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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셔: 그래픽 아티스트로 살아가는 것에 대하여[...] 2023. 3. 30. 01:44
M. C. Escher : On Being a Graphic Artist
1953년 11월 16일, Alkmaar
원본: http://web.archive.org/web/20030519205127/http://slesse.ca/cg/Escher.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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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공유한다"는 행위는 인간의 본성이며, 나는 모든 "예술가(artist)"들이 근본적으로 원하는 것은 그 무엇도 아닌 바로 자신이 '말하여야만 하는 것들'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라고 믿는다. 가끔 몇몇 화가들이 "자기 자신을 위해서" 그림을 그린다는 말을 하는 걸 듣게 될 때가 있는데, 만약 그들이 무인도에 혼자 갇히게 된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릴 만한 그림이 하나도 없어지리라고 생각한다. 모든 예술 형식, 음악이던, 문학이던, 시각적인 예술이던지 간에, 모든 예술의 가장 주요한 목적은 바로 바깥 세계에 무엇인가를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개인적인 생각, 훌륭한 발상, 내면의 감정들을 타인의 감각이 인지할 수 있는 형태로, 제작자의 의도를 파악함에 있어 그 어떠한 불확실성도 없는 명확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 말이다. 예술가의 이상이란 자기 자신을 작품에 완벽한 투명함으로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술가의 재능은 단지 무엇보다도 더 아름답고 감동적인 이미지를 자신의 머릿속에 그려낼 수 있는 사람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생각'의 질 뿐만이 아니라, 타인에게 스스로를 왜곡되지 않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도 있는 것이다. 사고(思考)와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간의, 꿈과 현실간의 투쟁이 타협이나 유사(類似) 이상의 결과물을 낳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하므로 우리는 보통 다수의 대중에게 성공적으로 도달할 수 있지는 못하며, 따라서 웬만해서는 소수의, 세심하고 수용적인 사람들에게 이해받고 인정받는 것에서 그럭저럭 만족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생각이나 견해에 대해 접근하는 방향에 있어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2개의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이 두 그룹을 적절하게 표현하여 구분할 만한 명칭을 나는 아직 찾지 못하였다. 예를 들자면 두 그룹을 "합리주의자(rationalist)"와 "감상주의자(sentimentalist)"라고 부를 수 있겠으나, 이는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적절하게 표현하지는 못하는 명칭이다. 더 좋은 명칭을 찾지 못하였으니 나는 일단 이 두 그룹을 "느끼는 사람들(feeling people)"과 "생각하는 사람들(thinking people)"이라고 부르도록 하겠다: 하지만 이 두 그룹의 진정한 특성은 내가 두 그룹 각각의 특징을 묘사해야만 명료해질 것이다.
"Feeling people"이라는 이름으로 내가 설명하고자 하는 그룹은, 그들을 둘러싼 모든 것들 속에서 그들 자신과 다른 것들 사이의 관계, 일반적으로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가장 큰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다. 물론 그들은 바깥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람들과는 직접적으로 연결되지는 않은 현상들(예를 들자면 자연, 물질, 우주 등등)에 대해 인식은 하고 있지만, 그다지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그런 바깥의 현상들을 일종의 '무대'로써 2차적인 중요성을 갖는다고 생각하며, 대신 여러 가지 복잡한 속성들, 말하자면 종교라던가 정의, 교류, 그리고 보통 예술까지를,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느끼는 것으로서 1차적인 중요성을 부과한다.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feeling people" 그룹에 속한다. 이는 태곳적부터 예술가들이 작품의 주제로 인간의 얼굴이나 인간의 형체를 다루는 것을 선호해 왔다는 사실만 보아도 명백하다; 예술가들은 특별히 인간만의 특수한 성질, 물리적인 성질이나 정신적인 것에 매료되어 왔다. 그리고 비록 인간 그 자체를 묘사하지 않더라도, 그러니까 시인이 어떤 풍경에 대해 읊조리거나 화가가 정물(靜物)을 그릴 때에도, 예술가들은 거의 언제나 인간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대상에 접근해 갔었다.
이렇게 말한다면 모순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시(詩)적인 정신과 상업적인 정신 사이에는 유사성이 있으며, 실제로 시인과 사업가는 사람에 관계된 문제들을 계속해서 다루는 사람들이며 세심함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직업이다. 사업가적인 정신은 때때로 차갑고, 냉철하며, 계산적이고, 매정하다고 묘사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성질들은 그저 사람들을 대하면서 원하는 것을 성취하고자 하는 사람이 가져야만 하는 특성들에 불과하다. 사업가는 언제나 인간의 불가사의하고 계산이 불가능한, 어둡고 숨겨진 측면을, 쉽게 공식화할 수 없는 성질을 고려하며, 이와 같은 인간의 특성은 사실 시인에게 영감을 주는 그것과 똑같은 것이다.
그리고 다른 쪽에는, 더 적합한 단어를 찾을 수 없어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지만, "thinking people" 이라고 할 수 있는 그룹이 있다. 이 그룹을 말할 때 나는 인간이 아닌, 그리고 인류와 무관하게 일어나는 자연적인 현상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 자신이 살고 있는 지구와 그것을 둘러싼 우주에 중대함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이 그룹의 사람들은 물질과 공간, 우주의 언어를 이해한다. 그들은 바깥 세계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갖고 있다; 그들은 바깥 세계를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무엇인가로, 보는 것뿐만이 아니라 면밀히 관측하고 공부하며 심지어 조금씩 이해해 나갈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feeling people"들이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깊게 자기 자신을 잊어버릴 수 있다.
어떤 한 사람이 자신을 잊어버리고 있을 때, 이와 같은 망각은 그를 제법 이기적인 사람으로 만든다; "thinking people"이 자신을 잊어버렸을 때, 그는 즉시 자신의 동료들도 잊어버리게 되며, 자신과 자신의 인간성을 잃어버리고 그가 관심을 가진 주제에 깊이 몰두하게 된다. 그렇기에 "thinking people"은 "feeling people"보다 훨씬 더 명상적인 사람이 된다. 그 누구라도, 물질적인 것에 깊은 관심을 가진 그리고 타인의 참여를 필요로 하지 않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이 그룹에 속한다. 공장 노동자나 목수들, 그리고 화학자나 천문학자 등이 이 그룹에 속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세계가 너무나도 현실적이고 실재하는 것으로 보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들이 얼마나 주관적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내가 아는 한에서 말하자면, 우리의 감각을 떠나서 객관적인 현실이 정말로 존재하는지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는 아직 없으며, 따라서 나는 우리의 감각만으로 바깥 세계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지를 잘 모르겠다.
이 현실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숨바꼭질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그들은, 비록 보통 본인 스스로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을 숨기고는 한다. 이와 같은 은신(隱身)은 그들이 어쩌다 보니 현실에 대한 감각을, 현실이라고 불리는 것에 대한 큰 관심을 갖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며, 또한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둠에 대한 공포라던가 사람의 본성 속의 불가해한 성질 같은 무의식적인 요소가 어떤 역할을 할 때도 있을 수 있으며, 이 "thinking people"들은 그것들로부터 빠져 나온다. 환멸, 소진(消盡), 무력감, 그리고 다른 억제요소들은 그들로 하여금 인간 자체의 수수께끼보다는 훨씬 덜 복잡하고 이해하기 쉬운 물질을 다룸으로써 평화와 유예(猶豫)를 찾도록 만든다.
앞에서의 묘사를 통해 나는 두 그룹이 대비되는 부분들을 강조하려고 하였다. 나는 정말로, 과학적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예술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다고 믿는다. 때때로 두 그룹 사이에는 의심과 짜증이 오고가기도 하며, 가끔은 다른 그룹을 엄청나게 과소평가하기도 한다.
다행스럽게도 세상에는 단지 "feeling people" 또는 "thinking people"의 특징만을 갖고 있는 사람은 없다. 이 두 그룹은 마치 무지개의 색깔들처럼 서로 섞여 있어서 완전한 구분이 되지 않는다. 아마도 누군가는 과도적인 그룹, 마치 무지개의 노란 빛과 파란 빛 사이에 위치한 녹색 빛 같은 그룹에 속해 있을지도 모른다. 이 과도적인 그룹은 "thinking"과 "feeling"에 대해 특별한 선호가 없는 사람들이지만, 어느 한 쪽이라도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어쨌건 간에, 두 그룹이 서로를 좀 더 잘 이해하기를 바라는 일은 공평한 바람이다...
느낌과 이해는 서로 상충되는 것이 아닌 상호보완적 관계이다. 중력의 경이로움을 느끼기 위해 물리학자가 되어야만 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가 가진 지적 능력의 도움을 받는다면 그 경이로움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가 실제로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이를 인지하지 못한 채로 소위 말하는 "냉철한" 지성의 길을 따라 걸어온 과학자가 문제의 해결책을 찾기보다는 수수께끼 자체의 심오함만을 탐구하는 것을 상상하기도 한다...
내 판화에서, 나는 우리가 가끔 생각하는 것처럼 질서가 없는 혼돈의 세계에 사는 것이 아니라, 아름답고 질서정연한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내가 다루는 주제들은 꽤나 재미있기도 하다. 나는 우리가 가진 그 단단한 확실성을 조롱하는 일을 멈출 수가 없다. 그러니까, 예를 들자면, 2차원과 3차원, 평면과 공간을 의도적으로 혼란스럽게 섞는 것이라던가, 중력을 가지고 노는 일은 정말로 재미있는 일이다.
당신은 바닥이 동시에 천장이 될 수 없으리라고 확신하는가? 당신은 계단을 올라갈 때 스스로가 정말로 올라가고 있다고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는가?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확언할 수 있는가?
이렇게 겉으로 보기엔 정신이 나간 헛소리 같은 질문들을 나는 우선 나 자신에게 던져 보고 (나는 내 작품의 가장 첫 관람자이기도 하다), 그 다음에는 내 작품을 보러 오곤 하는 사람들에게도 던져 본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장난을 즐길 줄 알며, 바위처럼 단단해 보이는 현실이 가진 본질적인 상대성을 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 것은 기쁜 일이다.
무엇보다도 나는 그와 같은 교류를 통해 수학자들과 접촉하고 친분을 쌓을 수 있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수학자들은 때때로 내게 새로운 발상을 가져다 주기도 하고, 가끔은 나와 상호작용을 하기도 한다. 그 유식한 신사숙녀 분들이 얼마나 장난기가 넘치는지!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예술"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 꽤나 당혹스러움을 가지고 있다. 한 사람이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예술"이 아니게 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아름다움"과 "추함"은 낡은 개념으로 요즈음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것이다; 어쩌면 그런 개념들이 정당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누가 알겠는가? 어떤 혐오스러운 것, 당신의 도덕관념을 뒤흔들고, 귀와 눈을 아프게 하는 것이 예술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오직 "저급한(kitsch)" 것들만이 예술이 아니다 - 여기에 대해서 우리는 모두 동의하고 있다. 사실, 그런데 "저급하다"는 것이 대체 무엇인가? 답을 알고만 있다면 좋을텐데!
이와 같은 감정적인 가치 판단은 나에게는 너무 주관적이고 모호하게 다가온다.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예술"과 "예술가"라는 단어는 르네상스 시대 및 그 이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이었다; 그들은 그저 건축가, 조각가, 화가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판화를 만드는 것 또한 이런 정직한 일들 중 하나이며, 나는 내가 Guild of Graphic Artist의 소속이라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끌을 가지고 엄청나게 부드럽고 매끈한 나무에 홈을 파는 행위는 자랑하고 다닐 만한 일은 아니다 - 그냥 단지 좋은 일일 뿐이다. 단지 당신이 나이를 먹어갈수록, 작업은 느려지고 더 어려워지며, 톱밥이 예전처럼 작업실을 가득 채우며 날아다니지 않을 뿐이다.
즉 나는 진심으로 열과 성을 다해 그래픽 아티스트 일을 하고 있지만, "예술가"라는 단어는 사실 좀 어색하다고 생각한다.
M. C. Escher'[...]'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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