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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NOWER FOREVER
    [...]/[KNOWER] 2023. 11. 11. 14:01




    https://youtu.be/PbBLcKKYTPI
    "Real Nice Mo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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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theguardian.com/music/2022/oct/03/louis-cole-knower-brainfeeder-interview


    놀라운 음악성과 불손한 가사를 통해 침실에서부터 스타디움까지 다양한 무대를 섭렵하며 슈퍼스타 팬들을 거느리게 된 L.A. 재즈 드러머
    Ammar Kalia
    [The Guardian]
    2022년 10월 3일


    8살에 드럼스틱을 처음으로 집어들고 James Brown CD에 맞춰서 드럼을 두들기기 시작했을 때 부터, Louis Cole은 언제나 항상 훵크를 좇아 왔었다. "말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느낌인데, 나는 이 느낌이 거기에 있으며 실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말했다. "질척거리면서도 구불거리는 무언가인데 - 나는 이 무언가가 없으면 아예 살아갈 수가 없는 사람이다."

    재즈-훵크 듀오 Knower의 멤버이자 L.A.의 즉흥 음악 씬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베이시스트 Thundercat, 색소포니스트 Sam Gendel 등등과 자주 협업하는 음악가인 Louis Cole은 지난 10년간을 그 '질척거리면서도 구불거리는' 무언가를 중심으로 쌓아 올린, 침실에서 제작해낸, 청자의 마음을 녹여버릴 정도로 복잡한 음악들을 만들어오며 보냈다. 2010년 [Louis Cole]을 시작으로 여러 악기 연주를 혼자서 스스로 층층이 쌓아올려 만든 Louis Cole의 솔로 앨범들은 초현실적인 비디오 게임의 광적인 사운드트랙 같은 음악이었다 - 모든 수록곡들이 독특한 가사와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댄서블'한 훵크에 기반을 두고 있는 음악.

    하지만 Louis Cole이 본격적으로 인정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17년이 되어서였다. 그리고 이 유명세는 뜻밖의 원인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은행 계좌 잔고를 확인하기 너무 무섭다는 고백을 하는 아주 짧은 곡으로부터. "나는 유행을 따르는 음악을 만드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 그냥 그 당시에 느끼는 감정을 곡으로 써 내려갈 뿐이며, 그 때의 나는 내 은행 계좌 잔고를 확인하기 무서웠었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완성된 곡 "Bank Account"는, Louis Cole에 따르자면 "거의 내 키보드 연습량을 과시하기 위해서 만든 곡이었다. 이 정도로 큰 인기를 끌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Bank Account"의 뮤직비디오는 - Louis Cole이 키보드와 드럼을 연주하는 비디오 - BjörkJohn Mayer가 온라인에 공유하기도 했으며, 결과적으로는 같은 해 Red Hot Chili Peppers의 투어의 오프닝으로 Knower가 공연하게 되는 기회로 이어지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커리어'라는 것을 가질 수 있을지에 대해 확신이 아예 없었다. 그러다가 "Bank Account"가 나왔고, 많은 것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동시에 이 인기는 사람들이 나를 순전히 멍청한 가사만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만들기도 했다." Louis Cole은 L.A.에 있는 그의 자택에서 영상 통화를 통해 말했다. "사람들은 내가 내 이름으로 발매해 둔 앨범들을 듣지 않은 사람들이었고, 따라서 나는 일종의 '밈'이 되어버렸었던 것이다. 내가 단순히 그런 사람인 것만은 아니라는 걸 증명할 만한 음악을 정말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 말이다."

    대부분의 밤을 새벽 6시까지 녹음하며 보내고 그 후 8시간을 내리 잔 후 다시 온갖 악기들 중 하나 - 드럼, 키보드, 베이스, 기타, 보컬 - 를 4시간동안 연습하며 보내는 Louis Cole은 음악에 대해 헌신하고 있는 사람이었으며, 이 헌신은 그의 앨범들 중 가장 완성도가 높으며 균형이 잡힌 앨범, 20곡짜리 앨범 [Quality Over Opinion]으로 결실을 맺게 되었다. 음악에 있어서의 진정성을 얻고자 하는 고군분투를 담은, 현악과 읊조림으로 구성된 첫 트랙을 지나, 앨범을 관통하며 Louis Cole은 때로는 프리 재즈의 광란을 선보이기도 하고 ("Bitches"), 때로는 부드러운 발라드 풍으로 친밀함을 노래하기도 하고 ("Laughing In Her Sleep"), 한번은 오럴 섹스의 미덕을 찬양하기도 한다 (1970년대 풍의 클라비넷 훵크 "Park Your Car On My Face"). [Quality Over Opinion]은 사방으로 뻗어나가고 있는 앨범이었다: 종잡을 수 없는 주제 뿐만 아니라 흔들리는 그루브의 타고난 흐름 또한 청자의 주목을 이끌지 않을 수 없을, 그런 앨범.

    싱글 "I'm Tight"의 슬랩 베이스 싱코페이션은 Louis Cole 특유의 복잡하게 얽힌 훵크 중심의 진행을 여실히 보여 주는 완벽한 예제가 되는 곡이다. "COVID 때문에 투어를 못 다녔던 지난 2년동안 나는 내 머릿속에 처박혀 있던 모든 아이디어들을 써내려갔으며, 그 아이디어들 중 하나는 16개의 다양한 훵크 섹션을 하나의 곡으로 엮어내자는 아이디어였다." 그는 말했다. "작정하고 하다 보니 거의 100개에 달하는 작은 훵크 연주 조각들이 모이게 되었다, 이렇게 작은 조각들을 만들어 모으는 과정 자체가 굉장히 명상적인 작업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려웠던 부분은 이 모든 조각들을 하나의 곡으로 합치면서도 그 결과물이 좆같이 구린 콜라주가 아니게 만드는 과정이었다. 실제 공연에서 어떻게 풀어내야 하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실제 공연에서 보여 주는 Louis Cole의 존재감은 상당한 수준이다. 마지막으로 런던에서 공연을 했을 때, 2021년의 그는 제대로 된 금관악기 세션과 해골 옷을 입은 백 보컬들을 동반한 채로 공연을 했으며, Louis Cole의 번개같은 드럼 연주는 한 스태프가 무대 위로 올라가 소품 의자를 그의 머리에 내리쳐서 박살내면서 겨우 끝나곤 했다. "무대 위의 나는 '필터'가 적용된 버전의 나다." Louis Cole은 이러한 연극적인 공연에 대해 말했다. "관객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건 좋아한다. 하지만 실제의 나는 기본적으로 굉장히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며, 이러한 측면을 극복하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해야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내가 항상 하는 것 중 하나는 선글라스를 끼는 것인데 - 선글라스가 크면 클 수록 좋다 - 사람들이 내 눈을 보지 않기를 바래서 그렇다. 사람들이 내 눈을 본다는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Louis Cole은 굉장히 내향적인 사람이라 이 영상통화 인터뷰에서도 내내 카메라를 끈 채 빈 화면으로 목소리만 내보내고 있었다. 그는 양 극단의 상태를 번갈아가며 사는 것 같아 보였다: 무대 위에서는 시끄러운, 때로는 상의도 벗어던지고 커다란 선글라스만 낀 채로 공연하는 공연자로, 집에서는 몇 시간이고 혼자 앉아서 고독 속에서 연습만 하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으로. 어떤 측면을 더 좋아하고 있는지?

    "작곡이야말로 나에게 주어진 일인 것 같다." 그는 잠시 멈추어 생각한 후 말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일이 바로 곡을 만드는 일이며, 굉장히 깊고 감정적인 음악을 만들어 일종의 '성찰'의 장소를 창조해내려고 항상 진심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 현재 발표되고 있는 대부분의 음악들이 그저 검증 혹은 돈을 좇고 있는, 그래서 음악을 들으면서도 그런 양상이 들려오는 듯한 그런 음악들이기 때문에."

    '진정성'과 '감정의 깊이'를 중시하는 사람 치고는, Louis Cole의 노래들은 때로 유쾌한 장난처럼 들리기도 한다 (2018년의 [Time] 수록곡 "After The Load Is Blown"을 참고하라). "어떤 작품이 작품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작품이 반드시 진지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말했다. "섹스 자체만큼이나 재미있으면서도 진부하지는 않은 '섹스에 대한 노래'를 만드는 것은 나에게는 도전이며, 할 만한 가치가 충분한 일이기도 하다."

    섹스에 대한 노래를 만들면서도 작곡기법과 유쾌함을 강조하는 Louis Cole의 방향성은 재즈에 둘러쌓여 자랐던 그의 성장 배경으로부터 기인하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응급실 의사였으나 일을 하지 않을 때에는 피아노를 연주하며 보내는 사람이었다 - "아버지는 Bill Evans같은 연주를 하는 사람이었다, 진짜 잘 한다." Louis Cole은 열광적으로 말했다 - 그리고 그는 아버지가 James Brown 연주를 할 때 옆에 붙어서 함께 재즈 명곡들을 같이 잼 연주하며 보냈다고 말했다. "정말 운이 좋았던 어린 시절이었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음악을 배웠다." Louis Cole은 말했다. "훵크는 재미있지만, 거기에 재즈를 더하면 말 그대로 광란의 파티를 벌일 수 있다 - 진정으로 개방적이면서도 실험적이며, 나는 그래서 재즈를 정말로 사랑한다."

    Louis Cole은 자기의 가장 열렬한 팬들 중 하나로 부모님을 꼽았으며, 어린 시절 배웠던 자유로운 형식의 실험이 현재 자신의 창작, 악기 연주에 있어서의 기교와 가사에 있어서의 예측 불허한 주제의 기반이 되었다고 말했다. "나는 내 음악에 내가 넣을 수 있는 최대한의 에너지와 사랑과 영혼을 담았다." 그는 말했다. "사람들이 이를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Louis Cole은 스스로가 만들어 낸 훵크에 만족하고 있는 것일까? "아, 물론이지. 또 다음 물결이 나를 덮쳐오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https://youtu.be/QdH4n57AJNY
    "It Will Get R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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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thelineofbestfit.com/features/interviews/genevieve-artadi-lost-and-found-dizzy-strange-summer


    모든 것을 혼자서 스스로 해내는데에 익숙한 예술가 Genevieve Artadi가 처음으로 Brainfeeder 레이블에서 앨범을 발매하게 되었으며, 이 앨범은 엄격한 리허설에서부터 무모한 포기와 회복에 이르기까지, 개인적이면서도 창조적인 '성장'의 시기를 다루고 있는 앨범이다.
    Kitty Richardson
    [The Line Of Best Fit]
    2020년 5월 28일


    새 앨범 [Dizzy Strange Summer]에서 Genevieve Artadi는 길을 잃고 있었다 - 커다란 감정들과 나쁜 관계들 속에서... 그리고 때로는, 그저 그녀의 아파트에서.

    "이 앨범을 막 만들기 시작했을 때 나는 거의 스스로를 파괴하고 있는 지경에 처해 있었다. 나는 '한번 거실에서 완전히 술에 떡이 된 채로 하룻밤 내내 깨어있다가 6시에 해가 떠오르는 걸 보면 어떨까?'같은 생각이나 하며 실제로 그렇게 해 보는 식으로 살고 있었다. 부정적인 의미는 아니었지만... 하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자유롭게 지내려 노력하고 있었다." 그녀의 협업자이자 동반자인 Louis Cole - 당시에는 같이 살고 있기도 했다 - 은 살짝 걱정하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너 괜찮은 거 맞아?'라고 물어보곤 했다. 나는 '걱정할 거 없어, 그냥 그런 시기일 뿐이야'라고 말했고." Genevieve Artadi는 웃으며 말했다.

    그녀의 새 앨범 [Dizzy Strange Summer]는 지난 7월 17일 Brainfeeder에서 발매되었으며, 이 앨범은 '무질서'를 포용하고 있는 앨범이었다. 앨범은 우울한 실존주의에서 눈을 잔뜩 크게 뜨고 있는 희망까지 전부를 담고 있는 앨범이었으며, 미쳐가는 상황과 제정신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에 대해 진솔하게 다루고 있는 앨범이기도 했다. 음악적으로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방황하는 앨범으로, Genevieve Artadi의 먼지투성이 팔세토 보컬은 재즈, 드림 팝, 댄스홀 사이를 넘나들고 있었다. Genevieve Artadi는 이러한 앨범을 만들어내는 일이 상당한 작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Knower의 멤버로 수 년간 격한 스케쥴에 맞춰서 지내게 된 이후 스스로를 느슨하게 풀어주고 싶어졌던 것이었다.

    "Louis는 내가 아는 한 가장 엄격하고 빡빡한 작업 윤리를 가진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그의 작업 방식에 동조하고 같이 가고 있는데, 그의 비전을 믿고 있기 때문이며 또한 그게... Knower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을 유일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Genevieve Artadi는 미소지었다. "지난 3년간 우리는 말 그대로 - '훈련' 이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훈련처럼 했다. 식사도 규칙에 맞췄고, 스케쥴도 규칙에 맞췄다. 앨범을 만드는 과정은 우리 둘에게만으로 굉장히 제한되어 있었고, 우리는 스스로를 방 안에 가두고 쉬지도 않는 채로 계속해서 작업만을 진행했었다."

    "그리고 그 앨범(Knower의 [Life])이 마침내 발매되었을 무렵, 어떤 이유에서인지... 우리 집에 항상 온갖 미친 친구들이 놀러오곤 했다. 나는 온갖 미친 사랑을 겪었으며 내 마음을 열기 위해서 노력했었다. 때로는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당시 관계, 연애 관계이던지 친구 관계이던지간에, 관계에 대한 문제들을 겪으며 상당히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보냈었다. 정확히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던 문제들을 겪었지만, 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는 굉장히 개방적으로 임했었다. 언젠가는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까지 단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내 뇌와 내 마음을 어디까지 확장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항상 궁금해 왔었다. 어떻게 하면 나의 현재의 관점 너머를 볼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때 당시에 나는 나를 온갖 다양한 방향으로 이끄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여기까지 오는 데에 다소 시간이 걸렸지만, 지금 현재의 Genevieve Artadi는 꽤 좋은 기분으로 지내고 있었다. 명상이 도움이 되었으며 (그녀는 불교 승려 Thích Nhất Hạnh을 그녀의 "친구"라고 부르고 있었다) 또한 그녀를 지원해줄 수 있을 네트워크 또한 그 동안 더 공고해졌던 것이다. "나는 그저 나 자신 그리고 내 주변 환경과 좀 더 어우러지며 조화롭게 지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 그녀의 말이었다.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나 또한 어떤 것들을... 가끔씩 분노를 그대로 폭발시키기 보다는, 나는 나 자신을 이해하고 싶다. 나는 아마도 나 자신에게는 건강하지 못할 몇몇 관계들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관계들을 결국 놓아버릴 수 있었음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Dizzy Strange Summer]의 구성은 아무리 작게 말해도 아주 다양했다 - 아주 정통적인 재즈 앙상블에서부터 전자음악 4인조, 그리고 1인 여성 밴드까지. 작곡에 대한 이러한 접근은 Genevieve Artadi 스스로 다른 음악가들 사이에서 자신을 어떻게 위치시키고 있는지로부터 발생한 것 같아 보였다 - '프론트우먼'보다는 '협력자'에 더 가까운 위치로. 어쩌면 앞서 언급한 Louis Cole과 함께 거의 10년간 작업을 하다 보니 이렇게 굳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 해골 원피스 혹은 180bpm 드럼 솔로로 무대를 훔칠 줄 아는, 그런 사람과 10년에 가까운 시간을.

    이와는 대조적으로, Genevieve Artadi는 어쩐지 스포트라이트를 거부하는 정도로 보여지기도 하는 사람이었다. "가끔씩 유튜브 댓글을 읽어 본다, 특히 나에 대한 댓글들을.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보는 것이 재미있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댓글들 중 누군가가 나를 보고 '노래 속으로 사라진다'라고 표현했다. 나는 이 표현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는 무언가를 뽐낸다거나 하는 식으로 노래하지는 않는다." 그녀의 말이었다. "나는 단 한 번도 스스로를 그런 곳으로 끌어들인 적이 없었다, 나는 언제나 작곡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어쩌면 내 성격 자체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나를 좀 봐'같은 성격이 아니다. 그리고 심지어 내가 직접 만든 음악에서도 그렇다 - 가끔씩은 이게 내 프로젝트라는 것조차도 잊어버리곤 한다."

    이러한 '자아의 죽음'은 이 앨범 [Dizzy Strange Summer]이 Genevieve Artadi의 삶과, Genevieve Artadi의 집을 드나들던 사람들의 영향을 아주 많이 받아 만들어진 앨범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나는 음악가들로 가득한 집에 살고 있으며, 해서 솔직히 말하자면 빈 공간이 있을 때 마다 어디든 그 속으로 쑤셔들어가야만 한다. 때로는 작곡을 정말 계획적으로 할 때도 있고, 때로는 친구가 찾아온 김에 내가 그 친구에게 '너 혹시 기타 있어?'라고 묻는 식으로 아주 즉흥적으로 진행할 때도 있다. 나에게 [Dizzy Strange Summer]는 이 모든 것들이 전부 함께 어울리는, '말이 되는' 앨범으로 들리지만, 이 앨범들 다른 누군가에게 들려 주면 다들 반응이 '우와... 완전 다르네'같은 반응이다. 나는 내가 겪고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간에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그래서인지 이 앨범에서도 내가 모든 곳에 속속들이 다 퍼져 있는 것 같다. 그리고 - 내 나이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겪고 있는 이런저런 것들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 나는 [Dizzy Strange Summer]이 '바로 이러한 유형의 앨범'일 필요는 전혀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상당히 오랫동안 그녀의 팬임을 자처해 온 필자였지만, 막상 나는 Genevieve Artadi의 개인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자기가 1980년대 초반 L.A.에서 자랐었다고, 그녀의 부모님은 한 곳에 매여있지 않은 채로 살아가던 사람들이었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에는 대략 2~3년마다 한 번씩은 이사를 다니며 살았다." 그녀의 설명이었다. "부모님은 굉장히 즉흥적인 분들이셨다... 가끔씩은 정말로 충동 그 자체같은 삶을 사는 분들이었다. 정말 열심히 일하셨고, 우리를 위해서 '삶'을 꾸리고자 하셨다. 나름대로의 사업을 하셨지만 잘 돌아가지 않은 때들이 있었고 그 때마다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일시적인 일자리를 찾기 위해서 노력하셔야 했었다. 가끔씩은 순전히 그저 한 가족으로써 함께 살아남기 위해서 다른 도시로 거처를 옮겨야만 했었다...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지."

    그녀의 부모님 또한 함께 밴드를 결성하여 활동하였으며, The PolicePat Benatar의 노래를 부르곤 했다. Genevieve Artadi는 아직도 이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으며, 최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부모님 밴드의 곡을 몇 개 업로드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내 언니가 10대였던 시절에 - 언니는 나보다 9살 많다 - 나는 언니 방으로 몰래 숨어들어가 Bobby Brown이나 Janet Jackson을 듣곤 했다. 팝 음악은 언제나 내 주변에 있었던 것이다."

    나는 Genevieve Artadi 음악의 클래식적인 화려함과 폴리리듬이 그녀가 받았던 정식 음악 교육 배경(그녀는 학교에서 클래식 피아노를 배웠으며 California State University에서는 재즈를 공부했다)에서 나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터뷰를 통해 밝혀진 사실은, 그녀는 사실 싱코페이션 기법에 대해서는 학교에서 배운 것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어렸을 때 폴리네시아 무용을 배웠었다, 폴리네시아 무용은 엄청나게 많고 다양한 드럼과 우쿨렐레 등이 포함되는 무용이다. 언니가 사모아 출신 여자아이와 친구가 되었었는데, 그 사모아 여자아이가 나에게 '여기서 같이 춤 춰 볼래?'라고 물어봐 주었었다. 어머니의 허락을 받아 언니와 나는 훌라(hula) 춤을 배워서 사람들의 생일 파티나 결혼식장에서 선보이곤 했었다." 이러한 폴리네시아 무용의 박자는 술에 취한 것처럼 복잡하고 따라잡을 수 없는 느낌이기도 하지만, 10대 시절의 Genevieve Artadi는 이렇게나 복잡한 박자를 상당히 쉽게 흡수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드러머들이 대여섯 줄지어 서 있는데 각자가 서로 다른 드럼으로 아주 복잡한 패턴의 연주를 하게 된다. 그리고 그 드러머들은 아이들을 위해서 연주를 단순화시키는 것도 아주 잘 했다 - 물론, 어린이들라면 그냥 '좋아 그래 - 12345, 123, 1234, 123456. 문제 없군!'이러고 바로 들어가긴 하지만!"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마침내 대학에 입학했을 때, Genevieve Artadi는 스스로가 미숙하다는 것을, 경험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그녀의 말에 따르자면 재즈는 '위험할 정도로 심한' 경쟁이 벌어지는 영역이었다 - 이제 막 18살이 된 아이들이 벌써 거의 완벽하게 악보를 재연하는 영역. "나는 재즈를 정말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나는 그 '게임'에 너무 늦게 들어갔다. 대학에 들어갔을 때 나는 이제 막 재즈의 언어를 배우기 시작했으며, 내가 비교적 빨리 배우는 편이긴 했고 스타일도 나름대로 잘 받아들이는 축에 속했지만, 여전히 너무, 정말로 어려웠었다 - 특히 즉흥연주가." 이제는 Genevieve Artadi의 목소리가 누구라도 탐낼 만한 멋진 '악기'가 되었으며, Snarky Puppy, Norrbotten Big Band, Thundercat 등등과 함께 무대에 오르는 정도가 되었는데. 여전히 그 때와 같은 자의식에 굴복하고 있을까? "만약 무대에서 스캣이라던가 비슷한 것을 해야 한다면... 나는 아마 무대 위에서 바로 무너져내릴 것이다. 하지만 내 직업은, 내 역할은 작곡이며 나는 내가 이 작곡이라는 역할에서 정말 진심으로 열심히 임해 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직접 불러야만 하는 부분들은, 어떻게든 감당할 수 있는 것 같다, 여전히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맞지만 말이다."

    '성별'의 문제를 언급하는 건 정말로 싫어하지만, 이 '씬'은 - 적어도 Genevieve Artadi가 속했다고 할 수 있을, '좀 더 중심에서 벗어나 있는' 씬은 - 겉으로 보기에는 남성들이, 그것도 좀 꼴통인 남성들이 댄스플로어 위에 많이 돌아다니고 있는 것 같은 씬이다. 반면 Genevieve Artadi는 대조적으로 상당히 여성적인 사람이다: 망사 스커트와 네온빛 의상을 입고 공연장에 등장하여 자연스럽게 솔로 부분을 노래하는 그런 여가수. '재즈계의 여성'이라는 것을 얼마나 의식하고 있는지, 그게 얼마나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나는... 하고 싶지 않은 만큼 그러고 있다." 그녀는 살짝 놀란 후 대답했다. "작곡할 때에는 그런 것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 그러니까, '나는 여자야, 내가 얼마나 거칠고 터프한지를 세상에 보여주겠어'같은 생각은 안 한다는 말이다. 그냥 내 일을 하고, 내 예술을 만들고, 나 자신을 표현할 뿐이다. 하지만 세상 밖으로 나와서 밴드 활동을 할 때에는... 여태껏 남자들과 함께 공연을 많이 해 왔지만, 그래도 여성들로만 구성된 밴드로 공연을 한다는 것에는 뭔가 끝내주게 멋진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Dizzy Strange Summer]에는 여성적인 에너지가 넘쳐나는 곡들이 수록되어 있으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고도 있다."

    나는 무대 뒷편에서의 성별 관련 역학관계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물어보았고 - 그리고 혹시라도 적대감 같은 걸 느껴본 적은 있었는지에 대해 물어보았다. "흠..." 그녀는 대답을 시작했다. "몇몇 남자들이 나를 그냥 멍청한 여자로, 그러니까 '너는 그냥 여자잖아, 그냥 노래나 부르라고'같은 식으로 대했던 적이 있긴 했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사람들도 나를 좀 더 잘 알게 되면서 그 관점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도 배웠다. 재즈 업계는 굉장히 작은 업계로, 항상 똑같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업계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에 그 몇몇 남자들은 시간이 지나며 결국 나에 대한 견해를 바꾸게 되었다 - 그저 내 일에 충실하게 임했으며, 딱히 무언가를 증명하려고 애쓰지는 않았던 것으로 인해."

    "그리고 나는 운이 아주 좋은 편이기도 했다, 나와 함께 작업했던 사람들은 서로를 존중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으니까. 내 협업자들은 정말 친절하며,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고, 정말 열심히 작업하는 사람들이기에, 나 또한 자유롭게 행동하는 편이 더 편안했다... 이 앨범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는 그냥 관객들이 뭐라고 생각하거나 말하는지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마음대로 춤을 춰 댔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니까."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나는 Genevieve Artadi에게 Brainfeeder 레이블(역주: Flying Lotus가 설립한 레이블)과의 계약에 대해 물어보았다. Brainfeeder는 그녀의 새 앨범 [Dizzy Strange Summer]를 발매하기에 최적인 레이블이었으니 말이다: 지난 4월 발매되었던 Thundercat의 [It Is What It Is] 또한 [Dizzy Strange Summer]와 비슷하게 재즈풍의 팝, 긴밀한 이야기들, 밝게 빛나는 기묘함 등으로 가득 찬 앨범이었으니까. Thundercat과 Genevieve Artadi는 KnowerThundercat의 투어에 참여해 함께 공연했을 때 부터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으며, Louis Cole 또한 Thundercat의 [Drunk]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그의 솔로 앨범을 Brainfeeder에서 발매하게 되기도 했었다. "원래는 [Dizzy Strange Summer]를 내가 직접 발매하려고 했었다." Genevieve Artadi는 말했다. "그러다가 Louis가 '이봐 Gen, 이거 한 번 Brainfeeder에 보내볼까 하는데 어때?'라고 물어왔고, 나는 '좋아, 그렇게 해 주면 좋지. 하지만 큰 기대는 안 할게, 알겠지?'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Louis가 보냈던 것이다 - 그는 그러니까, '보통은 이런 거 안 하는데 이 앨범은 확실히 될 것 같다'라고 말하며 보냈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날 Brainfeeder 측에서 같이 발매하자는 연락이 왔다."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이 소식을 듣게 된 것은 정말 멋진 일이었다. 그러니까 '오 좋은데, 한번 해 보자고'같은 답변을 내 눈으로 보면서 말이다."

    나는 불현듯, 그녀가 이미 떠나보냈던 불안감과 정처 없는 상태를 이렇게나 강렬하게 잡아낸 앨범을 홍보한다는 상황 자체가 좀 이상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앨범의 놀라운 첫 곡 - "I Hate When I Can't Feel My Heart" - 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나누었다. 이 곡은 Genevieve Artadi의 목소리만으로 이루어진 곡으로, 그녀는 드럼, 관악기, 베이스를 자신의 목소리로 흉내내며 이 모든 목소리 샘플들은 굉장히 '바삭바삭한' 화음 위에서 등장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 곡이 분노에 차 있는 노래라고 말했으며, 단지 이제는 본인의 관점이 바뀌었다고도 말했다.

    "사람들 사이에 발생하는 대부분의 문제들이 사실 서로의 말을 듣지 않는 채로 자기의 말만을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곡을 만들었을 무렵의 나는 바로 그러한 측면에 대해 굉장히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나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화를 내지 않으려고 한다. Thích Nhất Hạnh의 말에 따르면 누군가가 미숙하다면 바로 그 누군가야말로 그 미숙함으로부터 가장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니 대체로, 어떤 사람들이 서로에게 아주 나쁘게 대하고 있다면, 이는 그 사람들이 스스로 고통을 받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바로 그렇기에 나는 명상을 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강한 사람이 되어 그런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존재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나는 Genevieve Artadi의 선(禪)이 거의 위협적일 정도인 것 같다고 농담을 던졌다. 그녀는 씨익 웃으며 아직 목표로 생각하는 정도까지 건강한 상태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 "아직 피자를 먹고 지낸다." 그녀는 농담조로 말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모두에게는 아직 희망이 남아 있었다.



    https://youtu.be/GZlVT8gPGEs
    "Crash The C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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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ouis Cole / Genevieve Artad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