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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Uboa: The Origin of My Depression
    [...]/[UBOA] 2023. 3. 19.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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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astralnoizeuk.com/2019/03/11/uboas-xandra-metcalfe-on-melancholia-eclecticism-and-the-origin-of-my-depression/


    https://youtu.be/5OWtf__5K3Y

    "Uboa는 2010년, 내 방 침실에서, 실험적인 둠 메탈 프로젝트로 시작했었다. 그 이후 점차 노이즈, 실험 음악, 그리고 대체로 추상적인 음악을 하는 프로젝트로 방향을 잡아 갔다." 이 프로젝트의 마지막 앨범인 [The Sky May Be](2018) 는 겹겹이 쌓인 Harsh Noise 층 사이에 앰비언트 합창과 신디사이저 음향이 끼어 있는 음악이었다. 반면, [The Origin Of My Depression]은 기본적으로는 비슷한 음향의 혼합으로 이루어졌긴 하지만, 보다 더 다양하고, 보다 더 극적이다. "슬로코어 같다고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여전히 노이즈 음악이라고 볼 수 있긴 한건지? 나도 정확히 어떻게 묘사해야 할 지 모르겠다. 이번에 나는 Jenny Hval, Planning For Burial, Ben Salisbury/Geoff Barrow의 [Annihilation] 사운드트랙 등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Harsh Noise의 바로 옆 자리에 깔끔한 노래와 멜로디가 공존한다."

    "[드론]과 [노이즈]는 순수하지 않을 때에만 의미가 있다!" Metcalfe는 말했다. "순수한 드론은 그냥 지루할 뿐이다. 뭐랄까, 메탈 같은 것이랑 섞이지 않는 한은. 그리고 순수한 노이즈는 - 예를 들자면 Harsh Noise Wall 같은 음악들 - 스스로의 모티프에서 벗어나지 않는 이상 내게서 그 어떤 감정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나는 사실상 모든 것이 다른 것과 섞일 때 더 괜찮아진다고 생각한다. 단순한 반발심에서 나오는 '순수함에 대한 열망' 같은 것 보다 훨씬 더 좋아진다고 본다. 나는 Uboa가 '노이즈 프로젝트', 'DSBM (Depressive Suicidal Black Metal) 프로젝트' 처럼 '무슨 프로젝트' 같은 이름으로 불리길 바라지 않는다. 프로젝트를 특정 장르로 제한한다는 것은 새로운 것이 나올 수 없다는 뜻이다. 그 특정 장르가 '실험음악' 처럼 사실은 장르가 아닌 장르라면 괜찮겠지만. 나는 전반적으로 '진짜'보다는 '가짜'를 선호한다."

    Metcalfe가 말하는 이런 접근은 Uboa의 앨범에서, 특히 [The Origin Of My Depression]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The Origin Of My Depression]는 수 없이 많은 종류의 디지털 음향 및 아날로그 음향들 사이로 부유하듯 떠 다니는 앨범이다. 청자에게 새롭고 특별한 음향으로 다가갈 앨범이 분명하지만, Metcalfe는 이 앨범이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소리'를 만들기 위해서 만든 앨범이라기보다는 자신의 머릿속에 복잡하게 얽혀있는 생각들을 풀어내기 위해 만든 앨범이라고 말했다. "상당수의 음악가들이 공감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머릿속에 무언가 - '음향' - 가 있고 이 무엇인가는 지금 이미 존재하는 아이디어들과 장르들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다. 이 무언가가 '정말로 새로운 것이냐'는 질문은 사실 지극히 주관적인 문제이며, 이 무언가를 실재하는 음향으로 끄집어 내는 문제에 비한다면, 딱히 중요하지도 않은 문제다. 음악을 만들 때 대부분은 그냥 내 머릿속에서 재생되던 무엇인가를 실제 음악으로 풀어낸 것이었다. 가끔씩은 자동기술법처럼 진행되기도 했다."

    앨범의 음울한 분위기는 Uboa 개인의 내면에 관련된 주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 커버 아트는 자살 시도 후 입원한 병원 침대에서 찍은 사진이고, 앨범은 Metcalfe의 개인적인 고난에 대한 묘사이다. 공격적으로 들리는 노이즈는 청자와 대립하기 위한 것이 아닌, "그냥 내 마음과 정신 상태를 표현한 것이다 - 그리고 그 상태가 내게 부여하는 감정적인 효과들까지. 처음에 이 감정적 여파는 우울감이었다. 처음에 나는 이 앨범이 발표되고 나서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에 대해 걱정하고 불안해했다. 그러다가 몇몇 친구들에게 앨범을 들려줬는데, 그들은 이 앨범이 'Uboa의 최고작'이라고 말을 해 줬다. 나는 이번 앨범이 내 최고작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동료들은 내가 이 앨범을 새로운 시각에서 다시 한 번 볼 수 있도록 나를 설득했다. 그러니, 청자에게 도전하는 듯한 분위기는 정말로 그냥 우연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저 슬펐고, 자살의 유혹에 시달렸으며, 정말로 사람과의 소통이 절박했었고 이런 점들을 더 이상 숨길 수도 없었다. 내 우울감은 언제나 내 음악에 영향을 끼쳤다. 나는 사람들이 이번 앨범을 들으며 공격받는다거나 도전적이라거나 하는 느낌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 앨범은 도움을 요청하는 울부짖음이다. 나는 사람들이 충격을 받아 돌아서기보다는 이 앨범을 정말로 들어주길 바란다."

    가사의 측면에서, Metcalfe는 이번 앨범의 주제가 다음과 같다고 말한다: "트랜스젠더이면서 정신적인 병을 앓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해 깊게 다루고 있다. 묘사하기 쉽지 않은 부분이 있진 하지만." 한 개인의 내면에 깊이 자리한 생각과 진정한 감정을 이렇게까지 다루고 있는 기록물을 찾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이렇게까지 내밀한 이야기를 대중에게 공표할 생각조차 꺼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침묵 속에서 홀로 고통받는 것은, 만인에게 낱낱히 공개하는 것 보다 더 안 좋은 대안에 불과하다.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안심시키기는 커녕, 그들에게 내가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알린다는 것이기에, 앨범을 발매한다는 것 자체가 아주 힘든 결정이었다. 하지만 앨범을 발매하지 않는 것이 더 힘든 일이었다. 나는 이 앨범을 발매해야만 했다. 어쨌든 둘 다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이 침묵 속에서 혼자 고통받는 것 보다는 자신의 고통을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뭐라도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앨범을 세상에 내놓고 싶어하는 의지를 가지게 된 Metcalfe는 이번 앨범을 스스로 발매하게 되었다 -전작 [The Sky May Be]를 멋진 호주 레이블 Art As Catharsis 에서 발매했던 과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Art As Catharsis를 통해 발매한다면 이번 앨범의 공식 발매시기가 2019년 8월로 늦춰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에야 다른 앨범을 하나 더 만들어 발매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냥 자리에 앉아 끊임없이 노력해서 앨범을 '완벽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이런 방식은 너무 큰 스트레스로 다가오니까. 모든 것을 떠나서, 이 앨범은 내가 입 밖으로 소리쳐 꺼내야만 하는 작은 비명소리였다. 기나긴 시간을 기다려 승인을 받고 나서야 앨범을 발매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이 앨범이, 내 음악이, 타인으로부터 애정을 얻기 위한 노력일 뿐인 행동이 아니었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이리라."

    "결론적으로, '내 우울의 근원 (the origin of my depression)'으로는 너무나도 많은 것을 들 수 있다. 불쾌, 트랜스젠더에 대한 일상적인 혐오감, 후회, 돌아오지 않는 일방적인 사랑,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랑, 퀴어, 그리고 미래에 일어날지 모르는 일들에 대한 생각 등이 전부 섞여 있다. 이 우울은 단순한 한 가지의 원인, 특별히 무슨 '화학적인 불균형' 따위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우울은 때때로 그저 병적인 사회나 병적인 생산 방식이 한 개인에게 가하는 사회경제학적인 격리의 산물이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다. 이 앨범에서 그런 부분이 잘 드러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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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ordfishblog.com/2019/04/interview-xandra-metcalfe-of-uboa-2019/

    Music Tap: [The Origin of My Depression]의 창작을 둘러싼 요인들에 대해 얘기해 달라. 커버 이미지에서 유추해 보자면, 자살 시도가 직접적인 촉매가 되었던 것 같아 보인다. 괜찮다면 이 점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말해줄 수 있겠는가? 보다 더 넓은 맥락을 찾고자 하는 청자에게 해 줄 말 같은 것이 있는가? 당신의 우울, 정신적인 문제나 병력 등등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 부분이 있는가?

    Xandra Metcalfe: 자살 시도가 딱히 촉매가 된 것은 아니었다. "The Origin of My Depression"이나 "Lay Down and Rot"은, [The Sky May Be]의 후반부 곡들과 비슷하게 공연에서의 음원들을 기초로 살을 붙여 만든 곡이다. 이 두 곡을 만드는 도중 자살 시도가 있었고 그 사진이 찍혔다.
    이 자살 시도에 대해 말해보는 건 좀 난감한 문제이기도 한데, 이 당시 나는 약물 과다복용을 시도했었고 따라서 기억나는 것이 거의 없다. 커버 사진도 나중에 발견한 것이다. 하지만 그 시도의 배경을 생각하자면, 자살 시도는 정체성에 대한 오해, 실패한 관계, 불가능한 사랑, 실직, 지루함, 정해진 것이 없는 막막함, 정신병… 말하자면 구덩이에 던져진 것과 같은 상태에서, 잘못된 방식으로 도움을 소리쳐 요청하는 행위였던 것 같다. 정신적인 문제가 가장 큰 문제였는데, 나를 침식해오는 불안과 나를 압도하는 "Jouissance"에 둘러싸여 있었다. 끔찍했던 한 관계가 끝나버린 후 나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고,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해 내가 삼킬 수 있는 최대한의 알약을 삼켰다. 계획적인 시도는 전혀 아니었고 일종의 정신착란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저지른 일이었다. 운이 좋았던 것은 내가 스스로를 죽일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알약을 먹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Music Tap: 앨범의 테마에 대해 설명을 부탁한다. 몇 주 전, 당신이 보내온 프로모션 이메일에는 이 앨범이 당신의 감정과 감정적인 성장, 사랑과 학대, 젠더와 성적인 정체성에 대해 다루는 앨범이라고 써 있었다. 이 주제들이 [The Origin of My Depression]에 어떻게 섞여 들어갔는가?

    Xandra Metcalfe: 그 주제들이 바로 내가 그 당시 겪고 있던 것들이었다. 나는 내가 경험한 것을 주제로 다루지 않으면 음악을 만들지 못하며, 보통은 그 경험은 나 자신에 대한 경험이다. 내 세상에는 사람이 많지 않다 - 내가 정신적인 문제와 같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 중 하나는 바로 내 세상이 정확히 얼마나 자기중심적인, 유아(唯我)적인 세상이 될 수 있는지이다. 나는 사랑할 만한 자신을 거의 갖고 있지 않으며, 그래서 내게 사랑은 난감한 문제다. 타인을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자기 자신"이 없다면 놀라울 정도로 그리고 모순적이게도 "selfless"한 행동을 할 수 없게 된다. 그저 사면이 거울로 가득한 거대한 방 안에 홀로 있을 뿐이다. 적어도 특정한 정신적인 문제와 자폐 증세를 갖고 있는 내게는 그렇다. 때때로 나는 사회적인 단서들을, 특별히 자폐적이지 않은 사람들과의 대화에서의 단서들을 잘못 이해하곤 하는데 이 오해가 파멸적인 결과로 이어지곤 한다. "오해" 또한 계속해서 이어져 오는 주제들 중 하나이다. [The Sky May Be]의 "I Can't Love Anymore"가 이 주제에 대한 곡이며, [The Origin of My Depression]의 "The Origin of My Depression" 또한 마찬가지이다. "분리" 또한 주요한 주제이다: 'Love cures disassociation, disassociation cannot cure love, I wish it could.' 라는, "Lay Down and Rot" 가사의 일부처럼.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 공포, 트랜스메디컬리즘, 그리고 트랜스젠더들의 삶 또한 나르시시즘적으로 (그리고 마조히즘적으로) 매료된 주제로서 계속해서 나타난다. "Detransitioning", "An Angel of Great and Terrible Light", "Epilation Joy", "Misspent Youth"가 이와 관련된 곡들이다.

    Music Tap: 말 나온 김에, 젠더와 성적 지향성에 대해서도 얘기해 볼 수 있겠는가? 먼저, 당신의 젠더나 성적 지향성에 대해, 말하고 싶은 만큼이라도, 알려 주었으면 한다. 공유하고 싶은 사항이 있다면 알려달라. 나는 UBOA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이런 요인들에 대해 아는 바가 매우 적었고, 따라서 이런 요인들이 UBOA의 음악이나 라이브 공연에서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알고 싶다. 또한, 물론, 말하고 싶은 만큼만 말하면 되며, 당신 개인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알려 주었으면 한다.

    Xandra Metcalfe: 흠, 일단 나는 MTF 트랜스젠더 여성이다. 이번 앨범을 만들 때에는 2년째가 되는 때였다. Uboa에게 있어 이 점은 언제나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다 - 변화하기 전([Hook Echo] 이전의 모든 앨범들)과 후, 옷장 속에 갇혀 있는 듯한, "알"의 껍질 속에 갇혀있는 느낌에 대한 분노, 변화 이후에 찾아온 그 모든 혼돈(과 해방). 이 부분들은 [Hook Echo]에 특히 잘 드러나 있다. 또한 나는 양성애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점은 그 동안 있었던 몇몇 재미있는 트러블들을 빼고는 딱히 예술적 영감의 대상이 되지는 못했다. 그리고 내 생각에 나는 단순한 이분법적 스펙트럼을 벗어난 지점에 있는 것 같다 - 내가 생각하는 여성은 너무 특이해서 일반적인 시스젠더 여성과는 너무나도 다르다고 느낀다. 물론 어쨌든지간에 나는 진정으로 여성이다.
    공연을 할 때 나는 자주 옷을 전부 벗고 전라가 된다 - 트랜스젠더 여성의 몸은 남성의 시선에서 자주 페티시즘의 광경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나는 나의 트랜스젠더 육체를 공연에서 드러냄으로써, 육체에 공포의 요소를 심어 쾌락의 즐거움이라는 영역으로부터 끌어내리고, 내 육체는 나의 것이라는 사실을 공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The Body와 전석 매진 공연을 한 적이 있는데, 이 때 나는 공포에 질려, 공연 중 대부분의 시간을 전라의 상태로 진행했었다. 트랜스젠더의 취약성은 정말 중요한 부분이다. 이 요인으로부터 모든 문제들이 나타난다.
    내 음악 또한 트랜스젠더 혐오에 대한 공포를 다루는 방법 중 하나이다 - 물론, 나는 나와 내 트랜스젠더 자매들의 안정적인 삶을 파괴할 수 있는 그 모든 트랜스젠더 혐오와 혐오가 담긴 담론들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자신의 안정을 위해 도망치기보다, 나는 그 혐오를 받아 그것들에 대한 곡을 쓰기로 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나는 우리를 해하고 우리를 연구 대상으로 격하시키려는, 그리하여 결국은 비참한, 파괴되어야 할 대상으로 전락시키려는 담론들 (예를 들자면 트랜스젠더 혐오를 깔고 들어가는 '의학적' 담론들) 로부터 힘과 주체성을 다시 빼앗아 올 수 있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언젠가 "죽음에 대한 예술은 삶의 긍정"이라고 말했다. 예술가가 죽음을, 죽음의 힘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예술로 그려내면서 죽음이 가져오는 공포를 경감시킬 수 있는 것이다. 트랜스젠더 혐오 정서에 대한 내 논리 또한 같은 연장선상에 있다. 나는 언제나 내가 '주제'가 되도록 의도한다.

    Music Tap: 당신의 주변에 있는 다른 예술가는 누가 있는가?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호주의 인디 음악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다. 내가 아는 유일한 음악가는 Purgist 뿐이며 그것도 온라인에서 누군가가 당신과 Purgist를 비교한 글을 봤기 때문에 알게 된 것이었다. Uboa의 맥락을 알려달라.

    Xandra Metcalfe: 나는 딱히 맥락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나는 harsh noise 및 흔히들 "post-noise" 라고들 말하는 음악에서 영감을 받는다. 친한 사이인 Purgist 뿐만 아니라 Triangle Records 소속 음악가들, Dave Phillips, Facialmess, Like Weeds, Kazimodo Endo, Endon, Yasuhito Fujinami 등등도 많이 듣고 영감을 받았다. 더 말해 보자면, 나는 메탈에서 출발한 사람이다 - doom, sludge, black metal, hardcore, grindcore, screamo 등등. 마지막으로 내 음악의 전자음향적인 부분, 그리고 퀴어적인 부분의 영감이라면 - Sophie, Arca, Rook, Black Dresses, Jenny Hval, AJA 등등과 더불어 좀 덜 알려진 편인 음악가들로 Ashleigh-Rose, Dear Laika 등등이 있다.
    저평가된 호주 음악가들 중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두 음악가는 Micheal(밴드)와 Micheal Ellingford(개인)이다. 물론 그 외에도 Diploid, Deader, World Sick, Whitehorse, Bolt Gun, Divide and Dissolve 등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음악가들이 도저히 다 언급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많이 있다.

    Music Tap: 당신의 공연에 대해서도 좀 더 깊게 다루고 싶다. 일전에 당신은 '트랜스젠더'와 '관객의 시선'에 대해 말한 적이 있었다. 이와 관련해서, 어떻게 현재의 공연 형태에 다다르게 되었는지 설명해 줄 수 있는가? 관객에게 충격을 주기 위한 목적인가? UBOA나 비슷한 다른 음악들을 듣는 호주 관객들에게 당신의 공연은 익숙하다고 느껴질 만한 종류의 공연인가?

    Xandra Metcalfe: 좋다. 나는 종종 나체로 공연을 시작하거나 공연 중간에 나체가 된다. 사실 내 공연을 보러 오는 관객들 대부분은 이런 공연에 익숙하다 - '퀴어'적인 요소들에 말이다. 적어도 The Body와 함께 한 공연 전까지는 그랬다. 그 공연에서 나는 '반응'을 받을 수 있었다.
    나는 나체일 때 딱히 '섹시'하지 않았다(나는 나 자신을 딱히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취약'했었다.공연이 시작할 때 옷을 벗었고, 관객들 앞에서 덜덜 떨었으며 (가짜로 떠는 것이 아니었다) 결국 공연이 끝나갈 무렵 재킷 하나를 걸칠 수 밖에 없었다. 생각해 보자면, 나는 '충격'이라는 것이 타고난 성에 따르지 않는 육체에 대한 터부와 페티시즘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자신의 육체가 사실은 굉장히 제한된 물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 이해가 되는 모순들, 그리하여 보다 더 역겹게, 보다 더 매혹적으로 변하는 육체에 대한. 조르조 아감벤이 "Homo Sacer"라는 표현을 통해 금지되면서도 동시에 페티시즘의 대상이 되는 모순적인 상황에 대해 설명했던 것을 좋아한다. 당신의 육체가 규칙을 따르지 않는 것이 되었을 때, 그러한 상황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육체는 신성하다 - 어찌되었던지간에, 누군가를 희생하기 위해서는, 그 누군가는 죽일 수 있는 대상이어야 됨과 동시에 신성한, 이 세상에는 맞지 않는 존재여야만 한다. '우리'를 보는 관점이 바로 이런 관점이다. 오늘날 우리의 (제국주의적인, 서구적인) 자연에 대한 관념은 이분법적인 젠더의 본질주의에 고착되어 있으며, 일반적이지 않은 젠더는 공포스러운 현실 또는 비정상이고 반드시 없어져야만 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이 개념이 좀 낯설고 난해한, 학계에서의 개념 같아 보이긴 하지만, 트랜스젠더라면 바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때문에 사람들이 우리를 죽이면서도 동시에 우리를 보고 자위행위를 하는 것이며, 이야말로 우리를 향한 대상화의 메커니즘이다. 공연에서 나체가 되는 행위는 내 육체가 강력하다는, 취약하다는, 또는 - 이 편이 더 낫다 - 지루하다는 것을 보임으로써 그 개념들을 없애버리고 싶었던 희망에서 출발한 행위였다. 나는 내 유두가 덜 흥미로워 보이기를 바랬기 때문에 내 유두를 노출한 것이다.

    Music Tap: 혹시 괜찮다면, 말하고 싶은 정도 만큼이라도, 자살시도와 이번 앨범 사이의 연관성에 대해 말해줄 수 있겠는가. 일종의 의무를 달성하고자 한 것인가? 특정한 메시지를 담고 싶었는가?

    Xandra Metcalfe: 의식적으로 담은 메시지 같은 것은 내가 아는 한 없다. 나는 자살시도를 뭐랄까, 일종의 현상학적인 측면을 보여주는 식으로 노출하고 싶었다. 그래서 앨범 커버를 이렇게 정한 것이다 - 내가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보는 풍경이었을 수도 있는 장면으로, 영광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장면으로, 그저 지루하고 우연한 장면에 지나지 않는 사진으로 (그 사진은 셀카를 찍으려고 했다가 카메라 전/후 전환을 까먹어서 실수로 찍은 사진이었다). 죽으려는 시도를 할 때 내가 발견한 한 가지는 "현실"의 한 부분이었다 - 자살과 자살이 아닌 것 사이의 경계에서 죽음을 자살 쪽으로 특별히 분류하도록 하는 요소는 "없어" 보였다. 그저 고통이 있고, 그를 뒤따르는 행동이 있을 뿐이다. 죽음은 저 멀리 있는 것도 아니며 특별한 것도 아니다. 그저 계속 존재하는 확률이다. 이와 같은 죽음과 자살의 평범성을 이번 앨범에 직접적으로 표현하려 했다 - 그 어떤 신비적인 요소도, objet petit a도 없이, 그냥 일어나는 일일 뿐이다. 공포스러운 일이다: 죽음보다 더 무서운 것은 죽음의 평범성, 그리고 그 어떤 방식으로도 (상징적으로도, 상상으로도) 표현할 수 없다는 점이다.

    나는 이번 앨범을 시간 순으로 작곡하려 노력하였고, 실제로 곡을 작곡하고 녹음하는 중 자살시도가 있었다. "The Origin of My Depression"과 "Lay Down and Rot" 사이, 순간적인 공백. 바로 그 곳에 죽음이 있다. 나머지는 장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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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ndcamp :: https://uboa.bandcamp.com/album/the-origin-of-my-depression

    https://youtu.be/niyEe6nrF5w




    2020/04/15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