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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top Making Sense] 17. fuck buttons
    [Stop Making Sense] 2023. 3. 17. 06:51

     

    [Stop Making Sense]는 자유연재물로 제가 소개하고 싶은 음악들에 대해 얘기해 볼 예정입니다. 아무래도 '날선' 음악에 대해서 주로 다룰 것 같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19세 미만인 분들께서는 접하면 안 되는 음악들도 많이 다룰 예정이니, 19세 미만인 분들께서는 글도 보지 마시고 음악도 접하지 마시길 정중히 부탁드립니다. 또한 문체는 존칭을 생략하였으니, 이 또한 양해 부탁드립니다.

    "만약 어떤 곡을 좀 더 길게 재생되도록 놓아둔다면, 당신의 귀는 소리에 적응하기 시작할 것이다. 당신은 그 곡에서 어떤 복잡성을 뽑아낼 수 있게 되며, 이는 곡을 짧게 재생했을 때에는 알아차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연유로 우리의 곡들은 일반적인 팝송들보다 조금 긴 길이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것들을 정말로 흥미롭게 생각한다."

    - Benjamin John Power, fuck buttonsinterview with Tiny Mix Tapes

     

    0. 2000년대 초반, 영국 Bristol 의 예술대학에는 2명의 청년이 있었다. 일러스트를 전공하는 Ben 이라는 남자는 16살 무렵부터 난잡한 펑크 밴드 활동을 해 왔으며, Andy 라는 순수미술 전공자는 Warp 레이블 소속 음반들 같은 전자음악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다. Andy 의 영상 프로젝트의 배경음 문제로 만나게 된 둘은 곧 서로의 음악적 배경이 많이 다르긴 하나 '노이즈' 라는 매우 흥미로운 지점에서 교집합을 갖는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fuck buttons" 라는 이름하에 2008년 첫 앨범 "Street Horrrsing" 을 발매하게 된다. 

     

    1. 뒤집히고, 부서지고, 수수께끼의 상징으로 덮인 바다 사진을 표지로 삼은 "Street Horrrsing" 은 6개의 곡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사실 앨범은 하나의 거대한 곡이며 이를 6개의 악장으로 나누어 놓은 것이나 다름없다. 곡들은 자연스럽게 이어지며("Sweet Love For Planet Earth / Rib's Out (live)"), 같은 음악적 주제를 빈번하게 공유한다. 또한 곡들은 지독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짙은 소음에 뒤덮여 있으며 (특별히, "Race You To The Bedroom - Spirit Rise" 는 목가적인(?) 멜로디가 거의 묻힐 정도로 시끄러운 음들에 푹 잠겨있다), 사람의 목소리가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무슨 가사인지 알아들을 수 있기는커녕 끔찍하게 느껴질 정도로 왜곡되어 있다("Okay, Let's Talk About Magic"). 앨범은 또한 상반되는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공존시키면서 기묘한 분위기를 불러일으키는데, 마치 같은 사물을 상당히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는 듯이, "Bright Tomorrow" 의 밝고 '명랑한' 댄스 리듬은 "Rib's Out" 의 소름끼치는 비명과 사실상 같은 주제 및 분위기를 가진다. 이 모든 기묘함과 모순은 첫 곡인 "Sweet Love For Planet Earth"에서 잘 드러나 있는데, 아름답고 예쁜 소리와 어둡고 서사적인 소음을 배경으로 영원과 죽음에 대한 환희(또는 절규?)가 흘러나오지만 청자는 그것이 무슨 소리인지 알 도리 없이 그저 반복되는 음들을 들을 수밖에 없다. 마지막 곡인 "Colours Move" 는, 마치 이제까지의 모든 것들이 하나를 보고, 하나를 말하고 있었다는 듯이, 이전에 등장했던 요소들을 복합시켜가면서, 6곡/50여 분간의 앨범을 끝낸다.

     

    2. 그래서 fuck buttons 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비록 그들 나름대로 생각하는 이미지를 담아 곡과 앨범의 제목을 붙이기는 하지만, fuck buttons 는 음악에 대해 어떠한 부연 설명이나 해석을 피하며 청자들 나름대로의 해석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모습을 보여 준다. 상업적인 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밴드 이름, 2012 하계올림픽 개막식에 그들의 음악 "Olympians"와 "Surf Solar" 가 사용되는 대사건이 일어났음에도 '욕이 들어간 이름을 가진 밴드들 중 올림픽에 나온 사람은 우리밖에 없을 것' 같은 시시한 농담을 하면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모습, 그리고 앨범을 하나 만들 때 마다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두 명이 한 방에서 괜찮게 생각되는 음들을 찾을 때까지 별다른 말도 없이 그저 작업에 몰두하는 나름의 방식을 보면, 이들은 음악으로밖에 표현할 수 없고 음악으로밖에 받아들일 수 없는 추상적인 무언가에 대해 완전히 빠져 있으며 이를 표현하고자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들의 표현은 굉장히 집중적이고 압도적이며 놀랍다. 기묘한 분위기와 긴 반복의 장벽을 넘어 fuck buttons 의 음악을 듣다보면, 당신은 어느새 그들의 세계에 완전히 빠져 있을 것이다.

     

    3. 그리고 멤버 Andrew Hung 이 만든 뮤직비디오들도 매우 멋지다.

     

    "모여서 곡을 만들고자 할 때, 우리는 어떤 곡이 나올지에 대해 아무런 예상을 하지 않고 작업을 시작한다. 작곡 과정에서 우리는 정말 많은 실험을 하며 눈앞에 있는 어떤 장비든 간에 전부 활용한다. 우리 둘 모두의 눈길을 끄는 부분이 나타나면, 우리는 거기서부터 구조를 쌓아나가기 시작한다. 이는 정말로 자유로는 작업 방식이다."

    "지난 몇 년간 작업을 같이 해 오면서, 작곡 과정에서 우리 둘 간의 대화는 거의 없었다. 곡을 하나 완성했을 때는 흥에 겨워 대화를 하긴 한다. 그러나 작곡 중에는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음악을 따라간다." 

    - Benjamin John Power / Andrew Hung, fuck buttons, interview with the Quietus

    ※fuck buttons: Andrew Hung, Benjamin John Pow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