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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top Making Sense] 11. GRAZHDANSKAYA OBORONA (Гражданская Оборона)
    [Stop Making Sense] 2023. 3. 17. 06:48

    [Stop Making Sense]는 자유연재물로 제가 소개하고 싶은 음악들에 대해 얘기해 볼 예정입니다. 아무래도 '날선' 음악에 대해서 주로 다룰 것 같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19세 미만인 분들께서는 접하면 안 되는 음악들도 많이 다룰 예정이니, 19세 미만인 분들께서는 글도 보지 마시고 음악도 접하지 마시길 정중히 부탁드립니다. 또한 문체는 존칭을 생략하였으니, 이 또한 양해 부탁드립니다.

     

    "생각해 보세요, 도대체 어떻게, 어떻게 욕을 퍼붓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이 세상의 온갖 말도 되지 않는 것들이 그렇게 나를 망가뜨렸고, 바로 그날 이후로 난 말짱하게 말라 있는 날이 없지요. 전에는 내가 매우 말짱하게 말라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나는 내가 마신 것과 어떤 순서로 마셨는지쯤은 기억하곤 했습니다만, 이제는 이것마저도 기억할 수가 없다고요…… 내게는 모든 것이 오르락내리락 합니다. 삶의 모든 것이 어쩐지 오르락내리락 합니다. 때로는 1주일을 연달아 마시지 않기도 하고, 그런 다음엔 40일 동안 마시기도 하고, 그 후에 다시 4일간 마시지 않고, 그런 다음에 다시 여섯 달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마시고… 이제는…"

    -베네딕트 예로페예프, 박종소 역, "모스크바발 페투슈키행열차" 중

     

    0. Yegor Letov와 그의 밴드 Grazhdanskaya Oborona("민방위"라는 뜻이라고 하며, 줄여서 GrOb로 표기하기도 한다. GrOb는 러시아어로 시체가 들어가는 "관"이라는 뜻이다)는 아직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즉 소련이 존재하던 80년대 초중반부터 활동을 시작하여 러시아 펑크 록의 첨병이자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던 음악가들로, 중간 중간 휴지기가 있기는 했으나 Letov가 사망한 2008년 활동을 끝냈다. 무정부주의와 허무주의, 소련에 대한 비난으로 가득했던 가사와 서구의 개러지 및 펑크 록 영향을 강하게 받은 음악 스타일은 소련의 비밀경찰 KGB가 Letov와 GrOb에게 주목을 하도록 만들기에 충분했고, 실제로 Letov는 몇 달간 정신병원에 강제로 수용되었으며 GrOb의 멤버 중 한명은 안좋은 심장에도 불구하고 강제징병을 당했다. 정신병원에서 풀려나온 Letov는 KGB의 추격을 피해 러시아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음악을 만들었으며, 미하일 고르바초프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의 영향으로 KGB의 압박이 끝난 1988년 이후에야 제대로 된 음반을 만들 수 있게 된다. 1989년 Letov의 다락방에서 제작한 4장의 정규 앨범들(Здорово и вечно, Армагеддон-Попс, Война, Русское поле экспериментов)은 GrOb의 가장 훌륭한 음반들로 평가되곤 하며, 소련의 붕괴와 러시아 펑크 록의 폭발을 음악적으로 상징하는 음반들로 여겨지곤 한다. 

     

    1. GrOb의 음악은 소련 말기-러시아 초기의 시대를 상징하고 풍미했던 음악으로, 다분히 시대적인 의미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다른 시대와 다른 국가를 살아가고 있는 외부인들이 우리의 많은 시대들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는 것 처럼, 우리도, 적어도 필자가 GrOb의 시대적인 의미들에 대해서 수박 겉핥기 이상으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실제로 GrOb가 취했던 정치적인 입장들과 영향력은 꽤나 복잡하며, 가사가 중요한 음악인데도 불구하고 영어로 번역된 가사가 거의 없다). 핑계가 길었는데, 그러니 GrOb의 음악을 일단 들어 보도록 하자.

     

    2. 아마도 80년대 GrOb의 음악적 특징을 대표할 만한 곡들은 처음 올려둔 "Бери Шинель"(Bob Dylan의 "Like a Rolling Stone"의 커버곡이다)과 "Моя оборона"일 것이다. 강렬하고 날 선 질감의 포크풍 기타와 강박적일 정도로 단조로운 리듬파트 위에서, Letov의 목소리는 서정적인 읊조림과 야수같은 표효를 동시에 보여준다. GrOb의 음악은 그들이 불법으로 들여와 감상했던 서구권의 다양한 음악들을 소재로 삼아 진행되는데, 하드코어 펑크("Заплата На Заплате", "Я не верю в анархию"), 팝 펑크("Всё летит в пизду", "Армагеддон Попс"), 포크("Насекомые", "Непонятная Песенка"), 인더스트리얼 및 고딕 록("Новая правда", "Здорово и вечно"), 노이즈 록("Энтропия") 과 같은 다양한 장르들은, 그러나, 고통이나 회한 또는 조소에 가득 찬 듯한 Letov의 절규와 함께 노이즈의 폭풍 속에 파묻히게 된다("Всё как у людей"). 이들의 연주는 에너지로 가득하지만 힘이 넘칠때 만큼이나 파괴적일 때 또한 빈번하며, Letov의 보컬은 모든 것을 엎어버리려는 듯 과격하지만 때때로는 처절하고, 허무하다. 

     

    3. 사실 Yegor Letov 라는 개인의 행적은 다소 수수께끼에 둘러싸여 있다. 누구보다도 소련의 붕괴를 원했던 그는 소련 해체 이후 돌연 극단적 국수주의와 극사회주의로 정치적 노선을 변경하며 National Bolshevik 당의 설립에 기여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게 된다. 한때 'Grandpa' 레닌과 소련 전체를 비꼬기 위해 불러진 그의 노래("Всё идёт по плану", Everything Goes According to a Plan 이라는 뜻이다)는, 소련 해체 이후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불리게 되며 레닌과 소련을 추억하는 노래로 바뀌게 되어, 80년대부터 Letov를 지지했던 수많은 팬들은 역겨움에 차서 떠나게 되었다. 마침내 그는 모든 정치활동들을 "쓸모없고 멍청한 짓"이라고 표현하며 손을 떼게 되었고, 음악활동만을 계속하다가 2008년 심장문제로 인해 43세를 끝으로 사망하게 된다. 

     

    4. 소련 시절을 거쳐 온 많은 예술가들이 그러했듯이, Letov가 영향을 받은 예술가 또는 밴드 멤버들 중에는 자살하거나 KGB에 의해 직간접적으로 사라지게 된 사람들이 많았으며, 그 또한 정신병원에 갇혀 자백제를 먹는 동안 "모든 것이 무의미해지는" 자살충동의 경험을 했다고 한다. 한때 그는 스스로를 "나는 항상 모든 것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이라고 묘사한 적이 있다. 그가 어떤 생각을 하며 음악을 만들고 연주했는지는 오늘날 만리타국의 일개 음악 애호가인 필자가 도무지 알 길이 없지만, "Русское Поле Экспериментов"(Russian Fields of Experiment 라는 뜻이다) 의 강렬하고 폭발적인 10여분간의 노래를 자조섞인 웃음으로 끝마치는 Letov의 모습은, 어째서인지, 잔뜩 지쳐있는 말년의 쇼스타코비치를 떠오르게 한다.

     

    "오늘날 이 나라에는, 사람들이 록 음악으로 돈을 버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사실상 신성모독이나다름없다. 사람들은 디스코텍에 가는 느낌으로 공연장에 와서 단지 뛰어오르고 소리나 질러댄다. 아니면 마치 프로선수같은 사람들이 와서는 특정한 아르페지오나 음색을 들으러 온다. 나는 록이 음악이나 미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록이 차라리 종교적인 무언가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가 노보시비르스크의 지하실에서 연주했던 그런 음악을 하고 싶다. 차라리 열명 남짓한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하는 것이 더 좋은데, 그 사람들은 진심으로 나를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 Igor Fyodorovich "Yegor" Letov(1964. 9. 10 ~ 2008. 2. 19), Grazhdanskaya Oborona, Interview with Maximum Rocknroll(1991)

     

    ※Rest in peace, Yegor Let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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