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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 Care Because You Do
    [...]/[Aphex Twin] 2023. 3. 28. 12:39


    https://youtu.be/KFeUBOJgaLU
    "Vento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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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lannerchronicle.wordpress.com/2020/12/12/aphex-twin-wire-magazine-april-1995/


    transparent messages


    음악이란 '꿈의 상태'를 모사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찾는 길이며, 그 길들 중 가장 최신의 예시로는 Richard James, aka Aphex Twin이 선보이는 황혼녘의 음향적 몽상이 있을 것이다. Rob Young이 이를 탐구해 보았다.


    작가의 꿈 나는 진흙과 배설물로 얼룩진, 낡아 해진 풍경으로 달려들어가고 있었다. 혼란스럽고 또 뒤덮여 숨죽인 듯한 꿈이었다 - 여러 모양들이 축축하게 젖어 있는, 부정형의 잔디밭으로, 소의 잘려진 머리들로, 해체된 신체의 부분들로, 진흙과 진창으로 밀어붙혀지다가, 온통 갈색의, 배설물과 진흙의 걸쭉한 혼합물에 처박혀서, 머리 위로는 비가 홍수처럼 쏟아지고, 눈에는 하늘이라고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굉장히 가까이에서 보고 있었다, 마치 내가 바로 그 진창을 향해 끌려가고 있는 상황인 것 처럼. 황량하고 적막한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늦춰지고 있는 중인 계시의 순간의 조짐이 느껴지고는 있었다.


    파묻힌 꿈들
    나는 위에 적혀있는 꿈을 지금으로부터 대략 1년전에 꾸었었다. David Toop Max Eastley의 [Buried Dreams]를 1주일간 충실하게 듣고 난 후였다. 몇 개월간 꿨던 꿈들 중 기억할 수 있는 첫 번째의 꿈으로, 이 꿈은 평범한 꿈이 아닌, 나에겐 상당히 중요해 보이는 꿈이었다. 이제 와서 돌이켜 보자면 이 꿈은 최근의 음악들 중 가장 훌륭한 음악에 대한 나의 특별한 감성과 어떤 식으로 연결되어 있는 꿈이었던 것 같다: 촘촘히 짜여진 구조 속으로 눈에 보이게 녹아들어가 짜여지고 있는, 생경하면서도 무엇인지 쉽게 알아볼 수 있을 그 형태. '녹음'이라는 기술의 초창기 시절에는, 테이프에 녹음된 음악은 그 자리에서 일어난 일을 담고 있는, 한때는 스튜디오의 방 하나에서 일어났을 일들을 담은 음악이었다. 이제는 시대가 변하여 몇 평방피트의 공간 안에 필요한 모든 장비가 다 들어갈 수 있게 되었고 그 안에서 당신의 머릿속에 있는 모든 것들을 꺼내어 복잡한 음향의 연극을 구현해 낼 수 있을 정도가 되었지만.

    이는 '악기들', 이제는 우리로 하여금 말 그대로 거의 모든 물질들 (발소리, 가벼운 신발, 바람, TV, 시골에서의 하루, 빛) 로부터 음악을 만들 수 있게 해 주고 있는 그 '악기들'에 관련된 일이다. 한 음악이 다른 음악들의 조각난 샘플들 그리고 어떤 물리적 행동에서 발생했는지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의 소음으로부터 만들어질 때, 녹음된 음원들이 이전의 구체적인 실체들, 음과 멜로디, 현과 표면들하고 맺고 있었던 관계성은 바스라져 사라지게 되는 법이다. 마이크, 바늘, 무선, 스캐너, 안테나, 휴대 가능한 디지털 테이프 녹음기(DAT): 이 것들 또한 이제는 '악기'가, 저인망 어선의 그물이 되었다. 오늘날의 전자 음악을 만든다는 행위는 '깨어있기'와 '꿈꾸기'의 평행선을 그리는 삶을 반영하고 있다: 의식적으로 탐구하고 음향을 모으는 행위 - '배우기' 부분 - 그리고 스튜디오로 회귀하여 곡을 만들어나가는 과정 - 환상들을 기워 내 하나로 맞추는 행위.

    이러한 적응성, 이러한 유연성은 다른 영역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는 특성이었다. 이제는 그 힘이 이전의 고정된 '본부', '본진'에서 녹아내려 흘러나와 정보의 흐름과 통신 속에 암호화된 채로 흐르며 이동하고 있다 - 정치적이거나, 금전적이거나, 아니면 개인과 관련된 것들이거나 - 그리고 예술가가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전술은 그 '언어'를 배우고, 그 '흐름'에 참여하는 것이 되었다.

    "나는 음악이란 것이 그 어떤 정치적인 시스템보다 훨씬 더 유연하다고 생각한다." David Toop은 말했다. "정치적인 이론은 무엇이든지간에 등장하자마자 그 위에 관료주의와 부패가 쌓여 가기 마련이지만, 음악은 한 가닥의 실에 달려 있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유동성'은 - 손에 당장 잡히는 음악가들의 이름만을 나열해 본다면 - Scanner, Bedouin Ascent, Omni Trio, Oval, 그리고 아마도 가장 흥미로울 음악가인 (이번 기사에서 만나볼 예정인) Aphex Twin의 음악에서 큰 소리로 울려퍼지고 있다. Aphex Twin의 새 EP [Ventolin]에 수록된 12개의 리믹스에서 청자는 삐걱거리며 불평을 내뱉는 듯한 음악의 골조를, 강제적으로 등을 떠밀려 생을 찾아 헤매이는 천식 환자의 쌕쌕거리는 신음소리를 들어볼 수 있을 것이다. ("Ventolin"은 실제로 천식 환자에게 처방되는 치료제이다.) 초기 Aphex Twin의 널리 알려진 곡 "Didgeridoo"를 시작으로, Richard James는 추상적이면서도 친숙한 요소들을 환각적인 효과에 계속해서 접목시켜 왔었다. 그의 최신 앨범 [Ventolin]과 곧 발매될 앨범 [I Care Because You Do]는 이러한 Aphex Twin 특유의 접목을 그대로 보여주는 예시들로 차 있다. 수록곡들은 합성 질감과 직접 녹음한 외부 음향 사이를 깜빡이며 스쳐 지나다니며, 때로는 오염된 디스토션의 폭발이 불어 와 음악의 피부를 도로 보수작업인 것마냥 벗겨내어 열린 창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이 음악이 꿈과 각성의 중간에 위치한, 일종의 경계선 위의 상태를 암시하고 있다는 가설은 상당히 타당한 제안일 것이다.


    명멸하는 꿈들
    처음으로 만들어졌던 영화들은 사실상 Muybridge 플립 북에서 아주 조금 더 발전한 것들이었다: 조용하게 진행되었던 운동의 폭동에서, 그들은 온갖 물리적이고 심리적인 현상들을, 마치 기술자들에겐 실제로 가능한 일이 맞다는 듯이, 탐구하였던 것이다. 정지 카메라는 그 앞에 놓여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간에, 서 있거나, 걸어 다니거나, 춤추거나, 떨어지거나, 날아가거나, 싸우는 것들이거나 뭐든지간에 촬영하여 기록했었다. 하지만, 수동적인 녹음기 또한 꿈에 가장 근접한 의식적 모사에 시동을 걸었었다, 그리고 이 시동은 지난 100년간 온갖 상상들을 촉발시키고 조종해 온 현상의 시작이 되기도 했다: 청중들은 (마치 극장에서처럼) 그 누구도 '원본'에서 벗어날 수 없을 작품 앞에서 꼼짝없이 고정되었으며, 이들의 시야는 거대화된 이미지들, 얼굴들, 행동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나고 불이 켜질 때 상징적인 '깨어남'을 겪게 되었던 것이다. 100년의 시간이 흐른 후, 영화란 이제 '노이즈'에 대한 것이 되었다. 센서라운드(Sensurround), 쿠엔틴 타란티노의 세계가 선보이는 장황함과 온갖 곳에 널린 '록'들. 아니면, Derek Jarman의 [Blue]에서 그러듯이 음향만으로 구성되어 있거나: 기억들, 속삭임들, 음악, 소음들, 모든 것들이 스크린이라는 이름의 불투명한 필터 뒤에서 피어오른다. 몇몇은 마음 속에 깊이 박힐 것이고, 나머지는 부유하며 떠다니다가 사라져 갈 것이다: 무엇이 마음에 내려앉을 것인지는 관객/청자에게 달려 있는 선택이리라.

    피아노 앞에 앉아 대양의 파도의 인상을 연주하는 클로드 드뷔시의 모습을 담은 기억들이 있다. 마치 거대한 바다를 직접 바라보며 수채화로 그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 화가처럼. 20세기 특유의 음악들 대부분이, 클로드 드뷔시 모리스 라벨의 색채어린 팔레트에서부터 즉흥 연주와 같이 더 열린 형태를 가진 음악들까지 전부, 대부분은 악기를 최대한 투명하게 만들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여 왔던 음악이었다, 투명하게 만듦으로써 '자유로운 표현'을 최대한으로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알렉산드르 스크랴빈이나 클로드 드뷔시같은 작곡가들은 지나치게 익어버린 낭만주의적 '표현'의 개념을 확장하여 악기와 연주자 사이의 역학 또한 표현의 일부로 담아 일종의 '몸짓 음악'을 달성하려 했었다. 자신의 소나타 [검은 미사]를 연주하려 하다가 악몽을 꾸게 되어 결국 할 수 없었던 알렉산드르 스크랴빈은 처음으로 대형 멀티미디어 이벤트를 고안했었다 (실제 연주는 이루어진 적이 없었다): [Mysterium]은 거대한 관현악 작품으로 번쩍거리는 불빛의 알록달록한 바퀴와 연기 및 냄새의 융단폭격이 포함될 계획을 가진 작품이었다. 이러한 직관적인 시도들은, 악기와 공연의 기술적이고 일시적인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시도들은 현대 전자음악과 연결된다: 둘 모두 상징적인 '록 스타', 실존주의적인 재즈 솔로 연주자, 비밀스러운 아방가르드 작곡가 - 20세기 중후반부의 시기에 후추를 뿌려댔던 그 모습들을 우회하여 피해 가고 있는 것이다.

    "음악의 구조가 더 복잡하고 미묘해질수록, 거기에는 더 커다란 위험도 깃들게 된다." David Toop의 말이었다. "복잡한 음악을 할 때, 그 음악은 뭐랄까 해체되어지고 있는 뼈대의 원리와 비슷한 방식으로 직조되어 있다 - 아주 작은 떨림만으로도 뼈들이 사방으로 날라다니며 해체될 수 있는 것이다 - 굉장히 어려운 방식이다. 특히나 혼란스러운 법칙들을 다루고 있을 때, 음악이 자신의 생명을 가지고 있을 때: 화음과 전자음의 변수들이 스스로 쌓아올려지며, 뒤틀리는 유사성과 리듬의 우연적인 사건들을 가지고 자신만의 유기적인 실체를 창조해 나갈 때."


    가수의 꿈 그녀는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서 있었다. 벨트 위에는 알아볼 수 없는 모양을 한 물체들이 놓여 그녀 앞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이 물체들은 사실 그녀가 모아서 음악의 일부로 조합해 내야만 하는 '부분들'이었다. 이 물체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만약 그녀가 고르지 않으면 결국 어디로 향하게 되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자각몽들
    "명료함이 부족하다는 것은 언제나, 어딘가에 모종의 부정직함이 존재하고 있다는 표시이다" - Celia Green

    모든 세대에게는 그 세대의 꿈, 그리고 그 세대의 꿈을 직조해내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현재 거의 끝나가고 있는 20세기의 대부분에 해당하는 시기 동안에는, 꿈이란 카를 융의 저작들에서 시작된 유서 깊은 상징과 신비를 반영하고 있는 무언가였다. 하지만 이 세기의 많은 것들의 뒤에는 숨겨진, 비밀스러운 역사가 존재하고 있으며, 꿈에 관한 연구에서는 그 비밀의 역사란 '자각몽'에 대한 연구로써 드러나고 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꿈을 "무의식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라고 일컬었지만, 자각몽은 그 지름길을 점거하고는 그 위에 통행 요금 정산소를 만들어 버렸다.

    1961년 옥스포드, 환멸감을 느끼고 있던 연구생 Celia Green은 "정신물리학 연구소"(Institute for Psychophysical Research)를 스스로 설립하게 된다. Celia Green이 나중에 쓰게 될 [The Decline And Fall Of Science]나 [Advice To Clever Children]같은 책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그 연구소는 추후에 인지되어지고, 기억되어지고, 묘사되어질 수 있을 것들이지만 세계의 원리에 대한 현재의 과학적 설명과는 부합하지 않는 경험들에 대한 연구를 위한 연구소였다 - 유체이탈, 초심리학(parapsychology), 초감각적 인지, 자각몽 등. Celia Green가 가진 외곬수적인 접근법은 실용적인 회의주의, 모든 믿음과 이론들에 질문을 던지고 그 무엇도 믿지 않는다는 접근법이었다 - 특별히 권위의 호화로움, '정립된 과학'이 오랜 시간동안 즐겨 왔던 그 사치에 대해서는 더 강하게.

    1968년 그녀는 [Lucid Dreams], 수면 도중의 의식이라는 모순에 대한 첫 조사를 담은 책을 발행하였다. 1930년대의 심리학자 H. von Moers-Messmer  Embury Brown의 연구를 참고하고 스스로의 연구도 담아, Celia Green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진지하게 몰입해 전념하던 몇몇의 피험자들이 꿈 속에서 스스로가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방법을 발견하고 그 방법을 더 발전시킬 수 있었으며, 꿈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손에 넣어 자각몽의 특성과 한계를 시험해보기까지 할 수 있었다고. 그 피험자들은 꿈 속에서 실제보다 훨씬 더 다채로운 느낌으로 듣고 맛을 볼 수 있었다고 증언했으며, 청각장애를 가진 피험자들은 소리를 명료하게 들을 수 있었고, 시각장애 피험자들은 색채를 '볼' 수 있었다.

    노팅엄(Nottingham)의 Em:t 레이블의 David Thompson Chris Allen Celia Green의 책들의 오랜 광팬이었고, 1994년 그녀의 정신물리학 연구소와 공식적인 관계를 형성해내기에 이르렀다. 이 관계가 성립한 바로 다음 달, 둘은 [Lucid Dreams]라는 이름의 CD, Celia Green가 특별히 Em:t를 위해 녹음한 스포큰 워드(Spoken Word)를 담은 음원에 Thompson과 Allen이 둘의 꿈 제작 공장, 3D 디지털 음향-이미징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는 "Time Studio"에서 제작해 낸 전자음향을 입혀 낸 CD를 발매하기로 기획하게 된다. 수록곡 중 하나에서 Celia Green은 그 어떤 사람이라도 자각몽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구체적인 방법을 읊기도 했다. Thompson과 Allen에게 있어 이 프로젝트는 확고하게 정립된 신념체계에 대해 음악으로 접근하고, 맞서고, 우회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프로젝트였다. "[Lucid Dreams]는 '인식'이라는 것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프로젝트다." Thompson의 말이었다. "어떤 사람이 꿈을 꾸는 도중에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의식'이라는 것에 대한 현재의 정의는 불충분한 정의가 되게 된다. 음악 또한 '인식'에 대해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어떻게 특정한 음, 패턴, 음정의 조합이, 사실상 공기의 진동에 불과한 것이, 이렇게까지 복잡한 연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음악을 그냥 '엔터테인먼트'로 여기라는 식으로, 그저 오락거리 정도로 여기라는 식의 제안과 장려를 받고 있지만, 사실 음악이란 일반적으로는 상당한 수준의 대가를 치르면서도 우리가 직접 스스로 무시하고 있는 중인 심리학적 부분들을 탐구하고 정의할 수단으로써 명백하게 사용될 수 있는 것이다."


    깨어났을 때, 당신은 여전히 꿈 속에 있는 것이다
    공기는 퍼지(fudge)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누구도 퍼지를 사람들에게 건네어 주고 있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옆 방에는 남아도는 카메라 장비의 뼈대들이 놓여 있었다. Richard James는 무표정한 태도로, 자리에 서서 마지막으로 자신의 사진 몇 장을 찍고 있었다. 퍼지 공장을 떠나 차 한잔을 마시러 길을 나설 때, Richard는 나보다 한 반쯤 느린 속도로 걸어가다가 폐지 파쇄 공장의 모습을 구경하러 멈추었고, 길가에 널린 쓰레기 봉지를 발로 차기도 했으며, 그러다가 중국 음식점 위에 걸린 간판에 써 있는 말을 보러 갑자기 행동을 멈추기도 했다. "'좋은 친구들!'" 그는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이 웃음은 경멸보다는 당황스러움, 어리둥절함에서 나온 웃음이었다. "그게 대체 무슨 뜻인데?"

    이 남자가 바로 Richard James, Aphex Twin, Polygon Window, Caustic Window, Dice Man이었고, 그의 음악은 순수한 미량의 원소들과 날것의 원자재들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그 중 대부분의 생성물은 소모성의 부산물들이었다. 우리는 이 기나긴 이스트 엔드(East End) 거리에서 유일하게 눈에 보이는 한 조용한 카페로 들어섰다. 하지만, 내가 녹음기의 시작 버튼을 누르자마자 카페 내부는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TV 소리, 뉴스 방송을 큰 소리로 방영하는 라디오 소리, 쾅쾅거리며 어떤 팝 송을 따라 부르는 중국인 종업원의 소리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우리 둘이 가게의 유일한 손님이었다.


    Aphex Twin의 꿈 "오늘 아침 콘플레이크를 앞에 두고 해결을 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설명을 한다고 해서 하나라도 말이 될지 잘 모르겠다, 뭐랄까 하나의 이야기 같은 건 아니었다, 내가 여기에 서서 그걸 하고 있는 그런 식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 그냥 대화였는데, 누구인지 모를 사람과 하는 대화였다?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뭔가가 좆된 상황이긴 했었다. 그리고 그 꿈 안에서는 그 어떤 소리도 없었다."


    Richard James의 1994년 앨범 [Selected Ambient Works II]는 가스, 안개, 낡은 질감, 기름때 묻은 렌즈로 모호해진 풍경을 가지게 된, 제 멋대로 뻗어나가는 새벽의 풍경들인 앨범이었다. 귓구멍 속에 간신히 울려퍼지는 기준 비트와 함께 [Selected Ambient Works II]는 James가 그간 인터뷰들에서 계속해서 언급해 왔던 '자각몽 녹음'이라는 주제의 가장 대표격인 예시였다. Aphex Twin의 새 앨범 [I Care Because You Do]은 비록 '의식적으로' 녹음된 앨범이었지만 동시에 자각몽에 대해 널리 알려진 이미지들을 James의 이전 앨범들 그 무엇보다도 가장 많이 담고 있는 앨범이기도 했다. "Alberto Balsam"은 본래의 타악기 루프 - 드럼과 카메타 셔터 소리와 이발사의 가위 소리로 구성되어 있는 것 처럼 들리는 - 에서 마법처럼 뛰어올라 가정용 라디에이터 위에서의 타악기 연주로 내려앉았다가 다시 원래의 드럼으로 돌아 오는 곡이다: 미리 정해진 시퀀스 리듬의 세계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갑자기 성급하면서도 서투른, 평범한 가정의 세간으로 순간이동을 하는 듯한 곡. 그 다음 트랙은 문을 세게 닫는 소리와 James의 외침을 담은 듯한 목소리로 시작하며, 리듬 트랙이 들어오는데, 이 리듬 트랙은 침실용 스피커를 통해 휴대용 디지털 테이프 녹음기(DAT)로 녹음한 트랙이며, 해서 리듬 트랙 속에 James가 음향 데스크를 믹싱 보드에 연결하여 음악이 '적절하게' 들릴 수 있도록 하기 전까지 방의 주변을 왔다갔다 하는 소리마저도 들어가 있는 것이었다. 어딘지 불안해지는 화합이다, 기계의 음향과 현실 세계의 체험 사이를 이렇게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는 것은.

    인터뷰 전 추측했던 그대로, Richard James는 본인의 작업이 미치고 있는 영향에 대해서는 깊게 대화하는 것에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너그럽게도 내 모든 질문들에 대해 망설임 없이 잘 대답해 주었으며, 온갖 정보들을 내게 주었고, 그러다가 멈추었다. '음악 속에 모든 해답이 들어 있다'는 표현은 흔해 빠진 클리셰에 아주 드문 경우에만 진실인 주장이지만, 이 경우에는 일반적인 경우들보다 더 실제에 들어맞는 듯한 느낌이었다, 특히 그가 자신만의 저장소에 숨겨 두었다고 말하고 있는 음악들에 대해서는. 그의 말에 따르자면 그는 가시가 돋친 듯한 느낌이면서도 동시에 어쩐지 감탄스럽기도 한 논리에 따라 작업하며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로 누가 그의 음악을 듣는지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그저 삶을 영위하기 위한 소득을 얻기 위해서만 앨범을 발매하고 홍보 공연을 하고 있다는 원칙. "앨범을 발매하는 유일한 이유는 그냥 돈을 벌기 위해서다. 그리고 내가 작업하고 있는, 더 독특하고 이상한 음악들을 발매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그 음악에 빠져들지는, 모르겠다. 친구들은 내가 만든 음악들을 듣고 싶어하고, 이건 분명 멋진 일이지만, 나는 딱히 스스로 내 음악을 다시 듣고 싶지는 않다, 그냥 새로운 음악을 만드는 게 더 좋다."

    우리는 잠시 멈추었고, 비가 내리는 바깥의 망치 소리, 차가 빠르게 달려가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그가 항상 '음악'을 듣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져서 큰 소리로 물어보았다, 길거리의 소리도 음악으로 듣고 있는 건지? "그렇다." 그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지? "맞다, 진짜 좆같고 짜증난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게 사실상 없다."


    전자음악을 만드는 과정은 어떻게 보자면 꿈을 꾸는 행위와 비슷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음악가는 음향의 조각들을 가지고 모자이크 그림을 만들어 내지만, 이 모자이크 그림이라는 것이 사실 2개의 차원 이상에 존재하고 있는 그림이다. 다른 음악의 일부를 뜯어 온 '샘플'들은 사실 다른 사람들의 경험의 한 토막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개인적인 기억을 품고 있는, 특정한 장소와 환경을 담은 녹음들, 감각과 인상들, 감정적인 연관성들. 이 모든 것들이 믹싱 데스크 안에서 기억되어지고, 배열되어진다, '덥' 안에서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덥'이라는 단어의 사전적인 정의를 말하는 편이 더 좋을 것 같다: "대안적인 사운드트랙, 특별히 다른 언어로 만들어져 있는").

    그 비밀은, 음악가의 비밀 및 자각몽을 꾸는 사람들의 비밀은, 언제는 통제를 하고 또 언제는 손을 놓아버릴지에 대한 균형점을 찾으려 노력하는 과정 속에 놓여 있다: 당신이 현재 하고 있는 행위를 너무 과하게 인식하고 알고 있게 된다면, 그 마법이 사라지게 되어 버릴 것인가? "아주 거대한 변화는," Richard James의 말이었다, "당신이 다른 행성에 있게 될 것이며, 대체 어쩌다가 내가 여기에 오게 되었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라는 거다. 그리고 그게 최고의 것들이다, 바로 그 중간에 놓여 있게 될 때. 더 흥미로워지게 된다, 정말로, 정말로 예측하지 못했던 것들이니까. 하지만 완전한 통제권을 쥐게 된다면 모든 것이 대체로 더 지루해지는 방향으로 가게 되어버린다. 아무것도 진짜로 움직이지 않게 되고, 온갖 이상한 짓거리들이 일어나지 않게 되니까. 뭐랄까 잠에서 완전히 깬 상태와 다를 바가 없다, 아무 것도 흥미롭거나 재미있지 않은 상태."

    나는 James에게, 깨어있을 때의 삶보다 그의 꿈이 더 진짜처럼 보이는지에 대해 질문했다. "나는 꿈이야말로 조금은 더 진실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꿈 속에서는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으니까. 꿈에서는 에고라던가 그 비슷한 것들 같은 걸 가질 수 없다고 본다 - 전부 사라져버리는 것 같다. 낮에 행동하고 살아가는 방식은 사실 그 전날 밤 잠들기 전의 시간들을 꾸려 나가던 방식과 같다. 그리고, 잠에 빠져들었을 때, 당신의 모든 생각들이 하나의 질서를 가지며 맞춰지게 된다 - 그 때 두뇌가 모든 것들을 처리하는 것이고, 다음 날의, 깨어있는 시간을 준비시키는 것이다. 잠을 잘 때 온갖 좆같은 것들이 저 밑으로 가라앉는 거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Richard James Celia Green의 책도 읽어 본 적이 없고, 그녀의 이름조차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어린 시절에" 스스로 '자각몽'을 꿀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말했으며, TV 프로그램 [Q.E.D.]에서 3명의 자각몽 구사자들이 각자의 꿈에서 서로를 만난다는 내용이 나오는 것을 봤을 때 처음으로 '자각몽'이라는 이름을 알아냈다고도 주장했다. 하지만, 그 누구라도, Richard James야말로 Celia Green이 자신의 책 [Advice To Clever Children]에서 역설했던 바로 그 영재(prodigy)에 해당하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을 것이었다. 특히, 나의 마지막 질문에 대답하던 바로 그 때에: 스스로를 신비주의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나는 그런 사람이 전혀 아니다, 논리적인 사람에 가깝지. 그런 주제들에 관련해서는, 난 상당히 구식이며 고루한 편이다. 나는 내 눈 앞에 보여야만 믿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다."


    꿈이란 전통적으로 '깨어있을 때의 삶'을 밝혀 주는 용도로 사용되어 왔었다. Aphex Twin의 새 앨범은 마치 깨어있을 때의 비전이 무의식의 몽상으로 다시금 쏟아져 들어오는 것처럼, 그렇게 '밝혀 주는' 음악이었다. 여기서, 다른 많은 영역에서도 그러듯이 경계선들은 흐려지고 있다. 이 모든 줄기들이 하나로 합쳐지는 순간은 더 넓은 의미에서의 정보의 합일화, 포괄적인 수렴, 집중, 그리고 그 소실점 너머로 뻗어나가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순간이었다.


    https://youtu.be/-ZVZgCrHy5E
    "Alberto Balsa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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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ichard D. James

     

     

     

    2023/02/04 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