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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tiny!: The Death of The Birthday Party
    [...]/[The Birthday Party] 2023. 3. 27. 13:17


    http://thequietus.com/articles/08590-the-birthday-party-junkyard
    http://thequietus.com/articles/16018-the-birthday-party-interview-nick-cave-and-the-bad-see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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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youtu.be/UhecfKyKxfU

    Nick Cave -- 큰 키에 비쩍 마른 이 남자는 뾰족한 머리를 한 채로 교수대로의 마지막 발걸음을 향하는 사형수의 불안감을 온몸에 휘감고 무대를 걸어다니고 있다 -- 는 베이시스트 Tracy Pew에게 헤드록을 걸고 있다. 싸구려 싸움을 벌이며 꿈틀거리는 Tracy Pew는 마치 The Village People에서 탈퇴당한 멤버 같다: 콧수염을 기르고, 몸싸움을 벌이는 와중에도 절대 벗겨지지 않는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말라빠진 몸을 여실히 보여주는 검정색 망사 티셔츠를 입은 이 남자 말이다.

    무대 위에서 격투를 벌이던 Nick Cave는 무대에 가까운 뼈, 연골, 이빨을 후려치기 위해 부츠를 신은 채로 발길질을 시작한다. 즉시 관객석에서 손들이 뻗어나왔고 분노와 혼란으로 일그러진 보컬과 그의 뒤틀린 동료를 잡아챘다. 얼마 안 있어 그 둘은 뒤로 넘어져서 무대 아래로 떨어졌으며, 반짝이는 그들의 눈은 무한한 잔혹성을 두른 주먹과 발에 둘러싸인다. 복수의 주먹이 그를 향하는 와중에도, 뱃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Nick Cave의 목소리는 끊기지 않으며, Tracy Pew의 베이스는 자신을 공격했던 자를 광적으로 찌르는 동작을 취한다.

    음악은, 싸구려 연마제와 섞인 쓰레기같은 변종 스피드(마약의 일종)의 힘으로 흘러가는 것이 분명해 보이는 블루스와 록앤롤과 프리재즈의 불경한 충돌은, 끊김없이 울려퍼지고 있다. 기타리스트 Rowland S. Howard, 너무 수척한 나머지 하루에 3끼도 제대로 못 섭취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 기타리스트는 눈앞에 놓인 폭력의 광경을 조소하고 경멸하는 암흑의 눈빛으로 바라보며, 마치 그 두 명의 육체가 당장 관객들에 의해 찢겨지더라도 별로 놀라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의 기타에서 울려퍼지는 굉음과 파열음은 철선을 자를 수 있을 것만 같은 날카로운 손가락에서 나오고 있다.

    그의 왼쪽에는 세컨드 기타리스트 Mick Harvey가 서 있다. 파트너와는 다르게 그의 얼굴은 마치 이러한 혼돈을 너무나도 많이 목격한 나머지 더 이상 그 어느것도 재미있다고 생각할 수 없게 된 것 같이 질린 표정을 보이고 있다. 그들의 뒤에는 드럼을 강타하는 Phill Calvert가 있으며, 그는 자신의 앞에서 발생하고 있는 대혼란에 맞춰 박자를 만들어내기가 버거울 뿐이다. 당시에 이 공연이 그에게는 밴드와 함께 하는 마지막 공연이었으며, 밴드가 런던의 불친절한 환경을 떠나 서베를린의 야성 속에서 4인조로 활동을 하게 될 줄을, 그는 알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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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youtu.be/8J8Ygt_t69A

    짧은 존재기간동안, The Birthday Party는 Nick Cave, Mick Harvey, Tracy Pew, Rowland S. Howard와 Phill Calvert(1982년까지만)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비록 단 5년이라는 아주 짧은 기간동안만 활동했었고, 그들의 고향인 호주 멜버른 밖에서는 멤버 5명중 3명만이 나와서 활동할 수 밖에 없었지만, 그들이 가져온 충격은 가히 대지진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였었다. 그들의 공연을 실제로 본 사람들, 심지어 밴드의 멤버였던 사람들조차도, The Birthday Party에 대해 말할 때는 언제나 기억을 떠올리며 깊은 심호흡을 한다 - 혼란스러운 형용사들을 난무하면서 비교가 불가능하다는 설명을 덧붙이며. 심지어 Mick Harvey 조차도 당시 The Birthday Party가 가지고 있었던 마력에 대해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멋진 공연을 했을 때엔, 그 공연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가 없었다. 마치 특정한 종류의 특수한 체험처럼, 거기엔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뛰어넘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는 기억한다. "그건 카타르시스와 다른 여러가지 것들 사이의 괴상한 크로스오버였다... 많은 사람들에게 중요한 경험이 되었다. The Birthday Party를 본다는 것은, 자신의 세상이 바뀐다는 것을 의미했다."

    The Birthday Party의 무질서한 광기를 직접 목격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들의 공연은 도저히 예측불가능한 것이었으며 대기는 미지의 공포로 덮여 있었다고 말한다. "우리 공연은 항상 경계선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었으며, 불안한 에너지로 넘쳐났었다." Mick Harvey는 말한다. "어떤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었다. 가끔씩은 폭력사태가 발생하기 직전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었다." Bad Seeds의 프로듀서였던 Flood는 당시의 "무법지대"를 기억해내며 말한다. "도저히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종잡을 수 없는 에너지가 넘쳐났었으며, 뭐랄까 '서커스'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 사자가 저 남자의 머리를 물어뜯어버리게 될까? 저 남자가 줄타기를 하다가 떨어져 버리게 될까?" Foetus로 알려진 Jim Thirlwell은 Nick Cave & The Bad Seeds에서 잠깐 활동했었는데, 그 또한 말한다: "그들은 Southern Baptist 교도들에 비견할 만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고, 모두에게 굉장한 카타르시스를 주는 밴드였었다." 이와 같은 예측불가능성은 밴드가 언제라도 자폭할 수 있을 상황을 만들어내었다. 결과적으로, 그들이 2번째이자 마지막 정규앨범인 [Junkyard]를 발매한 이후, 밴드는 1년가량밖에 못 버티고 해체하게 된다.

    [Junkyard]를 녹음하던 무렵부터 밴드 내에서의 갈등이 발생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영국에 마련했던 새 거처는 불결하고 끔찍했으며, 혐오스러운 곳이었다 - "Rowland는 런던을 일종의 '모욕'으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Nick Cave는 2011년 Rowland S. Howard를 다룬 다큐멘터리인 [Autoluminescence]에 등장하여 회고했다 - 게다가 밴드 멤버들의 마약남용과 내부의 긴장은 밴드의 끝이 시작되는 것에 기름을 부을 뿐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이 시기가 밴드의 최고점이었지만, 동시에 개별 멤버들은 나락으로 추락하고 있던 시기이기도 했다. Magazine의 멤버였다가 후에 Bad Seeds의 멤버도 된 Barry Adamson은 [Junkyard]의 몇몇 곡에서 베이스 연주를 했었다. The Birthday Party의 원래 베이시스트였던 Tracy Pew가 잦은 음주운전으로 호주 감옥에 수감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Adamson은 당시 상황을 기억한다: "혼란스러웠다... 정말 많은 마약과 정말 많은 광기가... 넘쳐났었다."

    The Birthday Party의 세션들 중 하나를 담당했었고 Bad Seeds 또한 오랫동안 담당했던 프로듀서인 Nick Launey는, 4AD 레이블에서 그의 작업물 중 하나인 PiL의 [Flowers of Romance] 앨범을 들어보곤 끌어들인 인물이었는데, 당시 The Birthday Party의 세션을 기가막히게 잘 기억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같이 작업했던 헤로인 사용자는 바로 Keith Levene(in PiL)이었다. 처음에는 대체 어째서 Keith Levene이 가끔씩 화장실로 사라져서는 도무지 돌아올 생각을 않는건지 알 수가 없었는데, 그러다가 돌아왔을 때 그는 영감을 한껏 받은 상태였거나 굉장히 지쳐서 쓰러지기 직전인 상태였었다. ... 나는 The Birthday Party를 Townhouse 스튜디오에서 처음으로 봤다. 2번 스튜디오를 가장 싼 임대료로 대여하는 데 성공했으며, 조건은 밤 12시 이후만 작업이 가능하다는 것이었고 이는 The Birthday Party에겐 최적의 조건이었다. 그들은 장비를 가지고 11시쯤에 도착했으며 당시 안내직원이 내게 전화했던 내용이 생각난다 - "제가 보기에 당신의 밴드가 도착한 것 같습니다 - 적어도 지금 도착한 사람들이 밴드의 일부인 것 같기는 합니다. 그들을 로비에서 데려가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 사람들이 지금 다른 고객분들을 무섭게 하고 있습니다." 아마 그 스튜디오의 다른 방엔 Queen도 있었던 것 같다. 2번 스튜디오의 낮 시간 사용자는 Phil Collins(Genesis 멤버)였고, 11시 무렵에는 이미 짐을 다 챙겨서 떠난 후였다. The Birthday Party는 며칠간 잠을 한숨도 못 잔 것처럼 걸어들어왔고, 모두가 교회에서 방금 나온 것 처럼 멋진 검정색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 교회가 들쥐들이 바글거리는 파괴된 교회였던 것 같은 그런 모양새였고, 그들은 몇 주간 씻지도 않고 있었다. 호주에서 온 그들은 사실 굉장히 공손했는데, 하지만 그 때에는 빨리 세션을 시작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었다 - 이 '성급함'은 Nick Cave가 아직도 가지고 있는 성질이다. Goth라는 단어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던 시절이지만, 그리고 요새 goth라는 말의 의미는 많이 변질되었지만, 아무튼 'Release The Bats'라는 노래를 진짜 뱀파이어같이 생긴 사람들과 녹음했던 경험은 진짜 끝내줬다!"


    http://youtu.be/GliB0Z2EM2I

    "우리는 두 곡, 'Release The Bats'와 'Blast Off'를 하룻밤동안 녹음했었다. 중간쯤 하다가 누군가가 '화장실로 사라지는' 것을 알아차렸는데, 그런 행위가 오히려 세션에 열정과 긴장을 더 불어넣어 주었다. 가끔은 주목할 만한 논쟁이 터져나오기도 했는데, 가끔 논쟁의 화살은 불공평하게 Phill Calvert(드럼)에게 겨눠졌었다. 내가 느끼기에 그는The Birthday Party에 잘 맞지 않는 사람 같았고, 좋은 사람이었으며, 마약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거기서 일어났던 일이 뭐든간에 당시의 세션에는 아무 영향도 없었긴 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축적된 의견 충돌이 있었고, 나는 그게 뭔지 잘 몰랐었다."

    "다른 놀림거리가 Nick Cave 였다는 것을 아마 다들 믿지 못할 것이다." Nick Launey는 기억한다. "세션을 이끌고 있는 것은 분명히 Mick과 Rowland였으며, 그 둘은 굉장히 독선적인 인물들이었다. Nick이 스튜디오에 들어가서 'Blast Off'의 보컬을 녹음하고 있었을 때, Mick과 Rowland는 "Blaaaaaaaaaaaast Off" 부분을 계속해서 다시 하라고 주장했었다. 불쌍한 Nick은 거의 숨이 멎을 정도로 소리를 질러댔고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반면 이 와중에 Mick과 Rowland는 낄낄대면서 "다시 하라고 해, 다시 하라고 해! ㅋㅋㅋㅋㅋㅋㅋ" 거리고 있었다. 마침내 나는 결정을 내리고 20대 청년이 지을 수 있는 가장 심각한 표정으로 맨 처음에 녹음했던 버전이 제일 낫다고 그 둘을 설득했다. 둘은 납득했으며 정신을 차리고는 농담이 너무 과했다고 인정했으며, 그러고는 곧바로 Phill을 놀려대러 떠났었다!"

    "나는 Mick과 Rowland가 악마같다고 느꼈지만, 동시에 멋진 사람들이기도 했다. 그들은 굉장한 의욕과 명확한 방향을 가지고 있었다. 언젠가 Rowland과 Mick이 기타 사운드에서 독침을 쏘는 벌 같은 분위기가 스며나오길 원했으며, 나는 EQ를 최대한으로 조절해 보았다 -- 그런데 그 정도로는 그들의 성에 차지를 않았다. 그래서, Equaliser를 2개나 더 연결해서, 낮은 음들을 완전히 제거하고는 3,000 Hz 부근의 소리를 최대한으로 증폭시켰다 -- 사람이 '고통'을 느끼는 주파수 영역을. 나는 Nick이 고통받는 모습을 보고는 조금 화가 나서 "그래 한번 갈데까지 가 보자" 같은 느낌으로 질러댄 것이었는데, Mick과 Rowland는 오히려 결과를 매우 좋아했다! 믹싱은 전부 그런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 모든것을 뒤틀어버리고 최대한 귀에 거슬리도록, 최대한 공격적으로 들리도록."

    이 세션이 끝나고 Phill Calvert는 밴드에서 퇴출당했다. 명분은 그가 드럼 파트를 제대로 연주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지만, 성격 차이 문제가 큰 원인을 제공했다는 것 또한 명백했다. Rowland S. Howard는 1983년 [Offense Newsletter]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우리 곡이 점점 더 예측불허로 나아가면서, Phill은 갈수록 드럼 비트를 생각해 내지 못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Mick이나 다른 사람들이 드럼 비트를 만들어서 그에게 알려줘야만 했고, 때때로는 그 주어진 드럼 비트조차도 연주하지 못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는 Phill이 '정통파' 록 드러머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정통 록 비트를 연주하는 데에는 좋은 드러머였지만, 개인적인 비전은 상당히 좁은 사람이었다. 심지어, 1981년엔 우리가 Beatles 곡을 커버해야 한다고 주장한 적도 있었다. 그가 밴드에 기여한 것이 다 그런 식이었고, 그러니 그는 밴드에 대해 나머지 멤버들과는 상당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http://youtu.be/hDbEj_LHPAY

    The Birthday Party가 유명해지면서, 밴드와 관객 사이의 관계 또한 변하기 시작했고, 이 변화의 여파는 곧 있을 밴드의 죽음에도 미치기 시작했다. 밴드가 보여주는 강렬한 공격성이 관객들에게 가져다 주던 충격과 공포는 오히려 어떤 기대감으로 변질되었다. "모든 공연에서는 관객이 필요했고 관객으로부터의 진정한 반응이 필수적이었다." Mick Harvey는 말한다. "사람들은 점점 '군중들'처럼 굴기 시작했고, 따라서 반응도 점점 바뀌어갔고, 특별히 이번 쇼는 얼마나 격렬하고 엄청날지에 대한 일종의 '기대'가 퍼지면서는 더 많이 변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충격'이 존재할 때, 즉 사람들이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고 그냥 왔다가 이 격렬한 쇼를 마주하고 놀랐을 때에만 공연이 성공적이었다."

    이는 곡 자체 뿐 아니라 공연 방식까지 변화시켰다. Mick Harvey는 이러한 변화에 대해 말한다: "1983년쯤 우리는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기 위해 점점 더 느린 곡들을 연주하기 시작했는데, 관객들이 어떤 기대를 갖고 우리가 이를 충족시키는 것은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우리가 공연을 시작하자마자 곧바로 사람들이 광분하며 즐기는 반응을 보이는 것 따위를 원하지 않았다. 우리는 관객들이 그냥 친숙한 반응을 보여주는 것 보다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 사건에 제대로 빠져들어가기를 바랬다. 우리는 평범한 반응을 바라지 않았다."

    The Birthday Party의 무대에 불을 붙이는 데에는 관객의 역할이 언제나 중요했었다. Chris Bohn, 당시 [NME] 기자이자 1983년 The Birthday Party의 커버 기사를 썼었으며 지금은 [The Wire]지의 에디터인 그는 말한다: "Nick Cave는 정말 심할 정도로 사디즘적인 말들을 관객들에게 던져댔으며 이는 긴장감과 적의를 촉발시켰다." 이와 같은 적대감은 밴드가 해체하기 직전에 보여주었던 순수한 증오에 가까울 정도로 올라가고는 했었다. "나는 어떤 방식으로든지 간에 새로움을 추구하는 저 수많은 밴드들 중 The Birthday Party보다 더 멍청하고 덜떨어진 관객들을 모으는 밴드를 본 적이 없었다." Nick Cave는 1983년 인터뷰에서 말한 바 있다. "물론 모든 관객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무대에서 볼 수 있는, 앞의 몇 줄에 서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록 커뮤니티에서 가장 저능아인 놈들이었다."

    밴드는 베를린을 새 거처로서, 런던에 대한 안티테제로써 발견하였고, 그 곳에서 잠깐이나마 활력을 되찾았다. 베를린은 밴드가 마지막 시간을 보내면서 마지막 앨범을 녹음하던 곳이었다. [The Bad Seeds]와 [Mutiny!]의 일부를. "생각해 보자면 베를린의 모든 것은 우리에게 잠깐의 진통제 같은 역할이 되어 주었던 것 같다." Mick Harvey는 기억한다. 하지만, 동시에 Nick Cave와 Rowland S. Howad 사이에 새롭게 발생한 긴장감은 점점 더 심해지기 시작했다. "Nick과 Rowland는 점점 작곡 권리에 대해 다투기 시작했고, 특히 Rowland는 이제 기타만이 아니라 보컬 등등 다른 것들도 하고 싶어하는 모습이 명백하게 드러났다. 우리는 그 에너지, 우리가 살고 있는 그 에너지를 가지고 연주를 했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상당히 위태로운 존재 방식이었으며, 모든 것이 정말 혼돈 그 자체였기에 밴드 바깥의 일들은 전부 정상적으로 돌아가야만 했었다. 그리고 우리가 투어를 돌던 방식은, 상당히 미친 짓거리들이었다... 언젠가 투어를 도는 도중 Nick이 기타를 들고 앉아서 향후 [The Bad Seeds] 수록곡이 될 것들을 만들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내가 '왜 Rowland하고 같이 곡을 쓰지 않는거야?'라고 물어보자, 그는 '이제는 Rowland하고 같이 작곡하지 않을 거야.'라고 대답했었다. 나는 '그래, 잘 해라. 밴드에 큰 문제가 생겼군.'하고 생각했었다. 만약 밴드의 두 작곡가가 서로 등을 돌린 채 눈도 안 마주친다면, 밴드가 좋게 끝날리가 없는 것 아닌가."


    http://youtu.be/zF18gAm3r5g

    밴드의 마지막 앨범인 [Mutiny!]는 절반은 베를린에서, 절반은 런던에서 녹음되었고 완성되었다. Rowland S. Howard와 Nick Cave간의 신경전은 점점 더 심해지기만 했고, Nick Cave는 혼자서만 작곡하기를, 그리고 자신이 개인적으로 작곡한 곡은 아예 Rowland S. Howard와 같이 녹음조차도 안 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Chris Bohn은 이 시기의 밴드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그들의 아이디어는 점점 갈라지기 시작했고 쉽게 해결되지도 않게 되었다. Rowland는 Nick이 자신의 곡을 부르길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당시의 녹음 세션은 서로간의 긴장감이 너무 심했으며, 피로감에 찌들어 있었고, 문제투성이였다. Mick Harvey는 그 당시를 고통스러웠다고 기억한다. "바깥에서 볼 때는 밴드의 창조력이 아직 전혀 닳아빠지지 않은 것 처럼 보였겠지만, 내가 장담하건대 당시 우리의 창조력은 바닥까지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Mutiny!]에 수록될 5~6곡을 만드는 일은 진짜 바위에서 피를 짜내는 것 같이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비록 결과물로써 나온 [Mutiny!]는, 말라비틀어져가는 밴드가 내놓은 졸작이라기보다는 그 어느 때보다도 폭발적이고 진보적이며 사악한, 훌륭한 작품이었으나, Heiner Mühlenbrock가 촬영한 밴드의 모습을 담은 영상(http://youtu.be/4Lc4bna6XKE)을 보면 밴드의 당시 분위기를 잘 알 수가 있을 것이다. 그 영상은 [Mutiny!]의 베를린 세션을 담았고, 'Jennifer's Veil'과 'Swampland'의 녹음 과정을 담아 스튜디오를 잠식해가던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를 보여준다. 멤버들 간의 대화는 딱히 특별할 것이 없지만, 문제는 대화가 아닌 다른 것에서 분명하게 보여진다. 소통은 완전히 단절된 것 처럼 보이며 부자연스러운 침묵만이 공간을 떠돌아다닌다. Nick Cave는 Rowland S. Howard와 함께 'Jennifer's Veil'을 끝내는데에 전혀 의지가 -- 또한 어느 정도는 능력도 -- 없어 보이며, 절망적인 분위기만이 공기를 물들일 뿐이다. 밴드는 결과물에 전혀 만족하지 못하는 듯 보이며, Nick Cave는 놀라울 것도 없이 헤로인에 취해 졸다가 어떻게든 곡을 끝내려고 발버둥친다.

    Heiner Mühlenbrock의 25분 영상은 [Mutiny! - The Last Birthday Party]라는 이름으로 2008년 팬 사이트에서 비공식 DVD로 발매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영상은 스튜디오의 Nick Cave가 가진 힘과 아우라를 보여주는 몇 안되는 자료이며, 이는 'Swampland'의 보컬 파트를 위해 저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독설과 비명을 열정적으로 내뱉는 Nick Cave의 모습에서, 내장에서부터 무언가가 기어나와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은 그 모습에서 보여진다. 영상은 낙담한 Nick Cave가 헤드폰을 벗어던지고 깊은 한숨을 쉬는, 그의 뚜렷한 절망과 짜증을 보여 주는 장면으로 끝나며, 이는 당시 밴드의 상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Heiner Mühlenbrock는 당시 세션을 아주 "친밀"했지만 동시에 "마약과 함께 밴드에 만연한 긴장감"이 분위기를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고 기억한다.

    그 세션에는 Einstürzende Neubauten의 Blixa Bargeld 또한 참여하고 있었는데, Einstürzende Neubauten은 베를린 시기의 The Birthday Party가 친밀감 및 (어쩐지 이해가 가는) 동질감을 느끼고 친하게 지내던 밴드였다. Nick Cave는 1982년 암스테르담 공연을 돌던 도중 TV를 통해 그들을 미리 본 적이 있었다. "Blixa Bargeld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남자였다. 그는 검은 레오타드에 검은 라텍스 바지, 검은 라텍스 부츠를 신고 있었다. 그의 목에는 완전히 좆된 기타가 걸려 있었다. 그의 피부는 뼈가 보일 정도로 투명했으며, 그의 두개골은 완전한 재앙 그 자체였으며, 난도질당한 채로 피딱지 투성이였다." Blixa Bargeld는 'Mutiny In Heaven'에서 기타를 연주했으며, 이는 Nick Cave - Rowland S. Howard 사이의 관계가 좀 더 틀어졌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었다: Nick Cave는 이제 작곡을 Mick Harvey와 같이 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기타마저도 Blixa Bargeld의 연주를 사용하게 되었던 것이다. 사실, Mick Harvey에 의하면 1984년 Blixa Bargeld와 함께 세션을 진행한 것은 밴드를 조금이나마 더 살아있게 해 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는 세션에 있던 모든,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대신에 지휘를 했다. Blixa가 세션을 그나마 진행이라도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http://youtu.be/jcaXD--UINo

    Mick Harvey는 Nick Cave가 당시 보여주었던 태도를 기억한다. "Nick은 The Birthday Party가 사실상 끝났다고 말했으며 더 이상 밴드의 음악에 자신을 연결지으려 하지 않았으니... 아예 못을 박았다고 볼 수 있었다." 그 말은 실제로 1983년 [Australian Rolling Stone]지에 나왔었는데, 인터뷰에서는 Nick Cave가 밴드에 대해 갖는 의견이 이미 나빠질대로 나빠진 상태였고 그가 밴드를 떠나 다른 일을 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누구라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 밴드가 오래 활동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터뷰에서 그는 말했다. "이전에도 우리는 해체할 거라고 말했었지만, 아마 해체 전에 밴드의 모든 것을 담은 앨범 하나를 발매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마도 그 앨범은 존재감이 무척 강하여 배경음악 같은 것으로는 틀 수 없는 종류일 것이며, 최후의 성명서 같은 것이 될 것이다 -- 그 다음에 아마 우리는 해체할 것이고, 이번 앨범이 아마 바로 그 앨범이 될 것 같다... 나는 The Birthday Party가 그렇게까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그냥 음악일 뿐이고, 우리 밴드는 버리기에 전혀 아깝지 않은 종류의 밴드이다. 우리가 연주하는 음악은 쓰레기다. 완전한 쓰레기들이며, 따라서 우리 밴드는 완전하게 없어져도 아무런 상관 없는 밴드이다."

    Mick Harvey는 밴드가 잠시 쉬는 기간을 가져야 한다고 결정했다. 모든 멤버들이 그것에 동의했지만, 돈 문제가 기어나오기 시작했고, 따라서 호주에서의 마지막 투어를 돌아보는게 어떻냐는 의견이 나왔다. Mick Harvey는 이 의견에 반대했다. "나는 호주로 다시 돌아가야할 이유를 전혀 찾을 수 없었다." 그는 말한다. "호주로 돌아가서 연주한다는 것에는 어떤 모험도 없었다. 우리에게 긍정적으로, 그리고 예술적으로 다가올 수 있어 밴드를 다시 돌아가게 할 만한 것들이 있다면, 호주로 돌아가는 것은 전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냥 엄마를 다시 보려고 돌아갈 때의 핑계에 불과했다. 우리가 그 전에 마지막으로 했던 일은 20일간의 미국 투어였는데, 그것은 진짜 모험이었기 때문에 정말 환상적인 투어였고, 대부분의 관객들이 우리를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신선함을 가져다 주었었다 -- 관객들과의 근본적인 상호작용, 충격으로부터 나오는 에너지가 있었던 것이다."

    Henry Rollins (Black Flag 보컬), The Birthday Party를 미국 투어에서 처음 보고는 ("나는 맨 앞줄로 가서 Rowland의 미친 기타연주를 전부 보았다. 당시 공연을 녹화한 영상도 가지고 있는데, 진정으로 강력하고, 환상적인 공연이었다.") 1984년에는 Nick Cave와 같이 시간을 보내곤 하던 이 남자는, 밴드의 마지막을 최후의, 그리고 밴드에 잘 어울리는 -- 하지만 불완전한 -- 결말이었다고 말한다. "[Bad Seeds]와 [Mutiny!]는 완벽한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런 것을 만든 밴드가 있다는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다. 그 앨범들을 넘어서는 작품이 나올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The Birthday Party를 좋아했지만, 그만큼이나 밴드가 결국에는 끝나야만 했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면 각기 제 갈길을 가야 하는 것이다." Chris Bohn 또한 2개의 앨범들을 결말에 어울리는 완벽한 작품들이라고 생각한다. "그 2개의 EP들은 The Birthday Party를 어떤 극한점으로 올려놓았다." 그는 말한다.

    1983년 여름, 밴드는 영국으로 돌아가 [Mutiny!] 작업을 끝마친다. Jessamy Calkin -- Lydia Lunch의 친구이자 그녀에게 The Birthday Party를 소개한 사람 -- 은 1년 전에 영국에서의 유일한 The Birthday Party 기사를 [The Face]지에 실었던 적이 있었던 사람이었으나, 그녀는 당시의 인터뷰를 악몽이었다고 기억한다. "고통스러운 경험이었다... Nick은 약속시간에 늦게 나타났었는데 약을 빨아댄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기분이 매우 안 좋아 보였다. 그 인터뷰는 내가 [The Face]지를 위해서 한 첫 인터뷰였고, 따라서 내 질문들은 완전 멍청했었다." 1983년 여름 그녀는 밴드의 친구가 된다. "언제 하루는 Brixton에 있었는데, (당시 Nick Cave의 연인이었던) Anita를 중고물품 가게에서 만나게 되었었다. 그녀는 집주인과의 인터뷰를 위한 드레스를 사고 있었다: 그녀는 Nick과 자기가 살 방을 찾고 있었고, Nick은 그 때 호주에 가 있었다 (마지막 투어를 위해서). 그녀가 구한 방은 굉장히 특이한 방이었는데, 마당으로 둘러싸인 가짜 튜더 양식의 집이었고 수영장도 있는 건물이었다. 다른 거주민들이 바베큐 파티를 할 동안 Nick은 가죽바지와 러닝셔츠 차림으로 수영장 근처를 어슬렁거리고는 했다. 그 여름, 나는 그들과 많은 시간을 같이 보냈었다."


    http://youtu.be/lprTb33i-Yo

    Britannia Row 스튜디오에서 가진 마지막 The Birthday Party 세션에서, Calkin이 기억하는 Nick Cave의 모습은 다음과 같았다: "Nick은 한밤중 내내 있던 스튜디오에서 정오즈음에 나와서는 'Anita가 먹을 거리를 사서 가야 하는데'라고 중얼거리곤 했다 -- 어째서인지 Anita는 집 열쇠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돈도 가지고 있지를 않았었다. 밴드에게는 정말 많은 마약이 있었으며 Nick은 밤을 꼴딱 새며 으스스한 가사를 써 댔다 ... Nick이 앉은채로 꾸벅꾸벅 졸면서 'Cabin Fever'를 공책 빼곡히 꾸물꾸물 써내려가던 것이 기억난다. 그의 방은 난장판이었고 위협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는데, 음악과 완전히 맞아떨어지는 곳이었다."

    [Mutiny!]는 8월 무렵에 완성되었으며, The Birthday Party를 완전히 끝낸 앨범이 되었다. 9월이 되자 Nick Cave는 새 밴드를 결성하기 위해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으며, 첫 목표는 Mute 레이블에서 [Man Or Myth]라는 이름의 솔로 EP를 발매하는 것이었다. 이때즈음 해서 Nick Cave는 그의 친구이자 예전에 투어를 같이 돌았던 Die Haut를 Rotterdam에서 열린 페스티벌에 초대하기도 했다. Calkin이 기억하기로는, "우리는 페리 선실에 모든것을 우겨넣었다. 암페타민(마약의 일종)을 양말 속에다 쑤셔넣고 다녔다."

    9월 무렵 Nick Cave는 자신과 Mick Harvey, Jim Thirlwell, Barry Adamson, Blixa Bargeld로 구성된 새 밴드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들은 The Garden Studios에서 Nick Cave가 작곡한 몇 곡들을 녹음했으며, Mark "Flood" Ellis가 세션의 엔지니어로 활동했었다: "Marc Almond의 소개로 Nick과 만나게 되었는데, Nick은 자기가 하려는 음악을 좋아하면서도 엔지니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었다. Mute 레이블의 Daniel Miller의 전화를 받고 사무실로 갔었을 때, 나는 Depeche Mode 작업을 해 보라는 말을 듣게 될 줄 알았었기에, 'Nick하고 작업해 보는 건 어때?'라는 말을 들었을 때 꽤나 놀랐었다. 물론 대답은 '멋진데!' 였다."

    그 세션은 The Birthday Party와는 명백히 다른 것이었다. 세션의 주 목표는 'Box For Black Paul', 9분에 달하는 피아노 곡이자 어스름한 톤에 으스스하고 음울한 분위기를 풍기는 곡이었다. 치명적인 흉폭함과 격렬함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이전보다는 훨씬 정제되고 구조를 갖추게 되었다. 사라진 것은 Rowland S. Howard의 어지럽게 얽힌 기타 난장판이었으며, 새롭게 들어온 것은 Blixa Bargeld의 어지럽게 얽힌 기타 소리였다. Blixa Bargeld는 그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과 함께 -- 변칙 튜닝과 자신의 기타에 대해 갖는 혐오감 -- 산발적인 강풍과 불쾌한 분위기들의 연기를 피워냈다. Rowland S. Howard의 기타를 강산성 용액의 위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는,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공포스럽고 불안한 감정을 불어넣는 녹슨 줄이라고 한다면, Blixa Bargeld의 기타는 박살난 창문으로 들어오는 차디차고 적막한 바람, 시커먼 한밤중에 청자의 뼛속까지 건드리는 바람과도 같았다. Nick Cave는 2014년 [New York Times]지 인터뷰에서 Bilxa Bargeld에 대해 이와 같이 말한 바가 있다: "그는 언제나 자기 기타에 대해 조심스럽게, 그리고 혐오감을 가지고 접근하곤 했다."


    http://youtu.be/d4JAMKCZxss

    Flood 또한 세션을 기억한다. "The Garden 스튜디오는 정말 생생한 소리를 들려주었지만 동시에 소리를< 이상하게 뒤틀기도 했었는데, 특히 심벌즈와 기타 소리가 굉장히 혹독하게 녹음되는 곳이었다. 이 때문에 녹음은 내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는 했다." 이 단계에서 세션은 아직 명확한 방향이 없었다. "The Garden에서 진행한 첫번째 세션은 그냥 몇 개의 트랙을 녹음하고는 그 이후에는 어디로 갈지 알 수가 없었던 세션이었다." Barry Adamson은 기억한다. 그들은 [From Her To Eternity]에 수록되게 될 몇몇 곡들에 대한 작업을 했다 -- 'Saint Huck', 'Wings Off Flies', 'A Box For Black Paul', 그리고 최종본과는 완전히 다른 정도인 초판 'From Her To Eternity'까지.

    Jim Thirlwell의 역할은 상당히 짧았다. "Nick과 나는 'Wings Off Flies'를 같이 작곡했었는데, 런던에 있는 Lydia Lunch의 방에서 그녀의 피아노로 작곡했었다." 그는 말한다. "그녀는 가사를 좀 가지고 있었고, 그는 멜버른에서 온 Pierre Voltaire와 가사를 만들었었다." Jim Thirlwell은 [From Her To Eternity]를 만드는 데에 있어 밴드에 기여를 했지만, 얼마 되지 않아 밴드를 떠나게 되었다. "어째서인지 나는 그 프로젝트에서 탈퇴되었고, Some Bizarre 레이블과 계약을 맺고 세션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Hole] 앨범과 그 무렵 발매한 모든 12'' 들이 될 작업을 했다." 그는 기억한다. 그러나, Mick Harvey는 당시 녹음과정에 있었던 충돌을 기억한다. "Jim의 작업방식은 우리와 잘 맞지 않았다. 그는 혼자서 일을 하는것에 익숙해져 있었으며 스튜디오 내 물건들을 배치하는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이 있었고, 우리는 어기적거리며 돌아다녔으니, 두 방식은 그렇게까지는 잘 맞지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Jim Thrilwell과 Nick Cave는 세션이 끝난 후에도 곧장 같이 작업을 하고는 했다. "세션이 끝날 무렵 Lydia가 와서는 뉴욕의 Danceteria에서 열릴 83년 할로윈 파티에서 공연을 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 왔고, 그녀는 나와 Nick, Marc Almond 넷이서 풍자극 같은 것을 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Jim Thirlwell은 말한다. "그룹 이름은 The Immaculate Consumptive였고 우리 모두 계획을 마음에 들어했으며 보수도 괜찮은 일이었다. 뉴욕에 가서 그런 일을 벌이는 것은 썩 괜찮아보이는 일이었고, 우리 넷은 서로 친하기도 했으며, 그래서 어울리면서 여러가지를 했다."

    그 풍자극은 3번정도 공연된 후에 없어졌다. Chris Bohn은 이 공연에 대한 기사 또한 [NME]지에 썼었다. "내가 본 공연들 중 가장 훌륭한 공연들의 하나였다." 그는 기억한다. "환상적이었지만, 오래 갈 공연은 될 수 없는 것이었다. The Birthday Party처럼 말이다."

    Jim Thirlwell은 당시 공연의 셋업을 기억한다. "Nick은 'In The Ghetto'를 불렀고, 아마 'Box For Black Paul'도 불렀던 것 같은데, 피아노와 목소리만 가지고 공연을 했었다. 나는 Nick과 Barry가 하던 곡을 연주했으며, 적어도 한개 이상은 Foetus 곡도 공연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서는 멤버들 전부가 같이 어떤 곡을 연주했던 기억이 있다. 그 공연은 풍자극 같은 것이었다 -- 우리는 Lydia와 함께 몇몇 곡을 연주하는 것으로 시작했으며, 그 곡들에서 나는 색소폰을 불었고, 그 다음에는 나와 Marc가 같이 색소폰을 연주했으며, 그러고 나서는 듀엣곡 같은 것을 부르거나 그랬었다... 그 곡들은 굉장히 좋았고, 에너지도 넘쳤지만, Nick은 'Box For Black Paul'을 공연할 때 언제나 곡을 끝내지 않는 것은 불만족스러웠다. 그는 그 곡을 대략 5분정도만 연주하다가는 '어, 이런 식으로 몇 개의 verse가 더 나오고 끝납니다'라고 말하고는 끝내버렸다. 내가 기억하기로 그는 단 한번도 그 곡을 완주하지 않았었다. 내 생각에 우리는 밴드라고 볼 수 없는 집단이었다: 우리는 그냥 모여서 서로의 곡을 불러주는 친구들에 불과했다. 악기를 들고 같이 곡을 작곡한다거나 하는 일은 아니었다.


    http://youtu.be/ItRkxdZRo8g

    Jessamy Calkin 또한 그 공연을 돌 때 함께 있었고, 그 때를 상당히 힘든 시간이었다고 기억한다. "나는 말하자면 투어 매니저 같은 역할이었다. 꽤나 까다로운 일이었는데, Chris Bohn과 Anton Corbijn도 같이 있었다. Chris는 [NME]지에 멋진 기사를 써 주었다: 기억나는 대목이 'Nick은 Lydia의 코브라에 맞서서 온화한 몽구스를 연기했다...' 인데 이 비유는 당시 실제로 Lydia와 Nick 사이에 존재하던 긴장감을 절묘하게 표현한 글이었다. 당시 Lydia는 Jim과 사귀는 사이였었다. 뉴욕의 Danceteria에서 했던 공연이 기억난다. Jim의 공연은 완전히 격렬함 그 자체였고, 그 다음엔 Nick이 올라와서 'Black Paul'이나 'In The Ghetto'를 연주했다. 모두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그들 사이에는 경쟁심이 상당했었다. 많은 것들이 기억나지는 않는게, 그 공연도 마약을 엄청나게 하고 다니던 공연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중개인 역할을 하게 되었었는데, 그때 Lydia와 Nick의 사이가 꽤나 안좋았었기 때문이었다."

    1983년 12월과 1984년 1월, 새로운 라인업의 밴드가 호주에서의 공연을 시작했다. Plays With Marionettes의 멤버였던 Hugo Race가 기타리스트로 참여했으며 (Blixa Bargeld는 Einstürzende Neubauten일 때문에 바빴다), Barry Adamson이 세컨드 기타, Tracy Pew가 베이스, Mick Harvey가 드럼이었다. [Man Or Myth tour]라고 이름이 붙은 이 공연은 The Birthday Party 해체 이후 첫 공연이었으며, Hugo Race가 잘 기억하고 있었다. "거친 투어였다. Rowland S. Howard가 'Swampland'의 기타 부분을 가르쳐 주었는데, 박자가 상당히 이상해서 외우는데 애를 먹었었다. 잊을 수가 없는 투어였었다. 수많은, 시끄러운 관중들과, The Birthday Party 곡을 연주하지만 The Birthday Party는 아닌, 제대로 말하자면 사실은 엄청 다른 밴드인 우리들.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비웃었고, Nick은 표면적으로는 그런 반응들을 신경쓰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상당히 좌절했다는 것을 누구라도 알아챌 수 있었다. 시드니에서 한 마지막 공연은 멋졌는데, 그 때가 되서야 멤버들 모두가 어떻게 하면 곡을 제대로 연주할 수 있을지를 감 잡았기 때문이었다. 연주는 Mick의 드러밍을 따라 흘러갔다: 내가 어떤 부분을 틀리기만 하면 그는 살기가 가득한 눈으로 나를 응시했었다. 아니 사실 그는 언제나, 제대로 연주하고 있을 때에도 우리를 섬뜩한 눈빛으로 바라봤었다! 쉽게쉽게 가는 시간은 절대로 아니었다. 에너지는 예측불가 상태였으며, 모든것을 집어삼킬 폭력의 한가운데에 내가 놓여 있는 꼴이었다."

    Tracy Pew는 곧 밴드를 떠났으며, Barry Adamson이 다시 베이스로 가고 Blixa Bargeld가 기타로 돌아왔다. 밴드는 The Cavemen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 라인업을 유지한 채로, 그들은 [From Her To Eternity]를 녹음하기 위해 Trident 스튜디오로 들어갔다. 이 세션은 길었으며, 힘들었고, 광기가 넘쳤다. Jessamy Calkin은 이 세션의 열기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In The Ghetto'를 반복 재생으로 틀어놓고는 밤새 마약에 취해 있었다. 나는 아직도 그 곡을 제대로 듣지 못하겠다. 그 때 나는 앨범 커버가 될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었다."

    이 세션을 거치면서 앨범은 서서히 윤곽을 잡아 갔다. Barry Adamson은 기억한다: "The Garden 세션을 할 때는 저녁때쯤 출근해서는 대충 하다가 집에 돌아오고는 했었다. 하지만 Trident 세션에서는 완전히 집중하여 일을 할 수 밖에 없었고, 오후 2시쯤 스튜디오로 가서 일을 하다가 새벽이 되서야 집으로 돌아가고는 했었다."

    Hugo Race는 당시 세션에서 밴드가 가지고 있던 마음가짐을 말한다. "실제로 세션은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Nick이 'Black Paul'을 마스터링하려고 하던 날들이 기억난다. 당시 스튜디오의 분위기는, 그 어떤 조그마한 부분이라도 예전 음악들과 비슷하다면 절대로 안 된다는 분위기였고, 이는 분명히 Blixa의 관점이 강하게 들어간 것이었다. 아방가르드적인 느낌이 있었다 -- '록' 음악처럼 되면 안 된다는 분위기가. Blixa는 이런 생각을 밀어붙였고, Nick Cave & The Bad Seeds의 첫 두 앨범은 Blixa의 영향이 매우 컸다. 커다란 금속 박스 안에 들어가서 'Cabin Fever'의 보컬을 녹음하던 모습, 그리고 고장난 코드를 사용해서 일부러 고주파수의 소음을 발생시키며 기타를 녹음하던 것이 기억난다. 새로운, 미지의 영역을 개척해 보고자 하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었다. The Birthday Party 같은 소리가 나면 안 되는 것이었다.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만 했다."


    http://youtu.be/Kep9YdtKMrc

    Mick Harvey 또한, 당시의 'The Birthday Party'에서 벗어나자'라는 분위기를 기억한다. "밴드로써 시작하고 밴드로써 앨범을 만드는 일 같은 건 이미 해 오던 일이었다. Nick Cave & The Bad Seeds의 첫 앨범은 꽤나 긴 서사를 갖고 직선적인 음악으로 채워져 있었기에, 이전에 하던 일과는 상당히 다른 것이었다. Nick은 언제나 자신이 했던 말, 'The Birthday Party와 나는 이제 아무 관계가 없다'는 말을 실천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는 자기가 정말로 만들고 싶은 음악을 찾아내려고 노력했었다."

    마약은 언제나 넘쳐났고, 모든 측면에서, 상당히 실용적인 물품이었다. "주로 Speed나 헤로인을 엄청나게 해 댔었다." Jessamy Calkin은 말한다. "마약은 밴드 멤버들의 행동에 큰 영향을 주는 존재였고, 덕분에 모두들 편집증적인 행동들을 엄청나게 해 댔었다. 마약은 스튜디오의 분위기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굉장히 어두운 분위기일 때도 있었으나, 밴드의 창조력은 멈출 수 없었고 믿기 힘들 정도로 강력했다. 음악을 들어 보라."

    Flood, 마약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던 그 또한 마약에 대해 기억한다. "종합해서 보자면 당시 마약 사용은 꽤나 통제하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a)그렇게 많은 양의, 또한 b)그런 종류의 마약을 세션에서 실제로 사용하는 것을 살면서 처음 보았었다. 정말 아슬아슬할 정도까지 갔던 적도 몇 번 있었지만, 밴드 멤버들은 서로를 조절해 주는 식으로 일을 진행하고는 했었다. 만약 누군가가 아이디어를 갖고 왔지만 금세 좌절해 버렸다면, 다른 누군가가 그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곡 하나를 만들어내는 식으로. 모든 일이 다 그렇겠지만, 모든 사람이 전부 들떠서 떠들어댄다면, 아무것도 완성이 안 되는 것이다."

    Rowland S. Howard의 형제이자 한때 The Birthday Party의 임시 멤버이기도 했던 (Tracy Pew의 빈 자리를 채운 적이 있다) Harry Howard 또한 밴드가 활용하던 마약의 기능을 보았다. "마약이 사람들을 망친다는 생각들과는 다르게, 마약을 통한 그들의 창조력은 점점 더 집중된 결과를 내놓았다." 대체로 마약은 그저 깨어있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고 Barry Adamson은 말한다. "일을 하다 보면 한 트랙에 갇히게 되고, 어떤 방식으로든지 간에 트랙을 완성할 때까지 일에 매달려야만 한다 -- 그리고 작업은 대체로 아주 길었다."
    "우리가 작업하던 시간은 완전 말도 안 되는 시간이었다." Flood도 확언한다. "몇몇은 피아노 밑에서 잠들고는 했다."

    새로운 마음가짐과 새로운 생각을 결합한 것은, 참여한 멤버들의 면면을 보고도 알 수 있듯이, 매우 멋진 결과를 내놓았다. Barry Adamson은 당시 작업에 있어 Flood의 역할도 강조한다. "Flood는 우리에게 없던 다른 아이디어들도 가져오고는 했으며, 정말 성실하게 작업을 했지만 동시에 2'' 테잎을 반으로 잘라서 멀티-트랙과 붙인 다음 완전히 천재적인 것들로 재탄생시키기도 했었다. 그는 책상에 앉아 작업했지만 별의별 것들을 다 발굴해서 일을 진행시켜 나갔다. 내 말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작업은 이제껏 전혀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던 작업이었다는 것이다. 내가 Magazine의 멤버였을 무렵 그는 Trident 스튜디오에서 차나 홀짝이던 17살 꼬맹이었는데, 어느새 자라나서 멋진 프로듀서가 되어 있었다."


    http://youtu.be/oiSpXLkjIOY

    스튜디오에서의 시간을 회상하며, Barry Adamson은 말을 더한다: "그 시간들은 일상적인 작업 이상이었다. 많은 것들이 서로 밀고 당기면서 일종의 창조성을 형성하고는 했었다. 그런 일들이 일어났었던 것이다. 그렇게 창조적이면서도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한 방에 몰아넣는 것은 도화선에 불을 붙여놓고는 뒤로 빠지는 것이나 다름없는 짓이다. 불꽃이 사방으로 튀기 시작하고, 서로 충돌하거나 조화를 이루면서, 엄청난 것이 나타나게 된다."

    당시 세션의 모험적이고 실험적이었던 분위기에 대해, Mick Harvey는 멋진 일화 하나를 털어놓는다. "푹 자고 일어나서 스튜디오로 돌아갔는데, Blixa가 아직도 스튜디오에 앉아 있었다. 그는 하룻밤 내내 그 곳에서 기타 오버더빙 하나를 계속해서 붙잡고 있었다. 하지만 알고보니 사실 그가 8시간 내내 하고 있었던 것은 기타 조율이었다. 그는 하룻밤 내내 기타를 조율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우리의 분위기가 어땠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Flood는 언젠가 밴드의 행동에 당황했던 기억에 대해 말한다. "실제로 실행하지 않았던 아이디어들 중 가장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밴드가 부서지는 피아노의 소리를 녹음하고 싶어했었던 것이었다. 아마도 'Well Of Misery'를 위해서 그러려고 했던 것 같은데, 누군가가 정말로 톱을 가지고 와서는 피아노 줄을 끊어버리려고 톱을 가져다가 대려고 했었다. 나는 당장에 뛰어들어가서는 '이봐들, 진짜로, 이 피아노 줄을 끊어버리면 줄이 튀어서 정말로 죽을 수도 있다고' 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타이틀 곡 'From Her To Eternity'는 훌륭할 정도로 불안하면서도 극적인 강렬함을 가지고 있는 곡으로, 이상한, 비틀거리는 리듬이 추락하는 피아노 사이로 지나가며, 베이스는 마치 사냥감을 쫓는 살인마의 발걸음같이 울려퍼지며, 악몽과도 같은 기타는 엉망진창으로 난도질당한 금속 덩어리같은 소리를 내며 청자의 귀에 벌레처럼 기어오른다 -- 이 모든 것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다가 음울하게 노래하는 Nick Cave의 목소리로 연결되어 있다. 그 곡은 앨범에서 가장 돋보이는 곡이며, 2014년에도 Nick Cave & The Bad Seeds의 라이브 레퍼토리에 뽑히고는 한다. 이 곡은 또한 [From Her To Eternity] 앨범에서 유일하게 모든 멤버가 작곡에 참여한 곡이지만, 밴드 멤버들은 잘 해봐야 작곡의 순간들을 산발적으로만 기억할 뿐이었다. 이 곡의 녹음은 밴드의 두 세션에서 모두 진행되었으며, 중간에 큰 변화를 겪으며 마치 [Frankenstein]의 괴물 같은 곡이 되었다. 그런 과정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 곡은 당시 아직 태동기였던 밴드를 대변하는, 서서히 자라나며 구체화되던 밴드를 보여주는 곡이기도 하다.

    세션은 'Cabin Fever'의 격렬한 믹싱으로 끝나게 되었으며, Flood가 기억하기로는 끝날 때의 분위기는 기묘한 기쁨과 공포가 절반씩 섞인 느낌이었다. "정말, 정말, 정말로 많은 다른 이유들도 있기는 하지만, 'Cabin Fever'의 딸깍거리는 소리는 -- 정말로 뼈에 사무치는 오버더빙이었고, 앨범에서 무엇보다도 적절한 이름을 갖게 된 곡은 바로 'Cabin Fever'였다.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Mick Harvey는 이에 대해 기억한다. "Flood는 구석에 처박혀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엄청난 시간을 매달리고 있었다. 그는 거의 편집증에 걸리기 직전인 상태였었다. 우리는 아침 7시가 되어서야 마침내 'Cabin Fever'의 믹싱을 끝내게 되었으며, 그 날은 앨범이 완성되어서 전달이 되어야만 하는 날이었다. 우리는 밤 내내 그 곡에 매달려서 믹싱을 끝냈던 것이었다. 아침 7시, 우리는 완전히 미친 상태가 되어서 스튜디오에서 걸어나왔고,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 세션은 그렇게 끝났다."


    http://youtu.be/x_pq0pygL_o

    이 세션은 향후 Nick Cave & The Bad Seeds로 발전되게 되지만, 그 이름을 쓰게 되기까지는 한달이라는 시간이 더 걸렸다. 그들은 1984년 4월 21일 암스테르담에서의 공연 전까지는 여전히 Nick Cave and the Cavemen 이라는 이름으로 공연을 하고 다녔다. 그 이후, 그들은 또다시 잠시동안 Cavemen 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다가 결국 Bad Seeds로 안착하였다.

    Henry Rollins는 이 무렵 밴드와 어울려 다녔으며, Black Flag의 영국 투어 중간의 쉬는 날에 Nick Cave & The Bad Seeds의 Bristol 공연을 보았다. 그는 상당한 변화를 느꼈다고 기억한다. "분위기는 더 음울해졌고 계시적이 되었으며, The Birthday Party의 냉소와 적대적인 잔혹함은 없어져 있었다. Nick과 동료들은 분명히 무언가 새로운 것을 하려고 하고 있었다. 진심이 담긴 야망이 있었고, 내 생각에 Nick은 결국 그것을 달성하게 된 것 같다." Henry Rollins와 Nick Cave는 친한 친구가 되었고, 그 해 말에 LA에서 같이 시간을 보냈다. Nick Cave는 [Independent]지와의 1997년 인터뷰에서 당시 경험을 회상한 적이 있다. "Henry는 우리 집에 와서는 거실에서 팔굽혀펴기를 하면서 우리를 웃기고는 했다. 그가 팔굽혀펴기를 하는 동안 나는 앉아서 스피드볼(마약)을 하곤 했었다."

    The Birthday Party는 일년도 채 안가서 해체하였으며, 많은 사람들이 Nick Cave & The Bad Seeds가 일종의 후속 밴드가 아닐까 하는 기대를 갖고 있었다. Hugo Race는 처음으로 [From Her To Eternity]의 곡들을 공연에서 부르던 때를 기억한다. "[From Her To Eternity] 투어는 많은 관객을 끌어모았는데, 이 관객들은 The Birthday Party의 강렬함을 기대하고 온 사람들이었다. 관객들은 예전과 같은 기대를 가지고 왔지만, 우리는 전혀 다른 곡들을 연주하는 전혀 다른 밴드가 되어버렸으니 -- 거의 모든 곡들이 침울한 곡들이었으니, 우리는 모든 공연을 'Box For Black Paul'로 시작함으로써 관객들을 도발했으며, 그 길고 조용한 곡이 울려퍼질 동안 관객들은 소리를 질러대고 물건을 던져댔었다. 모든 측면에서 모든 것들이 격렬했으며, 우리는 모두 질려있었다. 무대 옆의 모니터에 피가 묻어있던 것이 기억난다."

    Jessamy Calkin은 밴드의 미국 투어에서 투어 매니저 역할을 맡았다. "나는 완전히 무계획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있었지만, 밴드는 이를 재미있게 생각했었다. 나는 돈을 가방에 넣어두는 대신에 다리에다가 청테이프로 붙여놓고는 카우보이 스타일 부츠로 가리고 다녔었다. 미국 투어는 마약이 넘쳐났고, 혼란스러웠으며, 성질이 고약했었고, 난장판인데다가, 강렬했지만, 몇몇 공연은 정말로 대단했었다. 내가 제일 어려워했던 부분은 밴드의 친구에서 밴드의 투어매니저로 역할을 바꾸는 일이었다. Nick은 투어 내내 개자식처럼 굴었고, 멤버 몇몇은 마약을 사려고 내게서 돈을 빼내려고 잔머리를 굴리고는 했다. Hugo는 하루에 $15 정도로 정해진 용돈을 내가 미처 깜빡하고 주지 않은 것처럼 굴면서 나를 속여서 돈을 더 타내려고 했었다. 한번은 Mick Harvey가 나를 위해서 Hugo를 한대 쳐 줬었는데 -- 그건 재미있었다. Nick과 Barry 사이에는 안 좋은 기운이 감돈 적이 많았고, 마약을 하다가 싸운 적도 많았다. 투어가 끝났을 때 우리는 수익을 분배했었다. 결과가 밴드 멤버당 대충 $400 정도로 돌아갔던 것 같다. Nick의 비행기 티켓을 내가 잃어버리는 바람에 그걸 다시 사 주었는데, 그래서 나한테는 남은 몫이 없었다."

    이 기억들을 보자면 Nick Cave & The Bad Seeds에게도 The Birthday Party같은 해체의 기운이 감돌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올해 벌써 [From Her To Eternity]는 발매 30주년을 맞이하였으며, Nick Cave & The Bad Seeds만이 남길 수 있었던, 훌륭한 작품으로 남아 있다.

     

     



    2015/08/25 1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