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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크치온 4. Дмитрий Озерский[...]/[Auktyon (АукцЫон)] 2023. 3. 28. 12:36
https://youtu.be/1apGEJVrI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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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auctyon.ru/article/i_ozerpoetry.html
세르게이 크냐졔프 (Сергей Князев)
드미트리 오제르스키: "록 시(詩)의 주요 목적은 음악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다"(이고르 아로노프(Игор Аронов)의 사진)
Аукцыон에 대해 논할 때, 사람들은 주로 화려한 쇼맨 올렉 가르쿠샤(Олег Гаркуша) 또는 보컬이자 작곡가 레오니트 표도로프(Леонид Фёдоров)를 떠올린다. 물론, 그 누가 Аукцыон의 성공에 대한 이 둘의 기여도를 의심할 수 있겠는가, 이 둘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정말로 중요한 멤버들이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드미트리 오제르스키가 주로 써내려가는 가사 또한 Аукцыон 음악의 예술성에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는 것에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Аукцыон의 가사는 멜로디와 놀라울 정도로 정확히 맞아떨어지며, 밴드의 정신에도 정확하게 부합한다. "곡에서 단 한 단어도 뺄 수가 없다"는 경우는 바로 Аукцыон을 말하는 것이리라. 현재의 가사가 아니라면, 그 어떤 가사도 Аукцыон의 음악에 어떻게든 들어갈 수 있을지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이다. Несчастный случай의 알렉세이 코르트녜프(Алексей Кортнев)가 Аукцыон이야말로 러시아 최고의 밴드라고 했을 때, 그는 아마도 가사와 음악의 독창적인 조화를 의미했을 것이다 - 바로 드미트리 오제르스키가 쓴 가사 말이다.
- 드미트리, 언제부터 Аукцыон의 가사를 써 왔는가?
대충 15년 정도 된 것 같다. 기본적으로 나는 밴드의 시작 시기부터 가사를 써 왔다. 처음에는 그렇게까지 많은 가사를 쓰지는 않았었다. 초기 Аукцыон의 가사는 대체로 올렉 (가르쿠샤) 가 만들었었다. 또한 당시에는 밴드가 가사를 어디에서 가져올지에 대해 그렇게까지 깊게 생각하지는 않고 있었다. 신문, 책 등지에서 이것저것을 가져다가 가사에 넣었었는데, 정말 낯선 구절들까지 알 수 없는 어딘가에서 가져오곤 했었다. 예를 들어 발표 당시 상당히 유명했던 (역주: "Рабочее утро"의 일부분) 'Когда рабочие встают'(노동자들이 일어날 때)라는 구절은 누군가가 신문, 평범한 소련 신문에서 발견한 구절을 가져다 만든 후렴구였다. 이제는 그 구절이 정확히 어디서 가져 온 건지, 언제 가져왔던 것인지, 누가 가져온 것인지 전부 그 누구도 기억을 못 하고 있다. 나는 Аукцыон의 가사 말고는 아무런 글도 안 쓴다. 시도, 산문도.
- 밴드가 언제나 당신의 가사를 수용하는가? 특정한 가사에 대해 음악이 잘 안 맞는 경우는 없었는지?
Аукцыон에는 리더 레오니트 표도로프가 있고, 그가 특정한 가사를 사용할지 말지를 결정한다. 더하여 우리는 좀 독특한 방식으로 가사를 만들어나가는데, 흠, 그렇게까지 이상하지는 않지만 일반적인 록 음악가들하고는 조금 다르긴 한데 - 아무튼 우리만의 방식이 있다. '리베르토'(역주: 오페라 등의 대본)와 비슷한 방식으로 가사를 만든다 - 이미 만들어진 곡에 맞춰서 가사를 쓰는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몇 구절을 가지고 와서 토론을 하고는 이런저런 부분에 한번 붙여 보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 상황보다는, 특정한 음악적 주제가 먼저 주어진다. 우리는 거의 항상 함께 모여서 음악을 만들어나가며, 특정 악기의 특정 멜로디에 집중한다. 물론, 작업을 진행하면서 음악적 주제는 몇 번이고 변형될 수도 있다.
- 완성된 음악에 가사를 맞추어 만드는 것이 밴드의 원칙이라고 말해주었는데, 뭐랄까, 작가로서의 야심 같은 것은 없는지? 당신이 생각하기에 맞는 방향으로의 가사를 변호해 본 적이 있는가?
물론 있다. 점점 더 자주 그러는 편이다. 특히 지난번 앨범에서 그랬다. 나는 스스로 만족하기 전까지는 멈출 수 없다.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충분히 만족한 결과물이 나왔다면 밴드가 그 이상을 원하더라도 더 이상의 작업은 못 한다.
- 그렇다면, 작사가로서의 당신과 작곡가로서의 표도로프가 발전해 나감에 따라 발생하는 일종의 대립 같은 것도 있는가?
흠, 물론, 어떤 방향으로는 서로 잘 맞고, 어떤 방향으로는 그렇지 못하다. 예전에는 서로간의 접점이 더 많았다 - 젊은 사람들 사이에는 언제나 서로 맞는 부분이 많은 법이니. 하지만 지금은 문제가 있을 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더 많아졌다. 어쨌든, 우리는 전부 대체로 같은 방향으로 달리고 있는 사람들이다. 좋게 가고 있다. 대립은 보통 내가 생각했을때는 작업이 끝났는데 표도로프는 아니라고 생각할 때 일어난다. 또는 그 반대의 경우이거나.
- 특정한 멜로디에 맞추는 가사를 쓸 때 활용하는 기법이 있는지?
먼저, 몇몇 핵심 단어들을 정한다. 표도로프가 앉아서 연주를 하며 무언가를 흥얼거린다. 나는 옆에 앉아서 단어들을 고른다. 가끔은 한 구절, 또는 어떤 종류의 구조 같은 것도 떠올린다. 내가 골라 낸 것들이 음악에 '맞아 떨어'지면, 그 것을 중심으로 더욱 발전시켜 나간다. 여러가지를 시도해 보고 제안해 본다. 나는 가사의 단어들이 음향적으로 음악과 잘 대응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살아 숨쉬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잘 맞아떨어지는 가사는 음악의 곡조를 들으면서 바로 써내려가야 나오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렇게 현장에서 직접적으로 가사를 써 내려가는 것을 점점 덜 하게 되고 있다. 한 곡의 가사를 완성하는 데 한 달이 걸리기도 한다, 하루에 2시간에서 5시간까지를 투자하면서 말이다. 곡 작업을 하면서 가사를 계속해서, 계속해서 써 내려가다 보면 갑자기 특정 구절이 끝까지 살아남기도 한다. 이렇게 살아남은 부분이 처음에는 버리려고 결정했던 구절일 때도 있다.
- 밴드가 가사를 바꾸기도 하는가?
아니다. 밴드는 기본적으로 가사 작업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 가끔 올렉 가르쿠샤가 특정 구절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그 뿐이다. 시간이 지날 수록 올렉이 가사를 가져오는 빈도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아주 가끔식 시를 가져오지만, 그 시도 아주 가끔식 실제 곡의 가사에 반영된다. 이미 작곡이 끝난 멜로디에.
- 좀 더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 줄 수 있겠는지? 예를 들자면, "Тоска"의 가사는 어떤 식으로 쓰여졌는지, 그리고 어째서 공연에서는 연주하지 않는 것인지?
그 가사들(저자주: 앨범 [В Багдаде все спокойно]을 뜻한다)은 쉽게 쓰여졌고, 다른 앨범의 가사들과는 접근법 자체가 달랐었다. 그 앨범의 가사에는 음향과 조화를 이루려는 목적이 전혀 없었다.
- 무슨 음향 말인가? 연주 부분? 아니면 보컬의 발음 부분?
목소리에 관련해서이다. 그 앨범의 가사는 그냥 음악에 넣어 본 시(詩)였다. 각운을 맞춘, 생각의 나열. 논리적인 구성. 거기에 더해 구조 또한 굉장히 무거웠다. 그런 음악은 오래 가지 못한다. 공연에서 연주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텍스트에 대한 집착이 실제 공연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것이다.
- 나는 [В Багдаде все спокойно]의 몇몇 곡들을 정말 좋아하며 굉장히 성공적인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앨범 전체가 하나의 완성된, 특정 주제를 가지고 완벽하게 쌓아 올린 작품이라는 생각도 들고.
음악은 당신이 좋아하는 만큼 좋을 수 있다. 누군가는 더 좋아할 것이고, 누군가는 덜 좋아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 연주를 위한 공간이 그 앨범에는 없었다. 단어들이 음악적 구조를 결정지을 때, 그 음악에는 어떠한 자유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렇게 결정되어 버린 곡들은 여러 공연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다른 감정으로, 다른 강세로 부르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그런 곡들, 이미 정해진 가사에 맞추어 만들어진 곡들은, 작곡가와 연주자가 다르더라도 곡이 변하지 않게 된다. 사람은 나이를 먹어가며 변하는데 곡은 그대로인 것이다. [В Багдаде все спокойно]의 컨셉은 시작부터 아주 명확했다. 음악을 실제로 만들기 전부터 무엇에 대한 앨범이 될 지, 어떤 가사를 사용할지를 전부 정해두었던 것이다. 누구의 생각이었는지는 기억이 명확히 나지는 않는다. 어쩌면 내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В Багдаде все спокойно]의 아이디어는 죽어 있는 아이디어였다: 호프만(E. T. A. Hoffmann)을 읽은 후, 우리는 이 작가의 글을 음악으로 옮기려, 음악으로 연장하려, 말하자면 '모던한 것'으로 옮겨 보려 했었던 것이다.
- 그런 경험이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모든 경험은 성공적인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우리가 만들어 온 모든 앨범들, 내가 지금은 덜 좋아하는 앨범까지도 전부, 만들 당시에는 진심을 담아 만든 앨범들이었다. 나는 우리의 옛 앨범들을 여전히 흥미롭게 듣곤 하며, 그 어떤 불쾌함도 느끼지 않는다. 또 다르게 말하고 싶은 것은, 나는 이전 음악들을 반복하는 데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만들어나가는 것이 흥미로웠었지만 말이다.
- [В Багдаде все спокойно]와 같은 방식으로 다른 앨범도 만들었었는지?
그렇다. 초기 앨범들은 생각, 언어적인 아이디어가 일종의 규칙으로써 음악에 앞섰었다. [Вернись в Сорренто]나 [Дупло](역주: 향후 [Жопа]로 재발매되는 앨범)은 [В Багдаде все спокойно]와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 어째서 흘레브니코프(Велимир Хлебников)를 택해 그의 시를 가사로 앨범(역주: [Жилец вершин])을 만들었던 것인지?
우선, 그가 아주 훌륭한 시인이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로, 그 아이디어는 흐보스텐코(Алексей Хвостенко)의 아이디어였다. 흐보스텐코가 러시아로 돌아 와 무언가를 같이 해 보자고 제안을 해 왔었는데, 표도로프는 [Чайник вина]와 같은 앨범을 한번 더 만들고 싶지는 않아했었다. 물론, [Чайник вина]보다 훨씬 더 좋은 무언가를 만들 수 있었을테지만, 어쨌든 [Чайник вина] 2탄 같은 느낌의 앨범이 될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흐보스텐코 또한 흘레브니코프의 시를 가지고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하기도 했었다.
- 흘레브니코프의 시가 음악과 잘 맞았는가?
그렇다.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는 그의 시를 좀 축약한 후에 음악과 맞추었다. 흘레브니코프의 시는 보통 굉장히 길기 때문에 음악의 가사로 사용하기에는 너무 길었기 때문이었다. "Я Конский череп, я на липе", "Гзи гзи гзэо"는 살짝 축약하여 가사로 사용하였다. "Боги"는 단어의 일부를 바꾸어 사용했지만, 크게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바꾸었다. 흘레브니코프의 시를 최대한 보존하는 방향으로 작업했다.
- [Жилец вершин]에서 의심할 여지 없이 멋진 부분은 "Гзи гзи гзэо"(역주: "Мешок Бобэоби"에 수록되었다)일 것이다.
그 부분, 정말 멋진 그 부분은 전적으로 음악에 맞추어 만든 구절이라는, 이미 존재하는 구절에 맞춰서 음악을 만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서 나온다. 오래 전에 만들어 두었던, 아직 가사를 붙이지 않은 멜로디였었다. 나는 앨범에 "Гзи гзи гзэо" 말고도 정말 성공적이었던 부분들이 몇 군데 더 있다고 생각한다. 앨범의 마지막 부분은 정말 훌륭하다고 본다. 예를 들자면, "Нега-Неголь".
- 최근의 앨범 작업은 어떠한지? [Зимы не будет] 싱글을 최근 발매했었고 그 후 미니앨범(역주: [Небо напополам])도 발매했는데,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훌륭한 곡 한두개를 발매하고 거기에 몇 개를 더해가는 식으로 활동하려는 것인가?
확답을 주기는 힘들다. 원칙적으로는 앨범을 만들 때 단 한 개의 곡을 중심으로 쌓아올리지는 않는다. 적어도 2~3개의 곡들이 중심이 된다. 곡들의 가사들은 서로 연관되어있거나 하지는 않는다. 앨범은 스스로 자신의 구조를 만들어나가며, 우리는 선입견 없이, 모호한 개념 없이 음악을 만들고자 한다. 그래서 가사를 만들기 전에 곡을 먼저 완성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가사를 먼저 만들어 두고 그 것을 기반으로 음악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문학 작품은? 어떤 작가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나?
전반적으로 나는 문학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다. 나는 문학에 관련해서는 절대 전문가라고 할 수 없는 사람이다. 많이 읽지도 않는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인지 이름을 늘어놓는 것도 어렵다. 만약 최근 읽은 책들 중 가장 재미있게 봤던 책 3개만 뽑아보라고 한다면 - 베케트 (Samuel Beckett, "3부작"), 에라스무스 (Desiderius Erasmus, [우신예찬]), 현대 작가로 밀로라드 파비치 (Milorad Pavić, [하자르 사전]). 파비치는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다시 한 번 읽고 싶어지게 만드는 책이었다. 빅토르 펠레빈(Виктор Олегович Пелевин)의 몇몇 책들도 재밌게 읽었지만, 다시 읽어보고 싶어지지는 않았다. 물론 훌륭한 재능을 지닌 작가이지만 같은 종류의 농담을 너무 자주 반복하는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하자르 사전]은 - 책의 2/3 정도를 읽어가는 시점에 당신은 이야기가 어떻게 끝나게 될 지 훤히 보이게 되지만, 사그러들지 않는 흥미를 가지고 계속해서 읽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 책의 깊이, 이 책의 힘은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을 종류의 것이다.
- 이 책들은 산문이다. 시 쪽은 어떤지?
명확히 말하기 어렵다. 언젠가 좋아했던 시인들을 들자면 - 타르코프스키(Арсений Александрович Тарковский), 파스테르나크(Борис Леонидович Пастернак).
- 흘레브니코프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의 시는 의심의 여지 없이 정말로 훌륭하다. 흘레브니코프의 시가 나에게 미치는 영향이 분명히 있지만, 정확히 어떤 영향인지는 명확히 설명하기 힘들다. 나는 텍스트를 '분해'하거나 '해체'하려는 시도는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내 텍스트도, 다른 사람의 텍스트도 말이다. 흘레브니코프가 그런 시도들을 했다고 한다면, 나는 흘레브니코프처럼 써 보려 한 적은 없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걱정하지 마라, 흘레브니코프도 실패한 일이다. 내가 내 가사에서 흘레브니코프의 흔적을 발견한다면, 그 흔적은 내가 의도적으로 그의 시적 발견을 사용한 흔적은 아닐 것이다. 내가 작사를 할 때 그의 시적 요소가 깃드는 것은 전적으로 무의식적인, 자연스러운 과정이며, Аукцыон의 음악에 흘레브니코프의 느낌이 묻어나오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다.
- 다른 록 시인이나 싱어송라이터들의 작품을 들어보는 편인가?
흠, 물론, 무엇인가를 항상 듣기는 한다. 하지만 충분히 듣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최근 가장 즐겁게 들은 것은 Не ждали이다. Не ждали이 텍스트에 접근하는 방식은 상당히 흥미로운 편이며, 레오니트 소이벨만(Леонид Сойбельман)이 자신의 텍스트를 음악에 녹여내는 방법 또한 아주 강렬하다. 또한, 그들은 가사가 그 어떤 시적 작용을 하지 않게 하면서도 가사가 녹아든 음악의 유기적인 연장선으로, 음악에 완전히 종속된 가사로 작용할 수 있게 한다. 나와 비슷한 방식이다.
- Не ждали도 그렇지만, 2ва cамолёта도 당신의 작업과 유사점이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무언가가 다른 것 같은데. Рамамабахарамамбару나 Ногу свело!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는 무언가 자연스럽지 않은 것이 있다. 무언가 계산된, 너무 이성적이고 프로페셔널한, 뭔가를 너무 많이 한 것 같은 느낌.
- 가사는 어떻게 쓰는가? 특별한 기술 같은 것이 있는지? 몇몇 주의깊은 청자들이 쉽게 알아차릴 만한 것으로는 두운법, 발음에 중점을 둔 작사, 안정적인 구절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시도, 널리 쓰이는 표현을 낯선 문맥에 집어넣기 ("Спи, солдат", "Всё вертится" 등) 등이 있는 것 같은데. 다른 것들은?
잘 모르겠다, 명확히 말하기 어렵다. 작사 기법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대신 나는 내가 어떻게 가사를 쓰는지, 무슨 의미로 썼는지, 가사가 완성된 다음에 되짚어나가며 이해를 해 나간다. 내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전반적인 글쓰기 전부에 적용되는 몇 가지 기초 뿐이다. 우리가 작사를 하는 과정은 전통적인 시 쓰기와는 거의 완전히 다르다. 명확한 의도를 갖고 구상 및 글쓰기를 한다는 점 말고도, 우리는 그냥 막 써내려가는 편이다. 일종의 논리적인 체계, 논리적인 구조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로써 이렇게 작사를 하는 것이다. 우리의 가사를 읽어본다면 가사에 있는 이미지들이 서로 아주 약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구문(構文)이 음악으로 대체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단순히 종이에 써 있을 때는 일관성이 없어 보이는 단어들이 음악으로 인해 연결된다. [Птица]의 "Ещё не поздно"를 보면 이런 구절이 있는데:
Ещё не поздно,
День уже прожит,
Войди, прохожий,
Я тебе верю.
Сдирая кожу,
Входит луна
В узкие двери.
(너무 늦진 않았다,
날은 이미 저물었지만,
들어오라, 행인이여,
나는 당신을 믿는다.
껍질을 벗어던지며,
달이 들어오네
좁디 좁은 문으로.)
이 풍경, 이 스케치가 특정한 분위기를 조성하지만, 이 분위기는 단어들로 표현된 것이 아니다. 각운을 맞춘 글도 아니다. 거기에, 사용된 단어들도 아주 평범한, 가장 널리 사용되는 단어들이다. 평범할수록 좋은 것이다. 가장 훌륭한 노래는 가장 단순한 단어들에서 나온다. 물론 이는 시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와는 상당히 다른 관점이다. 내가 생각하는 시란 언제나 새로운 것을 말하려 하는, 아니면 적어도 새로운 방식으로 말하려 하는 것, 무엇인가 독창적인 것을 말함으로써 새로운 단어, 새로운 방향을 찾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것, 우리의 가사는 단어들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배치하여 작사하려는 시도이다. 전통적인 시를 만들려 했다면 전혀 다른 식으로 글을 썼을 것이다. 우리의 가사에는 가사의 뒤를 받쳐주는 강력한 해석 기법 같은 것은 없으며, 록 시의 중요한 목적은 음악을 방해하지 않는 것, 음악에 담긴 에너지에 간섭하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과하게 화려한, 너무 꾸민 구절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사용하면 안 되는데, 그런 구절들은 스스로를 장막 뒤로 감추기 때문이다. 청자가 그런 복잡한 구절을 듣게 되는 순간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방금 무슨 말을 한 거지, 무슨 의미일까,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 이렇게 모든 것이 망한다. 물론 우리가 시작부터 이런 식으로 가사에 접근한 것은 아니다. 첫 3개 앨범들의 수록곡들에는 가사가 어떤 종류의 플롯, 어떤 이야기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점점 더 그런 접근 방식이 생산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Дупло], [Бодун], 그리고 특별히 [Птица]는 방금 설명했던 우리의 방식으로 가사를 만들었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나는 우리가 하는 록 시는 일반적인 시와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가식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려 하면서 내 생각을 각운을 맞추어 쓰는 것, 모든 것을 각운을 맞추어 쓰는 것 - 나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아니다. 전통적인 시의 영역으로 가서 나의 말을 각운을 맞추어, 알맞는 길이로 '시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어째서 그래야 하는가?
- Аукцыон의 가사는 시간이 흐르며 구체적인 내용에서 추상적으로, (사용되는 단어가) 복잡한 편에서 단순한 편으로, 긍정적인 분위기에서 염세적인 분위기로 바뀌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점점 더 멀리, 그리고 점점 더 어둡게.
흠, 그럴 지도. 염세주의에 대해 말하자면, 아마 살아 있는 존재라면 대부분 그럴 것이다. 오래 살 수록 더 슬퍼지기 마련이다.
- 많이 알게 될 수록 슬픔도 더욱 커지는 것인지?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단순함과 복잡함에 대해 말하자면, 언어라는 것은 상당히 제한되어 있는 표현법이며, 오래 된, 가장 단순한, 가장 널리 알려지고 가장 널리 쓰이는 단어들, '낮', '밤', '그림자', '빛', '불' 같은 단어들보다 더 강렬한, 다양하게 쓰일 수 있는 단어들을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Аукцыон의 가사가 발전했다면, 이 발전은 논리적인 구조를 점점 덜 생각하고, 점점 더 단어 자체의 힘에 집중하고자 하는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단어 자체에 힘이 있다 - 그 단어의 의미와, 그 단어의 소리에. 이 단어가 음악에 '제대로' 들어갈 수만 있다면, 음악은 이 단어가 가진 힘을 증폭시켜 밖으로 끌어낼 수 있다. 우리의 이런 시도가 성공적이었는지 실패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런 방향으로 가는 것이 맞는 방향이라고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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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5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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