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Suicide
    [...]/[Suicide] 2023. 3. 20. 15:19



    https://youtu.be/Qn0_fDjvI_s
    "Ghost Rider"

    *********************************************************************************************

    https://legsville.com/the-story-of-suicide-with-alan-vega-marty-rev/?fbclid=IwAR0xUNH5OEReJDwaNGg06nOXbCSyn0yU86wHX_TCzsxazgiSWhneRXvDkAg


    Suicide의 이야기: Alan Vega & Marty Rev
    Legs McNeil
    2022년 1월 25일


    언젠가 사진작가 Bob Gruen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Bob이 말하길 우리 둘의 오랜 친구이자 일렉트로닉 프로토-펑크의 선구자였던 밴드 Suicide의 보컬 Alan Vega를, 지금 병원에 있는 그를 만나보고 왔었다고 그랬다. 그 말을 듣자마자 생각이 들었다, '이런 씨발, 안돼...'

    오랜 친구들이 정말이지 너무나도 빠른 속도로 차례차례 죽어가고 있었고, 나는 페이스북 페이지들에서 계속해서 올라오는 부고 소식들의 홍수를 바라보며 정말로 잠깐밖에는 비통해 할 수 없을 뿐이었다. Mick Rock, Arturo Vega, Ronnie Cutrone, Mick Farren, Allen Lanier, 이름들은 점점 더 늘어날 뿐. 몇몇은 이 이름들을 보며 어디서 본 적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들은 부고 기사가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할 정도의 유명세를 얻지는 않았던 사람들이었다. 그저 몇 개의 정말 멋진 추도사들, 1~2개 정도의 유튜브 특집 영상 정도가 인터넷에 올라오게 되는 정도였다고 해야 할까. 지금은 이런 시대인 것 같다: 페이스북 페이지에 영상으로 된 부고 소식이 올라오고, 답글란에는 웃긴 인용문구가 올라와 있고.

    세상이 너무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뭐랄까, '좋아, 이제 너는 죽었어 - 다음!' 같은 느낌. 최소한 나라도, 조금이라도 이 속도를 늦출 수는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단 1분만이라도. 다음 번 비극이 일어나기 전에, 숨 한번이라도 고를 수 있을 잠깐의 시간이라도 스스로에게 벌어줄 수 있도록.


    Alan Vega는 78세의 나이로, 2016년 7월 16일, 잠에 든 채 세상을 떠났다. Alan이 어떤 사람인지를 모르는 독자들이 있다면 - 그는 1970~80년대 그의 오랜 협력자 Martin Rev와 함께 Suicide라는 이름의 듀오를 결성하여 록 앤 롤 업계에서 혁명을 일으켰던 사람이었다. Suicide는 적어도 30년 정도의 시간을 앞서 나갔던 밴드였다. Silver Apples Kraftwerk가 그러했듯이, Suicide 또한 오늘날 온갖 멋진 클럽과 식당에서 울려퍼지는 테크노-록의 최전선에 서 있던 선각자였다. 기타 따위는 없이 단조롭게, 끝을 모르고 흐르는 드론음 위에서 울려퍼지는 너무나도 시끄러운 흥얼거림은, 대화 따위는 쓰잘데기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그런 음악이었다.

    Suicide는 '지루함' 따위와는 가장 먼 거리에 위치한 밴드였다. 아주 아주 멀리 말이다. 이들은 위험했고, 야성적이고 예측불허했으며, 혼란스러운 퍼포먼스 예술 그룹이었다. Suicide의 무대는 정말로 대단한 광경이었으며, CBGB나 Max's Kansas City에서 그들의 공연을 목도한 사람들은 입을 다물지 못한 채로 가만히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씨발 이게 대체 뭐지? 아직 Suicide의 음악을 들어보지 못했던 사람이라면 Red Star Records에서 발매되었던 이들의 첫 앨범 [Suicide]를 한번 들어보기를 권한다. 나를 믿어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https://youtu.be/t1hhiEHLJUg
    "Girl"

    Iggy Pop

    Martin Rev> 나는 Iggy Pop 음악을 안 들었다. 그 전에도 딱히 듣지 않았지만, Alan은 Iggy Pop을 정말 좋아했었다. 사실 Alan이 스스로 직접 공연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Iggy Pop이었다. Alan은 Iggy Pop을 본 후 인생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 전까지는 딱히 공연을 해 보겠다거나 하는 목표가 있지는 않았었다고.

    Alan Vega> 1969년의 어느날 밤, 새벽 2시, 나는 집에 있었다. 당시 이 시간 즈음에는 Alison Steele이 진행하는 훌륭한 라디오 쇼, [The Nightbird]가 진행되곤 했었다. 그 때만 해도 나는 Iggy and the Stooges를 아예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라디오에서 Alison Steele The Stooges의 명곡, "I Wanna Be Your Dog"을 재생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Ron Asheton의 기타 연주에 완전히 빠져버렸다, 그 와-와 사운드, '마침내 누군가가 진짜 기타 연주를 하기 시작했군!'
     찾아보니 The Stooges가 바로 다음날 밤 퀸즈의 World’s Fairgrounds에서 공연을 한다는 것이 아닌가. 퀸즈에는 New York Pavilion이라는 이름의, 1964년 세계 박람회 이후 사실상 버려져 있던 건물이 있었고, 그 건물 끝자락에 큰 공원이 있었다. 지금 Shea Stadium이 어디 있는지 알지? 열차들이 어디에서 오는지? 그 지하철 역에서 내려서 몇 마일을 걸어야 도착한다는 거?
     그런데, 지하철 역에 내렸는데, 몇 마일이나 떨어진 공연장에서 연주되는 음악이 씨발 벌써 들리고 있는 거였다. 2~3 마일(3~5 킬로미터)은 걸어야 하는 거리인데. 조금씩 가까워질수록 수 천 명의 관객들이 있는 모습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는데, 다들 맛이 가서 미친 듯이 놀고 있었다, 진짜 대단한 광경이었는데!
     공연장 안으로 들어가자 David Peel이 "Have A Marijuana"를 부르고 있었다. David Peel이 오프닝 무대였고, MC5가 헤드라이너였다. 이 때가 MC5의 훌륭한 두 번째 앨범 [Back in the USA]가 발매되었을 참이었다. MC5는 "Kick Out the Jams"와 함께 첫 앨범 곡들을 연주한 후였고, 다른 밴드, The Stooges가 공연을 하고 있었다. 이 때 나는 전날 밤 라디오에서 "I Wanna Be Your Dog"를 들었던 것이 전부였고 밴드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르고 있었다.
     David Peel이 지루해 빠진 공연을 끝내고, 사악해 보이는 남자들이 무대 위로 올랐다. 앰프 뒤에 있는 사내를 보았다. 그는 '계집애' 같아 보였다, 그 금발에 뱅(bang) 스타일 하고 다니는 여자애들처럼 말이다. Brian Jones 같기도 했다, 머리 스타일이 거의 비슷했으니.
     그 남자는 윗옷은 벗고 있었고, 찢어진 덩가리(dungaree)에 웃기게 생긴 로퍼(loafer)를 신고 있었다. 무대 앞으로 나오더니, 관객을 광기 어린 눈빚으로 응시하다가, 갑자기 소리지르는 것이 아닌가, "좆까, 좆까, 좆까!"
     그 다음 곧바로 "I Wanna Be Your Dog"인가 "1969"인가가 시작되었다. "War across the USA!"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곡 말이다. Iggy Pop은 관객들 머리 위로 뛰어들더니 부서진 기타 조각을 가지고 자해를 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점점 더 미쳐가고 있었다!
     나는 친구와 함께 있었는데, 둘 다 입을 닫지 못하고 눈 앞의 광경을 가만히 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정말로 훌륭한 무대였다. Iggy Pop이 무대 앞으로 나오던 순간부터, 우리는 "씨발 이게 대체 뭐야?"라는 생각밖에 하지 못했다. 음악이 시작되고, 그 곳은 난장판 그 자체가 되었다. 사실상 기타를 가지고 서로를 따먹고 있었다는 말이다! 물론 요새 기준으로는 별 것 아니겠지만, 그 때는 1969년이었다, 팝 음악이 부드러운 평화/사랑 타령 노래들로 점령당해 있던 60년대가 이제 막 끝나던 시기였다고, 이 때 The Stooges라는 새로운 음악이 나타났던 것이다!
      The Stooges 공연은 20분정도 진행되었고, 누군가가 천재적인 발상으로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을 틀었다. 관객들은 Iggy Pop에게 빈 병과 장미꽃을 던져댔다. 진심으로, 정말로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이 무대를 죽을 때 까지 잊지 못할 거다.


    https://youtu.be/-WvG-Z47S60
    "Frankie Teardrop"

    The New York Dolls

    Martin Rev> Suicide에 관해서 웃긴 부분 하나는, Suicide의 3번째인가 4번째 공연부터 우리가 우리 공연을 'Punk Music by Suicide'라고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공연 예정이 있을 때마다 홍보용 포스터와 전단지 등등을 인쇄해서 길거리 여기저기에 붙이고 뿌리고 다녔는데, 4번째 공연인가부터는 'Punk Music by Suicide'라는 문구를 인쇄해서 뿌리고 다녔다. 그런데 그 시점이 1970년대 초반이었다. 그 때 이미 'Punk Music'이라는 표현을 쓰고 다녔던 것이다.

    Alan Vega> New York Dolls를 처음 봤던 것은 아마 Mercer Arts Center에서였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자리는 뉴욕 지방방송국에서 방영하는, David Susskind TV 쇼 프로그램에서 진행하는 인터뷰였다. 그 쇼는 White Witch라는 밴드와 인터뷰를 하려고 하는 거였는데, 막상 자리에는 New York Dolls가 앉아 있었다. 당시의 New York Dolls는 뉴욕 시에서 작은 소란 정도를 일으키고 있던 밴드였고, TV 쇼에서 밴드 복장을 다 갖춰 입고 있었다 - New York Dolls 특유의 높은 굽 신발 및 여러 옷들 말이다.
     David Johansen과 Arthur Kane이 말하고 있었는데 진짜 웃겼다. David가 무대 뒷편 대기실에 앉아 있었는데, 대기실에 놓인 잡지에서 David Cassidy의 사진을 발견하고는 그 사진을 갖고 싶어서 마음대로 잡지를 찢어서 사진만 오려냈었다. David Susskind는 그 자리에 없었지만, Susskind의 비서는 그 모습을 보고는 말 그대로 완전 당황해서 안절부절 못 하고 있었다.
     그들이 스튜디오를 떠나 바깥으로 향할 때, 나는 몰래 뒤를 따라갔었다. New York Dolls 멤버들은 씨발 길거리의 모든 차 하나하나를 다 멈춰 세우게 할 만한 사람들이었다. 5명의 남자들이 굽 높은 여성용 구두를 신고 머리도 길게 치장하고 온통 반짝거리는 차림에 벌건 대낮 오후 2시 맨해튼 Madison Avenue를 활보하고 다니는 꼴이라니. 대박이었다! 나는 뒤를 몰래 따라가며 사람들이 New York Dolls 멤버들의 모습을 보고 보이는 반응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진짜로 이런 반응이었다, '씨발 이게 대체 뭐야?'

    Martin Rev> 갑자기 Mercer Arts Center의 문이 열렸고, 안으로 들어 가 봤는데 무슨 소리가 들렸다. 더 깊이 들어갔고, 처음으로 New York Dolls의 공연을 보게 되었다. 음악적으로 대단한 감명을 받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New York Dolls의 시각적 요소들에는 눈길을 빼앗겼었다. 미국 밴드인데 진짜로 영국 밴드처럼 보였고, 이런 밴드는 살면서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Johnny Thunders, David Johansen, Syl Sylvain 그리고 모든 멤버들이 'New York Dolls 복장'을 제대로 차려입고 공연하는 모습 - 바지, 신발, 하이 힐, 머리, 모든 것이 너무 화려한 색채였고, '여자애'들도 정말 많았다! 그 시절에는 정말로 대단한 것이었다, 지금와서 돌이켜 보자면 그냥 하나의 씬에 불과했었지만, '파티 씬'이었고, 분명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이었다.

    Alan Vega> 몇몇 날에는 Suicide New York Dolls가 함께 Mercer Arts Center에서 동시에 공연하기도 했었다. 1973년인가 그랬을 것이다. Suicide같은 밴드가 New York Dolls같은 밴드와 함께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 아직도 믿겨지지 않는다, '펑크' 문화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이었는데도 말이다. 하루는 New York Dolls의 공연이 먼저 끝나서 그들이 Suicide가 공연하는 곳으로 구경을 온 적이 있었는데, 뭐랄까 멀찍이 떨어져서 우리를 무슨 화성에서 온 존재인 것처럼 보고 있었다, 우리를 좀 무서워하는 것 같아 보이기까지 했다. 그 때 우리는 체인과 칼과 온갖 그런 것들이 달린 옷을 입고 다녔다, Marty는 한 자리에 가만히 서서 음 단 1개를 연주하곤 했다. 어느 날의 공연에서는 꼼짝도 안 하고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공연 내내 단 1개의 음만을 연주하기도 했다. 나는 무대 앞으로 나가서 미친 놈처럼 달리며 나에게 쏟아지는 빈 병의 세례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고. New York Dolls는 우리에게 조금은 겁을 먹었었다, 알겠나?

    Martin Rev> Suicide는 다분히 의도적으로 온갖 논쟁거리들을 일부러 만들어내었던 밴드였다, Alan은 관객석으로 곧잘 뛰어들었고, 나는 무대 위에서 이런저런 짓거리들을 직접 하기도 했다. 나는 음향 관련된 것들을 하는 역할에 만족했으며, Alan은 Suicide가 선보이는 피드백 노이즈의 강렬함, 특유의 음향들이 상당히 논란을 유발할 만한 것들이라고, 그 음향들 덕에 Suicide가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하곤 했다.

    Alan Vega> 나는 New York Dolls 음악을 정말 좋아했다, 이들은 뭐랄까 '파티 밴드' 같았다. 나는 공연을 보러 가서 노는 것을 정말 사랑했다, 재미있었으니까. 모든 공연이 사실상 파티였고,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좋은 시간을 보냈었다. 그 때 뉴욕 시에 사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New York Dolls의 공연을 보러 갔었다. David Bowie New York Dolls 공연에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David Bowie가 근처에 있다는 말을 얼핏 들었던 적은 있었지만, 실제로 본 것은 공연을 온몸으로 즐기던 Alice Cooper였다. 하지만, 음악적으로는, New York Dolls는 1960년대의 밴드였다고 생각했다. 반면 Marty와 나는 이미 미래로 향하는 변화를 시작한 지 오래였다. 우리는 기타와 드럼을 들어내 치워버렸으며, 향후 '테크노'라 불리게 될 음악 형식을 시작했었다.
     우리는 1973년에 1990년대~2000년대의 음악을 연주했으며, 반면 New York Dolls는 그 블루스 기반의 음악을 계속하고 있었다. 나는 New York Dolls가 그렇게 안좋게 끝났던 것이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고 본다. 내 말은, 개인적으로 New York Dolls가 나쁘다거나 그들이 안좋게 끝나기를 바랬다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나는 New York Dolls가 '새로운 것'을 충분히 많이 가지지 못했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 거의 '반동 음악'에 가까울 정도로까지 말이다.

    Martin Rev> Mercer Arts Center에서 Suicide는 온갖 미친 공연을 했었고, 사람들은 대체로 원래는 New York Dolls의 공연을 보러 왔다가 그 공연이 끝나 중앙 극장에서 나와 밖으로 향하는 길에 파란 방에 들르게 되곤 했는데, 바로 이 파란 방에서 우리가 공연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우연히 들어온 사람들은 대체 우리가 무슨 좆같은 짓을 하고 있는 것인지, 왜 그러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들은 지나가는 길에 우리 무대의 앞으로 걸어가야 했는데, 이 사람들은 New York Dolls 공연, 프릴 달린 셔츠에 커다란 하이 힐을 신은 멋진 사람들의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이었는데, Suicide 공연을 맞닥뜨리게 된 것이었다. 이 사람들은 우리 무대를 최대한 빨리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며 지나가곤 했다. 두 개의 서로 전혀 다른 컬트 씬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꼴이었다.

    Alan Vega> 물론, David Bowie New York Dolls를 훔쳐버리고는 걸레짝으로 만들어 버렸었다. 1973년, 드러머 Billy Murcia가 죽은 해, New York Dolls는 잉글랜드로 떠났고, 이들이 떠나자마자 David Bowie가 나타나 모든 것들을 주워먹었다. 뭐 똑같은 일이다, 1976년 독립기념일에 Ramones가 잉글랜드에 방문했을 때 Sex Pistols Ramones의 모든 것을 주워먹었던 일과 똑같은 일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New York Dolls는 너무 심한 개인사적인 문제들을 겪었었다. 누가 알겠는가, 그들이 괜찮았다면, 뭘 했을지.


    https://youtu.be/fIUGm6FQrPE
    "Johnny"

    CBGB's 이전의 CBGB's

    Alan Vega> Suicide 공연을 본격적으로 시작해보려 했을 무렵에는 New York Dolls Ramones도 없었으며, 공연을 할 만한 적당한 장소도 없었다. 우리는 씨발 뭐라도 하는 유일한 밴드였다. 유일하게 공연을 할 만한 장소로 Mercer Arts Center가 있었지만 곧 사라져 버렸다 - 어느 날 하루만에 없어져 버렸었지. Hilly Kristal(역주: CBGB의 주인)은 Mercer Arts Center 이전부터 이미 CBGB에서 뭔가를 시작하고 있었다. 1971년이었나 1972년이었나, Hilly가 CBGB에서 정기적인 음악 공연을 시작해보려고 했을 때, 우리도 가서 공연을 했었다.

    Martin Rev> 당시의 뉴욕에는 Max's Kansas City에서 주로 모여 놀던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고 있었으며, 이들은 앤디 워홀 세대하고는 다른 세대였다. 그냥 록 앤 롤을 좋아하는 꼬마들이 나이를 먹어가며 직장도 구하고 독립해서 먹고 살면서 틈만 나면 Max's Kansas City에 모여 노는, 그런 세대였다. The Fast, Wayne County, The Miamis, Eric Emerson Magic Tramps같은 밴드들. Terry Ork가 공연 예약을 담당하던 시절, 우리도 Max's Kansas City에서 여러 번 공연을 진행했었다. 그러다가 CBGB's 에서도 몇 번 공연을 하게 되었다. CBGB's가 아직 제대로 시동을 걸고 달리기 전이었는데, The Fast가 여러가지 이유로 우리를 끌어들였었다.

    Alan Vega> 그 이후 CBGB's는 계속해서 죽어 있는 상황이었는데, 1975년 Patti Smith Hilly Kristal을 위해 말 그대로 클럽의 문을 열어젖혔고, 온갖 예술계 인사들이 그 속으로 끌려들어오게 되었다.
     나는 Marty Rev를 The Project of Living Artists(역주: Joe Catuccio가 운영했었던 맨해튼의 예술 공간)에서 만나 알게 되었다. 우리는 그 곳에서 만나 함께 놀면서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정말로 하루 종일 내내 The Project of Living Artists에서 지냈다, 그러다가 그 공간의 관리인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그 때의 나에게는 살 만한 곳이 없었고 그래서 그냥 거기에 계속 머물렀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여럿 와서 같이 놀곤 했다. 당시 The Project of Living Artists에는 온갖 종류의 미친놈들이 있었다.
     Suicide가 공연을 하면 매번 진짜 폭동 상황이 벌어졌었다, 그 시절에는 그런 소동이 흔하지 않은 일이었다, 1년에 두세번 정도나 일어날 법한 일이었지. 관객들이 너무 열받아서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댔었다, "드럼은 어디 갔어? 베이스는 어딨고?"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고작 우리가 정통적 록 밴드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열받는다는 것이 말이다. 그리고 나는 바로 이런 점 때문에 Suicide 활동을 정말 좋아했었다: Suicide는 우리 둘 모두 무언가를 찾아 헤매던 과정에서 만들게 된 밴드였다. 나는 음악 속에서 예술을 찾고 있었다, 시각 예술은 더 이상 내게 흥미를 끌지 못하고 있었고, 나는 나의 예술을 음악 공연에서 찾게 되었다. 음악 공연 속에서, 내가 찾아 헤매이던 예술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내가 나의 그 예술을 달성하는데에 성공했는지는, 아직까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주 가까이 근접했던 적은, 적어도 몇 번은 있었던 것 가같다.
     Marty는 Reverend Heat이라는 이름의 재즈 밴드에서 음악 활동을 시작했었다. Reverend Heat은 내가 살면서 본 밴드들 중 씨발 가장 위대한 밴드였다. 3대의 트럼펫, 2대의 드럼 세트, 4명의 클라리넷 연주자가 있는 밴드였고 공연을 밤새 내내 진행하곤 했었다. 구체적인 음악가 구성은 계속해서 자주 바뀌었었다. 한번은 밴드에 3명만이 남아 있기도 했으며, 그러다가 곧 12명의 밴드가 되기도 했다.

    Martin Rev> 그 때의 나는 최신 재즈는 손에 잡히는대로 전부 듣고 있었다. 당시 미국 재즈 씬에서 나오던 것들 중 많은 것들이 신선하고 새로웠으며, 정말로 흥미로운 음악들이었다. John Coltrane은 계속해서 새로운 음반을 발매하고 있었으며, 그냥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온갖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계속해서 꺼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Alan Vega> 그리고 나는 공연장에 선뜻 들어가서는 탬버린이라던가 그런 것들을 흔들곤 했었다. 하지만 내가 Marty에게 특별히 더 꽂혔던 것은, 살면서 재즈 밴드에서 전자 키보드를 연주하는 사람을 본 것이 Marty가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당시 이제 막 20살인가 21살인가 였었던 젊은 청년이었지만, 너무 선을 넘어버렸던가 하는 이유로 이미 뉴욕 대학교 음악대학에서 쫓겨난 경력을 갖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내가 다른 밴드와 함께 잼 연주를 하고 있다 보면, Marty가 들어와서는 연필 몇 자루를 가져가서는 자리에 앉아서 연주에 맞춰 연필들을 두들기곤 했었다. 우리에겐 음악 같은 건 없었다, 모든 것이 혼돈이었다, 하지만 그냥 그렇게 잼 연주를 계속 했었다.
     그 시절의 나는 트럼펫을 불었었다. Marty는 드럼 연주를 정말 훌륭하게 해내고 있었고. 그 누구도 Marty를 모르던 시절이었다. 우리는 그냥 함께 밤새도록 뭔가를 연주해대곤 했었다. 우리의 첫 공연도 The Project of Living Artists에서 했었는데, 뭐를 해야 하는지 아무런 계획도 생각도 없었다 - 그래서 그냥 아무 음향이나 내면서 시작했고, 거기서부터 Suicide의 모든 것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대략 2년의 시간이 흐른 후, 첫 곡이 만들어졌다.

    Martin Rev> Alan은 트럼펫을 불곤 했는데 말 그대로 불어댔었다, 실제로 트럼펫을 '연주'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지만 엄청난 에너지를 갖고 있었으며, Alan은 트럼펫, 다른 사람은 기타를 연주하고 있다 보면 내가 그 사이로 끼어들어 함께 연주를 하곤 했다. 이 둘은 예술계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시각 예술계에서. 나는 음향 업계에서 온 사람이었으며, 이들은 음향 예술로 나아가려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말했다, "좋아, 한번 해 보자고."

    Alan Vega> 그 기타 연주자는 3번인가 4번의 공연 이후, 우리와 계속 함께 한다면 언젠가는 자살을 해 버릴 것 같다고 생각했으며, 결국 밴드를 떠나게 되었다. Marty는 알고 지내는 음악가가 많았으며, 우리는 그들 중 적절한 드러머를 구할 수 있을지를 논의했었다. 하지만 Marty는 새로운 멤버가 들어온다면 그 멤버 또한 Suicide에 완전히 헌신하여 활동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우리는 Suicide라는 밴드에 대해 100%의 확신을 가지고 있었으며, 누군가가 또 다시 밴드를 떠난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Marty는 우리 둘 정도의 헌신을 보일 멤버는 구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 그렇다면, 애초에 왜 새 멤버를 구해야 하는가?
     나도 Marty의 아이디어에 동의했다. 그리고 이 때 어떤 마법이 일어났는데, 어쩌다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Marty가 갑자기 어디서 드럼 머신 하나를 구해서 가져왔던 것이다. 바르 미츠바나 결혼식장 같은 곳에서나 쓰일 법한, 금속 케이스에 굉장히 이상하게 생긴 드럼 머신이었다.

    Martin Rev> 나는 원래는 전자 키보드와 실제 드럼을 사용하곤 했었다 - 드럼 머신은 Suicide가 진짜로 시작했을 때 새로 생긴 물건이었다. 나는 내가 기획/진행하던 여러 공연 행사들에서 연주자로 지목되어 참여하곤 했는데, 대체로 뭐랄까, 'free rocking'이라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공연들이었다. 뭐랄까 '프리 재즈' 같은 공연들이었는데, 모든 사람들이 온갖 음을 내는 그런 것이었지만 동시에 분명하게 록 앤 롤이기도 했다, 퓨전 음악이 아닌 록 앤 롤. 모두가 대마를 피거나 이런저런 것들을 했으며 공연의 그루브는 굉장히 탄탄하게 흘러갔었다.
     나는 15살인가에 첫 록 앤 롤을 시도했었고, 첫 공연도 해 봤으며, 그렇게 자라다가 어느 시점에 완전히 체득하게 되었다 - 나는 록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록이야말로 나의 뿌리라는 것을, 나는 록 앤 롤 세대라는 것을. 나는 언제나 그 줄기 위에서 걸어왔던 것이다.

    Alan Vega> Marty가 드럼 머신을 가져왔을 때, Suicide의 음악 속에서 무엇인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내 말은, 기타 연주는 음악에 그 어떤 것도 더하지 못했었다. 우리는 대략 3~4시간 정도의 리허설을 하곤 했었다. 그 무렵은 모두가 LSD를 달고 다니던 시절이었고, 우리는 리허설이 끝나면 완전히 지쳐버려서 아무것도 못 하는 상태가 될 정도였었다. 우리는 그 정도로 Suicide에 전념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리는 서로를 보고 말했다, "다른 멤버 같은 건 필요 없겠는데!"
     그 드럼 머신은 정말로 훌륭한 록 앤 롤 머신이었다. "Ghost Rider"가 그렇게 만들어졌으며, 다른 온갖 훌륭한 곡들도 만들어졌다, 바로 그 "bub-a-boom" 드럼 머신 덕분에.


    https://youtu.be/3L7PhuW3o-w
    "Cheree"

    Elvis Costello & The Clash

    Alan Vega> 나는 Suicide를 '아는' 사람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Elvis Costello가 1978년 유럽 투어에 Suicide가 오프닝 무대를 서 주었으면 하고 제안해 왔을 때, 나는 깜짝 놀랐었다, 하지만 엄청나게 놀란 정도는 아니었다 - 왜 그런 제안이 나왔는지 이해가 가긴 했었으니. 사실 Elvis Costello와는 1년 정도 전에 이미 만나서 안면을 익힌 사이였었다. 보스턴의 [BCN]에서 진행하는 인터뷰였는데, Elvis Costello가 자리에 먼저 와 있었고, 만나서 얘기를 좀 해 보니 Elvis가 Suicide를 이미 알고 있었던 거였다. 사실 우리는 The Clash 한테 훨씬 더 크게 놀랐었다. 유럽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고, 가끔씩 유럽에 방문도 해서 주말 동안 여기저기를 쏘다니기도 했었지만, 1978년, 잉글랜드에 처음으로 방문했을 때, 상당히 유명했던 잡지 [Time Out]의 앞면 표지에 내 얼굴이 떡하니 실려 있는 게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 때의 나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Time Out]지가 뭔지도 몰랐고. 그 누구도 나한테 다가와서 이게 상당한 사건이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당시 유럽에서 Suicide 및 뉴욕 씬에 대한 인지도가 엄청나게 올라가고 있었던 것 같다.

    Martin Rev> Elvis Costello  The Clash와 함께 진행했던 유럽 투어가 Suicide의 첫 '투어' 였었다. 몇 달 정도는 Elvis Costello와 함께 다니고, 1개월 정도를 The Clash와 함께 다녔던 것 같다. 그 후 3주 정도를 Suicide 단독 공연으로 보냈고. 나 또한 개인적으로는 인생 처음으로 진행했던 투어였었다.
     유럽에서 Elvis Costello는 굉장히 유명했고, The Clash도 굉장히 유명했었다. 하지만 뭐랄까, Suicide와 같은 종류에서 유명했던 것이었다 - 일종의 '아웃사이더'로써 말이다. The Clash는 일반 클럽에서는 공연하지 못했다, 비행기 격납고나 해군 창고 같은 곳들에서 공연을 해야만 했었지. 당시 The Clash는 밴드 멤버들 자체도 쉽게 모든 것을 박살내 버리는 것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었고, 밴드의 팬들도 아주 과격하다는 악명이 퍼져 있었다.
     Elvis Costello 공연의 오프닝 무대에 섰을 때, Elvis 본인은 마음에 들어했고 계속해서 오프닝 무대를 맡아 주길 바랬다. 하지만 관객들은, 언제나, 폭동이었다.

    Alan Vega> Elvis Costello 오프닝 무대들은 매일매일이 폭동 그 자체였다! 이 때 Elvis Costello는 대략 9개월간의 투어를 돌고 있었던 상황이었는데, 밴드 멤버들은 모두 미쳐 날뛰고 있었고, 투어 관련 직원들도 전부 미쳐 날뛰고 있었다, 다들 한계를 넘어서 미친 듯이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매일 밤마다 우리는 새로운 폭동을 맞이하고 있었으며, Elvis는 매일 우리에게 와서 이렇게 말했었다, "다시 한 번 폭동을 일으켜 달라구, 밴드 전부가 완전히 지쳐버려서 이제는 더 할 수가 없을 지경이니까!"

    Martin Rev> Suicide가 오프닝 공연을 시작하면 관객들은 그냥 돌아버려서 공연장 전체를 말 그대로 박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Elvis Costello는 그 광경을 즐겼다.

    Alan Vega> 하루는 폭동이 너무 심해서 Elvis Costello가 아예 공연을 1초도 안 했던 적까지 있었다 - 벨기에에서의 공연이었는데, 관객들이 너무 개판을 쳐 놔서 경찰이 들어와 전부 중지시켜 버렸었다. 최루탄이 날아다녔고, 진압봉이 휘둘러졌으며, 모든 것이 파괴되었다. 사실상 전쟁터였지. 그래서 우리도 공연을 할 수 없었고, Elvis Costello도 하나도 못 했는데, 우리에게 계속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제발 내일 밤에도 한번 더 터뜨려 줘, 알겠지?" Elvis Costello와 밴드는 이미 9개월간의 세계 투어를 돌았던 상태였고 완전히 지쳐서 기진맥진해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벨기에를 떠나 잉글랜드로 향했고, '프라이 팬'에서 아예 불 속으로 뛰어들어갔다...

    Martin Rev> The Clash 관객들은 술에 잔뜩 꼴은, 찢어진 티셔츠에 금속 핀을 잔뜩 꽂은 녀석들이었다! 무슨 12살처럼 보이는 녀석들이었고, 다들 모히칸 스타일을 하고 있었는데, 재미있었던 일은 - 창고 같은 곳에서 진행했던, The Clash와 함께 했던 첫 합동 공연이었는데 공연이 끝나고 누군가가 나를 찾아왔었다. 이 날 공연은 정말 괜찮게 진행되었었다, 온갖 비명소리와 물건들이 날아다니던 멋진 공연이었는데, 나를 찾아온 그 남자가 말하길, "오늘 꽤 고생 좀 했을 것 같은데, 내일 밤에는 좀 더 나을 거야, 알겠지? 오늘 공연은 최상의 컨디션은 아니었잖아, 그렇지, 그래서 다들 그렇게 소리를 질러댔던 것 같아..."
     나는 대답했다, "아니 이런 거야말로 우리가 하는 공연인데, Suicide 공연은 원래 이렇다고, 알겠어?"

    Alan Vega> The Clash 투어는 영국 펑크의 전성기에 진행되었던 투어였으며, 관객들은 대체로 침을 찍찍 뱉어대며 소리를 질러대는 스킨헤드들이었고 우리한테 온갖 물건들을 던져대거나 아예 무대 위로 올라오는 사람들이었다! 좆같은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생각만이 들었었다, 그 시절의 나는 굉장히 여러가지로 시달리고 예민해져 있었다...

    Martin Rev> The Clash 공연에는 그들의 충성팬들이 많이 찾아왔고, 그들은 Suicide에게 놀라울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침을 뱉어댔고 엄청나게 많은 물건들을 던져댔었다. 무대 위에 굉장히 위험한 물건들이 널려 있을 정도였다, 드럼에 손도끼가 박혀 있기도 했다. 하루는 연주 중에 난입한 한 남자와 실제로 싸우기까지 했었다! 그 남자는 나를 문자 그대로 공격했고 나는 좌우로 피하며 최대한 빠르게 음악을 만들어냈었다, 이 남자는 실제로 나를 죽이려고 했었다.

    Alan Vega> 그 때 잉글랜드에는 "National Liberation Front"라는 이름의 네오나치 집단 같은 것이 있었는데, 그 놈들이 하루는 무대 뒷편의 의상실에까지 거의 쳐들어왔었다. 나는 혼자 있었는데, 그 놈들은 나를 진심으로 죽이고 싶어했었다. Portsmouth인가 Plymouth인가 하는 동네였는데, 그 놈들이 나를 습격한 이유가, 공연에 왔다가 Suicide 공연을 보고는 빡쳤기 때문이었다. 의상실은 무대 바로 뒷편에 있었고, Marty는 무대 위에서 계속 연주중이었다. 5명 정도가 나를 습격했고, 다들 손에는 체인을 들고 옷에는 스와스티카가 붙어 있었다! 나라는 존재 자체를 증오하는, 나를 죽일 준비가 되어있는 놈들이었고, 나는 구석에 몰려서 "씨발!"이라고 소리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다행히 Marty가 연주를 멈추고 사람들을 불러 의상실로 들어왔고, 모든 것이 끝났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네오나치 놈들은 자연스럽게 쫓겨나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꺼지라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댔으니. 이 순간이야말로 내가 생각하기에 거의 끝장을 봤던 순간들 중 하나가 아니었나 싶다.

    Martin Rev> 하루는 Alan한테 이렇게 말했었다, "이거 봐, 이런 반응이 나오는게 당연하다고, 우리도 관객들한테 이런 짓을 맨날 하고 있으니까, 관객들도 그냥 우리한테 이러는거지. Suicide 공연이란게 이런 식이라는걸 다 알게 된 거라고, 이제는 관객들이 우리한테 침을 뱉고 쓰레기를 던져대는 거지, '이게 바로 펑크 미학이지'라고 생각하게 된 거라고, 그렇지 않아?"

    Alan Vega> The Clash와의 투어가 끝난 후 Suicide 단독 투어도 돌았었다, 굉장히 작은 규모였지만. 이 단독 투어의 첫 공연은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의 작은 클럽이었고, 무대도 정말 작았는데, 대략 1,000명의 관객들이 있었다. 정말 어두웠었다...

    Martin Rev> 글래스고는 공연을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목숨을 거는 모험이 되어버리는 곳이라고들 했었다...

    Alan Vega> 그렇게 글래스고에서 공연을 시작했고, 나는 거의 시작하자마자 좆같은 일들이 일어날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꽤 괜찮게 진행되었었다. 공연 분위기는 상당히 좋게 진행되었고 별다른 사건도 없었다. 누군가가 디스코 조명을 켰고, 나는 그 꼴을 보고 말했다, "씨발, 다들 춤을 추잖아! 씨발 Suicide 곡에 맞춰서 춤을 추고 있다고, 1천명이 춤을 추고 있단 말이야, 아무도 유리병을 던지지도 않고 나한테 싸움을 걸지도 않고 침도 안 뱉고 있다고, 씨발 춤을 추고 있다고 다들!" 그래서 나는 키보드 쪽으로 물러서서 Marty에게 말했다, "Marty, 저거 보여? 관객들이 춤을 추고 있다고! 아니 이러면 우리는 대체 뭘 해야 하는 거야?"


    https://youtu.be/3GN1VkRX5co
    "Rocket USA"

    Chrissie Hynde

    Alan Vega> 1983년, 나는 이제 막 두 번째 솔로 앨범 [Collision Drive] 작업을 끝낸 상황이었다. 레이블 사무실에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전화가 오더니 씨바 나한테 Pretenders 미국 투어의 오프닝 무대를 맡아줄 수 없겠냐고 하는 게 아닌가.
     아니, 뭐라고? 대체 누가 이딴 생각을 한 거야?
     밴드 멤버들과 모든 투어 관련자들을 통틀어서 Chrissie Hynde야말로 가장 심각하게 너덜너덜해져 있었는데, 밴드 멤버들 모두 미친 놈들이었고 투어 관련 직원들도 전부 미친 놈들이었기 때문이었다. Pretenders는 굉장히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이 미국 투어는 원래 예전에 진행했어야 하는 투어였는데, 그 때는 드러머가 자기 손으로 창문을 박살내버려서 취소되었었다 - 이 드러머는 결국 죽었다. 그나마 밴드에서 가장 정상적인 사람은 기타리스트였는데, 텍사스 출신의 정말 괜찮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 사람도 결국 코카인 과다복용으로 죽어버렸다.
     하지만 이 미국 투어에서, 나를 가장 미쳐 돌아버리게 만들었던 사람 또한 Chrissie Hynde였다.
     무엇보다도 어째서인지 Chrissie는 나랑 떡치고 싶어했는데,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Chrissie가 나중에는 Iggy Pop과 함께 투어를 다녔던 것이다.
     이 때의 Chrissie는 자기가 현재 Ray Davies(The Kinks)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는지를 아직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매일 밤마다 공연이 끝나면 Chrissie가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지금 생리중인지 아닌지 모르겠어!"라고 떠들어댔었다.
     Chrissie는 매 순간마다 좆같은 생리에 대해서 떠들어댔다, 아니 씨발 내가 왜 그딴 거에 신경을 써야 하는가? 애초에 우리는 개인적으로 잘 아는 사이도 아니었다. 아니 대체, 대체 왜 나한테 자기 생리에 대해서 떠들어대는 거야? 그 때의 나는 Chrissie가 그냥 나랑 떡을 치고 싶어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당시에 Chrissie는 임신중이었던 것이다. 그 때가 임신 1개월인가 2개월인가 하던 무렵이었다. 그래서 나한테 계속해서 소리를 질러댔던 것이었다.
     그리고 밴드 멤버들 또한 문제를 겪고 있었다. 멤버들 모두가 좆같이 맛이 가버린 사람들이었고, 무대 옆에서 코카인을 무슨 1미터 정도로 길게 늘여놓고는 그냥 무식하게 코를 들이밀고 흡입하고 있었다. 정말 좋지 않았다.
     나는 매일 밤마다 관객의 야유소리를 들었는데, 그냥 내 방식대로, 내 좆대로 공연을 진행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고약한 녀석이었다. 무대 앞으로 걸어 나오면 관객들은 이미 다들 나에게 한껏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미국 투어에 "Fuck You Tour"라는 별명을 붙였고, 이 별명이 천천히 퍼져나갔다. 아마 관객들도 이 별명에 대해 미리 듣고 오히려 더 손가락 욕을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우리는 노스 캐롤라이나, 펜실베이니아, 켄터키 등등 여러 주의 대학교에서 공연을 했고 모든 관객들이 우리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사실 나는 관객들이 즐기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꼬맹이들이 공연에 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다들 웃고 뛰어다니고 흥청망청 놀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이 녀석들이 우리 음악과 공연을 정말로 좋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Chrissie의 매니저는 나를 투어에서 빼버리고 싶어했다. 그들은 관객들의 반응을, 손가락 욕을 하는 반응을 나와는 정 반대의 방향으로 받아들였다. 나는 대답했다, "아니, 나는 계속 투어에 붙어있겠어!"
     투어 초반에는 관련 직원들이 내 장비를 발로 차는 등 좆같은 짓들을 해 댔었다. 하지만 투어 시작 후 1~2개월 정도 지나자, 다들 나한테 상당히 잘 대해주게 되었다. Pretenders를 위한 음향 체크는 더 이상 안 하기 시작했고, 장비들을 설치할 때에는 Pretenders 음악 말고 내 음악을 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Chrissie의 매니저가 우연히 공연 준비중인 공연장에 들어와서는, 모든 사람들이 Pretenders가 아닌 내 음악을 듣고 있는 꼴을 보더니 갑자기 급발진하고 당황하는 것이 아닌가!
     아마 그래서 나를 투어에서 빼 버리려고 했던 것 같다. 내가 직원들과 정말로 친해지고 있었기 때문에. 하지만 그 놈들이 내가 얼마나 "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에 대해 떠들어대는 것을 옆에서 듣는 것은, 상당히 재미있는 일이었다.


    https://youtu.be/e6tcI9_KpZU
    "Che"

    너무 깨끗한

    Alan Vega> 이제는 '위험'이라는 것이 없어졌다. 모든 밴드들이 똑같은 일을 하고 있으며, 똑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 - 그리고 모두가 너무나도 깨끗하다. 오늘만 해도 길을 걸어가는데 앞에 몇 명의 음악가들이 각자 도끼를 들고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다들 쿨하게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 놈들 모두 좆같은 여피새끼들 같았다, 진짜 너무 깨끗한 놈들,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하나같이 이제 막 샤워를 마친 것 같은, 멋진 옷을 쫙 빼입은 차림에... 그러니까, 음악가들이 전부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애새끼들처럼 보인다고!
     요새 보는 온갖 좆같은 밴드들을 통틀어서 아마 딱 밴드 하나 정도가 무대 위에서 '진짜'인 순간을 가졌을지도 모르는, 그런 정도이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어떻게 행동해야만 하는지를 생각하며 그에 따라서 행동하고 있다. 진정으로 무언가를 느낀다거나, 관객에게 자기가 진심으로 느꼈던 감정을 전달하려고 하는 놈은 없다. 우리는 '가짜의 시대'에 들어와 버렸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아무도 거기에 대해서 코털만큼의 신경조차도 쓰지 않는 것 같다. 아니, 하느님 이런 씨발, 그냥 나한테 엿이나 먹여라!

    Martin Rev> 이제 모든 것들이 완전히 틀에 박혀 버렸고, 모든 것들이 정말로 길 위 한복판에 서 있는 것 같이 되었다, 뭐랄까, "씨발 이게 대체 뭐야?"


    *********************************************************************************************




    Alan Vega (1938.6.23. - 2016.7.16.) / Martin Rev

    Rest In Peace

     

     

    2022/07/02 1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