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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top Making Sense] 10. XINLISUPREME
    [Stop Making Sense] 2023. 3. 17. 06:47

    [Stop Making Sense]는 자유연재물로 제가 소개하고 싶은 음악들에 대해 얘기해 볼 예정입니다. 아무래도 '날선' 음악에 대해서 주로 다룰 것 같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19세 미만인 분들께서는 접하면 안 되는 음악들도 많이 다룰 예정이니, 19세 미만인 분들께서는 글도 보지 마시고 음악도 접하지 마시길 정중히 부탁드립니다. 또한 문체는 존칭을 생략하였으니, 이 또한 양해 부탁드립니다.

     

    "만약 이 세계의 모든 것들이 동시에 절규하기 시작한다면, 그건 그저 소음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일반적인 사람들 또한 그것은 소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각각의 절규 자체는 소음이 아니라 한 개인의 진실한 바램이라고, 즉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

    나의 음악을 만드는 것에 있어, 나는 전 세계의 절규, 시공간을 초월한 과거-현재-미래의 절규를 가능한 한 전부 모아 동시에 울려 퍼지게 하고자 한다. 미친 소리 같지만, 나는 이런 음악을 계속 만들고 있으며, 그것에는 어떤 분명한 '희망'이 있다고 믿는다."

     - Xinlisupreme, interview with ototoy

     

    -. 

    이런 장면은 어떤가?

    어두운 밤, 검소하지만 제법 잘 빠진 검은 정장 차림의 두 형사가 한 빌딩으로 향한다. 이 빌딩의 23층은 I.D.M industry의 사무실로써, 완전무균 환경에서 전 세계의 성실한 애청자들을 위한 전자음악들을 제작하던 실험실이었다. 하지만, 최첨단 방독면을 쓰고 주위를 둘러보는 형사들이 볼 수 있는 것들은, 잘려진 전선 무더기들, 부서진 샘플러들, 전소된 노트북들과 짓이겨진 CD들 뿐이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이제는 아무것도 없었다. 2번 형사는 감식반에게 범죄현장을 넘기기를 제안하고, 형사들은 열려져 있던 문을 닫으며 말없이 떠난다. 닫히는 문에는 아직 채 마르지 않아 뚝뚝 떨어지는 페인트로 글씨가 쓰여 있다

    'XINLI SUPREME'

    -. 

    아니면, 이런 장면은 어떤가?

    한 평론가가 극동지방의 수수께끼와 같은 밴드의 싱글 곡을 듣고는 큰 기대에 부풀어 그들의 정규 앨범을 구해 동료들과 함께 듣고자 한다. 그는 이 앨범이 매력적인 정신질환으로 가득 차 있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재생버튼을 누른 후 쏟아지는 음은 광란의 진공드릴 타악기와 뒤에서 가만히 잠복하고 있는 얄팍한 3음 기타 드론, 피가 얼어붙는 듯 한 비명과 절규하는 화이트 노이즈 덩어리였다. 혼란과 공포가 청자들을 장악하기 시작하고, 몇 명은 이미 견디지 못하고 나가버렸으며, 노이즈가 점차 정리되며 맑은 기타가 날카로운 펑크 팝 후렴구를 보여주고, 이는 광폭한 솔로 연주와 피드백으로 탈바꿈하며, 이는 다시 노이즈에 의해 집어삼켜지고, 이는 다시 완전하게 세척되며, 이는 다시 반복된다. 평론가는 4분도 안 되는 시간동안 완전하게 지치게 된다.

     

    1. XINLISUPREME은 일본 Oita의 2인조 뮤지션으로, Sigur Rós Animal Collective 등으로 유명한 영국의 인디 레이블인 FatCat Records 로 2001년 초반에 발송된 의문의 데모 테이프를 통하여 발견되었으며, 문법이 거의 맞지 않고 때때로 신랄하기까지 한 이메일을 통하여 계약을 맺고 정규 앨범을 발매했다. 위 두 장면은 이들의 음악을 접한 사람들이 XINLISUPREME을 묘사한 글을 대략적으로 요약한 것이다: 그렇다. 이들의 음악은 기본적으로 매우 시끄러우며, 파괴적이고, 섬뜩하기까지 한 음악적 테러이다.

     

    2. 그렇지만 XINLISUPREME의 음악은 단순한 시끄러움의 나열만은 아니다. 문자 그대로 갑자기 툭 튀어나온 일본의 두 청년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음악들을 한데 끌어 모아 잔인하게 씹어 먹은 후 그들만의 방식으로 바꿔버린다. 전형적인 팝 펑크의 신나고 가벼운 느낌에서부터("Kyoro", "Under a Clown") 스페이스 록 및 포스트 록이 보여주었던 우주적인 광활함과 폭발하는 서사성("Fatal Sisters Opened Umbrella"), 복잡한 전자음악적 비트와 색채("Goodbye for All", "Untitled"), 슈게이저들의 몽환적인 배경음("Suzu"), 댄스플로어로 유도하는 듯한 리듬감("All You Need Is Love Was Not True"), 그리고 월드뮤직이 보여줄 수 있는 생경함과 낯섬("You Died in the Sea", "Nameless Song")들은 참고 서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먹잇감에 불과하며, XINLISUPREME은 이 모든 요소들을 자신들의 광포한, 정말로 광포한 노이즈로 변형하고, 찢어버리고, 덮어버린다("I Drew a Picture of Myself").

     

    3. 써 놓은 글을 읽어보니 XINLISUPREME의 음악을 단순히 시끄러운 소음을 좋아하는 변태들의 난장판 정도로 묘사한 것 같다. 하지만 이들의 음악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부분은 그 엄청난 시끄러움도 아닌, 장르를 가리지 않고 차용하는 능글거림도 아닌 특유의 정서, 앨범 제목인 "Tomorrow Never Comes"가 여실히 보여주는 바로 그런 정서이다. 때로는 불안감으로 가득 찬("Symmetry"), 또한 때로는 공허함으로 가득 찬("Amaryllis") 감정들은 XINLISUPREME만이 보여줄 수 있는 진풍경임과 동시에 많은 사람들에게는 강한 거부감을, 다른 사람들에게는 강한 이끌림을 불러일으키는 요소이다. '내일'이라는 것은 절대로 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XINLISUPREME은 무섭도록 허무하고 그래서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노래(또는 소음)를 연주한다.

     

    "XINLISUPREME은 My bloody valentine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나는 Kevin Shields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90년대 Alternative rock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최고다.

    나는 최고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진짜 rock 음악은 최고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 Yasumi Okano, Xinlisupreme, interview with Only Angels Have Wings

     

    ※XINLISUPREME: Takayuki Shouji, Yasumi Oka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