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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he body‏
    [...]/[The Body] 2023. 3. 27. 13:15

    The body



    "하지만 종국에 가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골칫거리로 등장한 건 바로 일요일 오후들이었다. 두 시 오십오 분경부터 근질거리기 시작하는 그 끔찍한 권태감 말이다. (중략) 그러다가 시계를 보면 바늘이 잔인하게도 네 시에 다다를 테고, 그러면 사람들은 길고 암울한 영혼의 티타임으로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Douglas Adams,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 김선형/권진아 역, 책세상





    2012년 말, 대형 포털사이트 Daum에는 '헤드플레이'라는 집단이 [영혼을 위한 드래곤 수프]라는 이름의 기묘한 웹툰을 연재했었다. 그 웹툰의 마지막 화에는 단 하나의 소원만을 들어줄 수 있는 마법사가 나타나 그 동안의 등장인물들에게 원하는 것을 묻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중 한명이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우리가 절망하는 이유는, 내일도 오늘과 똑같거나... 그 이하일 거라는 사실 때문이에요. 그게 우리를 두렵게 한답니다."
    마법사는 이 말에서 무언가를 깨닫고는, 이룰 수 있는 단 하나의 소원을 '희망'이라는 것에 사용하기로 결정한다.
    필자는 이 웹툰을 아주 이상한 작품이라고 생각하며 시간이 남거나 할 때에나 심심풀이 용도로 보곤 했었지만, 이 대목에서만큼은 상당히 깊게 공감했었다. 어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다. 일상은 거의 똑같이 반복되면서도 점차적으로, 아주 조금씩, 열화되어간다. 일요일 오후의 '길고 암울한 영혼의 티타임'을 한 번 떠올려 보라, 그 뻔한, 너무나도 정확하게 예지할 수 있는 또 다른 일주일의 시작이 다가오는 걸 가만히 앉아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그 시간을, 그렇지만 동시에 눈앞이 깜깜해지곤 하는 그 순간을. 오로지 존재할 뿐, 딱히 손에 잡히는 그 어떤 의미도 갖지 못하는 스스로를.
    이 아무것도 아닌 글에서, 나는 '절망'에 대해서 적어보려 한다. 실패와 좌절, 상실, ‘응답받지 못하는 기도자’들,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는 축복받은 자’들에 대해서. The Body라는 이름하에 활동 중인 두 명의 짐승들에 대해서.

    ***

    "그리고 시간이 좀 더 지나게 되면... 적어도 나와 Chip은 모든 것은 결코 바뀌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모든 것은 언제나 ×같을 거고, 이런 생각이 지금의 The Body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우리 둘이 상당히 비참하게 이 세계를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The Body는 이런 관점의 확장일 뿐이다."
    Lee Buford, interview with 「Steel for Brain」





    그런데, The Body라는 하나의 '밴드'를 다루어 보려면 대체 무엇에 대해 말해야 하는 것인가?
    ─우선은 실존하는 밴드에 대해 다루어 보는 것이니, 이들의 물리적인 실체에 관해서?
    The Body는 Chip King(기타, 보컬)과 Lee Buford(드럼)로 구성된 2인조 밴드이다. 1999년 결성되었으며, Providence에 거주하다가 Portland로 옮겨 현재까지 그 곳에서 지내고 있다. 현재까지 Full-length 11장과 EP 6장을 발매하였으며, 초반에는 주로 Maryland의 인디 레이블 「At A Loss Recordings」를 통해, 최근에는 실험적인 록으로 유명한 「Thrill Jockey」 레이블을 통해 앨범을 발매하고 있다.
    ─밴드를 다루는 것 답게, 이들의 음악 스타일에 대해서 말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이들은 표면적으로는 '블랙 메탈'이라고 할 수 있는 범주의 음악을 한다. 하지만 The Assembly of Light Choir의 성악적인 여성 보컬을 자주 기용하고, Machines with Magnets 스튜디오에서의 작업에 큰 무게를 두며, 여러 분야의 뮤지션들과 콜라보레이션 앨범을 만드는 데 주저함이 없는 등 다양함과 새로움을 적극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수없이 많은 언더그라운드 밴드들이 그러했듯이, 이들 또한 특유의 주제와 분위기, 그리고 신경증을 갖고 있을 것이다. 이것에 대해서 말해보는 것도 흥미롭지 않을까?
    이들이 발매해 온 앨범들 및 곡들의 제목에서도 쉽게 알 수 있듯이, 이들은 ‘죽음’과 ‘절망’ 같은 주제에 집착하며, 이미 깊게 빠져 들어가 있다. 여러 인터뷰들에서 밝혀 왔듯이 The Body는 대부분의 인간을 믿지 않으며, 사회로부터 격리되고 싶어 하고, 이 세상을 매우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두 멤버는 모두 여러 가지 종류의 정신과 의약품에 대한 경험이 있으며, 특히 Lee Buford는 비행기 및 선박에 대한 상당한 공포증을 갖고 있다(그래서 미국 바깥에서 투어를 돌 때는 드러머를 다른 사람이 대신하는 식으로 한다).
    ─오, 아니면, 역시 '평가'에 대해 다루어야 할까? 호불호 여부를 떠나서, 평점이라는 것을 보는 게 한 눈에 쉽게 들어오는 것이긴 하지 않은가?
    유명한 「Pitchfork」는 어떨까? [I Shall Die Here]=7.8/10. [Master, We Perish]=8.1/10. '평론가'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또 유명한 「rateyourmusic」 같은 곳도 있다. [All The Waters Of The Earth Turn To Blood]=3.27/5.
    흠, 이만하면 밴드에 대해 제법 다루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정도면 The Body라는 밴드에 대해 대략적으로는 이해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 절대로 아니다. 사실 이 모든 건 의미 없는 헛소리에 불과하다. 여기에 뭘 붙여 보더라도, 이들을, The Body를, 이 엄청난 짐승들을 눈앞에 두었을 때 이런 글자들 따위는 모래로 만든 성처럼 아무런 가치도 없이 허망하게 바스러져 사라질 뿐이다. 이들이 보여주는 힘은 한낱 단어들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강력함을 가지고 있다. 언제나 그렇겠지만, 이와 같은 밴드는 정말로 직접 듣고 보면서 그 속에 완전히 빠져 들어가야만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이 쓸모없는 글자 무더기를 읽을 시간에 위의 뮤직비디오와 음악들에 집중하였다면, The Body에 주목하고 이들의 음반을 찾아 들어야 할 나름의 이유들을 찾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필자는, 나는 어떻게, 무엇을 써야만 하는 것인가? 무엇을 위해서 써야 하는 것인가? '나는 여기서 죽어 없어지는' 쪽이 낫지 않을까?

    ***

    "’The Body’라는 이름은 교수대에 매달린 희생자들을 담은 사진에 매혹된 내가 생각해 낸 이름이었다. 그들은 너무나도 이상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 그들에게 삶이라고는 편린조차도 존재하지 않았다. 초창기에 우리는 마대자루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무대장치에 매어 놓은 밧줄을 목에 건 채로 공연하고는 했었다. 'The Body'의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키려는 시도였었다."
    Chip King, interview with 「The Quietus」





    …하지만 필자는 그런 무용함의 위험을 무릅쓰고, The Body라는 밴드에 대해 짚어가며 얕게나마 이들의 음악에 대해 적어보려 한다. 왜냐하면, 그 무엇보다도, The Body라는 밴드와 그들의 음악이, 정말로, 정말로 훌륭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The Body를 들을 때 내가 느끼는 감정들을, 더 나아가 The Body의 음악이 가진 압도적인 힘을 이런 것 따위에 제대로 옮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원하는 것은 무엇이라도 찾을 수 있지만 동시에 원하지 않는 것도 무한대에 가깝게 넘쳐나는 이 매스미디어와 월드 와이드 웹의 시대에 또 하나의 훌륭한 밴드가 묻혀가는 것 또한 너무나도 쉬운 일일 것이다. 그러하기에, 혹여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공명할 수 있지만 아직 이들의 존재를 알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The Body라는 밴드의 음악에 대한 최소한의 소개라도 될 수 있기를 바라며, 나의 인상을 풀어나가 보려 한다…

    비록 1999년 결성되었고, 2004년에 이미 첫 full-length [The Body]를 발매하였지만, The Body에 대한 이야기는 2010년의 화제작 [All The Waters...]부터 시작하는 것이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는 첫 앨범 [The Body]가 졸작이라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 바로 위의 "Empty Hearth"를 듣고 있다면, 아마 여러분들도 동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All The Waters…]는 굉장히 이상한 앨범이며, 음울하게 뒤틀린 The Body만의 세계가 시작되고 있는 장소라는 것을. 광신도들의 미친 집회가 떠오를 정도로 지독한 암송과 함께 허공으로 울려 퍼지는 기계적인 드럼, 불길한 기타 드론, 변조되어가는 음향, 그리고 절망의 밑바닥에서 고통에 몸부림치는 것 마냥 질러대는 비명을 듣고 있자면, 그 누구라도 이 밴드가 평범하다고는 결코 말하지 못할 것이리라.
    사실 [All The Waters…]는 그 시작부터가 기이하기 그지없는 앨범이었다. '메탈 밴드'라는 설명만 듣고 이 앨범을 재생한다면, 청자는 "A Body"의 자그마치 8분에 육박하는 성가대 합창에 당혹스럽게 맞닥뜨리게 될 뿐이다. 그리고 이 성가는 다채롭기보다는 단조로우며, 평안하기보다는 아주 불안하고, 아릅답게 마무리 지어지기보다는 기묘한 불협화와 함께 곧바로 The Body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물론 The Body의 감정에 휘말리게 되는 건 비단 이 성가뿐만이 아니다. 기타와 드럼은 말할 필요도 없으며, "A Curse"의 서사적인 선율이나 "Even The Saints Knew Their Hour Of Failure And Loss"의 아름다운 기악연주나, 이들의 걷잡을 수 없는 고통과 좌절에 깊숙이 얽혀 들어가며, 결국 감정의 증폭과 뒤집혀진 미학에 일조할 뿐이다. 사실 이 소용돌이에 가장 심하게 끌려들어가게 되는 것은 그 무엇도 아닌 바로 청자다. The Body가 일반적인 밴드들보다는 훨씬 다양한 요소와 방식을 활용한 것은 맞으나,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독창적인 곡들을 만들어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은 이것들을 가지고 놀라울 정도로, 정말 너무나도 놀라울 정도로 감정을 강렬하게 표현하였으며, 이 표현은 굉장히 효과적이고 효율적이어서, 어느새 당신을 홍수처럼 덮치고 혼란의 한가운데에 던져버리는 것이다. "Lathspell I Name You"의 광기어린 연주와 절망적인 절규들 속으로, 의도적인 혼돈의 핵심으로.

    ***

    "이 세계와, 우리가 이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과정은, 상당히 끔찍하다. 나는 이런 관점이 상당히 보편적인 관점이라고 생각한다."
    Chip King, interview with 「Treble」





    [All The Waters…]의 충격 이후, The Body는 Oregon의 '펑크' 밴드 Braveyoung과의 콜라보레이션 앨범 [Nothing Passes]와, [Master, We Perish]를 비롯한 몇 개의 EP를 발매한다. 사회로부터의 격리를 추구한다는 이 남자들과 '콜라보레이션'이라는 단어만큼 서로 어울리지 않는 짝이 얼마나 있을까. 애초에 이 협업은 이미 절친한 사이였던 두 밴드 사이에 자연스럽게 발생한 작업이었지만, 앞으로 The Body가 예상 밖의 조합들을 통해 그들의 '뒤집혀진 아름다움'의 세계를 더 넓게 확장하게 될 콜라보레이션 앨범들의 신호탄이기도 했다. "Song Two"를 들어 보라, 이제는 이미 너무 일반적인, 자칫하면 지루해지기 십상인 '포스트 록'이라는 장르가 The Body를 거쳐 예기치 못한 힘을 갖게 되는 순간을. 단순한 어쿠스틱 기타에 맞춰 모닥불 앞에 서 있는 것 마냥 노래하는 "The Vision"은 또 어떠한가? 이렇게 당혹스러운 조합도 없겠지만, 지하에서 끓어대는 불결한 드론 노이즈는 이 곡이 단순한 미친 짓이 아니라 굉장히 잘 어울리는, 또 다른 훌륭한 작업이라는 것을 알게 해 준다.
    반면, Providence를 떠나며 마지막으로 만든 [Master, We Perish]는 이 '뒤집혀진 아름다움'을 더 깊은 심연으로 밀어 넣는 과정을 포착한 것 같은 앨범이었다. 고독과 고통이 뚝뚝 배어나오는 것처럼 느껴지는 앨범 커버와 제목을 보고 있자면, 말문이 막힐 정도로 음울한 기분이 들면서도 혹시나 이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는 자의식 과잉의 '허세' 밴드들과 같은 부류가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들 정도이지만, 이런 억측은 첫 곡 "The Ebb And Flow Of Tides In A Sea Of Ash"의 불길한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지는 찰나 사라져 버리게 된다. 엽기적인 살인 사건이 벌어진 사건현장을 모방한 뮤직비디오를 보고 있자면 청자는 The Body라는 자들이 음악을 통해 대체 무엇을 전하고자 하는지를 억지로라도 이해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Worship"이 내뿜는, 무아지경에 달하는 타악기의 질주는 어떠한가? "The Blessed Lay Down And Writhe In Agony"가 풍겨대는 소름끼치도록 음산한 분위기는? 곡이 진행하며 더 깊숙한 곳으로 빠져들려는 순간, The Body는 얼어붙을 정도로 차갑게 샷건을 장전하고, 청자는 갑작스럽게 정신을 차리며 주변을 둘러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 차디찬 총성은 누구를 향한 것인가? 그들이 불신한다는 '대부분의 인간'들인가, 곡을 듣고 있는 청자들인가, 아니면, The Body 자신들인가?

    ***

    "폭력적인 이미지를 홍보하려는 것이 아니다 - 이 모든 것들은 사회로부터 벗어나고자 취하는 방편들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Jonestown의 이미지나 대량 자살에 관련된 비디오들 말이다. 우리가 사용해 온 샘플들 중 대부분은 자살에 관련된 것이다. '총'이라는 것을 사용하는 것 또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말하려는 수단이기도 하다: 우리는 '사회'에 적합하지 않다 - 오히려 그것으로부터 스스로 멀어지고자 한다."
    Lee Buford, interview with 「Ad Hoc」





    그리고 그들의 창조가 시작되었다…

    2013년, The Body는 그들이 언제나 애용해 온 Machines with Magnets 스튜디오에서 대략 17일에 해당하는 기간 동안 무려 앨범 3개 분량의 곡들을 녹음했으며, 이를 전혀 다른 성격의 세 작품으로 발전시켰다.
    첫 앨범 [Christs, Redeemers]는 묵시록적인 이름과 커버 아트와도 같이 매우 짙고 심원한 앨범이었다. 앨범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To Attempt Openness"는 The Body가 이전부터 보여 주던 요소들 - 고밀도의 기타, 강렬한 드럼, 몸부림치는 비명, 대조적으로 아름답고 맑은 목소리, 단순하지만 지독한 뮤직비디오- 을 고스란히 갖고 있지만, 전달하는 감정은 진부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파괴적이었다. 동시에, 이 앨범은 [Master, We Perish]와 같은 맥락에서 The Body의 세계를 더욱 깊게 파내려간다. 화이트 노이즈가 기묘한 리듬으로 발전하는 "Shrouded", 광적인 글리치가 터져 나오는 "Bearer Of Bad Tidings" 같은 곡들은 The Body가 감정적으로는 비슷한 주제에 집착할지언정 음악적으로는 언제나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이들은 정말로 그러했다. 콜라보레이션 앨범으로 만들어진 나머지 2개의 앨범은 The Body만의 미학과 절묘하게 어울리면서도, 이들에게선 전혀 예상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었던 새로운 음향을 만들어내었던 것이다. 영국의 '다크 일렉트로닉' 뮤지션 The Haxan Cloak과의 협업인 [I Shall Die Here]는 글자 그대로 끔찍하고, 고통스럽고, 듣는 이를 두려움에 휩싸이게 만드는 앨범이었다. 그 누가 알았겠는가, The Haxan Cloak의 숨 막힐 정도로 목을 죄어오르는 둔탁한 전자음들이 The Body와의 조화를 통해 새로운 형태의 지옥을 열어젖히게 될 지를? 혹시 아직 보지 않았다면, 맨 위로 다시 올라가 "To Carry The Seeds Of Death Within Me"의 뮤직비디오를 가능한 한 최대의 음량으로 감상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제 3의 눈이라도 찾아 이 세상을 벗어나려는 듯이 자신의 이마를 절개한 광인의 웃음이 뒤틀린 절규와 함께 당신을 에워싸는 순간을 말이다. "Hail To Thee, Everlasting Pain"은 또 어떤가, 그 위험할 정도로 직접적인 비트는. 웹진 「Ad Hoc」의 Joe Bucciero는 이를 ‘body music’이라고 비유하며, 이들의 음악이 당신의 두뇌와, 뼈와, 내장과 공명하며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만든다고 표현했었다. 음, 확실히, "Alone All The Way"의 베이스 드럼은 내 머리를 망치처럼 가격하기는 했었다. 형체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짓뭉개진 나레이션과 함께.
    USBM(United States Black Metal)씬의 터줏대감 Krieg와의 콜라보레이션 [The Body & Krieg] 또한 전자음들과 메탈의 융합을 꾀한 앨범이긴 했으나, 이는 [I Shall Die Here]의 끔찍함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에서 진행되는, 어쩌면 낭만적이라고까지 표현할 수 있는 조합이었다. "Never Worth Your Name"의 매혹적인 분위기 속에서 비통함을 토해내는 Neill Jameson(Krieg)과 Chip King은, 그리고 "Fracture"에서 '아름다움과 추함' 수준으로 대비되는 목소리에 묻혀 있다가 모습을 드러내는 소박한 멜로디는. [I Shall Die Here]가 어두침침한 방에서 홀로 거울을 바라보며 그 속의 소름끼치는 존재를 자각하는 앨범이었다면, [The Body & Krieg]는 칠흑같이 어두운 거리를 정처 없이 방황하며 예정된 배드 엔딩으로 다가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물론, 이 앨범에서도 The Body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Gallows"의 기이한 비트, "A Failure Worth Killing Yourself"에서 부유하는 혼란의 파편들을 들어 보라.

    ***

    "우리는 침묵 속을 걷고 있었다 / 당신은 영광을 향해 / 나는 치욕을 향해 / 삶의 고통은 어떠한 승리도 손에 잡지 못한다 / 오로지 모욕만을…"
    Lyrics of "Night of Blood in a World Without End", in [Christs, Redeemers]





    …그리고 그들은 계속해서 나아갔다.

    이들은 오랜 친구이자 이미 협업을 통해 EP를 제작한 경험이 있었던 Thou와의 콜라보레이션 [You, Whom I Always Hated]를 발매하였으며, The Body의 골수팬이자 이미 [All The Waters...]시절부터 긴밀한 협력 관계를 쌓아 온 Sandworm과의 스플릿 앨범 [The Body / Sandworm]을 제작하였고, 일본의 노이즈 집단 Vampillia와도 앨범 [xoroAHbin]을 만들었다.
    [You, Whom I Always Hated]는 아마도 The Body가 만들어 온 앨범들 중 가장 일반적인 '메탈'에 가까운 작품일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앨범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곡이 이제는 거물급으로 취급되는 인더스트리얼 뮤지션 Nine Inch Nails의 곡을 커버한 "Terrible Lies"라는 것이다. 정통 하드코어-메탈에 가까운 Thou의 그로울링과 Chip King의 새된 비명소리간의 독특한 조화는 낡아빠진 전자음들과 함께 파괴적인 드럼위에 얹혀 원곡과는 사뭇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반면 [xoroAHbin]은 그동안의 The Body와 가장 먼 곳에 위치하는 시도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Chikatilo"의 기이한 아름다움은 난해하게, 동시에 찬란하게 청자에게 다가간다. [The Body / Sandworm]에서의 16분이라는 긴 시간동안 부리는 난동 "The Manic Fire" 또한 이제껏 들을 수 없었던 즉흥성을 가진, 그리고 이제껏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서정적인 The Body를 내포한 기나긴 실험이었다. 이와 같은 콜라보레이션의 홍수와 음향적 변화의 추구는 이젠 이들의 본질 중 일부가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실제로, The Body는 Maryland의 하드코어 밴드 Full Of Hell과의 또 다른 콜라보레이션 [One Day You Will Ache Like I Ache]을 완성하여 발매할 예정이며, 영국 출신의 전자음악가 The Bug와의 앨범도 제작 중에 있다.

    ***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슬픔과 분노를 표출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무거움들을, 기타 리프들과 한결같은 3-코드 진행에 기대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표현할 수는 없을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는 다른 종류의 음악들을 듣기 시작했고,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갔다. 요즘 나는 Taylor Swift같은 팝 음악을 정말 많이 듣는다. 똑같은 것들을 계속해서, 계속해서 듣다가 그런 팝 음악을 들어보는 것은 상당히 신선한 경험이다."
    Chip King, interview with 「The Bandcamp Blog」





    그리고 지금, The Body는 새로운 앨범을, 새로운 음향을 가지고 돌아왔다.

    밴드의 말을 빌리자면 [No One Deserves Happiness]는 "역사상 가장 추한 팝 앨범"이라는 목표 하에 만들어진 앨범이다. The Body, 바로 그 The Body와 '팝'이다. 이 조합이 가져다주는 이상함만큼이나, [No One Deserves Happiness]라는 제목이 전달하는 비관주의적인 뉘앙스만큼이나, 이 앨범은 신선하고, 기괴하고, 아름다우면서도, 파괴적인, 수작이다. 기본적으로 [No One Deserves Happiness]는 The Body가 그 동안 경험해 온 그리고 활용해 온 요소들을 전부 갖추고 있다. 단조로운 리듬 위에 이제는 친숙하게까지도 느껴지는 청아한 목소리로 시작하는 "Wanderings"는 마치 좀 더 가벼워진 [All The Waters…]를 듣는 것 같기도 하며, 성난 기타와 드럼 사이에서 울부짖는 "Hallow / Hollow"는 [Christs, Redeemers]의 불가항력적인 힘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마치 Xinlisupreme이 작업에 참여한 것 마냥 노이즈로 온갖 것을 긁어대는 "For You"나, 정말로 팝에서 영향을 잔뜩 받은 듯이 신나는 리듬과 시원한 목소리로 뻗어나가는 "Adamah"같은 곡들을 들어 보라. 이들이 이 앨범을 통해 또 다른 새로운 세계로 발을 내딛으려 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그러나 앨범을 통틀어서 가장 독특하면서도 괴이한 체험을 안겨 주는 곡은 무엇보다도 "Two Snakes"일 것이다. Beyoncé(바로 그 비욘세가 맞다)에게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는 이 곡은, 역동적이고 강렬한 베이스 리듬을 따라 기계의 목소리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차갑게 변조된 성가대의 목소리가 부유하는 가운데 오랜 협업자 Ben Eberle(Sandworm)의 음험한 그로울링과 Chip King의 절망에 가득 찬 단말마가 소름끼칠 정도로 녹슨 멜로디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가 곧바로 환영처럼 사라지는, The Body가 만들어 온 음향들 중 그 무엇보다도 이상한 황홀경이다. 이제까지의 몇몇 앨범들처럼, [No One Deserves Happiness]는 이전까지의 The Body와는 사뭇 거리가 먼 앨범이면서도, 동시에 너무나도 The Body스러운 앨범이다. The Body가 아니면 그 누가 이런 앨범을 만들 수 있겠나, 이렇게 아름다우면서도 추악한 음악들을.

    ***

    "말하자면, 만약 우리가 직설적인 팝 앨범을 만들 수만 있다면야 정말 멋질 것이다. 진심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는 꿈을 이루게 된 것이리라. 하지만 우리를 봐라. 우리는 짐승들이다. 우리는 그런 앨범을 만들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No One Deserves Happiness]는 우리의 슬픈 시도에 불과하다."
    Lee Buford, interview with 「PA'」





    지금으로부터 대략 35년 전, 호주의 Melbourn에는 The Birthday Party라는 밴드가 나타났었다. 5명의 청년들로 시작된 이 밴드는 이 세상을 말 그대로 '쓰레기장'이라고 묘사하며, 공포와 혐오를 밑바닥에서부터 남김없이 표출하고는 했었다. 이들은 현존하는 이 세계가 만약 천국이라면, 차라리 천국에 반기를 들고 폭동을 일으키는 것이 더 나을 정도라고 내뱉었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들의 말처럼 세상은 쓰레기장이나 다름없는 진창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우리는 어쩌면 저주에 가까운 운명을 부여받았는지도 모른다. 일이든, 인간관계든, 내면이든, 그 무엇이든지 간에, 늘 그러했듯이,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은 항상 우리와 조금씩 엇나가 있었다. 뭔가가 더 나아지는 일 보다는 그것에 무뎌지는 일이 보통 더 많이 일어날 것이고, 일상은 변화하기보다는 비슷하게 흘러가면서 때때로 조금씩 나빠지기도 할 것이며, 결국 그러다가 끝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예상이 가능한, 뻔한 방향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너무나도 높은 것 같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에 저항할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Douglas Adams처럼 냉소로 웃어넘길 수도 있겠고, '헤드플레이'처럼 '희망'이라는 것에 걸어볼 수도 있을 것이며, 뭐, The Birthday Party처럼 돼지처럼 약에 취한채로 스스로를 쓰레기들의 왕이라 자처하며 미친 것처럼 난동을 부릴 수도 있으리라.

    [No One Deserves Happiness]는 "Prescience"의 처절한 폭발 후 "The Myth Arc"의 기이한 평온함으로 끝을 맺는다. 마치 이 '세계'로부터 정말로 '탈출'한 것처럼. The Body는 언제나 추악한 세계와 그것으로부터의 탈출에 대한 음악을 만들어 온 밴드였다. 그리고 이들의 표현은, 들끓는 감정이 가득한 음악은, 너무나도 아름답고, 추악하고, 혼란스럽고, 강렬하다. 마치 가만히 듣고 있다 보면 이 세계를, 자기 자신을, 소름끼치는 '존재'들을 완전히 잊어버릴 수 있을 것만 같게. 이 축복받은 두 남자는 그렇게,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며 자유를 갈구하는 인간들을 가능한 한 모든 방식으로 표현하려 하고 있다.
    흠, 물론, 지하실에 스스로 기어들어가, 분노에 가득 찬 미치광이가 되어, 말하고 싶었던, 또는 말하고 싶지 않았던 모든 것들에 대해 대단한 장광설을 늘어놓는 것에는, '자유'가 있다. 그렇지 않은가?

    ***

    "나는 자신만의 비애를 갖는 것에는 어떤 카타르시스적인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이 세상에는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이 꽤나 있을 것이다. 만약 그 사람들에게, 내가 어렸을 적 Sylvia Plath를 읽고 느꼈던 그 감정들과, 내가 혼자가 아니었다는 깨달음을 느끼게 할 수만 있다면, 나는 나의 삶에서 내가 뭔가를 해낼 수 있었다고 할 수 있으리라."
    Lee Buford, interview with 「PA'」





    - ouii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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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
    「Steel For Brains] :: http://steelforbrains.com/post/49930585956/the-body
    「The Quietus」 :: http://thequietus.com/articles/05132-the-body-interview
    「Treble」 :: http://www.treblezine.com/27875-the-body-interview-on-the-fringes/
    「Ad Hoc」 :: http://adhoc.fm/post/body-interview/
    「The Bandcamp Blog」 :: http://blog.bandcamp.com/2016/03/18/pet-sounds/
    「PA'」 :: http://www.ponto-alternativo.com/the-body-look-at-us-were-anima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