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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의 정치에 음악을 (Injecting a little music into Japanese politics)
    [...] 2023. 3. 30. 01:45


    지난 후지 록 페스티벌에 일본의 젊은 정치인 Aki Okuda가 무대에 등장해 연설을 했었다는데, 이게 일본에서 나름 이슈가 되서 온/오프라인에서 논쟁을 일으켰었다고 합니다... 일본은 특히 음악과 정치가 결합하는것에 반감을 꽤 갖는 편이라고 하는데, 아래는 이것에 대한 짧은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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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정치에 음악을

    BY IAN MARTIN

    http://www.japantimes.co.jp/culture/2016/08/07/music/injecting-little-music-japanese-politics/#.V_j9qSiLShc


    http://youtu.be/K18k66hk674


    "음악에 정치를 담지 맙시다."

    이 '순수해 보이는' 문구는 지난 후지 록 페스티벌에 학생 정치인 Aki Okuda가 등장했던 사건에 대해 대항하는 소셜미디어 운동에서 널리 쓰였던 말이다. 동시에 이 문구는, 엔터테인먼트와 정치가 어떻게 서로 상호작용해야 하는지 - 혹은 어떻게 상호작용하지 '않아야' 하는지 - 에 대해 많은 일본인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잘 대변하는 말이기도 했다.
    이 문구 자체가 널리 퍼져나갔던 것에 반해, 사실 일본의 역사에서 음악과 정치가 서로 가까웠던 적은 사실상 거의 없었다. AKB48 멤버 Haruka Shimazaki를 자위대 홍보물에 활용하는 등 대중문화를 "Cool Japan" 개념의 "Soft Power"로 사용했던 것처럼, 일본 정치계에서의 음악이란 '기득권층이 여러가지 목표를 달성하려 할 때 사용하는 수단들 중 하나'로써만 이용되었다. 반면, 반핵운동에서부터 Aki Okuda의 SEALDs(자유민주사회를 위한 학생긴급행동)등은 사람들의 주목을 이끌고 지지를 받아내기 위해 음악을 활용하고 있는 중이다.

    후쿠시마 원전사태 이후의 일본내 반핵운동에서 음악이 어떤 역할을 하고있는지는 미국 유학파 학자 Noriko Manabe가 자신의 책 [혁명은 방영되지 않을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사태 이후의 저항 음악(The Revolution Will Not Be Televised: Protest Music After Fukushima)]에서 아주 잘 묘사하고 있다.
    금융계에서 애널리스트로 일하다 학계로 옮겨갔던 Manabe는 자연스럽게 경제와 사회구조가 음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하게 되었다 - 특별히, 광고와 TV의 상업적인 힘이 어떻게 예술가들의 목소리를 지워버리는지에 대해서. 시부야의 한 카페에서 만나 본 Manabe는 Ryuichi Sakamoto(坂本 龍一)가 반핵운동에 참여한 이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언급했다: "오리콘에 따르자면, Ryuichi Sakamoto는 갑자기 황금시간대의 TV방송들에서 사실상 퇴출된 처지가 되었다."
    동시에, Asian Kung-Fu Generation의 보컬 Masafumi "Gotch" Goto 같이 개인적으로는 다양한 사회 문제들에 대해 거침없이 말하곤 하는 일본인은, 음악가로서의 활동과 정치적 활동 사이에 선을 굉장히 잘 그어야만 되는 상황이기도 하다.
    "Goto는 음악에서는 순종적인 편이지만, 자기의 개인 블로그에서는 하고싶은 말을 거침없이 다 하는 편이다. 이는 사실 그가 정말 유명한 스타이고, 나름의 선을 정말 잘 지키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Manabe는 설명한다. "그가 자신의 개인 블로그와 Asian Kung-Fu Generation의 블로그를 따로 분리해야만 했던 이유가 있는 것이다… 즉, 일본에서는 밴드로써 할 수 있는 일과 '하면 안 되는 일'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는 것이다."


    http://youtu.be/ZmeudwRMrsU

    하지만 저 바깥의 거리에서는 음악이 맡고있는 역할이 아주 다르다. Manabe는 이 모든 현상이 시위대와 정부 당국간 공간의 점유 및 관리 문제의 갈등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일본이 다양한 종류의 사회 운동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기 전에 미리 방지하기 위한 '디자인'이 아주 잘 된 곳이라고 생각한다. 의회를 둘러싸고 넓은 공원이 있지만 이 공원은 굉장히 철저하게 감시되는 구역이다; 미국의 Washington Mall처럼 일반 시민들에게 공개된 곳이 아니며, 좋은 경관을 누리라고 만든 곳도 아니고, 그 공원에서는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것 자체부터가 금지된 일이다."
    대신 시위대들은 점차 음악을 (Manabe의 표현을 따르면) "소리를 활용해 공간을 새로운 방식으로 점유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중이다. 이 경우 음악의 내용보다는 음악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이 더 중요해지며, 시위대의 시각적인 모습이 닿지 않는 거리에까지 소리를 전달하기 위한 '교차로'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해지게 된다.
    Manabe에 따르면 이런 현상은 시위대의 명분에 대해 사람들의 주목을 이끌어내려는, 저항운동의 첫 단계이다. 후쿠시마 원전사태 직후, 운동권 단체인 Shiroto no Ran이 도쿄의 고엔지(高円寺) 근방에서 시작했던 "음향시위"가 이 첫 단계의 좋은 예시가 될 것이다.
    이어지는 두 번째 단계는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좀 더 강화하고 그것에 집중하는 단계로, 종종 힙합에서 많이 쓰이는 call-and-response 방식을 사용하게 된다. 이 스타일은 Shinzo Abe 총리의 국가보안 정책과 평화헌법 수정정책에 대해 SEALDs가 저항운동을 벌였을 때 유효하게 사용했었던 전법이었다.

    저항의 논지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음악적 리듬을 활용하는 건, 원래 레게 뮤지션이었다가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한 Yohei Miyake가 캠페인에서 즐겨 사용하던 것으로, 이 방식으로 인해 음악공연인지 정치집회인지 잘 알수 없게된 집회는 수많은 사람을 모이게 하는데엔 아주 효율적이었다.
    "음악을 대하는 내 입장은 '기본적으로는' 변하지 않았다." Miyake는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말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내 가사가 점점 더 정치적인 내용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도 알 수 있었다. 이런 식의 가사로 음악을 해도 되는건지, 한동안 딜레마에 빠졌었다… 하지만 결국 이 '딜레마'는 내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 - 노래하는 것처럼 말하고, 말하는 것처럼 노래하는 스타일을."
    Mikaye에게 있어 그의 언어에 깃든 '음악성'은 정치의 언어체계 자체에도 원래 들어가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리듬과 유머, 억양과 위트 - 이 것들은 의회 및 정치에 관련된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항상, 그 무엇도바도 더없이 중요한 요소들이었다." Miyake는 말한다. "나에게 그 요소들은 '말의 힘' 및 '시(詩)의 힘'이며, 정치를 앞으로 가게 만드는 근본적인 힘이다."
    하지만 그런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음악과 정치는 서로 제대로 분리되어 있어야만 한다는 생각은 오랫동안 일본을 지배해 온 생각이었다.
    "초반에는 사람들이 "너 너무 먼 곳으로 나가고 있어. '그쪽'으로 가 버리고 있다구."라는 말을 할 때 마음에서 저항감이 일었었다." Miyake는 회고한다. "사실 나는 그 사람들에게 "당신들이 지금 서 있는 곳이라는게 대체 어디냐"고 되묻고는 했었다. 그리고는 제안했다, "만약 너희가 서 있는 '그 곳'에서 아무것도 찾을 수 없다면, 언제든 내가 있는 이곳으로 와서 함께해도 좋다고" 라고."


    http://youtu.be/GAiX0ttGKg0

    Manabe는 일본에서는 음악과 정치가 결합되는 것을 어째서 그렇게까지 싫어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묻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믿으며, 특별히 문학이나 영화 같은 분야에서는 예술이 사회문제와 직접적으로 결합하는게 '허용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가설은 음악이라는 영역에서 정치적인 내용을 제한하는 것이 좀 더 명확한 규칙과 법칙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60년대 포크 뮤지션 Goro Nakagawa(中川五郎)나 20년대 "street enka" 씬 같은 반체제 음악이 아주 성공적으로 억압되는 바람에, 일본의 현대인들에게는 정치 문제를 다루는 음악이라는 것 자체가 생소한 개념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Manabe의 마지막 가설은 음악 자체의 특성에 기반하는 가설이다.
    "영화나 책 같은 것들은 접하는 사람에게 시간의 여유를 아주 많이 준다." Manabe는 설명한다. "일본에선 물론 누구나 앨범을 만들 수 있고, 앨범을 들을 수 있지만, 일본의 대중음악 씬은 거의 모두가 싱글곡 위주의, 정말 짧은 사이클로 돌아간다. 즉, 일본의 음악계에서는 영화계나 책 같은 분야에서처럼 시간적 여유를 갖고 어떤 논쟁을 해 보기가 힘든 것이다."

    일본에서 정치적 색채를 띈 음악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2012~13년의 피크에 비교해보자면 반핵운동은 이미 많이 쇠퇴해버렸고, Shinzo Abe와 자민당의 연정 전략이 최근에 제대로 성공해버린 것을 생각한다면, SEALDs에 동참하여 저항 운동을 진행했었던 많은 음악가들이 좌절한 건 당연한 일이다.
    "이미 많은 뮤지션들이 이전의 정치적 색채를 잃어버리는 것을 볼 수 있다." Manabe는 말한다.

    Miyake는 미래에 대해 조금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에게 있어 중요한 이슈들, 즉 기후변화, 국제 정세, 강대국-의존국에 가까운 미일관계, 부의 불평등 문제 등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고, 따라서 사람들에게 강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문제들이다.
    또한 Miyake는 음악이 정치에서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해 사람들이 점점 더 마음을 열고 있다고 믿는다. 후지 록 페스티벌에서 모습을 보였던 Okuda의 행동에 반대하는 여론을 염두에 두며, Miyake는 말한다: "젊은 정치 행동가에게 무대를 주지 않는 록 페스티벌은 이미 'rock'하지가 않은 페스티벌이다."
    흥미롭게도 Miyake는 다음과 같이 숙고한다: "만약 Okuda가 무대 위에서 좀 더 '음악적'으로 말했었다면 작은 소란만 일어나고 말았을 것이다."

    아마도, 그렇다면, 문제는 음악에 정치가 너무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에 음악이 너무 없다는 것이리라.



    http://youtu.be/iHCEwX8Qe7g

     

    2016/10/10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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