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전부가 당신에게 반대하더라도 손을 들고 말하라: 나는 살인에 반대한다» 전쟁, 국가, 음악에 대해, 보리스 그레벤쉬코프와의 대화 올렉 피쉐니치니(Олег Пшеничный) [The Insider] 2022년 6월 3일
텔아비브에서 개최되는 SlovoNovo 러시아어 문화 포럼 행사에서의 공연에 앞서, [The Insider]지와 함께 진행한 인터뷰에서 록 음악가 보리스 그레벤쉬코프(Борис Гребенщиков)는 어째서 스스로를 '이민자'라고 생각하지 않는지에 대해, 어째서 변화의 희망이 없는 때에도 전쟁에 반대해야만 하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아크바리움(Аквариум)의 새 앨범이 어째서 특별한 앨범인지에 대해 말해주었다.
- 이번 전쟁(역주: 우크라이나 전쟁)이 '푸틴이 일으킨 전쟁'이라고 보는지, 아니면 '러시아가 일으킨 전쟁'이라고 보는지? -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나는 내가 나고 자란 나라야말로 나라는 사람을 형성하는 언어와 내 존재의 근간이 되는 문화를 가지고 있는 나라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러한 측면과는 별개로, 국가/정부라는 것이 존재하며 이 국가/정부의 주요 목적은 금지하고, 추방하고, 질식시키는 것이다. 지난 68년간 내 관점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 소련이 붕괴하였을 때 모두가 느꼈던 안도감 말고도 어떤 '희망'이 있었는지? - 아니, 희망이라는 것은 전혀 없었다. 수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써 나는 국가의 목적은 '억제'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러시아만 그랬던 것도 아니다. 몇몇 국가와 정부들 -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을 예로 들 수 있겠다 - 은 다른 국가/정부들보다는 좀 더 합리적이긴 하지만, 그 국가/정부들조차도 그들의 '선의'만을 믿고 기댈 수는 없는 것이다. 어쨌든지간에, 정말로 솔직하게 말하자면, 1990년대 초에는 우리가 무언가 조금이나마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희망적인 기분을 느끼기도 했었다. 이런 희망을 한 3일정도 갖고 있었는데, 문득 주변을 돌아보고 나자 내가 가졌던 희망은 완전히 헛된 생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래서 그냥 놓아버렸으며, 긴장을 풀고, 내 일에 집중했다.
- 1995년에 당신은 "Древнерусская тоска"(옛 러시아인의 비장(spleen))이라는 곡을 썼었다. 이 때 러시아는 전쟁중이었다 - 체첸에서 일어났던 내전이었다. 당시 러시아 사회가 전반적으로 이 전쟁을 어딘가 다른 곳에서 일어나는 전쟁이라고, 아예 다른 사람들이 겪는 전쟁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고 느꼈던 것인지? - 인류는 언제나 전쟁을 벌여 왔다. 안타깝게도 인간의 고유한 본성 중 하나이다. 그냥 두 가지 종류의 전쟁이 있을 뿐이다: 아프리카나 체첸처럼 어딘가 머나먼 곳에서 일어나고 있기에 우리가 거의 눈치채지 못하는 전쟁들이 있으며 - 당신 이웃들 중 그 누구도 영향을 받는 사람이 없으며, 빵집에서도 아무도 그 전쟁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그런 전쟁 - 그리고 말 그대로 모든 사람들이, 심지어 빵집에서도, 이야기하는 전쟁들이 있다.
- 먼 나라에서 수년간 일어나는 전쟁에 대해 무심한 채로 살다가 그 전쟁이 어느새 자신의 문 앞까지 다가와 문을 두드리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그런 태도가 문제라고 볼 수도 있을까? -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가 있다. 이 소설은 이러한 서문으로 시작한다: "어느 사람이든지 그 자체로 완전한 섬은 아닐지니, ... 그러니 저 조종(弔鐘)이 누구를 위하여 울리는지 알려고 사람을 보내지 말라. 그 조종은 바로 그대를 위하여 울리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No man is an Island, intire of it selfe; ... And therefore never send to know for whom the bell tolls; It tolls for thee.)
- 이전에 러시아를 떠났던 사람들 중 일부는 이번 전쟁이 러시아라는 국가 내부에 팽배한, 재앙 수준으로 타락한 도덕성의 문제를 수면 위로 드러낸 전쟁이었다고 말하며 푸틴 정권이 붕괴하고 전쟁이 끝나더라도 다시 러시아로 돌아간다는 걸 상상하기 힘들 정도라고도 말하고 있다. 당신은 러시아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무슨 일이 일어나야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 사실대로 말하자면, 나는 러시아를 떠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이민자'가 된 적은 한 번도 없었으며 되고자 하는 생각도 없다. 나는 러시아 문화에 속하는 사람이며, 따라서 현재 내 발 아래에 어떤 토양이 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문제이다. 어린 시절 나는 쥘 베른의 [해저 2만리]를 첫 책으로 읽을 수 있었던 운 좋은 아이였다.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지만, 읽고 나니 강력한 메시지 하나가 내 마음 속에 남았다: 세상이 나의 것이라는 메시지를. 그 소설이 나라는 인간을 이렇게 형성했던 것이다: 내 세상이 곧 세상 전부라는 것으로. 내가 어디로 가던지간에, 나는 '집'에 있다. 나는 러시아어를 말한다; 나는 러시아어로 쓰며 대체로 러시아어를 소통과 자기 표현의 주요 언어로 선택한 사람들을 위해서 일한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에는 내가 언제든지 머무르며 일할 수 있는 장소가 항상 존재한다: 아크바리움의 스튜디오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 곳으로 돌아가야 할 필요가 없다, 여기에서도 일할 것이 정말 많기 때문이다.
- 앞서 말했던 것 처럼 당신은 '러시아 문화'에 속해 있는 사람이다. 이러한 속성이 현 전쟁의 '공격자'와 당신을 동일선상에 놓게 하지는 않는지? - 아니, 그렇지 않다. 우리 대화의 첫 부분으로 돌아가자면, 나는 '권위'라는 개념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이라고 말했었다, 러시아뿐만이 아니라 전반적인 권위 전부에 대해서다. 나는 권위와 나를 동일선상에 놓지 않는다. 니콜라이 구밀료프(Николай Гумилёв)가 레닌의 행위에 책임이 있는 사람인 것은 아니었다, 오시프 만델슈탐(Осип Мандельштам), 브세볼로드 메이에르홀드(Всеволод Мейерхольд), 다닐 하름스(Даниил Хармс)가 스탈린의 범죄행위에 책임이 있는 사람인 것도 아니었고.
- 하지만, 현 러시아 정부의 모든 사람들이 러시아어를 말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전부 같은 문화에 속하는 것이 아닌지? - 권력자들은 대체로 문화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문화'에 대한 가장 중요한 것조차도 알지 못하며 알고자 하는 생각도 없다. 그들이 최소한의 단서만이라도 알아챘다면 당장 자신들이 하는 것들을 멈추었을 것이다. 당신은 '그들'의 얼굴을 한번이라도 본 적이 있는가? 우리가 말하는 '문화'라는게 대체 무엇이라는 말인가?
- 러시아의 전 대통령 드미트리 메드베데프(Дмитрий Медведев)는 딥 퍼플에 대한 애정을 고백하기도 했고, 폴 매카트니와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었다. 그리고 지금의 메드베데프는 돌처럼 굳은 얼굴로 우크라이나는 반드시 파괴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 나는 그를 단 한 번밖에 본 적이 없는데, 그 때의 그는 '지식인' 같아 보이는 모습이었다. 안타깝게도 최고 권력층에 있는 사람들은 내면의 무엇인가가 깨져버릴 정도로 무서운 압박을 받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최고 권력층의 의도나 행동을 예상하기는 굉장히 어려운데, 이들이 더 이상 인간적인 기준에 따라서 행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 당신이 1983년에 만들었던 노래 "Немое Кино"(무성 영화)가 현 상황을 적절하게 요약하고 있는 노래일 것이다. 볼로트나야 광장(Болотная площадь) 에서의 시위가 있었던 지도 벌써 10년이 지났는데, 그 10년은 사실상 아주 무서운 무성 영화같은 시간이었다. 또 다른 당신의 노래 "Странный Вопрос"(이상한 질문)은 또 어떤가: "자 그래서, 내가 어디로 가야 하냐고 묻는다면? 여기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라면 어디라도, 아무 상관 없어." 수천 명의 러시아인들이 이 노래들에 대해 더없이 동의하고 있다. 이런 끔찍한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1년 전에 미리 예상할 수 있었던 것인지? - 60년 전에 이미 깨달았었다. 그 이후로 내 관점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나는 스탈린의 시대에 태어난 사람이었다, 따라서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나로서는 불가능하다. 국가 권력을 신뢰한다는 건 스스로에게부터 좋지 않은 일인데, 권력이라는 것은 대체로 국민들의 이익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을 더 신경쓰기 때문이다. 지난 2월 23일에 나는 러시아에서의 마지막 공연을 했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였으며, 크고 시설이 잘 갖춰진 공연장에서 아크바리움의 모든 멤버들이 모여 공연했었는데, 공연 내내 나는 마치 1939년의 뮌헨에서 공연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어째서 이런 느낌을 받았는지는 말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결코 기분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그 공연이 끝나고 6시간이 지난 후, '그들'이 군대를 전개시키기 시작했다. 원하는 대로, 그대로. 비극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말도 안 될 정도로 무시무시한 상황이. 전쟁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것이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을 무자비하게 위반하고 있는 행위였다, 힌두교도들이 말하는 '다르마'(dharma), 우주의 질서에 대한 위반이었다. 유럽의 한 가운데에서 하나의 나라가 다른 나라를 공격하고 있었으며, 전 세계가 이를 옆에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 당신에게 우크라이나는 어떤 의미인가? 우크라이나에 대해 갖는 이미지는? 어떤 나라인지? - 소련 시절에 우크라이나는 여타 다른 장소와 다를 것이 없었다: 발트 해 국가들, 우크라이나, 러시아, 조지아... 이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로부터 독립해 나온 후에는, 우크라이나는 명백히 잘 해 나가고 있었으며 러시아 또한 다른 방식으로 통치된다면 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모습이었다. 우크라이나는 방문할 때 마다 나를 기쁘게 하는 곳이었다, 편안함, 빛, 즐거움이 존재하는 장소. 러시아인들보다 우크라이나인들이 우리를 더 좋아했다. 우크라이나인들은 길에서 우리를 발견하고 다가와서는 껴안아주고 키스를 해 주며 말하곤 했다, "이 곳에 와 줘서 정말 고마워요!" 사실 우크라이나는 아주 이상하고 공격적인 형태의 민족주의와 부패한 정치인들, 그리고 저속한 타락을 가지고 있기도 한 곳이었다. 한번은 우크라이나 TV에서 진행되는 토론에 가 본 적도 있었는데 - 정말 웃기는 경험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우크라이나인들은 정말로 환상적인 사람들이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나에게는 비극보다 더 심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불가능한 비극이다. 러시아는 불명예스러운 방식으로 우크라이나를 공격했다. 우리는, 침략행위를 중단하고 더 이상 죽음이 발생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해야 한다.
- "러시아를 위하여"(За Россию) 투어에 대해 들어보았을 텐데. (저자주: "러시아를 위하여" 투어는 러시아의 "특수 군사 작전"을 지원하는 '애국자'들의 음악 공연이다.) 러시아 록 음악과 스스로를 동일시하던 사람들, 지식인들, 비타협주의자들, 저항자들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란 말인가? - 당신이 연주하는 음악의 장르가 당신의 머릿속에 뇌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두뇌 없이 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며, 심지어 상당히 쉬운 축에 속하는 일이기까지 하다. 누구나 원하는 만큼 멍청해지고 원하는 만큼 멍청하게 행동할 자유가 있다. Z 표식 아래에서 투어하는 사람들은 아마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록이다! 우리 노래는 별거 아닐지 몰라도 어쨌든지간에 모두에게 교훈을 주겠다." 하지만 그들 또한 전혀 다르지 않은 자들일 뿐이다. 레닌그라드에서 1981년에 있었던 록 클럽 모임이 기억난다. 내가 지켜보는 동안, 아크바리움은 클럽에서 세 번이나 쫓겨났었다.
- 보다 덜 암울하게 말하자면... - 암울하지 않다. 나는 그림을 그릴 때 밝은 색채를 쓰는 것을 좋아한다: 녹색, 빨강색, 오렌지색, 노란색, 파란색 등, 하지만 가치 있는 그림은 언제나 어두운 색도 들어가 있는 그림들이다: 암갈색, 검정색, 갈색 - 모든 색들이 전부 필요한 것이다. 자연은 언제나 '균형'을 필요로 하며, 따라서 우리 또한 반짝거리는 눈으로 빛으로 다가가 멋진 새 삶을 시작한다는 환상 속에 빠지는 것도 이상하고 말도 안 되는 일인 것이다. 한번 그 '멋진 새 삶'이 시작했다고 치자. 그 새로운 삶 속에서 우리의 위치는 어디일 것인가?
- 결국에는 전쟁이라는 것이 필요한 것이긴 하다고 인정하게 될 수도 있겠다. - 역사를 돌이켜 보자면 인류라는 존재는 전쟁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다. 전쟁이 없는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제 3의, 제 4의 전쟁을 일으킬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내고야 만다. 자기 자신과 자신의 권리, 위치를 확고히 하기 위해 계속해서 전쟁을 일으켜야만 하는 것이다. 내가 쓸모 없고 하찮은 인간이라면, 누군가 나보다 더 약한 사람을 때려 눕혀야만 하는, 그런 법이다.
- 하지만 나는 앞으로 적어도 5세기 동안에는 스위스와 룩셈부르크 사이의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 몇몇 정부들, 권력층들, 국가들은 다른 정부, 권력층, 국가보다는 더 합리적이다. 한 가지 비밀을 말해주겠다: 삶이 평온할 때 사람은 질문들에 (혹은, 생각할 능력이 없다면, 지루함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찾는 과정을 통해 인간의 의식은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려지게 되고, 이러한 변화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 어떤 식으로든 전쟁이 일어나게 된다. 그렇지 않다면 인류는 너무 빠르게 변화하여 새로운 종류의 의식(consciousness)으로 나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 당신은 전쟁에 반대하는 공연들에 참여해 왔다. 러시아인들을 포함한 음악가들이 여러 도시에 모여서 전쟁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러한 공연들이 그 목적을 이루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지? - 내 생각에 공연은 무언가를 "반대"할 수 없으며, 문화 전반 또한 그렇다. 불가능한 일이다. 문화가 있으며, 문화의 부재가 있을 뿐이다. 문화라는 것은 사람들이 자라며 서로 상호작용을 하는 법을 배우는 환경 같은 것이다. 문화는 우리를 교육한다. "반대" 문화라는 것이 어떻게 이러한 일들을 할 수 있겠는가? 그들이 충분히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음악가들이 모여서 전쟁을 멈추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대체 누구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인가? 정부가 음악가들의 목소리를 한번이라도 듣기는 한 적은 있는가? 인류 역사의 그 어떤 정부가 음악가들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라도 있는가? 아니, 단 한 번도 없었다. 정부는 음악가들의 존재조차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 음악가들은 대중의 의견을 변형시킬 수 있다. - 그 어떤 권력자도 대중의 의견 따위에는 신경을 단 한 톨도 쓰지 않는다.
- 1973년 미국이 베트남에서 철군했을 때에도 미국 시민의 여론이 전혀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말인가? - 전쟁이 더 이상 이익이 되지 않게 되었기에 그만두었을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전쟁이란 언제나 항상 거대한 군산복합체가 연관되어 있다. 여기에 한 명의 대학교 학생의 의견 같은 것은 무의미하다. 전쟁을 지속하건 그만두건 어쨌든지간에 납세자들은 계속해서 세금을 납부할 것이다. 나치 독일에서 정부의 그 누구라도 일반적인 독일 시민의 의견을 1초라도 생각해 보았었던가?
- 하지만 그건 파시즘이다. - 미국이 베트남을 초토화시켰을 때, 그 미국은 파시스트가 아니었던가? 우크라이나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파시즘이 아닌가? 아프리카의 사람들이 수십만 명씩 서로를 학살하고 있는 행위는 어떤가? 어떠한 전쟁이 다른 전쟁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 권리를 우리에게 주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 그런 말은 어쩐지 현재 진행중인 전쟁을 일으킨 사람들의 책임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는 말 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들'이 이렇게 말할수도 있는 것이다: "봐라, 여기에 전쟁이 있고 저기에 전쟁이 있다. 우리 전쟁 또한 그냥 또 다른, 작은 전쟁일 뿐이며, 특별할 것은 하나도 없다." - 그럴 수 있으며,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이미 지옥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은 애초에 지옥에서 한 발자국도 떨어진 적이 없었던 사람들이다.
- 하지만, 또 다른 전쟁 반대 공연에서 당신을 초청한다면 참여할 것인가? - 참여할 것이다, 긍정적인 동기가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각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전쟁에 대한 태도가 중요하다. 온 세상이 당신에게 반대하더라도 손을 높이 들고 말하라, "나는 이 것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이 일을 요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나는 빛이 필요하며, 나는 살인에 반대한다." 시위는 아무것도 결코 바꾸지 못하지만,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개적으로 계속해서 입을 열어 말을 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이 전쟁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계속해서 그들에게 알려야 한다.
- 한 명의 시민으로써, 당신은 시위나 집회에 참여해 본 적이 있었는지? - 한 명의 시민으로써, 나는 어린 시절을 이 집회에서 저 집회로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보냈기 때문에, 집회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무용함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게 되었다. 하지만 누구나 스스로 어떤 집회에 참석할지 말지에 대해 자유롭게 결정할 권리가 있다.
- 그렇다면 어째서 수백 명의 사람들이 단지 시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도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인가? 목소리를 정부가 들었던 것이 아닌지? - 그 사람들이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은 시위를 했기 때문이며, 지금 시위라는 것은 처벌이 가능한 범죄가 되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시위는 여전히 주목받지 못한 채로 지나갔으며 정부의 정책에 그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들은 옳은 일을 한 것이며, 그 사람들을 감옥에 가둔 자들은 잘못된 일을 한 것이다.
-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러시아에서는 언더그라운드 예술이 존재했었다. 이제 다시 한 번 엄격한 검열이 돌아왔는데, 이 상황이 인디 음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는가? 인디 음악이 번성하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인지? 러시아의 독립 음악가들이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지는 결과로 이어지게 될지? 최근 러시아 음악계를 얼마나 자주 돌아보고 있는가? - 나는 그 어떤 나라의 음악계도 돌아보고 있지 않다. 나는 세상에 나오는 모든 좋은 것들은 언젠가는 내 앞에 나타나게 될 것을 확실하게 알고 있으며, 그래서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귀를 활짝 열어놓고 다닌다, 어디에서 좋은 것들이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지금 시대는 음악과 문화의 융합이라는 특징을 가진 시대이며, 모든 것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 직접 라디오 쇼 [아에로스타트](Аэростат)를 진행하고 있으니 더 그럴 것 같다. - 맞다, 정말 멋진, 한가한 직업을 가지고 있다. 이 라디오 방송을 위해서 음악을 듣고 있다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겠다. 내 방송의 청취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종종 "아크바리움의 음악은 듣지 않지만, 아에로스타트는 듣고 있어요"라는 편지를 받곤 하니. 수십 년 전, 외딴 마을에 사는 친구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는 아주 작은 플라스틱 상자를 벽에 걸어두고 있었으며, 그 박스에서 라디오 진행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라디오야말로 러시아의 모든 곳곳에 도달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말 그대로 러시아 전역의 모든 오두막집에는 다 이 작은 플라스틱 상자가 있었던 것이다. 이 플라스틱 상자들에서 좋은 음악이 흘러나온다면, 얼마나 멋진 일이겠는가! 그래서 '라디오 로씨'(Радио России)에서 한번 라디오 쇼를 해 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이 왔을 때, 나는 라디오 쇼를 진행한다는 것에 대해서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지만 제안을 받자마자 곧바로 수락한 후 프로젝트에 뛰어들었다. "내 꿈을 실제로 이루고, 러시아의 모든 집들에 좋은 음악을 배달한다니, 얼마나 멋진 일이란 말인가."
- '좋은 음악' 이야기가 나온 김에 말해보자면, 6시간짜리 비틀즈 다큐멘터리 [Get Back]을 보았는지? - 그 영화를 빨리감기 없이 최대한 전부 보기 위해 최선을 다 했었다. 볼 만해 보이는 장면이 나타날 때 마다 빨리감기를 끄고 제대로 보았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을 빨리감기로 넘길 수 밖에 없었다, 뭐랄까 인터뷰 같은 느낌이었다 - 인터뷰처럼, 득보다 실이 더 많은 그런 느낌. 폴 매카트니는 자기가 어떻게 작업하는지에 대해 인터뷰에서 설명하려 할 시간에 차라리 자기 작업을 조금이라도 더 했어야 했다. 그리고 누군가가 비틀즈가 어떻게 작업하는지를 촬영해서 대중에게 공개하는것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 미스테리는 미스테리로 남겨 두어라. - 아니, 미스테리가 아니다. 예전에, 약국에서 직접 약을 제조하던 시절에는 '약제사'(apothecary)라는 직업이 있었다. 아픈 사람에게는 약이 필요하지만, 누가 약을 제조했는지 같은 건 사실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약제사가 좋은 평판을 가진 사람이라면 물론 좋은 일이겠지만, 약제사를 인터뷰한다거나 약제사의 삶에 대한 잡지를 찍어낸다거나 스커트의 길이, 머리 색 같은 것들 따위에 대한 약제사의 의견을 출판한다거나 같은 건... 나는 약제사의 개인적 의견 같은 것에는 관심이 전혀 없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들이 좋은 약을 만들어주는 것 뿐이다. 똑같은 것이 음악가와 예술가들에게도 적용된다, 대중들에게 잡다한 것들에 대한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 대중이 원한다면? - 대중이야 아주 단순한 이유에서 그런 잡다한 정보들을 원할 수 있다: 곡 하나, 그림 하나, 시 하나를 이해하고 마음에 와닿도록 감상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지만, 창작자의 '수없이 많은 아내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 행위에는 그런 노력이 필요치 않은 것이다. 어떤 작품의 창조자가 코를 얼마나 자주 풀어대는지, 어떤 색의 재킷을 입는지, 어떤 외모를 가진 아내와 살고 있는지 등등에 대해 알게 되면 마치 나 또한 그 창조자의 삶의 일부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 열심히 생각한다거나 감정을 느끼기 위한 노력을 할 필요도 없이 - 이미 모든 것을 다 아는 것 처럼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런 방식이 해로운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Get Back] 관련해서 말하자면... 피터 잭슨이 기적을 일으켜 주기를 바랬었다, [Get Back]의 재료가 되는 영상들은 명백히 걸작의 가능성을 품고 있었으니까. 이런 말을 해서 미안하지만, [Let It Be]의 감독 마이클 린제이-호그는 자만심으로 차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종류의 사람이 음악계 쪽으로 접근하는 건 신도 금지하는 일일 것이다. 그 결과 [Let It Be]는 완전 망작이었다.
- 나는 그가 사실들을 왜곡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었다. -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모두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비틀즈를 갈라놓은 다른 한 사람, 요코 오노와 저에게 주목하세요, 제발"
- 새 앨범을 작업중인지? - 그렇다. 한동안 작업의 한복판에 있었다. 이제는 수록곡을 거의 정리했다. 아크바리움의 이름으로 나오는 앨범으로 큰 규모의 앨범이며, 아크바리움에 기여해 온 모든 사람들이 참여했고 각각의 곡 마다 훌륭한 게스트 음악가들도 참여했다. 레게의 아버지들 중 하나인 슬라이 던바(Sly Dunbar) 및 로비 셰익스피어(Robbie Shakespeare)와도 곡을 하나 협업해 만들기도 했다. 그와 첫 번째로 협업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이번 곡이 로비의 마지막 곡들 중 하나가 되었다. 이제는 작고한 사람이 되었지만 다행히 우리와 함께 곡 하나를 연주할 시간은 있었던 것이다. 우쿨렐레의 제왕이라 불렸던 영국의 일렉트릭 기타 연주자, 조 브라운(Joe Brown)과도 곡을 하나 만들었다. 초창기 시절 비틀즈 멤버들은 조 브라운의 기타와 함께 사진을 찍기 위해 그의 분장실에 숨어들곤 했었다. 그리고 우리와 친한 사이인, 조지아 출신 밴드 მგზავრები(Mgzavrebi)와의 협업 곡도 있다. 새 앨범은 대략 그런 앨범이 될 것이다. 앨범 이름은 아직 밝히지 않을 것이다 - 지금 공개해 버리면 나중에 또 제목을 바꿔 버리게 될 수도 있을 터이니. 대충 5월 혹은 6월 즈음에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다가 8월 무렵 이렇게 말하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떻게 이 상태에서 발매하려고 했었지, 말도 안 되는군!" 한때는 작년 8월에 발매하려고 했었다. 그러다가 새해 이후로 미루었고, 지금 보라, 얼마나 더 미뤄졌는지. 앨범이라는 것들은 고집이 센 녀석들인 것이다.
러시아 로큰롤의 아버지들 중 한명으로 여겨지는 싱어송라이터 보리스 그레벤쉬코프가 해 왔던 전쟁 반대 발언들과 모금 활동을 두고, 러시아 법무부에서 그를 "외국 요원"이라고 규정했다.
그레벤쉬코프에게 검열은 그렇게까지 낯선 일은 아니다. 그의 첫 밴드 아크바리움은 소련에서 서구권의 로큰롤이 금지되어 있던 시절부터 활동을 시작했었다. 소련 정부는 1980년 트빌리시에서 있었던 논란의 공연 이후로 아크바리움의 음악을 금지했었고, 그레벤쉬코프는 직장과 공산당 당적을 박탈당했었다. 이 조치에 대한 대답으로써, 그레벤쉬코프는 1983년에 "로큰롤은 죽었지만,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Рок-н-ролл Мётрв")라는 노래를 만들어 불렀었다.
그레벤쉬코프는 인터뷰 및 공연에서 전쟁에 대한 반대 의견을 공개적으로 드러내 왔었다. 2022년 10월에는 데이브 스튜어트(Dave Stewart), 스티비 닉스(Stevie Nicks), 세르히 바브킨(Сергій Бабкін)과 함께 노래 하나를 만들어 우크라이나 정부의 플랫폼인 United24에 올리기도 했었다. 이번 5월 18일, 현재 러시아 바깥에서 거주중인 그레벤쉬코프는 "러시아군에 대한 비방과 명예 훼손"이라는 죄목으로 기소당했다.
그레벤쉬코프가 '외국 요원'이라고 규정되었던 날, 부마가(Бумага) 밎 소타.비전(Sota.vision) 등 여러 독립 언론사들, 모스크바의 앵글로-아메리칸 학교, 모스크바의 전 최고 지도자 랍비 핀차스 골드슈미트(Pinchas Goldschmidt) 등 여러 인물들과 단체들 또한 똑같이 외국의 사주를 받은 요원으로 규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