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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top Making Sense] 5. SWANS
    [Stop Making Sense] 2023. 3. 16. 02:45

     

    [Stop Making Sense]는 자유연재물로 제가 소개하고 싶은 음악들에 대해 얘기해 볼 예정입니다. 아무래도 '날선' 음악에 대해서 주로 다룰 것 같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19세 미만인 분들께서는 접하면 안 되는 음악들도 많이 다룰 예정이니, 19세 미만인 분들께서는 글도 보지 마시고 음악도 접하지 마시길 정중히 부탁드립니다. 또한 문체는 존칭을 생략하였으니, 이 또한 양해 부탁드립니다.

    "나는 청자들이 자기 자신을 잊어버릴 정도로 빠져들 수 있는 세계를 창조하고자 한다." Michael Gira, Interview with Louder Than War

     

    2012년 Swans는 12번째(재결성 이후 2번째) 정규 앨범인 "The Seer"를 발매했다. 앨범은 2CD, 1시간 59분에 이르는 아주 긴 결과물이었으며, 거의 모든 음악 관련 언론매체가 이 앨범에 '10점 만점에 9점!' 정도의 평가를 매기며 극찬했다. 이들은 상당히 유명해지게 되었고, 몇몇 젊은 인디 애호가들은 이 앨범을 '갑툭튀' 같이 생각하고 조금 놀랐던 것 같다. 밴드의 리더인 Gira 또한, '본인 스스로가 만족하기 위해 만든' 이번 앨범에 대한 이런 급작스러운 유명세(?)에 놀랐다고 한다. 뭐 그도 그럴 것이, Swans는 Sonic Youth와 함께 "New York No Wave Scene"이라는 아주 괴상하고 끔찍하고 지하예술 중에서도 지하실에 처박혔던 경향으로부터 80년대 초반에 탄생했으며, 일찌감치 "Daydream Nation"같은 명반을 발매하여 양지로 올라가 아방가르드의 대부 대접을 받은 Sonic Youth와는 달리 쭉 음지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며 묻혀 있던 밴드였었다(단 한번이지만 major로 올라갔던 적이 있기는 하다…).

    "Michael Gira는 "The Seer" 앨범을 만드는 데 30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The Seer"는 이전 Swans 앨범들을 비롯하여 내가 만들었거나 참여했거나 상상해 온 모든 음악들의 정점이다." 이건 허세가 아니다." Thom Jurek, Allmusic

     

    애석하게도(?) 위의 멋진 말은 Gira가 다소 농담조로, 조소를 적당히 섞어서 한 말이긴 하다(본인 말로는 스스로가 겪어 온 경험들이 반영되어있다는 취지에서는 맞는 말이라고는 한다). 음악 감상에 있어서 타인의 평론이나 평가는 절대로 제1의 요소가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되지만 (물론 필자의 생각이다) 음악을 듣고 그것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이 '이 음반은 만드는데 30년이 걸렸다'같은 소리를 허세가 아니라고 단언하는 데에는 모종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필자가 왜 이렇게 '평가'들을 쭉 나열하고 앉아있냐면, 이 앨범에는 20, 30분이 다 되는 기나긴 곡들과 본격적인 게임(?)이 시작되기 전에 엄청나게 반복적인 서주 부분이 있는 곡들로 차 있고 앨범 자체도 정말로 길어서 처음 접하기에는 어려움이 심히 큰 작품이지만, 한번 제대로 듣기 시작하면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훌륭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심히 '빡셌던' 지난번 순회공연을 생각해보면, 공연은 완전히 우리를 집어삼켜버렸던 것 같다. 음악은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완전히 잠식했었다. 사실상 우리는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이게 바로 내가 원해왔던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Michael Gira, Interview with Pitchfork

     

    음반의 포문을 여는 "Lunacy"는 Swans가 이전부터 추구해 온 '리듬'과 '소리'만이 존재하는 해체된 록과 (Mogwai 등을 안다면 친숙할)포스트록의 점층적이고 서사적인, 말하자면 '서서히 커지다가 폭발!'이 훌륭하게 결합된 곡으로, Gira가 어린 딸에게 바치는 자장가(!)인 "Song for a Warrior"와 함께 음반에서 가장 '접근할 만 한' 곡이다. 문제가 있다면 그건 곡이 진행되는 내내 떠도는 어떤 음울한 분위기일 것인데, "순결함은 끝났다. 짐승을 삼켜라. 진실을 죽이거나, 외쳐라. Lunacy! Lunacy! Lunacy!" 라는 정체불명의 합창은 곡의 분위기에 일조한다. 더 큰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곡이 절정에 달한 이후에도 끝나지 않고 불안함과 불온함을 더 증폭시키며 잔존한다는 데 있을 것이다. "당신의 '어린 시절'은 끝나버렸다"라는 코러스(?)는 유치하기보다는 오히려 섬뜩하게 다가온다. 

    두 번째 곡인 "Mother of the World"는 10분에 달하는, 이런 타입의 곡에 익숙하지 않은 청자에게는 길게 다가오는 곡인데, 두 번째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앞 절반가량을 앙상한 리듬 패턴의 반복으로 채우는 패기(?)를 보여주어 초심자를 심히 당혹스럽게 한다. 이 리듬패턴에서 특기할 만한 점은 반복적이기는 하나 완전한 반복이 아닌 조금씩, 끊임없이 '변화하는 반복'이라는 것인데, 이 리듬은 Gira의 웅얼거림과 함께 청자를 완전하게 곡과 곡의 분위기에 몰입하도록 유도하다가 증오와 추종이 어지럽게 뒤섞인 듯한 노래로 이어지게 된다. 이렇게, 곡에 완전히 몰입한 후에 노래를 전개해 나가는 '2중 구성'은 음반 내 다른 곡들("A Piece of the Sky", "The Apostate", "Avatar", …)에서도 보여지는데, 30분에 달하는 혼돈과 격정인 "The Seer"는 이런 '2중 구성'을 두 개나 내포하고 있으며 이것도 모자라 곧바로 다음곡 "The Seer Returns"를 통해 마찬가지로 수수께끼로 가득찬 독백을 불온하게 읊으며 끝나는 커다란 구성의 대곡이다. 

    "음악은 살아있다.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무대에선 음반에 실린 그대로를 연주하지 않으려고 했다. 우리는 그 '순간'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어떤 것을 연주하려고 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으며, 그 '순간'은 기하급수적으로 증폭되고 증식되었다." Michael Gira, Interview with Louder Than War

     

    그건 그렇고, 혹시 도스또예프스키의 후기 장편들을 읽어 본 적이 있는가? 러시아의 대문호인 이 작가의 마지막 장편소설인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을 읽어 보면 이반 표도로비치 까라마조프라는 독특하고 흥미로운 인물이 등장하는데, 이 자는 끝없는 고뇌 끝에 '신'에 대한 반기를 들면서도 '신'이라는 존재를 갈구하고 찾고자 방황하는 것을 멈출 수 없는, 아주 치열하고 비극적인 인간이다. 갑자기 왜 뜬금없이 소설 이야기를 하냐면 이 거대한 음반이 가지고 있는 주제가 상당히 도스또예프스키적이기 때문이다. 비록 Gira는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같은 것은 잘 모르고, 가사는 자신의 기분과 느낌을 표현하는 문구들의 나열일 뿐 숨겨진 의미 같은 것은 말하기 힘들다고 말했지만 이 음반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후반부의 곡들은 명백하게도 인간과 '신'이라고 부를 수 있는 어떤 것에 대한 치열하고 격정적이기 그지없는 관계에 대한 서사이다.

    "A Piece of the Sky"는 대략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 긴 여정인데, 마치 밤하늘의 별빛들을 보며 담담하게 읊조리는듯한 후반부의 '노래'는 계속해서 "Are you there?" 라고 말하며 어떤 고등한 존재를 갈구하는 모습을 보여 주지만, 그것이 단순한 추종이 아니라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매우 복잡한 감정에서 우러나온 것이라는 것 또한 보여 준다("…Are you in there? On the moon? In the air? Crushed in my hand? Thrown in a fire?"). 마지막 곡이자 음반 전체를 통틀어 가장 강렬하고 압도적인 순간인 "The Apostate"는 제목부터가 '배교자'라는 뜻이다. 이 곡은 사이렌 소리같은 불길한 기타로 시작하여 괴성으로 끝나는 그 자체로도 굉장하고 놀라운 곡인데, "On a ladder to god"으로 비유되는 인간의 삶에 대해 외치는 단말마의 비명들("It's not in my mind!/ Cunt!/ Get out of my mind!/ Get fucked!/ We are blessed!/ Fuck!/ Bliss!")은 이자들이 '신'을 추종하기 위해 원하는 것인지 질문하기 위해 원하는 것인지 저주하기 위해 원하는 것인지를 잘 알수 없게 만든다.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Swans는 자신들도 불명확하게 여기는 이 감정들에 대해 결국 의미가 없는 괴성들과 파괴적인 타악으로 결말을 맺는다. 

    "나는 보통 '리듬' 아이디어나 다 만든 곡을 밴드에 가지고 간다. 우리는 연주를 시작하고 나는 어떤 식으로 보자면 '지휘'라는 것을 하긴 하지만, 절대적으로 나 혼자가 아닌 밴드 고유의 상상과 연주를 원한다. " Michael Gira, Interview with Louder Than War

     

    . Michael Gira는 카리스마가 넘치는 인물이지만 Swans의 음악은 Gira의 원맨밴드격인 음악이라기 보다는 Swans라는 밴드의 음악이다. 총 6명으로 구성된 Swans는 단순한 목소리와 기타 드럼에서 시작하여 "Handmade violin thing", "Incredible handshake" 같은것까지 사용해(정말로 앨범 크레딧에 그렇게 써 있다…) 연주 자체의 극한을 보여주는데, 이는 사이키델릭이나 헤비메탈 밴드들이 보여주었던 기교적인 무언가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악기들과 연주자들의 전쟁과도 같은 난장판이다. 인터뷰에서 Gira는 현재 Swans는 아주 훌륭한 밴드라고 언급하곤 하는데, 이들의 라이브는 하나의 완전한 혼돈임과 동시에 (아주 이상한 방식이지만) 정말로 자체적으로 훌륭한 연주이다. 

    Swans의 음악은 저 멀리 존재하는 극단의 경계선에 위치하는 음악이지만, 청자를 압도하고 집어삼켜버리는 원초적이고 폭발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Gira의 절친한 친구인 아티스트 Simon Henwood의 그림인 커버는 Gira의 이빨을 가진 늑대인지 개인지 모를 어떤 짐승의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 Swans와 이 앨범에 친해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당신이 이 음반에 완전히 몰입하게 된다면, 앨범의 말미에서 다시금 불길한 기타 소리가 울려퍼지며 강렬한 그루브가 시작될 때 어느새 모든 것을 잊고 푹 빠져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지난 30여년간 Swans는 아름다움과 추함, 음악과 소음, 카타르시스와 모욕의 경계에 도전해 왔다. 그들만의 폭력적이고 편향된 세계의 어휘를 빌리자면, "The Seer"는 이것을 연주하는 밴드 Swans를 초월하는 앨범이다." Mike Powell, Pitchfork

    ※Swans: Phil Puelo, Norman Westberg, Michael Gira, Cristoph Hahn, Chris Pravdica, Thor Har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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