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DiS Meets Slint: I'm Trying to Find My Way Home (Part 2)
    [...]/[slint] 2023. 3. 21. 09:16

    http://drownedinsound.com/in_depth/4147507-i-m-trying-to-find-my-way-home---dis-meets-slint-part-two


    http://youtu.be/k-T63_DK8hc

    I'm trying to find my way home. I’m sorry… I miss you…”
    – ‘Good Morning, Captain’ (Spiderland, 1991)

    Brian McMahan이 밴드를 떠난 것은 Britt Walford에게 큰 충격이었다. "정말로 충격적이었다." 그는 인정한다. "당시의 나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었다. 나는 그저 내가 하는 일을 했을 뿐이었고, 그래서 그가 갑작스레 탈퇴한 것은 정말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DiS: 그가 왜 밴드를 떠났는지, 당시에는 이해하고 있었나?

    Walford: 아니, 아니, 정말로 몰랐었다. 음, 정말로 큰 사건이었다.

    DiS: 이제는 왜 그랬는지 이해하나?

    Walford: 그렇다, 이제는 어떤 느낌이었는지, 왜 탈퇴했는지를 이해하고 있다.

    McMahan을 괴롭힌 경제적인 문제 - 집세도 못 낼 형편일 때 무슨 위대한 음악을 만들 수 있겠는가? - 는 Walford를 괴롭힌 문제는 아니었다. "나는 그런 종류의 문제를 겪고 있지는 않았었다." 그는 말한다. "나는 다른 생각 없이 그냥 앞으로 전진할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대조적이지만 부족한 부분을 서로 채워주는, 수줍고 걱정 많은 보컬과 괴짜에 속 편한 드러머의 관계를 보여 준다. 10대 시절부터의 친구로서 McMahan과 Walford는 거의 쌍둥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서로 닮았지만, Slint의 핵심인 둘은 밴드 멤버로서는 이렇게까지나 달랐고, 이런 차이점은 조용하게 떨리는 불안감이 단호하게 질주하는 창조력과 충돌하는 듯한 음악으로 나타나게 된다.

    Walford의 느긋한 태도는 - "내가 신경 쓰는 한 다 잘 풀릴 거야" - 오히려 밴드가 끝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게 만들기만 했다. "Slint 해체는 정말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는데, 나는 도대체 이제 뭘 해야 하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그는 말한다. "뭘 해야 할지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McMahan은 일상적인 삶으로 돌아갔다. "나는 여러가지 잡무들을 했었다." 그는 말한다. "레스토랑 부엌일도 했었고 Chicago에서 텔레마케터도 해 봤었다. 그러다가 Los Angeles로 이사를 갔고 거기에서도 비슷한 잡무들을 하고 살았다. 결국 나는 - Slint 음악과 [Spiderland]를 듣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때문인 것 같은데 - 경제적으로 음악을 해서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에 다다를 수 있었다."

    사실 Slint의 해체 후 딱히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McMahan과 Walford와 Todd Brashear는 Palace Brothers의 첫 앨범에서 그들의 오랜 친구인 Will Oldham과 함께 연주를 했었다. McMahan은 나중에 그의 밴드인 The For Carnation을 만들었으며, Walford와 David Pajo가 거기에 기여를 했다.

    음악계에서 가장 꾸준히 활동해 온 것은 Pajo였으며, 그는 Aerial M, M, Papa M 이라는 이름으로 음반들을 내 왔다. 그는 Tortoise의 멤버였으며 Billy Corgan의 Smashing Pumkins 이후 활동 중 하나인 Zwan의 멤버이기도 했다 (웃기는 부분은, Lance Bangs는 [Breadcrumb Trail]에서 Zwan에 대한 언급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지난 몇 년 간의 Interpol Yeah Yeah Yeahs의 공연을 보았다면, 그곳에 Pajo가 무대 옆 쪽에 쭈그려 앉아 Carlos Dengler를 대신하거나 Nick Zinner를 도와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반면, Walford는 더 특이한 길을 걸었는데, 늙은 블루스 뮤지션들 사이에서 드럼을 치거나 펑크 록 밴드 Evergreen에도 있었으며, 성인용 케이크를 만드는 제과점의 근무 교대시간에 James Murphy의 소파에서 자기도 하고 그랬다. 그는 분명히 음악계에 발을 담그고 있었지만, 언제나 제대로 하지 않았으며, [Spiderland]가 유명해져도 늘 그랬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Slint의 재결합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당연하지! 언제나 그랬었다. 나는 정말로, 진심으로 몇 년째 재결합을 기다려 오고 있다."


    http://youtu.be/6yEgcb167k4

    Walford에게 Slint는 언제나 특별한 것이었다: [Spiderland]를 만들기 전부터 그는 Slint 음악의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했다. 예를 들자면,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 아니지만, Walford는 [Tweez]를 만들고 난 후 곧이어 The Breeders의 첫 앨범 [Pod]에서 드럼을 쳤으며, 이 때 자신의 이름을 'Shannon Doughton'이라고 바꿔서 올렸었다.

    "이봐, 내가 왜 그때 그랬었냐면 말이야,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 그는 설명하려고 한다. "그게 이상주의적인 생각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 당시의 나는 내가 음악에 대해 가진 생각에 푹 빠져 있었다. 예를 들자면, Slint는 한번도 프로모션이라는 걸 해 본 적이 없었다. 우리는 프로모션이 멍청한 짓이라고 생각했었다. 우리는 포스터조차도 만들지 않았었는데 그게 멍청한 짓 이라거나 전혀 중요치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었다."

    "내 본명을 Breeders 앨범에 올리지 않은 것은 Slint가 밴드와 관계없는 활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었고, 음악은 그 자체만으로 존재해야 하므로 밴드에 관계없는 활동은 생각조차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와서는 전부다 치기어린 생각이었던 것 같지만."

    물론 치기어린 생각일 순 있지만, 이런 태도야말로 [Spiderland]의 유명세를 그토록 특이하게 만든 것이다. 필자는 1년 전 쯤에 Leeds에서 음반가게를 돌아다니다 [Spiderland]를 처음 들어보았고, 친구가 옆에서 한 장을 집어들고는 "Rob, 이건 꼭 사야돼." 라고 말했주었었다. 그 친구 또한 대학교 친구가 무심코 틀어 둔 것을 들어 봄으로써 Slint를 접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대학교 친구는 Slint를 접한 이유가 단지 그가 푹 빠져 있던 밴드가 자기들 블로그에 Slint를 언급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Slint를 라디오에서 들어본 적이 한 번도 없으며, MTV에서 본 적도 없고, [NME]에 기사 하나라도 나와 있는 걸 본 적이 없었다. 다시 말해서, 이것이야말로 Slint가 원했던 바로 그런 방식이었다.

    [Spiderland]의 판매량은 90년대를 거치며 쭉 증가했으며, 록 음악에 대한 실질적인 영향력 또한 스멀스멀 기어나오기 시작했다. [Spiderland]가 얼마나 Mogwai를 비롯한 수많은 포스트-록 밴드들의 자양분이 되었는지를 쉽게 눈치챌 수 있으며, 'Good Morning, Captain'의 마지막 부분이 90년대 Emo와 00년대 Screamo 장르의 시초 중 하나가 되었는지를 알아차릴 수도 있다 - McMahan의 "I MISS YOU" 부분은 Rites of Spring이나 Sunny Day Real Estate에 비견될 만한 중요한 지점이리라.

    [Spiderland]가 유명해지는 것에 대해 가장 놀라는 사람은 Slint 자신들이다. "[Spiderland]가 마치 꾸준히 그리고 정기적으로 계속 팔리는 것 같은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정말로 신기했다." Walford는 말한다. "처음에 나는 우리가 [Spiderland]를 팔아서 돈이라는 것을 벌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에 놀랐었던 것 같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우와, 사람들이 입소문을 타고 계속 [Spiderland]를 사잖아'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정말로 멋진 일이었고 나는, 그러니까, 이런 일들 때문에 행복했다."

    그렇지만 이런 입소문 판매로는 무언가가 부족했다: 00년대 중반까지도, Walford는 스스로가 Slint의 해체를 아직 극복하지 못했다고 인정하곤 했다. 그러던 와중에 Barry Hogan이 나타났다.

    2004년, Walford와 McMahan, 그리고 Pajo를 설득하여 다음해에 Camber Sands에서 있을 All Tomorrow's Parties 페스티벌에서 Slint가 공연을 하게 만든 것이 바로 Hogan이었다. Walford에게 이런 재결성 공연은 꿈이 이루어진 것만 같게 느껴졌다: "나는 언제나 투어를 돌거나 그런 것들을 하고 싶었으며 내겐 Slint보다 더 좋은 밴드가 없었기 때문에 공연을 다시 해본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었다."

    McMahan은 설득하기에 호락호락하지 않았지만, 어찌 되었든 Hogan의 열렬한 팬심에 굴복하고 말았다. "그는 마치 대자연의 거대한 힘 같았다." McMahan은 말한다. "그의 에너지와 열정은 언제나 폭발하고 있었고 Slint의 재결성 공연은 불같은 열정의 목표 중 하나였다. 그리고, Britt은 이제 막 아빠가 된 참이었으며 David는 이제 막 아내와 가정을 꾸리고 있는 중이었기에, 그러니까... 우리는 재결성 공연을 통해 수입을 어느 정도 올릴 수 있다면 각자에게 좋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아직까지도 서로가 같이 있는 것이 정말 즐거웠기에, 결국 이 제안을 수락하게 되었다.

    DiS: 팬들이 잘 참여해 주었나?

    Brian McMahan: 우리도 잘 모르겠다! 우리는 그 전까지 단 한번도 큰 규모의 관중 앞에서 공연을 해 본 적이 없었고, 팬 메일 같은 것도 받아보긴 했지만 그 때는 사람들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같은 건 잘 하지도 않았다. LastFM 같은 것도 없었고 따라서 우리는 도대체 누가 우리 공연을 보고 싶어할지를 아예 알 수가 없었다. Hogan은 그저 믿음을 가지고 우리에게 ATP 무대의 기회를 준 것이었다. 그래서 2005년의 우리는 대체 누가 관중석에 들어올지 전혀 몰랐다.

    [Breadcrumb Trail]에서 밝혀진 사실은 Slint가 사실 1992년과 1994년에 2번의 재결성 시도를 했었지만 잘 안 되었다는 것이다. "93년에는 뭔가 되려는 듯한 느낌이 분명히 있었다." McMahan은 기억한다. "하지만 당시의 나에겐, 재결성을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지나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었다. 내가 그냥 그렇게 받아들인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전과 같은 열정과 집중은 사라져버린 것 같았다."

    "우리가 전화상으로 대화할 때나 휴일에 모여서 있을 때 우리에겐 '이봐, 그걸(재결성) 정말 하고 싶다면, 그걸 실제로 할 수 있어야만 한다고.' 같은 긴장감이 맴돌았었다. 이는 헌신의 문제이기도 했는데, 무대에서는 실제로 '일'을 하는 사람의 태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즐거움'이 사라져갔으며, 결국 재결성을 포기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2005년이 되자, 시대는 Slint가 [Spiderland]의 보상을 안정적으로 거두어 갈 수 있도록 바뀌었다. 하지만 Slint에게 걱정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는 [Spiderland]가 팔리고 있다는 것은 알았다." McMahan은 말한다. "하지만 재결성 공연은, 비록 단 1번만 하는 것이었지만, 어쨌든 걱정이 되긴 했다. 우리는 공연을 잘 하고 싶었지만 몇 년 동안이나 서로 같이 연주해 본 적이 없었고, 나는 음악 자체를 아예 지난 몇 년 간 해 본 적이 없었다."

    Walford마저도 걱정스러웠었다. "2005년 처음 공연을 할 때 당시는 정말 힘든 순간이었다." 그는 인정한다. "우리는 너무 신경이 곤두서 있었고,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 이런 말을 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 생각에 나는 당시 공연장에서 David의 손이 너무 떨려서 기타줄을 건드리는 소리가 나는 걸 들었던 것 같다."

    "정말 힘들었었다." McMahan은 동의한다. "하지만 정말 멋진 일이기도 했고, 우리가 연주하는 곡들을 모두가 알고 있는 건 정말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야말로 어쩔 줄 모를 정도였다."

    희한하게도, 당시 공연에서 가장 난처함을 겪었던 사람은 Walford 였으며, 그는 드럼 세트 뒤에 앉아서 지금 밴드의 소리를 어떻게 더 좋게 할 수 있을지 도무지 방안을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연주가 끝났을 때 나는 모든 것이 완전히 실패였다고 이미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기억한다. "이미 정말 큰 충격을 받았었고 스스로 이 실패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는 우리가 완전 망했다고 생각했었다."

    다행스럽게도, Walford는 어떻게든 다시 확신을 갖게 되었고, Slint는 2007년 ATP vs The Fans에서 두 번째 재결성 공연을 하게 되었으며, 세 번째로 이번 11월의 ATP holiday camp에서도 공연을 하게 되었다. 그들은 유럽에도 가서 5월에 Primavera Sound (스페인), 6월에 Optimus Primavera (포르투갈) 에서도 공연을 할 것이다.

    새로운 앨범에 대해서 말하자면, 금방 나타날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는 편이 좋을 것이다. Slint가 재결성한 이후 만들어진 신곡은 단 한 개 뿐이다 - 'King's Approach'는 2007년 공연들 중 일부에서 연주되었다 - 물론 Walford에겐 아이디어가 넘쳐날지도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없다." 그는 Slint의 신곡에 대한 질문에 대답한다. "나는 그저 음악적으로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를 생각하는 중이다. 물론 새로운 곡을 정말 만들고 싶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McMahan 또한 주저하고 있다:

    "새로운 앨범이 상상도 못할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우리에게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3번에 걸친 공연들은 독립적인 이벤트라고 생각하며, 나는 아직도 우리의 새 앨범을 기대하는 사람이 그렇게까지 많은지를 잘 모르겠다. [Spiderland]가 그만큼 인정을 받고 전곡을 연주할 수 있는 기회들을 받았던 것은 정말로 기쁘게 생각한다. 만약에 사람들이 우리를 충분히 괴롭히고 귀찮게 군다면 우리는 새 앨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으로선 그들은 당시에 놓쳤던 것들을 다시 한 번 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는 것 같다. "내가 말했듯이," Walford는 Kentucky 억양으로 말한다. "나는 음악을 너무나도 좋아하며, 공연을 하는것도 정말 좋아한다."

    He's home.


    http://youtu.be/OVuGGeoReLc

     

    2015/01/28 12:53

    '[...] > [slint]' 카테고리의 다른 글

    DiS Meets Slint: The People of Louisville Are Crazy (Part 1)  (0) 2023.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