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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oredoms
    [...]/[Boredoms] 2023. 3. 27. 13:15


    https://youtu.be/8MSNfpdwXJw
    "Hey Bore H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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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thewire.co.uk/issues/223


    DRILLED TO INFINITY
    15년이 넘는 기간동안, 오사카의 Boredoms는 유혈낭자한 펑크-아방가르드 노이즈 그룹에서 시작하여 가히 만트라라고 칭할 만한 퍼커션의 홍수를 물 흐르듯 흉폭하게 때려붓는 밴드가 되었다. 런던에서, 지루함의 불량배들 Yamataka Eye와 Yoshimi P-We가 Boredoms의 의미에 대해 설명해 주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이들의 뒤틀린 연대기, 전축의로써의 그룹, 수중 녹음을 위한 팁, 규율을 통해 혼돈의 에너지를 쏟아내는 방법에 대해서.

    글: Edwin Pouncey
    옮김: Alan Cummings


    "닥쳐!" 런던의 Royal Festival Hall에서, 무대 위에 놓인 컨트롤 패널 뒷편에서, Yamataka Eye는 소리질렀다. 그는 DJ용 CD 플레이어를 머리 위로 치켜든 채로 흔들어댔으며, 열병에 걸린 듯한 비트는 그의 주변부를 맴돌며 충돌하고, 폭발하고 있었다. ""닥쳐!"" 그는 반복해서 소리지르고 있었으며, 드레드록(dreadlock) 머리를 미쳐버린 헬리콥터의 날개처럼 휘둘러대고 있었고, 이 날개는 세 명의 드러머에게, 최근 Boredoms의 멤버를 구성하고 있는 그들에게 향하고 있었다. 팽팽한 원의 반대편에서 서로를 마주보고 있는 Yoshimi P-We (전 Yokota), ATR, Yojiro는 4/4박자로 그들의 드럼 키트를 두들겨대고 있었다, 조금도 위축되지 않는 확고함과 수술용 메스처럼 날카로운 정밀함을 가지고. ""닥쳐!" "닥쳐!" "닥쳐!"" Eye는 계속해서 이어나갔고, 드럼 연주와 왜곡된 전자음향의 혼란이 휘몰아침에 따라 그 목소리를 더욱 높여나가고 있었다. 아무 것도 분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다가 당신은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Eye가 어떤 명령을 내지르고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반복적인 목소리 구호를 만들어내어 이 4인조 밴드의 연주를 보다 더 높은 의식의 수준으로 올려보내려고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들이 선보이고 있는 코도(鼓童) 느낌의 리듬과 디지털 음향의 충돌이 뒤얽히는 소용돌이는 아연실색한 관객들을 관객석에서 빨아들여 무대 바로 앞 비공식적인 모쉬핏(moshpit)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연주가 끝날 무렵, 공연장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가 된 것 마냥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갈채를 보냈으며, Boredoms 멤버들은 줄지어 무대를 떠나갔다. 그 누구도 이 놀라운 소음이 끝나거나 조용해지기를 바라지 않는 것 같았다. 공연장을 떠나지 않기로 결정한 관객들은 이 상승하는 물결을 영원히 타고 올라가기만을 바라고 있는 것 같았다.

    이 공연이 Boredoms가 관객들을 무한함으로 쓸어내 버린 첫 번째 시도는 아니었다. 한 예로, [Super Roots 5] 앨범에서 Boredoms는 청자를 끝없이 상승하는 기타 연주 속으로 초대하기도 했었던 것이다. 그리고, 애초에 밴드의 시작부터, 이들은 야만적인 컷-업, 콜라주, 음악적 충돌을 통해 현재에 매여 있는 직선적인 시간의 흐름을 난도질해 왔었고, 청자를 끝없는 추락으로, Boredoms의 노이즈 무저갱으로 떨어뜨리는 밴드였던 것이다. 지난 20년의 '변형의 시간' 동안 새로운 현현에 맞추어 그 형태를 변화시켜 나가면서도 Boredoms에게 있어 단 하나의, 계속해서 유지되어 있었던 특성은, 이들이 언제나 시간의 흐름을 제 멋대로 건드려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리는 밴드라는 사실이었다. Boredoms 특유의 '시간의 붕괴'는 1986년 결성 이후로 거의 일본 내에서만 발전해 왔었던 이들의 커리어에 대한 서구권 사람들의 무지를 통해 더 기다랗게 늘어지기만 했다. Boredoms의 앨범들 중 일부만이 해외에서 발매되었으며, 이들의 변덕스러운, 끝없는 변화를 전부 따라잡기 위해서는 이들의 웹사이트를 계속해서 확인하며 행보 하나하나를 전부 놓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면 불가능할 일이었던 것이다. 그런 매니아가 아닌 사람들에게 혼란스러움은 당연한 감정이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Boredoms는 장난기 어린 혼돈을 마음껏 길러내고 퍼뜨리는 밴드였다. 반면, 이번 Royal Festival Hall에서 선보인 밴드의 새로운 현현과 즐겁고 신나는 음악은 엄청나게 빡빡하고 정밀한 드럼 연주와 함께 스스로에게 부여한 강력한 규율로 보다 더 날카롭고 예리한 음향을 선보이는 음악이었다.

    일본 남부의 항구 도시이자 Masonna  Hijokaidan같은 밴드들과 함께 깊숙히 뿌리를 내린 노이즈 씬의 고향, 오사카 출신의 Boredoms는 1980년 중후반, Yamataka Eye의 거친 EP [Anal By Anal]과 Boredoms의 첫 앨범 [Osorezan No Stooges Kyo]과 함께 세상에 처음으로 등장했던 밴드였다 (이 두 앨범은 나중에 [Onanie Bomb Meets The Sex Pistols]으로 묶여서 재발매된다). 이어지는 앨범 [Soul Discharge 99]는 Butthole Surfers의 베이시스트였던 Kramer의 레이블 Shimmy Disc를 통해 발매되면서 밴드의 명성을 더 높이게 되었지만, 언더그라운드 내 Boredoms의 컬트적인 위치는 WEA Japan과 무제한적인 자유를 보장하는 계약을 통해 본격적으로 공고해지게 되었다. 지금처럼, 그 당시에도 그러한 무제한적인 자유는 Boredoms로 하여금 미국의 동시대 음악가들, John Zorn이나 Sonic Youth같은 음악가들과의 자유로운 협업을 가능케 해 주었고, 이러한 음악가들은 Boredoms와 함께 다양한 프로젝트와 협업을 진행하며 음악을 더 높은 차원으로 상승시키는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Boredoms에게는 외부로부터의 압력 같은 건 필요하지 않았다. 1990년대 초반, 이들은 '에티켓'이라는 것을 완전히 버려버리고는 록 음악을 전혀 자연스럽지 않은, 하지만 동시에 아주 매력적인 방식으로 선보였다. [Wow 2](John Zorn의 감독 아래 진행된 라이브 음반), [Pop Tatari](1992), [Chocolate Synthesizer](1995). 이 앨범들은 말 그대로 미쳐버린, 고삐가 풀린 사이키델리아 - 힙합 - 하드코어 펑크 - 외계의 프리 재즈의 융합을 선보였던 앨범들로, Yamataka Eye, 드러머이자 보컬 Toyohito Yoshikawa, 기타리스트 Seiichi Yamamoto, 베이시스트 Hira와 역동적인 드럼 듀오 ATR / Yoshimi P-We (나중에는 트럼펫도 불게 된다)로 구성된 밴드가 만들어 낸 앨범들이었다. 이 앨범들은 찾아서 들어볼 수 있었던 행운아들에게 엄청난 인상을 남겨 준 앨범들이었지만, 막상 Yamataka Eye나 Yoshimi P-We는 이 시기의 앨범들에 대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Chocolate Synthesizer]를 들어 보면 나나 Yoshimi나 우리가 그 때 어떤 음악을 했었는지 완전히 까먹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런던에서의 영광스러웠던 공연 다음 날, Yamataka Eye는 졸린 듯한 어조로 말했다. "지금 들어 보면 완전 충격적이다, 놀라운 음악들이다. 아니 우리가 정말로 이걸 했었다고? 어떻게? 우리가 이런 음악을 연주했었다고? 흥미롭기는 하지만, 또 굉장히 혼란스럽기도 하다, 어떻게 우리가 이런 음악을 실제로 할 수 있었는지."

    https://youtu.be/i_VS2BQjYIc
    "Acid Police"

    YOUNG, LOUD AND SNOTTY

    Boredoms가 어떻게 돌연변이 펑크 디스코에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타악기 연주 음향의 폭풍으로 발전해 나아갔는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1980년대 일본에서 가장 악명 높았던 노이즈/공연 그룹들 중 하나였던 Hanatarashi에서 가장 중요한 촉매제로서 활동했던 Yamataka Eye의 어두운 과거를 돌아봐야 할 것이다. Yamataka Eye는 원래 초기 스피드코어 밴드 Jakotsubaba(뱀의 뼈의 마녀라는 의미)에서 거친, 조악한 기타 속주로 음악 세계에 발을 내딛었던 사람이었으며, 이 시절 그는 대부분의 공연을 드럼 세트로 뛰어들어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리는 장면으로 끝내던 사람이었다. 이러한 Gustav Metzger 스타일의 파괴주의는 Hanatarashi, 일본어로 "코찔찔이 같다"는 의미를 가진 이름의 밴드로 넘어가게 되었다. 당시 밴드의 이름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Yamataka Eye는 이렇게 답했었다: "갑자기 누군가가 내 면상을 갈겨버릴 수 있다. 그렇게 얻어맞는다는 생각을 해 보니, 코에서 이런저런 것들이 줄줄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집에 도착할 무렵이 되면 코가 완전 막혀버릴 것이다. 콧물로 떡져서 안쪽이 완전히 가득 차 있는 거다."

    샌프란시스코의 퍼포먼스 그룹 Survival Research Laboratories (자동차 부품들, 퇴역한 군사무기 부품들, 죽은 동물의 사체들을 가지고 전사 로봇을 만들었던 그룹) 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그리고 자기파괴적 성향으로 가득했던 하드코어 펑크 아이콘 GG Allin으로부터도 큰 감명을 받아, Hanatarashi(마지막 'i'는 나중에 밴드 이름에서 빠지게 된다)는 지구상에서 가장 극단적인 공연을 선보이기 위한 밴드가 되었다. 이들이 발표했었던 조롱 어린 성명서는 '그 곳'에 도달했을 때 죽여버릴 사람들을 비웃는 내용이었다: "노이즈 예술가들을 전부 죽여버려라! 우리는 WHITEHOUSE를 싫어한다. NWW 같은 건 꺼져라. C93는 병신새끼들이다. PTV는 쓰레기다. COIL 좆이나 까라. 우리는 디스코를 좋아한다."(역주: NWW = Nurse With Wound, C93 = Current 93, PTV = Psychic TV) Yamatsuka Eye(Yamataka Eye의 원래 이름으로, 그는 수 번의 이름 변경 끝에 Yamataka가 되었다)가 보컬, "보디가드" Taketani가 타악기로, Hanatarashi가 여러 번 시도했었던 "전쟁의 시각적 경험"의 창조는 이제는 전설이 되어 내려오고 있다. 가장 악명 높았던 것은 Yamataka Eye가 작은 굴착기를 공연장으로 가지고 들어와 공연 중에 무대를 말 그대로 완전히 박살내버리며 돌아다녔던 일화다. 이 공연은 그가 실수로 굴착기로 벽에 구멍을 뚫어버리고, 연결 부위를 원형 전기톱으로 잘라버린 후, 이 난장판에 휘발유를 들이부어대면서 완전한 혼란 속으로 빠져버리게 되었었다.

    또 다른 공연에선, Yamataka Eye가 무대에 오르기 직전 골목길에서 찾아낸 고양이 사체에다가 전기톱을 가져다 잘라대기도 했었다. Hanatarashi의 공연에 대한 리뷰들은 일반적인 감상평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전쟁 한복판에서 보내오는 특보 같았다: "공연이 시작하고 10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공연장은 박살난 유리조각들로 가득 차 있었다." 충격에 빠진 한 리뷰어의 표현이었다. "관객들을 보호하기 위해 세워진 펜스가 가장 처음으로 파괴되었으며, 멤버들은 부서진 펜스 조각들을 관객들에게 던져 댔다. 관객들은 이 조각들을 피해 마치 피난민처럼 구석으로 몰려들었다. 부서진 수도관에서 물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가스 버너에서는 불꽃이 이글거렸다. 온갖 금속/유리/콘크리트 조각들이 벽에 던져졌으며, 이 광경을 보다가 상처까지 입게 되었을 정도였다. 소화기는 박살났다. 박수 같은 건 없었다, 아니 사실, 관객들은 어떤 소리도 내지 못했다. 화재 경보가 꺼졌다. 공연장은 연기로 가득 차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벽과 천장에는 작은, 죽은 동물의 고기 조각들이 말라붙어 있었다."

    현재까지도 Yamataka Eye는 폭력적이고 예측불가능하며 위험한 인물이라는 명성이 붙어 있는 사람이다. "누가 봐도 Yamatsuka는 미친 사람이다," 앞의 리뷰어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Yamataka Eye는 아주 겸손한 사람이었다. "나는 카리스마 같은 거와는 아주 거리가 먼 사람이다." 1985년 Sakevi Yokoyama와의 인터뷰에서의 Yamataka Eye의 말이었다. "Hanatarashi는 '보기'나 '듣기'보다는 '읽기'에 더 관심이 많은 밴드다." 그렇다 하더라도, 말이 안 될 정도로 폭력적인 Hanatarashi 초기 앨범들을 들어보자면, 이들이 현재 4인조의 Boredoms가 뿜어대고 있는 에너지와 같은 에너지로 이미 활동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명백해 보인다. 그저 지금의 Yamataka Eye는 그 에너지를 초창기의 파괴적인 충동보다는 보다 더 높은 차원의, 보다 더 영적인 소통으로 배출하고 있을 뿐. 더 이상 공포와 충격에 이끌리지 않게 된 Yamataka Eye가 부숴뜨리고 싶은 유일한 것은 관객과 공연자 사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장벽 뿐이었다.

    https://youtu.be/KYFtkVFmD2A
    "Born To Anal"

    BORN TO ANAL

    Hanatarashi가 스스로를 불태워 없애버리고 있을 무렵, Yamataka Eye는 록 음악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는 짧은 시간 존재했던 밴드 Makki & Combi And Zombi의 드러머 역할을 맡았고, 여기서 향후 Boredoms 멤버가 될 Seniichi Yamamoto와 Hira를 만나게 되었다. 당시 Seniichi Yamamoto는 Yamataka Eye의 가능성을 바로 알아보고 받아들이지는 않았었다. Makki & Combi And Zombi의 보컬 Makki Sasara가 그를 소개하기 직전, Seniichi Yamamoto의 반응은 이러했었다: "그 Hanatarashi 멤버? 무서운 놈이잖아! 난 싫어!" 하지만 이 둘은 금세 음악적으로 끈끈한 연결고리를 가진 동료 사이가 되었다. Yamataka Eye는 곧 밴드를 떠나 Boredoms의 기초가 될 여러가지를 시작하게 되었다. 침실에 마련해 둔 조악한 스튜디오에 숨은 채로 그는 멀티 트랙 녹음기를 가지고 여러가지 실험을 하고는 카세트 테이프에 담아 [Boretronix]라는 이름으로 직접 만든 레이블들, ? Ltd, Mega Scum Groove Inc, Condome Cassex들을 통해 제작/발매하였다. 이 '침실 스튜디오' 시기의 음악들 중 처음으로 바이닐 발매가 이루어졌던 것은 [Anal By Anal] EP (aka The Anal Trilogy) 였으며, 이 EP는 일본의 독립 레이블 Transrecords에서 발매되었다. 한 무더운 여름날 단 하루동안 작곡, 녹음, 믹싱, 마스터링을 전부 완료한 앨범 [Anal By Anal]은 아주 단순한 기타 연주와 '발견한' 드럼 교육 테이프 위로 Yamataka Eye가 짖어대다가 꿀떡거리다가 하는, 그러다가 클라이맥스에서 폐 속의 공기를 전부 내뱉으며 "GO!"라는 외침으로 마무리하는 음악을 담은 EP였다. "Boredoms는 침실 작업 프로젝트로 시작했던 밴드였다. 멀티 트랙 녹음기 하나로 이런저런 것들을 시도해 보던 밴드." [Anal By Anal]의 제작과정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Yamataka Eye는 회고하며 말했다. "[Anal By Anal]은 기본적으로 그냥 혼자서 만든 멀티 트랙 곡들이었다. 현재 Boredoms에 기타리스트나 베이시스트가 없다는 걸 생각해 보자면, 이 초창기 시절 Boredoms와 현재의 밴드 사이에 연결고리가 있다고도 볼 수 있을 듯 싶다."

    처음으로 '적절한 버전'의 Boredoms는 1986년, 보컬에 Yamataka Eye, 드럼에 파트너이자 보디가드 Taketani, 기타에 Mara Tabata, 베이스에 Hosoi 4인조 밴드로 등장했다. 그 해 여름, Taketani는 야성적이면서도 별난 기인 드러머 Toyohito Yoshikawa로 변경되었으며, Acid Makki의 베이시스트 Hira가 Hosoi의 자리를 맡게 되었다. Mara Tabata가 Zeni Geva에 합류하기 위해 밴드를 떠나자, Yamataka Eye는 이 기회를 활용해 친구 Seniichi Yamamoto를 Boredoms에 끌어들였고, 공식적으로 밴드를 출발시켰다. 초기 Buzzcocks의 가장 유명한 노래의 이름을 따 온 것이기도 했던 밴드 이름 "Boredoms"는 멤버들의 정신 상태를 반영한 이름이기도 했다. 그리고 멤버들은 그 이름에 걸맞는 활동을 하려는 의도로 충만했다. "[Anal By Anal]가 막 발매되었을 시기에 우리는 정말로, 정말로 지루해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첫 공연을 하게 되었다." Yamataka Eye는 웃으며 말했다. "공연때 곡 마다 정말로 긴 대기 시간이 있었다. 조율하는 데에 한세월이 걸렸다. 모든 사람들이 잠에 빠져들기 직전까지 갔었다. 정말로, 관객들이 하품을 해 대는 지경이었다. 뭐랄까 음악에 대해서 한톨만큼의 흥밋거리조차도 없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 때 나도 Boredoms를 직접 봤었는데, 정말로 완전히 지루한 밴드였었다." Yoshimi P-We가 동의했다. "정말로, 진심으로 지루했었다. 그 어떤 동력이나 추진력 따위는 없었고, 그냥 시작해서 가는 게 다였다. 곡들 사이의 대기 시간은 곡 자체의 길이보다도 더 길었다. 너무 지루해서 나는 공연 중간에 그냥 공연장에서 나가버렸었다. 그게 전부였었다, Boredoms에 합류하기 전 이들의 공연을 단 한번 봤던 것이." Yoshimi P-We가 더 괜찮은 드러머가 될 거라는 생각에, Yamataka Eye는 1988년 그녀를 초대해 Toyohito Yoshikawa의 역할을 맡게 했다. Toyohito Yoshikawa는 전반적인 타악기 연주를 맡게 되었으며, Yoshimi P-We는 곧 밴드의 핵심적인 드러머가 되었다. 하지만, 애초에, 이들이 그렇게까지 지루한 밴드였다면, Yoshimi P-We는 어째서 밴드에 합류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란 말인가? "내가 합류한다면 밴드가 완전히 바뀔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답했다. "내가 합류했을 때, 모든 것들이 완전히 좆되기 시작했었다. 우리는 무언가를 하고는 바로 그 무언가에 대해서 잊어버리고 다른 것을 하곤 했다. 같은 식으로, 밴드는 그 이후로 계속해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그 이후로 정말 많이 변했다." Yamataka Eye가 더했다. "'지루해지자'는 원래 컨셉 같은 건 잊어버렸었다. 내 생각에 나는 원래 지루한 어느 날의 오후, 아무것도 할 것이 없는 시골의 주유소에서 느껴지는 그 기분을 만들어보려고 했었던 것 같다. 무관심하고 권태로운. 만성적인 무심함."

    Yamataka Eye는 최근 그 원래 컨셉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이어가며 밝혔다. "나는 그 '지루함' 속에 굉장히 중요한 뭔가가 있다고 생각한다. 진심으로, 완전히 지루해할 때, 그 속에 무언가 아름다운 것이 있다."

    "그 이후로 많은 것이 바뀌었고, 너 자체도 정말 많이 변했다." Yoshimi P-We가 끼어들었다. "어쩌면 그래서 '지루함'이라는 것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갖게 된 걸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면의 고요함 같은 것? Yoshimi P-We는 이 제안을 즉시 기각했다. "아니, 고요함은 아니다." 그녀는 킬킬거렸다. "Eye가 고요한 사람이었다면 정말로 지루한 Mr. Boring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https://youtu.be/7MuMnVDuJoU
    "Catastro Mix '99"

    CALL ME GOD

    최근 밴드가 겪은 진화 수준의 변화를 알리고 기념하기 위해, Yamataka Eye는 밴드의 이름을 Boredoms에서 더 기묘한 이름 V∞rdoms로 바꾸었다. 그리고 이 표현을 만들어내고 결정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고토다마(言霊)가 뭔지 아는가?" Yamataka Eye가 질문해 왔다. 나는 나의 무지함을 인정했지만, 다행히 통역가 Alan Cummings는 이 단어가 무슨 뜻인지 알고 바로 나에게 설명해 줄 수 있었다 - 고토다마는 일본의 고대 믿음으로써 올바른 상황에서는 언어에 신비로운, 자기실현적인 힘이 깃들게 된다는 생각을 뜻하는 말이었다.

    "내가 만들었던 모든 밴드 이름들, Boredoms도 포함하여, 모든 이름들에는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 Yamataka Eye가 설명을 시작했다. "B라는 알파벳을 사용하고 있을 때 - 지금은 V 이지만 - 그 B는 '보아(boa)'와 연결되는 부분이 있었다. 보아는 남아메리카에서 서식하는 아주 거대한 뱀이다. 'bore'(지루하게 만들다, 깊은 구멍을 뚫다)와 지루함이라는 아이디어도 들어 가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나는 거대한 뱀과 이 지구의 힘에 접근하고 싶었던 것 같다."

    "지루함을 느끼고 있는 상태 또한 중요한 아이디어였다." Yamataka Eye는 다시금 재차 강조하며 말했다. "감기에 걸려 열이 나고 있는 상태라고 하면, 음악이 굉장히 이상하고 신비로운 방식으로 들리게 된다. 나는 그런 상황을 아주 많이 겪곤 했다."

    물리적인 상태가 지각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스스로 겪어 온 경험들을 가지고, 이를 더 큰 폭으로 확장시키면서, Yamataka Eye는 음악가와 관객 사이의 관계에 대해 굉장히 분명한 여러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으며, 어떻게 배치되어 음악을 연주하고 또 어떻게 배치되어 음악을 들어야지만 이 새로운 음악을 가장 잘 감상할 수 있는지에 대한 아이디어들도 가지고 있었다. "현재의 밴드에 대한 컨셉을 가지고 있다." 그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듯이 이어나갔다. "나는 현재의 밴드를 그룹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회로, 어떤 악기 하나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그룹'이라 하면 기타, 베이스, 드럼이 서로 충돌하는 그런 밴드를 생각하게 되는데, 나는 이 그룹을 오히려 일종의 전축 같은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가 연주하는 방식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어제 공연에서는 실제로 하지는 못했었는데, 일반적으로 일본에서 공연을 할 때의 우리는 서로 원형으로 마주보는 방식으로 멤버들을 배치하여 공연을 한다. 그러면 관객들은 원형으로 앉은 우리 바깥으로 빙 둘러 서게 되고, 관객들과 우리는 함께 거대한 원을 그리게 되는 것이다." 이 인간 고리는 일본의 전통 무용 본오도리(盆踊り)와 상당한 유사점을 가진 것 처럼 보였다. 7월 중순 일본 각지에서 벌어지는 축제들에서 참여자들은 전부 모여 원형의 춤을 추며 죽은 자들을 환영하고, 이 때 죽은 자들이 자신들이 원래 살던 집으로 돌아가 잠시 방문한다는 믿음이 있다. "우리 모두는 이 원형의 중심으로 시선을 향하게 된다." Yamataka Eye가 이어갔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에너지가 한 점으로 집중되게 된다. 그러니까, 앉아서 TV를 보는 것과는 아주 다른 것이다."

    "이제까지의 공연들은 항상 TV를 보는 것 같은 공연들이었다." Yoshimi P-We가 주장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하면 음악가도 관객들도 전부 정 중앙의 구심점에 집중하게 된다. 우리는 사람들이 춤출 수 있는 음악이 되기를 바라며 공연하고 있다. 우리는 그들이 전부 춤추기를 바란다. 드럼을 연주할 때, 사람들이 몸을 움직이기를 바란다."

    Yamataka Eye는 사실 오늘날의 통상적인 공연자-관객 사이의 관계를 훨씬 넘어선 먼 곳을 생각하고 있었다. V∞rdoms에 대한 그의 비전은 현재의 그룹을 일종의 '기술적으로 진보한 정보 수신기'의 육체이자 혈액으로 보고 있었다. 더 높은 차원의, 우주적 의식에 연결되어 있는 수신기의. "서로를 마주 보고 있다는 말은 서로 대척점에 있다는 말이다, 아닌가?" 그는 더 자세한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우리는 그 대척점을 잇는 사선들을 따라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 모든 사선들이 교차하는 한 지점, 그 지점은 아주 중요한 정보의 원천으로 그 중앙 부분에 갑작스럽게 생겨나는 것이며, 우리는 그 정보의 원천에 접속하고, 여러가지 정보를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뭐랄까, 일종의 데이터베이스 같은 것이다. 나는 언제나, 항상 더 높은 차원의 에너지에 연결되고 싶었으며, '데이터베이스'라는 건 바로 이 연결에 대한 것이다 - 내가 접속해서 무언가를 받아낼 수 있는 무언가 말이다."

    '전축' 컨셉을 더 자세하게 들여다 보며, Yamataka Eye는 V∞rdoms의 'V'가 전축의 바늘과 닮아 있다는 점을, 그리고 '∞'는 음반의 모양을 닮아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우리는 이 전축의 모터에 해당하며, 우리가 만들어 낸 사선들의 교차점은 음반 중앙에 뚫린 구멍이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들을 공연 중에 의식하는 건 아니다." Yoshimi P-We가 끼어들었다. "우리는 '노력'하지 않기 위해서 최대한으로 노력한다. 자연스럽게 연주하지 않는다면 하늘 위의 음반은 더 이상 돌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럴 때의 우리는 너무 많은 에너지를 넣고 있게 되는 셈이다. 아주 자연스럽게 연주하며 서로가 서로를 바라볼 때, 음악은 굉장히, 아주 부드럽게 흘러가게 된다." 인간으로 이루어진 Technics 레코드 데크라는 V∞rdoms의 컨셉, 거대한 초은하적 음반의 홈을 긁으며 음악과 관객의 에너지를 한 점으로 집중시킨다는 아이디어는 분명히 놀라운 것이었다. 그리고 이는 점점 더 나아지고 있었다.

    "나에게 Boredoms 음악은 아주 긴 이메일 주소 비슷한 것이다." Yamataka Eye는 열정적으로 말했다. "우리가 좋은 걸 하거나 똥같은 걸 하거나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정확성이다. 이메일 주소에서 실수를 한 번이라도 하면 그 이메일은 제대로 된 곳으로 발신되지 않을 것이다. 단 한번의 실수라도 하게 되면, 전화통화에서 혼선이 일어나는 꼴이 된다. Boredoms도 마찬가지다, 더 높은 차원의 데이터로 접속하는 경로의 주소 같은 것이다. 우리가 요청을 하면 그 높은 차원의 에너지가 부름에 응답해 나타나는 것이다."

    https://youtu.be/vC2vqPHUw7s
    "Super Are"

    DON'T FALL IN THE AUDIO HOLE

    음반들에 대한 집착에서도 일부 유래했다고 볼 수도 있을 Yamataka Eye의 '인간 전축 이론'은 그의 또 다른 역할, DJ로써의 Yamataka Eye "MC Hellshit"과도 연결된다. 그는 1995년 턴테이블리스트 Otomo Yoshihide (aka DJ Carhouse) 와 협업하여 맨체스터에서 진행되었던 [Disobey] 행사에 참여하기도 했었으며, DJ Pica Pica Pica라는 이름으로 극초반기 [Boretronix] 테이프들이 연상되는 컷-업, 거친 편집, 다듬어지지 않은 리믹스를 담은 CD를 발매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Yamataka Eye라는 사람이 대체 어째서 DJ라는 역할에 이렇게까지 매료되어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일까? "어렸을 때 부터 항상 '음반을 가지고 음향을 만들어낸다'는 아이디어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Yamataka Eye의 대답이었다. "처음으로 멀티 트랙 음반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 테이프 데크 하나와 전축 하나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전축의 팔 부분에 큰 돌덩어리 하나를 얹어 같은 부분을 계속해서 재생하도록, 앞뒤로 계속 반복하도록 만들었었다. 나는 음반을 일종의 매체로, 일종의 음향 재생성 장비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언제나 굉장한 흥미를 느껴 왔다. 따라서 DJ들이 처음으로 등장하기 시작했을 때 당연히 나도 그런 걸 해보고 싶어졌던 것이다."

    음향 생성에 딸려오는 기술적인 측면들 말고도, Yamataka Eye는 DJ라는 역할의 가능성, 또 다른 정체성을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에도 매료되어 있었다. "DJ라는 단어를 아무 단어 앞에다 붙여도 행동으로 이어지는 특별한 의미가 부여되는 현상 또한 아주 흥미롭다고 본다. 커피를 마시다가 'DJ Coffee'가 될 수도 있는 거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물론, 내가 DJ를 하고 싶어하는 건 사실 그냥 내가 회전하는 둥근 물체를 바라보는 걸 좋아하기 때문인 게 크다." 현재 클럽 씬을 지배하는 DJ들 중 동경하는 사람이 있는지 질문하자, Yamataka Eye는 Christian Marclay를 꼽았다. "내가 처음으로 봤던 Christian Marclay의 사진은 그가 마치 야구장에서 핫도그를 파는 사람처럼 턴테이블을 '입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사진을 보는 것 자체가 재미있는 일이었다. 그는 말 그대로 '펑크'같아 보였다, 그 사진 전체가. [Record Without A Cover]도 아주 인상적인, 정말 훌륭한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이전까지 아무도 하지 않았던 것을 한 것이다 - 인상적이지 않을 수가 없지 않나?"

    https://youtu.be/U6f9BV-8yAw
    "◯"

    BOREDOMER IN BORETRIBE

    Boredoms의 발전에는 현대 서양음악가들과의 만남이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특히 Yamataka Eye와 Yoshimi P-We는 John Zorn  Sonic Youth Thurston Moore Kim Gordon하고 단단한 교류 관계를 쌓아 올려 왔었다. 1992년 10월, John Zorn은 프로듀서 Kazunori Sugiyama와 함께 Boredoms의 앨범 [Wow 2]를 프로듀싱하고 그의 레이블 Avant를 통해 발매했다. Yamataka Eye의 작업을 직접 본 John Zorn은 그의 하드코어 재즈 오케스트라 Naked City Painkiller에 Yamataka Eye를 초빙해 함께 연주하기도 했다. 이들은 그 이후로 John Zorn의 Tzadik 레이블의 "Radical Jewish Culture" 섹션과 "New Japan" 섹션에 각각 해당하는 앨범 2개를 함께 녹음했다 (역주: [Zohar]와 [Nani Nani]).

    "아마 일본에서 처음 봤던 것 같다." John Zorn과의 첫 만남을 회상하며, Yamataka Eye가 말했다. "그 때 나는 무슨 밴드에서 공연하고 있었는데, John이 와서 우리 공연을 봤다. 끝나고 함께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는데, 그가 말하길 함께 뭐라도 해야겠다고 하더라. 그렇게 나는 뉴욕으로 가서 [Naked City]의 보컬 부분을 작업했고, 거기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Naked City와의 작업에서 알아차린 것 하나는, 밴드가 연주를 하다가 하나라도 실수를 한 것을 John이 알아차리게 되면, 항상 곧바로 연주를 멈추고는 올바르게 진행될 때 까지 계속해서 반복 연주를 진행했다는 것이다. 거기서 나는 모든 것이 정확하게 맞아야 한다는 아이디어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이 둘은 1995년 스튜디오에 다시 모여 [Nani Nani]를 만들었고, 여기서 John Zorn은 "Dekoboko Hajime"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이 녹음 세션에서, 이들은 시간이 충분히 남아 또 다른 음반을, Mystic Fugu Orchestra라는 이름으로 [Zohar]라는 CD를 만들게 되기도 했다. "Raz Tzizit"라는 가명 하에, John Zorn은 '우연히 발견한' 옛 유대 음악 LP의 위에 하모니움 연주를 더했으며, Yamataka Eye는 "Rav Yechida"라는 가명으로 보컬 드론을 더했다. "John은 Tzadik 레이블에서 유대 음악 시리즈를 발매하고 있었고, 우리 둘은 그 시리즈에 끼워 넣을 만한 앨범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Yamataka Eye는 회고했다. "그래서 고물상 수준의 가게에서 낡아빠진 음반 하나를 찾아 재생했고, 그게 [Zohar]의 배경 음향이 되었다. 우리는 [Nani Nani]를 먼저 녹음했으며, 작업이 다 끝난 후 시간이 좀 남아 [Zohar] 작업도 해 보게 되었다. 굉장히 빠르게, 짧은 시간만에 끝났고, 다 했다는 생각도 들지 않을 정도였다."

    Yamataka Eye에게 있어, 이러한 '유대인 프로젝트' 작업을 진행하는 경험은 보다 더 어두운 문화적 측면에서 그의 고향과 연결되는 지점에 발을 내딛는 것 같은 경험이었다. 이 음악 속 무언가가 오랫동안 묻혀져 있던 역사를, 새로운 세계의 질서를 볼 능력이 있다고 주장했던 일본의 신흥 종교 오모토(大本) 교도들을 떠올리게 했던 것이다. 1935년, 일본의 군부 정권은 오랫동안 핍박해오던 오모토 교를 결국 법적으로 금지하기까지 했었다. 그리고, Yamataka Eye의 친족들 중 여러 세대에 걸친 인물들이 오모토 교의 신자였었다. 유대 문화에 대한 John Zorn의 개인적인 깊은 헌신과 함께, 이 듀오의 공통적인 비통함의 기억은 둘 사이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매개체가 되었다. 이 둘이 함께 진행했던 세션에서 만들어진 음악은 신비로우면서도 놀랍고 초자연적인 무언가였다.

    John Zorn과의 인맥을 통해 Boredoms Sonic Youth의 미국 전역 투어의 서포팅 밴드로 참여할 수 있게 되기도 했었다. 이 투어가 끝난 후, Thurston Moore John Zorn의 선례를 따라 자신도 Yamataka Eye를 스튜디오로 초대해 함께 여러 프로젝트들을 진행하고 그 결과물들을 자신의 Ecstatic Peace! 레이블에서 발매하게 된다. 이 프로젝트들 중 일부는 아직도 발매를 기다리며 작업이 진행중이다.

    "Sonic Youth의 음향은 Glenn Branca 기타 오케스트라의 음악과 닮아 있다, 온갖 변칙 튜닝을 한 기타로 내는 소리들과. 그리고 나는 그런 느낌을 좋아한다." Sonic Youth와의 합동 투어 경험에 대해, Yamataka Eye는 이렇게 평했다. "현대음악이면서도 동시에 록 앤 롤인 음악. 이런 컨셉은 나에게도 아주 중요한 컨셉이었다. 나는 언제나, 그냥 록 음악을 그대로 연주하고 싶었던 적 같은 건 없었다, 밴드로써 록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은 맞지만 말이다. 이미 존재하는 록 음악은 애초에 나 스스로도 연주가 불가능했고, 나는 항상 뭔가 다른 것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었다."

    "공감적 공명과 배음들로부터 발생하는 새로운 소리를 듣기 시작한 것 처럼 연주하게 되면," Yamataka Eye는 이어갔다. "그러니까 목소리라던가, 멜로디라던가 같은 것, 이전까지는 전혀 들어본 적 없었던 새로운 것 말이다. 더 듣게 될 수록 더 들리게 되는 법이다. 나는 그러한 현상에 아주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Glenn Branca Sonic Youth로부터 배운 것이 바로 이것이다." 1992년 Sonic Youth와의 합동 투어에서, Yoshimi P-We는 Kim Gordon의 초청을 받아 스튜디오에서 Kim Gordon  Julie Cafritz(이전 Pussy Galore 기타리스트)와 함께 Grrrl Power 펑크 트리오 Kitten(나중에 Free Kitten으로 이름이 바뀌었다)를 결성, 드럼과 트럼펫을 연주하게 되기도 했다. 이 때의 기억을 돌이켜보며, Yoshimi P-We는 미소지었다. "그 때만 해도 Kim을 모르고 있었는데, 그녀가 말해주길 우리가 Kitten이라는 이름의 밴드로 작업을 하게 될 거라고 했었다. 그리고 나는 처음에 그녀가 'Kitchen'이라고 말한 줄 알고 있었다! Kim과 Julie와 함께 밴드를 하게 될 거라는 걸 알기 한참 전의 일이었다. 그러다가 Pavement의 Mark Ibold가 밴드에 참여해 함께 투어를 돌게 되었지만, Julie가 최근 너무 바빠져서 Kitten은 그 이후로 딱히 뭔가를 하지는 않았다."

    https://youtu.be/DqXy4uJ3iK0
    "Seadrum"

    WE NEVER SLEEP

    "우리가 또 배운 것 하나는 정크 푸드를 먹지 말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정말로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이야말로 에너지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시기에 음악을 만든다는 것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변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Yamataka Eye는 주장했다. "우리는, 인스턴트 라면을 먹으면서는 훌륭한 음악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John Zorn  Sonic Youth와의 협업 경험은 Boredoms의 멤버들로 하여금 더 새로운 기회들을, 새로운 음악가들과의 협업을 찾아 나서게 만든 촉매제의 역할을 했다. 1994년, Yamataka Eye와 Yoshimi P-We, 그리고 기타리스트 Seniichi Yamamoto는 NHK (일본 버전의 BBC) 에서 주최하는 TV 공연 [Video Opera]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 공연의 다른 참가자로는 뉴욕의 아방가르드 안무가 Simone Forti, 플럭서스 예술가 백남준, 저명한 밴드 Taj Mahal Travellers 설립자이자 플럭서스 음악가 Takehisa Kosugi가 있었다. 이 공연은 결국에는 TV에서 방영되지 못했지만, Boredoms의 멤버들은 자리를 마련해 주었던 NHK에게 감사하고 있었다. Sonic Youth의 [SYR4: Goodbye 20th Century] 프로젝트 - 20세기 아방가르드 선구자들에 대한 Sonic Youth의 존경을 담은 오마쥬 프로젝트 - 와 비슷하게, Boredoms의 [Video Opera] 참여는 이들이 플럭서스 운동의 복잡한 세세함들을 익히고 능숙히 다룰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이 공연에서 Yamataka Eye는 Yoshimi P-We와 Seniichi Yamamoto를 위해 고무 공을 가지고 박자를 맞춰 주었으며, 가장 놀라웠던 측면은, 멤버 셋이 자연스럽게, 마치 타고 태어난 것 처럼 능숙하게 서로 소통이 가능했다는 것이었다. "소통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때 가장 잘 되는 법이다. 가장 강력한 힘이 발생하는 순간 사람들은 그 어떤 것도 생각하지 않고 있는 상태가 된다." Yamataka Eye의 말이었다. "그러한 소통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면, 현재 음악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본능적으로 알게 된다. 오직 너무 깊은 생각을 할 때에만 온갖 불필요한 의사소통 방법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제 길을 찾아 제대로 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나에게 음악이란 나 스스로 음향을 만들어내는 것 보다는 오히려 '듣기'에 가까운 것이다. 나는 음악가가 아니다. 나는 버튼을 누르거나 소리를 질러댈 수 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들 중 가장 음악적인 행위는 다름아닌 '듣기'다."

    Boredoms의 환각적인 마스터피스 [Vision Creation Newsun]이 발매된지도 벌써 3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밴드는 이 걸작의 발매 이후 상당한 변형을 겪어 왔으며, 이에 따라 현재의 밴드는 [Vision Creation Newsun]에 대해 거리감을 느끼고 있었다.

    "우리는 [Vision Creation Newsun]이 '끝난' 앨범이라고 생각하며, 과거에 속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Yamataka Eye는 대꾸했다. "어째서인가 하면, 그 앨범은 더 이상 충돌하기를 멈추었기 때문이다." Yamataka Eye와 Yoshimi P-We는 모두 눈 앞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기를 선호했으며, [Vision Creation Newsun] 발매 이후로부터 만들어져 온 여러 곡들을 모아 발매하기 위한 방향을 모색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다른 여러 밴드들에도 속해 있으니, 그 밴드들의 명의로 뭔가를 발매하려고 하는 중이기도 하다." Yamataka Eye의 사뭇 도발적인 힌트였다. "하지만 우리는 V∞rdoms의 곡들 몇 개 또한 녹음했었다. 해변가에서 녹음을 하기도 했었는데, 해안선을 따라 3개의 드럼 키트를 설치해 베이스 드럼의 음향이 파도에 부딫히도록 했었다."

    "필드 레코딩같은 세션이었다." Yoshimi P-We가 열정어린 어조로 말했다. "마이크를 파도 속에 설치하였고, 이 걸로 드럼 연주를 녹음했었다."

    "수중 마이크, 물 속에서 녹음한 드럼 연주." Yamataka Eye가 이어나갔다. "나는 '움직임'을 녹음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는 연주를 하고 있는 우리 주변으로 마이크를 움직여가며 녹음했었다. 누군가는 해변에 있을 수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바다에서 연주할 수 있다. 우리는 마이크를 흔들어 드럼 바로 앞에까지 가게 하기도 했다. 이런 것들을 작년 내내 시도했었다. 엄청나게 커다란, 옥수숫대처럼 생긴 마이크를 가지고, 녹음을 진행하는 도중 8명의 사람들이 그 주변을 돌아다니게 하기도 했다. 디지털 믹싱 스튜디오가 포함된 커다란 차량을 바다에 갈 때 가지고 가기도 했다. 나는 이 녹음 결과물들을 편집해서 곧 발매할 생각이다. 너무 큰 비용이 들어가서 어떻게든 발매하지 않으면 안 되는 앨범이다. (역주: [Seadrum/House of Sun]에 수록되는 음원들입니다)"

    최선을 다해 숨기려고 노력하고 있었지만, 그는 명백히 공연 이후로 한 숨도 자지 않고 깨어 있었고, 점점 더 수면욕에 굴복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 순간은 그에게 오늘날 Boredoms 음악을 지배하는, 새로운 '정확함'에 대해 질문하기에 최선의 때는 아닐 것이었다. "하지만, 모두 자신들의 '비전'을 재생산하고 싶어하지 않는지, 자신들의 취향을 최대한 정밀하고 최대한 원본에 가깝게 표현하는 것을?" Yamataka Eye는 주장했다. "머릿속에 들어 있는 바로 그것! 나는 작곡을 할 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똑같은 기법을 사용할 수 없다, 하지만 어쨌든지간에 정확함은 여전히 중요한 것이다. 일본에서 신사를 방문할 때와 어느 정도는 비슷한 것이다, 거기에서는 절을 두번 해야 하는데 이 두 번의 절은 각각이 조금 다른 깊이의 절이어야 한다. 절을 3번 하는 것도 틀린 것이 된다. 형태가 완벽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절을 2번 해야 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 그리고 절의 깊이 또한 마찬가지이다. 완벽할 필요는 없지만, 하나는 깊숙이 숙이는 절, 다른 하나는 얕은 절이어야 한다. 만약 틀리게 된다면 아무 의미도 없는 행위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정확함은 바로 이런 느낌의 정확함이다." Yamataka Eye는, 마무리를 짓기 전에, 잠시 멈추었다. "내 '비전'을 종이에 적어내리는 법을 배워보려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나는 그냥 그렇게 못 하는 사람이다."

    https://youtu.be/Vjk01Wo-aEs
    "77 Boa D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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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amataka Eye / Yoshimi P-We

     

     

    2022/12/30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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