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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년의 음악들
    [Lists & Charts] 2023. 3. 14. 01:16



    원래 결산은 해가 끝나고 1월에 하는데, 올 1월은 많이 바쁠 것 같아 조금 미리 하게 되었습니다.

    올해에도 즐겁게 들었습니다.


    ===================== 올해의 음반들 =====================

    Gilla Band - Most Normal

    https://youtu.be/fk_UX8sQ1LY
    "Post Ryan"

    아일랜드의 노이즈 록 밴드 (구)Girl Band/(현)Gilla Band 입니다. [The Early Years] EP를 굉장히 좋게 들었었다가 한동안 관심이 안 가는 밴드였는데, [The Talkies] 시절부터 꽤 괜찮다 싶더니 이번 앨범은 굉장히 잘 만들어졌습니다. [The Talkies]가 좀 과한 느낌인 앨범이었다고 한다면, [Most Normal]은 밸런스가 잘 잡힌, 높은 완성도를 가진 앨범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완전히 난장판을 쳐 버릴거라고 예고하는 듯이 난리를 피워대는 "The Gum"에서 갑자기 군더더기를 쫙 빼버리는 "Eight Fivers"로 넘어가는 다이내믹한 도입부도 인상적이며, "Bin Liner Fashion", "I Was Away", "Almost Soon"같은 곡들은 얼핏 들었을 땐 전혀 안 어울리는 듯한, 다소 엉뚱한 요소들을 가지고 Gilla Band의 특유의 광적인 색채에 잘 녹여낸 좋은 곡들입니다. "Capgras"같은 곡 또한 짧은 소품이지만 매력적으로 분위기를 전환하고 있네요. 하지만, Gilla Band가 항상 그래왔듯이, 앨범의 마지막 곡이 가장 극적인 순간입니다. "Post Ryan"은 Gilla Band의 특징인 전자음악적 느낌과 정신병적 분위기를 아주 잘 살린 훌륭한 곡입니다. 무턱대고 시끄러운 소음으로 무성의하게 도배만 하는 수많은 '노이즈 록' 앨범들과는 다르게, "Eight Fivers"같은 다이내믹이 잘 살아있는 전통(?)적인 노이즈 록 트랙들에서부터 전자음향의 다양한 질감과 음색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Gushie", "The Wierds", "Red Polo Neck"같은 곡들까지 선보이는데 동시에 큰 줄기를 벗어나지도 않는, 전체적으로 아주 훌륭한 노이즈 록 앨범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컬 Dara Kiely의 목소리도 [The Early Years] 시절을 생각하면 많이 안정적이고 가라앉게 되었는데, 오히려 이렇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Gilla Band의 노이즈 록에 더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밴드캠프: https://gillaband.bandcamp.com/album/most-normal


    Viagra Boys - Cave World

    https://youtu.be/oCYBYf62wns
    "Ain't No Thief"

    스웨덴의 펑크 밴드 Viagra Boys의 앨범입니다. 보컬 Sebastian Murphy의 대단한 존재감과 웃긴 뮤직비디오 등이 눈에 먼저 띄는 앨범인데, 처음에는 그냥 쉽게, 술술 넘어가는 무난한 댄스 펑크 앨범인 것 같다가도 막상 여러 번 듣다 보면 상당히 잘 짜여져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되는 훌륭한 앨범입니다. 이들의 첫 앨범 [Street Worms]를 들어봤었을 때 괜찮은, 강렬한 순간들이 많이 있지만 정돈이 덜 되었다는 인상을 받았었는데, [Cave World]는 좀 더 정제되었고 정돈되어 있는, 밴드로써 성숙해진 앨범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The Stooges나 Von LMO같이 과하게 놀아제끼는 밴드들이 생각나기도 하고, mclusky같은 신랄한 노이즈 록 밴드가 생각나기도 하는데, 무엇보다도 먼저 [Cave World]는 아슬아슬한 선 위에서 잘 뛰어다니는 앨범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스타일의 풍자가 너무 진지해지거나 너무 싸구려같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보통 밸런스를 잘 잡아서 바깥에서 봤을 때 100% 진심인지 아니면 100% 장난인지 분간이 잘 안 되게 해야하는 경우가 많다고 보는데, Sebastian Murphy가 이 밸런스를 상당히 잘 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Creepy Crawler", "Ain't No Thief"같은 곡을 듣다 보면 Sebastian Murphy가 진짜로 이렇게 생각하는건지 아니면 아주 대놓고 비웃고 있는건지 가끔씩 구분이 잘 안 될 정도인데,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앨범에서 가장 훌륭한 순간은 "Punk Rock Loser"가 아닌가 싶습니다. 올해 가장 재미있게 들었던 앨범입니다.
     여담이지만 갑자기 뱃살이 늘어난 Sebastian Murphy의 외모조차도 [Cave World]를 더 괜찮은 앨범으로 만들어주는 요소가 아닌가 싶습니다. 라이브 영상을 보는데 관객석으로 내려갔다가 낑낑거리며 무대에 힘들게 올라가는 모습이 어째선지 Viagra Boys의 음악하고 정말로 굉장히 잘 어울리더군요...

    플레이리스트: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S4jAfE9d3aJXsBAO8EJeVcv2OXARbbpG


    ===================== 괜찮았던 음반들 =====================

    酸魯磨 Acid Lumo - 桔片 Orange Medicine

    중국 우한의 언더그라운드 씬에서 존재했었던 자유로운 즉흥 연주 밴드라고 하는 Acid Lumo의 첫 앨범이자 마지막 앨범입니다. 이 앨범 [Orange Medicine]은 상하이에서 2020년 8월 16일에 있었던 Pysche Delta Festival에서의 공연을 담은, 일종의 라이브 앨범이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Masaki Batoh의 Ghost(특히 라이브 앨범 [Temple Stone])같은 밴드가 생각나는 전형적인 동양풍 사이키델리아로 시작하는데, 그러다가 몽골의 '흐미'같은 배음 창법 스타일의 보컬이 등장하면서 나름의 독특한 색채를 만들어 나가기 시작합니다. 전자음악적 효과와 갑작스럽고 이상한 분위기 전환 같은 요소들을 사용하는데 Ground Zero같은 밴드가 보여주었던 독특한 음악들이 생각나기도 하네요. 앨범의 소개글을 보면 현재는 밴드 멤버들이 각자의 길을 걸어가느라 뿔뿔이 흩어져 밴드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고 하며, 소개글의 끝을 만약 좀 더 안정적인 밴드였어서 더 오래 활동을 지속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으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무슨 뜻인지 감도 안 잡히는 밴드의 이름이나 앨범 이름도 그렇고, 닉네임/가명인 것 같은 밴드 멤버들의 이름, 한 때에만 존재했었고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뭔지 잘 모르겠는 앨범 커버까지 나름의 미스테리함을 잘 구축했으며, 음악 또한 스스로 쌓아 올린 미스테리함에 걸맞는, 나름 독특한 색채를 지닌 앨범입니다.

    밴드캠프: https://wvsorcerer.bandcamp.com/album/orange-medicine


    Cassiopeia Strum & Patrick Shiroish - The Invention of The Saxophone

    https://youtu.be/rB-5mlUGxAk
    "The Bell"

    L.A.에서 나름 알려진 색소포니스트 Patrick Shiroishi와 작곡가/음악가/악기 제작가 Cassiopeia Strum의 협업 앨범입니다. 즉흥연주같은 느낌인데, Patrick Shiroishi는 당연히 색소폰을 연주하고, 거기에 맞춰서 Cassiopeia Strum이 '색사폰'(Saxafone)이라는 특이한 자가제작 악기를 가지고 연주를 더하는 곡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진이나 영상을 보면 이 색사폰이라는 악기는 기존의 색소폰에 이런저런 장치를 달아서 색소폰의 여기저기를 만지면 대응하는 전자음향이 나오는 식의 악기인 것 같더군요. 색소폰 연주야 경력이 좀 된 연주자가 하는 것이라 당연히 괜찮은데, 의외로 이 색사폰이라는 악기의 전자음향 배경 연주가 색소폰 즉흥연주와 굉장히 잘 어울립니다. 40분이 조금 안 되는 시간동안 4개의 곡을 선보이는데 각각의 곡들이 선보이는 특유의 분위기가 꽤 압도적입니다. 어쩐지 The Dead C의 "Tuba Is Funny"같은 곡이 생각나기도 하네요. [The Invention of The Saxophone]이라는 이름이 얼핏 보기에는 상당히 건방져 보이는 제목인데, 앨범을 듣고 나면 나름 그 야심이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색사폰'이라는 악기가 색소폰을 가지고 만든 거라서 이렇게 잘 어울리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밴드캠프: https://inventionofthesaxophone.bandcamp.com/album/the-invention-of-the-saxophone


    The Flying Luttenbachers - Terror Iridescence

    몇 년 전부터 다시 부활해서 활동중인, Weasle Walter의 The Flying Luttenbachers의 앨범입니다. 평소와는 다르게 사실상 즉흥연주만을 담은 앨범이며, 20분이 넘는 길이의 곡 2개로 이루어진 앨범인데, 첫 번째 트랙 "Meredyth Herold"가 특별히 인상적입니다. 텅 빈 지하실에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같은 느낌을 가진 박자 맞추기용 반복 트랙에 맞춰서 연주자들이 때로는 자유롭게, 때로는 Weasle Walter의 유도에 맞춰서 연주한 것을 녹음했다고 하는데, 이 반복적인 물방울 소리와 마구잡이로 뻗어나가는 즉흥연주 사이에 존재하는 묘한 긴장감과 조화가 독특하고 압도적인 분위기를 형성합니다. 원래는 물방울 소리를 연주자들만 듣고 앨범에는 수록하지 않으려고 했다는데, 앨범에도 넣은 것이 신의 한 수라고 봅니다. Weasle Walter는 작곡에도 큰 야심이 있어 보통 작곡에 상당한 공을 들이는 편으로 알고 있는데, 이런 식의 접근도 상당히 괜찮은 것 같습니다. 더해서, 개인적으로 이런 식의 밴드를 부활까지 시켜가며 아직까지도 유지하고 있는 Weasle Walter의 뚝심 하나만은 정말 대단하다고 봅니다.

    밴드캠프: https://theflyingluttenbachers.bandcamp.com/album/terror-iridescence


    The Garden - Horseshit on Route 66

    https://youtu.be/1HaEhJ-wvyw
    "Orange County Punk Rock Legend"

    캘리포니아 오렌지 카운티의 쌍둥이 형제가 하는 펑크 밴드 The Garden의 앨범입니다. 이것저것 아무 스타일이나 땡기면 다 가져와서는 귀찮다는 느낌으로 대충대충 갈겨대는 음악을 하는 밴드인데, 듣다 보면 의외로 제대로 갈기는 측면이 있네요. 고딕풍의 호러 펑크 "Haunted House on Zillow"나 나름대로의 드럼-앤-베이스(?) "What Else Could I be But a Jester" 같은 곡들이 처음에는 얼핏 어설프다거나 겉핥기식으로 대충 하는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또 듣다 보면 그래도 제법 잘 알면서 일부러 대충 하는 것 같은, 뭐랄까 Pavement 비슷한 슬랙커(slacker) 분위기가 있습니다. "Freight Yard"나 "Chainsaw the Door"같은 곡은 90~00년대 팝펑크 스러운 서정적인 감성을 은근히 잘 살려내기도 하고, (쌍둥이라서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OC39"같은 곡들의 베이스/드럼 2인조 연주는 상당히 합이 잘 맞고 쫀쫀한 맛이 있습니다. "Horseshit on Route 66"의 리버브를 잔뜩 먹인 청량한 기타처럼 뜬금없어 보이는 요소들이 곳곳에 들어가 있지만, 가장 당황스러우면서도 가장 훌륭한 곡은 발랄한 어쿠스틱 기타에 정말 대충 질러대는 보컬의 "Orange County Punk Rock Legend"가 아닌가 싶습니다. 스타일이 다양하고 또 각각의 스타일을 얕게 파고드는 느낌이라 앨범이 산만해질 수 있는데, 1~2분 정도의 짧은 곡 길이와 힘을 잔뜩 뺀 태도를 가지고 오히려 산만함을 나름대로의 균형으로 바꾸어 앨범의 특징이자 매력 포인트로 삼은, 꽤나 잘 만든 앨범입니다. 인터뷰에서 말했던 것 처럼 "잘 아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정말 좋아했던 음악들이니 우리 앨범에도 시도해 본다"는 태도가 잘 살아 있는, 어떻게 보자면 상당히 펑크적인 앨범입니다.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지만 어쩐지 쓸쓸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 가사와, 광대 분장에 고전적인 록스타 복장으로 치장했지만 세상 만사에 귀찮음을 느끼는 듯 지친 표정을 한 커버도 앨범에 매력을 더하는 것 같습니다.

    밴드캠프: https://thegardenmusic.bandcamp.com/album/horseshit-on-route-66


    Naujawanan Baidar - Khedmat Be Khalq

    https://youtu.be/Pqf-ZWmUB-Q
    "Raftim Az Ayn Baagh"

    아프가니스탄계 미국인 음악가 N.R. Safi가 진행하는 아프간-미국 "스트릿 음악" 프로젝트 Naujawanan Baidar의 앨범입니다. 아프가니스탄 전통 음악을 기반으로 N.R. Safi가 '일렉트릭 에너지'를 섞어 만들어 냈다는 소개글이 있는데, 확실히 처음 들었을 때 앨범의 도입부를 지나 두 번째 곡 "Isyan Dorost Ast"가 퍼부어대는 상당한 에너지가 꽤 놀랍더군요. "Khedmat Be Khalq"같은 곡의 선창-떼창 코러스도 전통음악적인 멜로디와 묘하게 어우러져 제법 강렬한 느낌을 주고, "Dur Nest"같은 쉬어가는 곡도 배경에 조용하게 깔리는 고함소리와 함께 나름의 오묘한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어째선지 모르게 Godspeed You! Black Emperor가 생각나기도 하고... 아프간의 유명한 전통 가락을 그대로 따 와 편곡했다는 마지막 곡 "Raftim Az Ayn Baagh"도 전통적 멜로디와 악기연주의 오묘함과 특유의 거친 질감과 에너지를 잘 융합시킨 멋진 마무리입니다. 전체적으로 상당히 로-파이인데다가 분위기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측면이 있어 다소 지루해질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특유의 '스트릿' 느낌과 이런 쪽 업계(?)치고는 짧은 곡 길이로 지루함의 함정을 어느 정도 피해 간, 좋은 앨범입니다.

    밴드캠프: https://radiokhiyaban.bandcamp.com/album/khedmat-be-khalq


    Sore Dream - Tears of a Blistered World

    https://youtu.be/CPL_YEpUIKo
    "A Blister"

    Full Of Hell의 두 멤버 Dylan Walker와 Spencer Hazard가 진행하는 일종의 사이드 프로젝트 밴드입니다. Full Of Hell과는 좀 다른 느낌의, 노이즈에 중점을 둔 노이즈 록을 선보이는데,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느낌이다 싶더니 Wolf Eyes의 음악 (특히 Sub Pop 시절 앨범들) 과 굉장히 유사한 느낌의 음악이더군요. 그런데 저는 Sub Pop 시절 Wolf Eyes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 앨범도 종종 괜찮게 들었습니다. 잔뼈가 굵은 멤버들이라 그런지 Wolf Eyes 특유의 지옥같은 분위기를 잘 소화해 표현해내고 있습니다.

    밴드캠프: https://soredream.bandcamp.com/album/tears-of-a-blistered-world


    Soul Glo - Diaspora Problems

    https://youtu.be/CGF0gKY3P6A
    "Spiritual Level Of Gang Shit"

    필라델피아의 펑크 밴드 Soul Glo가 Epitaph에서 발매한 앨범입니다. 백인이 주류인 장르라고 할 수 있는 하드코어/포스트-하드코어에 힙합, 재즈, 훵크 등 흑인음악적인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융합시킨 개성적인 음악을 하는 밴드입니다. 첫 트랙 "Gold Chain Punk (whogonbeatmyass?)"부터 시원하게 달려주고, "Thumbsucker"같은 곡은 이 융합을 훌륭하게 성공시킨 좋은 펑크 곡이며, "Driponomics"같은 곡은 거의 Death Grips를 연상시키는 정도로 멀리 나갔으면서도 앨범 내에서 다른 곡들과 그럴싸하게 어울리고 있는 곡입니다. 앨범의 마무리인 "Spiritual Level Of Gang Shit" 또한 앨범에 등장했던 다양한 요소들을 다시 한 번 버무려 멋지게 끝내는 정말 좋은 마무리입니다. 좀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줬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생길 정도로, 앨범에서 가장 괜찮은 순간들의 상당수가 통상적인 하드코어/포스트-하드코어에서 가장 벗어난 느낌을 가진 부분들이었습니다. 음악적으로는 눈치 같은 건 보지 않고 자신들이 좋아하는 요소들을 여기저기에서 가져 와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정치적으로도 어떤 쪽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고 전부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여러가지 의미로 굉장히 펑크적인 밴드의 펑크적인 앨범인 것 같습니다.

    밴드캠프: https://soulglophl.bandcamp.com/album/diaspora-problems


    Special Interest - Endure

    https://youtu.be/EZahXe59w20
    "(Herman's) House"

    뉴올리언스의 펑크 밴드 Special Interest가 Rough Trade에서 발매하는 첫 앨범입니다. 본인들은 스스로를 '노 웨이브 펑크'라고 하는데, 음악적으로는 노웨이브 밴드들과 그렇게 비슷하지는 않고 그냥 전자음악이 가미된, 덜 빡센 포스트 하드코어에 가깝습니다. 이번 앨범에선 지난 앨범들에 비해 좀 더 말랑해진 느낌을 선보이는데, 이 변화가 상당히 잘 뽑혔습니다. Sleater-Kinney의 "Night Light"가 연상되는, 서정적인 느낌을 주는 곡들이 많이 있는데, 전체적으로 이런 정서를 잘 표현하고 있네요. 수록곡 중 하나인 "Midnight Legend"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밤새 클럽에서 놀다가 맑은 아침에 길거리에 나와 돌아가는 모습을 담고 있는데, 앨범의 전반적인 느낌을 잘 표현한 뮤직비디오이지 않나 싶습니다. "(Herman's) House"같은 곡은 앙골라 3인조중 한 명인 Herman Wallace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가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앨범에서 가장 발랄하고 신나는 분위기를 보여주기도 하는 것이 Dennis Lyxzén의 The (International) Noise Conspiracy나 Ian Svenonius의 The Make-Up같은 밴드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마지막 곡 "LA Blues"는 The Horrors의 "Sea Within a Sea"가 연상되는 멋진 마무리이기도 합니다. 인상적인 초반부와 후반부를 이어주는 중반 부분에 특별히 눈에 띄는 곡이 많지 않다는 것이 아쉽다면 아쉽지만, 전체적으로 좋게 들었습니다. 처음 들을 때에는 다소 화려한 보컬이나 서정적인 멜로디에 밀려 눈에 크게 들어오지는 않기도 하는데, 좀 듣다 보면 베이스가 뒤에서 훌륭하게 받쳐 주고 있는 앨범입니다.

    밴드캠프: https://specialinterestno.bandcamp.com/album/endure


    Staubitz and Waterhouse - Common Metals

    https://youtu.be/q8_gKzmduZo
    "Septic"

    로드아일랜드의 음악가 Mary Staubitz와 Russ Waterhouse가 결성한 프로젝트의 첫 앨범입니다. 팬데믹 기간에 '필수 인력'으로 노동 일을 하면서 느낀 것들을 드론/필드 레코딩으로 담아냈다고 하는 것 같은데, 말 그대로 편집이 거의 되지 않은, 그냥 녹음입니다. 밴드캠프 해쉬태그에도 'non music'이라고 되어 있네요. 이런 종류의 음악은 잘 모르기도 하고 대체로 취향에 맞지도 않아서 거의 듣지 않는 편인데, 이 앨범은 어딘가 매력적인 구석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손이 가는지, 어떤 부분이 매력적인지는 설명하기도 힘들고 스스로도 잘 모르겠네요. 공장의 소음과 기계 작동음같은 느낌을 좋아하신다면 한 번 들어볼 만한 앨범입니다.

    밴드캠프: https://staubitzandwaterhouse.bandcamp.com/album/common-metals


    Wojciech Rusin - Syphon

    https://youtu.be/dpMhaViAB2Q
    "Glass Coil"

    폴란드 출신 관악기 제작자이자 작곡가/연주자 Wojciech Rusin의 앨범입니다. '연금술'이라는 테마를 가진 3부작 중 두번째 앨범이라고 합니다. 이 앨범은 중세/르네상스 음악을 현재의 시점에서 상상해서 만든, 과거의 부정확한 조각들을 모아서 미래 시점에서 재구성해 만들어낸 곡들이라는, 기묘하면서도 매력적인 컨셉을 가진 앨범인데, 인터뷰를 보면 애초에 Wojciech Rusin이라는 사람이 이런 '가짜로 만든 옛 예술 작품'이라는 주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 일반적인 형태의 고전 관악기를 사용하지 않고 3D 프린터로 만든 이상한 형태의 플라스틱 자체제작 관악기를 쓰는 것만 봐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독특하면서도 멋진 분위기를 풍기는데, 특별히 소프라노 Eden Girma와 함께 만든 세 곡 "Speculum Veritatis", "The World in a Tiny Bottle", "Glass Coil"은 앨범 커버처럼 고전 예술같으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현대적이고 이질적인, 기묘한 느낌을 제대로 살려 낸 훌륭한 곡들입니다.
     여담이지만 인터뷰를 보다보니 Wojciech Rusin이 하프시코드 소리에 큰 흥미를 느꼈다는 부분이 있던데, 개인적으로 동의합니다. 하프시코드는 고전 악기들 중 가장 이상한 음색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밴드캠프: https://ad93.bandcamp.com/album/syphon


    ===================== 가장 많이 들었던 음반 =====================

    Pet Shop Boys - Introspective

    https://youtu.be/J-LG9KVcc9E
    "Domino Dancing"

    어쩌다보니 Pet Shop Boys를 다시 들어보게 되었는데 이렇게 좋았었나 싶더군요. [Electric]같은 앨범도 재발견하게 되었는데, 무엇보다도 훌륭하다고 느꼈던 건 [Introspective] 였습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다시 들어봐도 좋은, 명실상부 Pet Shop Boys 최고의 앨범이라고 생각합니다. "Domino Dancing"같은 곡은 자칫하면 유치하거나 지루해질 수 있는 스타일을 한끗차이로 굉장히 세련된, 오히려 길이가 더 길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력적인 분위기로 만들어낸 놀라운 곡입니다.

    플레이리스트: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BJEOrGO2M_iIDnoKotWP-QrYmiVmsw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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