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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he Apollo Programme Was A Hoax.
    [Thires] 2023. 3. 16. 02:42

    Posted by Thires on 2015년 4월 8일 수요일

     
     
     
    The Apollo Programme Was A Hoax.
     
    그는 살짝 희끗희끗한 머리에 적당한 캐주얼 느낌의 정장을 중후하게 차려 입은 멋진 남자였다. 그녀는 잘 어울리는 옅은 펌에 기품이 느껴지는, 나이를 먹어가면서도 특유의 아름다움은 고결하게 유지하는 부류의 여자였다. 그는 이제 그녀를 두고 홀로 멀리 어디론가 떠나야만 했다. 그녀는 그를 이렇게 기약 없이 보낼 수는 없었다. 그는 멋진 미소를 지으며 약속의 말을 하지만 그것은 스스로조차도 안심할 수 없어 내놓은 얕은 대책에 불과했다. 그녀에게 단지 몇 번의 입맞춤은 너무나도 부족했다. 그는 이제 그녀의 뺨을 어루만지며 마지막 말을 한다. 그녀의 눈에는 헤아릴 수 없는 슬픔이 천천히 아려온다. 그는 결국 떠나간다. 그녀는 끝끝내 눈물을 담아둔 채로 돌아간다.
     
    나는 뉴욕 JFK공항의 불편한 의자에 걸터앉아, 거부하기 힘든 졸음을 간신히 참아가며 이 광경 앞에 있다. 마지막 날까지도 시차는 나를 지독하게 괴롭혔고, 그 결과로써 나라는 인간은 완전하게 피로에 절여져 버렸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잠들었다간 분명히 비행기를 놓칠 것이다. 어떻게든 깨어있기 위해 자정이 다가오는 이 시간에 내가 대체 왜 이딴 곳에 있는지를 생각한다. 빙글빙글. 머리를 굴려보려는데 실제로 머리가 구르는 것만 같다. 내가 왜 여기에 왔지? 나는 뭐라도 얻어보려고 대양을 건너 이역만리 타국에 왔는데. 솔직히 나는 지난 일주일 동안 얻은 것이 진짜로 아무것도 없었다. 시차적응으로 인해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고 둘러댈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핑계다. 싸구려 현란함으로 많은 것을 얻어 온 것 마냥 약을 팔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기만이다. 나는 상당한 자원과 시간을 들여 이곳에 왔다. 조금은, 아니 사실은 상당한 기대를 품고 처음 보는 대륙에 발을 딛었을 때를 떠올린다. 무엇을 했고 무엇을 얻었나? 아무것도 없다. 잠들지 않기 위해 억지로 떠올린 생각들은 나를 후회와 냉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 도대체 어쩌라는 거지? 지나간 건 지나간 거고 이젠 미래를 생각해야 하잖나. 하지만 지금 나에겐 이렇게 진부한 반기라도 들어볼 만한 조그마한 기력조차도 남아있지 않다. 게다가 어쨌든 이 짧다면 짧을 여정이 그렇게 아무것도 못하고 끝나버린 건 다 사실이지 않은가. 한술 더 떠서 모든 것이 언제나 이런 식이었고 앞으로도 항상 이럴 것만 같다. 오, 이런….
     
    언제나처럼 시끄럽고 과격한 음악을 들어보려 하지만 귀에 뭐가 들어오는 것 같지는 않다. 쿵쾅대는 드럼과 굉음의 기타는 아무런 울림도 가져오질 못한다. 나는 과학실습시간에 역치가 높아져 묽은 아세트산 수용액의 신맛을 못 느끼게 된 중학생이 된 것만 같다. 익숙해진 충격은 더 이상 충격적이지 못하게 되고 머릿속에서 복잡하게 뿌리내린 잡생각과 졸음을 쫓아내지 못한다. 그러게 평소에 작작 즐겼어야 했다! 무기력은 나를 잠식하고 자아비판대회는 끝날 줄을 모른다. 차라리 자는 게 낫지 않을까 싶지만 사실 나는 이미 반쯤은 잠들어 있다. 그렇지만… 잠들면 안 된다! 날아가는 의식을 부여잡고 눈앞의 이별을 앞둔 남녀를 겨우 알아채려는 때, 귀에 울리는 앨범의 정체와 그게 끝나간다는 것도 알아버린다. “The Shape Of Punk To Come”? 잠결에 익숙한 것을 골랐네. 비록 상당히 순진하고 유치하게까지 느껴지는 주장들이 잔뜩 들어있지만 나는 이 앨범을 좋아한다. 이렇게나 진지하게 혁명이니 세계를 바꾸자니 새로운 음악을 하자니 하는 소리를 지르는 작자들은 적어도 상당한 진심을 보이고 있는 거다. 그리고 진심이 느껴지는 것들은 잊고 싶은 것들을 잊게 해주고 온전히 그것 자체에만 푹 빠질 수 있게 해준다.
     
    그런데 마지막 노래가 흘러나올 무렵이 되자 나는 이자들이 싫어지기 시작한다. “The Apollo Programme Was A Hoax” 라는 허무맹랑한 제목이야 뭐 넘어간다고 치자. 화염병이니 파괴와 새 출발이니 하는 건 이들의 단골주제이니 그것도 넘어간다. 그런데 기껏 가열차게 혁명을 부르짖어대던 이 작자들은 결말에 다 와서 갑자기 바람 빠진 풍선처럼 무기력하게 읊조리기만 한다. 실컷 소리지르며 진지하게 난장판을 벌이더니 끝날 때 다돼서 맥 빠진 목소리로‘사보타주가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거라고? 이 무력함은 마치 자기가 내뱉는 말을 스스로조차도 믿지 못하는 것 같잖아. 메니페스토를 통해 1968년의 부활을 신나게 휘갈겨 써대면 뭐하나, 한없이 강경했던 말들은 종착지에서 힘을 잃어버린다. 게다가 Refused는 이 앨범을 만들고는 조금도 기다리지 못한 채 스스로 죽어버렸다. Refused Are Fucking Dead. 그러면서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모든 것의 파괴는 새로운 것의 시작이라? 이별은 새로운 만남? 끝은 새로운 시작? 다음 번에는 더 나아질 거라고? 이젠 다 지긋지긋하고 진부한‘아프니까 청춘이다’류의 상투어구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느릿느릿한 곡을 듣는 것을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덜 떨어진 베이스와 힘없는 선동에서 불분명한 위로와 기묘한 다정함마저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한밤중의 공항에 널브러져, 한 시간은 더 있어야 출발할 비행기를 기다리며, 애절한 이별을 바라보며, 그 다정한 연인들이나 나나 결국에는 항상 똑같을 것 같다는, 언제나 같은 결말을 맞게 될 거라는 생각을 가지지 않을 수 없으면서도, 아폴로 프로그램은 날조였다는 황당무계한 이름의 곡을 들으며 반쯤은 깨어있는 채로, 앞으로 일어날 것들을 기다렸다.
     
    /Thires
    ※마이조 오타로 작품 “연기, 흙 혹은 먹이”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음을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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