    신화의 한 부분이 되겠군. 법적인 문제는 없었는가?

    Jonas> 내 변호사 친구가 그들에게 편지를 썼는데, 그들은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1994년 5월의 노르웨이 Oslo 투어는 제대로 진행되었다. 투어는 첫 CD의 발매와 동시에 진행되도록 예정되었지만, Black Jack 레이블의 나태한 직원들 덕분에 앨범 발매는 2-3주정도 늦춰졌다. 필자는 투어 버스에서 밴드와 함께 다닐 수 있는 특권을 누렸었다. 첫 공연은 Cosmopolite에서 있었고, 2개의 노르웨이 밴드의 서포트를 받았다. Oslo에서 정말 중요한 공연장은 Rockall 이었으나, 거기에서는 내가 잘 모르는 웬 미국 펑크 밴드의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 미국 펑크 밴드 공연은 많은 관객을 동원했고, Brainbombs공연의 관객은 54명 뿐이었다. 하지만 그 54명은 완전 Brainbombs골수팬들이었다. 몇몇 관객들은 고전인 "Burning Hell"이나 "Danny Was a Street-Whore"가 나올 때 무릎을 꿇으면서 밴드에 대한 완전한 복종을 표현하기까지도 했다. 하지만 필자는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웨덴 Lund에서의 공연보다 음향은 훨씬 좋았으며, 열성적인 관객들이 가득한 분위기도 좋았지만, Brainbombs 가 즐겁게 연주한다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Gonna masturbate you with my knife / to the end of your misery life" 같은 가사나 "I went into her tits with a screwdriver" 같은 가사를 미소지으면서 부른다는 것은 임팩트를 확 떨어뜨리는 일이었고, 그냥 야단법석을 떠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 마냥 가벼운 일로 만들어 버렸다. 게다가 필자가 좋아하는 많은 고전 레파토리들이 없어졌고 대신 새로운 곡들이 연주되었다.

    Dan의 필름은 무대를 떠나자마자 또 끊겼고, 예전에 사창가였던 곳에서 진행된 애프터-파티에 도착할 무렵 그는 그냥 뻗어버렸다.

    다음날 집에 돌아가기 위해 Cosmopolite를 다시 찾았을 때, 밴드는 Rockall에서 그날 저녁 공연을 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막 받았었다. 나는 그 날 공연이 시작하기 전까지 Råberg 형제(Dan / Peter)를 돌보게 되었고, 그들은 아주 심각하게 불쾌한 놈들이었다. Peter는 밤 동안 한숨도 자지 않았고, "너무 피곤해, 담배라도 피워야겠어"라고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Dan은 아직도 취해있었으며, 해장술로 Ringnes 맥주를 마셔댔고, 지나가는 행인들한테 욕지거리를 하며 위협을 가했고, 계속해서 "Fuck tight bitch ass!"라고 외쳤는데, 이는 그가 최근에 쓴 가사들 중 스스로가 가장 마음에 들어하는 대목이었다. 나는 왜 Brainbombs가 투어를 돌고 싶어하지 않는지를 천천히 깨달아갔다. 결국 Dan은 한 노르웨이인과 사라져 버렸으며, 공연이 시작되기 직전에서야 나타났다. Peter는 Rockall 근처의 공원에서 겨우 조금 잤다. Pre-/After-party는 투어 버스 안에서 진행되었으며, 맥주와 흥분제를 잔뜩 사용했다. Rockall 공연에는 관객이 75명정도 왔는데, 홍보를 거의 못 했던 것에 비하면 꽤나 괜찮은 숫자였다. 모든 것은 전날 공연과 비슷했으며 단지 Drajan이 수염을 밀어버린 것만 달랐다.


    http://youtu.be/2baLxiSSudw

    스웨덴 신문 [Dagens Nyheter]에서 [Genius and Brutality, Taste and Power]가 깜짝 놀랄 정도로 좋은 리뷰를 받고 난 후, Brainbombs의 다음 단계는 3번째 앨범을 만드는 것이었다.

    Jonas> 그렇다, 우리는 다음 앨범을 끝냈다. 제목은 [Obey]가 될 거이다. 모든 것이 녹음되어서 대기중이다. Black Jack 레이블은 아마도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해서, 발매에는 대략 1년이 걸릴 것이다. 우리는 다른 앨범을 또 녹음해서 보냄으로써 Black Jack 직원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려는 생각을 하고 있다. [Obey]는 지금까지 우리들의 앨범 중 최고의 작품이며, 믹싱은 잘 끝났고, 가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명확하다.

    지난 가을에 아직 여기서 살고 있던 Peter에게 물어봤는데, 그는 [Obey]의 가사를 부르는 것이 꽤나 당혹스러웠다고 말했다.

    Lanchy> 맞다. 가사들이 상당히 난폭하지...(웃음)

    이전에는 난폭하지 않았는가?

    Lanchy> 뭐, 그렇긴 한데, 이번에는 위태로운 정도다. 듣고 나면 계속 생각이 날 것이다.

    Jonas> 이번에는 아이들과, 다른 것들에 대해서 다룬다...

    누가 작사했는가?

    Jonas> Dan이다. 나 또한 몇 개의 역겨운 구절들을 썼다.

    언제 녹음했는가?

    Lanchy> 10월인가에 녹음했다. 10월 2일에. 그 전날 Brainbombs는 Solvalla에서 경마를 하고 놀았었다. Drajan 빼고는 전부 돈을 걸었다.

    예전 곡들이 수록되지는 않았는가?

    Jonas> 않았다. Stockholm에 있는 Staffan이 아마도 싱글 모음집을 발매할 것 같다. [Obey]에 예전 곡들도 집어넣을까 하긴 했는데, 신곡을 다 채우고 보니 40분정도의 길이가 나왔고 그만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7'' 스플릿도 발매할 계획이 있는데, 아직 말할 만한 것은 없다.

    Lanchy> KC and the Sunshine Band.

    Jonas> 우리는 첫 앨범을 녹음할 때 한번 연주했던 "That's The Way I Like It"을 녹음할 것이다. Big Ball 레이블의 David가 그 곡을 발매해야 한다고 계속 주장했다. 그는 그게 정말 괜찮게 느껴지나 보다.

    커버곡 싱글 시리즈 King Kong 의 에디터들은 Chrome 의 "Turn Around"를 하는 게 더 낫겠다며 그 곡의 발매를 거절했다. 스플릿에는 [Obey]의 타이틀 곡과 David의 밴드 Anal Babes의 2곡도 담길 것이다.

    1994-1995년 새해 휴일에 Brainbombs는 Hudiksvall에서의 파티에서 공연을 했다. Råberg 형제는 인디언 복장을 하고 나타났으며 Drajan을 제외한 모드는 완전히 취했고 그들이 "Burning Hell"을 열심히 갈아버리자 관객들은 병을 던져대기 시작했었다. Råberg 형제는 주저 없이 맥주잔과 병과 기타등등을 던지며 맞대응했고 난장판이 벌어졌다. 다행히도 두 번째 곡을 연주하는 도중 퓨즈가 나가서 누군가 심각하게 다치기 전에 공연이 끝날 수 있었다. GG Allin(http://en.wikipedia.org/wiki/GG_Allin)의 깃발이 높이 펄럭였다.

    Lanchy> 정말 멋진 공연이었는데.


    http://youtu.be/ZJy69uHrIjQ

    이 기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Brainbombs는 라이브를 거의 안 했다. 이는 그들이 스웨덴 곳곳에 퍼져서 살고 있기도 하고, 공연을 딱히 하고 싶어하지 않기도 해서 그렇다. 그들에게 공연을 계속 간청할 수 있었던 몇몇 콘서트들만이 Brainbombs의 공연을 유치할 수 있었다. 또한 그들은 공연을 통해 돈을 벌고 싶기도 하기에, 그들이 공연 제의를 수락할 때는 고민을 거듭하게 되는 것이다.

    Lanchy> 돈에 신경을 안 써도 되는 시기는 이제 지나버렸다.

    1995년에 계획된 모든 공연은 그래서 취소되었다. 스웨덴 Gothenburg, 덴마크 Copenhagen과 Aalborg에서, 그리고 스웨덴 Gävle에서 Unsane의 오프닝 무대를 서는 공연들이 계획되었었다. 하지만 공연을 한다는 것은 Jonas나 Lanchy가 딱히 원하는 것은 아니다.

    Jonas> 3번정도 공연을 했으면 충분한 것이다. 이젠 기타 줄도 없다.

    Lanchy> 향수병도 쉽게 생긴다.

    Jonas> 조용함과 평화로움을 갈망하게 된다.

    Stockholm이나 Uppsala에서는 왜 공연하지 않는가?

    Jonas> 음, 거기서 하면 편할 것이다. 그냥 기차역에서 나와서, 술집에 가고, 공연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고.

    Lanchy> Rackis 같은 근교에서 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가까운 곳에는 우리가 공연을 하고 싶거나 우리에게 공연을 허락하는 공연장이 없다.

    당신들은 리허설도 안 하는데, 공연을 하기 전에는 준비를 어느 정도나 하는가?

    Lanchy> Oslo 공연 전에는 세트를 한 번 연주해 보았었다.

    Jonas> 셋리스트 전체를. 딱히 복잡하지는 않았다.

    Lanchy> 뭐 망쳐버려도 딱히 문제될 것은 없다.

    Brainbombs에 있어 놀라운 것은 멤버들이 하는 다른 활동들도 아주 많다는 것이다. Lanchy는 여전히 Toatlitär의 멤버이고, experimental/industrial 듀오인 Engürdetz의 멤버이기도 하며, Jonas와 함께 Neil Young 트리뷰트 밴드를 하기도 했다. Drajan은 비록 지금은 해체했지만 개러지 록 밴드 Browneye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Drajan, Lanchy, Birger 는 The Stooges 리프를 훔쳐 연주한 프로젝트인 The Teenage Graves를 1990년 무렵에 하기도 했다. Brainbombs투어에서 투어 버스의 배경음악은 하드코어 펑크, 하드코어 테크노, 그리고 Kjell Alinge의 라디오 토크쇼였다. Jonas의 음반 콜렉션은 주로 옛날의 사이키델릭 록, 많은 고전들, 그리고 수많은 Frank Zappa 음반들로 구성되어 있다. Lanchy의 영웅은 아직도 Elvis Presley이며, 많은 팝 음반을 산다. 그들은 주로 TV를 보거나, 맥주를 마시거나, 놀랍게도 크로켓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밴드를 시작한 이후로 뭔가 발전했다는 느낌이 있는가?

    Lanchy> 물론이다. 우리는 좀 더 많은 코드를 쓰고 있다. 하지만, 단조로움은 여전히 있고, 그것이야말로 밴드의 핵심이다. 컨셉 말이다.

    그렇다면, 이 활동을 계속할 것인가? 같은 것을 계속해서 한다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지지는 않는가?

    Lanchy> 뭐, Ramones 같은 밴드들을 보자면, 그들은 25년째 같은 음악을 반복하고 있다...

    그래도 당신들에 대해서 말하자면 같은 것을 계속한다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Lanchy> 뭐, 좀 지루해 질 수는 있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우리 앨범을 발매하고 싶어하기만 한다면야...

    Jonas> 여전히 재미있게만 느껴진다면야, 그리고 우리에게 새로운 리프가 있기만 한다면야...


    http://youtu.be/YhHepkb5hB4

     

     

     

    2015/04/12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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