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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hantasmagoria of Jathilan
    [...]/[Raja Kirik] 2023. 10. 15. 08:32



    https://youtu.be/LBXFFJkYYfc
    "ACT V. Waru Doy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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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insounder.org/raja-kirik-know-tradition-order-destroy-it

    Raja Kirik: 전통을 부수어버리기 위해서는 먼저 전통을 이해해야 한다
    42
    [Insounder]
    2022년 5월 30일


    Raja Kirik은 Yennu Ariendra(음악가, 전자음악 작곡가 및 음향 디자이너)와 J. Mo'ong Santosa Pribadi(작곡가 및 악기 제작가)가 결성한 프로젝트 밴드이다. 이들의 목표는 옛 사건들, 특히 네덜란드의 인도네시아 식민지화와 관련된 사건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면서 동시에 전통 음악, 고대 신화, 트랜스 상태에서 벌이는 춤 공연 등의 요소를 결합시키는 것이다. 몇 주 전 프라하에서 진행된 Lunchmeat 페스티벌에서 있었던 Raja Kirik의 공연은 일반적인 공연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주술적인 의식에 가까웠었다. 나는 Mo'ong 및 Yennu와 직접 만나 음악, 전통이라는 것이 그들에게 가지는 의미 그리고 어째서 오늘날에도 식민지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해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42> 먼저 Raja Kirik라는 이름, 그리고 이 프로젝트가 어떻게 결성되었던 것인지에 대해 묻고 싶다. 어쩌다가 시작했던 것인지?

    Mo'ong> 우리 둘은 서로 제각기 독립적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음악 관련해서는 함께 작업하기도 했었지만, 각자가 개인적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들이 많았었다. 2018년 초 서로 만나게 되었을 때 둘이 같은 비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잘 알다시피 우리는 자바 섬에 존재하는 트랜스 상태의 춤 공연 문화로부터 시작했던 프로젝트였지만, Yennu는 자바 섬의 동부 출신으로 그 지역에서는 'jaranan buto'라는 트랜스 춤 공연 문화가 있고, 나는 자바 섬의 중부 출신으로 매일같이 'jathilan' 혹은 'jaranan'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공연을 보면서 자란 사람이었다. 2018년에 우리는 함께 뭔가를 만들어 보자는 이야기를 했었다. 처음에 우리가 생각했었던 프로젝트는 음악이나 투어, 밴드 같은 것이 아니었었다. 음악은 보다 더 큰 아이디어의 일부 정도였고, 우리는 전시회나 갤러리 등을 목표로 잡았었다. 자바 섬 동부에 위치한 마을인 Blambangan, 현재는 Banyuwangi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마을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42> 어떤 의미에서 전시회나 갤러리가 첫 목표였다는 것인지? 좀 더 시각적인 부분에 치중했었다는 말인가?

    Mo'ong> 그렇다, 거기에 문학적인 요소도 많이 더하자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결국에는 투어를 도는 2인조 밴드가 되어버렸는데, 원래는 이런 식으로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밴드를 결성하려는 생각조차도 없었다, 이미 각자의 프로젝트가 충분히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Yennu는 아예 음악계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고 작곡가이기도 하다. 나 또한 작곡가이며, 각자가 따로 진행하는 프로젝트들이 여럿 있다, 그렇게 일을 하다 보니 서로 만나게 되었던 것이지만.

    42> 'Raja Kirik'이라는 이름은 무슨 뜻인지?

    Yennu> 문자 그대로 "개(Kirik) 왕(Raja)"이라는 뜻이다. 자바어에서는 개를 가리키는 표현이 여럿 있다.

    Mo'ong> 예를 들어 'asu'라는 단어도 인도네시아어에서 개라는 뜻이다. 하지만 'asu'는 강력한 개를 가리킨다, 거칠고 공격적인 개들을. 'Kirik'은 작고 버릇없는, 약하면서도 자꾸 짖어대는 느낌의 개를 가리킨다.

    Yennu> 그러니 'Raja Kirik'이라는 말은 작은 왕,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왕이라는 의미에서의 "개 왕"이라는 뜻이 된다. 물론 반란의 상징으로 쓰인 말이다. 이 표현은 사람들, 힘이 없는 사람들을 상징하는 표현이며, 커다랗고 강한 왕이 작고 약한 왕에게 이렇게 말하는 느낌인 것이다: "너는 이제 잡담 말고는 하지 못한다!" (웃음) 하지만 'Raja Kirik'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자바 섬의 동부 지역에는 Narayan과 반란군의 전쟁에 대한 오랜 옛 이야기가 있다. 당시 자바 섬에는 큰 왕국과 그 왕국의 영역 바깥에 있는 작은 지역이 있었다. 그 작은 지역을 차지한 반란 세력은, 결국에는 전쟁에서 지게 되었지만, 끝까지 싸워 나갔었다. 그러니까 당시 자바 섬에는 '큰 왕'와 '작은 왕'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 '작은 왕'에 대해 "개 머리를 했다"는 등의 표현을 사용해 불렀다. 심지어 한번은 그 작은 왕이 식인 행위를 했다고, 사람이 아니라 악마라고까지 표현했었다! 그 시대는 신화적인 것이 중요하게 여겨졌던 시대였다. 그리고 사람들은 여전히 자바 섬의 동부 지역에서는 무언가 어둡고 악마적인 일들이 존재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작은 지역의 사람들, 전쟁에서 패배했던 자바 섬의 동부 지역 사람들은 자신들의 왕을 영웅으로 묘사했었다. 이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변형했었다: "그래, 그 분은 악마가 맞다, 하지만 그 악마가 바로 나의 왕이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의 '작은 왕'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신화를 만들어 나갔다.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이 '작은 왕'의 상징은 자바 섬의 동부 지역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치유로 여겨지고 있다. 그리고 이 신화들을 둘러싸고 다양한 예술이 발전되기도 했다. (역주: 마자파힛(Majapahit) 제국 시대 블람방안(Blambangan) 지방의 반란, 그리고 여기에서 발전된 '다마르울란'(Damarwulan) 신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앞에서 'jaranan buto'를 언급했었는데, 여기에서는 말을 탄 기수로 등장하지만, 무튼 'jaranan buto'에서는 모든 등장인물들이 전부 거대하다, 말조차도 거대하게 등장한다. 'Buto'가 거대하다는 뜻이다. 'Jaranan buto'에 등장하는 모든 것들이 거대하다. 거대한 멧돼지, 거대한 말, 거대한 기사들이 등장한다.

    Mo'ong> 처음에는 이야기였지만, 곧 신화에 춤이 곁들여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예술은 전부 자바 섬 동부 지역에서 시작되었던 사람들의 저항에 대한 것이다. 또 다른 예시로는 'reog ponorogo'가 있는데, 이는 흉내를 내며 추는 춤으로 사자의 머리를 한 왕이 공작새 깃털로 된 모자를 쓰고 추는 춤이며 참파(champa, 이전에는 중국의 영향권이다가 현재는 베트남 영토에 존재하는 민족)와도 연관되어 있는 문화다. 공작새는 중국 문화권에서 여성을 뜻하는 상징이며, 왕의 아내, 중국의 귀족이자 실질적으로 왕을 통제하는 여인을 뜻한다. 사자는 왕을 상징한다. 사자의 머리 위에 쓰여진 공작새 깃털 모자는 왕에게는 힘이 더 이상 없다는 뜻이다, 저항의 상징인 것이다.

    42> 예술과 신화가 서로 소통하는 방식이 굉장히 흥미롭다. 음악은 이런 맥락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되는가? 이러한 신화들 속에서 음악이 어떻게 발전하게 되는지, 또는 음악이 이러한 의식과 예술에 어떻게 곁들여지게 되는 것인지?

    Mo'ong> 이러한 춤 공연에 등장하는 음악은 가믈란(gamelan)의 요소들을 가지고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미니멀리즘이다. 2개 혹은 3개의 비트만이 있으며 계속해서 반복될 뿐이다. 그리고 플루트 연주도 좀 있다. 모든 음악들이 거의 같은 패턴으로 진행되지만 지역마다, 장소마다 자신 나름의 스타일로 조금씩은 변주를 가한다. 자바 섬의 복잡성이란 이런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패턴이 전부 같으며 비트와 리듬 또한 전부 같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연, 춤 그 자체이다, '힘'에 대한 공연이니까. 예를 들어 자바 섬의 중앙부에서 진행되는 'jaranan'을 보면 사람들이 트랜스 상태에 빠져들어 살아있는 닭을 뜯어먹거나 유리, 못, 불 같은 것을 먹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발리 섬 근처에서도 비슷하게 춤을 추다가 트랜스 상태로 빠져들어가 스스로를 작은 칼이나 거대한 검으로 찔러대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자바 섬 중앙부와 비슷한 측면이 존재한다. 이러한 공연들을 설명하기 위한 여러 가설들과 이론들이 있으며, 몇몇 사람들은 이러한 트랜스 상태의 행동이 '힘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일종의 '공격적이지 않은 저항'인 것이다. 나는 이러한 모습을 '수동 공격적인, 부드러운 반란'이라고 정의하겠다.

    42> 그런 공연에서 몇 명 정도가 참여하는지? 춤이 진행되는 동안 관객들도 능동적으로 참여하는가? 그리고 어떤 사람이 트랜스 상태에 빠지는 것인지?

    Mo'ong> 무대에서 춤이 진행되지만 누구나 거기에 참여할 수 있다! 공연에 가 보면 관객으로 간 당신 또한 춤에 참여하게 되며, 어쩌면 당신 또한 트랜스 상태에 빠져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Yennu> 트랜스 상태에 빠져들기 위해서는 특정한 주파수를 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몇몇 사람들은 이 것이 가능하다. 이런 능력이 없다면 트랜스 상태로는 빠져들 수 없다.

    Mo'ong> 하지만, 때로는, 스스로를 진정으로 열어젖힐 수 있다면 트랜스 상태에 빠져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Yennu> 그리고 이러한 공연에는 언제나 주술사가 참여하여, 트랜스 상태가 너무 극단으로 치닫는 경우 주술사가 직접 나서서 트랜스를 멈춰 준다.

    42> 당신들 또한 트랜스 상태를 경험했던 적이 있는지?

    Mo'ong> 나는 겪었던 적이 있다, 10대 시절이었다. 재미있는 경험이다. 만약 이런 춤 공연들을 유럽에서 한다면 미성년자는 절대로 관람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바 섬에서는 이런 공연들은 그냥 문화다. 아주 정상적인 것이며, 잔인한 광경도 아니다.

    42> "Dor"나 "Rampokan" 뮤직비디오도 비슷한 느낌인 것 같다. 유럽인들이 이러한 문화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Mo'ong> 그러니까 말이다. 흥미로운 주제다. 언젠가 빌뉴스에서 몇몇 사람들과 대화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이렇게 질문해 왔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악마를 좋게 여기기도 하는데 대체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하지만, 자바 섬의 신화에서는 좋음과 나쁨 사이의 경계선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악마들조차도 좋은 측면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막상 나는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다. Yennu는 이슬람교 가정에서 자랐고. 내 할아버지는 자바 섬 최초의 선교사들 중 한명이었다, 그렇지만 우리 가족은 자바 섬의 문화 속에서 살고 있다.

    Yennu> 자바 섬이나 인도네시아의 여타 다른 지역에서는 외부에서 들어온 것들이 언제나 어느 정도의 변형을 겪을 수 밖에 없다, 심지어 종교마저도 그렇다. 물론 음악도. 인도네시아에서는 그 어떤 것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

    42> 인도네시아에서는 모든 것들이 더 탄력적인 것 같아 보이며, 사람들도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에 열려 있고, 사실 변화를 오히려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그래서 당신들의 음악이 유럽 음악에 비교하자면 독특하게 들리지만 인도네시아 내에서는 더 일반적인 느낌으로 들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당신들의 음악 또한 규칙이나 분류로부터 자유로운, 더 열려 있는 음악인 것 처럼 들린다. 정식 음악 교육을 받아본 적이 있는지?

    Yennu> 음악 이론을 공부해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서구권의 음악을 계속 듣고 있기는 하다, 더해서 전통 음악에 대한 지식을 일부 가지고 있기도 하고.

    Mo'ong> 나는 음악 학교를 다녔고 클래식 음악과 음악 이론을 공부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런 음악들에는 질려 버렸다! 심지어 지금까지도 나는 아카데미의 시스템을 해체하고 있다. 음악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오선지를 펼쳐 놓고 음계를 그려 가며 시작해야 한다. 반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냥 연주해라! 재미있게, 즐겁게 연주하다 보면 스스로 예술을 체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모든 지식들, 나 또한 음악적 지식을 갖고 있으며, 모든 지식들은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나만의 길을 찾아내었다. 나는 음악 이론에서 내가 필요한 부분들만을 추출해서 내 것으로 만들고 있다.

    42> 어디에서 주로 영향을 받았는지?

    Yennu> 내 생각에 우린 운이 좋은 편 같다, 인도네시아 출신의 음악가라는 것이 말이다. 우리는 인도네시아의 문화도 잘 알고 있지만 동시에 서구권의 음악적 지식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말 그대로 모든 것으로부터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는 온갖 디지털적인 것들을 시도하며 지낸다. 우리는 인도네시아의 문화에 대해 말하려고 노력하면서 동시에 여러 다양한 외부의 영향을 활용하고 있다, 노이즈를 섞는다던가 하드코어한 음향을 사용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Mo'ong> 우리는 언제나 이런저런 것들을 결합시키고 있다. 학교에서 음악의 기본과 클래식 음악에 대해 배웠지만 그 이후에 음악을 만드는 법을 스스로 발견했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은 '시스템'이지 '지식'이 아니다. Raja Kirik의 음악에는 폴리리듬이 있는데...

    Yennu> ...카오스-리듬!

    Mo'ong> ...이는 자바 섬의 것이 아니다, 서구권 음악의 영향이지.

    42> 창작은 어떻게 하는지? 음악을 만들 때 어떻게 시작하는가?

    Mo'ong> 두 번째 앨범 [Rampokan]은 비대면으로 만들어졌다. Yennu와 나는 서로 떨어진 지역에서 지내고 있었으며, 당시는 COVID 팬데믹 중이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Raja Kirik의 창작 과정은 이렇게 진행된다: Yennu가 음악적 구조를 만들어서 나에게 보내면 내가 몇 개의 층을 더하고, 내가 이 것을 다시 Yennu에게 보내면 앞의 과정이 반복되는 식이다.

    Yennu> 우리는 창작을 할 때 우리가 만들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계속해서 머릿속에 떠올리는 주제 하나는 '트랜스 상태의 춤'이다. 그리고 Mo'ong이 쓰레기, 말 그대로 진짜 쓰레기들을 가지고 음악을 연주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기도 하다. 자바 섬의 트랜스 음악이란 일반적으로 도시지역이 아닌 외곽지역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Mo'ong> 그리고 또한, 그렇게 일어나기에 이 트랜스 상태의 음악과 춤이 저항의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궁정'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것들에 대조되는 식으로. 이 트랜스 음악은 싸구려 도구들로 연주되는 편인데, 제대로 된 악기를 구매할 돈이 없는 사람들이 주로 연주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가믈란 악단들이 '궁정 방식'으로 악기들을 활용하는 것에 대한 비판으로써 쓰레기로 만든 악기들을 연주하고 있다. 저항의 의미 또한 있다, 전통적인 가믈란 및 제도권 음악과 대비되는 상징으로써.

    Yennu> 인도네시아는 굉장히 복잡한 사회이다. 궁정 예술, 궁정 가믈란은 일종의 제도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완성되어 고정되어 있는 것들이다. 특별한 경우에만 연주되며, 관객들 또한 상류층 혹은 심지어 왕족들이다.

    Mo'ong> 또한, 가믈란에는 일종의 '신화'같은 것을 부여하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가믈란 음악가들은 악기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말하곤 한다. 그리고 나는 그런 신화를 부수고 싶다. 그리고 또, 인도네시아와 서구권 사이에 다른 점이 하나 더 있다. (편집주: 서구권의) 모든 사람들은 '자유'에 대해 이야기하며 자신들이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에서는, 특히 자바 섬에서는, 자유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는 "뭐든지 원하는 것이면 다 해라!"같은 뜻이 아니다. 자바 섬의 문화는 아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어서 모든 사람들이 '맥락'을 이해해야만 한다. 그래서 실제로 이러한 측면이 자바 섬의 예술가들을 더 창의적으로 만들어 주고 있기도 하다, 이미 존재하는 예술적 컨셉과 어떻게 하면 시너지를 일으키는 식으로 창작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되면서. 하지만 인도네시아에는 다른 측면도 존재하고 있다, 일반적인 것들에 반대하는, 강력한 대안 커뮤니티들이 존재하고 있기도 하다.

    42> 쓰레기들로 만들어낸 "뒤틀린" 악기들을 사용한다는 것 또한 당신의 접근법을 실체화한 것 같다...

    Mo'ong> 그렇다. 그런 악기들을 사용하고 있기에, 내가 가믈란 느낌으로 연주한다고 해도 결국에는 나는 내 맘대로 연주할 수가 있게 된다. 그러면 예술 학교나 제도권의 사람들, 혹은 음악 행사의 사람들은 나에게 화를 내지 않게 된다, 가믈란이 아니기에, "하지만 가믈란처럼 들리는 음악이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가믈란이 아니다!" 나는 자유로움을 표현하고 싶다, 하지만 동시에 무언가를 창조해야만 하기도 하다. 그리하여 우린 항상 "다들 계속해서 존재하도록" 내버려둘 수 있게 된다, 그것들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할 수 있도록. 그래서 인도네시아에는, 특히 자바 섬에는 여러 외부 영향은 있지만 - 무슬림들, 기독교도들, 네덜란드 식민 통치자들 - 그것들이 현 상태를 바꿀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뿌리를 찾아낼 수 있게 된다. 흐름이 변하더라도, 엄청난 수의 외부 영향들을 가지고 흐르는 흐름이 있더라도. 뿌리는 언제든지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42> 아마도 이 부분이야말로 유럽의 음악가들과는 가장 크게 다른 부분일 것이다, 유럽에서는 많은 예술가들이 무언가 혁명적인 것, 완벽하게 소외시키는 것을 하려 노력하는데. 어쩌면 이런 접근법이 아예 틀린 것일지도 모른다, 당신의 말처럼, 전통과 문화를 파괴하고 거기에 맞서서 싸우기 위해서는 우선 전통과 문화를 인지하고 인정해야 하는 법이니...

    Mo'ong> 그런 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할 필요도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라는 개념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도 똑같다. 어째서 이렇게 말해야 하는지: "당신은 틀렸다. 내가 옳다."? 어째서인가 하면, 우리는 결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좋다. 원하는 건 뭐든지 하라. 진정한 민주주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그래서, 나에게 있어 민주주의적인 시스템이란 이런 것이고, 사실 우리는 민주주의의 핵심에 대해서는 절대 이야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커뮤니티에 존재하고 있는 시스템에 기대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게 민주주의적인지, 아닌지? 결국에는 그냥 그렇게 되는 것이다.

    42> 동전의 다른 쪽에는 무엇이 있는가? 사회적인 마찰?

    Mo'ong> 그러니까, 물론, 우리는 여전히 '관용'이나 그와 비슷한 것들에 관련된 문제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우리는 다양성 속에서 자란 사람들이다. 서로 아주 다른, 아주 다양한 사람들. 우리는 서로 다른 종교들과 다양한 형태의 영성을 가지고 있으며, 정말 다양한 언어도 가지고 있다, 국경일도 엄청나게 많다: 음력 새해, 인더스, 불교, 기독교, 자바 섬 고유의 휴일들... 유럽에는 크리스마스 뿐이지만! (웃음)

    Yennu> 발리 섬에도 엄청나게 많은 국경일들이 있다.

    42> 설명할 수 있을 방법이 있다고 치고, Raja Kirik의 음악을 설명한다면?

    (둘 다 웃었다)

    Mo'ong> 기본적으로는 트랜스다. 모든 아이디어가 거기에서 나왔다.

    Yennu> 하드코어 비트 등등을 좋아하지만, 전부 트랜스 상태로의 비트로써 사용하고 있다.

    Mo'ong> 가믈란의 전형적인 리듬을 쓰기도 한다. 물론 이런 리듬은 트랜스 음악에서는 흔하게 사용되는 리듬이 아니다. 하지만 동시에 "전통적이다"라고 분류되기도 힘든 리듬이다.

    Yennu> 오히려 현대적인 것에 가깝지.

    Mo'ong> "전통적이다"라는 말이 정확히 무슨 의미인가? 서구권에서는 좀 다른 견해를 가질 수도 있겠지만, 예를 들어보자면, 인도네시아에서 트랜스 춤 공연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전통적 춤 공연"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두 눈으로 보는 것은 정말로 현대적인 무언가이다. 자바 섬의 그림자 인형극 'wayang'을 본다 치면 물론 전통적인 문화로 보일 것이다, 실제로 전통에서 출발한 것이기에, 하지만 오늘날의 'wayang'은 이미 상당히 변한 형태로써 근대적이고 현대적인 문화가 되어 있다.

    Yennu> 인도네시아에도 예술 학교들이 있으며 그런 것들을 '전통적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아니면 궁정 식의 가믈란 같은 것도 전통적인 문화일 것이다. 이미 멈춘 것들이기 때문이다. 고정되어 있으니. 하지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트랜스 춤 공연을 본다면 그들이 DJ라던가 그 비슷한 것들을, 미디라던가 전자 키보드 같은 것 까지도 사용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42> 음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던 것인가? 음악에 흥미를 갖게 된 이유는?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음악가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었는지?

    Mo'ong> 어렸을 때 부터 음악가가 되고 싶었다! 사실은 회화로 시작했었다. 초등학교를 마쳤고. 그저 음악을 하고 싶었다.

    Yennu> 모든 것이 나로부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을 터인데, 트랜스 춤 공연의 무용수에게 트라우마적인 경험을 직접 당했었기 때문이었다. 한 4살 무렵이었을 것이다. 그 무용수가 나를 쫒아왔던 것 같다. 나는 작고 어린 아이였고, 뛰어서 도망갔다, 그 무용수는 입에 피를 잔뜩 머금고 있었는데 살아있는 닭을 물어뜯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무용수가 입에서 피를 흘리며 나를 쫒아왔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때 어쩌면 나는 jaranan과 사랑에 빠졌던 것일지도 모른다. 쫒겼던 것도 사실이지만 내가 그 순간 이렇게나 강렬한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기에. 나는 내가 예술가가 되고 싶어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42> 당신들에게 영감을 주는 모델 같은 예술가가 있는지? 어떤 음악을 주로 듣는지, 어떤 음악을 들으면 영감을 받아 음악 작업에 몰두하게 되는지?

    Mo'ong> 나는 다 듣는다. 물론 대체로는 인도네시아의 "전통" 음악이다. 그러니까, 나는 특별히 내가 정말 좋아하는 예술가는 딱히 없다. 그냥 듣는다. 특정한 예술가를 정해서 그에게 열광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냥 무작위적으로 이것저것 듣는다. 메탈, 팝, 록, 사랑 노래, 클래식 음악을 들을 수도 있다. 특별한 장르는 더 선호한다거나 하지 않는다.

    42> 정말로, 그 누구도 특별히 좋아하지 않는가?

    Mo'ong>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에서라면 작곡가 Rahayu Supanggah가 있겠는데, 내 선생님이기도 하다. 서구권이라면 미니멀리즘 작곡가들, Phillip GlassSteve Reich같은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또 다른 트럼펫 연주자 Jon Hassell까지: 말라야 및 자바 초현실주의에 대한 앨범을 만든 사람이기에 그에게 관심이 생겼다. 그러니 실제로 나는 즐기기보다는 분석하기 위해서 듣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우리 세대의 대부분은 특정한 예술가나 구체적인 트렌드를 따른다거나 그에 열광하지는 않는 편이다. 클래식 음악을 듣고 싶은 기분이 든다면 그냥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

    42> 함께 음악을 듣거나 하기도 하는지?

    Mo'ong> 연구를 해야 할 때에는! (웃음) 예를 들어 'dangdut'(편집주: 인도네시아의 민속 음악)을 함께 듣기도 한다.

    Yennu> 그리고 인도네시아에서는 무엇이 되었든지간에 음향을 듣지 않는 것이 불가능하기도 하다. 인도네시아는 아주 시끄러운 나라다. 아침이 되면 이웃이 dangdut을 엄청나게 큰 볼륨으로 틀기 시작할 것이며, 공개적으로 진행되는 기도 또한 정말 많이 열린다.

    Mo'ong> 인도네시아에서 태어난다면 자연스럽게 아주 많은 소리들을 들으며 자라게 된다. 소음 그 자체를. 소음은 어떤 것도 될 수 있다, 오토바이, 나방, 동물들, 그리고 매일 밤마다 가믈란이나 wayang 소리가 마을에서 울려퍼지고, 여전히 온갖 밴드들이 음악을 연주하고 있으니.

    Yennu> 24시간 내내 노이즈 음악이 모든 곳에서 울려퍼진다!

    42> 최근 인도네시아에는 밴드들 및 예술가들이 많이 있는지?

    Yennu> 그러니까, 우리 집 근처에만 해도 2~3명의 jathilan / 트랜스 춤 공연단이 있으며 아마 2개의 dangdut 그룹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역 기반의 음악 활동이 정말 많이 진행되고 있다.

    42> 인도네시아에서 음악가라는 직업으로 살아가기는 쉬운 편인지?

    Yennu> 나는 많은 시간을 얼터너티브 씬에 쏟고 있지만 거기에서 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치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음악 산업계에서 일을 하고 있기도 하다. 영화라던가 광고를 위해 작곡을 하는 일이며 이를 통해서 먹고 살고 있다.

    Mo'ong> 음악가로 살아가기가 쉽다고는 하기 힘들다. 경우에 따라 다르다. 열심히 일해야 하지만 또 동시에 운이 좋아야 하기도 하다.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음악가를 직업으로 삼아 먹고 살 수 있을 기회가 있었으니.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의 여정은 상당히 긴 편이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나는 연극, 무용, 다큐멘터리, 작곡 등의 일을 하고 있다, Yennu와 비슷하지만 Yennu는 음악 산업계에 좀 더 깊이 발을 담그고 있으며, 나는 좀 더 언더그라운드 쪽이다. 하지만 직업으로써 하는 일은 거의 비슷하다.

    42> 예전에도 같이 일했던 적이 있는지?

    Mo'ong> 같은 회사의 일을 받아서 했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는 프로젝트별로 달랐는데, 때로는 나 혼자서 이런저런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고, 때로는 Yennu 혼자서 여러 프로젝트들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번 여름에는 네덜란드 Utrecht에서 연극 관련 작업을 함께 진행할 예정이지만, Raja Kirik이 아닌 우리의 본명을 사용할 것이다. Raja Kirik 활동은 투어라던가, 인지도라던가 같은 걸 기대하지 않고 하는 활동이다. 잃을 건 하나도 없다!

    42> 인도네시아에서 당신들과 비슷한 장르의 음악을 하는 밴드들이 있는지?

    Mo'ong> 이 '씬'의 출발점은 Senyawa일 것이다. Senyawa가 처음으로 인도네시아에 있는 이런 종류의 음악들을 유럽 및 전 세계로 알렸다. 그리고, 운 좋게도, Raja KirikGabber Modus Operandi가 그 다음 밴드로 등장했다. 이제 젊은 세대가 우리를 일종의 '롤 모델'로 보고 있으며 우리를 모방하려고 노력하고 있기도 하다, 인스타그램에서 그런 젊은 밴드들 몇을 봤었다. 그러나 그러한 모방은 과정의 일부일 뿐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하게 된다, "차라리 그냥 다른 것을 만들지, 똑같은 것을 만든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니까."

    Yennu> 다양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세계의 어떤 곳에서든지간에 누구든지 만나 함께 작업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42> 다른 예술가들과의 협업을 즐기는 편인지?

    Mo'ong> 협업의 가능성에는 열려 있다. 둘 다 개인적으로는 각자 예술가로써 여러 협업 제의를 받고 있지만, Raja Kirik의 이름으로는 제안이 거의 들어오지 않고 있다, 아마 이 프로젝트가 아직 시작한 지 몇 년 안 된 프로젝트이기 때문인 것 같다.

    Yennu> 그래서 Raja Kirik을 연극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거나 하는 일을 하고 있기도 한 것이다. Utrecht에서 봄에 진행될 페스티벌의 공연을 위해, 베를린에 거주 중인 싱가포르 감독 Choy Ka Fai 및 암스테르담 출신 무용가들과 함께 협업을 할 예정이다.

    42> 새 앨범은 계획중인지?

    Mo'ong> 아마 앨범의 형태는 아닐 것 같은데, 어떤 아주 특별한 녹음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에 대해 이야기해 본 적은 있다. 자바 섬 동부의 음악가들과 함께 녹음을 한 후, 희망컨데 유럽에서 4번의 아주 큰 규모의 연극 공연을 진행하는 것이다. 인도네시아에는 공연을 위한 자금 지원이 그다지 많지 않다. 하지만 유럽인 감독을 기용하고 유럽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공연하게 된다면 큰 찬사를 받게 된다. 대신, 이번에는, 우리가 직접 우리의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게 해 달라!



    https://youtu.be/L1FunqHrF1I
    "ACT IV. Slompret Slompr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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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ennu Ariendra / J. Mo'ong Santoso Pribad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