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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tribution
    [...]/[Tanya Tagaq] 2023. 3. 19. 01:53



    https://youtu.be/SGNpz5tFUEE
    "Aor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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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thefader.com/2016/11/11/tanya-tagaq-retribution


    늑대들은 규칙에 따르며 살아가지 않는다

    Tanya Tagaq는 이누이트 배음 창법(throat singing) 음악가이다. 지금까지 5장의 앨범을 발매해 오며, 그녀는 현대 원주민 권리 운동을 음악으로써 표현하고 있다.

    글: Emma Healy
    사진: Monica Moraru
    [The Fader]
    2016년 11월 11일

    Tanya Tagaq를 실제로 만난 지 이제 막 5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이었지만, 그녀는 벌써 나를 두번이나 껴안아 주었다. 첫 번째 포옹은 토론토 동부의 아파트 로비에서 처음 만났을 때 환영의 의미였었고, 두 번째 포옹은 내가 "이렇게 만나보게 되어서 기쁘다"라는 인사를 한 다음이었다. "나도 너무 기쁘다," Tagaq는 말했다. 그녀가 팔을 내 몸으로 다시 두르면서, 단어들은 작은, 기쁨이 담긴 외침 소리로 녹아내려 버렸다.

    Tanya Tagaq의 음악만을 들어 본 사람이라면 이렇게 활발하고 즐거운 성격이 좀 안 어울린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녀의 새 앨범 [Retribution]은 아주 아름다운 앨범이지만 동시에 철저할 정도로 완전히 참혹한 음악적 경험을 선사하기도 하는 앨범이다. 2014년 Polaris Music Prize 수상 앨범 [Animism]의 후속작으로서 발매 된 [Retribution]은 인간이 지구에 가한 상처들 그리고 인간들끼리 서로에게 입힌 피해들에 대하여, 강렬하면서도 때때로 언어적으로는 표현하지 않는 '침묵'의 음향적 풍경을 통해 탐구하고 표현하는 앨범이다.

    Tagaq는 배음 창법(throat singing) 구사가이다. 그녀는 캐나다 북부 누나부트준주 Cambridge Bay 출신의 이누이트이며, 그녀의 음악은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고대 선조들의 전통에서부터 현대의 다양한 음악적 영향까지 폭넓은 기반 위에서 자라난 음악이다. Tagaq 음악의 본능적인 강렬함은 그녀의 신체를 이용하여 만들어지는 온갖 놀라운 음향과 소리들에서 기인한다. 수압 파쇄법(fracking)이나 성폭행에 대해 직접적으로 노래하는 대신, 그녀는 그러한 문제들의 핵심에 존재하는 어두운 진실을 청자에게 물리적으로 전달하는 종류의 음악을 선보인다. [Retribution]은 그녀의 5번째 앨범이며, 이 앨범은 '저항의 음악'이라는 표현에 가장 충실히 따르는 음악이다: 인간이 자원을 낭비하고 있는 짓에 대해 저항하는 행성의 소리, 역사적으로 잊혀졌거나 무시되어 왔던 여성들의 고난, 그리고 고통의 메아리. 앨범은 서늘한, 조용히 속삭이는 "Rape Me"(Nirvana 커버)로 끝을 맺는다. 이 앨범이 듣는 행위 자체가 힘들 것 같은 앨범으로 느껴진다면, 맞다: [Retribution]은 올해, 혹은 평생 동안 들어볼 수 있을 앨범들 중 가장 충격적인 앨범들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음악과는 대조적으로, 한 사람으로서의 Tagaq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럽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문장을 끝맺을 때마다 웃음을 짓곤 했으며, 좋아하는 것이 눈에 보이면 곧바로 기쁜 비명을 지르곤 했다. 그녀가 거주하고 있는 작고 햇빛이 잘 드는 아파트 방으로 들어갈 때, 나는 The Clash의 [Sandanista!]가 흘러나오는 것을 들었으며, Led Zeppelin, Sun Ra Arkestra, Creedence Clearwater Revival의 LP들과 [Native North America]라는 이름의 박스셋을 얼핏 보기도 했다. 결별을 뒤로 한 채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빅토리아에서 토론토로 이사를 온 지 1달 남짓 되었지만, Tagaq의 거처는 이미 예쁘게, 행복하게 꾸며져 있었다 - 어지럽게 지저분하다기보다는 '충실한 삶의 증거'들로 가득 차 있는, 그런 느낌으로. Joe Strummer의 목소리에 맞춰 어깨를 들썩이며 Tagaq는 벽에 붙어 있는 그림들을 가리켰다: 딸이 그린 그림 하나, 가족이 찍은 자연 사진 하나, 그리고 침실 벽에 붙은, 셔츠는 벗어두고 츄리닝 바지만 입은 채로 진지한 표정의 아기를 손에 든 20대 중반의 남자 사진 하나. 이 남자는 Tagaq의 대학교 시절 옛 친구로 모델 일을 종종 하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Tagaq는 이 사전을 Queen Street에 있는 앤티크 상점에서 우연히 발견해 구매했다고 했다. 침실에 딸린 화장실 벽에는 전설적인 만화가 로버트 크럼의 '엉덩이를 닦아라' 그림(역주: [Don't Forget To Wipe Your Ass Folks!])이 있었다. Tagaq는 그 그림이야말로 자기가 가진 모든 예술작품들 중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던 삼촌은 자주 이렇게 말하곤 했었다... 'Tanya-ngai! 너 진짜니?'" 그녀는 말했다. "나는 가식, 불필요한 쓰레기들, 머리를 굴리는 그런 것들을 싫어하고, 지루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어떤 소리를 내야 하는지에 대한 아이디어들을 음악적으로 충분히 표현하고 나면, 나는 곧바로 흥미를 잃어버린다. 그 너머의 다른 것에 눈이 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Tagaq는 언제나 넓고 다양한 취향을 가진 사람이었다. Cambridge Bay에서 자라던 시절, 그녀의 아버지는 레게 및 클래식 록 음악을 들으며 지냈고 Tagaq는 그 음악들을 모두 흡수하며 성장했다. 10대 시절 그녀는 노스웨스트준주 Yellowknife의 기숙학교에 입학해 다녔다. Tagaq는 이전 세대의 원주민들이 겪었던 체계적 박해에 비하면 기숙학교 경험은 "그렇게까지 나쁘진 않았다"라고 표현했다 - 하지만, 아직까지도 그 영향이 남아 있는 식민지주의 정책의 유린과 약탈의 흔적은, Tagaq를 선조들의 유산으로부터 어느 정도는 분리시켰던 것이 사실이었다. 실제로 그녀는 예술학교 진학을 위해 노바스코샤주 Halifax로 이사하기 전까지는 전통 배음 창법에 대해 한 치의 관심조차도 가지고 있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이 무렵, Tagaq의 어머니가 배음 창법 노래가 담긴 테이프를 그녀에게 보내주었다. 전통 방식의 이누이트 배음 창법은 두 명의 여성이 함께, 일종의 경쟁 게임으로 진행하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Tagaq는 혼자서, 스스로 연습하며 창법을 익히기 시작했다.

    대학 졸업 후, Tagaq는 Cambridge Bay로 돌아가 예술 교사 일을 한다. 그렇게 1년가량의 시간이 흐른 뒤, 여러 우연의 연속으로 그녀는 한 페스티벌에서 난생 처음으로 무대 위에 올라 관중들에게 배음 창법 노래를 선보일 기회를 얻게 되었으며, 여기 무대의 관객 중에는 Björk의 친구들도 몇몇 있었다. 첫 공연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앨범 발매 이력이 하나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Björk의 투어에 게스트로 참여해달라는 초대를 받게 된다. Tagaq는 Björk의 2004년 앨범 [Medúlla]에도 추가 보컬로 기여했으며, 이 곡들은 향후 그녀가 자신의 이름으로 만들고 발표하게 될 음악들의 청사진이었다. "Ancestors"에 실렸던 그녀의 목소리는 1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후의 앨범인 [Retribution]에 실린 그것만큼이나 분명하면서도 강력했다. 하지만, 수 년간의 투어와 앨범 발매 이후에야, Tagaq는 그녀만의 청자들을 찾아나갈 수 있었다.

    이는 Tanya Tagaq가 너무나도 독특한 음악가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클래식에서부터 헤비 메탈까지 다양한 영향을 흡수하였고, 그녀의 목소리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피치, 다이내믹, 감정을 담아낸다 - 심지어 가끔씩은, 하나의 곡을 진행는 와중에도. "안정감을 느끼려는 목적으로 어떤 시스템에 속해야 할 이유 따위는 없다." Tagaq는 말했다. "나는 잉글랜드 남자와 이누이트 여자 사이에서 만들어진 사람이다. 나는 식민지 정책의 산물이며, 내가 속한 땅이 만들어낸 피조물이고, 발광하는 20대를 보냈던 사람이다. 그러니 나는 그 어떤 특정한 카테고리에도 속하지 않으며 속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이런 부분이 내 음악에도 반영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녀의 이러한 독특함은 그 속을 들여다보면 상당히 복잡한 내막을 가지고 있다. Tagaq의 음악적 감각이 그녀의 개인적인 삶의 궤적에서 자라나온 결과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녀는 현재 캐나다 음악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명성을 가진 이누이트 예술가로서의 입지를 가지고 있기도 한 것이다. 캐나다 정치/사회/예술 문화계는 그 동안 조직적으로, 체계적으로 원주민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억압하고, 지워왔었으며, 이누이트 전통 배음 창법은 이누이트 전통 문화의 핵심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많은 청자들이 [Animism]에서 배음 창법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들어보았다. [Animism]에 쏟아진 찬사는 이누이트 및 다른 원주민 예술가로써는 아주 드문 정도의 주목이었던 것이다. (최근 크리족 출신 포크 록 음악가 Buffy Sainte Marie가 재조명을 받고 있으며, 원주민들로 구성된 3인조 DJ 그룹 A Tribe Called Red 또한 주목을 끌고 있다.)

    여기에 더해, Tagaq가 가진 개인적 그리고 정치적 신념은 그녀의 음악에 깊이를 더하고 있다. 2014년 9월 Polaris Prize를 수상하게 되었을 때, 그녀는 수없이 많은 실종자/피살자 원주민 여성들의 이름이 쓰여진 기나긴 목록 앞에서 "Uja"와 "Umingmak"을 공연했었다. 아직까지도 한 사람의 예술가보다는 그녀의 문화나 그녀의 정치 신념을 대변하는 대변자로서 행동을 해야만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고 있냐고 물어보았을 때, Tagaq는 머리를 강하게 흔들었다. "그게 당신이라면, 당신 자체라면, 그러니까, 두 발로 걸을 때 '걸음'을 대변하기 위해 다리를 움직이는 것이 이상하다고 느끼는지? 그냥 내가 누구인지,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것의 일부일 뿐이다. 아주 쉬운 일이라는 말이다."

    Tanya Tagaq의 공연 후기들 속에서 그려지는 무대 위의 Tagaq는 어쩐지 무언가에 사로잡힌 듯한 모습일 때가 많다. 그런 표현이 무성의하고 생각 없는 표현일 때도 있지만(평론가들, 특히 백인 평론가들은 서구권 문화에서 낯설게 느껴지는 음향을 무조건 '초현실적이다'(otherwordly)라는 표현으로 대충 얼버무려 묘사하는 경향이 있다), 아주 틀린 표현은 아닌 것 또한 사실이다. 무대 위에서 - 끝내주게 멋진 드레스에 맨발로 선 채로, 오랫동안 협업을 해 온 사이인 Jesse Zubot  Jean Martin로 구성된 밴드와 함께 - Tagaq는 짐승처럼 울부짖다가도 신음하며, 비명을 내지르다가도 으르렁거린다. 그녀의 두 손은 허공을 움켜잡으며, 엉덩이는 뒤틀리고, 가끔씩은 토네이도를 불러일으키는 것 처럼 숨을 내쉬며 팔을 이리저리 휘젓기도 한다. 때때로 서늘한 포식자의 형상을 취하다가도, 또 다른 때에는 눈을 정말로 크게 뜨면서 자신의 목소리에 담긴 힘에 진심으로 놀라워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자신을 완전하게 넘어서는 강렬하고 거대한 힘을 완전히 통제하는 듯한 모습을 이 정도로까지 표현하는 예술가는, Tanya Tagaq 말고는 거의 없을 것이리라.

    "가끔씩은 무대 위의 나와 실제의 내가 분리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Tagaq는 말했다. "지금 내가 공연에서처럼 행동한다면 다들 미친 사람을 보는 것 처럼 당황해하며 나를 보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 않은지? 나는 눈을 많이 감는 편이다. 하지만 어쨌든, 무대에서의 나도 나다. 내가 보고 느끼는 것, 내가 탐험하는 것, 내가 만들어 온 언어 - 전부 뭐랄까, 반드시 가 봐야만 하는 '다른 차원의 세계' 같다. 공연이 아니라면 내가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있을 것 같지 않다.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이다. 선택의 여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좀 지난 후 잠깐 커피 한 잔 하러 방을 나서고 있을 때, 옆집 강아지가 광적으로 짖어대는 소리가 들렸다. Tagaq는 열쇠로 문을 잠그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불쌍한 녀석! 이런 소리를 들을 때 마다 위협이라고 느끼면서 저러는 거라고 생각하면, 스트레스로 정말 미칠 지경이 되어버리진 않을까 걱정된다." 우리는 이렇게나 예민한 성격의 강아지를 좁은 공간에 가두는 것이 안 좋은 일이라는 것에 동의했다. "저 강아지를 손으로 쓰다듬어주든지 아니면 총으로 쏴버리던지, 둘 중 하나는 하고 싶다." 그녀는 말했다.

    Tagaq의 이러한 측면은 대중과의 마찰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녀는 다소 음흉하다는 느낌이 들 수 있는 특유의 유머감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타인, 특별히 백인 캐나다인들의 도덕 기준에 맞추기 위해 자신의 의견을 묵살시키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된다고 굳게 믿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Polaris Prize를 수상했을 때 관심과 동시에 온라인 악플의 홍수에도 시달렸던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난리통은 유명한 '물범 셀카'(sealfie)에서 시작되었다. 2014년 중반, Tagaq는 막 사냥한 물범의 시체와 자신의 딸이 함께 있는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고, 곧바로 엄청난 수의 동물권 행동가들이 그녀에게 온갖 분노가 섞인 메시지를 투척하기 시작했다 - 물범 사냥이라는 행위가 이누이트 전통 문화에서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하나도 이해하지 못한 채로. 그 후 3개월의 시간 동안 그녀는 온갖 비난을 견뎌내었으며, Polaris Prize 수상 소감문을 "좆까라, PETA(역주: 동물권 단체)"라는 말로 끝마쳤었다. 그 후로도 온갖 비난 트윗이 이어졌으며, 이는 얼마나 많은 북아메리카인들이 원주민 문화에 대해 아예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상기시켜주는 좋은 예제가, 백인이 아닌 여성이 공인이 되면 얼마나 많은 괴롭힘을 당하게 되는지에 대한 실제 예시가 되었다.

    "그 사건에서 좋은 일이 있다면," 그녀는 말했다. "많은 동물권 행동가들이 이누이트 또한 동물권을 존중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내가 그 일을 겪으며 가장 걱정스러웠던 부분은 모든 것이 인종차별주의와 잘못된 정보에서 출발했었다는 사실이었다. 이 사회에는 이누이트 여성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고 있을 리가 없다는 그런 가정이 만연해 있다. 어째서 이 땅에, 이 환경에 예전부터 살아 온 사람들의 말을 믿지 않는 것인가?"

    진심을 말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그녀 특유의 성격으로 인해 온갖 논쟁거리가 따라붙는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사실 Tagaq는 바로 그런 점에서 너무나도 매력적인, 타인을 끌어들이는 힘을 가진 사람이었다. Tanya Tagaq의 공연에 오는 관객들 중 상당수는 공연 도중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곤 하며, 심지어 가끔은 인터뷰어의 눈에도 눈물을 맺히게 하곤 했다. 그녀의 친구이자 협업자이며 [Retribution]의 싱글 "Centre"에서 랩 피쳐링을 담당하기도 했던 Shad는, Tagaq의 적극적인 자기 표현이야말로 무대 위에서의 그녀와 개인적인 그녀를 이어주는 핵심이라고 평했다. "그녀의 특별한 힘은 바로 그런 측면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정말 놀라운 힘이. 그녀는 사랑과 다정함을 결코 숨기지 않으며 정말로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다. 표현하려는 것이 있다거나 무언가 느낀 바가 있으면 그 어떤 제약도 받지 않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그녀의 힘과 분노는 사실 사랑, 엄청난 사랑에서 나온다."

    Tagaq의 그러한 마음은 두 딸과 함께 있을 때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13살의 Naia와 4살의 Inuuja. 두 딸에 대해 말할 때 Tagaq는 눈에 분명하게 보일 정도로 편안해 보였다, 인터뷰 내내 마음속에 얹혀있던 주제에 대해 마침내 겨우 말하게 되었다는 듯이. Tagaq는 투어를 돌 때 종종 두 딸도 같이 데리고 다녔으며, [Retribution]의 가장 밝고 희망찬 순간은 Inuuja가 만들어 낸 순간이었다: 앨범의 첫 곡 "Ajaaja"는 느린 드럼 비트와 필드 레코딩 음향 위에서 부드럽고 경쾌하게 울려 퍼지는 Inuuja의 목소리가 담긴 곡이다. Tagaq는 스스럼없이 두 딸의 학교 사진을 꺼내서 내게 보여주었다. Innuja는 반짝거리는 왕관을 쓰고 있었고, Naia는 옆에서 비웃는 듯 하면서도 현명해 보이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두 딸의 모습은 어머니와 판박이였다.

    그녀가 좋지 못한 부모라는 견해는 Tagaq가 그동안 받아 온 수많은 온라인 비난에서 가장 화가 나는 의견이었다. 그녀는 말했다. "나는 정말 훌륭한 엄마다. 내가 알고 있다. 우리 두 딸은 정말로 행복하게 살고 있으며 건강하고 정서적으로도 안정되어 있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그렇게 잘 지내기를, 큰 딸이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들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같은 생리 주기를 가지고 있으며, 내 딸은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별다른 이유 없이 기분이 안 좋을 때에조차도 사랑스럽게만 보이는 딸이다. 13살 무렵의 나는 아무에게나 금세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었다. 부모가 자녀에게 '성적인 것은 나쁜 것'이라는 말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말 이상한 일이다, 애초에 우리 모두 우리의 부모님이 섹스를 했기에 태어난 존재들 아닌지, 그리고 내 두 딸도 마찬가지다, 내가 섹스를 했기 때문에 두 딸이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전부 다 자연스러운 거다, 우리 모두 그런 충동과 욕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전부, 섹스의 마법 덕분에 이 세상에 이렇게 존재하는 것 아닌가."

    페미니즘은 Tanya Tagaq의 음악에 있어 항상 뒷편에 암묵적으로 내포되어 있는 테마였었다. 하지만 [Retribution]에서 페미니즘이라는 주제는 맨 앞에, 바로 중심에 놓여 있다. 개인적으로도 Tagaq는 가족 구성원 여성들에 대해 존중하는 어조로 말을 했다 - 두 딸도 그렇지만, Tagaq의 어머니도 포함하여. 그녀의 어머니는 직장을 유지하고 꾸준히 일을 계속하면서도 235일간의 고통스러운 항암치료를 견디고 완치된 사람이었으며, 그녀의 이모는 용맹하고 독립적인 전문 북극곰 사냥꾼이었다. Tagaq는 "고향"에 대해서 자주 말했고, 이 고향은 Cambridge Bay를 뜻하는 말이었다 - 하지만, 대화를 이어나갈수록 내가 받은 인상은, 그녀에게 있어 고향이란 가족이 살아 온 땅 그리고 가족의 여성들과 맺어 온 관계 모두를 아우르는 폭넓은 개념인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이사를 온 지 아직 몇 주 밖에 안 되었지만 Tagaq는 벌써 토론토 생활에서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고향에 좀 더 자주 가 봐야 할 것 같다. 원래는 Arctic Char(북극 곤들메기) 들이 하천으로 돌아오는 시기에 나도 고향에 가곤 했다. 그 때 신곡들에 대한 영감을 얻기도 했고." 그녀는 말했다. "토론토에서는 평화로운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모든 것이 위협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으며, 모든 것이 폭력의 증거로 보일 때가 있다. 내 두 발은 콘크리트가 아닌 땅을 딛고 있어야 한다. 농부들은 그러한 땅을 마음 속에 간직한 채 살아가고, 이누이트 사람들 또한 그 땅을 간직하고 살아가며, 도시 바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또한 그러한 땅을 간직하고 살아간다. 두 발을 도보가 아닌 땅과 흙 위에 딛고 서 있을 때, 전혀 다른 에너지가 느껴진다."

    우리는 기사에 실을 사진을 찍기 위해 토론토에서 가장 가까운 자연인 Scarborough Bluffs 공원으로 향했다. 대지는 거대한 위용을 뽐내고 있었으며 풀과 나무는 무성하게 우거져 있었다. 가파른 절벽은 온타리오 호의 맑은 호숫가로 떨어지고 있었다. 이 날은 이상할 정도로 따스한 10월의 하루였고, 사진 촬영이 끝난 후 우리는 Tagaq의 두 딸을 데리러 그녀의 친구 집으로 향했다. 그 다음, 우리 모두는 The Céilí Cottage로 향해 마당에 마련된 자리에 앉아 음식을 산더미처럼 시켰다. Naia는 내 자켓에 달린 장식을 궁금해했고, 그녀의 사려깊은 말투는 7학년 아이라기보다는 이미 다 자란, 관대한 어른 같게만 느껴졌다. Inuuja는 엄마의 맞은 편에 앉아 신나서 점토 더미 옆에다 고양이들을 그리고 있었다. Tagaq는 굴 요리 한 접시를 주문하고는 모두에게 굴을 권했다. "산 채로 요리한 거라 정말 맛있어." 그녀의 말이었다. 두 딸은 얼굴을 찌푸렸지만, 나는 하나를 받아 먹었다 - Tagaq의 말이 맞았다.

    이제는 더 이상 질문을 하기도 이상한 분위기여서, 나는 자리에 앉아 두 딸과 이야기하는 Tagaq의 얼굴이 아주 환하게, 밝게 빛나고 있는 모습을 조용히 보았다. 식당을 나설 때 두 딸은 엄마 주위를 뱅뱅 돌았고, Queen Street을 따라 걸어가며 셋은 자연스럽게 [까이유](Caillou)의 주제가를 제멋대로 불렀다. Tagaq는 활짝 웃었다. 아침에 처음 만났을 때 부터 그녀의 얼굴에는 언제나 미소가 어려 있었지만, 지금 그녀는 처음으로 완전히 평화로운 기분을 느끼는 것 같아 보였다. 두 딸과 함께 저물어가는 노을 속에서 집으로 향하는 그녀는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https://youtu.be/ziaqLa0uinU
    "Tong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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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nya Tagaq
     
    2022/03/19 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