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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p Making Sense] 7. BASTRO[Stop Making Sense] 2023. 3. 17. 06:44
[Stop Making Sense]는 자유연재물로 제가 소개하고 싶은 음악들에 대해 얘기해 볼 예정입니다. 아무래도 '날선' 음악에 대해서 주로 다룰 것 같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19세 미만인 분들께서는 접하면 안 되는 음악들도 많이 다룰 예정이니, 19세 미만인 분들께서는 글도 보지 마시고 음악도 접하지 마시길 정중히 부탁드립니다. 또한 문체는 존칭을 생략하였으니, 이 또한 양해 부탁드립니다.
"They were playing "Lord of the Flies" again
Sprinting nude, and slamming doors
I stood in quiet estimation of a rabbitboy loincloth neighbor
Charcoal-bedecked cavity chest
Yodeling 'It's my way or the highway!!!…' 'It's my way or the highway, baby!!!…'"
- Filthy Five Filthy Ten, Diablo Guapo, Bastro
0. 아마도 '이쪽' 음악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Squirrel Bait이라는 밴드에 대해서 들어 본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83년 켄터키 주 루이빌(Louisville)의 고딩밴드로 시작했던 이들은 하드코어 펑크를 나름대로 재해석·재창조한 독특한 스타일("Kid Dynamite", "Tape from California" 등등 풋내가 나지만(?) 좋은 곡들이 많다)로 소소한 인기를 끌었었다. 그러나 결국 루이빌은 시골이었기에(...) Squirrel Bait은 사실상 '꽤 하는 동네밴드'로 남아 있었고, 멤버들 중 몇몇이 다른 지방의 대학으로 진학하게 되며 87년의 데뷔 앨범 Skag Heaven을 끝으로 88년 완전히 해체하게 된다. 이들 중 몇몇은 루이빌에서 Slint를 결성하였고, 대학에 갔던 이들은 Bastro, Bitch Magnet(Seam의 박수영의 밴드였다. 한때 박수영 씨가 재미교포라는 점 등등 때문에 화제 아닌 화제가 된 적도 있었는데, Seam을 기대하고 Bitch Magnet을 들으면 아주 놀랄 것이다!)등에서 활동하였고, 나중에 좀 나이를 먹은 이들은 Gastr del Sol, Tortoise등의 주축이 되었고 다른 여러 밴드들에서도 활동을 하게 된다. 이제는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포스트록 및 포스트-하드코어, 매쓰 록 등등 비주류 인디 록 계통들의 역사에서 큰 줄기를 맡은 사람들의 연대기(?)이다.
1. Bastro는 대학 진학을 위해 Squirrel Bait을 떠났던 David Grubbs가 기숙사에 처박혀 솔로 프로젝트로 기획·시작했던 밴드였다. 졸업 후 루이빌로 돌아온 Grubbs는 Bastro를 더 크게 키우고자 하였고, Squirrel Bait의 동료였던 베이스주자 Clark Johnson과, 타악기 전공자 John McEntire를 데리고 3인 라인업을 결성하여 두 장의 정규 앨범을 내놓았으며, "Diablo Guapo"(스페인어로써 'Handsome Devil'이라는 뜻이라고 한다)는 첫 번째 앨범이다. "Diablo Guapo"는 하드코어 펑크의 학구적·실험적 재해석을 모토로 훗날(즉, 90년대 이후) 여러 인디장르들의 초석을 이룬 걸작으로 취급받곤 하며, 두 번째 앨범 "Sing the Troubled Beast"로 가면 심지어는 구상음악(musique concrete. 전위음악의 일종으로 다양한 소리들을 테이프 몽타주로 새로이 재구성한 음악이다. Pierre Schaeffer가 용어를 창안했으며 "한 사람의 인간을 위한 교향곡"같은 곡들이 대표적이다… 현대음악의 이해 수업 들으신 분?)의 영역에까지도 침투하는 창의력과 창조성이 보이기도 한다.
2. 쓰고 보니 썰이 너무 길었다! 하지만 이런 역사적 사실들과 연계성은 나름 의의를 가짐에도 불구하고 자료가 많이 존재하는 편은 아니며, 무엇보다도 지우고 다시 처음부터 쓰기는 정말 귀찮은 일이니, 본격적인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하도록 하자. 컴퓨터로 그린 추상화 같은 묘한 느낌의 커버를 지나 첫 곡 "Tallow Water"를 재생하면 청자를 반기는 것은 하드코어 펑크의 익숙하게(?) 빡세고 시끄러운 연주와 악쓰는 보컬인데, 조금 시간이 지날라치면 문득 이상한 점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와 우리를 자극한다: 가사는 분노에 가득 차 있다기보다는 불길한 분위기에 상당히 추상적이고, 연주는 심히 반복적이며, 비트는 드러머가 퍼커션 전공자 아니랄까봐 왠지 복잡하고, 기타 코드 또한 자주 쓰이는, 소위 '파워 코드'가 아니다. 두 번째 곡인 "Filthy Five Filthy Ten"로 들어가면 이들은 '이상한' 점들을 완화시키기는커녕 심화하는데, 정말 이상한 박자표를 타고 울부짖는 Grubbs의 보컬은 막상 가사를 들여다보면 수수께끼로 가득하다. 신나지 않을 수 없는 베이스 리프로 시작하는 "Guapo"는 기계적인 반복과 불협화음에 가까운 이상한 코드로 떡칠되어 알 수 없는 색소폰의 즉흥연주와 함께 질주하다 끝나버리며, "Flesh-Colored House" 말미의 광란의 노이즈 또한 억압된 감정의 폭발 같은 느낌을 주면서도 재즈의 즉흥연주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들의 연주는 하드코어의 밀도와 속도감을 가지고 있지만 목적성이 다르고, Grubbs는 전형적인 하드코어 보컬답게 악을 쓰기도 하지만("Shoot Me A Deer") 경우에 따라선 구어(spoken word)적인 방식으로 낮게 읊조리거나 아예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Decent Skin", "Short-Haired Robot"). 심지어 "Wurlitzer"같은 곡에서는 기타-드럼-베이스를 버리고 피아노라는 엄한(?) 악기를 데려와서 흥겹게 뚱땅거린다(물론 매우 이상하고 음험한 방식이긴 하다)…. 그렇다, 이들의 음악은 하드코어 펑크가 아닌 하드코어 펑크이다.
3. 여타 다른 청년들처럼,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억눌린 감정들을 분출하기 위해 기타를 잡은 Bastro는 곧 자신들이 원하는 것이 단순히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욕지기를 하고 무조건 시끄럽고 파괴적인 연주로 밀어붙이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버리게 된다. 미 대륙의 한쪽에서는 Fugazi 등이 펑크적 정신을 수호하며 다시금 새로운 부흥을 주도하고 있을 때, Grubbs와 McEntire는 사실 80년대까지의 록 음악에서는 나타나지 않아왔던 전혀 다른 것을 원하고 있었고(결국 이들은 각각 Gastr del Sol과 Tortoise로 전이하여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런 불일치는 흡사 '관습'을 자취방 쓰레기통에 던져버린 채 하드코어 펑크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뒤틀어버린 것 같은 음악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전통적(?)인 '감정의 폭발 형식'을 발판삼아("Pretty Smart On My Part") 뼈대까지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Bastro의 음악은("Engaging The Reverend") '하드코어'한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신선하고 멋진 충격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볼륨을 잔뜩 높이고 일단 재생을 해 보면 아주 좋을 거라는 말이다!
※Bastro: John McEntire, Bundy K. Brown, David Grubbs'[Stop Making Sense]'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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