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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iS Meets Slint: The People of Louisville Are Crazy (Part 1)
    [...]/[slint] 2023. 3. 21. 09:16

    Slint의 [Spiderland] 리마스터 버전 발매를 기념, [Drowned in Sound]에서 이에 맞춰서 특집 인터뷰 기사를 낸 것입니다.

    http://drownedinsound.com/in_depth/4147485-the-people-of-louisville-are-crazy---dis-meets-slint-part-one


    http://youtu.be/gBfoQjJ7guk

    지난 8월 Lou Reed의 부고를 알리는 기사를 읽어 본 사람이라면 이미 보았겠지만, Brian Eno는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Velvet Underground의 첫 앨범은 고작 10,000장만 팔렸지만, 그걸 샀던 사람들은 전부 밴드를 결성했었다". Brian Eno가 이런 말을 했던 1982년, Slint 멤버들은 이제 막 10대에 들어선 꼬마들이었지만, 그들이 만들어 낸 alternative rock 마스터피스는 같은 말을 적용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앨범이었다.

    Slint의 상징과도 같은, 아주 멋지게 소름끼치고 독특한 방식으로 무결점을 획득한 두번째 앨범 [Spiderland]에 대해서는, 인용할 가치가 있는 또 다른 적절한 언급이 있다. 이는 Ian MacKaye (Minor Threat, Fugazi) 가 한 말이다:
    "Louisville 사람들은 좆나 미친놈들이다. 그들은 그냥 정신이 나간 사람들이다."

    80년대 Kentucky 주 Louisville에는 훌륭한 펑크밴드들이 많았다. Slint의 역사는 10대 초반의 Britt Walford와 Brian McMahan이 Languid And Flaccid라는 밴드에 있을 무렵부터 시작한다. Lance Bangs가 감독한 다큐멘터리 [Breadcrumb Trail]에는 Slint의 역사 곳곳에 있는 빈 공간을 채울 수 있는 내용들이 있는데, 무튼 Squirrel Bait Maurice가 끝나고 난 후에 Walford와 McMahan은 베이시스트 Ethan Buckler와 기타리스트 David Pajo에게 낚여서 Slint를 결성하게 된다.

    (마침내 리마스터되어 특대사이즈로 재발매된 [Spiderland]에 포함된) [Breadcrumb Trail]은 2가지 점에 대해서 아주 멋진 다큐멘터리이다. 이 다큐는 Slint를 항상 둘러싸고 있던 수수께끼 신화의 대부분을 폭로한다.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오히려 또 다른 거대한 의문점들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도대체 어떻게 실제로 공연하는 시간보다 조율하는 시간이 더 길었던 이 4명의 펑크키드이 이런 음반을 만들었는지, 이들의 첫 공연은 동네 교회 행사의 일부였는데다가, 다른 공연들은 아무도 보러 오지 않았으며, 장난으로 서로의 방귀소리를 녹음해서 'anal breathing' 테잎이나 만들고, 그러다가 40여분동안 오싹하고 불가사의한 spoken word 보컬과 이상하게 잔존하는 반복적인 리프들과 부자연스러운 뉘앙스의 아름다움과 흉포한 감정 - 폭발을 담은 명반을 만들어내고는, 발매되기도 전에 해체했는지 - 도대체 어떻게 이 작자들이 세계에서 가장 독특하며 영향력있는 밴드들 중 하나가 되었는지?

    "우리는 우리가 남들과는 조금은 다를지도 모를 음악을 하고 있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 생각에 우린 그냥 우리 스스로를 만족시키려고 음악을 했을 뿐이었던 것 같다. 그저 좋아서 했을 뿐이었다." 보컬/기타였던 McMahan은 회고한다. "당시 사람들이 '흠, 너네 완전 지루해'라고 말해도 딱히 충격받지 않았었다. 아무도 우리에게 뭔가를 연주하라는 압박을 넣거나 하지 않았었다."

    [Breadcrumb Trail]의 초반부 명장면중 하나는 바로 Slint가 괴상한 'Nan Ding'을 연주하는 무대에서 고등학생들이 싸움판을 벌이는 장면이다. 비록 요즘의 Slint 공연에서는 숭배와 존경의 분위기가 만연하지만, 그 누구라도 당시 80년대 중반의 Slint 공연 중 아무거나에라도 들어갔더라면 이 녀석들이 완전 병신들인지 아니면 미친놈들인지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제는 그들이 일종의 신기원을 이룩했다는 것을 다들 알지만, 그때 당시의 그들이 뭔가 '혁신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음, 나는 정말로 그렇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드러머 Walford는 말한다. "좋은 의미건 나쁜 의미건간에 우리는 자기만의 세계에 완전히 빠져 있었다. 적어도 나는 정말로 그랬었다. ㅋㅋㅋㅋ"
    "내 생각에 Slint의 음악은 자연스럽게 - 음, 정말로 그랬었다 - 우리들이 가지고 있었던 악기와 우리들이 푹 빠져있던 것들과 당시 우리의 감성으로부터 흘러나왔던 것 같다. 나는 우리 음악이 특별하고 진짜 멋지다고 생각했었으며, 정말로 좋아했었다. 음악이 어떤 의미를 가졌냐에 대한건, 나는 딱히 생각해 본 적 없었다."


    http://youtu.be/5ugdrdFrhI0

    학교를 다니고 애완동물 가게들을 들락거리고 장난질을 쳐 대면서, Slint는 그들의 첫 앨범 [Tweez]를 겨우 만들었다. Steve Albini가 엔지니어로 참여한 [Tweez]는 1989년 그들의 친구 Jennifer Hartman의 도움을 받아 발매되었다. 고출력의 디스토션, 광란에 가까운 속도변화, 불분명한 소음들의 집합이 포함된 [Tweez]는 '전형적인 결점'을 가진 앨범들 중 하나였다 - 정말로 괜찮고 확실히 아이디어로 넘쳐났지만 밴드 사운드는 아직 한참 발전중인 그런 앨범.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Tweez]는 16살 꼬맹이들이 만든 것 치고는 놀라운 결과물이었다." McMahan은 말한다. "Britt의 손길은 [Tweez]의 모든 곳에 닿아있다. 만약 Slint에 어떤 창조력 집합체와 추진력 같은 것이 있었다고 생각하고 그게 누군지를 찾는다면, Britt을 그냥 지나치진 못할 것이다."

    전화상에서의 그는 좀 수줍음을 타고 머뭇거리는 사람이긴 했지만, [Breadcrumb Trail] 곳곳에 있는 수많은 일화들을 본다면 Walford가 별난 괴짜면서도 창의력 넘치는 천재라는 것은 분명하다. [Tweez] 앨범 수록곡들의 제목을 Slint 멤버들의 부모님들 이름을 따서 짓기로 한 것도 그의 아이디어였고, 그 이유는 단지 "재밌어 보여서" 였으며, 전혀 웃지 않다가도 Lance Bangs가 그에게 '[Tweez] 앨범 어딘가에 누군가가 똥을 싸는 소리가 숨겨져 있다는 것이 사실이냐'고 물었을 때 엄청나게 웃어대기도 하는 사람이다 (그는 부정하지 않았다).

    이게 [Tweez] 앨범이 그냥 10대들이 모여서 할 짓 없이 끼적거리다 나온 앨범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 비록 17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Walford는 이미 공연/음반 예술가로서의 길을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언제나 그 길에 대해서 생각했었다." Walford는 말한다. "나는 그 어떤 것도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내 생각에는 Slint의 다른 멤버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들의 입장은 직접 들어봐야겠지만, 어쨌든 나는 자라면서 진지하게 해 본 것은 연주 뿐이었고 따라서 정말 진지하게 음악가의 길을 생각하고 있었다."

    반면, Buckler는 [Tweez]가 완성되었을 무렵, 앨범 사운드에 대한 Albini의 기여에 불만을 갖고 밴드를 탈퇴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었다. 그는 결국 밴드를 떠났으며, 빈 베이스 자리에는 Todd Brashear가 들어왔다. 그 직후 짧게 떠난 유일한 Slint의 투어는 투어용 밴에다가 멤버들이 직접 쓴 후진 낙서들로 수많은 운전자들을 빡치게 했다: '우리는 작고 약한 사람들이고 레즈비언들이 무서워요', '우리는 밴드에 있고 우리는 귀여워요' 등... 누구라도 당시에 어떤 분위기였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Slint 멤버들의 다음 단계는 대학 진학이었으며, Walford와 McMahan은 Illinois 주의 Northwestern University로, 나머지는 각기 다른 중서부 대학으로 진학하게 된다. 모든 멤버들은, 특별히 Walford는 (비록 무대 위에서의 그는 드럼 뒤에 처박혀 있었지만) 더 열심히 새로운 작업을 해나갔으며, [Spiderland]의 기반을 착실히 쌓아 나갔다.

    "우리 작업은 물론 협업이었지만, 추진력은 바로 Britt에게서 나왔었다." McMahan은 말한다. "그가 결국 드럼을 치게 된 것은 정말 괜찮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정말로 놀라운 드러머임과 동시에 훌륭한 재능을 타고난 음악가이다. 그는 피아노 교육도 받았었다. 그는 자기 앞에 놓인 악기가 무엇이든지 간에 그걸 활용하여 풍부한 감정 표현을 할 줄 알았다. 그의 부모님들 또한 지하실에 드럼 세트를 가져다 두게 해 줄 정도로 쿨한 사람들이었기에, 그는 훌륭한 드러머가 될 수 있었다."

    예상대로, Walford 자신은 Slint내에서의 역할에 대해 굉장히 겸손한 태도를 보인다. "음, 그러니까... 나는 잘 모르겠는데... 나는 그냥, 음악을 만드는 게 너무 좋았다. 다른 멤버들도, 각자가, 서로 정말 잘 맞았고 창조적이었다. 나는 Slint가 그냥 4명이 동등하게 협력한 밴드라고 생각한다."

    1990년 여름방학, 모든 멤버가 대학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Walford의 부모님 집 지하실에서 [Spiderland]는 점차 형태를 갖추어가기 시작했다. Pajo는 Minutemen을 너무나도 좋아한 나머지 깔끔한 기타 사운드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McMahan의 설명처럼, "비록 [Spiderland]에 팽팽한 긴장감과 폭발하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 모두는 당시 꽤나 미니멀리스트 취향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이 시점이야말로, 바로 Slint 신화가 - 정신병, 멤버간 다툼, 은둔에 대한 소문들 - 시작되는 부분이며, [Breadcrumb Trail]은 이 신화를 훌륭하게 파헤친다. 즉 이 다음 부분은 스포일러이기에, 필자는 여러분에게 Lance Bangs의 다큐멘터리를 먼저 보길 권한다.


    http://youtu.be/CuqEpjcBfaU

    Slint가 [Spiderland]를 만들 무렵 큰 영향을 끼쳤을 것 같은 사건으로 많이들 꼽는 것은 McMahan이 큰 교통사고를 당해 거의 죽을 뻔했던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사고가 딱히 큰 의미를 가지거나 하지는 않았었다고 생각한다.

    "그 사고는 꽤나 이상한 일이었지만, 사고를 당했다는 일이 내 음악에 대한 관심사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다고 생각한다." McMahan은 더한다. "더 심한 사고가 났을 수도 있었다! 그 사고는 어느 정도 조급함을 일깨우기는 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아직도 나는 당시 사고가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계기가 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때 20, 21살 꼬맹이일 뿐이었다. 교통사고는 당시의 나에겐 상당히 비현실적인 일로 다가왔고, 그 정도의 영향밖에는 주지 못했다."

    [Spiderland]를 정말로 둘러싼 압박감은 Slint에게 주어진 녹음 기간이 단 1번의 주말밖에 없었다는 사실에서 나온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부분은 멤버들마다 다르게 느꼈던 것 같다. Walford는 기억한다: "딱히 급박한 느낌을 받진 않았었다. 그건 그냥 다른 세션들과 다를 게 없는 보통 녹음이었다. 엔지니어가 테잎 머신을 작동시키면 우리는 그냥 '좋아요, 시작합니다'라고 하는 그런 일상적인 녹음이었다. 지나친 압박감을 느끼진 못했었다."

    한편 McMahan은 다르게 느꼈다: "우리 모두는 [Spiderland] 작업에 대해 굉장히 들떠 있었기 때문에 녹음이 재미없거나 하진 않았었다. 하지만 내가 봤을 때 우리는 확실히 긴장해 있었고, 특별히 나는, 정말로 불안했었다. 이 불안감은 내 완벽주의적인 성향과 연주의 품질 및 소리를 전부 통제하려는 과욕에서 나왔었다. 가능한 작업 시간이 짧았던 것은 기본적으로는 행운이었다. 결과물의 질 또한 정말 운이 좋았던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자면, 당시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때는... 뭐가 되었던 간에 가망이 조금이라도 보이는 부분이 있으면 거기에 몇 개월이고 매달릴 정도였었다."

    가장 흥미로운 전설 중 하나는 McMahan이 'Good Morning, Captain'에서 "I MISS YOU"라고 소리지르는 부분을 열심히 연습하다가 육체적으로 진짜 아파져서 병원에 실려갔다는 것이다. McMahan은 이런 일이 있었는지를 기억하지 못했고, 따라서 이 이야기는 진실보다는 그저 얘깃거리로 남는 편이 나은 경우일 것이다. "우리는 정말로 진을 다 빼긴 했었다." 그는 기억한다. "스튜디오 계단에 처박혀 자다가 비몽사몽 상태로 일어났던 기억이 있다. 이게 내가 기억하는 전부다."

    [Breadcrumb Trail]에서 명확해 진 것은 McMahan이 [Spiderland] 녹음을 끝내고 조금 있다가 스스로가 병원에 누워있다는 걸 확인했던 일이 실제로 있었다는 것이다. 이 일에 대해서는 다큐멘터리에서도, 이 인터뷰에서도 더 설명된 것이 없다.

    McMahan은 [Spiderland]가 발매되기 전에 밴드를 떠났고, 곧 유럽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나머지 멤버들은 McMahan 없이는 밴드를 계속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수없이 많은 뮤지션들이 음악을 만들면서 음악만으로 먹고 사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것 처럼, McMahan이 밴드를 떠난 이유 또한 경제적인 문제였다:

    "나는 진짜로, 우리 멤버들 간의 호흡이 정말 잘 맞는다고 느꼈고 멤버들에게도 정말 많이 의지했었다. 특별히 우리는 친하기도 정말 친했었기에, 내 파트에 대한 책임감은 엄청났었다. [Spiderland]가 발매된 이후 몇몇 평론가들은 앨범에 대한 찬사를 보내왔고 우리는 그것을 정말 기쁘게 받아들였지만 - 그게 앨범 판매량이 증가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밴드를 그만둔다는 것은, 나는 살아가기 위해 일을 해야만 하고 이 때문에 밴드로서 활동하는 것에 투자할 시간이 줄어들게 될 것인데, 만약 그렇게 된다면 결코 내가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밴드에 기여를 할 수 없을 거라는 걸 스스로 깨달아 버려서 내린 결정이었다."

    만약 Languid And Flaccid 시절부터 [Spiderland] 발매까지 모든 것들을 하나로 묶어서 본다면, [Spiderland]는 누구의 콜렉션에도 오르지 못하는게 자연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Spiderland]는 그렇게 되었고, 어떻게 이렇게까지나 이상하고 복잡하고 모호한 앨범이 수많은 음악 팬들의 인생에 영향을 줄 수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단 하나밖에 없을 것이다:

    the people of Louisville are just fucking crazy.

    2015/01/28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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