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rek de Koff [The Quietus] 2016년 6월 1일 The Quietus , June 1st, 2016 07:12
캘리포니아 출신으로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 Derek de Koff는 그가 언제나 가장 좋아했던 밴드 Coil과의 인터뷰 기회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멋졌던 순간"이라고 말했다. John Balance와 Peter "Sleazy" Christopherson으로 구성된, 잉글랜드 출신의 인더스트리얼/실험적 노이즈 그룹 Coil은 de Koff에게 있어 오랫동안 선망의 대상이었으며, de Koff는 2001년에 마침내 Coil을 직접 만나 인터뷰할 기회를 얻게 되었던 것이었다. 당시 Coil은 뉴욕 시의 Irving Plaza에서 벌어졌던 Convergence 7 고딕/인더스트리얼 음악 페스티벌에 참석하고자 뉴욕에 와 있던 상황이었고, 이 인터뷰는 페스티벌이 끝난 직후 맨해튼의 Nothing Records에서 진행되었다. de Koff에 따르면:
"이 인터뷰는 내가 둘을 직접 볼 수 있었던 유일한 순간이었고, Irving Plaza에서의 공연은 - Covergence 7 페스티벌의 일부였다 - 내가 이들의 공연을 직접 볼 수 있었던 유일한 순간이었다. 이 날 공연은 [Constant Shallowness Leads To Evil], Coil 고유의 '내장을 찢어발기는' 기준에서도 특별히 더 영혼을 거칠게 뒤트는 듯한 앨범을 중심으로 펼쳐졌던, 굉장히 날카로웠던 1시간짜리 무대였다. "Amethyst Deceivers"같은 고전적인 명곡 및 [Horse Rotorvator]의 "Blood From The Air"로 시작하여 "I Am The Green Child"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허공으로 울려퍼졌으며 결국에는 "Tunnel Of Goats", 귀를 찢어버리는 아날로그 신디사이저의 폭격으로 그 절정에 이르렀었다. 공연이 끝나갈 무렵 John Balance는 구속복을 입은 채로 흰색 팬티만 (완전히 흰색은 아니었는데, 무대 위에 흩뿌려진 소품 피로 붉은 점들이 박혀 있었다) 입은 두 젊은 남자들의 부축을 받으며 철로 된 판에 스스로 머리를 박아대면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Peter "Sleazy" Christopherson은 Balance가 계속해서 철판에 머리를 처박아대는 옆에서 무심하게 맥북을 만지작거렸으며, Balance의 머리는 타악기와 같은 소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 Balance의 이마에 묻은 피는 무대용 소품 피가 아닌 것만 같았다. 공연의 클라이막스에선 Captain Beefheart의 대사 "God Please Fuck My Mind For Good"이 스크린에 번쩍였다. 공연은 1시간 가량 진행되었고, 다 끝나고 난 후, 관객들은 마치 도살장을 이제 막 통과한 사람들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마 이 공연이 Coil의 유일한 미국 공연이었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이들을 만난다는 사실에 굉장히 긴장했었지만, 둘은 너무나도 친근하고 개방적인 사람들이었으며 인터뷰는 금세 내 떨리는 손에 잡혀 있는 종이쪼가리에서 벗어나 그냥 전혀 형식적이지 않은, 친근한 대화가 되어버렸었다."
이 인터뷰는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Coil 팬사이트에 올려 져 있었던 인터뷰이다. [The Quietus]에 올리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 준 Derek에게 감사를 표한다.
Derek de Koff> 조금 긴장했는데, 양해를 바란다. 나는 Coil 작품의 열렬한 팬이다.
Peter Christopherson> 괜찮다 - "가장 열렬한 팬"만 아니라면야.
Derek de Koff> Coil 공연은 환상적이었다, 마지막 부분 중 일부는 놓쳐버렸지만. 친구가 상태가 안 좋아져서 나와야만 했었다: 빈 속에 보드카 김렛을 세 잔이나 마셨으니 말이다. "I Am The Green Child" 즈음 해서 탈이 났었던 것 같다.
Peter Christopherson> 흠, 그렇다면 꽤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Derek de Koff> 그래서, 나는 당신들이 다시 한 번 '피'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이에 대해 이야기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John Balance> 눈치챘나?
Derek de Koff> 음, 당신(Balance)이 피로 범벅이 된 모습을 담은 새 티셔츠도 나왔고, [Musick To Play In The Dark]의 빈티지 에디션으로 당신의 피로 앞 표지가 얼룩진 판본이 나오기도 하지 않았나.
John Balance> (소매를 걷어올려 흉터로 찢어져있는 두 팔을 보여주었다)
Derek de Koff> 아! 농담이 아니군.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John Balance> 사실 그저 좌절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좌절감이 정신적인 충격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나는 집에 있는 유리창에 내 머리를 처박았고, 다행히 이 유리창이 빅토리아 시대 유리라서 날카로운 파편이 아닌 뭉툭한 덩어리로 부서졌다, 신이 도우신 기적이었지. 여신이 도우셨던 기적. 그래서 덕분에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뭐, 조금은 다쳤었지만, 크게는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아래층으로 내려갔고 유리를 가지고 내 팔을 스스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 때 나는 이미 마법(magick)적인 무언가로 빠져들고 있는 상태였다. 나는 "지금 진정한 분노를 느끼고 있어. 무언가로 변화해야 하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군"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 그는 - Peter는 - 우연하게도, 선견지명을 발휘하여 비어있는 앨범 커버를 가져와서 내 얼굴과 팔에 문질러댔던 것이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부서진 유리조각들을 가지고 녹음을 했다. 나는 '붉은 분노' 그 이상의 상태에 도달할 수 있었다. 어떤 상태인지 아는지? 그냥 계속 이어졌었다. 다시 진정하는 데에만 1주일 정도가 걸렸다.
Peter Christopherson> 가끔은 악마들이 유용할 때도 있다. 하지만 가끔은 악마들이 우리로 하여금 실제적인 일을 못 하게 방해하기도 하고.
John Balance> 우리는 "내면의 악마에게 먹이를 줘라"라는 나름의 이론을 가지고 있다. 일부 악마는 명백히 추방해야 마땅한 녀석들이다 - 특히 다른 누군가가 당신에게 준 악마라면 더 그렇다. 그리고 신이 주신 악마들이 있다. 그리고 당신이라는 존재의 유전적인 이유로 태어날 때부터 물려받은 악마들도 있고. 하지만 스스로 만들어 낸 악마도 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악마들을 가지고 있으며 이 악마들을 이용한다. 그들은 '용기'(grit)다. 동질성과 사물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어째서 요즈음엔 모든 것들이 이렇게나 안전하게 느껴지는지, 사람들이 충분한 용기를 갖고 있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Peter Christopherson> 뱃속에 모래알갱이(grit)들을 가지고 있어야만 하는 동물들 같은 것이다.
John Balance> 닭이다!
Peter Christopherson> (웃음) 닭 비슷한 동물일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예전에 누군가와 알코올/마약 중독 문제를 겪다가 재활하는 음악가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물론 건강의 측면에서야 정말 좋은 변화겠지만, 그렇게 재활을 하고 나면 어쩐지 사람이 지루해지게 되곤 한다.
Derek de Koff> 실제로 그렇다. 어째서 그렇게 된다고 생각하는지?
John Balance> 흠, 나도 재활치료를 받아본 적이 있는데, 나에게는 진짜로 성가시는 걸림돌이었다. 중독에서 벗어나 깨끗해진다는 건 결과를 두 눈으로 직접 보게 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가족들에게도 좋고, 모든 감정적인 폭발들이 멈추게 되기도 하지만 - 하지만, 나는 모든 사람들이 어딘가에는 중독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측면에서는 '선물' 혹은 '축복'이라고도 생각한다, 나는 중독으로부터 음악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기에.
Peter Christopherson> 중독이란 우리가 감정이나 기분을 느끼는 방식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변화를 달성하기 위해 무엇을 사용하느냐의 문제이기도 하고. 모든 사람들이 전부 자신이 감정이나 기분을 느끼는 방식을 변화시키고 싶어한다. 인간의 본성 중 하나인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것이 인간만의 특성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동물들도 그런다고 본다.
John Balance> 그리고 물론, 인간 또한 동물이다.
Peter Christopherson> 물론 그렇다. 우리가 만들어내려고 노력하는 음악은 청자들이 감정과 기분을 느끼는 방식, 청자들이 이 세상에서 자신들이 처해 있는 환경과 장소를 이해하는 방식 자체를 영구적이고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음악이다 - 바라건대 청자들의 건강에 해가 되지는 않는 방식의 변화로.
Derek de Koff> [Musick To Play In The Dark] 1과 2에서 Coil은 의식적으로 '달의 에너지'를 가지고 연주를 하고 있다. 보다 더 부드러운, 보다 더 물이 차오르고 빠지는 것만 같은 음향으로. 하지만 [Constant Shallowness Leads To Evil]은 부드러움과는 정 반대에 위치하는 것 같은 앨범이다. [Constant Shallowness Leads To Evil]에서는 어떤 개념을 가지고 연주하고 있는 것인지?
John Balance> '낭비'가 내 답변일 것이다. 모든 것들이 너무 많이 존재하고 있다.
Peter Christopherson> 잡지가 너무 많다! 서점에 가도 정말로 원하는 잡지는 결코 찾을 수가 없을 정도이다. 정말 너무 많다. CD도 너무 많다. 슈퍼마켓에서는 선택의 폭이 너무 넓다. 어떤 브랜드를 사야 하는지 결정을 절대로 내릴 수가 없다...
John Balance> 언젠가 구강 청결제를 사려고 했는데, 온갖 구강 청결제들이 벽면 하나 전체에 진열되어 있었다. 심지어 뒤를 돌아보니 청결제가 더 있더군! "하나만 필요한 거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Peter Christopherson> 하지만, 우리는 '선택'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John Balance> 그렇다 - 하지만 또 동시에, 이번 앨범은 우리를 압도하고 있는 '선택'에 대한 반응이기도 하다.
Peter Christopherson> 이 모든 것들을 고려하는 데에 시간이 너무 많이 낭비되어 중요한 것들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 자체를 못 할 정도가 된다.
Derek de Koff> 너무 많은 선택지를 가지게 되면 사실상 선택지가 충분하지 않을 때와 같은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John Balance> 그렇다. 명백히. 이번 앨범은 바로 그런 것들, '소비주의'에 대한 우리의 불만에 대한 것이다. 공산주의자라던가 그 비슷한 느낌으로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내가 공산주의자가 아니니까. 그냥 우리 주변에 너무 많은 물건들이 존재하며 사람들 - 사람들 - 은 잊혀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노숙자라던가 약물 중독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맞지만 - 그 사람들도 '사람'이다! 언젠가 그런 상태에 처해 있는 19살짜리 청년들 두 명과 이야기를 나눴었는데, 그들이 말하길, "그 누구도 우리같은 사람과는 어떤 관계도 맺지 않으려고 시도조차도 하지 않았다"라고 말하더라. 물론, 할머니 정도를 제외하고 말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이유로 우리가 투어를 돌기 시작한 것이기도 하다. 관객들의 냄새를 맡기 위해서가 아니라 - KISS나 할 법한 끔찍한 말이라는 것을 안다 - 실제 사람들을 직접 만나보고 그들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Derek de Koff> 이번 공연이 '판'(Pan)에 대한 기도라고 말했었는데. 나는 이 말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다, 판과 패닉(panic) 사이의 관계를 생각해 보았을 때.
John Balance> 우리의 존재의 핵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러한 것을 '인간 짐승'(human animal)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본능적이며, 음향에 반응하고 빛에 반응하며, 패닉에 빠지거나 희열을 느끼는 식으로 반응한다 - 혹은 둘 다를 느끼면서! 그리고 이 두 가지는, 잘 알다시피, 서로 뒤바뀔 수 있는 것들이다. 바로 그러한 것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공연에 관해서는 상당한 정도의 심사숙고를 거치고 있다. 그냥 불쾌감만을 유발하기 때문에 너무 높은 주파수는 사용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 부분 (가슴을 가리켰다) 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부분의 차크라 시스템으로 들어가고 있다. 일종의 '심장 차크라'이다, 그리고 또한 '에너지'이기도 하다.
Derek de Koff> 음악을 통해 일종의 원초적인 공포를 불러일으키려 하는 것인지?
John Balance> 아니 - 원초적인 '반응'을 바라고 있다.
Peter Christopherson> 어떤 공연이던지간에, Coil 말고도 다른 밴드들의 공연 및 심지어 클래식 공연까지도, '최고의 순간'은 스스로를 잊어버리게 되는 순간이다. 자신을 둘러싼 것들에 대해서는 전혀 의식하지 않게 되며 음악 그 자체에 완전히 흡수되는 그런 순간. 최근의 록 음악에서는 그런 순간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지난 2~3년간 공연을 한 20개 정도 가 봤는데, 단 한 번도 정신을 잃은 적이 없었다.
John Balance> 지루함에 눈물이 날 정도다.
Peter Christopherson> 그리고 나는 그런 변화가 아주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Coil의 목표는 우리 스스로가 음악 속에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게 되는 바로 그 방식으로 청자들 또한 스스로를 잃어버릴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목표를 달성하려는 노력을 언제나, 항상 해 왔었다. '트랜스 상태'라던가 혹은 '정신의 집중'이라고 하던가 - 어떤 방식으로 묘사하던가에 상관 없이 - 무언가 더 큰, 더 거대한 것이 장악하게 되는 것이니. 관객들에게도 그런 느낌을 조금이라도 전달할 수 있다면,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 된다. 그 순간에 반드시 '즐거움'을 느껴야만 하는 것은 아니며 그러지 않을 때도 많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후 뒤를 돌아보았을 때 "이런, 그 때 뭔가가 확실히 있었군. 무언가를 확실하게 느꼈었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것이다.
John Balance> 그렇게 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Peter Christopherson> "내 마음을 움직였어. 그리고 대체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 어쩌면 평생동안 '그 것'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무언가가 일어났었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인 것이다.
Derek de Koff> 내가 Coil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모든 음악은 청자로 하여금 자기 자신의 상상에 다시 닿을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Peter Christopherson> 전적으로 동의한다.
Derek de Koff> 물론, 최근 나오는 음악의 대부분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상상력이 결여되어 있다. 하지만 당신들은 여전히 상상력으로 가득한 음악을 만들고 있으며, 거의 불가능하다고 밖에는 여겨지지 않는 - 실제로는 존재할 수 없는 것만 같은 - 음악, 특히 청자에게 연결되는 방식에 대해서는 불가능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을 음악인 것이, 나는 매번 놀라기만 할 뿐이다. 정말로 대단하다. 거의 신의 선물과도 같은 음악이다.
Peter Christopherson> 자기 자신의 내면에 이미 존재하고 있던 장소에 다시 연결되는 것 같다.
John Balance> '그러한 것'을 이미 내면에 가지고 있다면, Coil이 하는 것은 그저 진동 주파수를 조금만 더 높게 설정하는 것 뿐이다.
Peter Christopherson> 하지만 이는 물리적인 것이 아니다... 물리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감정적이거나 정신적인 상태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정확히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나도 모른다. 오실로스코프에 띄워 놓고 무엇인지 분석한다거나 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그저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John Balance> 또한 본능의 문제이기도 하다.
Derek de Koff> Coil 작업은 굉장히 본능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했었는데,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John Balance> 아이디어를 잔뜩 적어 둔 공책이 있는데, 사실상 손에 잡히는 건 무엇이든지 적어내려 간 것에 가깝다: 대지와 천상으로부터 영감을 얻으려고 노력하면서. 그리고 어떻게든지 간에 그 아이디어들을 실제 물체로, 혹은 음향적 물체로, 혹은 음반으로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한다. 기본적으로 이러한 일들이 Coil이 항상 해 오던 작업이었다. 뭐랄까 - 사실 우리가 창조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존재하는 것들이다. 우리는 그저 그 것들을 조립할 뿐이다.
Peter Christopherson> 가끔은 곧 시작될 트랙에 대한 느낌에 대해 논의하기도 한다. 사진 하나라던가, 느낌이라던가, 아니면 영상의 한 순간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John Balance> 가끔은 자리에 앉아 온갖 변수들을 적어내려가기도 한다: 이건 이래야 하고, 이건 저래야 하고, 이건 '달'을 반영해야 하고, 이건 달의 느낌이어야 하고. 아니면 작업하는 동안 향을 피운다거나 개들을 방 안에서 마음대로 뛰어놀게 한다거나 한다 - 아니면 정원에다가 개들을 가두어 두기도 하고. 그런 것들이다. 아니면 1주일 내내 당근만 먹다가 무언가를 하기도 하고. 우리 내면에 있는 어떤 화학작용을 의도적으로 바꾸기 위해서.
Peter Christopherson> 음악 자체에 대해 말하자면, "리듬 패턴을 정하고 베이스를 설정해 보자"같은 식으로는 진행하지 않는다. 우리는 거의 무작위적일 정도로 장비, 필터, 컴퓨터 프로그램들을 조합해 보고는...
John Balance> 무언가가 맞아떨어질 때가 있다.
Peter Christopherson> 그렇게 무작위적으로 시도해 보다가 무언가 마음에 드는 것이, 좀 더 발전시키고 싶은 것이 만들어지게 된다. Coil 작업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선택의 과정'일 것이다.
John Balance> 다시 한 번 선택의 문제가 되었다.
Peter Christopherson> 이게 맞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무언가를 듣고, 그 것을 가지고 좀 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Derek de Koff> 더 앞으로 나아간다?
John Balance> 암스테르담에서의 공연이었는데, 음량이 너무 큰 나머지 관객 중 여자 한 명이 거의 실신했었다. 그래서 그녀의 친구들이 데리고 나가서 산소를 깊이 들이마쉬게 했다. 그리고 친구들이 그녀에게 물어보았는데, "집으로 갈래?",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 공연장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어." 그렇게 그녀는 다시 들어왔다. 그리고 다시 기절했다!
Derek de Koff> 나랑 비슷한 사람인 것 같다. 공연이 다 끝나고 그 여성과 얘기를 해 봤었는지?
John Balance> 아, 물론이지. 그녀는 공연이 최고였다고 말했다!
Peter Christopherson> 그렇지, 그리고 그 후로 공연용 보험에 가입했다. (웃음)
Derek de Koff> Coil 공연으로 여러 군데를 다녔을 텐데. 지역별로 반응이 다르다던가 하는 부분도 있는지? 예를 들어 암스테르담의 관객들과 이 곳의 관객들 사이의 차이점이 있는지?
Peter Christopherson> 엄청 다르지는 않다. 놀랄 정도다. 몇몇 하드코어 팬들은 5,000 마일이 넘는 거리를 달려 와 우리의 공연을 보러 오는데, 환상적이다. 그리고 우리와는 덜 친숙하거나, 호기심을 갖고 보거나, 엄청난 충격을 받거나 하는 사람들이 있다.
John Balance> 우리와 거의 함께 투어를 돌고 있는 한 남자가 있다 - 사실 그의 이름조차도 모른다 - 그는 언제나 중앙에 서서 이렇게 바라보고만 있는 사람이다: (팔짱을 끼고 노려보았다). 그리고 이 남자는 말 그대로 모든 공연에 온다! 그를 보며 항상 생각했다, "Coil 공연을 싫어하는 게 분명한데! 대체 어째서 매번 공연에 오는 거지?" 하지만 마지막에는 그가 나에게 다가 와 공연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는 정말 멋진 사람이었다. 이게 하나의 반응일 것이다.
Peter Christopherson> 그러나 또한, 공연에 와서 숨겨진 메시지를 찾아내기 위해 혈안이 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우리가 어떤 메시지들을 숨겨두었다고 생각한다 - 그리고 물론 우리는 몇 개의 메시지를 숨겨놓기는 했다 -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러다 보면 Coil을 과대해석하기 십상이라고 생각한다. 가끔은 그냥 노이즈일 뿐이다. 그 정도로 단순하다.
Derek de Koff> 당신들은 함께 음악을 만든 지 거의 20년이 다 되었다. Coil의 역사 중 특별히 애착을 갖는 시기가 있는지?
Peter Christopherson> 나는 언제나 지금 하고 있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한다. 클리셰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정말 너무나도 많고 다양한 측면들과 장소들을 거쳐 왔었다. 똑같은 장소에 계속 머물러야만 한다면 나는 아마 미쳐 돌아버릴 것이다.
John Balance> 정체(stasis).
Peter Christopherson> 우리는 언제나 새롭고 자극적인 것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Derek de Koff>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
John Balance> 흠, [Musick To Play In The Dark] 1편과 2편을 만들었으니, 하나 더 만들게 되지 않을까 싶다.
Peter Christopherson> 흐음, 나는 처음 듣는 얘기인데.
John Balance> 러시아에서 Coil의 앨범들이 불법 복제판으로 너무 많이 돌아다니는 것 때문에 러시아 버전 컴필레이션을 2개 만들어 정식으로 발매했다. 하나는 우울한 쪽이며 다른 하나는 미친 쪽이다. [Musick To Play In The Dark] 1편에서 상당수를 가져다 썼다. 꽤나 마음에 든다.
Peter Christopherson> 나도 좋아한다. [Musick To Play In The Dark]는 어둡고 음울하지만 동시에 친밀하기도 한 어떤 장소로 청자를 데려가는 앨범이다. 그리고 나서, Coil의 "노이즈"가 등장해 또 다른 장소로 데려간다 - 일종의 전투 같다, 우리끼리 싸우는 것은 아니지만...
John Balance> 나는 뇌를 강간하는 듯한, 뒤틀린 음악들을 정말 좋아한다. 하지만 내성적이고 내면적인 작업들도 정말로 좋아한다.
Derek de Koff> 그 두 가지 스타일이 서로를 보완하여 보다 더 넓으면서도 더 모순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 주는 것 같다.
John Balance> 하나의 총체적인 작품이다. 죽은 육체의 작품. (웃음)
Derek de Koff> [Constant Shallowness Leads to Evil]과 비슷한 작업도 더 진행할 예정인지?
John Balance> 그 연장선상에서 하나 더 발매할 계획이다.
Peter Christopherson> (한숨) 그것도 나는 모르는 얘기다. 뭐를 말하는 거야?
John Balance> [Wounded Galaxies Tap At The Window], William Burroughs에게 바치는 헌정 작품이다.
Derek de Koff> 당신들은 Coil 음악 속에 당신들의 영감의 원천들을 인용하는 것을 항상 추구하고 있는 것 같다. 라이너 노트나 제목에서부터 여러 이름들이 등장한다: William Burroughs, William Blake, Austin Osman Spare, Alexander Shulgin...
Peter Christopherson> William Burroughs나 Alexander Shulgin같이 어린 시절 우리에게 엄청나게 큰 영향을 끼쳤던 사람들이 몇 있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너무나도 강력한 영향을 끼쳤기에, 우리는 뭐랄까 일종의 의무감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 이들의 영향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파해야한다는 의무를. 그리고 그들이 우리에게 끼쳤던 정도로 강력한 영향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반드시 애들일 필요는 없지만, 우리에게 새롭게 다가오는 사람들에게라면 누구에게나 비슷한 영향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뭐랄까 좀 유치한 비유겠지만,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에게로, 이러한 것들을 전달해야만 하는 것이다.
John Balance> 일종의 유산(legacy)이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며, 우리에게는 우리 나름의 해석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정보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접근 가능하도록 제공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좋은 부분은 우리끼리만 알게 내버려두고. (웃음)
Derek de Koff> William Burroughs는 Coil이 항상 작업해 온 주제들, 특히 '환각에 진리가 있다'라는 아이디어에 관해서는 평생을 믿었던 사람이었을 것이다. 최근 의도적으로 약물 사용을 줄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약물에 완전 절여져 정신 착란에 빠지는 것의 "이점"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지?
John Balance> 흠, 그렇다 해도 계속 그 상태를 유지할 수는 없었다. 대가를 치러야만 하는 법이다.
Derek de Koff> '몰입'이 위험해지고 자기파괴적이 되는 지점은 언제라고 보는지? 창의력에 좋은 영향을 주는 것에서 방해가 되는 것으로 변하는 시점은?
John Balance> 음, [Love's Secret Domain]을 끝냈을 때 우리는 상당한 기간 동안 실제로 녹음을 하지 않으며 보냈었다. 제법 긴 공백기였다. 지금은, 우리 나이 때문인지 아니면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시대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은 이 잃어버린 시간들을 만회하고 무언가를 달성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간절해졌다.
Peter Christopherson> 대체로 나는 그러한 경험들 - 약물 경험들, 환각 경험들 - 은 꼭 가 봐야만 하는 경험들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John Balance> 모든 사람들이 가 봐야만 하는.
Peter Christopherson> 하지만 그 것을 반복해서 계속 해야만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 것이 존재한다는 것만 알고 있다면 상관없다.
John Balance> 그리고 그 것이 주는 지식을 흡수한다면.
Peter Christopherson> 똑같은 문으로 계속 돌아가는 것은 시간 낭비다. 스스로의 자원을 낭비하는 꼴인 것이다.
John Balance> 하지만 몇몇 것들, 실로시빈(Psilocybin) 버섯 같은 것들은 매번 새로운 무언가를 가르쳐 주긴 한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