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warнякання
    [...]/[warнякання] 2024. 3. 31. 02:23



    https://youtu.be/nG_Oe3r85g0
    "Трансляцiя"


    *********************************************************************************************


    https://suspilne.media/culture/245925-it-duty-live-an-interview-anton-sliepakov-andrii-sokolov/

    당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당신의 의무이다. 안톤 슬레파코프 그리고 안드리 소콜로프와의 인터뷰

    마리야 블린듀크
    [Суспільне]
    2022년 6월 2일


    밴드 ВГНВЖ, 이전에 Вагоновожатые로 알려진 밴드의 멤버들 중 두 명 안톤 슬레파코프(Антон Слєпаков)와 안드리 소콜로프(Андрій Соколов)는 올 3월 말에 [warнякання]라는 이름의 앨범(편집주: 영어 단어 '전쟁'(war)과 '항의', '불평'을 뜻하는 우크라이나 접미사 "някання"의 합성어) 에서 첫 싱글을 발매하게 되었습니다. [warнякання]는 ВГНВЖ와는 멤버를 공유한다는 부분만이 연결되어 있는, 새로운 프로젝트이며, 일종의 '전쟁 다이어리'입니다. 안톤 슬레파코프는 러시아의 본격적 침공 사태에 대한 스스로의 성찰을 가사의 형태로 기록하고 있으며, 안드리 소콜로프는 슬레파코프의 시에 음악을 더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밴드캠프 판매에서 발생하는 모든 수익은 안톤과 안드리에 의해 우크라이나 자원봉사자들과 군인들에게 전달되고 있습니다. 둘은 이미 키이우, 드니프로, 르비우 등지에서 여러 공연을 진행하였으며, 이 공연들에서도 우크라이나 군을 지원하기 위한 모금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수스필네](Суспільне)의 저널리스트 마리야 블린듀크(Марія Бліндюк)는 안톤과 안드리를 만나서 자원봉사 활동, 키이우에 머무르기로 한 결정, 지난 3개월간 벌어졌던 일들, 그리고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마리야 블린듀크> 지난 2월 24일(역주: 러시아의 본격적인 침공이 시작되었던 날)의 시점으로부터 몇 개월 전부터 이미, 러시아가 보다 더 광범위한 침략을 계획하고 있다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그 때 어떤 대응 계획을 준비하고 있었습니까?

    안톤 슬레파코프> 특별한 계획은 없었지만, 주기적으로 논의를 하긴 했었습니다. 전쟁이 발발하기 대략 1주일 전, 안드리와 저는 공원에서 만나 커피 한 잔 마시면서 대화했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 지에 대해, 어떤 식으로 일어날지에 대해 이야기했었죠. 러시아인들도 바보가 아니기에 실제로 그런 침공을 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비상용 가방을 전혀 챙겨두지 않았었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안드리 소콜로프> 저는, 저는 계획을 가지고 있긴 했습니다.

    마리야 블린듀크> 언제 짐을 챙겼었죠?

    안드리 소콜로프> 첫 미사일들이 발사되었을 때였죠. 저는 2월 22일 저녁에 무거운 마음으로 우크라이나에 돌아왔었습니다. 그 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옥이 발생하고 있다고 느꼈었죠. 첫 폭발이 일어나기도 전에 이미 무언가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마리야 블린듀크> 계획과, 당신의 실제 행동이 어느 정도나 일치했었나요?

    안드리 소콜로프> 저는 도시(키이우)가 점령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기본적으로 2가지 선택지가 있었죠: 저항하거나, 아니면 점령군의 규칙을 따르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따르거나. 물론 그렇게 점령당할 도시는 미리 떠나야 한다는 의견도 있기는 했습니다. 저는 첫 미사일이 근처를 타격하기 전에 미리 계획을 세웠었습니다. 그러다가, 물건을 다 정리하고 앉아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아, 이제 난민이 되겠구나." 저는 이 생각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 곳에 남기로 결정했던 것입니다.
     모든 가능한 경우를 계산해 보고, 점령군들이 체르노빌처럼 위험한 지대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다 보면, 사람들이 말 그대로 그 어떤 것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곳에는 그 어떤 신성한 것도, 그 어떤 합리적인 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키이우에서 '그들'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상상을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마침내, 저는 키이우근교에서 그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도시를 떠난다는 선택지는 대량 살상 무기, 화학, 방사능, 핵무기 등등이 사용되는 경우에만 가능한 선택지로 저에게는 보였습니다.

    마리야 블린듀크> 그리고 안톤, 당신은 처음부터 키이우에 남아있기로 결정했었나요?

    안톤 슬레파코프> 네, 그렇습니다, 처음부터 바로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었죠. 여러 기자들이 만든 다양한 자료들과 질문들이 있었는데, 그 것들 중 하나는 키이우 거주자들에게 누가 이 도시에 남을 것인지에 대한 자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자료에서 우리는 그 어디로도 가지 않을 거라고 모두에게 확신을 주는 '영웅'들 중 한명이었습니다. 우리는 패닉을 퍼뜨리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무역, 경제 활동을 방해하지 않을 것이며, 메밀, 성냥, 화장지를 사재기하지도 않을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2월 22일, 유명한 라디오 채널 [NPR]과의 인터뷰가 있었는데, 여기서 저는 우크라이나 음악가들이 어째서 러시아 음악 시장을 거부하게 되었는지, 어째서 러시아어 컨텐츠에 반대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특히 ВГНВЖ에 관련하여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렇게 많은 것들을 약속했던 것은 또 아니었습니다. 저는 애초에 따로 갈 곳도 없었고, 그렇게 피난을 가려는 생각도 없었습니다. 또한 키이우 바깥으로 도피하는 걸 단호하게 거부했던 부모님을 돌볼 책임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벌어지는 상황에 따라 딸들과 가족들을 피난보내고 상황에 대처해야 할 '임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저는 남성들은 출국이 허용되지 않을 거라는 걸, 그리고 상황이 급박해져서 가능한 한 최후의 징집 동원까지 일어나게 된다면, 군 복무에 부적합한 저마저 군대에 동원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대서 저는 키이우에 남기로 결정을 내렸고, 이 도시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피부로 직접 느끼자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일이 우리에게 이미 일어나고 있다면, 우리는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을 직접 최대한으로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마리야 블린듀크> 2월 24일 이후 처음으로 음악을 들을 준비가 되었던 때를 기억합니까?

    안톤 슬레파코프> 대략 1주일 정도가 지난 후였습니다. 그 동안 아무것도 듣지 않고 있었는데, 목구멍에 뭔가 덩어리 하나가 걸린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제가 본 모든 사람들이 전부 끔찍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죠. 단지 음악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 책, 영화, TV 쇼 - 모든 것이 없었습니다. 저는 제가 이미 죽은 사람인 것이 아닐까 하는 느낌을 받았었습니다. 마치 여기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을 바깥에서 관찰하는 사람이 된 것만 같았어요. 비유나 은유가 아니라, 정말로.
     1주일 정도가 지난 후, 저는 부모님을 뵈러 가면서 지하철을 타게 되었는데, 그 때 지하철은 1시간 30분마다 한 번 정도 운행하고 있었으며, 이제 막 저번 열차가 떠난 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방에서 헤드폰을 꺼내고 아이팟에서 가장 슬픈 음악을 찾아 틀었습니다. Morphine이었는데,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라이브 버전이었죠. 거슬리는 느낌이 들지 않는 배경음악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이미 음악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순간 저는 스스로를 평상시로 되돌리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라는 사람은 음악을 많이 듣는 것에 이미 익숙해져 있는 사람입니다 - 이게 저의 방어 수단이고, 저의 초능력인 것입니다.
     안드리는 상당히 오랫동안 음악을 듣지 않았습니다. 2월 24일 이후 저를 처음으로 보러 왔을 때, 제가 음악을 틀었더니 깜짝 놀라했었죠.

    안드리 소콜로프> 네, 대략 3주 전부터 의식적으로, 그리고 자발적으로 음악을 다시 듣기 시작했습니다.
     자원봉사 활동을 하면서 듣기도 했었습니다. 전쟁이 발발한 지 2일이 되었던 날 부터 저는 정보전에서의 저항을 위한 디자인들을 만들기 시작했고, 영상을 제작하는 걸 돕기도 했는데, 이 영상에 음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듣게 되었지만, 이건 일이었죠.
     일부러, 의도적으로 음악을 들었던 것은 밴드의 드러머 스타스(Станислав Иващенко)가 저에게 딱 맞을 음악이라며 Awe Kid 앨범을 보내주었을 때였습니다. 3일 만에 과감하게 결단을 내려 들어봤더니, 내가 그동안 꿈꾸어 온 바로 그 음악을 이 유럽 친구가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죠. 차분한 전자음향에 부서져 있는 리듬들 - 제가 음악에서 좋아하는 모든 것들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심지어 Awe Kid의 첫 앨범이기도 했었습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알려지지 않았던 음악가였어요.
     그리고 Bonobo의 라이브 공연 2개도 있었습니다: 하나는 NPR Tiny Desk에서, 다른 하나는 KEXP에서. 한 1달 전쯤에 안톤이 보내줬었어요. Moderat의 새 앨범도.

    안톤 슬레파코프> 그리고, 물론, 음악은 주변에서 흘러나왔습니다. 어디든지 가게 된다면, 뉴스가 흘러나오고 "바이락타르"(역주: "Байракта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우크라이나 군인 Тарас Боровок이 만든 애국주의적 노래)도 흘러나오게 되니까요. [СЛУХ]와 [Лірум]이 그간 발매된 모든 곡들을 모아서 모음집을 만들었던 것도 기억합니다. 몇몇은 옛 곡을 가져와 일부를 바꾸기도 했었습니다. 누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Koloah도 앨범 작업을 시작했었죠.
     언제나 그랬듯이, 지금도 음악은 정말 다양한 것 같습니다. 수천 가지의 외부 요소들이 영향을 끼치더라도 음악가라는 존재는 마치 지하철처럼 자신만의 방향으로 달려가는 것 같습니다. 창작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조금은 자기중심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가 그렇다는 것도 알고 있구요. 물론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10번을 물어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기 갈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안드리 소콜로프> 그렇습니다. 딱히 표현하지는 않고 속으로만 생각하던 게 하나 있는데, 뉴스가 하나 뜨자마자 곧바로 사람들이 주변에 널려 있던 모든 것들을 발매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 정도로 모든 것을 깊이, 심오하게 다시 생각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가 틀린 것일수도 있습니다. 이성보다는 감정의 영역에 가까운 생각입니다.

    마리야 블린듀크> [Don't take fake]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사람들이 ВГНВЖ의 음악을 어떻게 들을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말을 했었습니다. 어째서인가요?

    안톤 슬레파코프> 그냥 제 감정이 담긴 말이었습니다. 저는 제 음악에 대해 청중들과는 다른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내면으로부터 이미 알 수 있으며, 마이크와 모니터를 통해서 인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인터뷰마다 제 감정은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전쟁 발발 후 1주일 동안은 한 가지 감정을 느꼈지만, 한 달 정도가 지나자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우리 모두 익숙해지게 되었고, 길거리에서 군용 배낭이라던가 군인 자체를 보지만 않는다면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스케이트 보드라던가 전동 스쿠터를 타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전쟁이라는 건 아예 없는 것 같기만 합니다. 스마트폰 앱에서 공습 경보가 울릴 때가 있지만, 사소한 것일 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ВГНВЖ 음악이, 특히 운전할 때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들 보내 왔습니다. 전쟁 초창기에 교통 체증이 심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도시를 떠나는 데에 엄청나게 오랜 시간이 걸렸었습니다. 시간당 1킬로미터 정도나 전진할 수 있을 때라면 [Вогнепальне](편집주: ВГНВЖ의 마지막 앨범) 같은 음악을 듣는 것도 적절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마리야 블린듀크> ВГНВЖ 음악에는 더 많은 '분노'가 깃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반면에 [warнякання]의 음악에는 그런 분노의 감정이 담겨 있지 않습니다. 그런 분노를 느끼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이번에는 그런 분노를 표출하고 싶지 않아서인지 알 수 있을까요?

    안톤 슬레파코프> 어쩌면요, ВГНВЖ 작업을 할 때에는 먼저 음악적 아이디어, 데모, 비트를 구상해 놓고 진행하는 방식이긴 합니다. 그리고 그 아이디어들을 진행시키면서 이게 무엇에 대한 음악인지를 생각하기 시작하는 편입니다. [warнякання]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warнякання]에서는 보통 제가 먼저 가사를 쓰고, 안드리와 제가 함께 어떤 종류의 음악이 이 가사에 어울릴지를 생각합니다. '낭송'에 더 가까운 음악인 것입니다. 그 어떤 리듬과도 함께 어울릴 수 있을 것입니다. 각각의 조각들을 생각할 때, 마침표라던가 음성의 융합 등을 어떻게 넣어야 가장 멋지게 들리게 될 지에 대한 고민에 있어 까다로운 선택이, 여기에서는 없습니다. 가끔은 데모 2개와 시 2개를 가지고 서로 바꾸기도 합니다. 제법 아이러니한 측면이 있죠.

    마리야 블린듀크> 전반적으로 어떻게 작업하는 건가요? 안드리는 음악을 듣지 못하고 있었다고 말했었는데, 만들 수는 있는 것입니까?

    안드리 소콜로프> [warнякання]에 들어간 음악의 대부분은 이미 이전에 만들었던, 심지어 몇 년 전에 이미 제 공연에서도 연주한 적이 있던 것들도 포함된 음악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하나의 앨범으로 모은 것에 가까웠습니다.

    안톤 슬레파코프> 저는 전혀 몰랐습니다. 안드리는 개인 프로젝트 - walakos도 진행하고 있는데, 가끔 그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저에게 보여주기는 하지만 저는 전부 기억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가끔은 뭔가를 알아보기도 합니다. 게다가 안드리는 종종 장비와 설정을 변경하며, 안드리가 연주하는 장비가 달라지면 나오는 음향도 달라지게 됩니다.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이, 바로 안드리가 [warнякання] 프로젝트를 시작해 보자고 권유했던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전쟁의 첫 주에 저는 첫 번째 가사를 써 내려갔고, 그 후 3~4일 정도가 지난 후 두 번째 가사를 썼었습니다. 일종의 감정 표현으로써, 첫 번째 가사를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렸었죠. 안드리가 그 가사를 보았고, 이 가사를 가지고 뭐든지 해서 녹음을 해야 한다고 말해 왔었습니다.

    안드리 소콜로프> 저는 안톤의 가사를 페이스북에 올라온 일기 형식으로 처음 접했지만, 그걸 보고 바로 "[warнякання]를 해 보자"라는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전쟁이란 예측할 수 없는 것이고, 무언가를 기록해 두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안톤은 음악을 통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고, 저 또한 음악이 저의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하지는 않다고 치더라도 정말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당신의 의무입니다. 그 때, 저는 이 모든 것을 녹음해 기록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었습니다.

    안톤 슬레파코프> 네, 저희는 어떻게 될지가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다가 각각의 곡들을 싱글로 발매할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익금으로 친구들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었죠. 이 시기는 모두가 자신의 재정적 무력감을 절실하게 느끼는 시기입니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은, 음악가는 공연을 해서 먹고 산다는 것이지만, 지금 공연이란 건 전부 취소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스트리밍을 통해 돈을 조금 벌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주변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정도는 되지 못합니다.
     뉴스피드에서 친한 친구들의 절실한 요청을 보는 건, 육체적으로 정말 힘든 일입니다. 일반적으로는 당장 내일 먹을 것이 없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진 않지 않나요. 하지만 우리는 지금 그러한 중요한 문제들을 해결해야만 합니다. 사람들은 죽어가고, 싸우며, 가끔은 무기나 보호 없이도 그러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은 내 뒷편의 말도 안 되는 문제들보다는 훨씬 더 중요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먹혔습니다. 첫 싱글을 발매하자 엄청난 지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그렇게까지 쓸모없지는 않다는 사실에 상당한 영감을 받았습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첫 싱글 발매 첫 주에 저는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제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죄책감이 아니라, 누군가는 총을 들고 싸우고 있는데 저는 여기에 앉아서 노래를 만들고 있다는 죄책감이었죠. 그러다가 저는 이 음악 또한 정보의 측면, 치료의 측면, 다큐멘터리의 측면에서 일종의 무기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마리야 블린듀크> 사람들이 어떤 음악을 더 많이 듣고 퍼뜨리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warнякання] 인지 ВГНВЖ 인지? 확인하기 힘든 부분인가요?

    안톤 슬레파코프> 만약 같은 년도 혹은 같은 달에 발매되었었다면 앨범의 호불호를 직접 비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ВГНВЖ에 분노라던가 공격적인 비트가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warнякання]는 더 부드러운 음악이며, 따라서 직접적으로 비교하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연주자와 작사가가 같은 음악들이지만 말이죠. 하지만 표현과 인식의 측면에서 둘은 서로 다른 프로젝트입니다. [warнякання]는 보다 더 깊게 생각하고 있는 앨범이며, 공격적인 드럼의 폭격에 위협을 당할 일도 전혀 없는 음악입니다. 스타스(편집주: ВГНВЖ 드러머)가 연주를 시작한다면 비행기라던가 로켓이 주변을 날아다니는 게 아닌지 착각하고는 공연장의 사람들 중 절반이 바닥에 엎드릴 겁니다.

    마리야 블린듀크> ВГНВЖ로 새 음악을 해 보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나요?

    안톤 슬레파코프> 아직은 없습니다. 멤버 모두 우크라이나 각지에, 서로 다른 곳에 흩어져 있습니다. 스타스는 새 음악을 작업하고 있으며 솔로 프로젝트로 조만간 발매할 예정입니다. 발렌틴(편집주: ВГНВЖ 기타리스트)도 음악을 만들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저 또한 다음에 무엇을 써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전쟁이 없었더라면 올 봄에 모여서 새 앨범에 대한 아이디어를 논의했을 겁니다. 키이우 바깥으로 나가서 음악에만 집중하고 싶었죠. 구체적인 방향도 있었지만, 전쟁과 여러 일들 이후에는 그 방향도 무의미해진 것 같습니다. 우리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책을 써 오고, 영화를 만들어 왔지만, 이 모든 것들이 어쩐지 작아져 버렸습니다 - 별로 부럽지도 않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몇 가지 노트를 적어 두긴 했지만, 무엇보다도 모여서 무언가를 할 시간 자체가 없습니다.
     현재는 공연을 위한 협상을 진행 중입니다. 모든 것이 잘 된다면 우크라이나를 잠시 떠나 해외 공연을 돌며 모금 활동을 하는 것에 필요한 서류를 곧 전부 준비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몇몇 국가에서는 이미 초대를 받기도 했으며, 가능하다면 오는 6월 즈음에 공연을 돌고자 합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앞으로 1주일간의 계획이라도 세울 수 있다면 정말 좋은 일인 상황입니다.

    마리야 블린듀크> 이 전쟁에서 승리하게 된다면, 그 이후에도 [warнякання]로 공연을 계속할 수 있을 거라고, 이 정도의 성찰과 현실로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지요?

    안톤 슬레파코프> 저희는 저희의 프로젝트 관련해서 완전히 다른 계획을 세웠었었고, 그 후 모든 것이 잘못되는 방향으로 돌아갔었습니다.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 지는 불분명한 것입니다. 누군가 저에게 승리냐 [warнякання]이냐라고 묻는다면 물론 승리가 첫번째일 것이고, 그 다음은 저희가 알아서 생각할 것입니다.
     어떻게 될 지 한번 보도록 합시다. 저는 앨범을 녹음하고 싶습니다. [warнякання]는 저희가 피라미드처럼 쌓아 올릴 앨범들 중 첫 번째 앨범입니다. 최종점이 어디가 될 것인지는 저희도 모르겠습니다. 음악 활동의 초반부부터 제가 만들어 온 앨범들은 특정한 컨셉으로부터 출발했었고, 보통은 출발하자마자 앨범의 이름이 정해졌었습니다.

    마리야 블린듀크> 이제 많은 사람들이 '피로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며, 초창기의 열정이 많이 사그라들었다고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당신들은 어떻게 느낍니까? 계속해서 곡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안톤 슬레파코프> 모든 것은 영감에 따라 달려 있습니다. 영화 촬영처럼 스토리보드와 계획이 있어 계획대로 흘러가는 그런 것은 아닙니다.
     공연 제의가 들어오면 거기에 따라 동기를 부여받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Зграї"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공연을 하게 되었을 때, 준비를 하다 보니 공연에 사용할 만한 곡이 충분치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었습니다. 적어도 곡 3개는 더 있어야 했죠. 안드리에게 가사를 곧 써서 보내주겠다고 말했었습니다, 새 음악을 만들어야만 했으니까요. 안드리가 어디에서 영감을 받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저의 경우는, 여러 이벤트들과 생각들로부터 영감을 받습니다.

    안드리 소콜로프> 어제 저희는 저희의 자원봉사 활동의 2번째 단계를 위한 회의를 가졌었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사람들이 말 그대로 200%의 힘으로 일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회의는 뭐랄까 '공포'로 변해버린 회의였습니다 - 그 누구도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고, 우리 중 절반은 이미 완전히 지쳐버렸었으며, 나머지 절반은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은 전부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에 대해 여자친구와 함께 논의해 보았고, 공통된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영감을 받았다면 영감을 가지고 작업하면 되고, 영감이 없다면 없는 채로 작업하면 된다.
     저는 현재 매일마다 해야 하는 일의 목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곡 하나를 만들어야 한다면, 자리에 앉아서 곡 하나를 만들면 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작업을 시작하면 영감을 받는 편입니다.

    안톤 슬레파코프> 저도 그렇습니다. 르비우 공연 날짜가 발표된다면(편집주: 이 인터뷰는 5월 29일 르비우 공연 이전에 진행되었습니다), 저는 바로 앉아서 가사 2~3개를 만들 것입니다.
     공연에 적응하느라 약간 정신이 없는 상태였기에, 안드리가 몇 가지 아이디어를 이미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서야 다른 참여자들을 포함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첫 곡을 만들었을 때에도 이미 Ragapop의 안톤 오체레탸니(Антон Очеретяний)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기도 했었습니다. 전자음악가들처럼 우리 또한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조각내어 샘플로써 사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마리야 블린듀크> 지난 몇 달간 제가 얼마나 많은 음악들을 놓치고 있었는지를 깨닫고 있습니다.

    안톤 슬레파코프> 정말 많은 것들이 공개되었습니다. 새로운 것을 즐기는 사람들이 부럽습니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뒤로 미뤄졌었던 것들을 조금씩 듣기 시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잠시 잊어버렸던 커피같은 것이죠.

    안드리 소콜로프> 제 삶은 이제 최대한의 효율이라는 원칙에 따라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듣는다던가, 읽는다던가, 보는 것을 거의 하지 않고 있습니다. 후방에 계속 머무르게 된다면 여기서도 최선을 다 하려 노력하겠지만, 여전히, 저는 너무 조금만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있습니다.

    안톤 슬레파코프> 예전에는 음악 잡지를 사서 자주 읽곤 했는데, 이제는 종이 잡지들이 전부 사라지고 온라인 매체가 되어 버렸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Потоп]이야말로 이 나라에서 거의 유일한 음악 잡지인 것 같은데 - 마침내 하나 주문했습니다. "Нова пошта" 지점에 가서 받아 와 읽어 볼 예정입니다.



    https://youtu.be/oR6ZH1mdC6k
    "нік кейв"


    *********************************************************************************************



    안톤 슬레파코프(Антон Слєпаков) / 안드리 소콜로프(Андрій Соколов)


    밴드캠프: https://nesmontirovanniy.bandcamp.com/album/war-2023

    '[...] > [warнякання]' 카테고리의 다른 글

    мурахи  (0) 2024.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